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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의 노래 2
김훈 지음 / 생각의나무 / 2003년 12월
평점 :
절판
초등학교부터 제도교육으로 자라오면서 우리들이 학교에서 이순신 장군의 동상을 보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물론 그 때 우리는 박정희식의 군인미화에 의해 부풀어지고 왜곡된 이순신의 모습을 상상하였을 것이고 어린 시절의 나 또한 장난감 검을 차고 그런 이순신의 전기에 나오는 어린 시절의 칼싸움에 시간가는 줄 모르는 세월을 보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김훈은 그러한 나의 유년 시절의 기억에서 국가로부터 강요된 이순신의 이미지를 하나도 남김없이 걷어낸다. 그리고 새롭게 하나 하나 이순신이라는 인물을 창조해낸다. 인간의 희노애락과 시대적 운명 속에서 흔들리고 절망하고 불안해하는 한 개인의 눈으로 바라본 이순신의 마음 역시 인간적이었다.
하지만 그가 이렇게 인간적인 이순신을 살려내었기 때문에 우리는 보다 이순신을 존경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늘 당위적으로 받아들이는 진리인 역사는 현재적 필요와 사가의 눈에 의해서 새롭게 만들어진다는 말을 다시금 확인시켜주었다. 왕의 종묘 사직을 위한 이율배반적인 스스로의 모순과 불안 그리고 두려움은 이순신에게서도 임금에 대한 충성과 일본의 소탕이라고 하는 사명과 백성들의 안위와 가족들에 대한 연민과 정, 조국의 장수로서 명나라와의 조정과의 관계를 고려하고 처신해야 하는 입장 등 모든 것에서부터 그는 흔들렸고, 불안해 했고, 자신의 운명을 가늠할 수 없는 짙은 안개 낀 내일을 씻어지지 않는 불안함으로 맞이해야 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역사속에서의 운명을 알고 있었으며, 그것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그는 자신의 운명 속에서도 세상에 대한 열린 마음을 잃지 않았다. 토요토미 히데요시의 유언을 보고 그가 곰곰히 느꼈던 삶 그 자체에 대한 문제는 결코 히데요시의 삶의 의미와 자신의 삶의 의미가 다르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베어지지 않는 적은 베어지지 않는 삶의 문제였으며, 죽음의 문제였던 것이다. "몸이여, 이슬로 와서 이슬로 가니, 오사카의 영화여, 꿈 속의 꿈이로다."히데요시의 영화도 한편의 꿈이었다면 역사와 삶 속에서 자신의 삶의 의미를 도무지 찾아낼 수 없었던 그래서 벗어날 수 없는 허무와 덧없음에 시달렸던 충무공의 삶도 역시나 꿈 속의 꿈은 아니었을까?
가을이 깊어가는 강의 표면은 고요하고 강물의 빛은 더욱 깊어져만 간다. 해질무렵의 노을은 더욱 붉어져가고 나의 인생의 깊이도 더욱 깊어져 간다. 삶 속에서 아직 한 번도 제대로 나를 볼 수 없었던 젊은 날의 헛된 꿈과 사랑이 한 편의 파노라마로 내 가는 앞길을 따라 펼쳐진다. 너무나도 가벼웠던 젊음, 주체할 수 없이 덧없었던 인생, 너무나도 절망적이었던 사랑, 그 늪에서 헤어나오기 힘들어 한참을 누웠던 그 자리엔 이미 무성한 풀들이 자라나고 있을테고, 나는 또 단풍 물드는 가을의 끝을 향해 더욱 깊어져만 가고 있다.
오늘, 충무공이 끝없이 막막하게 펼쳐진 미동도 하지 않는 바다를 쳐다보던 그 눈빛으로 나는 안개 짙게 깔린 나의 미래의 바다를 촛점없는 눈으로 응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