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치 - 하 - 도스또예프스끼 전집 도스토예프스키 전집
도스또예프스끼 지음, 김근식 옮김 / 열린책들 / 200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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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표도르 미하일로비치 도스또예프스키의 인간의 삶을 보는 시선이 이 책에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 그는 왜 백치인 공작이란 인물을 만들었을까? 그것은 모든 세상 사람들의 마음 속에 존재하는 선량한 본성의 인격화가 아니었을까? 인간이 가진 증오와 악의는 온 세상을 불태우고 그렇게 태워지는 세상 위에 우리들은 마른 건초처럼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그 위에 떨어지는 빗방울 한 점이 있다면 그것이 바로 미쉬낀의 마음이 아닐까? 공작은 어떤 사람들을 대할 때에도 그의 기만적이고 나쁜 점을 보지 않으며 그것은 이상하게도 나쁜 마음을 먹고 있던 상대방에게서 마음의 선한 본성을 깨우치게 하고 그의 마음을 정화시키게 하는 어떤 기제를 작동시키고 만다.

  레베제프라고 하는 속세에 물든 대표적인 인물을 볼까? 그는 자신의 이해관계를 위해서 노골적으로 행동하는 우리 시대 인간의 대표격이다. 불에 타는 돈을 위해서는 자신의 자존심마저 버리고 돈을 끄집어내려하고 자신의 조그만 이해관계에 따라 이 사람 저 사람에 붙어서 처신하는 태도는 어쩌면 우리들 마음 속에 자리잡은 속물 근성을 대변해주는 자이기도 한 것이 아닐까? 사람 누구에게나 그런 마음이 있다. 겉으로 그것을 강하게 부정할수록 자신이 인정하고 싶지 않은 자신의 그 마음이 올라오고 있는 것일런지도 모른다.

  나스따시야는 또한 자신의 이상은 고결하고 신성한 곳에 두기를 원하면서 자신의 발은 진흙 속에서 허우적대고 있는 우리들의 삶의 전형이다. 그녀의 마음 속에는 돈과 육체적인 쾌락을 원하는 인간들의 이기심을 드러내는 한 면에 대한 동조와 그에 대한 신랄한 비판과 거부의 면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그가 로고진에게서 받은 돈을 불구덩이에 던지는 장면에서 보여지는 인간성의 여러 가지 측면들은 이 작품에서 아주 중요한 사건으로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한다.

  예빤친 가족과 이볼긴 가족과의 관계는 부와 권력을 가져서 성공한 가족과 몰락한 가족과의 일반적인 특성들을 보여준다. 가브릴라는 자신의 성공을 위해 예빤친의 비서생활을 하며 자신의 보장된 성공을 위해 그의 쾌락을 보장해주는 자로 전락한다. 삶의 여유 속에서 나오는 친절이 하지만 그 뒤에 깔린 계산들이 예빤친 가의 주류를 이룬다면 실패한 자기 삶에 대한 한탄과 보다 노골적인 삶에 대한 욕구가 이볼긴 가의 주류가 된다.

  이뽈리뜨는 죽음을 눈 앞에 두고 삶의 의미에 대한 일장 연설에서 우리들에게 삶의 진정한 의미를 묻고 있다. 문제는 끊임없이 그 삶을 추구하는 데 있지, 그 삶을 발견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다.라는 말은 콜롬부스가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하는 과정이었지 그 순간이 아니었다는 말과 일치한다. 하지만 그는 이러한 삶의 과정에 대한 의미를 자신에게 얼마 남지 않은 삶의 과정을 자신이 선택할 수 있다는 결론을 내림으로써 자살을 결심하는 어리석음을 보이게 된다. 삶의 과정에서 신은 빠져버리고 어리석은 인간의 판단만이 남게 되어버리는 것이다. 

  로고진은 이상적인 사랑의 열정으로 가득한 인물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상인으로서의 삶을 내던지고 사랑하는 여인 나스따시야를 위해 모든 것을 바칠 각오를 했던 것이다. 그 자신의 열정을 위해 광적인 행동마저 서슴치 않았던 그에게서 그녀 없는 세상의 의미는 없었을 것이다. 결국 이러한 그의 마음은 그녀를 영원히 소유하기 위해서 그녀를 살해하게 된다.

  이렇듯 모든 세상 사람들의 마음 속에 자리한 증오심들이 만나 온 세상을 지옥으로 만들어낸다. 그런 지옥 속에서 백치인 공작이 했던 일은 바로 인간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오신 그리스도의 역할과 다르지 않다. 우리 마음 속의 선한 도덕성을 살려 내어 자신의 마음을 정화하고 자신을 변화시키는 삶을 순간적나마 가능하게 했던 인물은 세상의 부와 권력에 관심이 없고, 어떤 사회적 지위도 갖지 않음으로서 모든 계층의 사람들과 어울리며 그들의 모든 행동과 그 이면의 마음을 순수하고 선하게 해석하고 바라봄으로써 그들의 마음을 변화시키고 있다.

  그렇지만 이 소설의 결론은 모두가 상처받고 자신의 삶속으로 들어가면서 맺음된다. 공작은 다시 백치가 되고 나스따시야는 로고진에 의해 죽고, 아글라야는 심한 마음의 상처를 안고 폴란드 백작이라고 속인 사람과 결혼해서 독실한 카톨릭 교도가 되고....이들의 삶에서 공작은 어떤 의미와 흔적을 남겼을까? 그리고 공작 그 자신은 어떤 삶의 의미와 흔적들이 다시 백치가 된 그에게 남게 되었을까?

  구원받지 못한 영혼들, 그들이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것들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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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여우 2005-11-06 21: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상에나.
저는 무조건 도스또의 책을 완독하신 분들은 일단 존경합니다.
아시죠? 왜 그러는지..흐흐흐^^

달팽이 2005-11-07 07: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많은 인내가 필요했답니다...ㅎㅎ
 
이별의 기술 - 인류학자가 바라본 만남과 헤어짐의 열 가지 풍경
프랑코 라 세클라 지음, 임왕준 옮김, 조영 그림 / 기파랑(기파랑에크리) / 200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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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사랑을 할 때 사람들은 상대방을 자신의 이상형으로 만들어버린다. 그리고 상대방이 가진 모든 것을 미화시키고 좋게 본다. 그 이면에는 다른 사람과는 다른 특별함이 상대방에게 부여되고 그 사람과 사랑을 나누는 자신에게도 특별함이 부여된다. 사실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사랑의 사건이 자신에게만은 아주 특별하고도 의미있는 일이라고 믿고 싶어진다. 그래서 그의 머리칼 하나, 그의 미소 한 점, 그의 표정 하나도 나에겐 특별해진다. 그것이 사회적으로 일반적이라고 할지라도....

  그렇게해서 사랑은 시작되고 관계의 망은 점점 더 촘촘해져간다. 그들의 관계로부터 시작된 파생된 관계들의 구조가 쌓아올려지고 그것은 이제 둘만으로서는 허물 수 없는 또 다른 관계망으로 이어져간다. 이렇게 우리에게 있어 사랑의 시작은 너무나도 큰 의미를 가지고 중요한 인생사로서 자리매김되어진다. 만난지 백일을 기억하고 생일에는 이벤트를 만들어내고 보다 발전해가는 관계에서 서로에게 심리적인 만족감과 안정감을 느끼는 등 누군가가 늘 내 곁에 있다는 생각에 편안해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특별함과 편안함과 그 모든 사랑의 기억도 두 사람의 이별 앞에서는 갑자기 무시되어지고 만다. 그만이 가졌던 특별한 미소와 행동은 속물적인 어느 남자의 것과 전혀 다를 바 없어지고 그 특별함과 아름다움을 느꼈던 나의 내면의 빛은 퇴색되어버리고 그런 감정과 그런 마음을 가진 나조차도 부정되어버린다. 이미 복잡하게 짜여졌던 여러 가지의 관계망들이 커다란 가위에 의해서 싹둑 잘리게 된다. 그럼으로써 그 특별하고 아름답고 길었던 만남의 과정과는 정반대로 일순간에 모든 것이 과거 속으로 던져지게 되고 사랑의 기억은 증오와 미움으로 급속하게 변화된다.

  우리들은 왜 이런 이별을 하는 것일까? 문화 인류학자로서 그는 이별의 다양한 문화가 존재하고 있음을 보여주려 한다. 그래서 이별에도 사회적 관계망을 훼손하지 않고 점진적으로 둘의 관계에 대해서 서로가 돌아보고 멀어지는 자연스러운 과정을 그들과 그들을 둘러싼 공동체가 모두 체험하도록 하는 문화도 존재함을 보여준다.

  사람들은 이별의 상실감을 두려워한다. 나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서로에게 돌이킬 수 없는 큰 상처를 남기고 돌아서서 남이 되는 것은 성숙하지 못한 이별의 방식이다. 이별이 자신에게 상처만 남겼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그 사랑의 아름다운 기억들을 외면하는 것이다. 그로 인해 가졌던 자신의 삶의 행복과 성숙을 부정하는 것이다. 그 좋은 기억들에 대한 자신의 마음을 버리는 것이다. 그럴 필요가 어디 있는가? 내가 조금이라도 스쳐지나갔던 내 사랑했던 사람들, 남자와 여자 그 모든 사람들이 비록 좋지 않은 기억으로 멀어져갔다 하더라도 그 모든 사람들은 나를 성숙케했다.

  이 책은 목차를 보고는 좋은 책이라는 느낌에 기대감이 있었지만 막상 책을 들고 읽어나가기 시작하자 별 특별한 내용없이 단조롭고 지루한 느낌마저 들었던 것이 사실이다. 번역에 문제가 좀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이 책을 떠나보내는 나의 이별의 방식마저 나쁘게 할 필요는 없다. 그래도 이 책을 통해 우리는 만남과 이별의 너무 상이한 문제들에 대해 생각해볼 수는 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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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여우 2005-11-04 08: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또 그 사랑과 이별 이야기랍니까?
아유, 지겨워요
근데 그 지겨운 이야기에 매달려있는 우리들 모습이 귀엽죠?
이젠 새로운 만남을 의도하지 않으니 이별도 없을 것 같은 제 삶의 여정에
지겨운 새로운 이야기 무언가를 만들어야 할까 봅니다.
그게 무얼까 따져보니 지겨운 책이었어요
지겨운 책, 그럼에도 또 책이나 읽을 궁상을 떠는^^

달팽이 2005-11-04 08: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는 너무나도 남녀관계에 많은 관심과 에너지를 소모하며 사는 것이 사실인 것 같아요. 정말 지겨워요...
그러나 그 성격을 좀 바꾸고 그 대상을 좀 넓힐 때 우리는 세상 모든 것에서 새로움과 경이로움을 느끼죠...
여우님이 송아지가 태어나고 자라는 것을 애정으로 지켜볼 때나...
이렇게 면식도 없는 내 서재를 관심으로 기웃거리실 때에나...
나 또한 그 흔적이 있나 없나 설레임으로 또 하루를 맞이할 때에나...
여우님 서재를 통해 새로운 책 하나 만날 때에나...^^

비로그인 2005-11-04 15: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분위기를 깨고 저도 한 마디 하고 가지 않을 수가 없군요. 대상을 넓혀야 한다는 말씀이 마음속으로 쏙~ 들어와 버렸어요. 책은 평이하게 접하셨으면서 새로운 가치를 발견해내시는 달팽이님의 시각이 놀랍네요. 잘 읽고 갑니다..

글샘 2005-11-04 16: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의 기술 류의 책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이 책을 만났더래도, 안 읽을 뻔 했는데, 달팽이님 덕분에 좋은 리뷰로 대신하게 된 것을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오늘 읽은 어떤 책에서, 마음보다 '마음씨'가 중요하단 글을 읽었습니다.
사랑하는 마음은 사라질 수 있어도, 그 마음씨는 영원히 남고,
'씨'가 되어 다시 싹튼다는 이야기를요...
이별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우리 모두 남남이 되어 헤어지고 잊혀지는 것이 이별이라 생각할지 몰라도, 우리는 누군가의 마음에 '마음씨'를 심어 놓고 헤어지는지도 모른다고 말입니다. 사는 건 역시 쉽지 않은 일입니다.

달팽이 2005-11-04 16: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이렇듯 표현은 달라도 뜻을 나눌 수 있는 여러분들 고맙습니다..
순간 순간 우리는 마음씨를 심습니다.
순간 순간 우리는 마음을 돌이켜야 합니다.
씨앗이 좋은 결실로 돌아오는 현실적인 시간은 얼마가 걸리더라도
그것이 반드시 우리에게 결실로 돌아옴을 믿는 믿음...
그리고 그것을 보는 마음의 눈...
 

기억 속에 있나요 오래 전에 내 모습

마주잡은 우리의 손 처음인걸 아시나요

외면하며 돌아서요 혼자만의 낯선 재회

당신 아닌 다른 사람 아직도 생각 못해

살아가다 세상 인연 또 있다면 믿을테요

당신만이 내 사랑 마지막 운명인걸

기다림은 어리석음 슬픔만을 남겨줄 뿐

보내주는 마음도 사랑이요

내 곁에서 힘들었던 당신 미소 편해 보였소

둘 중하나 행복하길... 당신이라 다행이오

 

 

언제나 죽을 것 처럼 아프지만 죽을 만큼 아프다 마는 것...

그리움입니다

칼도 오래쓰면 무뎌지듯이 슬픔도 오래 쓰면

무뎌지는 법인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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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덕화 2005-11-01 08: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임옹균님의 "표정" 들어 보셨나요?
아주 아름답고 슬픈 음악이랍니다.

달팽이 2005-11-01 09: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혜덕화님 찾아볼께요...
제 스타일의 음악같은데..
 
이 짧은 시간 동안 창비시선 235
정호승 지음 / 창비 / 200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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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 속에서 인간을 찾는다.

그리고 삶 속에서 시를 찾는다.

인간의 삶 속에 놓여진 무수한 절망과 고통 속에서도

꽃을 피우는 가슴이 있다.

그것이 시가 된다.

절망의 바닥, 바로 그 곳에서 마음은 솟아오른다.

하늘로 비상한다.

그래서 인간의 삶 그 어느 것도 시가 된다.

이 시집은 정호승 시인이 시인으로서의

자신의 위기감과 상실감 속에서 걷어올린 시다.

시인으로서의 사명감은 늘 가슴에 담고 있으면서도

삶의 자연스러움에서 피어난 시를 쓰기 위한

몸부림과 노력 속에서 태어난 시다.

그런 그가

삶 속에서 그 처절한 가슴과의 싸움 속에서

마음을 비상시키기 위한 새의 날개를 찾으려 했다.

이 시들은 나에게서도

나의 삶 그 속에서

나를 비상시키는 그 무엇을

찾게 한다.

내 쳇바퀴같이 돌아가면서도 다급하게 펼쳐지는 일상에서

바로 그 정신을 놓아버린 일상에서

다시 나에게로 돌아오게 하는

그래서 일에 사람에 사물에 들러붙은 나의 마음을

다시 비상시키는

그런 날개의 꿈을 꾸게 한다.

저 푸른 가을 하늘 위로

끝없이 펼쳐진 창공 위로 솟아오르는

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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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여우 2005-11-01 17: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의 짧은 리뷰가 한 편의 시입니다.

달팽이 2005-11-01 20: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 어설픈 솜씨라도 여우님은 읽어줄 것이라 생각했지요..
 

풀잎은 이슬을 무거워하지 않기에

새벽마다 이슬이 앉았다가 사라집니다

꽃은 낙화의 때를 기다릴 줄 알기에

해마다 눈부시게 피어났다가 사라집니다

그분은 오늘도 당신 대신 못 박히러 갔기에

지금 막 고개를 떨구었습니다

이제 그만 당신은 조용히 돌아오세요

사랑하는 사람들을 배반하지 말라고

그분이 당신의 가난한 마음의 발을

고이 씻어드리지 않던가요

사람은 누구나 눈물과 결핍으로 만들어집니다

저와 함께 새벽 미사를 마치고

아직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골목으로

리어카를 끌고

빈 종이박스를 주우러 다니시는 할머니의

종이박스가 되어드려요

지게에 장작을 지고 장터로 가신

아버지도 평생 장작이 무겁지 않았습니다

죽기에 참 좋은 날이 있으면

살기에도 참 좋은 날이 있을 것입니다

 

                                              - 정호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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