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이후에 무엇이 오는가?
엘리자베트 벡-게른스하임 지음, 박은주 옮김 / 새물결 / 200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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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형제가 있다. 이들은 부모가 이혼한 후 어머니와 계부에 의해 양육되다가 어머니가 병으로 죽고 계부는 또 다른 아이들이 있는 아내를 맞이한다. 결국 이 형제는 자신의 혈연관계는 모두 사라져버린 부모에게서 양육되고 있다. 이 뿐이 아니다. 이들의 부모는 서로 국적이 다르고 따라서 이들은 두 개 이상의 국적을 가지고 있다. 그들에게 가족이란 무엇이며 스스로의 정체성에 대해 어떻게 정의를 내릴까? 이것이 앞으로 우리가 직면해야 하는 상황이며 우리 가족의 멀지 않은 미래가 될 것이다.

  엘리자베드 벡 게른스하임은 독일의 사례를 통해 전통적인 가족이 붕괴되고 있는 현상에 대해 설명한다. 여성들의 경제적 지위의 향상에 따른 가족에서의 관계 변화와 이혼의 증가 그리고 또 다른 결혼은 우리에게 평생 책임지워진 가족의 보존이라는 짐이 더욱 가벼워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우리는 이제 결혼 생활을 인생에서 한번쯤 거쳐가는 과정으로 파악하고 있으며 실제로 전통적 가족관계를 유지하기에는 그 밖의 많은 사회적 관계들이 구속하는 힘들이 더욱 커지고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이미 우리 사회에서도 그 변화의 양상은 광범위하게 나타나고 있다. 내 주변의 사람들 중에 결혼 후 2-3년 내에 애가 있건 없건 이혼 한 가정이 꽤 많다. 서로 간의 성격의 불일치나 고부간의 갈등 등 여러 가지가 헤어짐의 이유가 된다. 하지만 해석을 어떻게 해낼지라도 이것은 전통적인 가족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변화된 가족관계나 부부간의 관계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데서 나타난 결과라는 것이다. 이젠 여성들도 자신의 세계와 직업을 가지고 있고 따라서 가사노동이 그들의 몫이라는 생각에 단호히 반대한다. 변화된 사회에서 남성들은 이전보다 많이 가사노동을 분담해야 한다. 또한 두 사람의 사랑으로 결합한 가족은 그 외의 부부 각각의 가족과 친지들의 영향력으로부터 자유로우려 한다. 만약 예전처럼 서로의 가족이 그들 부부의 영역을 드나드는 것이 많아질수록 그 결혼생활은 위태로워진다.

  이렇게 해체되어 가는 전통적인 가족 후의 대안은 무엇인가? 그것은 또 다른 가족이다. 하지만 그 가족은 여러 가지 가치와 인간관계가 복합된 다문화가족이다. 형태에서부터 다양하다. 여성 둘이 마음이 맞아 공동생활을 한다던지, 한 여자와 세 남자가 그들의 자녀와 산다든지, 입양 아이를 키우는 두 남녀의 결합이라든지, 아니면 같은 인생의 목표를 지향하는 사람들의 모임이라든지....그것은 변화되어가는 삶의 양식들을 잘 반영해가는 가족형태이며 자신의 삶을 어느 한 곳에 매이게 하지 않고 자유롭게 만드는 접속의 세계의 가족관계이다.

  하지만 이러한 가족의 모습이 낳을 문제점 또한 무수하다. 친자 아닌 아이와 친자의 양육비 부담과 상속 문제, 가족간의 결별에 따른 권리와 부의 귀속 문제, 그에 따른 여러 사회문제 등 등....아마 가정법원 판사들은 감당할 수 없는 소송으로 머리를 쥐어뜯게 될런지도 모른다. 아직은 우리 사회에서도 파괴된 가족으로 인하여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며(아이는 아이대로, 이혼한 부부는 경제적으로 심리적으로...) 그 버려짐에 대한 사회적 시스템이 준비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더욱 사회적 빈곤으로 빠져들 가능성이 높다.

  이렇게 또 다른 가족관계의 변화와 새로운 가족의 출현은 역시 이중의 얼굴을 가지고 있다. 기존의 구속된 삶과 관계로부터 자유로워지며 자신의 정체성을 끊임없이 묻고 찾게 만드는 능동적인 측면과 사회적 시스템이 갖추어져 있지 못함으로써 버려지고 상처받은 사람들의 정신적인 상처와 빈곤화 현상으로 인한 여러 가지 사회문제... 삶의 변화가 어떠하던지 우리는 우리 삶의 의미를 물어야 한다. 삶의 변화에서 상처받고 좌절하더라도 그 상처와 좌절에서 얻는 삶의 교훈들이 무엇인가 하고... 그래서 우리는 가족 이후의 사회에서 어떤 마음을 가지고 어떤 모습으로 살아갈 것인지를 준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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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샘 2005-11-25 10: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글입니다.
이혼으로 인한 '고아'가 생기는 현실, 가정내 노동 분업의 실제 등...
그리고 이질적인 것을 받아들이지 않는 한국 문화와 입양...
삶이 바뀐 듯 하지만, 문화지체에 따른 인간의 상처만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세상입니다. 잘 읽고 갑니다.

달팽이 2005-11-25 10: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문화지체'현상, 제가 이 책을 읽고도 떠올린 단어입니다. 일종의 아노미 현상이죠
그 혼란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묻고 찾아가는 과정에서 참된 보물을 찾는 것은 또한 희망이 되기도 한다고 생각합니다.
학사 일정이 끝나면 마음 편히 책 좀 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글샘님처럼 좀 왕성한 독서력을 되찾아야 할텐데...

파란여우 2005-11-26 23: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혼자와 기혼자의 가족의 영역은 다른거겠죠?
저야말로 아주 홀가분하게 살고 있군요
그럼에도 무엇을 바라는건지...
저는 두 분의 리뷰 올라오는 수치를 보면 심장이 쿵쾅 떨어요
왠만큼들 읽으셔야지...^^

달팽이 2005-11-26 23: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홀가분한 여우님의 삶이 때로는 부럽군요..
늘 사람은 자신이 가지지 못한 욕망에 대한 갈망이 있나봐요
우선 나부터..
저는 여우님의 리뷰의 이야기속으로 들어가서 읽다보면
내가 함부로 리뷰쓰면 안되는데...하는 생각이 들곤 하죠..
 
수런거리는 뒤란 창비시선 196
문태준 지음 / 창비 / 200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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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누구나 자신만의 아름다운 과거의 기억들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 기억들은 자신의 주관으로 받아들이고 재생산해나가는, 새롭게 창조된 기억이다.

자신의 마음이 그리는대로 기억도 만들어지고 사라지고 변해간다.

문태준 시인은 나와는 같은 또래의 나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그가 그려내는 농촌 풍경들은 유년시절 내가 잠시 머물렀던 농촌에 대한 기억들과는 사뭇 다르다.

그가 더욱 깊은 농촌에서 자신의 기억 속에 더욱 깊이 새겨놓은 기억들을 가지고 있는 탓일게다.

그는 현대의 도시적인 삶의 원심력에 묻혀 정신없이 돌아가는 삶에서,

푸근했던 흙냄새가 나고 어머니의 포근했던 가슴같았던 농촌을 떠올리고 있다.

하지만 그가 현실에서 본 농촌은 그 포근함과 그리움마저 파헤쳐진 폐허로 변해버린 농촌이다.

APEC 정상회담이 열리고 있던 부산에서 반 아펙운동이 외쳐대는 함성 소리 사이로 쓰러져가는 농촌의 비명 소리가 들리고 있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그 폐허같고 빈집같은, 그래서 이제는 사람을 끌어당기지 못하는 그 농촌이 시인에게는 몸이 갈 수 없지만 마음은 자꾸만 끌려가는 중력같은 공간인 것이다.

때로는 그 중력이 봉산댁의 젖같이 관능적이기도 하고 선무당의 춤처럼 샤머니즘적이기도 하다.

"물길 아래

돌들은 팔을 괴고 앉아 복화술로 말을 걸고 있네"

겉보기엔 정지된 세계,

하지만 그곳에서 일어나는 존재의 참다운 신비

자꾸만 빨라져가는 원심력의 세계 속에서 우리는 삶이 느림의 중력공간으로 들어가다가

어느듯 그 삶이 멈추어버린 무중력 공간에서 삶의 진실을 발견하게 될런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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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샘 2005-11-21 12: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요, 폐허, 빈집...
우리가 도시에 많이 산다고, 농촌을, 우리의 근원이었던 젖줄을 빈집으로 만든다면,
과연 원심력이 우리를 날려보낼 거기는 어디인지요...

달팽이 2005-11-21 13: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게 말입니다.
그래서 몸은 뻘밭에 뒹굴러도
마음은 늘 중력으로 향해야 하고 나아가 무중력 공간으로 향해
그 빈 곳에서 자신을 보아야 할 일인가 봅니다.

파란여우 2005-11-22 21: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돌들은 복화술로 말하고
말많은 파란여우는 주둥이로 떠들다 잠이 들테죠
아, 궁금한 책입니다.

달팽이 2005-11-23 09: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슴에 고이 묻어 둔
입으로 나오지 못한
입으로 나올수 없는
그런 말
말 아닌 말
하나 간직하고
고이 잠이 듭니다.
 

내 어릴 적 마당에 사철 감꽃 져내리는 감나무가 한그루 있었네

사마귀 대가리를 쳐들듯 분에 차서 들어오는 식구들

흙으로 빚은 얼굴을 하고 사흘 내내 내리던 흙비

내 어릴 적 마당에 사철 불 꺼진 가죽나무가 한그루 있었네

늙은 누에처럼 기어가던 긴 슬픔들

조왕신을 달래러 밤새워 뜬 달

이제 모두 내보내니,

사립 하나 없는 문으로 들어와 복사뼈처럼 들어앉아 있던 것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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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죽 사이에 앉아 장닭이 웁니다

묵은 독에서 흘러나오는 그 소리 애처롭습니다

구들장 같은 구름들은 이 저녁 족보만큼 길고 두텁습니다

누가 바람을 빚어낼까요

서쪽에서 불어오던 바람이 산죽의 뒷머리를 긁습니다

산죽도 내 마음도 소란해졌습니다

바람이 잦으면 산죽도 사람처럼 둥글게 등이 굽어질까요

어둠이, 흔들리는 댓잎 뒤꿈치에 별을 하나 박아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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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나무에서 다른 나무로 옮겨가는 틈에 낀

날다람쥐들의

한 곡예

물수제비 뜨듯

줄 위에 올라 있는 남사당패들

탁한 낮달이 어둘녘 청명해지고 있다

어느 부족의 집과 절터 사이

나는 길 위에 저울추를 올려놓는다,

길이 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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