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중용 - 인문학연구소 고전총서, 동양사상 1
김학주 옮김엮음 / 서울대학교출판부 / 200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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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  책을 읽던 중 불교TV에서 종범스님의 설법을 듣게 되었다. 스님의 말씀 중에 반조라는 말이 가슴속으로 쏙 들어왔다. 내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지켜볼 때 마음이 외부에 가서 달라붙지 않고 자신의 마음 속에서 받아들이는 바를 지켜본다는 것이다. 더불어 이러한 감정과 생각이 생기고 사라지는 그 자리를 지켜보라는 말로써 받아들였다. 두번째로 들게 되는 대학과 중용은 나에게 반조하는 공부를 가리키고 있다.

  저자는 학자이기 때문에 마음의 경계로서 써내려간 글들과는 다소 거리감이 있는 듯하였지만 그래도 객관적인 자세를 유지하면서 해석을 충실하게 해놓았기 때문에 읽어내는 데 큰 거부감은 없었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다음에 다시 대학을 읽을 때에는 마음공부가 된 사람의 글을 읽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되었다. 이 책에 담긴 글들이 이미 격물치지가 무엇인지 도가 무엇인지 성의와 지선이 무엇인지를 마음으로 점검한 이가 적어낸 글이기 때문에 단순히 학문적으로만 풀어서는 그 의미를 마음으로 담아내기가 쉽지 않고 따라서 죽은 글이 되기가 쉽기 때문이다.

  격물치지인가? 치지격물인가? 이를 놓고 주자학과 양명학의 논쟁이 떠오른다. 사물의 이치를 궁구하여 사물의 본성에 다를 것인가? 치지하는 자신의 마음을 성찰하여 천지의 본성을 깨달아서 격물하는 것인가? 우선 마음으로는 후자에 더욱 끌린다. 그것은 수신하는 방법으로서 우선 나의 내면을 성찰하게 되기 때문이다. 대학에서 격물치지와 함께 대학을 대표하는 말을 고르라면 나는 '혈구지도'를 고르겠다. 이는 논어의 종심소욕불유구의 구를 가지는 것이 되고, 중용에서는 충서의 정신으로 나타난다.

   忠은 마음의 한가운데를 지키고 있는 것이다. 세상의 흔들림에 휩쓸리지 않으면서 자신의 중심을 도의 한가운데를 지향하고 있는 것이다. 恕는 그 깨달음을 바탕으로 자신의 마음을 격물하는 대상과 같게 만드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자신의 마음 속의 곱자로부터 시작되는 것이니 이것은 불교에서 말하는 불성과 같은 것이라고 보여진다.

  대학이 수신의 공부를 하는 사람들이 먼저 읽어야 하는 방법론에 관한 책이라면 중용은 공부를 마친 사람이 세상으로 나아가는 방법에 관한 책이다. 그래서 어쩌면 어울리지 않는 이 두 내용을 한 권에 묶어 둔 것이 어색하기조차하다. 하지만 마음으로 점검하는 공부에 시작과 끝이 어디있는가? 대학이든 중용이든 그것이 가리키는 진리는 다르지 않다고 할 것이다.

   天命之謂性 率性之謂道 중용의 첫구절부터 마음이 환해진다. 천명이 제일 첫부분에 나온다. 자신을 비운 상태에서 떠오르는 마음이 바로 천명이 아니겠는가? 정성이 하늘의 덕이면 그것을 따라 정성되게 하는 것은 사람의 덕이라는 것이다. 그것을 따르는 것이 도라고 했다. 이 도는 멀리 있지 않으니 바로 우리들의 생활 속으로 들어오는 것이다. 따라서 성인이라면 지성을 다하는 곳에 마음이 자리잡아야 하며 그러할 때 만물을 화육하게 한다.

  중용에서도 마음을 끌어당기는 말이 있었다.  相在爾室 尙不愧于屋漏 그대가 방에 있는 것을 보건대, 방구석에 대하여서도 부끄러울 것이 없다고 했다. 군자는 사람들이 보나 보지 않으나 그 마음가짐을 지성에 닿게 하는 것이다. 이러한 공부를 통해 우리가 이르는 곳이 어딘지는 명백하다. 이런 공부가 세상에 나아갈 때에라야 비로소 다툼과 논란이 없을 것이다. 공부를 마치지 않고 세상에 나아가서 오히려 세상을 혼란되게 하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가?

  큰 공부는 비로소 치우침이 없는 삶으로 이어지고 이러한 삶의 완성이 우리 공부하는 사람들이 가야할 길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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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누아 2006-03-01 20: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원문으로 읽으면 씹으면 씹을수록 맛나는 음식처럼 더디더디 맛나게 다가옵니다. 저는 다양한 역주를 읽어본 게 없습니다. 그나마 읽은 것 중 하나가 감산 스님의 "중용"입니다. 감산 스님을 따라 중용을 읽으면 이렇게 읽으면 참 재미있구나, 허튼 말 없이 연관되어 쓰여져 있구나 싶습니다. 선지식이나 서적이 어떤 기준이 되기도 하지만 요즘은 내 하는 모양이 어떤지 살필 때 생활이 스승이 된다는 생각이 듭니다. 불기자심이라고 가만히 보면 저 자신을 속일 수는 없더군요. 세상을 다 속여도 제 자신, 제 자신의 생활을 속일 수는 없더라구요.

달팽이 2006-03-01 21: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군요. 불기자심...성철스님 책 사니까 끼워져있던 붓글씨가 생각나네요.
저는 불기자심을 나의 본성을 속이지 않는다고 풀이하고 싶었습니다.
고전을 읽으면 읽을수록 몸마음에 착 달라붙는 맛이 있어
공부하는 사람들을 끌어당기는 것 같습니다.
감산 스님의 중용도 읽어보겠습니다.
 
 전출처 : 파란여우 > 유배지의 수선화



 

 

 

 

 



一點冬心朶朶圓 일점동심타타원
品於幽澹冷儁邊 품어유담냉준변

梅高猶未離庭砌 매고유미이정체
淸水眞看解脫仙 청수진간해탈선

한 점의 겨울마음 송이송이 둥글다

성품은 그윽하고 담박하여 차갑고 우뚝 솟았네

매화가 높다지만 뜨락을 못 떠났는데

맑은 물 해탈한 신선을 진실로 보노라

 

남제주군 대정읍 안성리 1661-1번지에 추사 적거지가 있다. 제주시 95번 도로를 타고 마라도 방면으로 가다가 멀리 산방산이 덩어리째 보이면 오른쪽 안내표지를 따라 작은 마을 입구에 추사의 수선화가 피어있다. 금석학자, 서예가로 유명한 추사 김정희(1786~1856)가 조선 헌종 6년(1840년)에 윤상도의 옥사와 관련하여 제주도에 유배되어 헌종 14년(1848년)에 풀려나기까지 9년간 거주했던 곳이다.


추사적거지에 도착하니 비바람이 더욱 거칠어졌다. 그 악명 높은 제주도의 바람 속에 유배지의 수선화를 보러 달려 온 길. 집으로부터 헤아릴 수 없는 먼 거리다. 비바람 속에 수선화는 피었을까. 유배지의 수선화.

 



 

 

 

 

 

 

 

 

 

 

 

 

 

 

 

 



수선화는 현무암 돌담아래 일렬로 피었다. 흰꽃 잎 사이에 노란 꽃술이 도톰하게 돋을새김모양으로 벌어지고 있었다. 그 한점을 일컬어 <겨울마음>이라 표현한 추사의 마음은 겨울을 이겨내야 한다는 <세한도>의 뜻과 맞닿아 있다. 전날 롯데호텔 정원의 잘 다듬어진 매화나무 군락지에서 이제 막 꽃잎을 열기 시작하는 그것을 보고 적잖은 실망을 했다. 매화가 꽃의 으뜸이라면 그 나머지는 꽃도 아니라는 매화사상을 품고 있던 나에게 특급호텔의 반듯한 구획지처럼 사람의 손으로 줄 맞추어 피어나는 매화꽃을 보자니 자꾸만 플라스틱 인조꽃같아서 마음이 좋지 않았다. 무엇이든지 사람의 손길이 닿으면 물질이 지닌 본성을 상실하게 되는 것인가. 타의에 의해 꽃잎을 피우는 매화가 무슨 잘못이 있겠느냐만 거기에는 매화의 고품(高品)은 온데간데 없고 껍데기만 남긴 절체곤충의 조각난 박피같은 뻣뻣한 인위만 남아 있었다.


이제 수선화는 소박한 것으로부터 고품을 보여주고 있다. 유담(幽澹)이란 요란하고 화려한 것을 멀리하고 은은하고 그윽한 성품을 말한다. 나로부터 외면당한 롯데호텔 정원의 매화꽃은 덧없고 교언영색으로 치장한 무식한 정원 구석에서 졸렬한 자태를 쓸쓸히 보여 줄뿐이다. 꽃으로부터 상처를 입은 마음은 꽃으로 치유한다. 수선화를 보러 비행기를 타고 집으로부터 헤아릴 수 없는 먼 거리를 찾아온 마음이란 무엇인가? 추사는 말한다. 그것은 ‘해탈선(解脫仙)’이라고.

 

해탈한 신선이라.... 추사의 굽힐 줄 모르는 콧대높은 자존심은 세상이 다 아는 일이다. 자신의 학문과 총명함을 부정하는 일이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천상천하 유아독존. 추사의 자신감은 그를 오만방자함으로 이끌었다. 지나친 자신감의 이면에 있는 당당함의 경계를 넘는 교만이다. 그에게 겸양의 미덕을 요구하는 일이란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그 완고하고 거만했던 추사에게 9년간의 유배는 ‘인간으로서 나아가는 길’을 가르쳐준다. 학문적 성취를 지적 능력으로만 삼았던 그에게 수선화는 말한다.


品於幽澹冷儁邊 품어유담냉준변.


홀연히 추위를 견디며 그윽한 성품을 잃지 않는 수선화. 유배지의 수선화가 추사에게 가르쳐 준 것은 홀연히 이루어야 한다는 뜻이었을까. 여행객은 자꾸만 수선화 여린 꽃망울을 손으로 만져본다. 손가락에 묻어나는 수선화 향기는 있을 듯 없을 듯하다.


천재의 안테나에 주파수가 잡힌 수선화는 그에게 <세한도>의 진리를 깨우쳐주는 길로 안내했다. 날이 추워도 잣나무, 소나무처럼 푸르리라. 사실, 세한도처럼 사는 삶은 고단하다. 누군들 안락한 호텔방의 달콤한 꿈을 원하지 않던가. 하지만 인생이란 얄궂어서 종종 비가 내리고 바람이 불고 춥다. 으스스한 몸을 추스르려 안간힘을 써보지만 세상은 생각하는 것보다 더 많은 툰드라기후대가 넓게 분포되어 있다. 어제의 친구가 오늘의 적이 되고, 어제까지 사랑을 나누었던 연인과 오늘 헤어진다. 삶이란 매양 변덕꾸러기다.

 
그러니 스스로 마음을 다잡아먹지 않으면 누가 나를 지켜줄 것인가. 수선화의 꽃말은 '자기사랑'이다. 험난하고 궂은 세상. 누가 나만큼 나를 사랑해주겠는가. 나는 스스로 일어나야하고 스스로 꽃을 피워야 한다. 100% 자의에 올인한 삶. 타자적인 것으로부터 자아로 돌아오는 것. 유배지의 수선화는 그러므로 절망 속에서 희망을 노래한다.

 

<세한도>의 쓸쓸함은 거기에 사람의 자취가 없기 때문이다. 사람에게 상처를 입었으니 사람을 배제한 것일까. 유배지에서 의문은 비안개처럼 계속 일어선다. 그래서 그 후 추사는 대정읍의 신선이 되었을까. 수선화는 무엇을 기억하고 있을까. 한 시대를 뛰어넘어 한 획을 긋고 사라져간 사람들. 그들의 숨결을 비바람 속에 수선화는 담고 있는지 자꾸만 바람결에 몸을 눕히지 않으려 서로 기댄다. 

 

유배지의 수선화를 보러 먼 길을 달려갔다.

제주도를 찾아간 이유가 순전히 추사의 수선화를 보러가기 위함이었다면 추사 선생은 후대의 철없는 여행객을 귀여워해주실까. 우산을 쓰고 쪼그려 앉아 수선화를 만지며 주책맞게 눈물이 흐른다. 애꿎은 바람 탓이라고 돌리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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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찾은 사람들 김흥호 전집 2
김흥호 / 솔출판사 / 199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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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흥호 선생님의 이름을 보는 순간 나에게 낯설지않은 이름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바로 다석 류영모선생님의 정신적 유산을 물려받았던 분 중의 한 명이라는 사실 때문이었다. 그래서 심안이 열린 분이고 그의 눈으로 찾아간 선현들의 이야기는 단순히 그들의 업적이나 인생을 서술한 것이 아니라 그들의 정신이 지향한 바를 읽어내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따라서 내가 별로 끌리지 않는 짧은 전기적 이야기를 묶은 책을 선뜻 들 수 있었던 것이다.

  책은 우선 우리 나라에서 진리를 찾기 위해 살다간 유학자와 승려 그리고 다석 선생님을 이야기하고 있다. 진리의 길에서는 깨달음으로 들어가면 모든 것이 소통되지만 현실적 삶으로 나오게 되면 여러 가지 옷을 입게 되므로 서로가 달라보일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유학자 간에 유학자와 승려 간에 서로 일치되지 않는 생각들은 드러난 문화적 차이일 뿐, 그들의 공부는 사물의 이치를 궁구하건 내면을 궁구하건 결국엔 자신의 마음을 성찰하여 마음의 거울에 비친 상의 실을 보는 것이었다.

  지금까지 잘 알지 못했던 주자와 양명에 대해 많은 지면을 할애하고 있다. 주자와 양명은 서로 많은 차이점을 가지고 있었지만 어떤 이론의 차이로 인해 현실적으로 대립할 수 밖에 없었던 점도 부정할 수는 없지만 마음으로 들어가면 결국엔 크게 다르지 않음을 알 수 있었다. 다만 깨달음의 차이도 하나의 원인이 될 수 있었을 것이고 깨달음의 문화적 관습적 차이도 하나의 원인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왕양명의 치지하는 마음바탕을 깨닫고 난 뒤의 격물의 가능성에 대해서 많은 떨림이 있었다. 깨달은 사람에게 있어서는 지행은 합일할 수밖에 없으니 말이다. 깨닫지 못한 사람은 알지 못하기 때문에 그밖에의 행동밖에 못하는 것이리라. 겉으로 보기엔 행동이 철저해도 마음을 억지로 끌고간다면 그것은 또 다른 병통을 낳게 마련이니까.

  둘째 장에서는 제자백가사상과 노자, 순자, 주자, 육상산, 왕양명, 석가, 혜능, 조주에게도 치닫는다. 동양사상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사상들이 망라된다. 앞서 말한대로 깨달음의 깊이와 차이는 있지만 그리고 깨달음의 문화적 차이는 있지만 모두가 자신의 주어진 삶에서 진리를 향해 끊임없이 매진하여 깨달음을 성취하여 자유로운 삶을 살았다는 점에서는 모두가 나의 스승이다.

  마지막 장에서 김흥호 선생님은 왜 인도로 끝을 내시려했을까? 샹카라와 간디, 네루를 통해 좀 더 인류의 지혜의 원천이었던 인도 사회의 인물로서 마무리를 하고 싶었던 것일까? 인류의 스승 그 첫 자리에 석가모니 부처님이 자리한다. 물론 노자와 석가와의 연대기적인 비교가 분명히 매듭된 것은 아니지만 진리의 첫 길을 걸어가신 분에 대한 마음의 자리가 크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아무도 걷지 않았던 그 길을 처음 걸어가서 온 세상에 진리의 환한 빛을 드리운 분, 그 분이 있어서 후세에 많은 성현들이 길을 잃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이렇게 많은 선현들이 걸어간 길, 그 자취를 따라 곤이지지한 내가 미로처럼 미망을 헤치며 아주 천천히 조심스럽게 걸어간다. 이렇게 많은 진리의 등불들이 곳곳에서 불을 밝히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나의 어리석음이 너무나 커서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며 넘어지고 넘어진다. 하지만 이렇게 고마운 분들이 있었다는 사실 자체가 너무나도 확연하게 존재하는 진리를 가리키고 있기때문에 비록 더디고 느리지만 진리가 있음을 확신하며 걸을 수 있는 것이다.

  어두워진 밤에 불빛으로 밝혀 읽어내는 진리의 글들이 마음으로 스며들어 가슴이 환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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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여우 2006-02-26 19: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충 책 구성이 짐작은 가는데요.
1999년도 책을 벌써 품절하는 알라딘의 책 보유 시스템은 간혹 황당합니다.
인기몰이에 연연해 하는 상업주의적 마켓팅에 화가 나지만
달팽이님의 '길' 리뷰에 마음에 순한 촛불을 밝히는 것처럼 온순해지는군요.
덕분에 오늘밤은 온순한 짐승으로 잠들 것 같습니다.

달팽이 2006-02-26 21: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습니다.
마음 닿는 책이 대중적인 취향에 맞지 않아 품절된 경우에
때로는 아쉽기도 하지만 때로는 아쉬움을 넘어 우리 출판에 대한 안타까움이 들기도 합니다.
몇 일 동안 온우주를 헤매이었던 마음이 이 책으로 좀 더 차분해졌습니다.
고마운 책이었습니다.

이누아 2006-02-27 18: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목적지에 다다르는 것만이 목적은 아닌가 봅니다. 길을 찾기만 해도 환해지는군요. 닿기도 전에 이미 환해지는 마음. 그런 걸 초심이라고 하나 봅니다. 리뷰와는 관계 없는 얘긴가요? 읽고나니 엉뚱하게 초발심시변정각이 생각나서.^^

달팽이 2006-02-27 23: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동감합니다.
중용에 보면 天命之謂性으로 시작합니다.
하늘이 명해준 것을 성이라 한다.
첫말부터 가슴이 환해지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목적지인줄 알았던 것이 처음부터 우리에게 갖추어져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우리는 원래의 제자리로 돌아오게 됩니다.
지금은 미망의 출발점이지만 돌아온 그 자리를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가슴뻑차오르는 느낌들이 있기에 우리는 그 길을 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것이 깨달음으로 우리를 끌어당기는 우주의 중력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전출처 : 물만두 > William Turner 작품

Fishermen at Sea. 1796. Oil on canvas. Tate Gallery, London, UK.

Morning Amongst the Coniston Fells, Cumberland. 1798. Oil on canvas. Tate Gallery, London, UK

The Shipwreck. 1805. Oil on canvas. Tate Gallery, London, UK

The Battle of Trafalgar, as Seen from the Mizen Starboard Shrouds of the Victory. 1806-1808. Oil on canvas. Tate Gallery, London, UK

London. 1809. Oil on canvas. Tate Gallery, London, UK

Snow Storm: Hannibal and His Army Crossing the Alps. 1812. Oil on canvas. Tate Gallery, London, UK.

Frosty Morning. 1813. Oil on canvas. Tate Gallery, London, UK.

The Decline of the Carthaginian Empire. 1817. Oil on canvas. Tate Gallery, London, UK

Crossing the Brook. 1815. Oil on canvas. Tate Gallery, London, UK.

Rome, from the Vatican, Raffaelle, Accompanied by La Fornarina, Preparing His Pictures for the Decoration of the Loggia. 1820. Oil on canvas. Tate Gallery, London, UK

Chichester Canal. c.1828. Oil on canvas. Tate Gallery, London, UK.

A Ship Aground. 1828. Oil on canvas. Tate Gallery, London, UK.

Regulus. 1828-1837. Oil on canvas. Tate Gallery, London, UK.

Caligula's Palace and Bridge. 1831. Oil on canvas. Tate Gallery, London, UK.

Childe Harold's Pilgrimage. 1823. Oil on canvas. Tate Gallery, London, UK.

Bridge of Signs, Ducal Palace and Custom-House, Venice: Canaletti Painting. 1833. Oil on canvas. Tate Gallery, London, UK



Ancient Rome; Agrippina Landing with the Ashes of Germanicus. 1839. Oil on canvas. Tate Gallery, London, UK.

Yacht Approaching the Coast. 1835. Oil on canvas. Tate Gallery, London, UK.

Peace - Burial at Sea. 1842. Oil on canvas. Tate Gallery, London, UK. 

The Dogana, San Giorgio, Citella, From the Steps of the Europa. 1842. Oil on canvas. Tate Gallery, London, UK.

Snow Storm - Steam-Boat off a Harbour's Mouth. 1842. Oil on canvas. Tate Gallery, London, UK. 

Light and Colour (Goethe's Theory) - The Morning after the Deluge - Moses Writing the Book of Genesis. 1843. Oil on canvas. Tate Gallery, London, UK.

Whalers. 1845. Oil on canvas. Tate Gallery, London, UK.



Mercury Sent to Admonish Aeneas. 1850. Oil on canvas. Tate Gallery, London, UK.

Rain, Steam and Speed - The Great Western Railway. 1844. Oil on canvas. The National Gallery, London, UK.



The Angel, Standing in the Sun. 1846. Oil on canvas. Tate Gallery, London, UK.

Landscape with a River and a Bay in the Background. 1845. Oil on canvas. Louvre, Paris, France.

View of Saint-Germain-ea-Laye and Its Chateau. Watercolour on paper. Louvre, Paris, France.



The Fighting Temeraire Tugged to Her Last Berth to Be Broken up. 1838. Oil on canvas. The National Gallery, London, UK.

Warkworth Castle, Northumberland - Thunder Storm Approaching at Sun-Set. 1799. Watercolour on paper. Victoria and Albert Museum, London, UK.

The Vale of Ashburnham. 1816. Watercolour on paper. British Museum, London, UK.

The Mew Stone at the Entrance of Plymouth Sound. c. 1814. Watercolour on paper. National Gallery of Ireland, Dublin, Ireland.

Pendennis Castle, Cornwall; Scene after a Wreck. c.1816. Watercolour on paper. Private collection, UK

Rye, Sussex. c. 1823. Watercolour on paper. National Museum of Wales, Cardiff, UK.

Arundel Castle, with Rainbow. c. 1824. Watercolour on paper. British Museum, London, UK.

A Storm (Shipwreck). 1823. Watercolour on paper. British Museum, London, UK.

Shipwreck off Hastings. c.1825. Watercolour on paper. National Gallery of Ireland, Dublin, Ireland.

Rivaulx Abbey, Yorkshire. c. 1825. Watercolour on paper. Private collection, UK.

Fall of the Tees, Yorkshire. c.1825-1826. Watercolour on paper. Private collection, UK.

Stonehenge. c. 1825-1828. Watercolour on paper. Private collection, UK.

Carisbrook Castle, Isle of Wight. c.1828. Watercolour on paper. Private collection, UK.

Alnwick Castle, Northumberland. c.1825-1828. Watercolour on paper. National Gallery of South Australia, Adelaide, Australia.

Cowes, Isle of Wight. c.1827. Watercolour on paper. Private collection, UK

Longships Lighthouse, Lands End. c.1834-1835. Watercolour on paper. Private collection, UK.

Flint Castle. 1838. Watercolour on paper. Private collection, Japan.



The Grand Canal, Venice. 1835. Oil on canvas. Metropolitan Museum of Art, New York, U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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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몽쇄언 - 꿈과 인생
김대현 지음, 남만성 옮김 / 을유문화사 / 200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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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꿈을 꾼다. 우리는 꿈 속에서 펼쳐진 상황이 진실인 듯 느낀다. 우리의 몸도 꿈 속 현실을 그대로 반영한다. 꿈 속에서 달리면 숨차오르고 꿈 속에서 어여쁜 여인을 만나면 가슴이 달아오른다. 꿈 속에 빠져 있을 때엔 그 꿈이 현실이다. 하지만 깨고 난 후에 꿈은 그저 한 때의 소일거리일 뿐 나의 하루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그런데 우리가 깨었다고 하는 이 인생이 한 편의 꿈이라면 어찌할텐가?

  장자는 호접몽에서 꿈에 나비가 되어 꽃밭을 나는 꿈을 꾸다가 문득 깨어보니 자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돌이켜 생각하메 나비의 꿈에 장자라는 인간이 등장한 것인지 장자의 꿈에 나비가 등장한 것인지 헷갈리더라는 이야기다. 그것은 우리들이 육체로서 느끼는 오감각들이 진실을 파악하는 데 한계를 가진다는 생각에서 보면 이 인생이라는 것도 진리를 접하기 전에는 한 편의 꿈일 수도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가끔 나도 꿈을 꾼다. 때로는 어떤 꿈이었는지도 기억되지 않는 것이 있는 반면, 때로는 아주 오랜 시간이 흘러도 기억되는 꿈이 있다. 처가 인천에 떨어져 살았을 때 나는 산아래에 집을 구해서 혼자 생활하고 있을 때였다. 그 때 나의 공부에 도움이 되었던 시기였는데 한 때 나는 꿈 속에서 현실보다 더 현실같은 꿈을 꾸게 되었다. 내가 침대에서 잠을 자고 있는데 한 여자가 자연스러운 속옷차림으로 내 옆에 눕는 것이 아닌가? 나는 그녀의 얼굴을 보았지만 처가 아니었다. 순간 깜짝 놀라서 등을 돌렸는데 그녀는 뒤에서 길고도 검은(정말 새까만 머리가 얼마나 생생한 느낌을 주던지...)머리칼로 내 얼굴을 쓸어내리며 나를 뒤에서 껴안는 것이었다. 깜짝 놀란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고 꿈에서 깨었다.

  친구들에게 가끔 이 이야기를 했더니 나보고 '바보'란다. 꿈에서 왜 굴러온 떡을 차버리냐.하는 것이었다. ㅎㅎㅎ...그러나 꿈 속에서 여인의 속살이 비치는 젊은 몸을 보고도 마음이 전혀 흥분되지 않았고 이상한 느낌만이 가슴을 가득 채운 나는 그 꿈을 이렇게 해석하였다. 내 속에 있던 낯선 모습의 나는 아주 오래 전부터 내 곁에 늘 있어왔던 그것이었다고...그것이 무엇이냐고? 그 때 난 나름대로 마음공부에 몰두하고 있었으니 내가 늘 바라마지 않던 그것이 아니었을까? 하고 생각할 따름이다.

  삶도 한 편의 꿈이다. 하지만 우리는 삶 속에서 환상처럼 나타났다 사라지는 여러 가지 것에 마음을 빼앗긴다. 예쁜 얼굴의 여자에게도 마음이 뺏기고, 좋은 아파트에도 마음이 뺏긴다. 멋진 차에게도 마음이 뺏기고 자식의 교육과 성장에도 마음이 뺏긴다.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의 욕망에 마음이 빼앗긴다. 자아에 혼을 빼앗기고 만다. 그래서 없는 괴로움을 스스로 만들어 마음에 쌓고, 희노애락의 마음을 짓는다. 세상은 아무런 의도없이 나에게 주어지는대도 나의 마음이 망견을 지어 스스로 힘들어하고 괴로워한다. 이런 인생의 꿈을 깨면 모든 것이 달라보이는데도 말이다.

  이 책도 마음 속에서 큰 의심과 분심을 만들어내게 하기 위해 쓰여진 책이다. 과연 삶이 한 편의 꿈이라고 하는데 그럼 깨어난 세상은 어떠한가? 그리고 어떻게 하면 이 꿈에서 깨어날 수 있는가? 아침에 눈을 뜨면서 시작되는 꿈이 또 다시 잠들면서 다른 꿈으로 이어진다. 하루 24시간을 꿈꾸면서 살고 있는 우리들, 언제 그 꿈 한 번 깨어보고 죽는가? 아니, 죽는다는 꿈도 깨어볼 것인가? 깨어있지 못하면 지금 이것이 꿈이라는 것은 알고 살아야 할 것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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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2-24 18: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달팽이 2006-02-24 18: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 모른다는 의문은 놓치면 안됩니다.
그 의문 속에 온 세상을 담아내면 당신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 때까지는 오직 모를 뿐입니다.
님께선 좀 더 읽기 수월한 책부터 접하는 것이 필요할 듯 합니다.
달라이라마님의 책들이나 틱낫한 스님의 책들을 읽어보심도 괜찮을 듯...

비로그인 2006-02-24 20: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알 것도 같고 모를 것도 같고..오직 모르뿐!^^;;
의식하면서 살아야 한다정도로 알아두겠습니다.
사실 저도 대충 이것 저것 책을 읽어보긴 했지만 삶에 녹아들게 하기가 쉽지 않더라구요..하루 아침에 되는 것이 아니니 꾸준히 마음을 닦는 공부를 해야겠죠..
근데 달라이라마 책은 꼭 도덕책 같아요...

달팽이 2006-02-24 21: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달라이라마 님의 책은 아주 쉬운 것 같지만 깨달음의 원을 한바퀴 돌아온 분의 글입니다.
그래서 마음이 닦일수록 그 의미가 새롭게 다가오는 것이기도 하죠.
저도 잘 모르지만 인간의 몸으로써 닦아나가는 과정의 거의 끝에 세상 모든 사람들과 모든 존재에 대한 자비와 사랑의 마음을 내는 단계로 나가지 않을까 싶어요.
그런 의미에서 그 분의 책은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누구나가 쉽게 이해하기 위해 평이하게 서술한 글이지만 그 분의 마음으로 들어가면 성장의 과정에 따라 누구나가 읽을 수 있는 글이기도 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누아 2006-02-24 21: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장자처럼 꿈을 꾼 적이 있어요. 어느 절간의 작은 방에서 새벽에 깨어났어요. 이 작고 어두운 방에 왜 내가 있는 거지? 아, 나는 꿈을 꾸고 있구나. 대구에 있는 내가 충청도 절에서 자는 이런 꿈을 왜 꾸고 있지? 했는데 아이고, 이게 무슨 일입니까..전 정말로 그 절의 작은 방에서 잤던 겁니다. 근데 대구에 있던 내가 너무 익숙해서 절에서 새벽에 눈뜬 제가 꿈 속에 있는 줄로 알았습니다. 꿈. 근데 꿈 속에서도 놀라고 두려워하고 기쁘고 최선을 다해 달리기도 합니다. 지금처럼요. 전 이 책이 좋아요.

이누아 2006-02-24 22: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근데 이 꿈 얘기 전에도 한 적 있나요? 꼭 두 번 말하는 것 같네요.^^

달팽이 2006-02-25 08: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글쎄요. 그런가요?
마음이 좀 더 투명해진 어느날 다시 잡고 싶은 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