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부터 운동장에서 새 한마리가 그렇게 울어댈 때

뭔가를 눈치챘어야 했다.

아침에 집을 나서며 쳐다본 하늘에

두겹 세겹으로 하늘을 막아버린 흐린 구름들이

소리도 없이 걷히고 햇살이 내리쬐기 시작할 때

뭔가를 눈치챘어야 했다.

삶이 죽음이고 죽음이 삶이라고는 하지만

이 생에서의 마지막 만남을 미처 준비하기도 전에

예고도없이 떠나버린 사랑하는 님

만날 때 헤어짐을 알고

헤어질 땐 다시 만날 것을 안다고 하지만

다시 만날 기약도 없이

훌쩍 가버린 사랑하는 님아

그대 간 곳이 어디인가?

그대 떠나고 내가 남은 이 곳은 또한 어디인가?

죽음을 통해서 삶은 더욱 선명해지고

삶을 통해서 죽음이 더욱 막막해지는데

삶과 죽음은 손아귀의 모래처럼

어느듯 우리가 예측하지 못한 곳에서 갈라지고

내가 살고 있는 여전한 이 세상은

그대가 맞는 새로운 세상을 가늠할 수 없는데

인생의 여정을 마친 그대가

어느 봄햇살 따스하게 내려앉는 곳에서

나의 단잠 속에 왔다가 갈 줄 어이 알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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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샘 2006-03-22 09: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회자정리요 거자필반이라지만
어리석은 몽매함은 그 길을 알지 못하고
탐욕과 성냄을 벗어던지지 못하고
이 소중한 지금, 여기를 팽개치고 삽니다.
단잠 속에 왔다가는 하루.
달팽이 걸음으로 꽃나무 위에 오를 때쯤이면
벚꽃이 활짝 피겠지요?

달팽이 2006-03-22 10: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개나리가 지천으로 피었습니다.
매화도 그 절정의 자태를 드러냅니다.
세상은 이리도 봄의 향연에 흠뻑 빠져 있지만
삶과 죽음은 늘 우리들 곁에 있습니다.
그 삶과 죽음에 연연하지 않고 살아가는 날을
맞고 싶군요.
요즘, 바쁘시더군요..
 
다석 유영모
유달영 외 / 무애 / 1993년 3월
평점 :
품절


  우리 근대사의 성인 다석 유영모 선생님을 추모하기 위한 글모음이 이 책이다. 1993년 출간된 이 책은 지금 구할 수가 없다. 하지만 귀한 인연으로 이 책을 만나게 되어서 또 책 속의 귀한 말씀을 통해 다석 선생님의 가늠할 수 없는 마음에 대한 의문이 내 공부의 큰 힘이 되고 있어서 고마움의 글 몇 자를 남기고자 한다. 유영모 선생님을 처음 알게 된 것은 몇 년 전의 일이지만 선생님의 글을 제대로 읽은 것은 최근의 일임을 먼저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공부라고하기엔 부끄러운 나의 책읽기가 몇 년을 거쳐오면서 책의 가치를 조금은 알아보는 눈이 생겼다는 것을 또 책을 통해 알게 된다.

  다석 선생님의 마음은 얼마나 깊은 것일까? 가늠할 수 없이 깊은 글의 에너지가 읽는 나로 하여금 경건하고 마음을 바로세우게 한다. 한 치의 빈틈없이 아바디를 마음 속에 품었고 그래서 그 깊고 옹근 마음 한가운데에서 머무르며 순간도 마음을 놓지 않았던 다석 선생님의 진리는 " 一座食, 一言仁"으로 나타난 것이다. 일평생 선생님의 몸가짐 하나하나에 빈틈을 찾을 수 없었던 그 모습은 범인인 나로서는 그 알 수 없는 깊이의 마음에 대한 경외로움만을 가지게 할 뿐이다.  

  일평생을 다른 곳에 눈을 돌리지 않으시고, 오직 진리의 한 길만을 걸어가신 선생님의 자취는 내 앞을 가로막는 태산이 되어 우뚝 선다. 자신을 완전히 비우신 자리에 현묘한 지혜의 샘이 끊임없이 솟아났던 것일까? 선생님의 도덕경의 풀이와 불교에 대한 해석 그리고 기독교의 해석은 새로우면서도 가슴떨리게 만드는 무엇인가가 살아있다. 깨달음의 빛으로 풀어쓴 우리말의 아름다움과 해석도 다석 선생님 스스로의 깨달음의 가슴에서 흘러나온 것임을 알 수 있다. 선생님의 글처럼 깨달은 이는 자신의 가슴에서 흘러나오는 자신의 언어를 사용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선생님의 마음에서 흘러나오는 양식을 먹고 사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들의 가슴 속에는 결코 꺼지지 않을 다석 선생님의 정신적인 유산이 남아 있다. 아니 그들의 가슴을 통해 다석 선생님은 살아계신다. 촛불에서 옮겨 붙는 촛불 처럼 나누어도 나누어도 줄어들지 않는 양식을 우리는 먹고 살아야 한다. 내 빛이 밝지 못해 스스로 그런 양식을 만들어낼 수 없으면 적어도 그런 양식을 얻어 먹고서 소화는 할 줄 알아야 비로소 인간노릇이라도 하고 산다는 생각이 든다. 천상의 양식을 구하는 동안은 적어도 인생은 허무하지만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다석 선생님을 계기로 나는 온라인 상과 오프라인 상의 고마운 인연들의 끈을 이어가고 있다. 또한 마음 속의 진리의 끈들로도 이어지고 있다. 진리의 길에서 만난 다석 선생님과 함석헌 선생님, 김흥호 선생님, 박영호 선생님의 길이 있었듯이 나에게도 이름을 달리한 모습을 달리한 만남들이 있다. 사람들로 만나는 것이나 책으로 만나는 것이나 그 길은 마음의 길로 나 있다. 스며듦이 깊을수록 나와의 인연도 깊은 것이다. 이 인연들이 영글어 봄날 따사로운 햇살아래 잎을 활짝 열고 피어나 온하늘을 누비며 날아다니는 꽃잎이 되고 꽃씨가 될 것이다. 마음으로 미리 맞는 꽃천지 세상을 준비하며 이 봄을 맞는다.

  다시 책의 표지를 본다. 다석 선생님의 얼굴사진이 눈에 들어온다. 한없이 고요하고 끝없이 깊은 저 눈이 응시하고 있는 곳이 어디일까? 봄날의 의문은 이렇게 시작된다. 이 의문이 벚꽃눈처럼 온 하늘에 휘날리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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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여우 2006-03-20 19: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계속 어려운 책만 읽으십니다.
비록 책으로는 달팽이님을 쫓아갈 수 없으나
고마운 인연임에 감사해요

달팽이 2006-03-20 21: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천만의 말씀입니다.
비록 파란여우님의 문장을 따라갈 수 없으나
마음으로 쫓으렵니다.
그리고 감사해요. 늘...

니르바나 2006-03-21 08: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다석 유영모선생님을 사숙하게 된 까닭이 무엇일까 잠간 생각했습니다.
이 땅위에 인간의 아들로 오신 붓다나 예수이후
제가 만난 최고의 인간이란 생각이 앞섭니다.
마하트마 간디랑 비교하시는 분들이 있는데, 이런게 비교가 되는 지 모르겠지만
저는 오히려 유영모선생님이 스스로 당신 자신을 세상에서 숨기려했다는 사실이
더 마음에 듭니다.
이런 분이랑 같은 하늘의 대기를 호흡했다는 그것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가슴이 벅차오르는군요. 달팽이님^^

달팽이 2006-03-21 08: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사회에 나아가고 안나가고의 구분이 꼭 중요한 것은 아니지만
간디도 사회와 민족 나아가 인류의 부름을 받은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다석 선생님이 마음 속의 진리의 자리에 더욱 깊이 머물렀던 것은 아닌가 하고 생각할 따름입니다.
진리의 길이 자신의 온전한 삶이 되었던 분들은 하나같이 세상에 나아가기를 두려워하고 외면했던 의미 속에 우리가 알지 못하는 세상에 대한 사랑이 존재하고 있음을 느낍니다.
책을 읽으면서는 다석선생님의 앞에서 선생님의 말씀을 듣는 듯이 하고
생활로 돌아오면 가슴 속에 진리의 등불을 간직하며 살아야 하겠습니다.
 

차 천장에 따닥따닥

빗방울은 봄의 소리

차창에서 바라보는

희뿌얘진 세상풍경

젖은 가지위 날아든

이름모를 작은 새여

그 울음은 청아하여

허공속을 가르는데

날아간 나뭇가지 위

봄의 향기 걸려 있다

봄비 봄내음 봄마음

사랑사랑 가지마다

옹근마음 집집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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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덕화 2006-03-18 08: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출근할때 영인 스님의 예불문이나 관음 정근을 들으며 하는데, 저도 비오는 날은 그냥 빗소리를 듣습니다. 봄비가 내는 소리, 아늑하고 좋더군요._()_

달팽이 2006-03-18 09: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예전에 차를 타고 다니면서 명상음악이나 불교음악을 듣곤 했는데
요즘은 대중교통수단을 이용하니 걸을 때가 많군요.
그래서 자연에 더욱 눈과 귀를 열어놓게 되더군요..
오늘은 비가 와서 차를 오랫만에 몰고 학교에 왔어요.

니르바나 2006-03-19 00: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달팽이님이 읊으시면 아름답고 서정적인 낭만시조차 禪詩를 듣고 있다는 느낌을 강렬하게 받게되어서 듣고 즐기기보단 마음으로 읽고 있는 니르바나를 보게됩니다. ^^

달팽이 2006-03-19 17: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니르바라님께서 이렇게 걸음하여 주시니 영광입니다.
저는 아직 어둡고 게으른 한 사람의 공부인일 따름입니다.
님의 글이나 공부인의 글을 접하며 마음을 추스리는 공부 정도이지요.
하지만 공부하며 사는 즐거움만큼은 소중하게 생각하고 삽니다.
 
 전출처 : 글샘 > 도연명, 귀거래사...욕심을 버리고...

귀거래사(歸去來辭)  /  도연명(陶淵明)




귀로(歸路) / 志木 이영찬

歸去來兮 귀거래혜 자, 돌아가자. 田園將蕪胡不歸 전원장무호불귀 고향 전원이 황폐해지려 하는데 어찌 돌아가지 않겠는가. 旣自以心爲形役 기자이심위형역 지금까지는 고귀한 정신을 육신의 노예로 만들어 버렸다. 而獨悲 해추창이독비 어찌 슬퍼하여 서러워만 할 것인가. 悟已往之不諫 오이왕지불간 이미 지난 일은 탓해야 소용 없음을 깨달았다. 知來者之可追 지래자지가추 앞으로 바른 길을 쫓는 것이 옳다는 것을 깨달았다. 實迷塗其未遠 실미도기미원 내가 인생길을 잘못 들어 헤맨 것은 사실이나, 아직은 그리 멀지 않았다. 覺今是而昨非 각금시이작비 이제는 깨달아 바른 길을 찾았고, 지난날의 벼슬살이가 그릇된 것이었음을 알았다.

江 / 藍丁 박노수

舟遙遙以輕 주요요이경양 배는 흔들흔들 가볍게 흔들리고 風飄飄而吹衣 풍표표이취의 바람은 한들한들 옷깃을 스쳐가네, 問征夫以前路 문정부이전로 길손에게 고향이 예서 얼마나 머냐 물어 보며, 恨晨光之熹微 한신광지희미 새벽빛이 희미한 것을 한스러워한다. 乃瞻衡宇 내첨형우 마침내 저 멀리 우리 집 대문과 처마가 보이자 載欣載奔 재흔재분 기쁜 마음에 급히 뛰어갔다.

鷄龍山麓 / 蒼暈 이열모

僕歡迎 동복환영 머슴아이 길에 나와 나를 반기고 稚子候門 치자후문 어린 것들이 대문에서 손 흔들어 나를 맞는다. 三徑就荒 삼경취황 뜰 안의 세 갈래 작은 길에는 잡초가 무성하지만, 松菊猶存 송국유존 소나무와 국화는 아직도 꿋꿋하다. 携幼入室 휴유입실 어린 놈 손 잡고 방에 들어오니, 有酒盈樽 유주영준 언제 빚었는지 항아리엔 향기로운 술이 가득, 引壺觴以自酌 인호상이자작 술단지 끌어당겨 나 스스로 잔에 따라 마시며, 眄庭柯以怡顔 면정가이이안 뜰의 나뭇가지 바라보며 웃음 짓는다.

吾園大醉圖 (오원대취도) / 月田 장우성

倚南窓以寄傲 의남창이기오 남쪽 창가에 기대어 마냥 의기 양양해하니, 審容膝之易安 심용슬지이안 무릎 하나 들일 만한 작은 집이지만 이 얼마나 편한가. 園日涉以成趣 원일섭이성취 날마다 동산을 거닐며 즐거운 마음으로 바라본다. 門雖設而常關 문수설이상관 문이야 달아 놓았지만 찾아오는 이 없어 항상 닫혀 있다. 策扶老以流憩 책부노이류게 지팡이에 늙은 몸 의지하며 발길 멎는 대로 쉬다가, 時矯首而遐觀 시교수이하관 때때로 머리 들어 먼 하늘을 바라본다.

南雪嶽 / 對山 김동수

雲無心以出岫 운무심이출수 구름은 무심히 산골짜기를 돌아 나오고, 鳥倦飛而知還 조권비이지환 날기에 지친 새들은 둥지로 돌아올 줄 안다. 以將入 영예예이장입 저녁빛이 어두워지며 서산에 해가 지려 하는데, 撫孤松而盤桓 무고송이반환 나는 외로운 소나무를 어루만지며 서성이고 있다. 歸去來兮 귀거래혜 돌아왔노라. 請息交以絶遊 청식교이절유 세상과 사귀지 않고 속세와 단절된 생활을 하겠다. 世與我而相違 세여아이상위 세상과 나는 서로 인연을 끊었으니, 復駕言兮焉求 복가언혜언구 다시 벼슬길에 올라 무엇을 구할 것이 있겠는가. 悅親戚之情話 열친척지정화 친척들과 정담을 나누며 즐거워하고, 樂琴書以消憂 낙금서이소우 거문고를 타고 책을 읽으며 시름을 달래련다.

바둑 / 牛玄 송영방

農人告余以春及 농인고여이춘급 농부가 내게 찾아와 봄이 왔다고 일러 주니, 將有事於西疇 장유사어서주 앞으로는 서쪽 밭에 나가 밭을 갈련다. 或命巾車 혹명건차 혹은 장식한 수레를 부르고, 或棹孤舟 혹도고주 혹은 한 척의 배를 저어 旣窈窕以尋壑 기요조이심학 깊은 골짜기의 시냇물을 찾아가고 亦崎嶇而經丘 역기구이경구 험한 산을 넘어 언덕을 지나가리라. 木欣欣以向榮 목흔흔이향영 나무들은 즐거운 듯 생기있게 자라고, 泉涓涓而始流 천연연이시류 샘물은 졸졸 솟아 흐른다. 善萬物之得時 선만물지득시 만물이 때를 얻어 즐거워하는 것을 부러워하며, 感吾生之行休 감오생지행휴 나의 생이 머지 않았음을 느낀다.

高士 / 藍丁 박노수

已矣乎 이의호 아, 인제 모든 것이 끝이로다! 寓形宇內復幾時 우형우내복기시 이 몸이 세상에 남아 있을 날이 그 얼마이리. 曷不委心任去留 갈불위심임거류 어찌 마음을 대자연의 섭리에 맡기지 않으며. 胡爲乎遑遑欲何之 호위호황황욕하지 이제 새삼 초조하고 황망스런 마음으로 무엇을 욕심낼 것인가 富貴非吾願 부귀비오원 돈도 지위도 바라지 않고, 帝鄕不可期 제향불가기 죽어 신선이 사는 나라에 태어날 것도 기대하지 않는다. 懷良辰以孤往 회양진이고왕 좋은 때라 생각되면 혼자 거닐고, 或植杖而耘imggui-geo-41-1-1-3.gif 혹식장이운자 때로는 지팡이 세워 놓고 김을 매기도 한다. 登東皐以舒嘯 등동고이서소 동쪽 언덕에 올라 조용히 읊조리고, 臨淸流而賦詩 임청류이부시 맑은 시냇가에서 시를 짓는다. 聊乘化以歸盡 요승화이귀진 잠시 조화의 수레를 탔다가 이 생명 다하는 대로 돌아가니, 樂夫天命復奚疑 낙부천명복해의 주어진 천명을 즐길 뿐 무엇을 의심하고 망설이랴. (박일봉 옮김)

夜梅(야매) / 月田 장우성


도연명이 10여 년에 걸친 관료생활을 최종적으로 마감하고 은둔생활에 들어간 시기는
의희(義熙) 원년(405) 11월 41세 때였다.
그는 팽택 현령이 된 지 겨우 80여 일 만에 자발적으로 퇴관했다.
퇴관의 결정적인 동기에 관해서는 다음의 유명한 일화가 있다.
그해말에 심양군 장관의 직속인 독우(督郵:순찰관)가 순찰을 온다고 하여 밑의 관료가
"필히 의관을 정제하고 맞이 하십시오" 하고 진언했더니, 도연명은
"오두미(五斗米:월급) 때문에 허리를 굽혀 향리의 소인을 섬기는 일을 할 수 있을손가"라고 말한 뒤
그날로 사임하고 집에 돌아갔다고 한다. (宋書 隱逸傳)
또 한편으로 이때의 사퇴 동기에 관해서 도연명 자신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취임해서 어느 정도 되자 집에 돌아가고 싶은 기분이 들었지만
그럭저럭 벼가 익거든 빠져나가려고 생각하던 차에
누이의 부음이 들려오자 조금도 참을 수 없게 되어 스스로 사임하고 집에 돌아왔다".<歸去來辭 序>

이때 나온 작품이 유명한 〈귀거래사〉·〈귀전원거오수 歸田園居五首〉이다.
출처 http://blog.daum.net/umji0112/2131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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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
박영호 지음 / 두레 / 199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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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두번째로 도덕경을 읽는다. 아무래도 한문읽기가 좀 익숙해지니 문장이 눈에 잘 들어온다. 그러나 아직 원문으로 읽어내릴 수준은 좀 모자라니 아무래도 주석서를 드는 것이 시간 대비 효율을 올리는 것이라 생각한다. 아마 다음 번에 읽을 때에는 주석서와 더불어 원문을 그대로 읽어낼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한다. 주석서에 의존하게 되면 주석의 내용에 마음이 먼저 한계지워지는 경향이 있으므로 최대한 마음의 경계를 허물고 읽어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반면 원문을 그대로 보게 되면 문맥의 이해가 쉽지 않은 반면 옥편을 찾아 한자 한자 문맥을 풀이해나가면 문맥에 대한 마음의 상들이 하나 둘 씩 떠오르게 되고 그렇게 공부하는 것의 매력이 날이 갈수록 나는 더욱 끌린다.

  박영호 선생님은 다석 유영모 선생님 아래서 공부했으며, 지금도 다석 사상을 연구하면서 마음공부를 해나가시는 분이다. 현재 다석 사상 연구회원으로 계시면서 다석의 사상을 책으로 펴내는 일을 하고 계신다. 몇 년 전 '진리의 사람 다석 류영모'를 읽고서는 우리 근, 현대사에서도 이런 분이 계셨구나 하고 깜짝 놀랐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그 후 얼의 노래와 유명모 명상록을 사두었으나 모두 읽어내지 못했다. 올해엔 고전을 읽어보자는 가벼운 다짐으로 시작한 해이므로 논어에 이어 도덕경에 마음이 갔고 또 우연히 이 책이 인연에 닿게 되었다.

  우선 도덕경의 내용을 풀어낸 박영호 선생님의 주석은 유영모 선생님의 유, 불, 선 사상의 통합에 영향받은 것이다. 역시 풀이도 유교와 불교, 도교, 기독교의 사상을 넘나든다. 그리고 몸나와 제나 그리고 얼나의 구조로서 도덕경을 풀어낸다. 여기서의 도는 얼나와 같은 차원의 개념이다. 따라서 도덕경을 풀어내는 그의 마음은 얼나에 의거해서 풀어낸 것이라고 선생님께서도 밝히고 있다. 몸나나 제나에 의해 풀어낸 도덕경의 글은 노자의 마음으로부터 천리 만리 떨어질 수 밖에 없다. 도덕경을 제대로 읽기 위해선 우선 얼나를 제대로 깨우쳐야 한다는 말씀이다.

  5장에 보면  "多言數窮 不如守中"이란 말이 나온다. 말을 많이 하는 것보단 마음의 한가운데를 지키고 있음만 못하다는 말. 수중이란 말이 참 좋다. 그래서 서재명을 한 번 바꾸어보았다. 나에겐 말을 할 때보다는 침묵의 한가운데 마음 속으로 깊어지는 순간들이 많기 때문이다. 첫장의 내용이      道可道 非常道 이다. 도는 말로 하면 항상 도가 아니다는 말이다. 따라서 이 도덕경의 내용도 모두가 도를 가리키는 손가락일 뿐이지 도가 아니다는 말씀이다. 그래서 도덕경은 그것을 읽어서 도를 찾아가는 책이라기 보다는 도의 마음으로 읽어내어 도덕경의 글에 도를 불어넣어라는 말씀으로 해석된다.

  그러기 위해선 우리들이 몸나나 제나의 끌림에 굴복해서는 안된다. 자신이 나지도 않고 죽지도 않고 더러워지지 않고 깨끗해지지 않는 원래 그대로의 얼나를 깨우쳐야만 한다. 그래야 비로소 도덕경의 글들이 얼의 생명으로 살아 춤추게 될 것이다. 글의 주석은 달라질지라도 얼나의 사람이 풀이한 도덕경에는 도가 살아있게 되는 까닭이 바로 그것이리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몸나를 떨쳐버리지 못한 내가 이 글을 읽으면서 손가락을 쫓아야만 하는 일도 어쩔 수가 없는 노릇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책에 대한 아쉬움도 생기는 것인지도 모른다. 박영호 선생님은 도덕경의 다채로운 맛들을 얼나와 제나 몸나의 구조로만 풀어내어 좀 단순하고 지루한 맛을 풍기고 있다. 그래서인지 덕부분으로 넘어가면서는 주석은 대충 눈으로 넘기고 원문을 오랫동안 쳐다보게 되었다. 덕분에 다음에 볼 때에는 원문으로 도덕경을 읽어나가보리라는 기대가 생기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세상에 나아가지도 재목으로 쓰여지지도 않은 변방의 촌로 노자, 하지만 그가 품은 뜻만큼은 온세상을 감싸고도 남았으니 과연 사람을 겉으로만 보아서는 모르는 법이다. 도인은 유약하며, 남의 뒤에 처하며 세상의 가장 낮은 곳에 처하고 아무런 사회적 쓸모가 없음으로써 그 쓸모를 다한다. 그런 도의 작용을 통하여 우리들의 마음은 도를 향한 미로속을 헤집고 다닌다. 마음 속의 의문과 도를 향한 의지가 한 점으로 모아지는 노력들이 우리들을 도의 세상으로 인도하게 될 것이다.

  도덕경을 언젠가 한 번은 제대로 읽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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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누아 2006-03-11 13: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습니다. 원문으로 보는 게 좋아요. 책을 다 읽지 못한다고 해도 가까이 두고 아무 페이지나 열어도 아 합니다. 머리가 쭈볏쭈볏 서기도 하구요. 그런 감동들이 다 어디로 가 버린 것인지...물건처럼 가질 수 없는 것이기에 삶이 될 때까지 들여다 보고, 또 보게 되나 봅니다. 守中처럼 지키는 것이 자주 나옵니다. 守靜, 守雌, 守辱...

달팽이 2006-03-11 16: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그래서 주위에 선생님이 감산 도덕경 풀이를 권해주었습니다.
한문으로 된 원전에 한문으로 아주 군더더기없는 짧은 설명으로 된 묶음책입니다.
앞으로 책꽂이에 두고 아무 장이나 펼쳐서 볼 생각입니다.

이누아 2006-03-11 20: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감산스님. 흐..감산 스님 팬이에요.

달팽이 2006-03-11 21: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알고 있습니다. ㅎㅎ

글샘 2006-03-12 00: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언삭궁, 불여수중... 참 어렵지요.
말이 많으면 자주 궁해진다. 마음속에 둠만 못하다...
근데, 노자는 넘 어렵습니다. ㅠㅠ

달팽이 2006-03-12 10: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그래도 또 끌리는 책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