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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
박영호 지음 / 두레 / 1998년 7월
평점 :
품절
두번째로 도덕경을 읽는다. 아무래도 한문읽기가 좀 익숙해지니 문장이 눈에 잘 들어온다. 그러나 아직 원문으로 읽어내릴 수준은 좀 모자라니 아무래도 주석서를 드는 것이 시간 대비 효율을 올리는 것이라 생각한다. 아마 다음 번에 읽을 때에는 주석서와 더불어 원문을 그대로 읽어낼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한다. 주석서에 의존하게 되면 주석의 내용에 마음이 먼저 한계지워지는 경향이 있으므로 최대한 마음의 경계를 허물고 읽어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반면 원문을 그대로 보게 되면 문맥의 이해가 쉽지 않은 반면 옥편을 찾아 한자 한자 문맥을 풀이해나가면 문맥에 대한 마음의 상들이 하나 둘 씩 떠오르게 되고 그렇게 공부하는 것의 매력이 날이 갈수록 나는 더욱 끌린다.
박영호 선생님은 다석 유영모 선생님 아래서 공부했으며, 지금도 다석 사상을 연구하면서 마음공부를 해나가시는 분이다. 현재 다석 사상 연구회원으로 계시면서 다석의 사상을 책으로 펴내는 일을 하고 계신다. 몇 년 전 '진리의 사람 다석 류영모'를 읽고서는 우리 근, 현대사에서도 이런 분이 계셨구나 하고 깜짝 놀랐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그 후 얼의 노래와 유명모 명상록을 사두었으나 모두 읽어내지 못했다. 올해엔 고전을 읽어보자는 가벼운 다짐으로 시작한 해이므로 논어에 이어 도덕경에 마음이 갔고 또 우연히 이 책이 인연에 닿게 되었다.
우선 도덕경의 내용을 풀어낸 박영호 선생님의 주석은 유영모 선생님의 유, 불, 선 사상의 통합에 영향받은 것이다. 역시 풀이도 유교와 불교, 도교, 기독교의 사상을 넘나든다. 그리고 몸나와 제나 그리고 얼나의 구조로서 도덕경을 풀어낸다. 여기서의 도는 얼나와 같은 차원의 개념이다. 따라서 도덕경을 풀어내는 그의 마음은 얼나에 의거해서 풀어낸 것이라고 선생님께서도 밝히고 있다. 몸나나 제나에 의해 풀어낸 도덕경의 글은 노자의 마음으로부터 천리 만리 떨어질 수 밖에 없다. 도덕경을 제대로 읽기 위해선 우선 얼나를 제대로 깨우쳐야 한다는 말씀이다.
5장에 보면 "多言數窮 不如守中"이란 말이 나온다. 말을 많이 하는 것보단 마음의 한가운데를 지키고 있음만 못하다는 말. 수중이란 말이 참 좋다. 그래서 서재명을 한 번 바꾸어보았다. 나에겐 말을 할 때보다는 침묵의 한가운데 마음 속으로 깊어지는 순간들이 많기 때문이다. 첫장의 내용이 道可道 非常道 이다. 도는 말로 하면 항상 도가 아니다는 말이다. 따라서 이 도덕경의 내용도 모두가 도를 가리키는 손가락일 뿐이지 도가 아니다는 말씀이다. 그래서 도덕경은 그것을 읽어서 도를 찾아가는 책이라기 보다는 도의 마음으로 읽어내어 도덕경의 글에 도를 불어넣어라는 말씀으로 해석된다.
그러기 위해선 우리들이 몸나나 제나의 끌림에 굴복해서는 안된다. 자신이 나지도 않고 죽지도 않고 더러워지지 않고 깨끗해지지 않는 원래 그대로의 얼나를 깨우쳐야만 한다. 그래야 비로소 도덕경의 글들이 얼의 생명으로 살아 춤추게 될 것이다. 글의 주석은 달라질지라도 얼나의 사람이 풀이한 도덕경에는 도가 살아있게 되는 까닭이 바로 그것이리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몸나를 떨쳐버리지 못한 내가 이 글을 읽으면서 손가락을 쫓아야만 하는 일도 어쩔 수가 없는 노릇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책에 대한 아쉬움도 생기는 것인지도 모른다. 박영호 선생님은 도덕경의 다채로운 맛들을 얼나와 제나 몸나의 구조로만 풀어내어 좀 단순하고 지루한 맛을 풍기고 있다. 그래서인지 덕부분으로 넘어가면서는 주석은 대충 눈으로 넘기고 원문을 오랫동안 쳐다보게 되었다. 덕분에 다음에 볼 때에는 원문으로 도덕경을 읽어나가보리라는 기대가 생기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세상에 나아가지도 재목으로 쓰여지지도 않은 변방의 촌로 노자, 하지만 그가 품은 뜻만큼은 온세상을 감싸고도 남았으니 과연 사람을 겉으로만 보아서는 모르는 법이다. 도인은 유약하며, 남의 뒤에 처하며 세상의 가장 낮은 곳에 처하고 아무런 사회적 쓸모가 없음으로써 그 쓸모를 다한다. 그런 도의 작용을 통하여 우리들의 마음은 도를 향한 미로속을 헤집고 다닌다. 마음 속의 의문과 도를 향한 의지가 한 점으로 모아지는 노력들이 우리들을 도의 세상으로 인도하게 될 것이다.
도덕경을 언젠가 한 번은 제대로 읽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