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의 궁전
폴 오스터 지음, 황보석 옮김 / 열린책들 / 200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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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S 폴의 일생은 드라마틱하다. 아버지를 모르고 자란 그는 어린 나이에 어머니를 교통사고로 잃은 뒤 천애고아가 되어 외삼촌의 보살핌으로 자라지만 그 외삼촌과도 생사를 경계로 한 이별을 하게 된다. 이후에 그가 선택한 좌절된 삶의 방식은 그가 인생을 살아가기 위한 하나의 선택이었다. 극한 좌절로 자신을 내몰았던 힘이 다시 그가 살아갈 힘이 될 것임을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알고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마치 달이 가득 차오르다가 쪽달이 되고 가장 비어있는 조각 달이 어느듯 온전하게 둥근 달로 바뀌어가듯이 삶의 가장 비참한 순간에서 그는 삶을 살아가는 희망을 갖게 될 것이라 생각했다.

우연한 하지만 필연적인 만남과 사건들로 풀어져내리는 그의 출생의 비밀이야기는 한 늙은 노인의 말동무가 됨으로써 시작된다. 맹인이고 하반신이 마비된 그에게 있어 폴은 그의 눈이 되어준다.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에게 그의 말과 언어는 그의 눈이 되기위해 갈고 닦이는 과정을 거친다. 마치 우리가 우리의 감각과 인식의 영역으로 알 수 없는 삶의 교훈과 인생의 의미를 파악하기 위해 말과 언어를 이용하듯이 잘 다듬어지고 현실의 틈을 비집고 들어가 이면의 의미를 도려낼 수 있게 날카롭게 갈고 다듬어진 언어의 구사는 폴 오스터라는 작가의 무기가 된다.

이야기 속에서 모든 등장인물들은 그들 자신의 달을 가지고 있다. 달의 비워진 이미지에서 그들은 채워질 달의 이미지를 찾고 있는 것이다. 3대에 걸친 자신들의 기구한 운명과 삶의 비틀리고 밑바닥의 생활에서도 간직하고 키워가는 희망에 대한 이야기는 그들의 절망적 상황을 극복하기 위한 허구속의 달의 신화 이야기로 승화되고 3대의 부자들이 겪어야 했던 삶의 시련들은 쳇바퀴돌듯 대를 물려 자식에게 똑같은 내용의 삶으로 이어진다. 따라서 그들 3명의 이야기는 각각이 서로 다른 삶의 절망적 상황에 처해 있으면서도 그 유전적 정보속에 이미 아로새겨진 바꿀 수 없는 그들의 태생적으로 공통된 인연이었을 것이다.

작가는 현상적으로는 스쳐보이는 듯 해도 현상을 대하는 개인의 마음 속 깊은 곳에 그것에 반응하고 그 반응에 따라 변해가는 마음의 변화를 놀랍도록 정확하고도 매력적인 언어로 풀어내고 있다. 사실 우리의 인생이란 현실적 삶 그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현실적 삶에 의미부여하고 가치를 만들어내는 상징적 가치 또는 마음의 의미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한번쯤 생각해 볼 일이다. 바로 이 달의 이미지는 파헤쳐지고 파괴된 인생을 통해 각각의 주인공들이 채워가는 삶의 완성의 형태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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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의 나침반 2
숭산스님 지음, 현각 엮음, 허문명 옮김 / 열림원 / 200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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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공부에 대한 끊어짐많은 공부아닌 공부중에 이 책을 접한 것은 커다란 복이었다. 우선 불교에 대해 어떤 지식도 없었던 나에게 불교의 체계에 대한 윤곽은 그릴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선의 가르침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에 대해 느낄 수 있었다는 점일 것이다. 교리체계나 경전에 대한 이해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그것의 의미를 마음속에서 증득해내는 것인데 참선을 통하지 않고서는 진정한 그 의미를 깨우칠 방법이 없다는 사실을 깨우친 것이다.

숭산 큰스님의 가르침은 선수행을 하기 위해 출가해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이 책을 읽고나서 내가 가지게 된 생각은 바로 내 일상에서 흔들리지 않는 큰 의문을 지고 순간순간을 대할 수 있는 끈기의 필요성이다. 책을 읽으면서 가졌던 마음의 상태를 어떻게 하면 나의 일상속으로 가져갈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하지만 늘 일상속에선 그 의문들은 사라지고 만다. 그러다 다시 그 의문을 떠올리게 되고 그래서 늘 이 화두의 있고 없음 사이를 왔다갔다 하게 된다. 책을 읽을 때나 집에 가만히 앉아 있을 때는 그 마음의 상태가 그럭저럭 잘 유지되나 사람들과의 만남속에선 속절없이 그 물음들은 사라지고 만다. 깨어있는 시간조차 유지하지 못하는 마음을 어떻게 숙면으로 이끌고 갈 수 있겠는가?

그 마음의 상태란 무엇인가? 그것은 이름과 규정이 없는 상태이다. 이름과 규정없는 곳엔 집착과 생각도 끊어진다. 단지 지금 이 순간이 있을 뿐이다. 책상을 치면 소리만이 있을 뿐이고 잔을 부딪혀도 그 쨍하는 소리만 있을 따름이다. 나뭇잎이 흔들리면 다만 봄이 있을 따름이다. 누가 보고 누가 듣는가? 나란 무엇인가? 마음이란 무엇인가? 오직 모를 뿐이다....

숭산 큰스님은 선의 나침반을 통해 깨달음의 지도를 간략히 보여주고 있다. 따라서 앞을 모르는 우리들이 어떤 비일상적인 체험을 하였다 하더라도 거기에 집착하지 않고 '오직 모를 뿐'이라는 의문으로 더욱 나아가게 한다. 그 증험이 다가 아니며 오로지 공허함을 알게 한다. 선의 나침반을 한바퀴 완전히 돌리기 위해선 되돌아가려는 관성을 뛰어넘는 힘이 필요하다. 임계치의 힘을 넘어서는 또 한번의 깨달음...그것이 존재함을 알게 한다.

지금...들리는 소리는 티베트의 명상음악 중 '옴마니 밧메움'이다. 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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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행 1 - 하버드에서 화계사까지
현각 지음, 김홍희 사진 / 열림원 / 199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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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에서 가장 부유하고 강한 나라, 그곳에서도 중산층의 어느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나 지식인의 부모를 두고 천재의 형제들속에서 자라나 남들보다 유달리 영리하게 자랐던 저자는 예일대학교를 졸업하고 하버드 대학원에서 수학한 미국사회 엘리트의 전형적인 과정을 거친다. 하지만 늘 그는 삶의 풀리지 않는 의문들을 갖고 살아가며 일상에 적응하는 생활에서도 늘 허무함과 채워지지 않는 허망함을 체감하며 살아간다. 카톨릭을 믿는 가정에서 자라나 수도사가 되려고 마음먹었던 그는 대학원에서 숭산스님의 강의를 듣고 크게 마음을 세운다.

그를 출가시킨 숭산스님은 고봉스님으로부터 법계를 받아 한국선불교의 맥을 이은 유명한 승려다. 하지만 자신의 모든 지위를 버리고 미국에 홀홀단신으로 포교활동을 하기 위해 떠난다. 미국의 어떤 마을에 정착하여 세탁소에서 일을 하며 미국인들의 의식을 이해하기 위해 2년이 넘게 일을 하며 참선공부를 해나간다. 숭산스님은 이 때 물질주의와 현대과학이 가장 발전한 미국이란 나라가 정신적 황폐함으로 인해 반대급부로 갖게 되는 정신세계의 욕구에 대한 가능성을 이미 헤아리고 있었던 것이다.

아직도 온갖 폭력과 기독교 유일주의에 의한 해악이 온 세계에 그 그늘을 드리우고 있는 미국사회가 또 다른 측면에서 진리를 대함에 있어 어떤 교리나 형식에 치우치지 아니하고 열려 있으며 새로운 것을 받아들여 발전시키려 하는 모습은 미국사회에 존재하는 선과 악의 일체를 보여주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현각스님의 일생을 자서전적인 글로서 보여주고 있는 이 책을 읽고 있노라면 왠지 한국사람보다 더 한국다운 그의 정신에 부끄러움과 어떤 의욕이 꿈틀거린다. 전세계적으로 얼마남지 않은 선불교의 전통을 이제 그가 배워서 다시 우리들에게 그 전통을 전하려고 하는 그의 모습에서 한편으로는 미국보다 더 미국다워지려고 애쓰는 우리들의 모습에서 나는 왠지모를 안타까움을 느끼곤한다.

그러나 이 책을 통해 늘 미국사회에 대한 적대감을 키워왔을지도 모를 우리들에게 미국은 그런 세계의 적대감을 극복하고 서로의 마음을 열어 줄 다원주의적 종교화해를 먼저 실천해내는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것은 분명 아직 자신과 타인을 구별하여 배척과 폭력이 난무하는 야만사회의 때를 벗지 못한 이 세상에 보내는 희망의 메세지임에 틀림없다. 그 희망의 메세지는 또한 바로 우리 각자의 마음속에서 선악이라는 업의 굴레에서 벗어나 진정한 자유인이 될 때 비로소 이루어낼 수 있는 선의 열매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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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노바 바베, 간디를 만나다
비노바 바베 지음, 김문호 옮김 / 오늘의책 / 200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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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바혁명에서 카스트로와 체게바라가 만난 것이 민중혁명에 의한 사회주의국가건설에 있었다면 간디와 비노바의 만남은 사회정치적인 의미를 너머 진리를 향해 있었다는 점에서 또 다른 가치를 가진다. 진리와 삶의 의미, 영성을 추구하던 한 젊은이가 민족의 지도자를 만나 그를 섬기고 봉사하였다는 사실은 그가 섬겼던 이가 정치의 논리너머의 정신적 스승으로 존재하였다는 것을 의미한다.

객관적인 간디의 삶이라고 하는 것은 사실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간디가 우리에게 가지는 의미가 있다면 간디의 사상과 정신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태도에 있다. 그런 면에서 간디를 누구보다도 섬기며 그 뜻을 따르고자 했고 그 마음과 공명했으며 간디의 사상에 따라 자신의 삶을 바쳤던 비노바의 마음에서 우리는 어쩌면 가장 진실한 간디의 정신을 발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가 주장했고 실현하려 했던 주요사상인 '스와라지', '사티야그라하', '아쉬람','사르보다야'의 개념들은 아직까지 인류사회가 해결하지 못한 숙제로 남아있다. 오늘날 우리의 현실을 깊이 들여다보면 문제해결을 위한 선현들의 뜻깊은 말씀들이 늘 있어왔음을 알게 된다. 마하트마 간디 역시 그러한 선현들 중의 한 사람이다.

하지만 선현들의 말씀에도 불구하고 늘 세상이 여전히 쳇바퀴돌듯 미망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것에는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다. 사회정치적인 논리가 아무리 훌륭해도 그것을 성취해내는 사람들의 의식이 성장되지 못한다면 그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간디의 사상은 그것이 우리들의 가슴속에서 되살아날때에야 비로소 우리들의 삶의 변혁도구가 된다. 간디가 살았던 시대에 그의 사상을 몸소 체화시키지 못하고 단지 간디의 결정에 추종하기만 했으므로 그의 사후 세상은 변화되지 못했다. 물론 간디의 영향으로 인도사회에 내재된 많은 가능성을 부정하진 못하지만...

신이 간디를 데려간데에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모든 성현의 죽음이 그러하듯 간디의 죽음은 이제 그의 육체나 그의 존재로부터 벗어나서 사람들이 그의 사상을 마음속에 씨앗으로 간직하여서 발화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그의 위대한 정신이 우리의 마음속에서 피어날 때에라야 비로소 간디는 우리들 속에서 부활하게 될 것이다. 세상을 모두 휘젓고 돌아다녀도 우리 마음 속 세상을 찾지 못한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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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락 한알 속의 우주
장일순 지음 / 녹색평론사 / 199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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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에 간디가 있음을 모르는 사람들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마더 데레사 수녀님의 사랑의 메세지를 모르는 사람들도 많지 않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들 속에 왔다가 그 흔적도 없이 가신 무일당 장일순 선생님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가 않다. 김지하 시인의 '말씀'이란 시의 내용대로 노자선생의 무위자연의 도를 체득하시어 하는 일 없이 안하는 일 없으시고 산 속의 청청한 난초되신 분이라고 하였다.

우리가 가진 내면 속에 우주의 모든 기운이 자리잡고 있고 작은 좁쌀 하나에도 전 우주의 관계망이 드리워져 있다. 이런 이유로 작은 풀 하나 꽃잎 하나도 함부로 대해서는 안된다는 말은 우리에게 큰 교훈이 되고 있다. 인간이 없는 지구에는 모든 짐승과 벌레들이 살 수 있지만 모든 짐승과 벌레들이 살지 못하는 이 곳에선 인간도 살 수 없다는 말은 단지 인간의 삶과 이윤논리에 의해 파헤쳐지고 파괴되는 자연은 결국 인간도 파괴시키고 말 것이라는 경고뿐만 아니라 작은 풀 하나와도 공생하는 생명존중사상으로 이 땅을 무위자연의 도가 실현되는 곳으로 만들어나가시고자 하는 그 뜻이 담겨 있다.

온갖 종교들의 형식성과 배타성이 인류의 비극을 초래하여왔고 지금도 크고 작게 이루어지는 비극들 속에 그는 모든 종교의 담을 낮추어 모든 사람들을 포용하는 열림과 사랑의 미덕을 설하고 자신 스스로 낮추어 드러내지 아니하고 자본의 세계화가 물결치고 도시화와 산업 만능주의의 파도속에서도 자신의 고향인 원주에 착실하게 기반하시고 작은 일들 속에서 그 의미를 다하시는 선생의 깊은 뜻을 비록 몸소 따르지 못해도 그 깊은 뜻을 헤아릴 줄은 알아야 한다는 책임감을 지울 수 없다.

동학농민운동에 대한 시각에 대해서도 선생님은 보다 깊은 말씀을 전하고 있다. 단지 사회운동으로서의 동학이 아닌 삶과 생명운동으로서 그리고 하늘과 자연의 도를 추구하는 사상으로서의 동학에 대해 우리는 아는게 없다. 그 동학 2대교주 해월선생의 사상이 손병희 선생으로 3.1운동으로, 중국의 5.4운동으로, 인도의 비폭력 무저항운동으로 이어진 시대의 파장을 우리는 잘 알지 못했다.

바로 우리 옛 선현들의 깊은 혜안 속에 우리가 삶에서 추구해야 할 것들에 대해 이미 설한 바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린 너무 멀리서 그것을 찾아온 것은 아닌가 반성하게 되고 현실문제의 원인을 늘 밖에서만 찾으려 했고 진정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자신의 마음 속 들여다보기는 무관심하지 않았는지 되돌아보게 한다. 80년대에 선생께서는 자신의 호를 '일속자(좁쌀하나)'라고 하였다. 그 작은 좁쌀 하나에 이미 온 우주의 생명이 깃들어있음을 아는 지혜로 선생의 마음에 가 닿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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