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걸음 한걸음
마하 고사난다 지음, 박용길 옮김 / 무한 / 200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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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보디아의 노승 마하 고사난다의 법문을 정리한 이 책은 우리들에게 자신의 내면과의 만남을 권합니다. 한 걸음 한 걸음의 중요성 속에 우리는 현재와 만납니다. 잘못된 한 걸음으로도 우리는 넘어지고 좌절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한 걸음이 가진 중요함입니다.

한 걸음 한 걸음은 들숨과 날숨입니다. 우리가 마시고 내쉬는 그 한숨 한숨에 우리들의 참다운 삶이 있습니다. 우리가 고통스러워 하는 것은 과거에 집착하거나 오지 않은 미래의 두려움 때문입니다. 그래서 한 걸음 한 걸음은 우리가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한 걸음 한 걸음은 모든 생각을 멈추고 자신의 내면의 소리에 귀기울이는 명상입니다.

한 걸음 한 걸음은 평화입니다. 그것은 나의 생각을 멈추고 지금 이 순간의 자신의 본성에 눈뜨게 함으로써 내가 갖는 고요함입니다. 내가 갖는 자유로움입니다. 세숫대야에 받은 물이 요동칠 때에는 나의 모습이 보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 파동이 미세해져 사라져가면 보이지 않았던 내 모습이 보입니다. 그래서 잔잔한 평화로움이 수면에 일면 내 모습은 뚜렷해집니다. 우리가 평화를 바라는 이유는 바로 내 본래의 모습을 보기 위함입니다.

이런 평화가 바로 우주 평화의 첫걸음입니다. 그래서 한 걸음 한 걸음은 우리 사회의 폭력과 압제를 자비와 연민과 관용과 사랑으로 치유하는 힘입니다. 그것은 우리들의 평화의 미래를 향한 꿈입니다. 희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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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의 미래
스코트 A. 헌트 지음, 김문호 옮김 / 아름다운사람들 / 200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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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가볍지 않은 이 책을 든 내 손이 가볍다. 아니다. 내 마음이 가벼운 것이다. '평화의 미래'라는 그 벅찬 이름만으로도 적지 않은 책값이 전혀 아깝지 않다. 20세기 최고조로 발달된 인류 문명과 과학기술이 저지른 대량학살과 인종청소 자연과 생명의 파괴를 생각할 때마다 이 책은 더욱 그 가치의 빛을 발한다.

책의 내용도 그 이름에 걸맞는 가치를 가졌다. 저자의 위험을 무릅쓴 용기있는 행동과 이 책 저술에 대한 특별한 애정은 이 책을 통해 우리 인류가 나아갈 원대한 방향을 제시함에 부족함이 없다. 현존하는 인간 정신의 고결함과 위대함을 갖춘 우리 시대의 현자들과의 만남을 위한 체계적이고도 세심한 준비와 그들이 쏟아내는 지혜의 말들이 이 책을 더욱 소중하게 만든다.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은 '왜 우리에게 평화가 필요한가'라는 물음이었다. 그것은 폭력과 전쟁으로 얼룩진 역사가 인류에게 진정한 삶의 행복을 가져다주지 못하였으며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인간을 파괴시켰기 때문이다. 인간 삶의 진정한 행복은 선현들이 가진 위대한 지혜와 자비를 통해 정신문화의 꽃을 피워내는 것이며 그것은 폭력적인 방법으로는 해결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면 평화란 무엇인가? 단순한 비폭력을 말함이 아니다. 그것은 내적으로는 고요함과 두려움이 없는 상태이며 전제조건으로 자비와 지혜를 필요로 한다. 외적으로는 사회적 제도적 폭력이 없으며 인간이 자신의 본성을 실현하는데 걸림이 없는 사회적 환경을 말함일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런 평화를 우리는 어떻게 이루어낼 수 있는가? 그것은 우선 우리가 평화를 선택하여야 함에서 출발한다. 그리고 그 선택은 내면적으로는 자신의 마음에 자비와 지혜를 길러내는 일일 것이고, 외면적으로는 내적 노력들이 빈부격차, 사회적 불평등의 제거, 군대 해체 등의 제도적 조건과 시스템을 만들어냄일 것이다.

평화의 미래는 가능한가? 이 책을 쥔 나의 손에 힘이 들어가 있다. 손에 쥔 그 책의 제목이 다시 내 눈에 들어온다. 평화의 미래는 바로 내 손에 쥐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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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론 1 - 상 - 정치경제학 비판 경제학고전선집 7
칼 마르크스 지음, 김수행 옮김 / 비봉출판사 / 200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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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주의권의 몰락과 자본주의화의 전지구화, 자본주의 내에서의 실업률, 부정부패, 자본의 물신성 등의 자본주의 체제의 근본모순이 오히려 더욱 격화되고 있는 지금, 맑스는 다시 우리에게 회자되고 있다. 기존 사회주의가 동시에 안고 있었던 생산력의 정체 문제를 맑스는 변증법적 유물론과 사적유물론에서 늘 강조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채 다시 세계 경제체제는 자본주의로 복귀하고 있다. 생산력 정체와 경제 침체를 극복하고 인간의 진정한 행복을 위한 전제조건으로서의 물질적 풍요로움을 달성하기 위하여....

그가 예견한 것보다 더욱 분화된 사회구조와 경제구조, 변화된 산업구조와 노동의 성격들, 육체노동의 감소와 정신노동의 증가, 광범위하게 형성되고 있는 새로운 종류의 노동자계급과 계급의식으로부터의 탈피는 그의 사회분석이 어떻게 변화되어야 하는지에 대해 우리에게 의문을 던진다. 그의 기본적인 문제제기의 유효함과 더불어 우리 사회가 함께 안고 가야할 국민의 행복이라는 화두는 시대의 변화와 더불어 늘 인류역사에서 우리와 함께 하고는 있다.

하지만 이제 그의 사상과 그것의 역사적 발전 속에 왜곡되어온 면들을 다시 분석해보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필요하다면 화석화된 틀들을 버리고서라도 그의 문제의식이 지금의 우리에게 던지는 메세지는 건져야 하지 않을까? 사실 현실 사회주의의 붕괴를 그의 탓으로 돌릴 수 없을 뿐더러 현 사회의 문제점을 역시 그의 잘못으로 돌릴 수도 없다. 그것은 어떤 역사적 인물과 사상 그의 삶도 그것이 현재 우리 삶에 어떤 문제점을 야기한다면 그것을 현재화시키고 우리 삶의 힘으로 끌어들인 우리들의 잘못일 테니까....

어쩌면 '고별혁명'의 리저허우 선생의 말처럼 현실의 기준과 잣대로 늘 이론을 재조명하고 재해석 하는 작업이 필요한 것일런지도 모른다. 모든 이론은 회색이고 오직 푸르른 것은 저 푸른 생명의 나무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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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흘 밤의 꿈 - 레종북스 세계명작시리즈 1
나쓰메 소세키 외 지음, 이병하 옮김 / 여성신문사 / 200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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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수많은 사랑은 모든 것이 고유하며 단 한 번 뿐인 사랑이다. 오직 한 사람에게만 쏟아붇는 그리고 그 사람만이 필요로 하는 사랑이 있는가 하면, 대상이 바뀌어도 자신의 내면에서 솓구쳐 오르는 사랑을 늘 분출하는 사람이 있다. 하지만 태생적으로 남자는 여자를 그리워하고 여자는 남자를 간절히 원한다.

사랑에 관한 이 글을 읽으며 내가 처음으로 한 생각은 우리에게는 왜 사랑이 필요한가? 라는 물음이었다. 그것이 단지 우리들의 생리적인 욕구만을 충족시켜주는 것이라면 너무나 허망하기 그지없다. 그것은 우리가 가진 정신적인 욕구를 충족시킴으로서 삶을 완성하게끔 하기 때문이다. 사랑이 없는 삶은 무미건조하고 의미가 없다. 그런 의미에서 사랑은 우리의 마음이 가진 본성이 아닐까?

두번째는 사랑하는 방식에 관한 것이다. 우리는 흔히 사랑을 하게 되면 그 사랑의 에너지로 삶이 즐겁고 행복한 에너지가 가득 찬다. 그 에너지를 한꺼번에 폭발시켜버리고 시간이 흐른 후 폭발 후의 재만 남게 되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그 폭발의 에너지를 더디게 긴 시간 속에서 지연시키는 경우도 있다. 어떤 것이 좋고 그르다 말할순 없는 것이고 다만 그것은 사랑하는 당사자가 가진 에너지의 표출방식의 차이이다. 다만 나는 이 폭발적에너지를 어떻게 하면 좀 더 내면적인 방향으로 돌려서 의미있게 사용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다. 예술가나 작가처럼.....

마지막으로 그 사랑이 나를 뒤흔들고 지나간 후 내게 남긴 것이 무엇인가 하는 점이다. 과연 나는 그 사랑으로 더욱 성숙해졌다고 할 수 있는가? 아니면 타인에 대한 벽을 한층 더 두텁게 쌓은 것은 아닌가? 따지고 보면 이것은 내가 사랑을 받아들이는 마음의 준비대로 이루어진다.

사랑은 때로는 자아를 잊게 한다. 사랑하는 그 순간 엄청난 고통과 절망도 극복할 수 있는 힘이 생긴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우리는 이 위대한 역사를 창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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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베트의 아이들
정희재 지음 / 꿈꾸는돌 / 200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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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숨을 무릅쓰고 히말라야의 만년설을 넘는 티베트 아이들에게 있어 다람살라에 위치한 티베트 어린이 마을의 교육은 단지 중국에 주권과 생명을 유린당한 그들이 자신의 민족과 뿌리를 찾는 것만은 아니었다. 그것은 ,그들이 중국을 위해 기도하고 모기약을 뿌리기 전 3일 동안을 모기에게 주의를 주기 위해 기도하는 모습에서 드러나듯이, 삶을 바라보고 자연과 생명을 대하는 그들만의 방식을 통해 삶의 진정한 행복을 찾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이었다. 그들의 삶의 방식을 결정짓는 마음의 본성은 삶의 극한 고통과 비극속에서도 영혼을 타락시키지 않고 오히려 더욱 성숙하게 승화시켜내는 마음의 비밀이었다.

그에 반해 서구사회는 어떠한가? 물질적 삶의 풍요로움에도 불구하고 정신적 황폐함으로 고뇌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서구보다 더욱 더 서구적으로 살려고 하는 우리 사회에도 티베트의 어린이 마을의 교육과 그 교육으로 성장하는 아이들의 삶에 대한 태도는 '합리주의'와 '문명'이란 이름으로 가르쳐주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진정한 삶의 행복'이란 이름으로 배워야 할 대상이 아닌가?

진정한 비극이란 배워야 할 대상에게 그들의 삶의 방식을 해체시키고 잘못된 물질주의와 쾌락주의로 가르치는 것이 아닐까? 티베트 마을의 아이들이 자라서 살게 될 경쟁과 소외의 세상에서도 그들이 지닌 내면의 힘을 잃지 않기를 간절히 바래본다. 그것은 어쩌면 우리인류가 가진 마지막 희망일런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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