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둘 수 없는 영혼 - 어느 티베트 라마승의 자서전
팔덴 갸초 지음, 정희재 옮김 / 꿈꾸는돌 / 200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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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덮어도 이 책의 감동은 고스란히 내 가슴 속에 남아 있다. 그 감동은 세상의 왜곡되고 짓눌린 인간성에도 불구하고 순박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감동이 아니다. 사회주의 혁명 과정에서 보여진 이데올로기에 대한 맹신이 가져오는 사회 비극에 대한 절실한 인간성 회복으로부터 오는 감동도 아니다. 그것은 외부세계에서 닥쳐오는 시련과 고통에도 불구하고 끝끝내 자신의 내면 속에 흔들리지 않는 영적 불꽃을 지켜내고 키워간 그 원천의 힘을 나의 마음 속에서 스스로 찾아볼 수 있게 만드는 감동이며, 그것은 또한 우리 삶의 행, 불행의 상황에도 불구하고 우리 삶에서 지향해야 할 것들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하는 감동인 것이다.

수없이 계속되었던 의식을 잃을 정도의 고문과 육체적 고통속에서도 그 육체적 고통과 아픔을 견디어낼수 있도록 지탱해준 힘, 그리고 그것을 극복해내고 마음이 지향하는 바를 놓지 않게 하였던 그 내면적인 힘을 이길 수 있는 것은 세상 어디에도 없었던 것이다. 비록 사회주의 혁명이 세상의 온 모습을 바꿀 수는 있어도 흔들리지 않는 영혼의 불씨를 꺼지게 할 수는 없는 것이었다.

이 내면의 힘은 단지 극한 고통 속에서 자신의 생존을 위해 외부세상으로 향하는 감각의 문을 스스로 폐쇄해버리고 세상으로 통하는 문을 모두 잠가버린 것과는 차이가 있다. 그것은 자신에게 주어지는 고통과 시련을 회피하게 만드는 것이며 단지 부정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비록 심한 감시와 행동제약으로 자신의 종교의식과 내면의식을 행하는 기회는 줄어들었을지 몰라도 그가 항상 마음 속에 흔들리지 않는 중심을 갖고 외부의 현실을 대하는 데에는 자신의 선택권이 여전히 존재하였음을 팔덴 갸초의 수감생활을 통해서 알 수 있다. 외부적 고통과 극심한 고문에 따르는 상처와 아픔에도 그것에 휘말리거나 주룩들지 않고 떳떳하게 자신의 소신을 지켜나가고 주어지는 삶을 능동적으로 선택해가는 힘, 그것이 바로 그가 가진 내면의 힘이었던 것이다.

왜 선한 사람들에게 시련이 닥치는가? 왜 순수한 영혼에게 고난이 오는가? 아마 그것은 그 시련을 통해 이루고자 하는 영적 의미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인생의 모든 시련과 장애물이 가지는 의미와 같이 이런 시련은 그 시련 속에서도 꺼지지 않는 영혼의 불꽃을 지켜내기 위한 실험일런지도 교훈일런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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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고르 기탄잘리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고전 시
R. 타고르 지음, 박희진 옮김 / 현암사 / 200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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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가 단지 우리들의 본능만을 충족시키기 위한 도구라면 아마 타고르의 위대한 시들은 결코 탄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언어가 단지 우리들의 육체적 굶주림만을 채워주는 것이었다면 타고르의 시들은 어딘가에서 갈 길을 잃고 헤매이는 고아들의 집단이었을 것이다. 언어가 단지 지배자의 이해관계의 표면에서 그들의 논리를 정당화시키는 수단만이었다면 그의 시는 침묵 속에 입을 다물어버렸을 것이다.

그의 시를 접하면 우선 늘 내 마음을 사로잡던 육체적 오감들이 서서히 마비되기 시작한다. 그의 시를 접하게 되면 육체적 굶주림은 사라지고 영적 갈망과 그 갈망의 뿌리에서 자란 갈증이 온몸을 감싼다. 그리고 그의 시를 접하게 되면 우리 사는 세상의 옳고 그름의 너머에 존재하는 영원한 진리에 대한 동경이 가슴에서 피어오른다.

그가 만들어 낸 신의 그림자를 쫓는 언어는 절제되고 무한히 경건하며 너무나 간절하다. 그 간절함이 없었다면 과연 이렇게도 필연의 언어로 채워진 시들이 탄생할 수 있겠는가? 그 경건함이 없다면 과연 이렇게도 마음을 고양시키는 시들이 탄생할 수 있겠는가? 그 절제됨이 없었다면 과연 이렇게도 애절한 시들이 탄생할 수 있겠는가?

그의 시적 언어를 타고 나의 정신이 한없이 고양되고 경건해지어 신의 빛깔이 어렴풋이 나의 영혼을 감싸고 돌때 내 안에서 늘 있던 또 다른 내가 슬며시 나를 보며 미소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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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인슈타인의 나의 세계관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지음, 구자현 외 옮김 / 중심 / 200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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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인류가 낳은 고독한 천재, 아인슈타인의 삶은 그가 유대인이라는 이유로해서 순탄하지 못했다. 하지만 순탄하지 못한 인생에서 자신의 삶의 이유를 명확히 파악하고 물리학에 대한 학자로서의 전문지식 뿐만 아니라 그 학문이 바탕한 정신적인 지평을 넓히는 데 게을리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그는 역시 위대한 사람이었다. 전문지식만을 알고 세상을 재단하는 자는 그의 말대로 훈련받은 개와 별다른 차이가 없을런지도 모르니까....

그가 바라보는 인간사회의 발전이 지향하는 궁극적인 목표는 정신문화의 꽃을 피우는데 있다. 경제발전과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인한 인간 삶의 풍요로움은 결국 인간의 정신적 능력을 개발하고 영적인 성장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라는 그의 판단은 올바른 것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종교와 과학의 관계에 대한 그의 입장에서 보다 넓은 시각에서 그것을 바라볼 수 있게 하였다는 생각이 든다.

교육에 대한 입장에서도 그는 학교교육이 아이들에게 강요된 짐이 되지 않고 내면적 욕구에 의해 수용되어지는 선물과도 같은 것이 되어야 한다고 했다. 그것은 인류의 평화와 정신문화의 발전을 위한 제도적 통로이어야 한다는 점은 명쾌하고도 정확한 우리 교육의 대안이기도 하다.

그가 학문적 활동말고도 인류사회를 위해 지도자적 역할을 하였다면 그것은 세계대전 이후 원자폭탄의 도래와 더불어 초래될 인류절멸의 위기에 대해 초국가적 성격을 갖는 세계정부의 수립을 제안하였다는 점이다. 일국가는 경찰 병력만 갖고 군대는 세계국가에 의해 유지되는 조직이어야 하고, 그것은 전쟁억제력을 위해 일국가의 이익도 희생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그의 이런 제안 뒤에는 원자폭탄이라고 하는 인류의 재앙에 대한 깊은 우려와 모두가 평화롭게 살며 정신적 성장을 기원하길 바라는 그의 인류애가 자리잡고 있었을 것이다.

유대인의 시온주의에 대한 그의 견해는 다소 민족주의적인 색채를 띠는 것이 사실이지만 적어도 그는 팔레스타인의 아랍인들과 평화로운 관계를 유지하길 원했다. 정의라는 이름하에 이라크에 대해 선제공격과 대량학살을 저지른 미국의 오만과 아랍과의 끊이지 않는 유혈전쟁에 휘말려있는 팔레스타인분쟁은 그가 이미 예견했던 문제이며 상대방에 대한 평화와 신뢰와 사랑만이 평화의 미래를 보장한다고 믿었던 그의 믿음에 어긋나는 것이다.

이 책은 천재 물리학자이자 철학자의 글이라 읽기에 쉽지는 않다. 하지만 그의 명성에 걸맞게 국제정세와 미래를 내다보는 정확하고도 날카로운 그의 논리와 예지력을 보기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다. 더욱이 원어를 우리말로 다듬고 잘 옮긴 역자들의 수고로움도 무척이나 컸을 것이라 생각된다. 쉽지 않은 글이지만 정말 감동적으로 읽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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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영혼의 빛
예후다 베르그 지음, 구자명 옮김 / 나무와숲 / 200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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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어려운 희브리어 경전인 카발라를 이처럼 쉽게 옮겨 놓은 저자의 능력에 감탄한다. 더더욱 이 한 권의 책이 우리 우주의 존재와 우리 인생의 의미에 대해 이토록 명쾌하고도 심오한 깊이를 담고 있다는 점에서 한번 더 고마운 마음이 생겨난다.

이 책에서 우주의 탄생과정과 삶의 의미를 보여주는 핵심적인 개념은 '부끄러움의 빵'이다. 그것은 완전한 빛의 존재인 우주를 현상태인 카오스의 우주로 있게 만든 원인이다. 또한 그것은 우리 삶이 그 본래의 의미를 찾아가도록 해주는 나침반의 구실을 해준다.

부끄러움의 빵은 우리들의 일상 속에서도 깊이 스며들어 있다. 불로소득, 무임승차, 양심에 반하는 행동, 마음에 티끌같은 부정의 자국이 남는 행위와 마음. 이 모든 것을 저자는 반응성 행동이라 불렀다. 그러면 부끄러움의 빵을 없애는 방법은 무엇일까? 그것은 반응성 행동을 긍정적 행동으로 바꾸어내는 것이며 반응성 행동으로 인해 되돌아온 업을 바르게 고쳐가는 '티쿤'이다.

이 책은 나같은 평범한 그릇에도 빛이 들 날이 있음을 희망하게 한다. 그것은 애초에 깨달은 자로 태어나 삶을 살아가는 것보다 삶의 과정에서 반응성 행동을 긍정성 행동으로 바꾸어내어 영적 성장을 이루어내는 것이 우리 삶에서 제기된 본래의 과제이며 영혼의 본성임을 보여준다는 점이다. 그것은 또 우리 삶에서 악과 부정적인 것들이 만연하고 그런 사람들의 행동이 넘쳐나더라도 그 사람을 미워하고 배제해버릴 수 없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무엇보다 그 사람이 바로 '나'이고 '나'일 수밖에 없는 까닭이다. 그래서 결국 이 책은 나를 돌아보게 한다. 내 삶을 통해 우주적 본성을 회복하고자 하는 것, 그것은 우리들 마음 속에 아로새겨진 영적 DNA를 새롭게 배열하는 것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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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락
존 쿳시 지음, 왕은철 옮김 / 동아일보사 / 200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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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공의 식민지 상황과 그로부터 독립되던 역사적 상황을 안다면 이 책은 더욱 잘 이해되어질런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의 문체는 뭔가 독특한 것이 있다. 어떤 현실을 객관적이고도 담담하게 그려내는 작가의 마음 속에는 어떤 감정과 욕구에도 휘말리지 않는 그만의 냉정함이 자리잡고 있는 듯하다.

데이비드 루리라는 50대에 접어든 대학교수는 자신의 삶에 대한 열정과 욕구가 나이와 더불어 추락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하지만 실제로 그를 추락하게 만든 것은 멜라니라고 하는 한 제자와의 우연의 만남이었다. 그녀와의 관계가 결국은 그를 대학에서 쫓아내게 되지만, 그는 자신을 쫓아낸 것이 부자연스럽고 불편한 관계를 직시하는데 참을 수 없어하는 세인들의 눈이라고 단정짓는다.

하지만 자신의 어떤 잘못된 행동에 대해서도 사람들은 흔히 자기정당화의 방법은 갖고 있다. 그는 자신의 삶의 추락을 바이런의 삶에 비유한다. 테레사와의 열정적인 사랑과 추락, 그로 인한 바이런의 파멸속에서 그와 겹쳐지는 자신의 삶의 예술적 의미를 찾으려 한다. 오만하면서도 전형적인 지식인의 병든 모습일수도 있고 어쩌면 바로 우리들의 모습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것은 언제까지나 자신의 문제에서만이다. 반대로 자신의 딸, 루시의 문제에 있어서는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평범한 세상사람이 되고 만다. 평범한 아버지의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의 이중성을 작가는 냉담하고도 자신을 객관화하는 담담한 글을 통해 드러내고 있다.

어쩌면 추락이란 제자와의 성관계로 대학에서 쫓겨나게 된 일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대하는 그의 태도와 딸의 삶을 수용하는 방식들간의 건널수 없는 차이에서 비롯된 것일지도 모른다. 그것은 그의 정신이 겪는 자아분열이기도 하고 자기모순일수도 있다.

결국 딸이 강간범의 아이를 갖고도, 자신의 농장을 부당하게 점점 잃어가고 있으면서도 그런 억울함에 호소하기는 커녕 잘 적응해가는 모습을 보면서 그녀와의 멀어진 거리를 메울 그 무엇도 발견할 수 없게 된 그가 택한 정신적 자살이자 체념이 추락이다. 그가 애정을 갖고 돌봐왔던 절뚝거리는 개는 어쩌면 자신의 모습이며 그 개를 수술실로 데리고 들어가는 마지막 장면은 그가 경험하는 추락의 끝을 보여주고 있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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