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리 주커브의 소울스토리
게리 주커브 지음, 이현주 옮김 / 나무심는사람(이레) / 200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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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번째의 감각이야기로 시작되는 이 책은 영혼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 여섯번째의 감각은 직감으로 영혼으로 이르는 문이다. 우리는 자신이 지금 보이고 느끼는 것만이 자신의 존재가 아니라 감추어진 부분이 있음을 알아차려야 한다.

내가 늘 일상에서 느끼는 여러가지 감정의 굴곡에 시달리면서도 때로는 그것을 지켜보는 무엇인가가 존재함을 느끼게 되고 때로는 그 지켜보는 것에 의해서 감정의 굴곡속에 내가 파묻히지 않고 그것을 관망하게 되고 때로는 그것을 내가 극복할 수도 있음을 보게 될때 나는 늘 내가 떠오르는 감정을 생각하는 것이 순간 순간마다의 나의 선택에 달려있음을 알게 된다.

내 속에 영원한 존재인 또 다른 나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식함으로써 나는 의식적으로 달라지기 시작한다. 그것은 내가 몸을 갖고 생활하는 사회적 존재로도 드러나게 된다. 내가 가장 의미있게 생각하고 만나는 사람들(그것은 이미 오랫동안 내가 삶의 깊은 안개속을 헤매일때 간절하게 내면으로 바라고 있던 그것이었다.)과 그 만남 속에서 이루는 영적인 성장에 관한 이야기가 그렇고, 가족관계와 부부관계 속에서 내가 영적 성장을 도모하기 위해 존재하는 모든 일들에 대한 이야기가 그렇다.

가슴이 이야기하는 대로 따른다는 것, 그것은 내가 본래 가진 인생의 교훈인 영적인 성장을 위한 우주적인 흐름 위에 나의 의식을 올려 놓음을 말한다. 그럼으로써 그 영적인 성장을 위한 흐름위에 나의 삶도 올려 놓는 것임을 말한다. 이것이 주가 되면 삶을 대하는 방식이 변한다. 고통과 좌절과 분노와 슬픔과 질투 등의 부정적 감정을 대하는 방식은 달라진다. 그것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느끼면서도 그것이 나에게 일어나는 의미와 영적인 성장을 위해 나에게 꼭 필요한 시기에 필요한 방법으로 왔음을 깨닫게 된다.

주커브의 영적인 성장에 관한 이 이야기는 영적인 진화의 과정이 너무나도 자연스럽듯 있는 그대로 어색함이 없이 잘 풀어내었다. 여러 사람들의 영적인 성장에 관한 사례들을 단순히 나열함에 그치지 않고 자연스럽고 어긋남이 없는 체계를 따라 잘 짜놓은 영혼의 직물과도 같은 느낌을 주다. 그 짜여진 직물 속에서 우리는 우리의 영혼을 살며시 건드리고 우리 갈 길을 재촉하는 내면의 소리를 듣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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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들은 과외수업을 받지 않는다
김종철·이현주·장회익 지음, 류연복 그림 / 샨티 / 200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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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 세 사람의 세상 만물을 받아들이고 이해하는 방식은 상이하다. 하지만 이 상이한 세 방식은 자연이라는 하나의 단어에서 귀결된다. 자신이 자신을 둘러싼 세상을 이해하고 바라보는 그 관 하나로 세상의 만물은 그 관 앞에서 줄을 선다. 그런 관을 가지게 됨이 또한 나의 원대한 희망이다.

우리에게 익숙하게 알려져 있는 세사람, 그들이 이 자본주의화 세계화 물결의 삶, 방향없는 속도의 삶에 대해 내놓은 해법은 자연을 닮은 삶이다. 자연에 무슨 작위나 의도가 없듯이 인간의 마음과 행동에 한 점의 사사로움과 탐욕이 지워질 때 비로소 세상은 자연을 닮은 세상으로 간다고 하였다. 그것은 인간이 없는 세상이 아니라 자연을 닮은 인간의 마음으로 이루어지는 세상이라 하였다.

사실 요즘같은 세상에서 남들과 달리 자신의 소신대로 산다는 것조차 힘이 든다. 대형마트를 이용하지 않는 삶, 자동차를 소유하지 않는 삶, 휴대폰을 소유하지 않는 삶, 육식을 즐기지 않는 삶에서부터 돈의 노예가 되어 살지 않는 삶, 자아의 환상에 파묻히지 않는 삶에 이르기까지..... 어느것 하나 남들과 다른자신의 소신을 필요로 하지 않은가? 더구나 자신의 세상을 보는 확신으로 자신의 삶전체를 일구어낸다는 것은 좀처럼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그 쉽지 않지만 소신있는 삶과 행동이 물질주의와 자연파괴로 얼룩진 황폐화되어가는 지구의 생명을 살리고 생명이 사라져버린 기계화되어 가는 인간사회에 다시 생명의 기운을 불어넣어 삶의 균형을 되찾으려는 노력임을 알 수 있다. 지역통화운동과 자발적 가난을 선택하는 삶, 자연에서 배우는 삶의 지혜와 생명의 참다운 진보를 위해 터트리는 그들의 열정이야말로 우리 사회의 잃어버린 한 쪽 날개를 찾아 다시금 비상하려는 인간의 원대한 꿈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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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그림 읽기의 즐거움
오주석 지음 / 솔출판사 / 199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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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나라의 대표적인 그림을 가려 12편의 작품을 모았다. 더불어 그 그림을 그렸던 화가의 생애와 삶, 그 시대를 아우르는 시대정신까지 곁들여가며 그림에 대한 재미있고도 상세한 설명을 덧붙여 놓아서 더욱 재미있었다. 다만 서두에서 저자가 밝힌 바와 같이 '아는 것은 좋아하는 것만 못하고 좋아하는 것은 즐기는 것만 못하다'는 그 마음을 쫓아 나름대로 즐기려고 여유를 가지고 그림을 대하고 읽어나가면 더욱 좋을 것이다.

그림에 대한 안목을 별로 가지지 못하고 살아온 것이 사실이었다. 주위에 그림그리는 벗 하나 있어 그래도 가끔 시화전이라도 할때면 들러서 그림을 열심히 둘러보곤 하였지만 즐기는 것도 최소한의 이해는 필요한 터, 늘 친구가 그린 그림을 제대로 이해해주지 못해 미안한 마음이 적지 않은 바이었다. 다행이 이 한국의 대표적인 명화들을 자세한 설명까지 곁들여 읽어내리고 나니 안목아닌 안목이 조금은 생긴 것 같아 뿌듯하다.

늘 위대한 화가는 한 폭의 그림 안에 자신의 사상과 삶을 담아낸다는 진리를 가지고 그림을 대하게 되면 그림을 그린 작가의 마음에 닿을 수 있다. 우리 옛그림을 대하면서 말없이 속으로 타올랐던 감동들을 이젠 조금 선명하게 알 수 있게 되었다. 그러고보면 우리 옛 조상들은 시와 서, 삶에 늘 자연을 받아들이는 특별한 안목이 있었고, 그것은 단순히 경물에 대한 세밀한 묘사와 기술을 뛰어넘어 깊은 인생관과 세계관을 담아내었다는 생각이 든다.

추사의 세한도에 드러난 외롭고도 추운 세월에 대한 자신의 마음과 그 추위와 풍파에도 꺽이지 않고 꿋꿋하고 의연하게 살아가는 자신과 어려운 세월에도 불구하고 늘 자신의 모습을 변함없이 지켜주는 제자에 대한 고마움이 어떠했을까? 이인상의 설송도 또한 세상이 알아주건 말건 스스로에 대한 삶의 성실함을 강직하게 지켜내는 금강석과도 같은 곧은 마음이 살을 에이는 설한에도 아랑곳없이 땅에 뿌리를 내리고 한없이 강직한 모습으로 추위를 버티어내는 소나무에 자신의 마음이 그대로 투영되었을 것이다. 강희안의 고사관수도, 김홍도의 주상관매도, 윤두서의 진산타려도에는 인생의 희노애락의 모든 경험을 관통하여 삶을 달관한 자들의 삶에서 베어나올 법한 달관과 즐김의 자리가 있다. 개인적으로는 강희안의 고사관수도가 제일 마음에 든다.

옛 그림을 읽어낸다고 했다. 단순히 그림을 본다는 것이 아니다. 그림을 그린 자의 마음과 삶과 사상까지 읽어내어야 비로소 그 그림이 보인다는 뜻일 것이다. 그림 이면에 그들이 지향했던 삶과 애절한 마음들이 내 삶의 지향점들을 물어온다. 과연 너는 네 인생의 화선지에 어떤 삶을 화폭을 담아낼 것인가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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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가 생각하는 내가 아니다 - 칼로스 워터의 행복의 쉼터
칼로스 워터 지음, 백영미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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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과연 누구인가? 하고 나 자신에 대해 근원적인 질문을 던져보라. 이 질문에 명쾌하게 떠오르는 답이 있는가? 나의 육체가 과연 나인가? 아니다. 나의 뇌와 그로부터 떠오르는 생각들이 나인가? 그것도 아니다. 나의 심장인가? 아니다. 내 신체의 일부를 각각 떠올려서 그것이 나라고 해봐도 뭔가 석연찮다. 그렇다면 나의 사회적 지위와 그로 인한 사회적 관계인가? 아니면 내가 나라고 생각하는 막연한 그 무엇인가? 어떤 대답도 나를 만족시킬 수 없다.

칼로스 워터는 자신의 정체성을 묻게 될 때 거기에는 두 가지의 정체성이 있다고 본다. 일시적 정체성과 근원적 정체성. 물음에 대한 위의 나열된 답들은 모두가 일시적 정체성에 불과하며 그것은 어떤 조건들로 구성되어진 모래탑과도 같다. 그 조건들이 어떤 계기로 변화하거나 해체되어버리면 저절로 허물어지게 될 것이다. 그런 것들에 맞추어 나를 규정하게 되면 늘 일시적으로 변해가는 조건에 맞추어 자신의 정체성을 바꾸어 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조건에 변함없이 영원히 지속되는 근본적 정체성이 있다. 그것은 늘 있어왔고 앞으로도 항상 존재할 것이다. 다만 우리의 마음의 눈이 그것을 알아보지 못할 따름이다. 우리는 늘 몸과 자아를 가짐으로해서 생기는 온갖 생각들로 혼랍스럽다. 마음속에서 늘 흔들리고 있는 생각의 추가 있다. 흔들리는 추가 중심을 지나 좌우의 끝에 다다라서 중력과 원심력이 균형을 이루고 멈추는 순간 그 물체는 순간적으로 사라진다고 한다. 마친가지로 마음속에서 흔들리는 생각의 추가 정지된 곳에 어쩌면 본래의 본성의 자리가 존재할런지도 모른다.

그러기 위해선 우선 머리로 생각하는 것을 멈추어야만 한다. 논리적으로 옳고 그름과 과거의 선입견과 편견의 생각이 멈춘 곳에서는 대상과 세계를 인식하는 가슴의 눈이 열리게 된다. 우리의 머리 속에서 어떤 영감이 번쩍하고 떠오르는 순간, 우리는 우리의 머리가 아니라 그 머리를 통해서 오는 에너지가 과연 어디에서 오는 것인지 가슴의 눈으로 잘 살펴보아야 한다.

가슴으로 안다는 것은 머릴 아는 지식과는 다르다. 그것은 오직 현재의 직관으로 대상을 파악한다는 점에서 이 순간을 사는 것이며, 그 순간 대상과 자신과의 열림과 교류가 존재함을 의미한다. 대상을 접하고 번쩍하고 가슴이 열리는 그 짧은 순간, 그 순간에 오가는 존재의 본성의 빛을 느낌을 의미한다. 그것은 우리가 대상과 나의 본질에 대해 존재의 깊은 곳에서 연결되어 있음을 느끼는 것이다. 그 빛을 우리 삶의 모든 장소에서 마주하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우리들의 삶과 생활 곳곳에 존재하는 근원적 정체성, 즉 빛으로 통하는 천 개의 만 개의 문을 발견해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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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뇌를 점검하라
다니엘 G.에이멘 지음, 안한숙 옮김 / 한문화 / 200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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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질적으로 풍요로울수록 정신적으로는 빈곤하고 병든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우울증과 강박증, 분노와 좌절, 미움, 불안감, 흥분 등의 부정적인 감정과 생각들로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이 많아졌으며 그것이 행동화되고 극단화될때 때로는 귀중한 생명을 희생하기도 한다.

인간 사고와 행동의 출발점은 '뇌'이다. 우리가 가지는 모든 사고와 행동은 뇌를 매개로해서 이루어진다. 따라서 우리들의 문제행동이나 심리적 문제를 우선 뇌의 생리적 관점에서 다루어보는 것은 여러가지 의미를 가진다.

자신의 잘못이 아닌 사고로 뇌를 다친 후 성격이 포악하고 강박증을 느끼고 불안감에 젖거나 주의집중 장애를 가지는 등 부정적으로 변한 사람들과 그 사람들의 변화된 성격으로 고통받는 많은 사람들에게 에이미는 말한다. 그 고통은 누구도 원한 것이 아니며 단지 뇌 생리적 문제를 안고 있을 따름이라고. 그는 뇌 SPECT(단일 양전자 방출 촬영법)사진을 통해 눈으로 명쾌히 확인가능하게 보여준다. 이를 통해 당사자들이 불필요한 마음의 고통을 받지 않도록 도와준다. 그리고 상황에 보다 현명하고 효율적으로 대처할 수 있도록 해준다.

뇌의 구조와 그 기능에 대해 알게 되면 세상에 일어나고 있는 모든 비극들이 인간 존재의 자체로부터 기인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뇌의 생리적인 문제로부터 일어나는 것이고 따라서 인간 존재의 본질에 대해 보다 깊은 지식과 폭넓은 이해가 우리들에게 절실히 요구되는 것임을 분명히 알게 한다. 그 누구도 선천적으로 의도적으로 악한 인간은 없음을 알게 해준다.

저자도 인정하듯이 우리들의 사고와 행동은 뇌의학적 심리적 사회환경적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함으로써 생긴 산물이다. 그 진정한 원인이 무엇인지 또 그 해결책은 무엇인지 쉽게 단정지을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따라서 문제행동에 대해 한가지 원인으로만 속단하지 말고 많은 가능성과 대안에 대해 열려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모든 것이 눈에는 보이지 않는 인드라망으로 연결되어 있다.마음 수행을 통해서도 때에 따라서는 약물치료효과와 같은 뇌의 변화가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우리들의 사고와 행동의 최종원인과 귀결이 뇌가 아닐 수도 있으며 단지 뇌라고 하는 기관을 통한 것일 수도 있다. 그런 점에서 이 책도 다른 가능성과 대안에 열려 있는 '문'을 가졌으면 한다. 저자의 생각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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