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한 번도 실수하지 않은 사람은 결코 새로운 일을 시도하지 않는다.

 

질문을 멈추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호기심은 그 나름의 존재 이유가 있다.

인간은 진리와 인생 그리고 불가사의한 현실의 구조를 직시할 때, 

아무런 해답도 얻지 못한 채 오히려 두려움에 빠지곤 한다.

그저 매일 이 불가사의한 세계에 대해 아주 조금이라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걸로 족하다. 신성한 호기심을 잃어서는 결코 안된다.

 

하나의 목적에 자신의 온 힘과 정신을 다해 몰두하는 사람만이 진정 탁월한 사람이다.

이런 까닭에 탁월해지는 데는 그 사람의 모든 것이 요구된다.

                                       

                                                                     -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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닦는 마음 밝은 마음
김재웅 지음 / 용화 / 199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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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은 모래사막과도 같다. 그곳에서 쌓아올린 모래탑은 작은 바람에도 흔들리고 무너져내린다. 그런 모래사막과도 같은 곳에 금강같은 도량을 지어내는 것이 바로 백성욱 선생님께서 이르신 말이다. 백성욱 선생님을 모시고 마음밝힌 김재웅 법사님이 이제는 백성욱 선생님이 향한 그 마음에 의지하여 소사 도량에서 마음닦는 젊은 수좌들과 함께 길을 가고 있으니 그 도중에 세상에 쏟아낸 말들이 너무나도 구구절절 고맙고 감사하다.

마음 닦는 일을 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자신의 행로가 바른지 어떤지 점검하기 위해 한번쯤 꼭 읽어보아야 할 책이다. 책을 읽을때는 어떤 마음으로 읽는지, 올라오는 마음의 분별에 어떻게 대처하는지, 복은 어떻게 지어야 하는지, 일상 생활을 어떻게 영위해야 하는지, 무엇보다 마음은 어떻게 닦아야 하는지에 대해 일반인들이 알기 쉽게 설명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아침 일찍 일어나서 금강경 읽기를 해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마음을 닦는 일을 내 생활 속에서 좀 더 규칙화 습관화시켜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나에게는 일정한 형식들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아이가 태어났다. 그리고 그 아이를 늘 집에서 지켜보고 처의 시중을 들면서 때로는 책을 읽을 여유조차 없어져버렸다. 이럴 때 나는 어떻게 마음을 닦을 것인가? 나의 생활에서 늘 마음닦는 것을 놓치지 않는 방법은 무엇인가? 하는 고민에서 이 의문이 출발되었다.

마음 속에 분별을 만들지 않겠다는 서원과 마음 속의 분별 올라올때마다 놓치지 않고 바치는 그 마음을 늘 가지는 것이 지금부터 내가 가져야 할 태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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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중에서 길을 물었더니 - 우리 시대 큰스님 33인과의 만남
서화동 지음, 김형주 사진 / 은행나무 / 200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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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수스님의 불살생의 의미부여가 맘에 와닿았다. '자신을 죽이지 말라' 즉, 죽지 말라는 말이다. 생사의 윤회에서 빠져나와 자유자재한 자신을 만나보라는 말이다. 33인의 스님들이 각 각 자신의 고유한 색깔과 수행여정을 갖고 있지만 모두가 진정한 본래의 자신과의 만남을 권한다. 그 진정한 본래의 면목을 찾기위해 우리는 외부로 향한 우리들의 에너지를 자신의 내면으로 돌리는 방법을 찾을 필요가 있다.

화두선과 염불선과 묵조선의 방법 중 나에게 맞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아직 잘 모르겠다. 하지만 아직 화두를 들만한 능력이 내겐 부족하다는 것을 알겠고 오히려 염불선의 방법으로 쉽게 다가가는 것이 어떨까 하는 생각도 들곤 한다. 하긴 쉽고 어려운 것이 어디 있겠는가? 나의 관의 수준에 맞는 스타일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결론은 사용가능한 나의 방법들을 모두 시도해보는 것이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나에게 맞는 어느 방법이 생길테니까...그게 여럿일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이 책을 읽으며 내가 또 한가지 깊게 느낀 점이 있다. 출가스님들이지만 출가나 재가의 형식이 중요한 것은 아니며, 마음이 중요한 것이라는 말과 수행은 사바세계인 속세에서 더욱 필요하며 진정한 법당이며 수행의 공간이라는 말씀들이다. 고통이 존재하는 이유가 있듯이 인간의 온갖 희노애락과 생로병사가 집적되어 우리들의 마음으로 끊임없이 침투하는 인간세상이야말로 정말로 수행이 필요한 곳이며 진정으로 수행하는 자가 있어야 할 장소가 아닐까 하는 마음이 생기는 것이다.

속세에서 인간의 옷을 걸치고 가족을 구성하고 사회적 지위를 가지고 사회적 관계를 맺어가면서 그 관계속에서 생기는 여러가지 일들 모두가 나를 깨닫게 하는 부처님의 현현함이라는 생각과 그 온갖 장애물 속에서도 내 안의 본래면목을 찾아가는 과정 그 자체가 나에게는 필요하며 중요한 목적인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결국 모든 것은 나로부터 출발하며 나에게로 귀결되어 생기는 마음의 일임을 알기 때문이다. 그 없는 나로부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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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문관, 혹은 너는 누구냐
한형조 지음 / 여시아문 / 199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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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부모가 태어나기 전의 나의 '본래면목'이 무엇인가? 하는 물음을 붙잡고 잠을 이루지 못한 적이 있었다. 우둔하게도 나는 말이 의미하는 바에 휘둘리고 있었다. 자정을 넘겨 아득해진 어느 시간인가? 내 마음을 섬광처럼 지나가는 것이 있었다. 생김과 사멸함이 없는 곳, 시작과 끝이 없는 곳, 시간의 전후가 없는 곳, 절대적인 궁극의 세계는 내가 아무리 밖을 둘러봐도 찾을 수가 없었다. 마음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가? 그곳은 바로 나의 마음속에서만 찾을 수 있는 것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내 마음의 절대적 공간 속에서만 그것을 찾을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이 책은 언어를 통해 그 마음 속의 절대적 공간을 찾아보려 하는 책이다. 그 절대적 공간이 언어로 과연 표현될 수 있는 것인가? 그럴 수가 없다. 하지만 이 책은 방편은 된다. 즉 언어를 통해 언어의 의미가 끝나는 그 지점까지 우리를 인도할 수는 있는 것이다. 선을 언어로서 풀어낸다는 것은 그런 의미를 가진다. 그러면 이 책을 통해 나는 '너머'의 소식을 접했는가? 그렇지 못하다. 다만, 이 책을 따라 물가에 나온 당나귀와 같을 따름이다. 물가에 왔으니 이젠 물을 먹어야 할 터인데... 그것이 백척의 장대끝에서 한 걸음 내딛는 것과 같은 것이다. 아~아~

하지만 낙담하기엔 이르다. 터무니없이 기뻐할 일도 아니지만 물가에 서 있지 않은가? 내가 물가에 서 있다는 것을 안다. 물을 향해 목을 길게 빼고 물맛을 보려고 한다. 버둥친다. 맛보면 그저 물맛은 물맛일 뿐이데......하지만 나는 또한 백척의 장대끝에 서있다. 앞도 보이지 않는 깜깜한 절벽에서 한 걸음 내 디딜려고 한다. 알지 못하면 백길 천길 낭떠러지요, 알면 그저 풀밭일 것인데... 지금 알지 못하면 내 인생은 시위를 떠난 화살과도 같다.

너머의 소식은 '없다'이기도 하고 '뜰 앞의 잣나무'이기도 하다. '마른 똥막대기'이며 '마음'이며 '오직 모를 뿐'이며 '평상심'이기도 하다. 세상의 모든 것이기도 하며, 또 그것이 아니기도 하다. 그것은 무엇인가? 8만 4천의 무명이 한 점으로 모이는 경험들이 나에게서 천천히 일어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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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고통 이후 오퍼스 10
수잔 손택 지음, 이재원 옮김 / 이후 / 200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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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과 뉴스를 비롯한 대중매체에서는 날마다 팔레스타인의 폭격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었다는 사실과 이라크의 폭탄테러에 의해 얼마만큼의 사람이 죽었다는 이야기가 끊이지를 않는다. 그리고 국내에서도 아이들과 여자들의 납치 살인 사건이 미디어를 타고 우리들에게 전해진다. 하지만 우리는 이러한 미디어를 접하며 한 손에는 커피 혹은 담배 한 가치를 집어들고 늘상 되풀이되는 일상의 한 부분으로서만 받아들이고 만다. 리모콘을 쥐고 있던 손을 놓아버리는 순간 우리는 그 참혹하고 연민어린 장면들을 잊어버리고 어느덧 무의식의 일상속으로, 메트릭스 속으로 빨려 들어가며 살고 있다.

수잔 손택은 사진을 비롯한 미디어가 가진 양면성에 대해 이야기한다. 한 면은 그것이 가진 긍정성으로 이를 통해 한정되고 왜곡된 상태에서나마 미디어 수용자들이 전쟁의 참상에 대해서 보게 되고 반전을 위해 자신이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의무감을 가지게 된다는 것이다. 다른 한 면은 미디어가 전쟁의 참혹함과 비극에 대해 미디어 수용자로 하여금 수동적이고 무능력한 적응력을 키워서 무의식에 사로잡히게 만든다는 것이다. 바로 우리들의 모습처럼....

하지만 무엇보다도 전쟁자료에 대한 미디어화는 그것이 국가에 의해 정책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으며 때로는 특정한 정치적 목적에서 제작되고 방영된다는 사실이다. 이라크전에서 보았듯이 전쟁사진을 포함한 자료들이 대부분 미국에서 제작되고 그 자체가 방송사와 군산복합체의 이익을 가지게 되지만 그것은 미국의 제도적이고 합법화된 폭력을 전세계적으로 용인하게 만드는 목적이 있다는 것이다. 더구나 차마 눈뜨고 볼 수조차 없이 비참하고 참혹한 장면들을 미디어를 통해 보면서 그것이 나와는 상관없이 먼 곳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타인의 고통'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가 간과해서는 안되는 것이 있다. 바로 그 '타인의 고통'이 우리가 누리고 있는 자유와 어떤 방식으로든 연결되고 있다는 점이다. 그것은 우리의 국가와 산업이 무기와 인력을 제공하고 있을 수도 있으며, 그 행위에 대한 암묵적 동조와 인정에 의한 내면적 굴복에 의해서도 제공될 수 있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우리가 용인했던 그 폭력과 살인이 어떤 연기의 네트워크를 통해 우리들에게 돌아올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이 책을 읽으며 나는 또 한 가지의 교훈을 배울 수 있었다. 그것은 피해자들 역시 자신들만의 경험을 극대화하며 자신과는 원인과 지역을 달리하는 피해자들에 대한 배타적인 태도를 갖게 된다는 것이다. 자신들의 희생만을 부각시키려고 하는 이기심은 우리 세계가 가진 폭력과 희생의 정도를 더욱 심화시키게 될 뿐인데도 말이다.

우리가 미디어를 통해 폭력을 대하는 것이나 직접 그 폭력이 이루어지는 현장에 있으나 우리가 내면적으로 깨어있기를 요구한다. 그것은 어떤 폭력과 탄압에서도 마음만큼은 고통을 통해 성장하려는 의지를 가져야 하며 그 마음 속에서 어떤 '타인'도 만들지 않아야 하는 이유인 것이다. 그것은 바로 '우리'의 고통인 것임을 깨달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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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포토저널리즘에 대한 날카로운 지적 시선 <타인의 고통>
    from 風林火山 : 승부사의 이야기 2007-08-07 03:58 
    타인의 고통수잔 손택 지음, 이재원 옮김/이후(시울)전반적인 리뷰2007년 8월 5일 읽은 책이다. 이 책의 리뷰를 적으면서 처음 안 사실이 지금 현재 내가 갖고 있는 책의 표지와 지금의 표지가 다르다는 것이다. 뭐 이 책의 발간일이 2004년 1월이긴 하지만 개인적인 생각에는 이 책이 다루고 있는 것을 보면 기존의 책 표지 자체도 타인의 고통을 드러내는 그림이었기에 이 책에서 얘기하고 있는 바와 약간은 상충되는 부분도 없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