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로 갈 것인가 되돌아갈 것인가
스코트 니어링 지음, 이수영 옮김 / 보리 / 200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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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코트 니어링은 산업문명이 급속도로 자연과 인간적인 삶을 파괴하던 20세기의 미국 사회에서 그 문명이라는 삶의 방식에 온몸으로 맞서 싸운 지식인이었다. 조화로운 삶은 이러한 서구적 산업문명이 낳은 자본의 이윤추구논리와 물질만능주의, 인간의 이기심과 탐욕, 차별과 착취, 빈부격차와 권력주의, 전쟁과 식민주의를 개인적인 신념으로 극복하여 나와 타인, 인간과 자연의 균형있고 조화로운 공존을 영위하기 위한 영성적 삶이어야 한다고 말한다.

전쟁에 반대하는 선언으로 대학에서 쫓겨나고, 이혼당하고 가족과 헤어지고 자신의 생각과 글을 대중들에게 알릴 통로와 수단마저 빼앗긴 채 그는 갈림길 앞에 서게 된다. 과연 내가 생각하는 올바른 정치적, 경제적, 사회윤리적 원칙들을 그대로 고수하며 힘든 삶을 개척할 것인가? 아니면 내 생각을 버리고 사회와 타협하여 안정되고 편안한, 보장받은 삶으로 되돌아갈 것인가?

이 책의 원제는 "Man's search for good life"이다. 인간은 좋은 삶을 찾는다 라는 말이다. 과연 좋은 삶이란 무엇일까? 그것은 스코트 자신이 사회로부터 버림받고 버몬트와 메인에서 자급자족적이고 환경적인 삶을 영위하기 시작하면서 깨우치게 된 인간 존재와 자연과 생명에 대한 깊은 인식이 자신의 삶을 보다 넓고 깊게 만들었으며, 영적 성장을 이루게 되면서 스스로의 내면에서 발견하게 되는 좋은 삶이었을 것이다. 자신의 본성을 잃지 않고 그 본성대로 사는 것이 가져다 주는 삶의 성숙과 행복함이 사회적 광기의 소용돌이 속에서 비판자가 감수해야만 하는 온갖 고통과 좌절을 넘어서는 그 무엇이 있었기 때문은 아닐까?

그 좋은 삶에 대한 물음은 내 앞에도 놓여져 있다.  나의 본래 본성을 찾아 그 본성대로의 삶을 살아갈 것인가? 본래면목을 잃고 인생의 희노애락의 미궁속을 헤매일 것인가? 내 삶의 원칙들은 어디에서 찾을 수가 있는가?  그 원칙에 의한 삶들이 과연 나에게 좋은 삶이 될 수 있는 원칙인가?

좋은 삶을 만들기 위한 마음의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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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콧 니어링 자서전 역사 인물 찾기 11
스콧 니어링 지음, 김라합 옮김 / 실천문학사 / 200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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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더 완전한 삶을 살기 위해서 인간은 자신을 넘어서 다른 사람 또는 하나의 이념과 목표를 향해 부단히 나아가지 않으면 안된다. 자신을 다른 사람, 집단 또는 특정한 목적, 주의, 이념과 일치시킴으로써 한 개인의 삶은 폭넓어지고 심화될 수 있다. 그렇다고 이것 아니면 저것 식으로 양자택일을 할 필요는 없다. 인간은 이 모든 것들을 동시에 선택하고 진행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자기 너머에 있는 그 무엇과 일치시키는 것이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각자는 전체의 일부분이다. 이러한 보편적 진리를 먼저 파악하는 것이 급선무이고, 그것에 따라 행동하는 게 그 다음으로 중요한 일이다." 스콧 니어링의 철저한 삶은 바로 이와 같은 그의 마음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한 생각에 따라서는 상류층 사회의 일원으로서 개인적으로 풍족한 생활을 누리며 살 수 있었던 사람, 하지만 자신의 가족과 성장배경과 인간관계를 모두 내던지고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삶을 위해 철저하고도 확고한 삶을 살았던 스콧 니어링의 삶은 두 부분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하나는 늘 진리와 진실을 향한 끊임없는 열정과 정직성을 통해 사회와 국가의 지배이데올로기에 반대하며 전쟁에 반대하고 자신의 이러한 사상을 세상에 알리는데 필요한 노력을 아끼지 않은 실천적인 삶이다. 또 하나는 문명사회와 기득층으로부터 세상에 자신의 사상을 알리는 수단과 통로, 자신의 삶의 기반을 모두 빼앗겨버리고 난 후의 반문명적 삶을 스스로 살아가는 것이었다.

한 사회에서 진실의 추구를 위해 타협하지 않는 삶을 살면서 가족도 잃고 대학교수직도 잃고 세상을 향해 진실을 말하는 입마저 빼앗겨버린 니어링은 인류를 파괴하고 대량학살하는 문명사회에 온몸으로 반대하며 자신의 내면의 흔들리지 않는 진실의 믿음으로 사회적 억압구조에 맞서 싸웠다.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빼앗기고 자신의 삶의 기반마저 송두리채 빼앗기는 상황에서도 자신의 믿음을 버리지 않고 그 믿음에 의한 삶을 계획하고 실천해내는 의지는 그의 말대로 인간존재는 자신의 운명을 성취하기 위해 애쓰는 존재로 보기때문에 가능한 일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다. 문명적 삶을 거부하고 메인과 버몬트에서 자급자족적 삶을 영위하는 한 가운데서도 세상에 대해 진실을 말하며 그 세상에 정면으로 맞서 싸우는 모습은 그가 진실을 위해 살아가는 모범적이고 철저한 교사였음을 말해준다.

문명의 필연적 결과인 전쟁의 인간파괴와 그 추악한 가면(야만민족의 문명화와 국가이익이라는 허울) 속에 자리잡은 인간의 잔인하고도 이기적인 본성에 맞서 싸우고 진실을 대중들에게 알리기 위해 끊임없는 노력을 쏟아붓던 그의 삶은 물질문명이 극도록 발전한 사회, 그리고 최강의 군사력으로 자신의 지배욕구를 충족시키는 제국으로서의 미국 사회에서 정직하고도 양심적 지식인이 존재하였음을 보여 준다. 더불어 이런 삶의 전형들이 바로 미국사회를 극복하는 내부적인 힘이자 문명사회를 넘어설 수 있는 대안적인 삶의 전형이 되고 있음을 또한 보여준다. 산업사회의 발달과 더불어 형성된 문명사회의 모순에 대해 이렇게도 철저하게 사회적 삶을 살았던 인물을 또 찾아볼 수 있을까?

이런 삶을 살 수 있었던 그의 모습이 단순히 사회적 부조리와 문명사회의 비인간성에 대한 지식때문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것은 자신의 삶과 그 의미에 대한 깊은 이해와 자신을 넘어서는 존재에로의 연결을 통해서만이 가능했을 것이다. 사회의 부조리에 대한 이해를 갖고서도 천차만별의 삶을 사는 사람들의 차이는 바로 이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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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연 2004-08-09 14: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을 처음 읽었을 때...일종의 충격을 느꼈었죠.
이렇게 자기가 생각하는 것을 그대로 실행하며, 제대로 사는 삶이 있었구나.
이것저것 핑계대며 모든 걸 미루어대던 제 모습이 부끄럽기도 했구요...
철저한 삶. 한 마디로 스콧 니어링의 삶은 이 두 마디로 압축될 수 있겠네요..

달팽이 2004-08-10 15: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니어링 부부의 삶을 우리가 그대로 따라가기는 힘들겠지요...하지만 세상이 모두 자신에게 등을 돌리더라도 자신의 믿음과 신념을 위해 돌아가는 삶을 포기하고 그대로 갈 수 있는 마음은 오늘을 사는 우리들에게 많은 교훈을 준다고 생각합니다.
 

당신의 자녀들은 당신의 소유물이 아닙니다

그들은 생명의 아들이고 딸입니다

그들은 당신을 통하여 왔지만

당신에게서 온 것이 아닙니다

또한 당신과 함께 있으나 당신의 것은 아닙니다

그들에게 사랑을 줄 수는 있으나 생각을 줄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자기의 생각이 있으니까요

당신은 그들의 몸을 가둘 수는 있어도 마음을 가둘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마음은 미래의 집에 거하기 때문입니다

당신으로서는 꿈속에서조차도 방문할 수 없는 그런 곳에 말입니다

당신은 그들처럼 되고자 할 수는 있겠지만 그들을 당신처럼 만들려고는 마십시오

왜냐하면 인생은 과거로 가는 것이 아니며 어제에 머무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 칼릴지브란의 '예언자'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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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 김용옥의 금강경 강해
김용옥 지음 / 통나무 / 199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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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일이다. 내가 가진 몸의 능력은 나하나 건사하기도 힘든데, 마음내는 것은 우주까지도 포용할 수있으니 말이다. 나를 살아있게 하는 진리에 대한 물음은 내 마음 속에서 무수한 천지개벽을 만들어내고 있다. 몸이 살아가면서 겪는 경험 하나 하나 사이로 난 보이지 않는 문을 통해 미지로 향하는 길은 놓여져 있다. 마음의 비밀을 풀어내야만 그 모습을 드러내는 문을 통해 우리는 또 다른 세상으로 나아간다.

진리의 땅에 도달하기 위해 우리는 현실의 한계인 강을 건너야 한다. 그 강을 건너기 위해서는 방편과 도구가 있어야 한다. '뗏목'을 그 방편으로 삼았다면 이제 깃을 올리고 힘차게 노를 저어야 한다. 한데 물살은 급하고 뗏목은 늘 그 물살에 휩쓸린다. 뗏목은 언어이다. 언어화할 수 없는 진리의 체험을 언어화시키는 것은 하나의 방편이다. 그 방편은 파격이어야 한다. 아니 파격일 수 밖에 없다. 그렇지 아니하고 어찌 언어가 가지는 의미의 한계를 넘어 저 곳으로 다다를 수 있겠는가?

금강경의 말씀은 그래서 파격이다. 그 파격적인 말 중 가장 검증되고 교과서적인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왜냐하면 부처님께서 직접 설하신 바이기 때문이다. 그 설하신 말씀에는 부처님의 마음의 가장 깊은 정수가 담겨져 있다. 이해하려고 하면 즉시 물살에 휩쓸리고 만다. 부처님의 그 마음으로 들어가지 않는 한 폭풍과도 같은 물살을 피해갈 곳은 없다. 천지를 뒤흔드는 폭풍의 한가운데.... 그 부처님의 마음 한가운데로 들어가지 않는 이상.....길은 없다.

금강경이 사족을 달았다. 부처님의 마음, 진리의 그 곳에 도달하기 위한 방편으로 이 경이 나왔다면 이 경을 이해하기 위한 방편으로 또 주석서가 나왔으니 말이다. 이렇게 꼬리에 꼬리를 무는 언어적 기교에 빠져버린다면 헤어날 곳이 없다. 그럼에도 장님인 우리는 방편을 찾을 수 밖에 없다. 장님인데다가 신랄한 입을 가진 도올 선생의 손을 잡았으니...이젠 정신을 바짝 차릴지어다...잘못하다간 맞아죽을 지도 모르니까...ㅎㅎㅎ

금강경 앞에서도 당당하고 때에 따라서는 오만하기까지 한 도올 선생이 때로는 존경스럽다가도 마음한구석이 편치않은 것은 응무소주 이생기심(應無所住  生其心)하는 마음 앞에서 부끄러운 마음 금할 길 없음인데, 이것은 도올선생의 마음인가 내 마음인가? 아무래도 경을 해설함은 시원한 마음보다 경건한 마음이 더 낫다는 생각이다.

금강경을 읽는 데 가장 바른 자세는 2500여년 전 부처님이 설법을 하시는 그 자리로 돌아가 부처님을 앞에 두고 부처님법을 듣는 마음으로 읽는 것일 것이다. 따라서 금강경을 해설하는 것도 바로 부처님이 계신 그 자리의 마음자리를 될 수 있는 한 그대로 살려내는 것이라는 생각이다. 그 부처님의 마음과 공명할 준비가 되었는가? 그렇다면 책을 펼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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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팀전 2004-08-03 15: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불교 신자는 아니지만...일상의 분노가 쌓이거나 욕심으로 머리가 산만해질 때는 불경을 꺼내 봅니다.그저 아무데나 펼쳐서 몇 구절 씩 천천히 읽다보면 마음이 조금 가라앉고 문제를 다시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힘이 생깁니다.김용옥의 금강경은 아직 보지 못했는데 조만간 읽어야겠네요.

달팽이 2004-08-03 22: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군요, 사실 저도 금강경을 읽는 마음의 눈을 아직 갖추지 못했습니다. 다만 이를 방향삼아 맞추다보면 삶에 대한 또 다른 눈이 생기고 그 눈으로 인하여 세상을 받아들이는 마음의 여유와 지혜가 생기는 것 같아서 편안해집니다...
 

통발은 물고기를 잡기 위한 것이다

물고기를 잡으면 통발은 버려야 한다

올가미는 토끼를 잡기 위한 것이다

토끼를 잡으면 올가미를 버려야 한다

우리 인간의 말이라는 것은

뜻을 전달하기 위한 것이다

그 뜻을 잡으면 말은 버려야 한다

말을 버릴 줄 아는 사람

나는 언제 그런 사람과 더불어 말을 해볼 수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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