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선하는 이는 항상 이렇게 돌이켜 보아야 할 것이다.

네 가지 은혜가 깊고 높은 것을 알고 있는가?

네 요소로 구성된 더러운 이 육신이 순간순간 썩어 가는 것을 알고 있는가?

사람의 목숨이 숨 한 번에 달린 것을 알고 있는가?

일찍이 부처님이나 조사 같은 이를 만나고도 그대로 지나쳐 버리지 않았는가?

높고 거룩한 법을 듣고도 기쁘고 다행한 생각을 잠시라도 잊어버리지 않았는가?

공부하는 곳을 떠나지 않고 수도인다운 절개를 지키고 있는가?

곁에 있는 사람들과 쓸데없는 잡담이나 하며 지내지는 않는가?

분주히 시비를 일삼고 있지나 않은가?

화두가 어느 때나 똑똑히 들리는가?

남고 이야기하고 있을 때도 화두가 끊임없이 이어지는가?

보고 듣고 알아차릴 때도 한결같은가?

제 공부를 돌아볼 때 부처와 조사를 붙잡을 만한가?

금생에 꼭 부처님의 지혜를 이을 수 있을까?

앉고 눕고 편할 때 지옥의 고통을 생각하는가?

이 육신으로 윤회를 벗어날 자신이 있는가?

여덟가지 바람이 불어 올 때도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가?

이것이 참선하는 이들의 일상생활 속에서 때때로 점검해야 할 도리이다.

옛 어른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 몸 이때 못 건지면 다시 어느 세상에서 건질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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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은 활등같이 말씀하시고 조사들은 활줄같이 말씀하셨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걸림없는 법이란 바로 한 맛에 돌아감이다.

이 한 맛의 자취마저 떨쳐 버려야 비로소 조사가 보인 한 마음을 드러낸다.

그러므로 "뜰 앞의 잣나무니라."라고 한 화두는 용궁의 장경에도 없다고 말한 것이다.

 

P.S : 활등같이 말했다는 것은 구부러졌다는 뜻이고, 활줄같이 말했다는 것은 곧다는 뜻이며, 용궁의 장경이란 용궁에 모셔 둔 대장경이다. 어떤 스님이 조주 스님에게 물었다. "조사가 서쪽에서 온 뜻이 무엇입니까?" 이에 조주 스님이 대답하기를, "뜰 앞의 잣나무니라." 했는데, 이것이 이른바 격 밖의 선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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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soyo12 > [퍼온글] 김창태 - 묵연(墨然)

보고 있으면 기분이 진정되는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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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한 물건이 있는데,

본래부터 한없이 밝고 신령스러워

일찍 나지도 않았고 죽지도 않았다.

이름 지을 길 없고, 모양 그릴 수도 없다.

 

P.S : 한 물건이란 무엇인가

        옛 어른은 이렇게 읊었다.

옛 부처님 나기 전에

의젓한 둥그러미

석가도 모른다 했거니

어찌 가섭이 전하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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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있되 거리를 두라.

그래서 하늘 바람이 그대들 사이에서 춤추게 하라.

서로 사랑하라. 그러나 사랑으로 구속하지는 말라.

서로의 잔을 채워 주되 한쪽의 잔만을 마시지 말라.

서로의 빵을 주되 한족의 빵만을 먹지 말라.

서로 가슴을 주라. 그러나 서로의 가슴속에 묶어 두지는 말라.

함께 서 있으라. 그러나 너무 가까이 서 있지는 말라.

사원의 기둥들도 서로 떨어져 있고

참나무와 삼나무도 서로의 그늘 속에선 자랄 수 없으니.

 

 

P.S : 사랑은 홀로 선 두 나무이되 떨리는 나무처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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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팽이 2004-09-16 22: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삼나무는 소나무과라서 그 아래 풀이 자랄 수 없어요....군락을 지어사는 소나무는 쭉쭉 자라야 하므로 특정한 물질을 분비하여 그 아래 식물이 자랄 수 없게 한대요...하지만 그 중 참나무 한 그루 자라올라 소나무위로 자라게 되면 그 잎을 펼쳐 햇볕을 막아 결국엔 소나무 군락을 멸종시킨대요...그리해서...숲의 천이과정이 침엽수림에서 활엽수림으로 바뀌게 되죠...그럴땐 서로 떨어져서 각자가 뻗은 가지가 어깨동무하면서 그 건 어깨위로 교감을 나눌 수 있는 관계가 좋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