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마에 난 흉터를 묻자 넌

지붕에 올라갔다가

별에 부딪힌 상처라고 했다

 

어떤 날은 내가 사다리를 타고

그 별로 올라가곤 했다

내가 시인의 사고방식으로 사랑을 한다고

넌 불평을 했다

희망없는 날을 견디기 위해서라고

난 다만 말하고 싶었다

 

어떤 날은 그리움이 너무 커서

신문처럼 접을 수도 없었다

 

누가 그걸 옛 수첩에다 적어 놓은 걸까

그 지붕 위의

별들처럼

어떤 것이 그리울수록 그리운 만큼

거리를 갖고 그냥 바라봐야 한다는 걸


댓글(1)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달팽이 2004-09-20 21: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아! 아직도 가슴아리군...ㅎㅎㅎ
 

날이 밝았으니 이제

여행을 떠나야 하리

시간은 과거의 상념 속으로 사라지고

영원의 틈새를 바라본 새처럼

그대 길 떠나야 하리

다시는 돌아오지 않으리라

그냥 저 세상 밖으로 걸어가리라

한때는 불꽃 같은 삶과 바람 같은 죽음을 원했으니

새벽의 문 열고

여행길 나서는 자는 행복하여라

아직 잠들지 않은 별 하나가

그대의 창백한 얼굴을 비추고

그대는 잠이 덜 깬 나무들 밑을 지나

지금 막 눈을 뜬 어린 뱀처럼

홀로 미명 속을 헤쳐가야 하리

이제 삶의 몽상을 끝낼 시간

순간 속에 자신을 유폐시키던 일도 이젠 그만

종이꽃처럼 부서지는 환영에

자신을 묶는 일도 이제는 그만

날이 밝았으니, 불면의 베개를

머리맡에서 빼내야 하리

오, 아침이여

거짓에 잠든 세상 등 뒤로 하고

깃발 펄럭이는 영원의 땅으로

홀로 길 떠나는 아침이여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는 자

혹은 충분히 사랑하기 위해 길 떠나는 자는 행복하여라

그대의 영혼은 아직 투명하고

사랑함으로써 그것 때문에 상처입기를 두려워하지 않으리

그대가 살아온 삶은

그대가 살지 않은 삶이니

이제 자기의 문에 이르기 위해 그대는

수많은 열리지 않는 문들을 두드려야 하리

자기 자신과 만나기 위해 모든 이정표에게

길을 물어야 하리

길은 또다른 길을 가리키고

세상의 나무 밑이 그대의 여인숙이 되리라

별들이 구멍 뚫린 담요 속으로 그대를 들여다보리라

그대는 잠들고 낯선 나라에서

모국어로 꿈을 꾸리라


댓글(3)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달팽이 2004-09-20 20: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멋진 시다. 영원의 틈새를 바라본 새처럼, 홀로 미명 속을 헤쳐가야 하리,이제 자기의 문에 이르기 위해 그대는, 수많은 열리지 않는 문들을 두드려야 하리, 그대는 잠들고 낯선 나라에서 모국어로 꿈을 꾸리라...얼마나 멋진가...

혜덕화 2004-09-20 21: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기의 문에 이르기 위해 수많은 열리지 않은 문들을 두드려야 하리."
그 방편이 저에겐 절인가 합니다. 아직 열리지 않은 문이 얼마나 많은지 알지 못하기에 해인사 백련암으로 가는 제 발걸음 하나 하나에 희망을 걸어봅니다.

달팽이 2004-09-20 21: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때론 현실적인 공간도 필요하겠지요...님의 말대로 방편이 하지만 혜덕화님이 절로 향할 때의 그 마음가짐이 정말로 열어야 하는 그 문이 아닐까 하고 생각해봅니다...물론 그렇게 생각하리라 봅니다...감사합니다...걸음해주셔서...
 

나무는

서로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지 않기 위해

얼마나 애를 쓰는 걸까

그러나 굳이 바람이 불지 않아도

그 가지와 뿌리는 은밀히 만나고

눈을 감지 않아도

그 머리는 서로의 어깨에 기대어 있다

 

나무는

서로의 앞에서 흔들리지 않기 위해

얼마나 애를 쓰는 걸까

그러나 굳이 누가 와서 흔들지 않아도

그 그리움은 저의 잎을 흔들고

몸이 아프지 않아도

그 생각은 서로에게 향해 있다

 

나무는

저 혼자 서 있기 위해

얼마나 애를 쓰는 걸까

세상의 모든 새들이 날아와 나무에 앉을 때

 

그 빛과

그 어둠으로

저 혼자 깊어지기 위해 나무는

얼마나 애를 쓰는 걸까


댓글(1)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달팽이 2004-09-20 20: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칼릴 지브란의 "결혼에 대하여"란 시와 더불어 읽으면 좋을 시라고 생각합니다...
 

하루가 시작되는 자리는 침대이다.

대체로 난 의식이 돌아옴과 동시에 눈을 뜨는 편이지만 때로는 의식이 오고 난 후에도 몸의 노곤함을 어쩌지 못해 침대에서 몸을 움직이지 않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깊은 잠을 개운하게 이룬 경우에는 바로 자리에 앉아 잠시라도 명상에 든다.

그러면 하루의 시작이 나의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출발된다.

그런 날엔 하루가 바쁘고 정신없이 보내는 날에도 약간의 마음의 여유가 생긴다.

그래서 아침에 눈뜨고 난 직후의 일은 나의 하루 일과에 있어 내 마음을 지탱시켜주는 기둥이다.

그런가하면 자기 전 마지막 명상은 나의 하루를 정리하고 명상의 마음이 다음 아침 내 의식이 돌아오기까지 지속시키는 의미를 가진다.

물론 나의 공부가 깊이를 더해가면 숙면의 상태에서도 그 마음이 이어지게 되길 바라지만....아직 무명의 바다를 방황하는 나에겐 이렇게 하루의 마지막을 명상으로 끝내는 것이 편안한 마음으로 하루를 정리하게 하기도 하지만 내 삶의 궁극적 의문이 하루의 시작과 끝을 기점으로 보다 자주 나의 일상으로 들어오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마음에서 시작되고 마음에서 끝을 맺는 하루 속에 나의 본래면목을 향한 여행이 보다 깊어지길 바란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물만두 2004-09-20 10: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지막 말씀 넘 멋있어요. 마음에서 시작되고 마음에서 끝을 맺는 하루...

달팽이 2004-09-20 12: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 마음을 주는 말씀, 감사해요..
 
예언자
칼릴 지브란 지음, 류시화 옮김 / 열림원 / 2002년 4월
평점 :
품절


시인은 시인으로 태어난다고 했던가? 칼릴 지브란의 이 시를 접하면서 나는 "배가 오다"라는 시부터 내 가슴의 떨림을 주체할 수 없었다. "나는 신의 손길이 연주하는 현악기,  또는 신의 숨결이 내 안을 스치고 지나가는 하나의 피리."라는 표현 앞에서 나의 숨결은 더욱 빨라지고 있었다. 그렇다. 이 시는 아주 특별한 시임에 틀림없다.

그의 유년기는 불행했다. 아버지는 자신의 자작시를 낭송하는 자리에서 "이런 정신나간 소리는 다시는 안들었으면 좋겠군!"이라고 말함으로써 어린 그의 영혼에 지울 수 없는 깊은 상처를 남겼다. 그런데다가 세금징수원이던 아버지는 늘 술을 취하도록 마셔댔기 때문에 집은 가난의 굴레를 벗어날 수 없었다. 그곳에서 그에게 위안이 되었던 것은 레바논 베차리지역의 대자연이었다. 혼자있길 좋아했던 그는 삼나무 숲의 향기를 가득 담은 골짜기를 거닐며 자신의 시 세계에 대한 원체험을 쌓아갔다.

그가 처음 재능을 보인 분야는 미술이었는데 그의 미술선생이었던 사진작가 홀랜드 데이는 그의 명상적이고 신비한 얼굴에 매료되어 자신의 사진모델로 쓰기 시작한다. 아직까지 남아 있는 그의 사진의 대부분은 그의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는 지브란을 키츠, 셀리, 블레이크, 에머슨, 휘트먼 등의 문학세계로 이끌었으며, 이는 지브란의 문학에 대한 열정과 사랑을 키워가는 데 큰 역할을 하였다.

그의 성공을 위해 자신들의 삶을 바쳤던 가족들의 잇따른 죽음과 세 번에 걸친 사랑했던 여인들과의 이별로 인해 그가 더욱 견디기 힘든 삶을 살아가야 했기 때문에 어쩌면 그는 더욱 종교적 명상에 빠져들었는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그는 40의 나이에 이 위대한 작품 '예언자'를 완성했다. 서양에서도 동양의 위대한 종교시를 들때면 타고르의 '기탄잘리'와 이것을 들곤 한다.

예언자의 알무스타파가 말한 것처럼 "말을 한 것이 나였던가. 나 또한 듣는 자가 아니었던가?"라고 한데서 이 시는 그가 지브란이라고 불리는 세속적 자아를 비워낸 상태에서 자신의 근원 깊은 곳에서 울려나온 소리에 이끌려 적어나갔음이 틀림없음을 알 수 있다. 그 깊고 깊은 근원적 울림이 바로 이 시를 읽어가면서 내가 떨렸던 이유였을 것이다.

이 시의 마지막 예언은 "잠시 후면, 바람 위에서 한 순간만 휴식하면, 그러면 또 다른 여인이 나를 낳으리라."이다. 그의 영혼이 아직 저 세상의 어디에서 바람을 맞으며 휴식하고 있는지 아니면 어느 여인의 아이로 다시 세상에 왔는지 모른다. 하지만 삶을 통해 성숙해야 할 영혼이 아직 이 지구라는 별에서 해결해야 할 숙제가 남아 있는 한 언제고 다시 세상에 나오지 않겠는가? 그러고 보면 그나 나나 같은 숙제를 가지고 세상에 나온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