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 갈대는 속으로

조용히 울고 있었다.

그런 어느 밤이었을 것이다. 갈대는

그의 온몸이 흔들리고 있는 것을 알았다.

 

바람도 달빛도 아닌 것.

갈대는 저를 흔드는 것이 제 조용한 울음인 것을

까맣게 몰랐다.

-- 산다는 것은 속으로 이렇게

조용히 울고 있는 것이란 것을

그는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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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오기로 한 그 자리에

내가 미리 가 너를 기다리는 동안

다가오는 모든 발자국은

내 가슴에 쿵쿵거린다

바스락거리는 나뭇잎 하나도 다 내게 온다

기다려본 적이 있는 사랑은 안다

세상에서 기다리는 일처럼 가슴 애리는 일 있을까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 내가 미리 와 있는 이곳에서

문을 열고 들어오는 모든 사람이

너였다가

너였다가, 너일 것이었다가

다시 문이 닫힌다

사랑하는 이여

오지 않는 너를 기다리며

마침내 나는 너에게 간다

아주 먼 데서 나는 너에게 가고

아주 오랜 세월을 다하여 너는 지금 오고 있다

아주 먼 데서 지금도 천천히 오고 있는 너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도 가고 있다

남들이 열고 들어오는 문을 통해

내 가슴에 쿵쿵거리는 모든 발자국 따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너에게 가고 있다


**가을인갑다.이 시가 자꾸만 입가에 맴도는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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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랑잎 한 잎 지는 데도 왼 우주가 필요하다

나는 다시 계속된다

먼 섬나라에 사는 사람의 죽음이 나의 일부를 죽인다

생맥주집 머그잔의 싱싱한 부딪침에서 되살아나는 존 던의 영혼.

무섭고도 아름다운 물빛.

시의 등어리를 본다.

태양에 비친 지구의 그림자가 끝간데를 보는 눈.

말이 거느리는 캄캄한 배후.

눈부시다.

별의 해안선을 씻는 푸른 물이랑이 사라진 뒤 눈은 다시 초여름 숲처럼 타오르는 연둣빛 불꽃이 된다.

돌이 된 달의 분화구에 꿈의 검은 물을 붓고 숲속의 새처럼 들뜨고.

말은 다시 눈먼 어둠으로 되살아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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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눈박이 물고기의 사랑
류시화 지음 / 열림원 / 1996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류시화 시인의 삶에 대한 동경에 공감한다. 그가 삶의 의미를 찾아 떠나는 여행에서 결국 찾아낸 것은 그가 가진 내면 속의 또 다른 "나"였다. 우리는 세상을 보기 위해 그리고 세상을 알기 위해 많은 곳을 찾아다니지만 결국 우리가 찾고 있던 것은 다름아닌 "나"라는 사실을 그는 말해준다. 

빗줄기가 자꾸만 굵어져가는 어느 오후였다. 낙동강 하구변에 자리잡은 음식점에서 식사를 하며 내다보이는 강의 풍경은 하늘색과 물색이 어우러져 은은한 색조를 이루어내고 있었다. 하늘에서 내리는 빗방울이 강의 표면에 닿는 순간 그것은 강물이 되어버리고 있었다. 자신을 버리고서 강물과 하나가 되는 그 변화의 순간 내 마음 속에서도 그 풍경과 하나가 되는 경험이 일어나고 있었다.

여행자의 서시에 보면 "이제 자기의 문에 이르기 위해 그대는 수많은 열리지 않는 문들을 두드려야 하리."하는 표현에서 그는 시라는 여행을 통해 그가 다다라야 하는 곳에 대한 갈망을 드러낸다. 자기의 문을 통해 나가면 세상과 나는 하나가 되고 나는 그 영원의 나라에서 나와 너가 없는 경계에 다가서게 된다. 그 세계란 바로 빗방울이 떨어지는 순간 개울물로 강물로 바다물로 동화되는 나와 너의 경계가 없는 한 마음이 되는 세계가 아닐까?

;때로는 사랑이 그 하나되는 세계로 가기 위한 문이 되기도 한다. 외눈박이 물고기 '비목'의 사랑처럼 두 마리의 물고기를 하나로 만들어주는 그런 사랑을 그는 하고 싶다고 했다. 그런 사랑, 그런 만남은 자신의 온 존재를 바치는 사랑으로 역시 떨어지는 빗방울의 사랑과 같지 않은가?

하나된 그 세상에서도 빗방울 하나의 흔적은 남아 과거의 아픔과 눈물과 기쁨과 희망까지도 기억하고 있을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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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나에게

옷 한 벌을 빌려 주었는데

나는 그 옷을

평생동안 잘 입었다

때로는 비를 맞고

햇빛에 색이 바래고

바람에 어깨가 남루해졌다

때로는 눈물에 소매가 얼룩지고

웃음에 흰 옷깃이 나부끼고

즐거운 놀이를 하느라

단추가 떨어지기도 했다

나는 그 옷을 잘 입고

이제 주인에게 돌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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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팽이 2004-09-20 22: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남은 나의 몸은, 아니 본성은 어디로 가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