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먼저 지는 몇 개의 꽃들이 있습니다.

아주 작은 이슬과 바람에도 서슴없이 잎을 던지는 뒤를 따라 지는 꽃들은

그들은 알고 있습니다

아이들과 함께 꽃씨를 거두며

사랑한다는 일은 책임지는 일임을 생각합니다

사랑한다는 일은

기쁨과 고통, 아름다움과 시듦, 화해로움과 쓸쓸함

그리고 삶과 죽음까지를 책임지는 일이어야 함을 압니다

시드는 꽃밭 그늘에서

아이들과 함께 꽃씨를 거두어 주먹에 쥐며

이제 기나긴 싸움은 다시 시작되었다고 나는 믿고 있습니다

아무것도 끝나지 않았고

삶에서 죽음까지를 책임지는 것이

남아 있는 우리들의 사랑임을 압니다

꽃에 대한 씨앗의 사랑임을 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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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팽이 2004-09-30 17: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음의 느낌을 따라 도종환 시인의 시를 다시 한번 끊어 읽어봅니다. 지금은 재혼도 하였고, 교단도 떠나 시인의 마을을 가꾸고 있는 그의 오래된 시에서 나는 "사랑은 삶에서 죽음까지를 책임지는 것"이라는 말에 주목합니다..그가 과연 죽음의 의미를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하고 말입니다. 삶을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하고 말입니다. 나는 나의 삶과 죽음을 사랑으로 책임질 수 있는가 생각해봅니다. 내가 그 누구의 삶과 죽음을 과연 사랑으로 책임질 수 있는 것인가 생각해봅니다. 풍경과 자연이 명료해지는 가을, 나의 마음도 따라 명료해지고 있나 봅니다...
 

  편지 한 통을 부치기 위해서 먼길을 가야 하고, 회답 편지도 때가 지나서 먼길 내려가 찾아와야 하지만, 이는 결코 느린 속도가 아니리라. 어쩌면 관계의 깊이가 자라남에 있어 당연히 요구되는 시간일 것이다. 밭을 일구고 씨앗을 뿌리고 싹이 터서 자라길 기다리듯이, 씨앗이 잘 자라나게 햇빛과 바람과 비를 하늘에 기원하듯이, 그렇게 우리도 편지로 사랑의 씨앗을 뿌리고 기다리고 기도하며 관계를 키워가는 것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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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연 2004-09-30 09: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누군가에게 편지를 손으로 써서 부친 게 꽤 오래된 것 같네요...좋은 글귀입니다...

달팽이 2004-09-30 09: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그렇습니다...간간히 하고는 있지만, 마음 속에 전하고 싶은 마음이 영글어 쓰기보다는 어쩔 수 없는 상황이 그렇게 만들어서 편지를 씁니다...앞으로는 마음이 영그는 편지도 써야 할 것 같습니다..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정약용 지음, 박석무 엮음 / 창비 / 2001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언젠가 추사의 '세한도'를 한참 쳐다보면서 "우리 나라 선비정신이라고 하는 것이 저런 것이구나"하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추운 겨울날 산속 깊은 곳에 눈은 내려 가지위에 가득히 쌓이고 쌓이는 데 그 곳에 세상의 추위를 견뎌내며 꼿꼿하게 서서 자신의 자리를 지키는 소나무, 그 속에 세상의 험난한 현실을 견디어내며 자신의 정신을 잃지 않았던 우리의 선비정신이 있었으리라 생각하였다.

다산 정약용도 어쩔 수 없는 선비였다. 이 편지글을 통해서 본 그는 나이 마흔이 된 그제야 비로소 유배를 통해 자신이 정말 걸어가야 할 인생의 오솔길을 찾았고, 그것은 학문의 길이었다. 두 아들에게 보내는 편지와 두아들에게 보내는 교훈, 흑산도로 귀양살이갔던 형님 정약전에게 보내는 글 그리고 자신의 제자들에게 보내는 글은 비록 대상을 달리하고는 있지만 글공부를 인생의 목표로 삼아 매진하고자 하는 자기 스스로의 당부의 말이 고스란히 들어 있다.

하지만 그 글공부라고 하는 것이 단순히 과거를 위한 글공부만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둘러보고 참된 진리의 자리에 자신의 마음과 정신을 세우고, 그 세운 마음과 정신에 의해 마음가짐과 행동을 하면서, 현묘한 지혜의 삶을 살아가야 한다고 말한다. "학문은 우리들이 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옛사람은 말하기를 학문이 제일등의 의리라고 하였으나 나는 이 말에 병통이 있다고 생각한다. 마땅이 유일무이한 것이 의리라고 바로잡아야 한다. 대개 사물마다 법칙이 있는 것인데, 사람들이 배움에 뜻을 두지 않는다면 이것은 그 법칙을 따르지 않는 것이다. 그러므로 금수에 가깝다고 하는 것이다."

신유사옥이라고 하는 사건이 그에게 준 18년간의 유배생활이 자신의 실학과 관련한 저서 500여권을 저술하게끔 하였고, 자신의 학문하는 삶을 살게 해주었고, 또한 그의 시대를 앞서가는 진보적인 사고가 글을 통해 세상에 드러나게 하였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진보적인 사상가였던 그의 글이 가진 유교적이고 성리학적인 한계 또한 곳곳에서 엿볼 수 있음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다만 유배지에서부터 시작된 그의 깊은 글공부가 좀 더 젊어서부터 시대가 필요로 하는 학문에 대한 눈을 키웠더라면 하는 아쉬움은 남는다. 그의 많은 저서나 뛰어난 능력이 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민중은 아니더라도 선비들의 삶에 있어서라도.....)하나의 대안을 보여주는 비전으로서의 모습을 갖추었더라면 말이다.  이것은 그가 아무리 글공부를 하여도 자신의 정신에서 떨쳐버리지 못한 유교와 성리학의 구습과 찌꺼기인지, 아니면 너무나 실사구시적인 학문으로 선회하여 보다 큰 방향을 잡지 못한 것인지 나는 알지 못한다.

하지만 우리의 옛 선비들은 학문의 깊음과 진정함이 한갓 사물을 대함에 있어서도 그 사물의 이치를 끝까지 궁구하여 진리의 길에 이르기 위한 격물의 방법에서 잘 드러났음을 알 수 있었다. 농사를 짓는 마음가짐도, 장사를 하는 마음가짐도, 그리고 세상 무슨 일을 하더라도 그 마음가짐에 깊은 진리를 실현하기 위한 경건함과 절제를 우리는 진실하게 배우는 자세를 가져야 할 것이다.

비록 이르지 않은 나이에 배움과 지혜를 위한 책을 들고는 있지만 나 역시 책읽기가 단순한 즐거움을 넘어 삶의 깊은 곳을 응시하도록 하는 그 '무엇'이 없다면 아무런 소용도 없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지식만 쌓아서 도대체 무엇이 남아 있을까? 하는 생각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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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이 알지 못하게 하려거든 그 일을 하지 말 것이고 남이 듣지 못하게 하려면 그 말을 하지 않는 것이 제일이다. 이 두 마디 말을 늘 외우고서 실천한다면 크게는 하늘을 섬길 수 있고 작게는 한 가정을 보전할 수 있을 거다.

온 세상의 재화, 우환, 하늘을 흔들고 땅을 움직이는 일이나 한 집안을 뒤엎는 죄악은 모두가 비밀로 하는 일에서 생겨나게 마련이다. 사물을 대하고 말을 함에 있어서 그 결과를 깊이 살피도록 하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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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연 2004-09-28 17: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말이군요..퍼감다^^

달팽이 2004-09-28 18: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늘 우러러 한 점 부끄럼없이 살기를.....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글샘 2004-09-29 13: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추석 잘 보내셨나요? 그렇군요. 세상에 비밀로 해야할 일은 사실 별로 없지요. 잘 읽고 갑니다.

달팽이 2004-09-29 18: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선배께서 먼저 걸음하시어 말씀 남겨주시니...감사합니다...
 

유향은 그 아들 흠이 있었고, 두업도 임이라는 아들이 있었고, 양보도 진이라는 아들이 있었으며, 환영도 전이라는 아들이 있었는데, 훌륭한 아들이 아버지의 책을 읽을 수 있었던 경우는 많았었다. 내가 너희들에게 바라노니, 다행이 나의 저서에 대하여 깊이 연구한 후 심오한 뜻을 알아주기만 하며 내가 아무리 궁색하게 지내더라도 걱정이 없겠다.

지식인이 책을 펴내 세상에 전하려고 하는 것은 단 한 사람만이랃 그 책의 진가를 알아주는 사람이 있기를 바라서이다. 나머지 욕하는 사람들이야 관계할 바 없다. 만약 내 책을 정말 알아주는 사람이 있어 그 사람이 나이 많은 사람이면 너희들은 아버지처럼 섬기고, 적대시하던 사람이라도 너희는 그와 결의형제라도 맺도록 하는 것이 좋으리라.

일찍이 선배들의 저술을 보았더니 거칠고 빠진 게 많아 볼품없는 책들도 세상의 추앙을 받는 게 많고, 자세하고 요령있으며 광범위한 내용을 담은 책들이 오히려 배척을 받아 끝내는 사라져버리고 전해지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거듭거듭 생각을 해보아도 그 까닭을 알 수 없다가 요즈음에야 비로소 깨달았다. 군자는 의관을 바르게 하고 똑바로 바라보며 입을 다물고 단정히 앉아 진흙으로 만들어낸 사람처럼 엄숙하게 지내는 생활습관을 지녀야 그가 저술하는 글이나 이론이 독후하고 엄정하게 되며, 그러한 뒤에야 위엄으로 뭇사람을 승복시킬 수 있고 명성의 퍼져나감이 구원하게 된다.

만약 나태하고 경박하며 약삭빠르고 시시껄렁한 농담까지 곁들인다면 비록 그가 말한 내용이 이치에 깊이 들어맞는다 해도 일반인들은 믿으려 하지 않는다. 살아 있는 동안에 뿌리를 박지 못한 책이라면 자기가 죽어버린 후에는 저절로 사라지게 되는 것쯤은 당연한 이치일 따름이다. 세상에는 엉성한 사람은 많아도 정통한 사람은 적기 때문에, 누가 쉽게 알아볼 수 있는 위엄이나 행동을 버려두고 특별히 알아내기 힘든 의리를 알아보려고 하겠느냐?

높고 오묘한 학문의 참뜻을 알 수 있는 사람은 날로 수가 적어져서, 비록 주공이나 공자의 도를 다시 잇고 문장이 양응이나 유향을 뛰어넘고 학술이 있다 해도 알아볼 사람은 없어져간다. 너희들은 이 점을 알아차리고 우선 천천히 연구하며 먼저 긍지를 지니는 마음가짐에 힘써, 큰 산이 우뚝 솟은 듯 고요히 앉는 법을 습관들이고 남과 사귀고 일을 처리함에 있어 먼저 기상을 점검하여 자기가 해야 할 본령이 확고하게 섰다는 것을 안 뒤에야 점차로 저술에 임하는 마음을 먹도록 하라. 그렇게 하면 한 마디의 말과 단 한 자의 글자라도 모든 사람들이 진귀하게 여겨 아끼게 될 거다. 만약 자기 스스로를 지나치게 겨시하여 땅에 버려진 흙처럼 한다면 이는 정말로 영영 끝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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