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은 수행이 어떠한 생각을 떠올리거나, 어떤 바램, 심지어는 깨달음에 대한 기대도 없어야만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것은 아무런 목적없이 그저  앉아 있기만 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떠오르는 생각으로부터 자유로운 이러한 수행은 <반야심경>에 근거한다. 그러나 경 그 자체에 대해서 주의하지 않는다면, 자신에게 하나의 확립된 상을 가져다 줄것이다. 경에 이르기를 "형상있는 것(色)은 텅 비어 있는 것이며(空), 텅 비어 있는 것은 형상을 가지고 있다(色卽是空, 空卽是色)“고 한다. 그러나, 그러한 이야기에 얽매이게 된다면 여러분들은 쉽사리 이원론적 사고에 떨어지게 될 것이다. 그래서 [형상있는 것이 형상있는 것이며, 텅 빈 것은 텅 비어 있는 것이다](色卽是色, 空卽是空)라고 계속 가르치고 있다. 여기에서는 이원론이 아니다.


여러분이 앉아서 좌선하는 동안에 자신의 마음을 쉬기가 어렵다는 것을 발견하거나 항상 마음을 쉬게 하고자 노력할 때, 이것은 ‘형상있는 것은 텅 빈 것이고, 텅 빈 것은 형상을 가지고 있다’라고 하는 경지이다. 그러나 이러한 이원론적인 길에서 수행을 하고 있는 동안 여러분은 점점 더 자신의 목적과 하나가 될 것이다. 그리고 여러분의 수행에 노력이 필요없게 될 때는 자신의 마음을 쉴 수가 있다. 이것이 ‘형상 있는 것은 형상 있는 것이며, 텅 비어 있는 것은 텅 비어 있는 것이다’라고 하는 경지이다.


마음이 쉰다는 것은 마음의 활동이 멈춘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것은 자신의 마음이 온몸에 스며든다는 것을 뜻한다. 마음은 호흡을 좇는다. 오롯한 마음으로 여러분은 손의 인을 맺는다. 오롯한 마음으로 앉는데 고통스럽지만, 그것에 의해서 방해됨이 없이 앉을 수 있다. 이것이 어떤 상을 갖지 않은 채로 앉는 것이다. 처음에는 자신의 자세에서 어떤 제한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제한에 의해서 방해받지 아니했을 때, [텅 비어 있는 것은 텅 비어 있는 것이며, 형상 있는 것은 형상 있는 것이다]라는 구절의 의미를 파악하게 되는 것이다. 어떤 제한 아래에서 자기 나름대로의 방법을 발견하는 것이 수행의 방법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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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쉰다는 것은 마음의 활동을 멈춘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것은 자신의 마음이 육신 전체에 스며든다는 것을 의미한다.

온 마음을 기울여서 자신의 손으로는 무드라(수인)를 맺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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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갔다가 돌아왔네

아무 특별한 것은 없었네

여산은 안개 낀 산으로 유명하고

양자강은 그 물로 유명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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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둔이 2004-10-19 14: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대 생각으로 가을밤에 푹빠졌네
이리저리 거닐다 빈하늘에 대고 읊조리니
텅빈 산에 솔방울 떨어지는 소리
그윽한 그대도 잠못들기는 마찬가진가

당나라 위응물의 '가을밤 회랑에 기대서서'입니다.
누군가를 생각하는 밤이라면 솔방울 떨어지는 소리에도 잠들기 어렵겠죠..

아마 당신의 시작자는 그곳에 그리운 친구가 없었나봅니다. 그러니 일이없지요
여산이 유명하고 양자강이 볼만하다고 해도 보고싶은 사람이 없다면 무슨 재미겠습니까?

빈하늘 텅빈 산 아무 하잘 것 없는 밤풍경이라해도 그리운 마음 하나만으로도 밤을 지새우는 일이 생깁니다.

하지만 이러한 사람과의 인연은 맺기도 어렵지만은 또한 풀어가기 힘들고 풀기는 더욱 어렵습니다.

누군가를 생각한다면 공연히 우리들의 가을밤도 잠못드는 밤입니다. 당신은 무슨 일로 잠못드는 밤입니까? 헛되이 이름믿고 세상을 떠돌다 헛탕치는 일은 없기를 바랍니다.
 

찾는 자는 찾아진 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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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둔이 2004-10-21 11: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짜 찾는 자를 찾았는어요?

그럼 쉬세요^.^.....방하착...샬롬!!!!!
 

1. 나는 항상 부재하므로 항상 존재합니다. 그리고 내가 부재할 때에만 나는 실재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보다 명확히 하기 위해서, 저는 항상 상대적으로가 아니라 절대적으로 존재해왔다는 것을 덧붙이고자 합니다. 제가 이렇게 보이는 형상의 모습으로 존재하고 있는 것이 곧 명백한 저의 없음입니다.

2. 어느 "것"도 아닌 나는 모든 것입니다. 나는 내 자아가 아니지만 우주 전체가 나의 자아입니다.

3. 너(you)라든가 나(me)라든가 하는 것들이 모두 부정된 후에야 나(I)는 "나(I)"로서 남게 됩니다.

4. 당신이 어떻게 나를 사랑할 수 있겠습니까? 당신이 바로 나의 본면목인데 말입니다. 내가 어떻게 당신을 미워할 수 있겠습니까? 내가 곧 당신의 본면목인데 말입니다.

5. 나는 결토 태어난 일이 없는데 어떻게 죽을 수 있겠습니까? 결코 구속받은 적이 없는데 어찌 해방될 필요가 있겠습니까?

6. 상대가 어떻게 절대를 판단할 수 있겠습니까? 상대가 자신을 상대적으로 만드는 모든 쌍대성을 포기하고 더이상 상대적이 되기를 그만둔다면 물리적 형상이 없을 때 의식은 자기 자신을 의식하지 못합니다.

7. 태어나기 전에 당신은 무엇이었습니까?

8. "선택이나 차이"라는 것은 모두 관념적인 헛된 말에 불과합니다. 그것들은 상대적으로만 파악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실상인 절대적 상태에서 볼 때는 그런 형상들이 아예  나타나지 않으며 따라서 선택이나 차이라는 것도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9. 세속적인 것이든 비세속적인 것이든 당신이 원하는 모든 지식을 모으도록 하십시오. 그리고 나서 그 모두를 절대에 바치도록 하십시오. 그리고 또 그렇게 계속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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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샘 2004-10-15 16: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태어나기 전에 나는 무엇이었을까? 태어나기 전에 나는 무엇이었을까?
태어나기 전 나는 있었고, 나는 태어난 적도 없는 존재.
존재하고 있었고, 존재라는 말도 모르는 나.
논리적으로는 이해할 것 같지만, 글쎄요, 나는 누구일까요?

달팽이 2004-10-15 22: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말은 논리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말은 아닙니다. 질문을 마음으로 녹여내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내 몸이 없던 시절에 지금 나에게 있는 그 무엇이 그때에도 존재하였고, 따라서 그 때에도 지금 몸을 가진 나에게도 공통되게 존재하는 그 무엇에 대해 알 수 있어야만 답이 나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