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민 선생님이 들려주는 한시 이야기 - MBC 느낌표 선정도서, 보급판 진경문고 5
정민 지음 / 보림 / 200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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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민 선생님의 글은 옛글이지만 그 속에 옛 사람들의 마음을 담았다. 그저 눈으로 보이는 것만을 넘어서 옛 사람들의 그 마음 씀씀이와 직설적 화법보다는 돌려서 넌지시 암시하는 옛 사람들의 멋과 풍류를 그가 가진 마음의 눈으로 되살려 내었다. 그래서 늘 선생님의 글들은 우리들의 삶에 생활에 감추어진 멋들을 되살려내도록 해준다.

그가 이런 옛사람들의 시, 서, 화를 보는 안목으로 우리 옛 전통문화를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춰 써내려갔다. 단지 아이들뿐만 아니라 일반인들이 우리 옛 글과 그림을 이해하기 위해서 입문서로 사용해도 될 정도로 재미있고 알차게 엮어내었다. 글 속의 여백과 보여주지 않음으로 보여주는 옛 사람들의 지혜를 그는 될 수 있으면 빛바래지 않은 상태로 우리들에게 보여주고자 노력하였다.

우리의 옛 조상들은 정말 멋있고도 지혜로운 사람들이다. 말하지 않으면서 말하는 법에 의해 상대방이 보다 깊이 깨달을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으며,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님을 보여줌으로써 삶의 보다 깊은 곳에 대한 스스로의 체험으로 경험할 것을 강조하고 있다. 다 보여주지 않음으로써 그것을 보는 자가 갖게되는 온갖 상상력과 창조성을 해치지 않는 조심스러움을 보여주기도 하고, 사물에 깃든 생명력을 봄으로써 사물을 보다 깊이 이해하고 사물과 만물에 대한 신비로움과 경이로움을 자아내게 하기도 한다.

옛 사람들의 작품속에서 우리는 그 사람을 발견한다. 그 사람이 품었던 의도와 그 사람의 세계관과 맞닥뜨리게 된다. 그리고 그 작품을 만들어낸 사람의 애틋한 마음과 절절한 마음과 만나게 된다. 그 만남은 평범하고 관성화되어 삶의 활력과 신비를 잃어버린  현대인의 생활에서 지쳐버린 자신의 삶을 다시 되돌아볼 수 있게 해준다.

그래서 과거는 과거가 아니라 현재 사람이 기억해내고 현생활의 필요에 의해 되살려낸 과거가 된다. 물질문명의 발달에도 불구하고 인생을 대하는 성숙하지 못한 우리들의 삶에서 옛 사람들이 가진 정신적 풍요로움과 여유로움은 각박해진 우리의 삶을 반성하고 오늘을 다시 새롭게 살게 해주는 힘이 된다.

그 힘을 정민 선생은 자신의 아들 '벼리'를 통해 이 세상 아이들에게 전해주고 싶은 것이다. 그러한 마음이 이 책 전반에 두루두루 널려 있음을 읽은 이는 알게 된다. 이러한 이유로 내가 정민 교수를 좋아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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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여우 2004-10-25 12: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어렵다고 생각하는 한시를 아이들의 눈높이로 쓴 책이란 말이군요. 그렇다면 저도 이 책을 읽어봐야 겠군요^^님의 리뷰는 가을날의 한편의 맑은 수채화 같습니다. 예쁘다고 할까요..^^

달팽이 2004-10-25 13: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갑사합니다...쑥스럽군요..ㅎㅎ

혜덕화 2004-10-26 08: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몇년 전에 이 책을 처음 읽고 받았던 감동이 기억나네요.
할아버지가 손자를 데리고 무덤가에 가서 조촐한 제사를 지내는 모습의 한시를읽고
얼마나 울었던지. 눈물이 많아서 눈앞에 상상하는 풍경만으로 마음이 아리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좋은 책을 읽으셨네요.

달팽이 2004-10-26 11: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혜덕화님 오랫만에 글 남겨주시니 반갑군요...정민 선생님의 옛 사람들의 글 이면에 있는 마음을 읽어내려는 그 마음이 존경스럽답니다...
 

어느 날 오후에 만공 선사가 제자 몇 명과 더불어 배를 타고 안면도로 가는 중에 어느 산을 가리키며 제자들에게 "저 산이 움직이나, 배가 움직이나?" 물었더니, 혜암이 나서서 "산도 배도 움직이지 아니하고 오직 마음이 움직입니다."고 말했다. 선사가 "그것을 증명할 수 있느냐?"고 하자, 혜암은 손수건을 들어 올려 흔들었다. 만공선사가 "언제부터 이런 생각을 했느냐?"고 했다.

1. 산이 움직이나, 배가 움직이나?

2. 만공 선사가 "너 언제부터 이런 생각을 했느냐?"고 물었을때 여러분이 그곳에 있었더라면 뭐라고 대답했을까?

3. 배도 산도 없으면 무엇이 있을까?

산이 배고, 배가 산이다. 산도 없고, 배도 없다. 산은 산, 배는 배다. 산과 배의 올바른 관계, 올바른 수용을 어떻게 유지하나? 배는 바다를 건너 안면도로 간다. 바다는 푸르고 산도 푸르다. 그러나 바다는 바다, 산은 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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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사람들은 모란을 사랑해서

동산에 가득히 심어서 기른다.

그렇지만 황량한 들판 위에도

예쁜 꽃 피어난 줄은 아무도 모르네.

그 빛깔은 시골 연못에 달빛이 스민 듯

향기는 언덕 위 바람결에 풍겨 온다.

땅이 후미져서 귀한 분들 오지 않아

아리따운 자태를 농부에게 맡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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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중국의 송나라에 휘종 황제란 분이 있었다. 그는 그림을 너무 사랑했다. 그림을 사랑했을 뿐만 아니라 그 자신이 훌륭한 화가였다. 휘종 황제는 자주 궁중의 화가들을 모아 놓고 그림 대회를 열었다. 그때마다 황제는 직접 그림의 제목을 정했다. 그 제목은 보통 유명한 시의 한 구절에서 따온 것이었다. 한번은 이런 제목이 걸렸다.

"꽃을 밟고 돌아가니 말발굽에서 향기가 난다."

말을 타고 꽃밭을 지나가니까 말발굽에서 꽃향기가 난다는 말이다. 그러니까 황제는 화가들에게 말발굽에 묻은 꽃향기를 그림으로 그려 보라고 한 것이다. 꽃향기는 코로 맡아서 아는 것이지 눈으로는 볼 수가 없다. 보이지도 않는 향기를 어떻게 그릴 수 있을까? 화가들은 모두 고민에 빠졌다. 꽃이나 말을 그리라고 한다면 어렵지 않겠는데, 말발굽에 묻은 꽃향기만은 도저히 그려 볼 수가 없었다.

모두들 그림에 손을 못 대고 쩔쩔매고 있었다. 그때였다. 한 젊은 화가가 그림을 제출하였다. 사람들으 눈이 일제히 그 사람의 그림 위로 쏠렸다. 말 한 마리가 달려가는데 그 꽁무니를 나비 떼가 뒤쫓아 가는 그림이었다. 말발굽에 묻은 꽃향기를 나비 떼가 대신 말해 주고 있었다.

젊은 화가는 말을 따라가는 나비 떼로 꽃향기를 표현했다. 이런 것을 한시에서는 '입상진의(立象盡意)'라고 한다. 이 말은 '형상을 세워서 나타내려는 뜻을 전달한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 나비 떼라는 형상으로 말발굽에 묻은 향기를 충분히 전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형상을 시에서는 이미지라는 말로 표현한다. 시인은 결코 직접 말하지 않는다. 이미지를 통해서 말한다. 그러니까 한 편의 시를 읽는 것은 바로 이미지 속에 담긴 의미를 찾는 일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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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사는가 1 - 무량 스님 수행기
무량 지음, 서원 사진 / 열림원 / 200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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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산스님의 제자로 현각스님과 함께 예일대학교에서 숭산스님의 법문을 듣고 출가를 한 인연을 가지고 있는 무량스님의 출가의 과정과 구도의 과정을 자서전적으로 풀어내고 있다. 삶을 살아가면서 갖게 되는 특별한 경험과 그 경험을 받아들이는 의식은 늘 자신이 가고자 했던 방향에 대한 표식을 본능적으로 찾아가는 무언가가 있다. 무량 스님 역시 어머니의 죽음에서 그리고 자신의 성장과정에서 늘 무언가가 채워지지 않은 것으로 남아 자신의 삶에 대한 의문으로 이어지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도대체 이 많은 생각들이 어디서 오는 걸까? 지금까지 받았던 교육은 대체 내게 무슨 도움을 준 것인가? 침대정리를 하고 먹을 것을 만드는 사소한 일 하나에도 보탬이 되지 못하고 있지 않은가?"하는 찾을 수 없는 존재의 공허함은 그의 인생을 더욱 많은 방황과 모험으로 이끌게 된다. 요가를 배우고, 태극권을 배우고, LSD를 복용하고 세상 어디를 돌아다녀도 그 의문이 풀리지 않는다.


이 많은 방황들이 자신에게 꼭 필요한 과정이었음을 자신은 안다. 나에게 있어 20대의 위태로운 방황이 나의 인생에서 정말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하는 의문을 만들어내었던 것처럼.....내 삶의 어느 단편도 버릴 것이 없듯이 그의 삶도 역시 버릴 것 없이 그 자신의 의식에 쌓여가고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 많은 방황을 거치고 그것에 대한 경험들이 내면화되어 의식이 그것을 정리하고나서야 비로소 숭산스님과의 타이밍있는 인연이 있었던 것이다. 만남의 인연은 그렇게 오는 것이다. 자신의 삶을 말한마디로 정리해내고 자신이 지향하는 바를 시원하게 뚫어주는 말 한마디가 바로 우리의 의문이 해결되어야 할 방향을 가리키고 있으므로....숭산스님을 따라 나서는 것이 당연하다.


사막 한가운데에서 절을 짓기 위해 자신의 노동만으로 세월을 견디어가며 그가 하는 만행은 결국 "왜 사는가? 나는 누구인가?"라고 하는 의문에 대한 답을 찾는 과정이다. 그 답은 자신이 세상 어디를 다니건 어떤 경험을 하고 있건 자신의 마음에서 일어나는 일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언어장벽을 뛰어넘어 한국의 산천을 누비고 다니고, 숭산 스님의 가르침을 쫓아 졸업만 하면 자신에게 주어진 사회적 성공의 길을 접어두고, 사막 한 가운데에다 온전히 자신의 힘과 땀으로 태고사를 짓는 그의 만행은 너무나도 친절하고 배려심많은 스승 아래서 의문 하나도 제대로 풀어내지 못하고 온갖 질문을 퍼부어대는 내게 그리고 무엇보다 절박하고 강한 의지없이 게으르고 나태한 내 모습을 다시 돌아보게 해준다.


그가 숭산 스님의 시봉을 그만 두고 홀로 수행의 길을 개척해가듯이, 마음 속에서 자신의 의문을 스스로 헤쳐가는 용기와 모험정신이 나에게도 필요한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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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연 2004-10-23 23: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문득 읽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는데..님의 리뷰로 더욱 마음을 굳히게 되는군요.
추천합니다...글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