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죽 사이에 앉아 장닭이 웁니다

묵은 독에서 흘러나오는 그 소리 애처롭습니다

구들장 같은 구름들은 이 저녁 족보만큼 길고 두텁습니다

누가 바람을 빚어낼까요

서쪽에서 불어오던 바람이 산죽의 뒷머리를 긁습니다

산죽도 내 마음도 소란해졌습니다

바람이 잦으면 산죽도 사람처럼 둥글게 등이 굽어질까요

어둠이, 흔들리는 댓잎 뒤꿈치에 별을 하나 박아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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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나무에서 다른 나무로 옮겨가는 틈에 낀

날다람쥐들의

한 곡예

물수제비 뜨듯

줄 위에 올라 있는 남사당패들

탁한 낮달이 어둘녘 청명해지고 있다

어느 부족의 집과 절터 사이

나는 길 위에 저울추를 올려놓는다,

길이 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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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찾아가고 싶다 밭 가운데 무너지는 무덤, 마른 쑥풀 비석 세우고 이승으로 내려와도 더운밥 한술 뜨지 못하는 당신을 만나고 싶다 산에서 내려온 질경이 아카시아 들쥐에게 온몸내주는 그대의 이력을 얘기해주오 볕바른 산중턱, 이속의 억수비에도 물길 걱정 없는 그곳 버려두었으니 당신의 한평 누운 자리는 허물어지는 목, 들일과 당신이 부린 집짐승과 농사 일지를 기억해주오 서러울 것 없다 바람 얌전하고 망자여, 이 세상 저물녘에 둥근 집으로 지고 들어간 것은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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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누아 2005-11-16 16: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덤은 편안해요. 백제 고분에 가서 누워 있었어요. 지나는 할머니가 그곳이 우범지대라 그렇게 자면 안 된다며 깨우시지 않았다면 언제까지 잤을지도 몰라요. 선릉에서, 국립묘지에서, 그리고 기억에서 지워진 어느 왕가의 릉과 손병희 씨의 무덤에서 가만히 앉아 있거나 누워 있었지요. 가만히 누웠다가 내게 그 고요를 선사해준 무덤 주인들에게 답례할 겸 무덤 주위를 청소하고 돌아오곤 했지요. 남명 조식 선생의 묘는 밭 가운데 무너지는 무덤 같았어요. 벼슬을 못해서 일까요, 제자가 역적이어서 그런 걸까요? 공자는 도대체 언제까지 공부해야만 하느냐고 하는 제자에게 저 위에 있는 높고 동그란 것에 갈 때까지라고 하셨다죠? 그래요, 서러울 것 없어요. 시랑은 별 관계없는 이야긴가요? 무덤 생각이 나서요.

달팽이 2005-11-17 09: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전에 고등학교 근무할 때 정묘사 터 무덤가에서 앉았거나 누워 있었을 때가 있었죠...그러면 사는 것이 그다지 어려울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앞으로 50년 정도의 시간 후 나도 이렇게 누워 있겠죠...물론 유골이라도 이름없는 산하에 뿌려져 누워있을지라도 이런 무덤들과 크게 다를 바 없겠죠..죽음을 옆에 두고 누워 있다보면 삶의 의미가 다시 새겨지곤 합니다. 아둥바둥하는 삶이 돌아다보이고 열정과 사랑이 돌아져보이고 정말 중요한 삶의 의미와 가치가 무엇인지 돌아보입니다. 나 오랜 세월 뒤 무덤도 없이 사라지면 지금 내가 산 흔적, 내가 산 이유들이 다 뭘까하고 말입니다.
 

언덕길에 곱사들이들이 모가지를 빼고 앉아 있네

 

문득 휘몰아친다네, 우리가 어찌할 수 없는 힘은

등뼈를 바깥으로 탈골시키네 그들은 대갈못처럼

더욱 주저앉네, 꽃에서 한잎의 귀가 떨어지네

이 지상에서 잊혀진 소리들이 건너 지방으로......

 

우리는 등을 켜고 가만히 보네, 우리가 어찌할 수 없는 힘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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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5-11-14 10: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쓸쓸하네요...

달팽이 2005-11-14 10: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지상에서 잊혀진 소리들,
우리가 어찌할 수 없는 힘을...
그렇지요?
 

1

흙더버기 빗길 떠나간 당신의 자리 같았습니다

둘 데 없는 내 마음이 헌 신발들처럼 남아 바람도 들이고 비도 맞았습니다

다시 지필 수 없을까 아궁이 앞에 쪼그려 앉으면 방고래 무너져내려 피지 못하는 불씨들

 

종이로 바른 창 위로 바람이 손가락을 세워 구멍을 냅니다

우리가 한때 부리로 지푸라기를 물어다 지은 그 기억의 집 장대바람에 허물어집니다

하지만 오랜 후에 당신이 돌아와서 나란히 앉아 있는 장독들을 보신다면,

그 안에 고여 곰팡이 슨 내 기다림을 보신다면 그래,

그래 닳고 닳은 싸리비를 들고 험한 마당 후련하게 쓸어줄 일입니다

 

2

지붕 위로 기어오르는 넝쿨을 심고 녹이 슨 호미는 닦아서 걸어두겠습니다

육십촉 알전구일랑 바꾸어 끼우고 부질없을망정 불을 기다리렵니다

흙손으로 무너진 곳 때워보겠습니다

고리 빠진 문도 고쳐보겠습니다

 

옹이 같았던 사랑은 날 좋은 대패로 밀고 문지방에 백반을 놓아 뱀 드나들지 않게 또

깨끗한 달력 그 방 가득 걸어도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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