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 내 꿈은 선생님이 되는 거였어요.

나뭇잎 냄새 나는 계집애들과

먹머루빛 눈 가진 초롱초롱한 사내녀석들에게

시도 가르치고 살아가는 이야기도 들려 주며

창 밖의 햇살이 언제나 교실 안에도 가득한

그런 학교의 선생님이 되는 거였어요.

플라타너스 아래 앉아 시들지 않는 아이들의 얘기도 들으며

하모니카 소리에 봉숭아꽃 한 잎씩 열리는

그런 시골학교 선생님이 되는 거였어요.

 

나는 자라서 내꿈대로 선생님이 되었어요.

그러나 하루종일 아이들에게 침묵과 순종을 강요하는

그런 선생님이 되고 싶지는 않았어요.

밤 늦게까지 아이들을 묶어 놓고 험한 얼굴로 소리치며

재미없는 시험문제만 풀어 주는

선생님이 되려던 것이 아니었어요.

옳지 않은 줄 알면서도 그럴 듯하게 아이들을 속여넘기는

그런 선생이 되고자 했던 것은 정말 아니었어요.

아이들이 저렇게 목숨을 끊으며 거부하는데

때묻지 않은 아이들의 편이 되지 못하고

억압하고 짓누르는 자의 편에 선 선생이 되리라곤 생각지 못했어요.

 

아직도 내 꿈은 아이들의 좋은 선생님이 되는 거예요.

물을 건너지 못하는 아이들 징검다리 되고 싶어요.

길을 묻는 아이들 지팡이 되고 싶어요.

헐벗은 아이들 언 살을 싸안는 옷 한 자락 되고 싶어요.

푸른 보리처럼 아이들이 쑥쑥 자라는 동안

가슴에 거름을 얹고 따뜻하게 썩어가는 봄흙이 되고 싶어요.

 


댓글(3)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달팽이 2005-12-05 09: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 대학 시절, 이 시를 만난 것은
내 사범대학 시절을
한없이 꿈꾸게 만들었다.

지금도 이 시는
나를 아쉽게 한다.

어느 이름없는 시골의
작은 교정에서
보내지 못한 내 교단 생활을


글샘 2005-12-18 09: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요. 어쩌면 어쩌면 우리는
제 것을 소리쳐 외치기 보다는
거름이 되어 썩어가는 봄 흙이
어울리는지도 모를 일일까요?

달팽이 2005-12-18 21: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직 이루지 못한 꿈들을
가슴에 고이 묻고
우주가 빚어낸 지금
이 생활을 받아들여야겠죠..
 

기차는 지나가고 밤꽃은 지고

밤꽃은 지고 꽃자리도 지네

오 오 나보다 더 그리운 것도 가지만

나는 남네 기차는 가네

내 몸 속에 들어온 너의 몸을 추억하거니

그리운 것들은 그리운 것들끼리 몸이 먼저 닮아 있었구나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금강 근처에 살 때에는 강이 낯설어서

강가에 서기가 두려웠다

강가에 가면 강의 깊이와 만날 수 있을까

강을 찾아 가다가

중도에서 포기하기가 여러 번이었다

가만히 앉아서 강을 생각하면

강은 참으로 보고 싶다

강가에서 멀리 이사를 오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하나 얻었다

그러나 강은 아직도 낯설고 두렵다

이제 강을 찾아가도 될 때라면

한 번 용기를 내야 하겠다

두려움은 피할수록 커지는 것

어서 강과 만나 늦은 이유를 말해야 하겠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달팽이 2005-12-03 21: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나는 강을 모른다.
하지만 강을 만나야 한다.
한 번도 만난적 없는
하지만 한 번도 잊은 적 없는
그 강을
강을 만나
늦은 이유를 말하기보다
만남의 세상을 이야기하리라.
 

1

내 그대를 생각함은 항상 그대가 앉아 있는 배경에서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일처럼 사소한 일일 것이나

언젠가 그대가 한없이 괴로움 속을 헤매일 때에

오랫동안 전해오던 그 사소함으로 그대를 불러보리라.

 

2

진실로 진실로 내가 그대를 사랑하는 까닭은

내 나의 사랑을 한없이 잇닿은 그 기다림으로 바꾸어 버린 데 있었다

밤이 들면서 골짜기엔 눈이 퍼붓기 시작했다

내 사랑도 어디 쯤에선 반드시 그칠 것을 믿는다.

다만 그때 내 기다림의 자세를 생각하는 것뿐이다.

그 동안에 눈이 그치고 꽃이 피어나고 낙엽이 떨어지고 또 눈이 퍼붓고 할 것을 믿는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달팽이 2005-12-03 08: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영화 <편지>가 아니었다면, 더욱 오래 이 시를 좋아했을 것이다.
"다만 그때 내 기다림의 자세를 생각하는 것뿐이다." 이 부분이 나는 너무 좋았다.
지금도...

물만두 2005-12-03 10: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여전히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아합니다.
 

사면은 잡초만 우거진 무인지경이다

자그마한 판자집 안에선 어린 코끼리가

옆으로 누운 채 곤히 잠들어 있다

자세히 보았다

15년 전에 죽은 반가운 동생이다

더 자라고 둬 두자

먹을 게 없을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