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허의 무심
경허큰스님 지음 / 고요아침 / 200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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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인사를 들어서며 왼편에 위치한 범종 앞에 놓인 약수를 한껏 들이키고 고개를 드니 바로 앞에 구내서점이 보였다. 그 구내서점에서 책을 보던 중 손에 잡힌 책이 바로 이 책이다. 한국 근대 선지식의 선구자인 경허스님의 법어이야기이다.

사원을 거닐면서 연신 내리쬐는 햇살을 받으며 이마에 흘러내리는 땀줄기를 손등으로 쓸어내며 내가 다다른 곳은 팔만대장경판 앞이었다. 부처님에 대한 공경의 마음이 주축이 되지 않고서는 이룰 수 없는 이 거대한 작업 앞에서 옛 사람들의 이마를 적셨던 땀과 고단했던 허리를 생각하며 그들의 마음 속에 부처님에 대한 무한한 동경과 그리움없이 과연 이 일이 가능하기나 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내려오는 길에 보이는 해인사의 지붕들과 산사의 풍경은 고요하고 적막하였다. 주차장으로 옮기던 걸음을 다시 돌려 금강사에 들렸다. 오후의 뜨거운 햇살에 산사는 고요한데 물흐르는 소리만이 적막을 깬다. 물한모금 입에 물고 목으로 올라오는 타는 갈증을 다스리고 고개 들어 선원을 보니 빽빽하게 들어선 승려들이 벽을 향해 삼매경에 빠져 있다. 인적이 끊어진 산사에 온갖 세상의 소리 끊어진 산사에 그 적막을 깨고 들어선 우리의 걸음이 한 갓 번뇌이련가?

여러 생각 올라오고 사라지는 그 자리,

번뇌와 망상이 멈추어버린 그 자리를 향한 끝없는 시선 속에 생사의 구별 사라진 영원한 빛을 본다.

순간 내 마음도 생각을 쉰다.

그 마음에 대한 그리움으로 경허스님의 책을 든다.  내 마음을 찾는 것, 항상 내 마음을 지켜보는 것, 항상 부처님과 함께 잠들고 깨는 것,

달리는 말과 같이 지나가는 인생에서 우리는 너무나도 부질없는 것에 시간을 낭비하고는 있지 않는지.....

오늘 또 한 친구의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부음을 듣는다. 그 죽음이 바로 나의 일임을 나는 왜 모르는가? 어두운 이의 마음 속엔 늘 마음을 궁구함이 없이 세상일에 휩쓸리고 마니....나는 과연 이 정도의 그릇밖엔 될 수 없는가? 내 마음 속 어딘가에 진리를 향한 그 깊은 열정이 숨겨져 있는 것일까? 눈이 없으니 볼 수 없구나...아,,,,아... 또 이렇게 속절없이 하루가 가는구나... 얼마나 많은 생을 기다려 또 사람의 몸을 받아 진리의 길을 가려고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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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가면의 제국 - 오리엔탈리즘, 서구 중심의 역사를 넘어
박노자 지음 / 한겨레출판 / 200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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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혹시 당신은 제 3세계 노동자들의 비인간적인 처우와 노동현실을 보면서 때로는 우월감을 느낀 적이 있나요? 그렇다면 당신은 자신 안에서 오리엔탈리즘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당신은 멋지게 지은 서양식 집과 좋은 차 , 늘씬한 서구형 미인을 부러워 한 적이 있나요? 그렇다면 당신은 서구 중심주의적인 옥시덴탈리즘을 키워가고 있는 중입니다.  자신들의 삶만을 중심으로 보고 나머지를 주변부로만 파악하는 태도, 자신의 삶을 문명으로 파악하고 나머지를 야만으로 파악해서 그들을 계몽시켜야 한다는 편견,  우리를 위해서는 타인의 삶은 어떻게 되더라도 상관없다는 배타주의는 인류의 역사를 씻어낼 수 없는 피로 물들였습니다. 나아가 인류가 자신의 삶의 주체로서 살지 못하고 타인에게 종속되거나 배제되는 비극의 역사를 낳았습니다.

    그럼 이런 오리엔탈리즘이나 옥시덴탈리즘과 같은 우리 사회를 보는 일그러진 시각들은 어떻게 생기게 되는 것입니까? 그것은 바로 민족과 국가라고 하는 허상을 우리들 개인 각 각의 내면에 심어놓는 방법에 의해서 생기게 됩니다. 이런 이유로 박노자씨는 집단과 전체주의에 의해 희생되었고 배제되었던 개인적 가치의 복원을 주장하게 된 것입니다.  오리엔탈리즘이나 옥시덴탈리즘이나 가해자건 피해자건 그 국가나 중심부나 주변부를 해체해보면 전체에 의해  많은 기층 민중과 시민과 개인의 희생이 뒤따른다는 점에서는 같기 때문입니다.

    사실, 역사의 거대한 수레바퀴 속에서 한 개인은 그 수레바퀴를 되돌리기는 너무나 미약한 존재입니다. 그리고 그 수레바퀴에 묻어가는 미약한 존재로서 수레바퀴가 굴러가는 방향을 제대로 객관적으로 예측한다는 것도 아주 어려운 문제입니다. 하지만 20세기에 인류의 대량학살의 역사와 인간 존재의 극한적 무의미함을 겪으며 적어도 이러한 비극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선 광기로 치닫는 집단적 무의식과 집단광기를 극복해가는 개인적인 힘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개인주의적 가치라고 하는 것은 이러한 면에서 두 가지의 의미를 가진다고 봅니다. 우선은 인류의 대량학살은 반드시 민족이나, 국가라는 환상을 통해 국민들을 집단 무의식의 상태로 몰아 인류최악의 비극으로 몰아간다는 점에서 그런 외부적이고 전체주의적인 허상으로부터 탈출하는 방법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다음으로는 이러한 우리와 타자의 구별과 나아가 전체주의적 환상과 집단광기는 반드시 개개인의 내면을 오염시키고 쇠뇌시키는 과정을 거치기 때문에 우리들 내면의 깨달음이 이러한 비극을 극복하는 궁극적인 해결책이 된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우리 사회가 쓰고 있는 중심부를 향한 끝없는 동경과 그리움의 하얀 가면, 그것은 우리들의 마음 속에 자리잡은 자기비하와 타문화에 대한 사대주의적 시각을 말합니다. 그 가면을 벗어내는 일은 단순히 우리의 몸치장을 바꾸어내는 것이 아닙니다. 바로 우리들의 마음을 바꾸어내고 우리들의 삶을 바꾸어내는 일이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사회를 보는 바르고 넓은 눈이 필요하며 여기에 그런 눈 하나가 박노자씨에 의해 제공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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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역사 최전선
허동현·박노자 지음 / 푸른역사 / 200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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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들이 편안하게 읽어내기 쉽지 않은 역사책이 박노자 교수와 허동현 교수의 편지형식의 글을 통해 세상에 나왔다. 스스로가 '개인주의적 진보'와 '건강한 보수'라 얘기하는 그들을 통해 진보와 보수가 열린 대화와 토론의 장을 만들었다.

  하지만 책의 내용을 읽다보면 진보와 보수의 구분이 흐릿하게 되고 누가 누구의 글인지 헷갈리게 되어버린다. 그것은 진보와 보수의 개념이 우리가 흔히 잘못 이해하고 있는 우익과 좌익의 구분으로는 설명되지 못한다고 그들은 말한다. 그렇기 때문에 구체적인 사건에서 외면적인 행위만을 놓고 보면 우리는 누가 보수이고 누가 진보인지 구별을 하지 못한다.

  우리들의 근대화의 역사는 민족과 국가, 집단과 전체라는 것을 위해 개인적인 가치가 희생된 역사였다. 이에 두 교수는 전체를 위해 개인을 희생한다는 전체주의적 횡포에 의해 죽어버린 진정한 주체와 개인을 다시 살려내는 것을 그들의 임무로 삼았다.

  그것은 다시 역사해석에 있어서도 학자들에 의해 교과서화된 정설만의 해석을 거부하고 역사를 보는 개개인에 의한 개인적 가치와 해석을 만들어내는 작업으로 나타났으며, 이 책 또한 그런 노력의 일환이라 볼 수 있다.

   개항기를 통해 본 한국사회는 봉건제 타파라고 하는 과제와 근대화의 추진에 의한 국민국가의 형성이라는 과제를 동시에 안고 있었고, 그런 과정에서 외세의 압력은 더욱 거세어만 가고, 주변의 조선지배의욕을 막아내고 극복할 수 있는 힘이 내부적으로 갖추어지지 못한 사면초가의 상태였다. 이런 역사적 상황에서 전체주의에 의해 희생되는 개인적 가치를 복원하면서 국제사회에서 당당하게 우리를 세우는 길이 무엇이었는지에 대한 고민한다. 

   전체 역사의 흐름에서 과연 한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고, 그 전체주의적 횡포에 맞서 극복하는 방법은 무엇인가? 이 답없는 질문을 던져보고 가장 합리적인 모색을 해보고자 하며 물론 그것은 오늘날에 우리가 당면한 현실에서도 마찬가지라는게 두 교수의 생각이다.

   한국 근대사에 대한 박노자 교수의 객관적이고도 외부적(?)이며 대담한 비판에 최소한의 민족적인 자존심을 나름대로의 근거로서 지켜내고자 한 허동현 교수의 반론이 묶여 한국사회가 안고 나가야 할 과제들에 대해 대중들의 개인주의적 가치의 부활과 개인의 자유롭고 열린 해석의 가능성을 열어 둠으로써 현실의 한국의 선택을 지혜롭게 하고자 한다.

   두 교수의 진지하고도 깊은 우정과 더불어 한국사회에 대한 깊은 애정은 우리 사회의 앞날에 대한 또 다른 희망을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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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부처가 사는 나라
청화스님 문도회 엮음, 김형주 사진 / 이른아침 / 200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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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화스님을 알게 된 것은 지난 부처님 오신 날 저녁늦게 우연히 켠 TV에서 방영된 분이었기 때문이다. 스님의 삶과 깨달음을 향한 의지는 나로서는 무척이나 감동이었다. 일일일식을 40여년이 넘게 이어온 것 하며 같은 기간동안 장자불와하며 수행을 했던 그 치열함은 생사를 해결하는 문제가 목숨을 걸어놓지 않고서 설렁설렁하는 마음으로 극복할 수 없는 절실함과 긴박함을 말하고 있었다. 스님의 삶을 바라보며 나의 삶을 되돌아보면 부끄러움 뿐이었다. 식욕이며 색욕, 수면욕을 다스리는 스님의 의지는 그야말로 세상의 그 무엇도 꺽을 수 없는 철옹성과도 같은 것이었다.

그런 스님이 강조한 것은 "염불선"이었다. 고행과 수행의지라면 부러울 것이 없는 스님이 "화두선"아닌 염불선을 강조한 데에는 아마 근기가 부족한 세인들이 좀 더 수월하게 부처님의 법에 닿게 하기 위한 배려심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화두에 관한 책을 몇 권 읽으면서도 늘 그 화두가 몇 일을 가지 않았던 것에 대해 내 자신을 탓해왔던 바도 있었기 때문에 스님의 염불선의 방법은 어쩌면 나에게 어울리는 방법일런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던 것이다.

책 머리에 나오는 스님의 사진 한 장 한 장을 천천히 들여다 보면서 스님의 얼굴표정에는 자신의 마음이 머물지 않는다는 느낌이 들었고 그래서 그 표정이 웃으시건 무표정이시건 간에 너무나도 평화롭고 자유로워보였다. 인간으로 태어나 한 번 웃어볼려면 저런 웃음 정도는 한 번 웃고 죽어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사람을 끌어들이는 웃음이었다. 한 치의 티끌같은 사사로움도 없는 무애한 웃음이 있다면 바로 저럴 것이다라른 생각이 들 정도로....

마음이 닦이지 않았으면서 존재의 실상인 공을 알려고 머리로만 애쓰던 나의 철없는 모습이 눈앞에 아련하다. 과욕을 부리기보다는 꾸준하고 성실하게 마음 닦을 일이다. 내 마음 속에 먼지가 수십 수백 두께가 쌓여 있는데 진실이 보이겠는가? 순간 순간 마음 회향하는 노력을 할 일이고, 그것을 통해 눈꺼풀 위를 덮고 있는 대들보는 치울 일이다. 삶과 죽음의 절절하고도 급박한 문제 앞에서 나태해지는 내 마음에 채찍질을 할 일이다.

부처님이 사는 나라, 그 나라에 살면서도 업장이 두터워 천지구별을 못하는 내 앞에 아련하게 등불하나 반짝이고 있다. 스님은 그렇게 가신 뒤에도 중생의 업장을 녹이는 용광로로 우리들 앞에 현존하고 계신다. 그 마음에 내 마음을 맞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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좁쌀 한 알 - 일화와 함께 보는 장일순의 글씨와 그림
최성현 지음 / 도솔 / 200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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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위당 선생님이 투병할 때 이현주 목사님과 "노자의 도덕경"에 대해 나눈 이야기를 묶어 "노자 이야기"라는 책을 읽고 삶의 커다란 감동을 마음 속에 간직하게 되었다. 이후 장일순 선생님의 책을 찾아보았고 그래서 "나락 한 알 속의 우주"라고 하는 녹색평론에 실었던 글모음집을 구할 수 있었다. 무위당 선생님은 유,불,선 등의 다양한 종교적 입장을 아우르면서 그것이 지향하는 같은 하나를 자신의 사상에서 찾아내었고, 이를 삶 속에서 체화시켜 낸 분이다. 김지하 시인의 소개글이 무위당 선생님을 잘 드러내 보여준다고 생각된다.

"하는 일 없이 안하는 일 없으시고

 달통하여 늘 한가하시며 엎드려 머리 숙여

 밑으로 밑으로만 기시어 드디어는 

 한 포기 산 속 난초가 되신 선생님."

선생님의 사상은 해월에게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 동학사상이 단순한 사회운동이 아니라 서학에 맞서는 하나의 사상으로서 나오게 된 것을 재조명하고 재연구되게 된 것도 그의 영향이 컸다. 선생님이 부인을 비롯하여 모든 여자들을 존중하고 존경하는 마음도 해월의 사상의 영향이 있었다고 보여진다. 나아가 선생님은 사람사는 도리에 대해 이 시대를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의 좋은 귀감이 된다. 한 종교를 선택하여 한 교인으로서 깊은 정신적 경지에 이르러 많은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는 사람들은 많지만, 선생님처럼 자신의 한 명의 교인으로서 별로 드러나지 않아도 모든 사람들에게 친절하면서 사랑을 남김없이 베풀며 민중들 속에서 하나의 좁쌀같은 존재이고자 했던 특별한 친근함이 있다.

좁쌀 한 알이라는 이 책을 통하여 궁금했던 선생님의 삶과 사상을 좀 더 자세히 알 수 있어서 기쁘다. 호를 일속자라고 할 정도로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내면으로는 더욱 깊이 자신의 삶과 정신에 몰두했으며 그러면서도 밖으로는 자신을 가장 낮추어 밑바닥 사람들과 더불어 살고자 했던 그는 우리시대의 진정한 성인의 모습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가 친 '난'을 가만히 응시하고 있으면 이미 인생에 대해 달관하지 않고는 나올 수 없는 자유로움과 여유로움이 베어 있다. '글'도 선생님은 고구마를 팔기 위해 절절한 마음으로 써놓은 글씨에 비할 바가 못된다고 하지만, 이미 선생님의 글에선 그 절절한 마음이 은은히 퍼져나오고 있음을 아는 사람은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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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연 2004-06-17 21: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을 읽고 리뷰를 썼는데...달팽이님의 글이 먼저 올라있더군요. 반가운 맘에 코멘트를 남깁니다...같은 글을 읽고 비슷한 마음을 품게 되는 것만치 사람 마음을 울리는 게 있겠는지요. 참...흐뭇해지는 밤입니다...^^

달팽이 2004-06-18 10: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장일순 선생님의 바른 삶에 배움을 가질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좋은 인연이 된다 생각합니다....
책 부지런히 읽으시고, 좋은 배움 공유합시다...감사합니다.

로드무비 2004-08-12 23: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꼭 읽고 싶었던 책이었는데...잊고 있었네요.
꼭 사볼랍니다.
그리고 달팽이라는 노래가 제 18번일 때가 있었어요.
아주 오래 된 얘기죠.^^

달팽이 2004-08-12 23: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 저도 그랬답니다....다만, 주체할 수 없는 젊은 날의 고독과 외로움이 좋아서....하지만 이젠 속도에 지친 삶에서 놓여진 느린 삶과 그 속에서의 부활하는 정신적인 삶을 위한 상징으로 '달팽이'를 사용하고 싶군요...만나서 반갑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