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기 - 팔레스타인 민중봉기의 현장에서 보내온 생생한 일상의 기록
레티시아 비카이으 지음, 정재곤 옮김 / 서해문집 / 200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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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표지에 이스라엘 탱크를 향해 돌멩이를 던지는 팔레스타인 소년의 사진이 있다. 이 소년의 무모한 행동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간의 앞날에 불운한 전망을 드러내고 있다. 프랑스 보르도 2대학의 정치학교수로 팔레스타인 문제 전문가인 레티시아 비카이으는  바쌈과 나지, 사미라는 이름을 가진 30대 전후의 팔레스타인 해방군의 삶을 밀착해서 취재하였고, 그들의 성장과정과 삶을 통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문제들의 원인과 문제점, 해결전망의 어려움들을  보다 가까이에서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인티파다(Intifada)'는 민중봉기를 뜻하는 아랍어다. 이 말은 팔레스타인 민중이 이스라엘의 학정에 맞서 자발적으로 대항했던 두 차례의 사건을 지칭한다. 첫 번째 봉기는 1987년 12월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 있는 자발리아 난민수용소에서 시작되어 전 지역으로 퍼졌으며, 두 번째 봉기는 2000년 9월 예루살렘에 있는 알 아크사 이슬람 사원에서 비롯되어 큰 파장을 불러 일으켰다.

1987년 12월 9일 차할군(이스라엘군을 지칭함) 지프차 한 대가 이스라엘로 일 나가는 팔레스타인 노동자들을 태운 차량과 추돌사고를 내었고, 이 사고로 자발리아에 거주하는 노동자 4명이 즉사했다. 이 소문이 순식간에 퍼져 몇 시간 후 가자지구 북쪽에 있는 자발리아 수용소에서는 폭동이 일어났고, 이스라엘군 관측소들이 수백 명의 팔레스타인 젊은이들에게 공격당했다. 폭동은 다른 수용소와 거류지, 가자지구와 요르단 강 서안 전역으로 퍼져갔다. 이렇게 우발적으로 시작된 폭동은 팔레스타인 해방기구에 의해 봉기로 발전했고, 이후에는 산발적 폭력투쟁도 있었으나 대체적으로 시민불복종의 형태를 띠고 이스라엘 상품 불매운동, 관공서나 경찰관의 사직 등으로 이어졌다. 결과적으로 팔레스타인 해방기구의 야세르 아라파트를 중심으로 하는 지도자들을 중심으로 이츠하크 라빈 이스라엘 정부 대표와 비밀협상을 가지게 되었고 팔레스타인 자치정부가 들어서게 되었다.

하지만 문제는 팔레스타인 내부에 도사리고 있었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는 지도자들의 부르주아적 생활로 인해 민중들과의 계층간 계급간 격차와 소외감을 가져왔으며, 그들의 사유재산 추구와 부정부패로 인해 순수한 민족해방을 위한 열정을 가진 인티파다의 주역들은 그 혜택들로부터 소외되어버렸다. 나아가 이스라엘 군벌과 정치인들과의 야합으로 자치정부 지도부는 민중들로부터 괴리되어 갔으며, 이후에 벌어지는 사건들에서 현명하고 옳은 판단을 내리지 못하게 되었다.  한편 팔레스타인 자치구의 경제는 이스라엘의 분리정책과 변화된 통제정책으로 이스라엘에 종속적인 경제구조를 만들어냈으며, 많은 수의 노동자들이 이스라엘 기업가가 운영하는 일터로 나가 그들의 생계를 유지하게 되었다. 따라서 팔레스타인 지역에 거주하는 인구의 상당부분이 이스라엘 국가의 존재를 이유로 자신의 삶을 지탱하는 현실에 처하게 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자신들의 과거의 공적을 인정받지 못하고 오히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로부터 감시받고 박해받게 되었으며, 앞으로의 전망에서 낙관적인 희망마저 잃은 해방군은 더욱 파괴적이고 폭력적으로 이스라엘의 통치에 대응하는 오류를 범했다. 그리고 그러한 행동은 이스라엘로 하여금 자치구를 유폐시키게 하는 정책을 시행하게 하고 한편으로는 대규모 공습과 무차별 공격을 낳게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발생한 인티파다 알 아크사는 아라파트의 실추 속에 계속되는 지도자의 암살로, 나아가 청렴하고 유능한 지도자의 부재로 인한 해방투쟁의 방향성 상실로 더욱 분열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러한 민족의 장래에 대한 불투명하고도 절망적인 상황은 젊은 해방군들로 하여금 과격하고 극단적인 방법을 사용하게 하였다. 그래서 결국엔 자살테러소동으로 인해 이스라엘의 군인과 민간인이 무차별 살상되고, 그 보복으로 더욱 많은 살상이 팔레스타인 주민을 대상으로 저질러지고 있는 것이다.

이 절망적인 상황에서 그나마 다행인 것은 팔레스타인 해방기구 내에서 조심스레 무장투쟁의 방식에 의문을 제기하며 이런 방법이 팔레스타인 문제를 해결하는 데 아무런 소용이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생기기 시작하였다는 점과, 이스라엘 내부에서도 무고한 국민의 희생속에 전쟁과 살인이 더 이상 우리에게 행복한 미래를 보장하지 않는다고 하는 목소리가 생겨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물론 이들의 목소리를 덮을 정도로 극단주의자들의 목소리 또한 높은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역사는 피를 통해 평화에 이른다고 했던가? 팔레스타인 지역을 둘러싸고 벌어졌던 60여년간의 대량학살과 전쟁은 이미 충분할만큼의 인류의 피를 뿌렸지 않았는가?

타자를 받아들이는 방법에 관심이 없었던 20세기가 남겼던 수많은 비극과 학살을 돌아보면서 21세기에 팔레스타인 지역에 따뜻한 평화가 깃들기를 간절하게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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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여우 2004-10-19 23: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예전에는 팔레스타인의 문제는 단순히 이스라엘과 연계된 문제인줄로만 알았어요. 그런데 내부 기득권자들의 잘못된 부정부패로 인하여 문제가 점점 더 확대 된다는 사실을 알고나서부터는 아라파트같은 지도자의 숭고한 리더십을 의심하게 되었죠. 항상 문제는 외부보다는 내부적인 요소가 더 강하다는 진리를 이럴때 써먹어야 한다는 일이 참 속상합니다. 리뷰 정말 잘 쓰셨습니다.^^

달팽이 2004-10-20 13: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이젠 철지난 과일이 되어버렸지만 포도의 그 싱그러움으로 아침 시작할 수 있게 해주어서 감사합니다..
 
잔인한 이스라엘
랄프 쇤만 지음, 이광조 옮김 / 미세기 / 200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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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원제목은 "시오니즘의 숨겨진 역사"이다. 저자인 랄프 쇤만은 버트란트 러셀의 비밀 비서로서 제국주의 국가내에서의 민중과 계급문제, 제 3세계에서의 민중해방의 문제에 많은 관심을 보여왔던 사람이다. 이 책에서 그는 나찌에 의해 희생된 유태인들이 애초에는 자신들의 민족적 정체감을 찾기 위한 순수한 시도에서 시작된 시오니즘이 자신들의 동족들도 배반하고 팔레스타인 민중들을 비극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던 사악함으로 나아가기까지의 역사적인 과정에 대해 상세하게 보여주고 있다.

세상사의 모든 것이 인간의 마음에서 출발하듯이 팔레스타인의 비극 역시 극단적 시오니스트들이 자신들의 민족국가를 세우고자 하는 열망을 ,아무런 힘도 없는 팔레스타인 지역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몰아내기 위해, 유태인들의 마음 속에 "민족국가를 세우기 위해서는 어떤 희생도 불사하겠다."라고 하는 이데올로기를 심어내는 것에서부터 출발한다. 그런 과정 속에서 극단적 시오니즘에 반대하는 선량한 유태인들에 대한 배반이 우선 일어난다. 나찌에 의한 유태인의 대량학살이 같은 민족인 그들에 의해 암묵적으로 동의되어지고 그들은 나찌의 지도자들과 뒷거래를 통해 팔레스타인 지역에 대한 유대국가 건설에 대한 동의를 얻어낸다. 나아가 그들은 나찌가 자기민족에게 써먹었던 학살방식을 팔레스타인 지역의 민중들에게 그대로 써먹는다.

제국주의와 식민주의의 관계가 식민주의내에서 지배 피지배 관계로 오면 결국엔 같아진다고 했듯이, 자기보다 힘센 자들에게 당했던 화는 사라지지 않고 자신보다 더 연약한 존재를 통해 더욱 가혹하게 가해지고 만다. 시오니즘의 유대국가 건설 움직임이 있기 전부터 이민족들과 이웃으로 어울려 평화롭게 살았던 선량한 팔레스타인 민중들이 왜 그런 비극을 당해야만 하는 것일까? 왜 늘 대량학살과 폭력과 착취는 아무런 방어능력도 없고 말할 수 없이 선량한 사람들에게 예고도 없이 나타나는 것일까? 이런 일들이 도대체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든다.

힘없는 그들이 불의에 강하게 저항하지 못한 탓이라고만은 할 수 없다. 물론 저자는 팔레스타인의 희망을 아랍민족들의 해방투쟁과 유태인 노동자계급과의 공동투쟁을 통해 달성할 수 있다고 말하지만 아무런 잘못도 없이 죽어간 수많은 사람들의 한과 고통은 어떻게 한단 말인가? 그 한과 고통이 또 다른 민족주의와 국가주의라고 하는 외양을 띠고서 우리 세상에서 돌고 돌게 되는 것은 아닐까? 도대체 세상은 왜 이런 걸까? 마음이 펼쳐진 세상의 비밀은 마음의 비밀에서 해결되어야 할 숙제들을 우리에게 남겨주고 있다.

제국주의도, 나찌즘도, 파시즘도 우리 사회 속에서도 내재화되어 있듯이 극단적인 시오니즘도 우리 사회내에 잠재하고 있을런지도 모른다. 중국의 역사 교과서 왜곡에 대해서는 한마디의 대꾸도 하지 못하면서 외국인 노동자의 현실에 대해서는 핏대를 세워가며 인권과 생존권을 외면해버리는 사람들, 국가보안법으로 이익을 보았고, 그것을 기반으로 현실적 지위를 유지하면서 국보법의 희생자들의 고통과 아픔에 대해 외면해버리는 보수주의자들, 자신은 늘 선이라는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상대방의 의견에는 한 치의 양보도 하지 않으려고 하는 교조주의자들의 마음 속에는 늘 인류를 위험과 비극으로 내모는 잔인함이 도사리고 있다.

시오니즘의 숨겨진 역사는 사람들의 마음 속에 숨겨진 역사이다. 자신의 마음 속에 부정과 폭력을 몰아내고 평화와 사랑을 구하지 않는 이상 세상사의 비극은 돌고 도는 연기의 법칙아래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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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만과 편견 대담 시리즈 3
임지현.사카이 나오키 지음 / 휴머니스트 / 200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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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과거의 기억을 전유하기 위한 갈등과 투쟁의 결과 형성된다. 그 과거란 개인에게 있어 사건발생 후 어느정도의 시간이 지난 후 기억되면서 새롭게 형성되는 것이다. 그 개인의 기억들이 뭉쳐진 집단적 기억인 역사도 마찬가지로 새롭게 형성되어가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 책은 바로 그러한 역사적 기억에 관한 것이다. 근대 이후 세계사의 큰 축을 형성해왔던 '제국주의'와 '민족주의'라고 하는 것이 사실은 그 이데올로기에 의해 집단적인 기억을 형성함으로써 자신들의 지위와 이익을 누려왔던 사람들이 만들어낸 기만적인 환상이라는 것이다.

임지현 교수와 사카이 교수의 대담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그 의의가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렇기 때문에 사회과학 분야에서 흔치 않는 별 다섯개를 주었다.

첫째로는, 국민국가에 대한 새로운 이해이다. 근대화의 과정과 민족주의가 형성되는 과정 그리고 제국주의로의 발전과 팽창에서 야기되는 식민주의의 문제, 선진자본주의와 후진 자본주의의 문제, 선진 자본주의 내, 후진 자본주의 내에서의 차별과 배제 억압의 논리가 이끌어 온 왜곡된 세계사에 대해 그것은 실체로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창출되고 또 재배치되면서 그 이익을 누리고 있는 사람들이 있음을, 그리고 그 이익을 보다 영속화시키기 위해 대중집단을 국민국가의 형성을 통해 그 틀 속에 묶어두려고 한다는 점이다. 이러한 관점은 사회주의에서도 러시아와 후발 사회주의 간의 지배 종속관계를 이해하는 데 있어서도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은 한국과 일본의 구체적인 역사에서도 드러난다는 것을 밝혀내고 있다. 식민지 국가에서의 제국주의에 대한 저항운동으로서의 민족주의가 제국주의의 이데올로기와 헤게모니를 그대로 재현해내고 있다는 그들의 관점은 우리 나라의 일제 식민지와 한국전쟁 그리고 전후 근대화과정에 대한 새로운 시각의 역사 조명이 필요함을 말해준다.('메이지 유신'을 모델로 일본식 근대화를 이루는 것이 민족의 발전을 위하는 길이라고 생각한 이광수를 포함한 친일파나 항일 독립운동가들의 대부분이 내셔널리즘적 국가주의의 입장에서 본다면 대동소이하다는 생각이다.) 식민지 내에서의 제국주의의 내면화는 안토니오 그람시에 의하면 '헤게모니'로서 표현되기도 한다. 이런 면에서 고찰해본다면 이전의 오리엔탈리즘과 옥시덴탈리즘은 국민국가의 형성과정에서 드러난 약간 상이한 두 길일 뿐인 것이다.

나아가 정보화 혁명이후의 세계화 현상과 다국적 자본의 해외진출, 지역경제의 블럭화 현상을 포함하여 미국의 이라크 침공, 9.11테러 이후의 미국 사회의 보수주의화 물결 등 현실적 문제에 접근하는데 있어서도 이러한 관점은 여전히 유효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국민국가를 자명한 것으로 전제하고 그 틀안에서 사유와 실천을 가두어 놓았던 과거의 대안 추구방식을 비판하고 그것이 가진 한계를 드러내어 거기에서 새로운 역사를 시작해보자는 의도를 담아내었다.

둘째로는, 번역이라는 공동작업을 통해 외국어를 자국어로 바꾸어냄으로써 타인의 사고를 자기의 것으로 전유하는 방식을 배우는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열린 대화를 통해 보다 성숙한 방법으로 타인을 받아들이는 자세를 가지게 된다는 것이다. 이 대담에서도 결국엔 두 사람이 역사를 인식함에 보편적인 부분에 공감하는 바가 크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 공감의 접점을 통해 역사는 새롭게 인식되어지고 여기에서부터 역사적 실천을 위한 새로운 사유가 시작된다고 볼 수 있다는 점이다.  그 새로운 사유가 바로 당면한 역사적 모순과 갈등을 해결하고 대화와 상생의 역사를 펼쳐가는 데 있어 출발점이 된다는 생각이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면 과거의 기억을 전유하는 방식에 있어서의 각 각 다른 시각들의 접점에서부터 우리들은 열린 대화의 장을 만들어 나가야 하며 그 접점에서 집단적 기억은 타인의 피가 아니라 사랑과 용서에서 시작되게 되리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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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aia327 2004-11-25 13: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중간쯤까지 읽다가 책장에 영구보관되고 있는책인데....

살인자와 인터뷰인가 기억인가에서 사람들은 책을 거의 읽지 않는다고 하죠

아니면 읽어도 이해하지 못한다고 하더거나, 이해해도 금방 까먹어 버린다는데.

책 두께가 주는 중압감과 더불어 긴 내용의 책을 띄엄띄엄 읽다 보니 연계성이

없어 중간에 포기 했는데, 님의 글을 보니깐 다시 책을 잡아야 겠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달팽이 2004-11-25 19: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꼭 완독하시고 글 남겨주세요...둘러보겠습니다...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
나탈리 골드버그 지음, 권진욱 옮김 / 한문화 / 200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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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에서 '뼛'자와 '써라'자는 큼지막하게 크게 씌어져 있다. 무엇보다도 글쓰기에 대해 아직은 어떤 두려움과 짐을 가지고 있는 내게 '써라'라고 하는 절대명제 앞에 나는 어떤 숙제가 내게 남아 있음을 느낀다. 나탈리 골드버그는 매력적인 작가이다. 그의 글쓰기는 단순한 글쓰기가 아니다. 자신의 삶이요, 일상이다. 그리고 불교신자로서의 명상, 선이다.

우리는 어떤 글을 대할 때마다 저 글을 쓴 사람은 과연 글에 드러난 색깔대로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가 하고 묻게 된다. 그리고 문학작품이나 예술작품을 대할 때에도 그 작품이 작가와 예술가의 삶의 기준과 이중적인 괴리를 보이게 되면 때로는 실망하기도 하고 그 작품에 대한 감동이 떨어지기도 한다. 골드버그는 그런 글쓰기를 하지 말라고 한다. 자신의 솔직한 마음에서 우러나온 글, 자신의 일상의 마음에서 솟아난 글, 자신의 삶의 가치와 경험이 녹아난 글을 쓰라고 한다.

나의 글쓰기도 이젠 어느 정도 나의 패턴을 찾아가고 있기는 하다. 하지만 늘 어떤 책을 읽고 서평을 쓰려고 하면 내 머리속에서 한 번 정리되어지는 절차들이 때로는 글쓰기의 부담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사실 그런 압박감을 가지기 싫어 읽은 모든 책을 서평으로 남기지는 않지만 그래도 책이 주는 어떤 생각과 느낌들을 정리하고자 할 때에도 늘 그런 욕구와 더불어 글쓰기의 짐같은 것들이 덤으로 나에게 생기는 것을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그런 내 글쓰기 아닌 글쓰기(?)의 반성 속에 이 책을 접하게 된 것은 행운이었다. 골드버그의 글쓰기는 이런 면에서 오랫동안 나의 목에 걸려 있는 가시를 어떻게 하면 없앨 수 있는가에 대해 친절한 충고를 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가 말하는 특별한 글쓰기란 알고보면 특별하다고 생각하는 자신의 마음 속의 가시를 제거하는 평범한 방법이었다.

이 책의 핵심적인 단어를 고르라면 나는 "내면적 관찰자, 편집자"를 고를 것이다. 뼛속까지 깊이 내려가서, 즉 자신의 본성과 근원 깊이 도달하여 쓰는 글쓰기를 방해하는 가장 큰 장애물이 바로 자신의 마음 속 관찰자, 편집자이기 때문이다. 그것의 실체는 에고이다. 늘 나의 보이지 않는 내면적인 욕구와 욕망이 나의 세계인식을 가로막고 있듯이, 세상을 마음으로 투명하게 담아내는 데 그것은 자꾸만 창에 끼는 성에와 같은 것이며, 따라서 뿌옇게 담아낸 세상은 뿌연 글쓰기로 드러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에게 있어 글쓰기는 선이요, 명상이다. 자신의 근원 깊숙히 가닿아 깨어 있는 존재로서의 자신을 바로 보는 것, 그 마음에서 세상을 담아낸 글들이 만들어내는 글쓰기는 그 자체가 우주의 비밀을 간직한 홀로그램이다. 따라서 그에게 있어 글쓰기는 화두이다. 내가 어떤 곳에 어떤 사람을 마주하건, 어떤 대화를 하고 있건 그것은 나의 세상과 우주를 만들어내고 또한 그것은 글쓰기로 이어진다. 결국 글쓰기는 자신의 인생에 가장 절실한 문제인 깨달음으로 자신을 인도하게 되는 것이다.

자 이제 써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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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04-10-07 11: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쓰셨네요. 보관함에만 두고 읽어보지 못했는데 한번 읽어 봐야겠군요. 추천!^^

달팽이 2004-10-07 11: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반갑군요..간간히 들러 사진 열심히 퍼고 있답니다...물론 가끔 추천도 부지런히 하구요...

stella.K 2004-10-07 18: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면 저야 고맙죠.^^

달팽이 2005-01-14 22: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이미 한 것으로 아는데요...그리고 정기적으로 들르고 있답니다...
 
어느 날 나는 흐린 酒店에 앉아 있을 거다 - 1998 제1회 백석문학상 수상작 문학과지성 시인선 220
황지우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9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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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생은 한 번 피어난 꽃이다.

시는 인생의 이야기를 담는다. 그런 면에서 시도 한 편의 꽃이다.

인간의 상상력과 삶에 대한 생각들이 한 송이 꽃으로 피어난 글이다.

대학생일 때에는 그의 시를 잘 이해할 수 없었다. 나의 경험과 세상을 보는 시각이 아마 너무 고정적이고 견고하였기 때문이리라. 이제 그의 시를 비로소 감상할 수 있게 되었다.

그의 시가 가진 상상력은 세상을 일상의 눈을 벗어나서 보게 해준다. 도마 위에 있는 칼아래 누워 있는 넙치의 눈으로 본 세상이기도 하고, 현실의 삶이 마치 한 편의 꿈같이 보이며 이 환영의 삶을 탈출하여 맞이하는 무한무구의 세상, 피안의 세상으로 들어가는 문이 되기도 한다.

언제부터인가 시를 대할 때 나는 그 시를 쓴 시인의 마음과 대면하려는 노력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마음이 내 마음에 와 닿게 될 때 나는 전율한다. 그 떨림, 잊혀지지 않는 그 떨림을 찾아 오늘도 나는 시집을 펼치고 있는 것이다. "바깥에 대한 반가사유", "여기서 더 머물다 가고 싶다", "점점 진흙에 가까워지는 존재", "발작" 등 많은 시에서 그가 탈출하고자 하는 세상이 보인다. 그렇게 한 생각이 만들어내는 우주가 내 마음의 우주에 일으키는 파장이 나는 마냥 즐거운 것이다.

그 새로운 우주는 우리 일상 생활 어느 곳에서나 존재한다. "아주 가까운 피안"에서는 오후 늦은 햇살이 내리꽂히는 아파트의 측면 벽면에서 펼쳐지고 있다. 하지만 그것은 눈을 비비며 일어나 처음 사물을 대하는 풍경일 수도 있고, 맛없이 넘기는 아침 밥 한숟갈에서 펼쳐질 수도 있다. 그것은 세상의 모든 곳에서 펼쳐지기도 하지만 세상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 그것은 오로지 우리 마음 속의 문을 지나야만 드러나는 세상이기 때문이다.

그 마음의 문을 열어주는 것은, 그 마음이 지향하는 바일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어떤 마음으로 삶을 살아가는가, 그래서 어떻게 우리의 근원 그 깊은 곳을 향하며 사는가의 문제가 시를 쓰든, 그림을 그리든, 음악을 하던, 독서를 하든 그 행위와 결과물 속에 자신의 마음을 담아낼 수 있는 길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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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샘 2004-10-06 21: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요. 시는 나이가 들어갈수록 가슴을 치는 장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요즘은 아이들에게 시를 감상하기보다는 나중에 감상하도록 기억해 두라고 하는 편이지요. 잘 읽고 갑니다.

stella.K 2004-10-07 11: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가을 날 시집 한권 뽑아 들어야할 것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