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누구인가
라마나 마하리쉬 지음, 이호준 옮김 / 청하 / 200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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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살이 났다. 아침에 잠에서 깨어난 나는 천근의 무게에 짓눌려 허우적대고 있었다. 그 때 나에게 잡힌 책이 바로 이것이다. 나의 무거운 육체를 느끼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그 고통에 시달리면서 나는 나를 시달리게 하는 그 무엇을 찾으려고 하였다. 결국엔 내가 만든 에고에 의해 이러한 현상이 생기게 되고 있음을 나는 알게 되었다.

나는 누구인가? 이 물음을 던지는 자는 누구인가? 그리고 이 물음에 대답하는 자는 누구인가? 자신의 본래모습을 알기 위해 우리는 외부세상으로 향하고 있는 시선을 자신의 내면으로 돌려야 한다. 이것이 자아탐구이다. 그래서 일상생활에서 자신의 육체와 자신을 동일시하고 있는 그 마음의 현상을 바로 보아야 하며, 그 나라고 하는 마음이 생기는 것과 동시에 세상이 자신에게 현상함을 보아야 한다.

그런 일상 생활 속에서 이러한 것을 보고 느끼고 알게 되는 '나'는 누구인가? 하는 물음을 가지고 자아탐구를 계속 해나가야 한다. 그래서 육체적 자아의 허상을 알게 되는 '진아'가 무엇인지 알게 될 때 이 현상이 꿈과 같음을 알게 되고 세상의 모든 현상을 겪으면서 고통스러워하는 자신의 본래모습이 무엇인지를 알게 된다고 그는 말한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누구인가? 하는 물음이 마음 속에서 일으키는 떨림을 일상생활에서 지속시킬 수 있어야 우리는 진리에 이를 수 있다. 그래서 그 물음이 온 세상이 되어 나를 초월할 때 비로소 우리는 진리의 문으로 들어서게 된다.

꿈 속에서도 우리는 자신의 경험을 한다. 어떤 행위를 하고 그 행위를 하면서 어떤 마음을 만들어내고 그 마음에 따라 세상을 만들어낸다. 하지만 깊은 잠 속에서 우리는 자아를 초월한다. 자신의 육체와 나라는 느낌마저 지워진 그 공간에서도 나의 실재에 대한 의심을 하지 않는다. 자아를 초월한 자아는 현실에서도 꿈에서도 숙면에서도 늘 존재한다. 하지만 우리는 그것에 주의를 집중하지 못한다. 그래서 꿈과 현실로 돌아오면 아주 짧은 순간의 존재의 느낌 후 나와 함께 순식간에 생겨버리는 세상을 마치 진실인양 여기며 살고 있는 것이다.

나는 누구인가? 어떤 대상을 오감으로 접하면서 생기는 어떤 마음이 도대체 어디에서 비롯되는 것인지 늘 탐구해야 한다. 나의 오감이 작동하고 마음이 생겨나는 그 근원에 대한 집중이 늘 필요하다. 그것은 바로 '나는 누구인가?'하는 물음을 놓치지 않는 것이다. 그 '나는 누구인가?'하는 물음이 단순한 생각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가슴에서 울리는 떨림으로 만들어내어야 한다. 내 가슴 속에 진정한 내가 산다. 세상의 온갖 경험속에서도 그것을 지켜보는 내가 누구인지 알게 될 때 세상은 난 적도 없고 없어진 적도 없는 있는 그대로의 세상이 될 것이다.

자 이제 자신에게 묻자, '나는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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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팀전 2005-02-27 08: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의 자아는 타인의 자아이다."..라는 말이 떠오르는군요.내 가슴 속에 진정 내가 산다는 것에 그다지 동의하지 않습니다.탈자아론이라고 하나......

도연 2005-04-06 15: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 진아를 알고 싶다. 몇 년전, 이 책을 읽으면서 난, 지금의 내가 '나' 아님을 알았다. 무상심~~~
 
인생의 참스승 선비 2
이용범 지음 / 바움 / 200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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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선비들의 곧은 정신의 칼날은 나의 허수아비 마음을 사정없이 내리쳐서 산산히 부서버렸다. 그들의 삶 속에서 바늘 하나 꽂을 곳 없는 기개에 나의 게으르고 나태한 정신은 사정없이 베이고 있었다. 죽음 앞에서조차 한 치의 흐트러짐없는 그들의 행동이 단순히 맹목적 신념에서 비롯된 것이 아님을 우리는 그들의 삶 속에서 알 수 있다.

삶을 이끄는 것은 무엇인가? 사리사욕을 벗어나 옳음을 위해 자신의 정신의 칼날을 세워가는 것이 그들에겐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삶이었다. 그리하여 죽음 앞에서도 태연하고 곧은 절개를 지킬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의 정신이 그들의 몸으로 체화된 인격을 이루었음을 말해준다. 인생의 의미에 대한 깊은 통찰이 있었음을 보여준다. 정승의 벼슬에 올라서도 조금도 자신의 부를 축적하지 않았으며, 관직에서 물러날 때 다 쓰러져가는 초가삼간 한 채로 미련없이 떠날 수 있었던 자의 뒷모습에서 어쩌면 아주 까마득히 잊혀져버린 군자와 참선비의 모습을 우리들 마음 속에서 찾아헤매게 만들고 있는지도 모른다.

나의 삶을 지탱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내 마음 속에서 아직 떨쳐내지 못한 아상이 슬며시 고개를 들이밀 때면 선비들의 칼날을 치켜세워야겠다. 그 서슬퍼런 칼날위로 나의 부끄러운 알몸을 드러내어야겠다. 내 삶 속에서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칼날 앞에서 까발려야겠다. 그리하여 내 허영과 자만의 얼음이 찬란한 햇볕아래 완전히 녹아내려 아무것도 없는 그 곳에서 나의 본모습을 발견해야 하리라. 그래서 비로소 나의 삶이 온전히 나의 것이 되도록 하는 정직한 대나무의 마음을 배워야 한다.

"뿌리깊은 나무는 바람에 흔들리지 않는다."고 했다. 나무에게 줄기와 가지를 지탱하는 것이 뿌리이듯이 사람을 지탱하는 뿌리는 정신일 것이다. 그 정신이 곧고 굳을 때 비로소 세상의 풍파에 견디어 낼 수 있다.  뿌리를 깊게 내리고 거센 폭풍속에서도 말없이 줄기를 세우고 가지를 뻗어내어 세상을 향해 팔을 벌릴 수  있다. 그것은 사람을 사람이게끔 하는 본연의 모습을 보는 눈을 가지는 것이다. 몸의 생멸에 의존하지 않는 자신의 본래모습을 바라보는 관을 통찰할 때 비로소 몸에 의지하지 않는 참된 삶을 살아갈 정신적 뿌리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내 삶의 뿌리, 내 마음의 바탕, 그 곳에 내가 산다. 그 곳에 사는 참된 나를 응시할 때 나에게서 생로병사는 고개를 숙인다. 미혹한 사랑의 유혹도, 탐 진 치의 아상도, 깨닫고자 하는 그 마음도 쉬게 두고 자유롭고 자재한 인생을 대할 수 있게 된다. 마음없이 벼슬에 나아가고, 마음없이 세상에 나아가며, 마음없이 관직에서 물러나고, 마음없이 세상에서 물러나게 된다. 이 한 점에서 나도 세상도 시작되니, 이 한 점에서 나도 세상도 맺음된다. 열어내는 그 한 점이 닫는 한 점이 되니, 그 한 점은 무엇인가? 그것이 삶의 비밀이다. 그것을 찾는 것이 참선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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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참스승 선비 1
이용범 지음 / 바움 / 200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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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삼국시대에서 항일기에 이르는 우리 옛 선비들의 일화를 담아낸 이 책은 오늘날의 우리 지식인들에게 주는 교훈이 작지 않다. 옛 선비들에게는 글공부에 대한 집념과 열정이 남달랐으며, 그것이 오늘날처럼 명예나 치부 또는 권력에 있지 아니하였다. 물론 부와 명예 권력을 위해 권력자에 빌붙어 아첨하는 소인배들이 없지 않았지만, 적어도 공부하는 옳은 방향을 지키며 살았던 인생의 스승들이었다. 높은 지위에 오를수록 청빈함과 굳은 절개를 놓치지 않았으며, 때로는 목을 겨누고 있는 서슬퍼른 칼날 앞에서도 자신의 소신을 굽히지 않고 초개와도 같이 자신을 버릴 줄 아는 그들에게서 참된 삶의 의미가 무엇인지 배우게 된다.

오늘날의 우리사회의 지식인들을 보라. 지식을 상품으로 팔아서 치부를 하려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대중들의 감각과 쾌락과 재미를 충족시켜 자신의 뜻을 꺽고 인기에 영합하려는 자들은 또 얼마나 많은가? 학문의 분야가 전문화, 세분화될수록 자신의 전문분야에 대한 오만함과 교만함으로 진리에 대해 외경스러운 태도를 이미 버린 자 또한 얼마나 많은가? 그리고 자신의 사회적 지위에 따라 거만함이 커지고 사람들 대하는 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여기는 자들 또한 얼마나 많은가?

우리의 옛 선비들은 자신의 글공부에 있어 우선 좁고 세분화된 길을 택하지 아니하였다. 文,史,哲  詩,書,畵 에 능해서 삶과 현실을 전체적으로 통찰하는 눈을 가지고 있어 어느 한편에 치우침이 없었다. 또한 글공부의 바탕에 인격함양과 삶에 대한 깨달음이 있었기 때문에 사회적 지위나 부와 권력을 뜬 구름과 같이 여길 수 있었다. 따라서 공사에 무사함으로 대하였기에 마음에 한 점 부끄러움이 없었으며, 자신의 소신에 대해 죽음앞에 직면해서도 떳떳하게 맞이할 수 있는 마음의 준비가 되었던 것이다. 그런 면에서 선비들은 인생의 참스승이라 불릴만하다. 이런 사람들이 너무나도 많았고, 또한 이런 사람들의 마음이 통하는 세상이었기에 비록 물질적으로 풍요롭지 못하고 보다 불편한 삶을 살았다 하더라도 당시의 삶이 마냥 부럽게만 느껴지게 되는 것이리라.

그런데 요즘 세상에서는 자신의 사회적 지위에서 무사 (無私)함을 실천하는 사람들을 보기가 어려워졌다. 또한 무사함의 삶이 세상사람들에게 인정되지 않고 오히려 무사함을 행하는 사람의 삶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 우선 나조차도 반성할 일이 태산같으니 말이다. 하지만 마음으로라도 무사함을 행하려고 노력하고 살아야 한다. 옳은 것을 위해 부모도 버리고 자식도 버리는 일들과 같은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는 어렵더라도 적어도 일들에 처해 마음 속에 허물을 스스로 더 지어서는 안된다는 생각이 든다.

234명이나 되는 선비들의 일화와 삶을 책 두 권으로 담아내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적은 지면에 그들의 삶까지 다 담아내기는 불가능할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은 대표적인 일화를 통해 그 사람의 됨됨이에 대해 우리들에게 교훈을 주는 책으로 만족해야 할 책이다. 하지만 읽는 이의 입장에서는 대표적인 일화도 좋지만 그 이면의 사상을 엿볼 수 있는 지면의 할애가 있었더라면 더 감동적이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그 사람의 행동과 일화는 그 사람의 됨됨이와 그 사람의 삶에 대한 안목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가 배워야 할 것도 그 사람의 행동과 일화이기보다는 그 사람의 삶을 사는 태도와 그 태도를 형성한 삶에 대한 보다 성숙하고도 깊은 관이 아닐까 하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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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 - 나의 동양고전 독법
신영복 지음 / 돌베개 / 200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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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는 사람의 명성을 보고 산 책이 실망스러운 경우도 있습니다. 물론 신영복 선생님의 삶과 학문을 존경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책은 또 책 나름대로의 평가가 필요한 법입니다. 이 책은 관계론이라는 입장에서 고전이 가지고 있는 시대적 상황에 대한 해석과 이전의 주류적인 사상의 비판과 반성 속에서 나온 것임을 보여주는 면에서는 새로운 고전해석이라 볼 수 있으며 또한 현재적 의미의 해석에서도 그 의미를 가진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솔직하게 말해서 열흘간의 기간동안 한문을 따라 써가면서 그 의미를 마음 속에 담아보면서 관계적으로 본다는 것이 때로는 고전을 써내려갔던 선현들의 마음을 제대로 담아내는 데 한계를 가지고 있음을 내 속의 또 다른 나는 알고 있었습니다.

물론 고전은 고전을 읽는 사람의 마음 속에 새롭게 담겨지는 것이기 때문에 고전을 읽는다는 것 자체가 재해석입니다. 따라서 신영복 선생님의 관계망이란 의미 역시 과거가 현재에 이어지고 미래의 우리 사회에 비전을 제시해줄 수 있는 것으로 열리기 위해서는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뛰어넘는 마음의 공간이 있어야 합니다. 그 마음의 공간을 찾아내는 것이야말로 어쩌면 우리가 고전을 만들어내었던 지은이와 직접 만날 수 있는 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주역은 이 책의 내용으로 무엇인가를 이해하기가 어렵다는 것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각 각의 고전이 만들어진 사회적 역사적 상황은 그 고전이 가지고 있는 의미를 더욱 전체적인 상황 속에서 이해하게 해줍니다. 하지만 그것이 그 내용 자체에 대한 풍부한 이해를 우리에게 가져다주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선생님께서도 아직 동양 고전에서 마저 파내어야 할 마음의 우물이 남아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노자에서는 '도가도 비상도'에서 그 도가 무엇인가를 깊이 체득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입니다. 그것은 무위라는 개념으로 표현되기도 하고 무사 또는 선으로 표현되기도 합니다. 문맥에 따라 말은 바뀌지만 그 뜻은 같은 것입니다. 그래서 이 핵심적인 것에 다다르게 하기 위한 서술의 모습을 갖추는 것이 책을 쓰면서 가장 고려해야 할 요소가 아닌가 하고 생각합니다.  장자에서는 소요유가 무엇인가? 곤과 붕이 무엇인가? 결국 말은 달라도 표현은 달라도 그 모든 것이 하나를 가리키기 때문입니다.

유가 사상의 근본은 무엇이고 그것이 노장 사상과 어떤 관계를 가지고 있는가? 법가 사상은 왜 천하를 통일하였는가 하는 질문과 함께 왜 단명할 수 밖에 없었는가를 함께 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세상을 움직이는 법칙은 현실을 움직이는 것과 그 현실의 이면에서 그것을 움직이는 힘들이 상호작용하고 있습니다. 현상을 움직이는 힘들,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시간과 공간을 얼마만큼 초월해서 그것을 설명하고 있는 것인가가 그것의 생명을 결정한다고 생각합니다.

책을 읽으면서 나는 이 책은 한 달 짜리 책인가 1년짜리 책인가 10년짜리 책인가 100년짜리 책인가 1000년짜리 책인가 아니면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서 영원히 존재할 책인가를 묻습니다. 제자백가 사상은 국가의 성립과 인간의 도리에 관해서 대체로 모든 실험들을 해보았던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 호흡이 얼마나 큰 것인지는 우리가 가진 호흡을 최대한의 길이로 늘여보았을 때에만 그 장단이 비교가 될 수 있습니다. 때로는 세월의 흐름이 그 생명성을 드러내기도 합니다. 하지만 결국엔 그것이 자신의 내면속에서 이해되어질 때에야 비로소 그 의미는 되살아나는 법입니다.

이 책은 '미래로 가는 길을 오래된 과거에서 찾는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과거와 미래가 현재 속에 있습니다. 그 순간 속으로 깊이 들어가서 시간과 공간이 멈추어진 자리에서 우리는 진정한 관계망을 들여다볼 수 있습니다. 과거도 아니요, 현재도 아니요, 미래도 아닌 그 곳에서 우리는 과거, 현재, 미래를 모두 담은 새로운 삶의 길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것이 동양 고전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옛 선현들의 마음 속으로 우리가 직접 들어가서 그들과 하나되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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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연 2005-02-06 23: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금 읽고 있는데...님의 리뷰가 도움이 될 듯 하네요^^ 잘 읽었습니다.

달팽이 2005-02-07 11: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별 도움이 될지 모르겠습니다...

초아낭자 2005-05-31 16: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6월 3일부터 8일까지 코엑스에서 서울국제도서전이 열립니다.
이 기간 중에 신영복 선생님의 사인회가 있을 예정입니다.
많은 관심과 참여, 그리고 홍보를 바랍니다.

사인회 일시: 6월 5일(일) 1시~3시(2시간)
장소: 코엑스 이벤트홀 태평양관

달팽이 2005-06-01 09: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그렇군요...알겠습니다.
 
우리가 사랑해야 하는 것들에 대하여
조은 지음, 최민식 사진 / 샘터사 / 200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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렌즈를 통해 보여진 세상은 바라보는 이의 마음을 드러낸다. 사진은 순간포착의 예술이다. 사진작가는 가장 극적이고 감동적인 순간을 포착하기 위해 긴장의 끈을 놓지 않는다. 하지만 그런 긴장감이 최민식의 사진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가장 평범한, 가장 자연스러운 순간을 마음에 담아내어 자기도 모르게 누르는 셔터속에 담겨진 세상을 한참 응시하고 있으면 그가 펼쳐진 세상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는 도리를 터득하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가 담아낸 사진에는 전쟁으로 인해 가족을 잃은 깊은 슬픔과 엉겨있는 상실감도 스며있고, 근대화의 과정에서 아무런 이유도 모른채 혹독한 노동과 쳇바퀴처럼 제자리만 돌아가는 벗어날 수 없는 굶주림과 생존에의 강한 갈망도 스며있다. 하지만 그의 사진 속에는 이 모든 것을 이겨내고 승화시키는 사랑의 숨결이 도사리고 있다. 그 삶의 의미를 꿰뚫어보는 깨달음이 있다. 그 사랑과 깨달음 속에서 불평등은 평등으로, 억압과 착취는 연민과 용서로 탈바꿈한다. 건널 수 없을 것같은 삶과 죽음이 그 속에서 하나가 된다. 이해할 수 없는 것이 이해되어지고, 보이지 않는 것이 마음의 눈앞에 펼쳐진다.

삶의 가장 고통스럽고 처절한 순간들, 고난과 시련의 세월을 견뎌내며 그것이 손마디에 이마에 볼에 온몸에 남긴 삶의 흉터자국들, 그것을 바라보는 그의 시선은 고통으로 찌들어 있지 않다. 오히려 그 차갑고 싸늘해지고 쪼그라든 영혼의 나무에 생명수를 뿌려 다시 가지가 돋게 하고 새싹을 틔우게 한다. 그의 따뜻한 눈빛에서 우리는 사랑을 읽을 수 있다.

그 사랑은 우리의 삶이 아무리 흙탕속에서 뒹굴고 있어도 그 삶을 통하여 우리 영혼이 정화되고 성숙되는 것을 지켜준다. 삶의 바닥처럼 보이는 비밀의 문을 지나 그 한없이 떨어지는 바닥을 한없이 치솟는 천상으로 만들어내는 마음의 비밀, 그 비밀 속에서 삶의 진정한 의미는 숨겨진 베일을 벗는다. 어둠이 빛이 되고, 절망이 희망이 되고, 고통이 희열로 바뀌는 마법의 주문은 팔과 다리를 잃고 밥 한 그릇을 위해 몸부림치는 장애인을 바라보는 우리의 마음을 아프게만 하지는 않는다.

세상 사람 모두가 제 각각의 얼굴을 가지고 있듯이 모두가 제 각각의 인생을 가지고 산다. 사진작가 최민식의 인생의 화폭을 채우는 것은 사진이다. 그 사진을 통해 세상은 그의 마음으로 반영된다. 그가 사진에서 인생을 배우고 영혼을 성숙시켜가듯이 나에게도 사진이 필요하다. 그 사진은 나에게 내 삶의 의미를 찾게 해주고 내 삶을 보다 풍요롭고 아름답게 만들어줄 것이다. 자 이제 내 사진을 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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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연 2005-02-06 00: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타부타 말이 필요없이 사진작가의 시선이 담긴 사진 한 장만으로도 가슴에 그 의미가 전해진다는 것, 참 멋있는 일인 것 같습니다...최민식 님의 사진들은 그런 심정을 절렬하게 느끼도록 하는 힘이 있지요..

달팽이 2005-02-06 11: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동감입니다. 오랫만이군요...비연님...

달팽이 2005-02-06 20: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고마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