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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 - 나의 동양고전 독법
신영복 지음 / 돌베개 / 2004년 12월
평점 :
때로는 사람의 명성을 보고 산 책이 실망스러운 경우도 있습니다. 물론 신영복 선생님의 삶과 학문을 존경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책은 또 책 나름대로의 평가가 필요한 법입니다. 이 책은 관계론이라는 입장에서 고전이 가지고 있는 시대적 상황에 대한 해석과 이전의 주류적인 사상의 비판과 반성 속에서 나온 것임을 보여주는 면에서는 새로운 고전해석이라 볼 수 있으며 또한 현재적 의미의 해석에서도 그 의미를 가진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솔직하게 말해서 열흘간의 기간동안 한문을 따라 써가면서 그 의미를 마음 속에 담아보면서 관계적으로 본다는 것이 때로는 고전을 써내려갔던 선현들의 마음을 제대로 담아내는 데 한계를 가지고 있음을 내 속의 또 다른 나는 알고 있었습니다.
물론 고전은 고전을 읽는 사람의 마음 속에 새롭게 담겨지는 것이기 때문에 고전을 읽는다는 것 자체가 재해석입니다. 따라서 신영복 선생님의 관계망이란 의미 역시 과거가 현재에 이어지고 미래의 우리 사회에 비전을 제시해줄 수 있는 것으로 열리기 위해서는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뛰어넘는 마음의 공간이 있어야 합니다. 그 마음의 공간을 찾아내는 것이야말로 어쩌면 우리가 고전을 만들어내었던 지은이와 직접 만날 수 있는 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주역은 이 책의 내용으로 무엇인가를 이해하기가 어렵다는 것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각 각의 고전이 만들어진 사회적 역사적 상황은 그 고전이 가지고 있는 의미를 더욱 전체적인 상황 속에서 이해하게 해줍니다. 하지만 그것이 그 내용 자체에 대한 풍부한 이해를 우리에게 가져다주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선생님께서도 아직 동양 고전에서 마저 파내어야 할 마음의 우물이 남아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노자에서는 '도가도 비상도'에서 그 도가 무엇인가를 깊이 체득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입니다. 그것은 무위라는 개념으로 표현되기도 하고 무사 또는 선으로 표현되기도 합니다. 문맥에 따라 말은 바뀌지만 그 뜻은 같은 것입니다. 그래서 이 핵심적인 것에 다다르게 하기 위한 서술의 모습을 갖추는 것이 책을 쓰면서 가장 고려해야 할 요소가 아닌가 하고 생각합니다. 장자에서는 소요유가 무엇인가? 곤과 붕이 무엇인가? 결국 말은 달라도 표현은 달라도 그 모든 것이 하나를 가리키기 때문입니다.
유가 사상의 근본은 무엇이고 그것이 노장 사상과 어떤 관계를 가지고 있는가? 법가 사상은 왜 천하를 통일하였는가 하는 질문과 함께 왜 단명할 수 밖에 없었는가를 함께 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세상을 움직이는 법칙은 현실을 움직이는 것과 그 현실의 이면에서 그것을 움직이는 힘들이 상호작용하고 있습니다. 현상을 움직이는 힘들,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시간과 공간을 얼마만큼 초월해서 그것을 설명하고 있는 것인가가 그것의 생명을 결정한다고 생각합니다.
책을 읽으면서 나는 이 책은 한 달 짜리 책인가 1년짜리 책인가 10년짜리 책인가 100년짜리 책인가 1000년짜리 책인가 아니면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서 영원히 존재할 책인가를 묻습니다. 제자백가 사상은 국가의 성립과 인간의 도리에 관해서 대체로 모든 실험들을 해보았던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 호흡이 얼마나 큰 것인지는 우리가 가진 호흡을 최대한의 길이로 늘여보았을 때에만 그 장단이 비교가 될 수 있습니다. 때로는 세월의 흐름이 그 생명성을 드러내기도 합니다. 하지만 결국엔 그것이 자신의 내면속에서 이해되어질 때에야 비로소 그 의미는 되살아나는 법입니다.
이 책은 '미래로 가는 길을 오래된 과거에서 찾는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과거와 미래가 현재 속에 있습니다. 그 순간 속으로 깊이 들어가서 시간과 공간이 멈추어진 자리에서 우리는 진정한 관계망을 들여다볼 수 있습니다. 과거도 아니요, 현재도 아니요, 미래도 아닌 그 곳에서 우리는 과거, 현재, 미래를 모두 담은 새로운 삶의 길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것이 동양 고전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옛 선현들의 마음 속으로 우리가 직접 들어가서 그들과 하나되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