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보다 오래 남는 사진 찍기
강영의 글.사진 / 북하우스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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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에서 빠뜨릴 수 없는 것이 사진이다. 우리는 기억하고 싶은 삶의 경험들을 사진이라는 매체를 통해 영원화시킨다. 비록 한 장의 이미지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우리들의 과거의 체험과 현재 그것을 바라보는 느낌, 그리고 그것을 통해 우리 앞날의 모습까지 그려보게 한다는 점에서 과거, 현재, 미래를 담은 것이다. 또한 달리 표현하면 시간이 사라져버린 이미지이자 삶의 절대적 체험이기도 하다.

  보통 사진이라고 하면 시각의 예술이다. 하지만 사진 한 장이 드러내는 이미지는 단순히 시각적 요소로만 구성된 것은 아니다.  그 속에는 청각과 후각, 미각을 포함한 오감각이 모두 들어있다. 나아가 때로는 그 속에 인간 존재의 심연을 보여주는 무의식과 잠재의식의 영역이 조각퍼즐의 한 조각 조각처럼 듬성 듬성 수면 위로 떠오르기도 한다. 사진을 보는 독자로서 내가 중심적으로 보는 것은 이것이 내 존재의 심연을 얼마나 떨리게 하고 있는가이다.

  그녀는 아마추어 사진가이다. 하지만 그녀의 사진을 단순한 아마추어 여행사진이라고 보기에는 아쉬움이 있다. 그것은 우선 그녀의 여행동기에서부터 그러하다. 물론 거창하게 자기와의 만남이라든가, 삶의 깨달음을 위한 것이라고는 밝히지 않았지만 그들의 여행이 단순히 자신의 보금자리와 일자리를 유지한 채 휴가철에 떠나는 휴식이나 삶의 위안이 아니라 바로 여행자체의 삶을 겪어보기 위한 것이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그녀는 자신의 의지로 비록 짧지만 한 생 속에서 선택한 또 다른 생을 살아본 것이고 그 또 다른 생의 기록이 바로 이 책에 담겨진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녀의 체험이 얼마나 충실하게 사진으로 담겨졌는지 알 수는 없지만 그녀의 사진을 보고 있으면 그가 세상을 보는 따뜻하고 신비로운 눈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낯선 문화를 대할 때에는 늘 자신 속에 익숙해진 문화와 상이하거나 대립될 때 갖게 되는 일종의 경계심이 누구나 있기 마련인데, 적어도 파인드 안에 피사체를 담아낼 때에는 그런 경계심이 자연스레 녹아내리고 있음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녀의 말대로 우열과 시비를 떠나 상대방과 또는 대상과 직접 교감하면서 생기는 수용이 그런 태도를 만들어내었기 때문이리라. 한 장의 이미지를 파인드 속에 담아내기 이전에 우선 그 이미지를 우리의 뇌속에서 그리고 가슴속에서 만들어내어야만 하기 때문이다.

  그녀의 사진이 촛점을 맞춘 곳은 내면적 소리이다. 그것은 이미지화된 풍경과 인물 속에 담긴 그 사람 고유의 소리가 가슴에 와닿는 떨림을 만들어낼 때의 바로 그 소리이다. 그 소리야말로 사진기라는 매체로 담아낼 수 없는 것을 담아내는 특별한 능력을 필요로 한다. 피사체가 내는 소리를 담아내는 데에도 장애가 있고, 그 담아낸 소리를 이미지로서 타인에게 전달하는 데에도 장애는 존재한다. 물론 그 사이에 카메라나 사진가가 담아낼 수 없는 능력의 한계도 있겠지만 피사체를 대하는 사진가의 마음은 무한히 열려야 하는 것이다. 자신이 담아내지 못한 것을 타인에게 전달할 수도 없는 법이니까....

  그녀의 사진은 계속될 것이다. 그녀의 삶이 그러하듯이 늘 그녀는 과정속에 놓여져있기 때문이다. 도달할 수 없는 "궁극의 한 장"을 찍어내기 위해 그녀는 오늘도 세상을 보는 특별한 눈을 만들어가고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녀가 여행을 통해 찾으려 했던 삶의 의미들을 파인드에 담아내기 위해 스스로가 사진기가 되고 피사체가 되고 동시에 그녀도 될 때에 결정적 한 장에 가까워져가는 모습을 보게 될 것 같다. 그것이 시각적 의미를 넘어 오감각, 나아가 마음을 담아내고 현재와 과거, 미래까지도 단 한 장의 사진에 담아내는 것이 될 것이다.  결국 한 장의 사진에서도 인생은 담겨져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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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표류
다치바나 다카시 지음, 박연정 옮김 / 예문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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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새부터인가 나이들어가는 것에 대한 동경이 나에게서 생기고 있었다. 또한 매년 바뀌어가는 젊은이들을 대하는 것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었다. 사실 나는 요즈음의 젊은이들을 그렇게 썩 좋아하는 편이 아니다. 너무나도 천편일률적인 미래의 직업을 희망하고 돈과 부를 쫓아서 일확천금을 바라기도 하고, 무엇보다 자신의 내면적 소리에 귀기울임없이 외부적 기준에 맞추어서 살려고만 하는 모습들이 더욱 못마땅한 것이다. 하지만 때로는 그들의 감당할 수 없는 에너지에 내가 지쳐서이기도 하다. 점점 내가 희망하는 삶을 이야기할 때마다 나의 다리에서 힘이 빠지는 것을 느낄 때에야 비로소 나도 나이를 먹고있다는 사실을 실감하게 되었다.

  하지만 젊음은 역시 생명의 에너지로 가득차 있다. 젊음은 그 자체의 속성으로 말미암아 노년기의 성숙함을 가질 수 없다.  자신이 하고 싶은 내면의 열정이 가득하면 일단은 발로 뛰는 것이다. 좌충우돌해도 좋다. 사실 성숙함이라고 얘기하는 성인들의 지혜라고 하는 것이 때로는 실패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에 뿌리를 내린 기형식물일 수도 있으리라 하고 생각해본다. 실패야말로 인생에서 정말 값진 것을 얻게 해주는 연금술이다.  실패와 좌절을 두려워하고서 자신의 꿈을 이루었던 사람들이 어디 있으랴.

  지의 달인, 다치바나 다카시가 일본의 11명의 젊은이들의 인생이야기를 담았다. 이 좌충우돌의 끝없는 방황과 좌절의 이야기 속에 그는 일본의 미래를 볼 수 있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외부의 기준에 맞춘 삶의 방식을 거부하고 자신의 내면의 목소리를 따라 자신의 삶을 개척한 젊은이들의 삶이야말로 앞으로 우리사회가 지향해야 할 삶이 아닌가? 학교의 기준으로는 열등생이자 낙오자였던 그들이 자신의 삶의 목표를 발견하는 순간 무서운 노력과 질주로 자신의 꿈을 찾아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그 과정은 자신에게 맞고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이기 때문에 돈이나 사회적 지위와는 상관없이 스스로가 행복하게 인생을 살 수 있는 길이 되었다.

  문득 묻어버리고 싶었던 나의 젊음과 방황이 떠올랐다.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내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해 무척이나 많은 방황을 거쳤던 그 시기가 지금의 나를 있게 만들었다. 그 방황과 좌절이 내 속에서 어떤 일을 했는지 비록 말로 표현할 수는 없다고 해도 그 방황이 없다면 지금의 내 삶의 목표와 방향이 또한 서있겠는지를 반문해본다.

  그러고보면 우리 인생에서 버려야 할 것은 없다. 내가 걸어가는 인생의 길 어디에서나 중요한 것은 그 시기를 맞아들이는 나의 마음가짐과 태도일거라는 생각이 든다. 아직 내가 청춘의 표류가 없었다면 좀 늦으면 어떠랴, 지금부터라도 진정한 내 것을 찾기 위해 표류해야 할 것이 아닌가? 사실 우리는 인생전체를 관통하여 표류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삶의 목표를 찾기 위한 것이든지, 목표로 나아가기 위한 것이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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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둔이 2005-04-11 16: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실 삶에는 방황이란 없다
더욱이 청춘에 표류란 없다

방황이 없기에 삶은 한방울의 대양일 수 있으며
표류함이 없기에 청춘이 한덩이의 땅으로 되는 것이다.

바람이 불면 파도가 인다 물결이 부서진다
삶의 방황이란 바로 그런 것이다.

시간이 흐르면 푸르름에 물이 든다
청춘의 표류란 그렇게 멋져지는 것이다.

표류하고 방황하는 것이
표류하고 방황할 때여야 만이
표류하고 방황하는 것이니

물결이 부셔져도 여전히 바다의 물이듯이
삶이 방황하여도 여전한 삶

푸르름이 붉게 물들어도 여전히 대지의 일이듯
청춘이 표류하여 변한다 한들 여전한 청춘

그러니 삶의 방황을 두려워말고
청춘의 표류에 몸을 던져라

방황으로서 삶을 구원하고
표류하므로써 청춘을 사수하라

삶과 청춘은 어디로 가는 것이 아니고
방황하고 표류하며 삶과 청춘의 자리에 머무는 것이거니

이것이 바로 우리 사는 생명의 온전한 비밀이다.

2005-04-13 09: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달팽이 2005-04-13 10: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반갑군요..복순이언니님... 감동적인 책입니다...

달맞이꽃 2005-05-06 10: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달팽이님... 잘 보았습니다...

달팽이 2005-05-06 11: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첨 뵙겠습니다.
 
미래로부터의 반란 - 김진경 교육 에세이
김진경 지음 / 푸른숲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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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래로부터의 반란이 일어나고 있다. 거리에서 사이버공간에서 학교에서도....입시위주의 대학교육으로부터 소외되어 왔던 우리의 아이들이 옛날에는 화장실로 몰려서 자기들만의 문화를 생산하고 소비했다면 지금은 교실로 사이버공간으로 자신의 몸으로 그것이 옮겨왔다고 한다. 자기 몸의 정체성을 찾기 위한 여러 가지 노력들(머리를 물들이고 코와 혀 배꼽에 피어싱을 하고 문신을 새겨넣는 행위 등)에서 부터 시작된 미래세대들의 반란은 어른들이 침범할 수 없는 가상공간에 그들의 성채를 높이 쌓고 자신들만의 세계를 만들어내고 있다. 이는 세대간 의사소통구조를 더욱 단절시키고 있다. 예전에는 교사의 권위에 짓눌려 있던 교실의 풍경도 사뭇 달라졌다. 학교의 권위에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들의 정체성을 찾는 아이들이 교실을 장악해가고 있고, 이젠 교사의 입김이 교실 전체를 커버하기엔 그들이 만들어내는 공간이 너무도 넓어져버렸다.

  그들이 살아가는 세상은 변화의 속도가 너무나 빨라져버렸다. 뭔가에 집착하고 안주하고 있을 때에는 그 무엇인가는 우리들의 기억 속에만 존재할 뿐 이미 세상에서는 사라져버린다. 이런 세상에서 자라는 아이들의 의식 역시 유연해졌다. 기성세대의 권위적인 삶의 질서와 기준으로 그들의 삶을 몰아가는 것은 이미 시대착오적인 것이 되어 버렸다. 그들은 이미 어린이가 아니다. 이 세상을 읽어내고 자신의 삶을 살아가기 위한 인생계획이 이미 그들의 마음 속에 자리잡고 있는지도 모른다. 문제는 그런 아이들조차 과거의 기준으로 학교와 우리의 교육이 학교 밖으로 내몰고 그들 앞에 선을 그어 내버린다는 점이다.

  하지만 한국의 교육제도와 입시제도는 사회의 변화를 담아내는 큰 틀의 변화없이 기존의 질서를 유지한 채 겉옷만 갈아입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이러한 교육개혁이라는 명분 속에는 기존의 중산층과 현 정부들어서 등장하고 있는 중간층 상층부와의 권력다툼구조가 그대로 잠재되어 있다는 점이다. 자신들의 경제적 지위와 부를 바탕으로 기본적인 기득권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자기들간의 자리다툼을 위한 패싸움이 현실변화를 고려한 근본적인 교육제도의 개선없이 임시방편적인 정책만을 양산하게 하고 있다.

  이미 세계적으로는 지식기반사회의 도래와 더불어 국가의 발전방향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 더불어 교육개혁이 전세계적으로 있어왔다. 프랑스와 영국, 미국의 클린턴 행정부의 교육대개혁은 하나같이 교육관료의 관료주의적 관행을 일소하고 교사들의 자율성과 창발성을 강조하여 획일적인 주입식 교육에서 벗어나 학생들이 자신의 진로에 대해 폭넓게 파악하고 그에 대한 대비를 할 수 있는 폭넓고 깊은 독서교육을 통한 준비와 지식과 기능의 학습이라는 목표를 추구해오고 있다. 하지만 독일과 일본, 그리고 한국의 세 나라만은 관료주의가 중심이 되어 개혁을 추진하고 있음으로 해서 관료주의적 폐해를 그대로 노정하고 있는 현실이다.

   그의 교육현실을 조망하고 개혁하고자 바라보는 카메라의 렌즈는 처음 아이들의 의식으로부터 화장실에서 학교로 교육현실과 사회현실로 정부의 관료주의적 행태와 국가현실로 나아갔다. 하지만 이제 그 렌즈의 촛점을 다시 우리 스스로의 마음 속으로 돌려야 할 때다. 내 삶이 보다 의미있어지고 행복해질 수 있도록 만드는 교육, 내 아이의 삶과 희망을 이야기할 수 있는 교육이 무엇인지에 대해 우리 스스로가 반성해보고 작은 실천을 해야 할 때이다. 국가의 정책과 관료주의적 행패를 바로잡을 수 있는 것이 우리들의 바른 생각, 삶을 바라보는 보다 성숙한 태도와 가치관이 아닐까? 

  우리들에게 교육이라고 말해지는 것이 아이들에겐 삶이다. 그들이 우리에게 보내오는 반란의 메세지가 "엄마, 아빠, 나는 행복한 삶을 살아가길 원해요"하고 간절하게 외치는 것 같다. 이렇게 우리 기성세대들에게 보내오는 간절한 도움의 손길을 우리는 왜 듣지를 못하고 있는 것일까? 학교라는 우리가 이미 우리 아이들이 자라기엔 너무나도 좁다는 사실을 우리는 왜 알지 못할까? 사회현실이 어쩌니, 교육현실이 어쩌니 하고 늘 우리는 불평은 하면서도 그 사회구조 속에 묻혀 안주한다. 하지만 정말 중요한 것은 남탓, 제도탓, 세상탓 하기 전에 우리들의 마음을 먼저 살펴보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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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덕화 2005-04-06 08: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제도권의 교육보다는 진정한 자기 자신의 모습을 보게 해 주는 것, 그들이 영혼의 소리에 귀 기울이게 하는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하지만 갈 길이 너무 멀고 아득합니다. 우리가 딛는 작은 한 발자국이 지금 눈에 보이지는 않아도 나비의 날개짓처럼 퍼져나가길 바랄뿐입니다.

달팽이 2005-04-06 08: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혜덕화님, 공감합니다. 오랫만에 뵙습니다...
 
사진에 관하여
수잔 손택 지음, 이재원 옮김 / 이후 / 200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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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경험들은 순간 순간 변하고 한 순간 만들어졌던 세상은 한 순간마다 허물어지고 새로운 세상이 만들어진다.  현재는 순간 과거로 변하고 우리는 잡을 수 없는 현실 속에서 허무함을 느껴야만 한다. 그래서 우리는 현재를 붙잡아두고 싶어한다. 미래를 붙잡아두고 싶어한다. 이런 이유로 우리는 삶의 소중한 기억들을 사진이라는 매체를 통해 남겨두고 싶어한다. 대학교 시절, 신문에는 한 사회적 쟁점을 두고 찬, 반의 많은 논리들이 가득차 있곤 했고, 우리 사회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가져야 하는 사회학도로서 나는 늘 논리로서 무장한 글들의 범람으로 지쳐야만 했다. 바로 그 때 잡다한 논리와 수많은 잉크로 채워진 글들을 일축시키고 단 한 컷의 카르툰으로 보여주는 박재동의 만화는 그야말로 무릎을 치게 하는 것이었다. 사진의 매력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베트남전의 만행을 다룬 수백시간의 텔레비전보다  훨씬 더 반전여론을 들끓게 만들었던 것이 후잉 콩 우트의 "전쟁의 공포"라고 하는 사진 한 장이었듯이(미군의 네이팜탄을 맞은 뒤 두팔을 벌린 채 고통으로 울부짖으며 도로로 뛰어나오던 어느 벌거벗은 남베트남 어린아이의 정면사진)...

우리는 삶의 한 장면을 기억하고 싶은 기념식, 입학식, 졸업식에서 사진을 찍는다. 여행갔을 때에도 우리는 빠뜨리지 않고 카메라를 챙긴다. 그럼으로써 한 순간에 흩어져버리는 삶의 체험을 소유할 수 있다고 믿게 되며, 그 찍힌 사진의 이미지를 영원히 간직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우리들이 삶에서 갖게 되는 체험들은 늘 정지된 사진과 같이 뇌속에 기억되며 다시 불러들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기억들의 기록으로서의 사진은 객관적인 것이라고 믿는다. 하지만 똑같은 사진기를 사용하여 똑같은 풍경을 담은 사진이 제각각 천차만별의 차이를 가지는 이유를 우리는 간과하고 만다. 그것은 객관적이라고 여겼던 사진이 주관적인 과정을 통하여 이루어진다는 사실에서 비롯된다. 풍경과 세상을 바라보는 그 사람의 태도와 가치관, 정신세계가 바로 한 장의 사진 속에 고스란히 담겨지게 된다. 사진을 찍는 사람이 플라톤의 동굴 속에 있다면 그 사진 역시 플라톤의 동굴의 풍경일 것이다.

삶은 이미지로 구성된다. 우리가 감각으로 대하는 세상은 결국 이미지이다. 그리고 그 이미지의 축적이 우리의 일생이다. 하지만 이미지 속에 과연 모든 것이 담길 수가 있을까? 사람들은 그 이미지 속에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현실과 세계가 담겨질 수 있다고 믿는다. 나아가 잘 담겨진 이미지는 현실보다 더욱 현실적이라고 믿는다. 그래서 진짜 꽃을 대하는 것보다 꽃 사진이 더욱 아름답고 감동적이라고 여기며 사람을 대하는 것보다 그의 잘 찍힌 사진에서 더욱 호감을 느끼게 된다고 한다. 이제는 삶의 경험들이 이미지로서 상품화되고 상품화된 이미지야말로 우리가 삶을 진실로 경험하게 되는 방법이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물질적 삶을 체험하고 느끼게 하는 인간 존재의 그 무엇이 이미지화된 세계도 똑같이 체험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똑같은 한 장의 사진을 접하면서도 삶의 아름다움과 정신적 각성을 이루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단지 외면해버림으로써 아무런 존재의식없이 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이미지화된 삶을 살아가는 방식과 하나도 다를 바가 없다.

우리들의 삶은 무엇인가? 삶을 체험하는 내 속의 무언가가 그것을 물질적인 삶을 거쳐 뇌속의 이미지로 만들기도 하고 때로는 이미지화를 거친 사진과 영상을 통해 그것을 받아들이게도 한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 이미지를 받아들이는 우리들의 존재 속에 그 무엇인가가 있어 삶의 경험들을 이미지로서 받아들이고 또 지우고 또 받아들이며 지우는 과정을 끊임없이 해대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이미지가 수없이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스크린이기도 하고 디지털카메라의 메모리이기도 한 그 무엇이 우리 인간 존재의 심연 속에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것을 통해 우리는 자기가 이미지화된 세계를 수용하여 삶을 살아가더라도 이미지에 속지 않고 삶의 파란에 휘둘리지 않고 좀 더 넓은 자아로서 여유를 가지고 인생을 즐길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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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연 2005-04-01 12: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지난 주에 사두었는데..님의 리뷰를 보니 빨리 읽어야겠다는 성급함이..^^;
잘 읽고 갑니다...ㅊㅊ 꾸욱~

달팽이 2005-04-01 13: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반갑군요...비연님...역시 비연님과는 책읽는 취향이 비슷한데가 있군요...ㅎㅎ

어둔이 2005-04-03 23: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진의 이미지를 통해서 사실을 확인하듯 우리는 마음의 상을 통하여 세상을 드러다 본다. 마음에 드러난 세상이 결국 집착과 무지 이듯이 사진의 이미지는 결국 파인드를 통해서 드러다 본 작가의 의도가 숨어 있다. 사진이 가진 이미지는 사실보다 더 사실적이게 보일 수있으며 현실보다 더 아름다운 현실로 만들어 질 수 있다. 그것은 마음의 기억으로 남겨진 현실의 파편과 마음의 상상력으로 덧된 현실의 꿈을 반영하고 있다. 어짜피 세상은 마음의 상이고 마음의 상은 그렇게 감각의 이미지로 남기 마련이다. 이미 우리들의 세상에는 생산된 이미지가 우리의 마음을 묶어두듯 우리들의 마음속엔 마음의 상이 우리의 영혼을 삼키고 있다...

봄비가 내린다. 하늘에서 내려와 스며드는 것이 있어야 땅으로 부터 쏫구치는 것도 있으리라. 보여지는 이미지는 보는 자를 만들고 보는 자가 또 그 보여지는 이미지를 자라게 한다. 세상은 결국 뫼비우스의 띠...펼쳐지면 우주로도 가둘 수없고 감아들면 마음의 한점으로도 자리할 여지가 없네...

비연 2005-04-09 11: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주의 마이 리뷰 당선을 축하드려요~!!!

달팽이 2005-04-09 23: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운이 좋아서...ㅎㅎㅎ

파란여우 2005-04-10 11: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주의 리뷰 당선을 지각으로 달려와 축하 드려요.
핑계를 대자면 요즘 너무 시간이 없었다는..(궁색한..^^;;)
그래서 보관함에 일단 집어넣고, 추천과 땡스투 다 눌렀답니다.
아시죠? 제 맘...^^

달팽이 2005-04-10 20: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그럼요...하지만, 글은 이미 내가 리뷰의 마지막 문장을 쓸 때 날 떠나버린 박제화된 언어일 뿐.... 더 이상 집착하지 않으려 해요...그래서 리뷰 당선되고 다시 읽어보면 부끄러움만 더해가는 걸요....

책읽는나무 2005-04-30 16: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많이 늦었지만 리뷰 편안하게 잘 읽고 갑니다..^^
인사는 아마도 처음 여쭙는게 아닐까? 싶네요...여러 리뷰를 그냥 훔쳐만 보고 갔었습니다...그것이 죄송스러워 이번에는 축하인사를 남기려구요..^^
이주의 리뷰는 물론 이달의 리뷰까지 당선되신 것을 축하드립니다.

달팽이 2005-04-30 18: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알게 되어 반갑습니다. 오늘은 또 어느 분이 발자국도 없이 다녀가셨나 궁금해지는 군요...
 
종이거울 속의 슬픈 얼굴 - 사람 담은 최민식의 사진 이야기
최민식 글, 사진 / 현실문화 / 200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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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을 찍는 그의 첫번째 포커스는 가식과 왜곡없는 리얼리즘에 있다. 렌즈를 통해 보는 그의 눈은 서민들의 가난과 고통을 가장 사실적으로 표현하고자 하는 순간을 노리고 있다. 전쟁의 폐허 위에 피와 살에 양분을 제공할 수 없었던 굶주림과 허기짐을 해소하기 위해 몸부림쳐야만 했던 삶의 고달픔이 있고, 그 무거운 삶의 무게에 짓눌린 얼굴과 눈빛에는 그늘이 서려 있다. 하지만 그의 사진은 어둠에만 머물지 않는다. 50년대와 60년대의 각박한 민중의 삶에서 그 순간적 진실성을 포착했던 그의 사진에는 말로는 다할 수 없는 아름다움이 있다. 여기에서 사진은 단순히 현실의 상을 그대로 뜨는 것이 아니라 작가의 눈에 의해 포착된 예술로서 승화되는 면이 있음을 알게 된다.

'순간적 진실성'이란 무엇인가? 그가 담아내는 사진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표정엔 가식이 없다. 그들의 생활에는 그들의 인생이 담긴 모습을 짓고 있고, 그 모습에서 될 수 있는 한 가장 진솔한 순간을 작가는 포착한다.  그 한순간의 포착이 바로 작가의 몫이다.  그 궁극적 한 점에서 담긴 사진의 얼굴에는 그 사람의 내면이 담겨지게 된다. 그 담겨진 내면을 우리가 눈으로서만이 아니라 가슴으로서 보고 감동을 느낄 때 '영원성'이 담겨지게 된다. 또한 그가 담아내는 사진에는 사회적 현실에 대한 비판정신이 담겨져 있다. 부와 빈의 차별이 존재하는 세상에서 다수민중의 아픈 삶을 그려냄으로써 이 사회에 대한 풍자와 고발을 하고 있다.

작가가 만들어내는 사진에는 과거와 미래가 없다. 늘 현재만이 있을 뿐이다. 그는 찍는 순간만을 위해 존재한다. 이미 만들어진 사진은 그에게 있어 굳어져버린 인생의 일부분으로 남게 된다. 물론 독자들이 사진을 대하는 시간은 또 다른 현재이다. 하지만 작가에게 있어서는 늘 박제화된 사진을 버리고 초심으로 돌아가 '순간적 진실성'을 위해 무아의 경지에서 누르는 셔터만이 '영원성'의 작품을 만들어내게 된다. 그것은 유명세를 타고 부와 명예를 갖게 되더라도 그것을 넘어서는 예술성에 대한 헌신이나 부나 명예에 휘둘리지 않는 인격을 갖추고 있을 때만 극복할 수 있는 장애물이 된다.

최민식이란 작가가 매력적인 이유는 그런 작가의 초심을 스스로의 방식으로 살려내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매 사진 한 장 한 장에 자신의 인생을 담아내려고 했던 그의 열정과 예술혼이 스스로의 사진인생에 만족하고 보람을 느끼게 하는 무엇을 만들지 않았나 생각한다. 이러한 자신의 내면적인 보람과 만족없이 어찌 사람들을 감동시킬 수 있으랴.

그의 사진을 들여다보며 우연한 기회에 그의 사진집 9집을 보게 되었다. 1950-97년까지 찍힌 그의 사진이 더욱 나의 눈길을 끌었던 것은 그의 주요활동이 부산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는 점이다. 그래서 그가 찍은 옛 흑백사진을 보면서 "아, 이곳이 옛날에는 이랬구나"하면서 지금의 모습과 대비하면서 옛모습에 대한 그리움의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는 점이다. 남부민동의 언덕비탈길에 촘촘하게 지어진 50년대의 피난민들이 지은 집들의 모습과 80년대에 들어와서 개발되기 시작한 을숙도의 개발전의 원래의 모습, 낙동강과 김해의 옛 모습은 불과 50년도 채 되지 않은 세월동안 우리들의 삶의 모습이 얼마나 많이 바뀌었는지 알게 해주며, 지금은 이런 모습을 볼려고 해도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게 되어버린 안타까움을 더해준다. 또한 자갈치의 생생한 인간냄새가 나는 사진들도 최민식이라는 이름에서 빼놓을 수 없다. 70년대와 80년대로 넘어가면서 사람들의 얼굴에서 느껴지는 밝은 기운들도 그의 사진역사를 따라가면서 알 수 있는 점이다. 물론 어느 시대건 아이들의 얼굴에서는 어쩌지 못하는 그 왕성한 생명력을 발산하고 있다.

이러한 최민식의 작품은 왠지 현대에는 잘 맞지 않을것이란 생각이 드는 것은 왜일까? 디지털 카메라에 의해 손쉽게 사진을 찍어대고 온갖 화려한 색깔의 옷과 거리의 풍경을 흑백 아날로그 사진기로 담아내는 데에는 이미 시대가 떠나가버린 것일까? 그래서인지 80년대로 넘어오면서 그의 사진에는 인도와 네팔 그리고 유럽의 모습들이 담겨지고 있었다. 어쩌면 그의 사진이 담아낼 풍경이 없는 이 사회가 물질적으로는 풍요로울지는 모르지만 삶의 진실성과 아름다움을 잃어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러운 것도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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