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 마틴 루터 킹 자서전
클레이본 카슨 엮음, 이순희 옮김 / 바다출판사 / 200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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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지금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골짜기마다 돋우어지고 산마다, 작은 산마다 낮아지며 고르지 않은 곳이

평탄케 되며 험한 곳이 평지가 될 것이요, 주님의 영광이 나타나고

모든 육체가 그것을 함께 보게 될 날이 있을 것이라는 꿈입니다."

    주님의 영광이 이 땅위에서 실현될 것이라는 그의 꿈은 외부현실의 질곡과 어려움을 바라보는 그의 성숙한 태도를 지속시켜주는 가장 큰 힘이 되었다. 인류 문명이 가장 발달한 미국, 그래서 가장 풍요롭고 문화적인 미국 땅위에서 벌어지는 불평등과 인종차별, 빈부격차와 인간적 존엄성의 상실에 맞서 평등과 평화와 사랑을 위한 비폭력운동에 인생을 헌신했던 킹 목사의 울림은 지금 우리들에게 주어진 평등과 평화의 씨앗이었다.

    '두려움 말고는 우리가 두려워할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라고 하는 그의 말대로 자신은 수많은 암살과 테러의 위협에도 불구하고 내면적 신의 임재의 경험으로 그 두려움마저 극복할 수 있었다. 정신병자 여성에 의한 치명적인 가슴공격으로 생명을 잃을 뻔한 순간에서도 그가 놓치지 않았던 주님에 대한 믿음이 그의 삶의 기둥이었던 것이다. 간디가 그랬듯이 절대자의 내면적 경험을 이루어내지 못한다면 맹목적인 믿음으로서 그런 삶을 살기는 힘들것이다. 세상의 잣대로 보면 사회적으로 출세한 저명인사의 지위에 올랐음에도 불구하고 늘 주님의 영광 속에 살았기 때문에 자신의 욕망과 자아를 비울 수 있었고, 그것이 진정한 마르틴 루터 킹을 만들어내었던 것이리라.

    그의 비폭력 운동의 보이지 않는 곳에 이러한 정신적 뒷받침이 없었더라면 현실적으로 아무런 힘도 없는 비폭력 운동은 그저 패배자들의 불복종운동에 불과했을런지도 모른다. 하지만 온갖 폭력과 탄압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뛰어넘는 내면적인 힘이 바탕이 되었기에 비로소 그 어떤 폭력으로도 막아낼 수 없는 거대한 역사적 흐름을 형성시킬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삶의 가장 중요한 변화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부터 시작된다. 내 마음 속에 켜진 진리를 향한 아주 작은 촛불이라할지라도 오대양의 모든 물을 갖다 부어도 꺼뜨릴 수 없는 법이다. 현실적인 힘이 작용하는 이면의 보이지 않는 곳에 마음의 작용이 있고, 그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이루어지는 일들은 일정한 조건을 갖추어 세상에 물화된다. 지금은 비록 결함이 많고 우둔하지만 밝은 곳 향하는 그 마음과 절대자를 향한 그 마음이 우리를 그것으로 인도해 준다.

    이러하기에 모든 세상의 비밀은 마음의 비밀에 있다.  자신의 마음 속에서 절대자를 경험한 자만이 비로소 세상의 조건에서도 인연 연기법칙에서도 자유로울 수 있다. 킹 목사가 신의 임재를 경험한 순간, 그는 온갖 현실적 어려움과 고난 속에서도 이미 자유로웠던 것이다. 내 안의 영원성을 발견한 순간부터, 그 때부터 마침내 자유로다. 마침내 자유로다...

P.S : 킹의 자료를 정리했던 엮은이의 많은 정성을 느낄 수 있었다. 글의 편집도 매우 매끄러워 감동적으로 잘 읽힌다. 단지 개인적으로 좀 더 아쉬운 부분은 너무 정치적, 사회적인 면에서 킹의 일대기를 그렸다는 점에서 그의 내면적 기록을 다룬 개인사가 좀 빈약하게 다루어지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다. 원래 내가 좀 서정적인 면이 있어서 그런지 삶의 내면적 기록들에 더욱 마음이 가닿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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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아리
정호승 글, 박항률 그림 / 열림원 / 199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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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살아가면서 우리는 때로는 삶의 의미에 대해 묻습니다.

그럴 때마다 우리는 복잡한 생각은 걷어치우고 다만 삶은 살아가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나이가 든 어른일수록 마음은 더욱 굳어져 새로운 삶의 의미와 감동이 마음 속으로 스며들기가 더욱 어렵습니다.

이 책은 바로 이러한 우리들의 모습에서 발견한 안타까움에서 시작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정호승 시인은 늘 쉽고도 간결한 언어로서 우리들의 마음을 울립니다.

'동고동락'삶은 늘 고락이 함께 합니다.

항아리의 삶에서도, 밀물과 썰물도, 선인장 이야기도 손거울, 물과 불에서도....

 늘 우리는 삶의 행복과 아름다움만을 추구합니다.

하지만 참다운 행복과 아름다움이란 삶의 고통과 좌절과 시련마저도 감싸안는 것입니다.

그것이 참다운 사랑입니다.

그것마저도 감싸안을 수 있는 진정한 내가 내 가슴에 존재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어쩌면 태어나면서부터 우리가 잃어버린 반쪽의 날개를 찾는 것과도 같습니다.

그 반쪽의 날개를 찾아야만 비로소 우리는 날 수 있습니다. 비로소 우리는 완전해질 수 있습니다.

그것은 나의 경계를 넘어 타인과 세상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사랑으로 그것들과 하나되는 것입니다.

항아리가 하나 덩그러니 놓여져 있습니다.

볼품없고, 아무렇게나 만들어진 항아리

그 옆에는 항아리를 만든 소년이 있습니다.

뭔가 못마땅한 표정으로....

만족스럽지 못한 자신의 첫 작품을 어쩌지 못하는 표정으로....

항아리는 그래도 멋진 삶을 꿈꿉니다.

하지만 오줌통이 되어 오랜 시간을 견디면서

항아리는 늘 자신이 참된 소용으로 쓰일날을 기다립니다.

인생은 기다림입니다.

그 전에 인생은 자신의 소용됨으로 기뻐함입니다.

비록 오줌통으로 쓰일지라도

그것이 이루어내는 일들이 있음을 아는 보람입니다.

그 숱한 세월을 걸쳐 사원의 종소리를 받아내는 천년의 항아리로 거듭남입니다.

어쩌면 인생은 거듭남을 위한 시련과 기다림과 노력으로 이루어지지 않을까 하고 생각합니다.

가슴을 열어 주는 감동적인 이야기에 걸맞는 그림들이 더욱 시선을 끌어당깁니다.

서재지인의 삶이 이 그림 속에 담겨져 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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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무비 2005-04-30 08: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도 쓸모 있을걸?>이라는 이오덕 선생의 어린이책 제목이 생각나네요.^^

달팽이 2005-04-30 12: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찾아보아야겠군요...안녕하세요...로드무비님...
 
말하기의 다른 방법 - 모습들 눈빛시각예술선서 7
존 버거 지음, 장 모르 사진, 이희재 옮김 / 눈빛 / 200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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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한 장이 앞에 놓여 있다.  사람들은 이 사진을 바라보면서 과거에 함께 했던 시간을 떠올리거나 그 시간과 공간속에서 놓여져 있던 자신의 모습을 찾고자 한다. 이 때 우리는 사진을 보며 우리의 뇌 속에 마음 속에 저장된  이미지를 다시 복원시키게 된다. 그 순간 사진은 우리에게 이미 어떤 획정지어진 의미를 가진다. 왜냐하면 우리들은 늘 우리들이 경험한 것을 소유하려는 욕망으로 사진을 찍어두기 때문이다. 우리들의 욕망이 그 풍경에 더욱 많이 투영될수록 우리는 그 사진 한 장의 감상 속으로 더욱 쉽게 빠져들게 된다.

  우리의 기억과 함께 한 풍경들이 사진 속에 담겨져 있을 때, 때로는 우리는 말로서 그 장면들을 되살려내고 또 현재의 생각과 더불어 더욱 많은 설명을 갖다붙이게 된다. 그럼으로써 우주의 온 작용으로 빚어진 사진 한 장은 이제 더 이상 상상의 여지를 발휘할 수 없는 박제되어 버린 종이조각으로 전락하게 된다. 그 사진은 이제 우리들의 시야에서 내팽개쳐진다. 이미 소비된 상품에는 더 이상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인간 욕구의 본질상....

  존 버거와 장 모노는 이러한 고정된 사진의 이미지를 다시 유동적이고 많은 가능성이 존재하는 '모호성'의 상태로 되돌려놓고자 한다. 그가 세상을 담아내는 방식도 그러하겠지만, 그의 파인드에 담겨진 세상을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방법에서도 그는 이러한 방식에 충실하고자 한다. 우선, 그는 사진 한 장을 우리들 앞에 던져 놓는다. 그리고 상상하게 한다. 그 사진이 가지고 있는 역사적 상황, 공간적 배경, 개인사를 묻어버리고 난 다음 남는 순수한 호기심을 우리앞에 던져 준다. 이러한 장치를 통해 우리는 사진 한 장이 갖고 있는 이미지가 가슴 속에 남기는 떨림을 통해 어떤 흔적을 발견해가게 되며, 이를 통해 발견된 그것은 내 존재의 형상을 말없이 드러낸다. 

  이러한 그의 사진에 대한 설명은 표현 형식만 조금 달리했을 뿐, 글로 한정되지 않는 사진 그대로 보여주려고 하는 그의 마음과 일치한다. 따라서 그의 글은 사진이고 그의 사진은 글이 되는 마법적인 일체를 이루어낸다. 사진을 통해서 ,될 수 있는 한, 렌즈에 담긴 세상 그대로의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주고자 하는 것이다. 그것을 수용하는 것은 온전히 우리들의 남겨진 몫이 된다. 그 모습을 받아들이는 독자의 바른 태도는 자신의 경험과 사고를 될 수 있는 한 배제한 상태에서 가슴 속에 그려지는 희미한 실루엣에 초점을 맞추는 일이다.

  이러한 방법을 통해 그는 순간적이고 고정된 이미지 한 장에서 역사를 뛰어 넘고 공간을 뛰어 넘은 '영원성'으로 향하는 배를 띄운다. 어차피 이미지라고 하는 것이 빛이 만들어내는 색채의 마술이 아니던가? 그 명암을 걷어내고 색채를 걷어내어 남은 빛 속으로 우리의 마음을 녹여내어 존재 그 자체 속으로 우리를 초대한다. 그 빛의 터널을 지나 우리가 다시 도착하는 곳이 바로 이 세상이 아닐까? 또한 그의 파인드가 지향하는 곳이 바로 이 곳은 아닐까?

  눈 앞 가득히 아무렇게나 자라 있는 잔디가 더없이 따스하고 평화로운 햇살을 받고 있다. 저 생각없는 잔디 속에 하나의 풀이 되어 평화속으로 내 마음이 잠긴다. 이 순간 나는 풍경 그대로의 존재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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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그만 생을 마치려 합니다 - 유서와 자살에 관한 한 연구
우도 그라스호프 지음, 배진아 옮김 / 해토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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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신은 혹시 인생을 살아오면서 자살충동을 느낀 적이 한번이라도 있는가? 만약 한번도 없다면 당신은 사실 자살의 위험이 큰 편이라고 볼 수 있다. 죽음 앞에서 삶으로 빠져나오는 경험이야말로 우리가 가진 면역체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니까. 왜 사람들은 자살을 할까? 이제까지 사회학적으로는 에밀뒤르껭의 '자살론'으로부터 많은 연구가 진행되었다. 이렇듯 자살이라고 하는 현상이 사회적인 현상으로 사회적 환경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도 있는 것이 사실이다. 실업률의 증가라고 하던지, 문화적 일탈, 급격한 삶의 변화 등 ...

  하지만 자살을 하는 사람들의 환경에 놓인 누구나 항상 자살을 선택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선택을 자살로만 몰아가는 개인적인 심리현상이나 마음의 작용을 살펴보는 것이야말로 자살이라고 하는 인간적인 현상을 보다 가까이서 들여다 볼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유서'는 우리들로 하여금 죽은 이의 마음 속으로 들어가서 그가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마지막 길을 동행하게 한다. 그 동행에서 우리는 자살하는 사람의 마음 속에 어떤 작용이 일어나고 있는지에 대해 느낄 수 있게 된다.

  대부분의 자살은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상실감 또는 인간관계의 파괴로 인한 극한적 좌절 속에서 이루어진다. 상대방에 대한 불신과 미움이 복수의 형태로서 나타나 상대방이 돌이킬 수 없는 치명적인 상처를 갖고 인생을 살아가기를 바라는 경우도 있다. 이러한 현상은 주로 자살의 주체인 자가 어릴 때부터 가진 마음의 상처일수도 있고, 살아오면서 쌓인, 치유하지 못한 마음의 병일수도 있다. 그리고 자신의 행위가 상대방으로 하여금 평생의 짐과 죄책감 속에서 살게 함으로써 부정적 감정을 부풀려 세상에 남기고 가게 되어 자신의 업을 더욱 증폭시키기만 할 뿐이라는 사실이다.

  유서란 죽어가는 사람들이 남긴 마지막 마음의 기록이다. 그렇기 때문에 유서를 살펴보는 것은 죽음을 결심한 사람의 마음 상태를 알아보기 위해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여기서 한 가지 간과하지 말아야 할 사실은 유서라고 하는 요식행위가 자기구속력을 가지는 면이 있다는 점이다. 물론 자살하는 사람의 마음 상태는 이미 굳어지고 난 후에야 유서를 남기게 되고, 또 상당한 수의 사람들이 유서없이 자살을 선택한다는 점에서 유서가 절대적인 영향력을 미친다고 볼 수는 없다. 하지만 죽음이라는 크고 절박한 결정을 내리기까지 우리는 삶과 죽음의 널을 뛴다. 그러다가 최종적인 선택의 결과물로서 유서를 남긴다. 따라서 유서를 쓰고 난 후에는 그 유서로 말미암아 마음을 다시 돌리지 못하는 경우도 종종 있음을 알 수 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자살을 줄이는 방법으로 유서를 작성하지 못하게 하는 것만이 대안이 된다고 볼 수는 없다.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우리들의 마음에서 치유받지 못한 상처받은 마음의 흔적을 남기지 않는 것이고, 우리 삶을 바라보는 보다 넓고 깊은 시각이 필요한 것이다. 우리 삶은 반드시 스스로가 살아내면서 달성해야 할 삶의 교훈이 있다. 그것을 제대로 얻지 못하고 생을 자신의 잘못된 선택으로 마치게 된다면 우리는 또 다른 세상에서 이번 생에서 얻었어야 할 교훈의 과정을 다시 밟아야 한다. 영혼의 성장에는 건너뜀이 없으니까.

  나아가 삶과 죽음이 따로 있지 않고 우리들의 삶 속에 죽음을 집어넣는 노력들도 필요하다. 우리는 늘 죽음의 문화를 터부시하는데에 익숙해져 있고, 그것은 죽음에 대한 그리고 삶에 대한 우리의 편견에서부터 비롯된다. 사실 삶과 죽음은 하나이며 중요한 것은 무엇이 우리들의 삶과 죽음을 통하여 우리를 성장시키게 하는 것인지를 바로 깨닫는 일이다. 그래서 자신의 마음이 만들어내는 환상에 속지 않고 우리들의 본모습을 바로 보아 우리가 이번 생에서 이루어야 할 일들이 무엇인지 생각해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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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라 한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류시화 엮음 / 오래된미래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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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라 한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삶에 대한 치유와 깨달음의 시는

우리 시대의 역설을 수용하고 소화해내는 마음의 비밀에 있다.

전문가가 많은 세상에 문제는 더욱 횡행하고

약이 많은 세상은 병은 더욱 만연하고

많은 종류의 쾌락이 추구되지만 삶의 행복은 찾을 수 없고

삶의 속도가 빨라지고 더욱 편리해지지만 삶은 더욱 황폐해져서

삶을 살아도 삶의 의미를 담아내지 못하는

우리시대의 역설을

어쩌지 못하는 역설을

극복하기 위해서 우리는 살아간다.

벚꽃이 만발하여 하늘을 가린 숲에서

한 잔 술을 돌려가며 나누는 옛 이야기

젊은 날의 가슴아픈 사연들도

이 아름다움 풍경아래선 아름다움일 수밖에 없듯이

삶의 상처와 역설을 아듬는 우리 삶의 깨달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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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둔이 2005-04-13 23: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랑하라 상처투성이 이 험한 길위에서
고귀하게 적막한 사랑하지 말고
사랑하라 사랑하지 못할 것같은 벼랑 끝에서
마지막 몸을 날리는 세상의 끝에서
사실 그렇게 사랑하다 모두 죽어가는 것은 아닌가
꽃잎 한자락의 아름다움이 잠시 아름다운 것은
사랑의 벼랑 끝에서 우리 시들 것을 알기 때문이다
사랑하라 세상이 내다버린 쓰레기 오물통에서
구역질 눈물범벅으로 울며 아름다움 하나없는 곳에서
그런 곳에서 인생의 상처를 훈장처럼 달며
매끄러운 사랑노래 목이 메어 꺼억거리는 저녁
그래도 그 시린 4월의 잔인한 저녁
갈고리같은 초승달이 봄가지 끝에 걸리고
여리고 흰 벚꽃잎 바람에 눈빨처럼 휘날린다
사랑하라 사랑하라 사랑하라
세상을 향해 외쳐되는 사랑의 외마디는 하늘의 별이 되고
봄밤에 쏫아오른 하늘의 꽃잎이 되고
사랑이 있어서 청춘은 이 얼마나 고통스러운가
사랑이 있어서 인생이 그 얼마나 죽을만큼 쓸쓸한가
외로운 봄밤 언덕에 올라서서 사랑하라 사랑하라
아직 상처받은 영혼이 사랑으로 이렇게 아프다
어느 가슴의 등불과 어느 하늘가의 별빛이
봄의 꽃잎으로 점을 찍은 풍경아래
그래도 사랑하라고 사랑하라며 나는
쓴 소주 한잔을 입안에 털어넣는다. 사랑의 상처속으로

달팽이 2005-04-13 23: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캬아,,,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