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준하 - 민족주의자의 길
박경수 지음 / 돌베개 / 200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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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신독재시대를 살다가 그들의 혼을 조국의 민주화의 제단에 바친 이들이 어디 한둘이랴. 우리가 평화롭게 숨쉬는 오늘이 먼저 간 넋들의 피와 땀으로 일구어진 보석이라는 것을 어찌 잊으랴. 하지만 역사 앞에서 피를 뿌리며 사라진 그들의 역사는 저기 저 너머로 뿌옇게 흐려져만 가고, 여기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들은 역사적인 인식은 메말라 자신의 한 치 앞만을 보고 사니 가끔 우리들은 그들을 떠올려야 하리라. 이 평범한 일상에 장엄하고 치열했던 그들의 삶을 빌려와야 하리라.

  함석헌 선생님과 김지하 시인, 김대중 대통령과 지학순 주교, 김수환 추기경, 장일순 선생님의 삶들을 보고 삶의 교훈을 삼게 되면서 늘 기회가 닿게 되면 한 번 펼쳐보리라 마음 먹었던 삶이 바로 '장준하'선생이었다. 일제하에서부터 조국의 독립을 위해 많은 뜻을 세우고 일군 학도병을 탈출하여 조국의 광복군으로 활동하면서 젊어서부터 조국과 민족을 향한 뜨거운 사랑을 가슴에 품었으나 분파주의 정치에 싫증을 느끼고 민중들 속에서 재야에서 자신의 뜻을 실현해갔던 고독했지만 정의로웠던 한마리의 호랑이...

  해방을 전후해서 김구 선생님을 보필하다가 자신의 소임을 마치고 민중의 입이 되어 독재정권에 대항해서 한 치의 양보도 없이 싸웠던 그는 정치권력에 대한 욕망도 부에 대한 욕망도 없었다. 다만 그가 가진 자존심이라곤 정의와 역사와 민중을 위해 자신에게 주어진 소임을 대가없이 하겠다는 역사의식과 민족사랑이었음이다. 한국의 민주화과정에서 피를 흘린 숱한 사람들이 많았고, 그 중에는 자신의 야망을 채우기 위한 색깔을 걷어버리고 순수하게 살다간 유명 무명의 삶들이 있어 역사를 이끌었다면 그 중심에 장준하 선생이 우뚝 서 있었던 것이다.

  일제하에 일본 학도병으로 자원한 데에는 자신의 가족을 방어하고자 하는 마음이 앞섰고, 또한 춘원의 연설을 듣고 자신의 삶을 내던지는 로맨스도 없지 않았으나 이후에 펼쳐지는 역사에서 그의 민족주의에 대한 생각은 보다 깊어지고 체계화된다. 외세의 개입이나 간섭없이 우리 민족간의 자주적이고 평화적인 통일에 가장 중심을 두었던 그가 정작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반독재투쟁으로 일생을 보내야만 했던 시간들이 조금은 아쉬움이 남았을런지도 모른다. 고향 땅에 대한 그리움과 훌륭한 목사가 되겠다는 꿈을 접고 한 시대의 굴곡 속으로 몸을 던져야만 했던 그에게는 이미 자신의 영달과 심지어 자아에 대한 상마저도 접어야만 했으리라.

  삶은 어디서부터 와서 어디로 가는가? 그의 파란했던 반독재투쟁, 유신이 무너져내릴 무렵 어이없는 의문사로 삶을 마감했던 그에게 많은 사람들은 아쉬움을 보인다. 하지만 그는 역사속에 민주화를 위한 사명으로 부름받은 한 인간이었으며 자신의 소명과 함께 역사의 무대속으로 사라진 인물로서 우리들에게 기억되게 되었다. 그의 죽음으로부터 멀지않은 시기에 박정희의 암살과 유신독재체제의 막도 내리게 되니까 말이다. 이렇게 장준하 선생처럼 역사속에서도 자신의 삶과 의미를 다했던 그가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며 어떤 교훈을 찾게 될까? 인간의 삶은 역사적인 삶과 개인적인 삶이 있다. 물론 정확하게 나눌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때로는 역사적인 무대에서 흔적도 없이 지나가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이렇게 역사의 무대 가장 선봉에서 살다간 사람들도 있다. 문제는 무대의 앞과 뒤가 아니라 그것이 자신의 내면적인 삶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게 되는가에 있다.

  그는 아마 자신의 삶을 후회없이 살았으리라고 생각할 것이다. 왜냐하면 자신의 삶이 역사적으로 드러난 자리라서가 아니라 자신의 삶을 돌이켜봄에 후회없이 자아에 대한 욕망없이 떳떳하게 살았으니까. 함석헌 선생님이 모시던 다석 선생님이나 무위당 선생님같이 역사무대의 전면에 나서지 않으면서도 숱한 사람들 뒤에 묻혀 있으면서도 자신의 역할을 다하시고 살다간 사람들도 또한 얼마나 많을 것인가? 그러하기에 삶의 의미는 자신이 자신에게 내리는 평가에서 얼마나 의미있는 삶을 살았는가가 중요한 것이다. 이러한 관점이 때로는 역사평가에서 민중적인 사관이 제대로 읽어내지 못하는 점들을 보게 해 줄 때가 있는 것이다.

  다시 삶이란 무엇인가? 그의 고단한 육체가 약사봉 계곡의 한 곳에 누웠을 때 그의 영혼은 그것을 바라보고 어떤 생각을 했을 것인가? 자신의 삶에 대한 꼭지를 떼는 듯한 가벼운 마음, 내 역할은 이제 끝이 났다고 생각하는 수용의 마음이 그의 가슴 한켠에 자리잡았지 않았을까? 내 삶은 고단했지만 그래도 열심히 보낸 거야. 비록 삶의 의미를 다 깨우치지 못했다 하더라도 그의 인생은 큰 의미를 가지고 우리의 현대사 곳곳에 그 흔적을 드리우고 있다.

  나는 장준하 선생의 삶처럼 무대에 나서는 역할이 주어진 것은 아니다. 나의 삶을 보다 의미있고 가치있게 보내는 것은 무엇인가? 나에게 주어진 삶의 길은 무엇인가? 내면의 소리를 따라 살아온 몇 몇의 세월에 나는 진리를 향해 길을 간다. 그 진리....역사 속에 나타났다 사라지는 모든 인류의 삶의 궤적 속에서 사람들은 각각 저마다의 삶의 의미와 진리를 찾아서 간다. 그것이 드러난 삶이 어찌되었건 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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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화선 - 조계종 수행의 길
대한불교조계종교육원 엮음 / 대한불교조계종교육원 / 200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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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나라 불교는 대체로 조계종이다. 조계종은 조사선과 화두선을 중심으로 깨달을 지향하는 불교의 맥이다. 비로 재가자이지만 마음공부에 관심이 있어 공부한지 그리 오래되지는 않지만 마음을 세워 공부를 한 경험들이 이 책에서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 잘 정리되어 있다. 간화선이 무엇인지, 화두를 들어 참구하는 것이 깨달음으로 가는데 왜 필요한지, 선지식의 도움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에 대해 자세하고 체계적으로 정리했기 때문에 재가자로서 혼자 공부하는 사람이라도 이 책을 지침삼아 공부할 수 있도록 만든 책이다.

  신심과 발심, 의심이 제대로 갖추어져야 화두를 들 수 있는데, 사실 나에게는 그 기초부터가 부족함을 알겠다. 화두는 그저 든다고 해서 들어지는 것이 아니며 대신심과 대분심 그리고 대의심이 생겨 강하고 지속적으로 이어지는 간절함이 있어야 하고 그것이 부족하다면 채우려는 뼈저린 노력이 필요하다. 이런 준비가 되지 않은 사람에게 화두를 억지로 드는 것은 그 효과가 없는 것이며 그에 따른 부작용도 생기게 마련이다.

  화두를 들기 위해 아침 저녁으로 명상에 드는 방법은 큰 도움이 된다. 특히 그 시간에 화두를 들고 참구하는 버릇을 한 시간만이라 가지게 된다면 일상에서 행동에서 늘 그 화두가 침투하는 힘을 기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미 화두 공안에 관계되는 책을 몇 권을 읽어보았지만 책을 읽어갈 때의 마음이 일상생활에 침투되지 않는 것은 아직 3요에 관한 충분한 준비가 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마음까지 놓아서는 안됨에도 불구하고 그간에 흩어지고 혼미해진 마음의 경계들이 다시 시작함을 어렵게 한다.

  우선 잠자리에 들기 전 명상과 아침 깨어나서 하는 명상을 다시 시작해야겠다. 특히 아침 명상에서는 잠을 뿌리치기 위해 절수행이라든지 걷기 명상이라든지 나름대로의 대책과 함께 시작해야 효과를 볼 수 있을 것 같다. 화두 참구의 단계가 나의 경험으로는 동정일여 몽중일여의 단계가 뚜렷하지는 않고 혼재되어 조금씩 나타난 듯 했는데 역시 바른 공부가 아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나마 오매일여는 한 번도 경험해보지 않았으니 말이다.

  화두앞에서 깨어 있는 것, 만법귀일 일귀하처에서 그 하나가 돌아가는 곳, 그 곳에 대한 큰 의문으로 깨어있는 마음가짐을 내 속에서 만들어내고 키워가는 것이 필요한데,,, 그래서 의성이 생기고 그것이 큰 덩어리로 뭉쳐져 내가 화두와 하나되어 생활하는 지속이 이루어지게끔 해야 하는데....이 책에서 너무나도 자세하고 체계적으로 정리하여 수행의 방법과 수행 중의 문제점에 대한 것까지 정리가 되어 있어서 실제로 화두참구를 하는 수행자에게 있어 주변에서 선지식을 만날 수 없을 때 아주 필요한 책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개인적으로 자신에게 맞는 화두를 참구하는 것, 나에게는 어떤 화두가 맞을 것인가? 자신과의 인연으로 우연히 만나게 되는 그런 화두, 화두를 볼 때 좀 더 잘 잡히고 인연이 되는 화두를 찾는 것이 필요하고 그것이 찾아졌다면 이제 3요의 마음을 갖추고 화두 참구에 들어가보는 것이다. 일대사의 인연을 해결하기 위한 공부, 이미 빠르지 않게 시작한 공부에서 더욱 지체하고 게으름피울 시간은 없다. 조급해서도 안되겠지만 우선은 나의 나태해지고 게을러진 마음부터 바로잡아야겠다.

  화두, 그것으로 조사님과 부처님의 그 마음 속으로 들어가보자. 그들과 다름없는 진정한 나를 찾아보자. 세상의 많은 깨달은 자와 앞으로의 또 많은 부처님들, 자유롭고 자유로운 삶 속에서 걸리지 않는 뜻을 펼쳐보자. 내 죽음을 넘어 나 스스로의 주인이 되어 보자. 과연 그것이 무엇인지 궁금하지 아니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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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재구의 포구기행 - MBC 느낌표 선정도서, 해뜨는 마을 해지는 마을의 여행자
곽재구 글.사진 / 열림원 / 200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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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구란 어떤 공간일까? 여행을 다니면서 포구가 나타나는 곳이면 늘 마음이 먼저 그 곳에 가있는 경우가 많다. 더구나 노을이 질 때 바다위로 펼쳐지는 붉은 하늘을 쳐다보고 있으면 꽃천지의 하늘이 되어 내 가슴도 붉어지게 되는 것을 느낀다. 그 붉은 노을을 쳐다보며 싱싱한 해삼과 멍게를 놓고 소주한잔 하면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을 맞으면 어느새 세상 시름이 모두 씻겨져내린다.

  포구는 육지가 끝나는 곳이다. 바다와 접하는 곳이다. 그래서 육지에서 있었던 온갖 시름을 풀어놓는 곳이다. 그 육지의 시름들을 일과가 끝나는 해저물녘에 노을과 함께 바람과 함께 풀어놓으면 강물이 흘러 바다에서 자신의 몸을 벗고 바다가 되듯이 그렇게 자신을 놓아버리고 바람이 되고 노을이 되고 바다가 된다. 포구는 이렇게 삶속에 지친 우리들의 영혼을 누이는 곳이다. 그 놓인 영혼이 충분한 쉼을 얻어 다시 생활로 삶으로 돌아가는 원기를 보충하는 곳이다.

  포구에서의 사람들과의 만남도 빼놓을 수 없다. 곽재구 시인도 역시 포구마다 잊혀지지 않는 사람들과의 기억들을 가지고 있다. 소리꾼 조공례할머니라든지 2000원짜리 세상에서 제일 맛난 팥죽과 순임씨, 바다를 사랑하는 그리고 시를 사랑하는 어부 정씨 등 포구를 바탕으로 삶을 일구어가는 억척같은 아낙들과 한많은 사람들의 인생살이의 고달픔이 있다. 하지만 바다에서 그 억척스러움과 한스러움 고달픔은 모두 포용되고 만다. 바다란 그런 공간이다. 삶의 모든 것을 포용하는 바다와 그 기운을 처음 맞대고 사는 동네가 바로 포구인 것이다.

  포구의 어제 오늘은 많이 달라졌다. 자연적으로 형성된 포구의 원래모습이 남아 있는 곳이 거의 없어졌다. 관광지가 될수록 사람들이 많이 찾을수록 높은 건물과 음식업, 숙박업이 들어서게 되고 그러면서 원래의 자연풍광을 잃어가는 것을 어찌할 수 없다. 하지만 그 어찌할 수 없는 인간의 욕망이 때로는 서글프기만 한 것을 또 어찌할 수 없다. 이리 저리 풍경을 가리는 건물들 사이로 언뜻 조각만한 풍경들이 눈에 들어오면 막혀버린 건물들이 또 내 가슴도 꽉꽉 막혀버리게 한다. 어쩌겠나. 세상 사람들은 또 그들의 방식으로 삶을 일구어가는 것인데....하지만 가진 것도 없이 몸뚱이 하나로 억척스런 삶을 살아가면서도 사람의 정을 잃지 않는 토박이들이 자신의 보금자리를 빼앗겨가는 것을 지켜보면 가슴아픈 일을 어찌할 수 없다.

  삶을 살다가 간혹 정이라고 하는 것이 생기게 되면 사랑이라는 감정이 생기게 되면 우리는 그것이 사는 중요한 의미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그때문에 지불해야 하는 빚도 만만치 않다. 좋은 감정 때문에 생기는 감정의 굴곡과 밑바닥 감정까지도 다 싸안고 살아야 하니 말이다. 때로는 그 호오의 감정없이 그냥 모두 내려놓은 채 내가 바람이 되고 노을이 되고 바다가 되고 구름이 되고 풍경 그 자체가 되고 싶을 때가 있다. 뭐 대수인가? 이렇게 살다 나도 한 줌 재로 변하고 말 것인데...그깟 육체 평생 달고 얽매여 살면서 한 순간 쯤 놓아버린다고 어떻게 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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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aru 2005-07-30 18: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깟 육체 평생 달고 얽매여 살면서 한 순간 쯤 놓아버린다고 어떻게 될 것인가?
키햐~
ㅇㅣ 책 저도 있습니다... 한 순간쯤 ...이눔의 육체를 놓구 싶을 때...읽구...훌쩍...해버릴려고... 아껴 두었다고 말한....다면..거짓말일까...

달팽이 2005-07-30 20: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하...역시 호방한 이카루님...

잉크냄새 2005-08-08 18: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달팽이님. 어촌태생인 저에게 포구의 하늘빛은 노을빛마저도 회색빛으로 종종 비춰지곤 했습니다. 과거의 영화가 모두 사라져가는, 퇴물이 되어버린 술집여자의 어색한 화장만큼이나 부조화스러운 풍경이 펼쳐지곤 했습니다. 아마도 두발 모두 바다에 묻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틈바구니에서 자라온 까닭인가 봅니다.

달팽이 2005-08-08 22: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반갑습니다. 잉크냄새님. 산업화과정에서 농촌과 더불어 삶의 터전을 빼앗겨가는 어촌에서 자라면서 바라본 어린아이의 눈에서 벌써 회색빛 하늘을 보았다니 상당히 조숙했었나봅니다. 여행자로서 아무리 밀착해서 보려해도 그들의 속내음까지 다 알 수는 없는 것이겠죠. 하지만 어촌태생으로 유년시절의 빛깔을 간직한 당신에게 그 노을빛과 파도소리, 바다가 주는 아름다움이 뭇사람들이 보는 것보다 더욱 선명하고 다채로울 것이라 믿습니다.
 
대학.중용
강희장 / 자유시대사 / 199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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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용에 보면 생이지지한 사람도 있고, 학이지지한 사람도 있고, 곤이지지한 사람도 있으나 지(깨닫거나 완전한 참됨을 이루면)하게 되면 다 같다고 했다. 나는 곤이지지한 범부에 불과함을 늘 느끼고 있지만 이 글을 쓴 강희장은 아홉살 때 이 대학과 중용을 해석하였다. 그가 풀이한 대학의 첫 구절인 격물을 "외부의 물에 대한 욕심을 끊어낸다."라고 설명하는 부분을 보면 그는 생이지지한 사람이로구나. 단순히 나이로 그를 보아서는 안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사실 우리가 삶을 살다보면 만나는 많은 사람들이 있다. 나이에 맞게 자신의 인격을 가다듬어온 사람들이 있는가하면 나이가 아무리 들어도 자신의 탐심과 욕심이 더욱 눈덩이처럼 불어져서 아이보다도 못한 인격을 갖춘 사람들도 대하게 된다. 그럴 때 나는 단순히 그 사람을 욕하며 피하기 보다는 그를 통해 비춰진 나의 닦여지지 못한 것을 닦으려는 노력을 최근에서야 하게 되었다. 하지만 더러 내가 가르치는 아이들에게서도 나는 전혀 어리다고 생각할 수 없는 성숙한 아이들을 보게 되니 그들을 볼 때 나도 그들에게 배우는 바가 없지 않음을 고백한다. 따라서 몸의 나이만으로 세상 사람들과 교우하기엔 너무나도 그 품성이 달라서 몸의 나이를 뛰어넘어 품성이 좋은 사람들을 만나게 되면 나도 모르게 끌리게 됨을 어찌할 수 없다.

  지극한 선, 명명덕, 천성, 참됨을 이루는 것 등 등은 비록 표현은 달라도 그것이 가리키는 바가 다르지 아니하다. 여기서 우리는 말이 갈 수 있는 그 끝에까지 가게 된다. 내가 방학을 맞아 비로소 동양고전을 체계적으로 읽어내려야겠다고 마음먹고 든 첫 책이 바로 이 책인데 역시 이 책을 읽고 난 후의 소감은 내가 이 길에 잘 들어섰다는 생각이다. 대학과 중용의 핵심은 바로 마음공부에서 벗어나 있지 않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더불어 공자님의 삶과 깨달음이 얼마나 깊었던가 하는 것을 알 수 있게 되었다. "그도 또한 깨달은 사람이구나" 하는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천하를 평화롭게 하는 첫 출발은 자신을 먼저 닦는데 있다. 자신이 완전한 참됨에 이른 후에야 비로소 자신의 몸을 평화롭게 할 수 있고, 능히 그런 자이어야 자신의 가정을 평화롭게 하고 자신의 국가를 평화롭게 하며 나아가 천하를 평화롭게 할 수 있다. 우리는 늘 문제점을 외부에서 찾고 제도적이거나 사회적인 해결만이 능사인양 생각한다. 하지만 그것은 그것대로의 길이 있고, 눈에 보이지 않지만 보다 확실하고 분명한 방법으로 자신을 바로 세우는 일을 게을리 한다면 그 밖의 모든 방법 또한 아무 소용이 없음을 눈이 밝아진 다음에라야 비로소 알게 된다.

  아홉살에 불과한 신동 강희장이 쓴 글은 아주 힘이 있으며 천지를 호령하는 기상이 있다. 눈에 보이는 것만을 믿는 사람은 그가 가진 참됨을 보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그는 이미 생이지지한 사람이다. 비록 몸의 나이는 어려도 그가 이해하고 있는 고전의 깊이나 그가 보는 세상을 향한 눈, 그리고 그가 짧게 살다간 인생은 현자의 그것과 다르지 않았으리라 생각한다. 이렇게 몸과 자아를 초월한 뒤에라야 비로소 참되고 완전한 앎도 가능한 것이며 어리지만 생이지지한 그와의 만남도 가능해지는 것이다. 그가 가진 외부적인 편견을 버리고서 말이다.

  좀 늦게서야 시작한 글공부가 이젠 좀 더 깊어져야 할 시점에 서 있다. 곤이지지한 능력밖에 없는 나로서야 안달할 이유가 없다. 다만 게을리 하지 않을 뿐이고 끊이지 않을 뿐이다. 이젠 고전의 글들이 좀 더 나의 마음속으로 때로는 삶으로서 이해되어지는 바가 생긴다. 삶으로 또는 스스로 체험하고 증험하지 않고서는 머릿속의 이해만으로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다. 대학, 큰 배움은 과연 무엇인가? 내가 하늘과 땅이 된다는 것이 무엇인가? 외부로부터 오는 물에 대한 생각이 끊어진 다음에 보이는 진리는 무엇인가? 완전한 참됨이란 무엇인가? 그것이 내가 걸어가야 할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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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샘 2005-07-29 23: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요즘 주역과 노자에 빠져 있습니다. 대학도 읽을 예정이고요...
방학때 좋은 글 읽고 좋은 글 남겨 주시기 바랍니다. 건강하시고요...

달팽이 2005-07-30 10: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저도 서평을 쓰진 않았지만 주역책을 두 권 정도 읽어보았습니다만 이해하기가 쉽지 않더군요...언젠가 한 번 공부해볼 생각입니다. 도덕경은 책을 몇 권 사두었구요...역시 좋은글 부탁드립니다. 선생님도 건강하세요..
 
김춘수 사색사화집
김춘수 지음 / 현대문학 / 200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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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는 쓰여진 이의 상상력이지만 그것이 독자에게 읽힐 땐 또 다른 세상이 된다. 그래서 때로는 읽는 이의 상상력에 의해 탄생되는 새로운 시가 되기도 한다. 김춘수 시인은 왜 자기 생에 있어 자신의 주관으로 이러한 사색사화집을 내고 싶어했을까? 시단의 원로로서 우리 나라 시의 100년사를 한 번 정리해보고 싶은 마음이 있었으리라. 그리고 자신이 만들어낸 시의 범주와 그 속에서의 시에 대한 평가를 시단에 보여주고 싶었으리라.

  그가 분류한 네가지 범주의 시, 서정적인 시와 피지컬한 시 그리고 메세지가 담긴 시와 실험적이고 모험적인 시는 내가 예전에 모르고 음미할 수 없었던 시들에 대한 이해(물론 아직 전혀 마음에 와닿지 않은 시도 수두룩하지만...)를 갖게 해주었다. 특히 피지컬한 시를 음미하는 방법과 실험적인 시를 보는 눈이 전혀 없었던 나는 이 책으로 인해 그 영역에 대한 첫경험은 하게 된 것이다.

  그럼에도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서정성이 깃든 시가 마음에 와닿는다. 내겐 익숙해서일수도 있지만 나의 정서가 그쪽으로 좀 뻗어있나 보다. 메세지가 강한 계열의 시는 우리 시대가 요구할 당시, 내가 학창시절에는 가슴을 울리는 바가 있었지만, 시대의 조명이 꺼져버려서 그런지 요즘 읽기엔 그렇게 썩 마음에 다가오지를 않는 것이다.

  하지만 그가 사색사화집에 삶과 인생에 대한 깨달음의 시 또는 선시를 넣지 않았다는 것은 좀 실망스럽다. 물론 그가 선시에 대한 관심과 이해의 부족에 있었겠지만 또한 우리의 근대사에 있어 우리들에게 알려진 선시나 그런 류의 시가 많이 없어서이기도 했지만 시는 언어의 사원이 아닌가? 시를 읽고 우리들의 의식을 탁 틔워주고 가슴을 확 열리게 해주는 내적 체험이 없다면 시는 어떤 소용이 또한 있을까? 그런 면에서 선시 한편 실리지 않은 이 사화집이 그래도 좀 못마땅한 구석이 있는 것이다.

  물론 김춘수 시인이 우리나라에서 이런 작업을 처음 시작했다고도 볼 수 있으니 앞으로 좀 더 다양한 형태의 분류와 그에 따른 사화집이 나오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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