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철학 에세이 - 동녘선서 93 동녘선서 93
김교빈 지음 / 동녘 / 200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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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8월 11일부터 13일까지의 첫 일본 여행이 나에게 남겼던 흔적이 있다. 큐슈지방이라는 한정된 곳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일본적인 것을 어느 정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먼저 눈에 띈 것은 깨끗하고 단정한 도시의 미관이었다. 물론 일본에서는 대도시라기보다는 중소도시와 촌락을 중심으로 돌아다녔으리라 생각하기 때문에 도쿄이나 교토 등의 대도시와 직접적으로 등치시킬 수는 없지만 그래도 한국과 비교해서 아주 정돈되고 깨끗했던 인상이다. 도로에서도 휴지나 잡다한 상행위를 볼 수 없었으며, 절과 가옥 구조도 상당히 단정하고 정돈된 느낌을 받았다.

  농촌지역으로 가면서도 숲이 아주 무성하고 함부로 파헤친 흔적이 없는 국토가 우리나라와는 대비되었고, 채석을 위해 산을 파내는 곳도 도로에서 몇 능선을 넘어서 사람들이 다니면서 쉽게 눈에 띄지 않았다는 점이다. 물론 날이 바뀌면서 일본의 정돈되고 깨끗한 도시와 삶은 단조롭고 미적의식이 부족한 듯 보이게 되었다. 그러면서 우리나라의 옛 가옥구조와 건축양식에 스며든 미적감각들이 보다 새롭게 느껴지기 시작했다는 .(배흘림 기둥이나 굵직하고 대담한 터치의 글과 작품들, 자연과의 아름다운 조화 등)  이렇듯 강대국 중국과 일본 사이에 끼여서 경제나 군사력 국가의 부에서 보잘것없는 우리 나라지만 외국에서 비교해본 우리 나라는 결코 뒤지지 않는 한국적인 무엇인가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아니 그렇게 보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해방 후에 시작된 서구화와 더불어 우리의 현재 모습을 들여다보면 서구보다 더욱 서구화된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는 우리를 보게 된다. 하지만 그 속에서 우리가 가졌던 전통적인 것은 모두 잃어버리게 되었고 또한 그 잃어버림 속에 우리의 정체성을 갖게 해주는 한국성마저 잃어버린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갖게 한다. 지금 우리 사회에는 우리들의 삶의 방향을 일러주고 우리의 나아갈 길을 밝혀주는 사상이나 철학이 있는가? 이 책은 우리의 삶의 바탕이 허물어져 가는 현대적인 한국의 삶 속에 오랜 기간 동안 우리의 삶을 지탱했던 선현들의 철학과 사상을 들여다보고 거기에서 오늘날 우리에게 주어진 현실을 헤쳐나가고 특히 당면한 과제인 통일의 방향을 제시하고 통일된 사회를 지향하는 철학적 과제를 촉발하기 위한 씨앗이라고 볼 수 있다.

  고려의 원효와 지눌의 불교 사상에서 출발하여 조선 중기로 넘어가 서경덕과 이언적 이황과 이이 정제두 박지원 정약용으로 이어지는 우리 철학사에서 한국철학이라고 할만한 것은 무엇인가? 하는 물음과 함께 그 시대를 살다간 조상들의 고민과 삶에 대한 물음 그리고 사회와 국가가 당면한 현실을 헤쳐나가는 사상적 모색으로서의 철학이 오늘날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어떤 암시를 주고 있는지에 대해 살펴보고 있다.

  전통적인 한국철학이라고 하면 사실 어떤 사상도 딱히 취할 수 없다. 하지만 적어도 우리의 지형과 지리에서 나온 전통 사상과 외래에서 들어온 것이라 하더라도 우리의 사상과 정서를 거쳐 체계화된 그래서 한국화된 철학을 우리는 한국 철학이라고 할 수 있다. 즉 한국 철학이란 우리 사회에서 유통되는 철학적 이론 속에 자리잡고 있는 우리 한국 고유의 사상체계나 정서이며 그것은 한국적 혼이다.

  한국 철학의 흐름을 살펴보면 첫째로는 현실적인 삶과 사회의 현실을 설명해주기 위한 형이상학적이고 근본적인 물음이 존재했다는 것이다. 불교에서의 깨달음이라든지, 유교에서의 성, 인, 덕의 개념들 노장사상에서의 도, 덕의 개념들, 조선 성리학에서의 이와 기에 대한 생각, 주역에서의 태허와 태극에 대한 개념들이 그것이다. 이것은 인간 삶의 의미와 궁극적 물음에서 도출된 것이며 우리들의 삶을 자기에게도 돌리고 내면적인 성찰을 통한 삶의 성숙과 깨달음으로 인도해준 삶의 축이었다. 다음으로는 이러한 근본적인 물음으로부터 현실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변화되고 바뀐 현실에 맞게 그리고 도래되는 사회를 더욱 촉진시키고 구래의 폐습을 고치기 위한 사상과 철학을 새롭게 만들어야 했다는 점이다.

  전자는 시대나 역사에 의해 변화되지 않고 굴절되지 않아 자신의 삶의 바탕을 어떤 현실과 국면에서도 지탱해준 힘이었다고 한다면 후자는 그런 삶의 한 장과 국면에서 보다 민중과 국민을 위하고 나라를 걱정하는 마음으로 나아가게 한 도구적 힘이었다고 본다. 사실 전자에서는 한국적이니 외래적이니 하는 것이 필요없다. 그것을 표현하는 수단이 어떤 언어적 토양과 사상적 지형을 가졌느냐만이 다를 뿐이다. 하지만 후자에서는 한 구비 구비의 현실에 대한 진단과 대안의 제시에서 많은 의견들이 제시되고 그것의 철학적인 배경을 갖추기 위해 새로운 철학이 모방되거나 개조되고 한국적으로 창조되기도 했던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삶의 모습이나 사유의 형태는 변하였으나 삶의 본질적인 의미와 물음은 변한 것이 없다고 본다. 문제는 그런 삶의 근본적인 물음으로부터 현실의 삶과 과제를 설명해내는 방식의 변화였을 뿐인 것이다. 무엇보다 절실하게 삶의 근본적인 물음에 해답을 내릴 수 있는 길을 꾸준히 걸어가는 자세야 말로 삶을 살아가는 진정한 철학적 자세요 구도자적 자세일 것이다. 통일을 설명하는 방법에 대해서는 구구한 이론과 절차가 많으나 그 이면에 자리잡은 통일의 필요성과 통일을 이루려는 사람들의 마음과 정서가 더욱 중요한 것은 아닐까? 그것을 위해 이전에 내팽개쳐졌던 우리의 사유체계와 철학을 정비해내는 작업들이 뒤따라야 할 것이다.

  그래서 철학이 정말 철학다운 면모를 가지려면 변화하는 현실에 따라 부유하는 것이 아니라 삶의 밑바탕으로 들어가 근본적인 물음에 대한 고민들을 짊어지고 가야하는 것이리라. 그렇게 해서 우리 선현들이 진정으로 이루고자 했던 그 내면적인 뜰을 천천히 음미하는 것이 되어야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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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베드카르 - 인도 불가촉천민 해방자.현대 인도불교의 중흥자
디완 챤드 아히르 지음, 이명권 옮김 / 코나투스 / 200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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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인생이 자신의 타고난 성장배경에서 무엇을 배우는가? 그 성장과정에서 자신의 삶의 방향을 결정하였다면 그 결정은 어떻게 승화되어야 하는가? 우리는 인도 불가촉천민의 해방자이자 사회개혁가인 암베드카르의 전기를 통해 이 물음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다. 불가촉천민의 신분으로 태어난 그가 성장을 하면서 경험하게 되는 사회적 차별과 멸시 비인간적인 대우에 모멸감을 느끼고 영혼 깊숙히 아로새겨진 상처와 내면적인 슬픔의 에너지를 인도 사회의 카스트제도의 철폐와 민주주의적 가치의 수립으로 돌려서 자신의 삶을 바치기로 결심하였다.

  불가촉천민으로서의 결점을 안은채 더욱 열심히 공부하고 나아가 세계의 유수한 대학에서 학위를 받은 그가 인도사회로 돌아왔을 때 그는 어릴 때의 결심을 저버리지 않았다. 자신에게 주어진 능력과 노력을 불가촉 천민의 삶의 획기적인 개혁을 위해 한 몸을 바치기로 결심한 그는 자신이 마음의 결정대로 삶을 개척하고 있었다. 불가촉천민도 사회의 공공시설, 병원, 저수지, 도로, 공원 등의 시설을 사용할 수 있게 하고 고용에 있어서의 불평등을 없애고, 나아가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차별을 없애기 위해서 정치적인 권리를 획득하는 것으로까지 나아갔다.

  불가촉천민의 지위를 개선하기 위한 사안에서는 간디와도 대립했다. 간디는 힌두사회의 분열을 막기 위한 것이 가장 중요한 관심이었다고 한다면 암베드카르에게 있어서는 불가촉천민의 지위향상이었으므로 제헌의회 의석수를 둘러싸고 불가촉천민의 독자적인 의석수를 확보하려는 과정에서 마찰을 빚었다. 하지만 푸나 협정으로 간디와 화해하고 의석수를 148석으로 늘이게 되었다. 인도의 근 현대사에서 그 누구도 간디의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으므로 그 역시 간디와 여러 사안에서 대립하였지만 또 한편으로는 서로 존중하고 협력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이 책은 인도 사회에서 간디의 명성 아래 숨겨져 있던 암베드카르라는 인물을 조명하는데 목적이 있으므로 심지어는 그를 부각시키기 위해 간디를 폄하한 경우도 없지 않다고 생각된다. 내가 생각하기에 간디가 종교적이고 형이상학적이었으며 인도 전체 사회에 대한 관심으로 치우쳤다고 한다면 암베드카르는 좀 더 현실적이고 사회개혁적이었으며 불가촉천민이라는 신분의 지위향상에 주로 관심을 두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인도 사회에서 두 사람 각 각의 역할과 지위가 필요했고, 그 역할을 두 사람은 충실히 수행했다고 본다.

  인도의 정신적 전통에서 간디의 영향력을 부정할 수 없듯이, 인도 사회의 민주주의적인 법과 제도에 암베드카르가 잊혀질 수 없다. 다만 그래도 한 가지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20세기에 있어서 간디의 정신적인 영향력은 전세계적 차원의 것이라는 점이다. 그것은 간디가 품었던 생각이 자신이 몸담았던 집단에서 힌두교로 힌두교에서 인도 그리고 나아가 인류전체와 신으로까지 넓혀가는 정신적인 승화의 폭이 컸던 것임을 부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 책에서 우리는 암베드카르의 정신적인 면모나 영적인 생활을 알 수는 없다. 물론 그것이 주관적인 영역의 것이기는 하지만 암베드카르가 품었던 이상이 그래도 불가촉천민에서 주로 머물렀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물론 자신의 지위와 책임에 따라 인도 전체까지로 넓혀지기는 했겠지만 말이다. 그것은 그가 불교로 개종을 했던 동기와 불교의 지혜에 얼마나 가까이 갔던가 하는 점에서도 살펴볼 수 있겠는데 그는 불가촉천민의 해방을 위해 그리고 사회개혁을 위한 가장 바람직한 사상을 담고 있는 종교로서 불교를 선택한 이유가 컸고, 따라서 자신의 깨달음을 통해 불교를 이해하려고 했다기 보다는 사회개혁을 위한 도구로서 학문적으로 접근했던 바가 더욱 컸다는 점에서도 드러난다고 생각된다.

  물론 인도 사회의 불가촉천민의 삶의 지위 향상에, 여성의 인권 확보와 사회적인 지위개선에, 현대적이고 민주주의적인 법과 제도의 확립에 그가 남겼던 유산을 무시할 수 없다. 이미 암베드카르라는 인도 사회혁명가의 꽃이 열매가 되어 피었기 때문이다. 또한 인류가 우주의식의 발전의 정점에서 이루어야 할 사명인 인간의식의 진화역시 기본적인 인권과 의식주가 해결되어야 비로소 더욱 발전할 수 있는 토대가 형성되리라는 생각은 어느 정도의 타당성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미국의 마르틴 루터 킹 목사처럼 인도에는 암베드카르가 있었고, 그의 조국에 대한 사랑과 헌신이 인도사회에 아직 고스란히 남겨져 있다. 이제 인도 사회는 국제사회에서도 무시할 수 없는 정신적이고 물질적인 세계의 중심이 되어가고 있다. 이러한 때에 인도 사회가 정신적으로 도약할 수 있게끔 사회제도의 기틀을 마련했던 그의 뜻이 제대로 실현되기를 바란다.

  마지막으로 그는 그의 삶을 그렇게 살다 갔다. 그러면 사회개혁가로서의 소질도 가지고 있지 않는 나는 이 사회를 위해 국가를 위해 인류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스스로에게 물어본다. 우주의 진화과정의 정점에 선 나는 과연 무엇으로 삶을 채울 것인가 하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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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 책 2005-08-22 16: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아, 이 책 꼭 읽어야겠어요!!!

달팽이 2005-08-22 16: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만나서 반갑습니다. 리뷰 쓰자마자 이렇게 댓글 달아주시다니요...

파란여우 2005-08-22 22: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룬다티 로이의 9월이여 오라를 읽다보면 민족주의의 진정한 의미에 대하여
설명이 나옵니다. 덕분에 또 한 명의 사람을 알게 되는군요

달팽이 2005-08-22 23: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9월이여 오라'요, 찾아보겠습니다. 진정한 의미는 무엇일까요?

책속에 책 2005-08-23 09: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룬다티 로이 저도 찾아봐야겠네요^^
달팽이님, 인사도 안 드리고 달은 제 짧은 댓글에도 불구하고 제 페이퍼에 길게 좋은 정보도 주시고, 또 이렇게 좋은 책을 두권이나 알고 가게 되서 너무 감사해요^^

달팽이 2005-08-23 10: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지나버린 정보인걸요...뭐..
 
산색 - 죽창수필 선역
운서 주굉 지음, 연관 옮김 / 호미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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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운서 주굉 스님의 '죽창수필'450여편 중에 일반인들이 생활하면서 지켜야 하는 계율과 간단한 마음공부에 대해 140여편의 글을 모아 묶어낸 것이다. 그래서 좀 더 마음공부에 관한 글을 읽고 싶었던 나는 머릿말을 보면서 조금 실망하였지만 글을 읽어가면서 내용에 집중하다보니 그런 마음은 사라졌다.

  비록 짧은 글들로 쓰여졌지만 각 각의 내용들이 나의 마음을 들여다보게 하여 곰곰히 성찰하게 해주는 글들이다. 더운 여름 날 집 안에서 조용히 책을 보면서 나를 들여다보는 시간들이 참 값진 시간임을 알게 되었다. 물론 사회적인 관계를 가지고 있다보니 사람도 만나야 하고 때로는 형식치레도 하며 살아야 하지만 아무래도 난 조용히 혼자서 보내는 시간에 매력을 더욱 느낀다. 조용한 곳에서 책 속의 내용에 푹 빠져 있을 때에는 책의 의식 속으로 쉽게 빠져들기 때문이다.

  책의 글귀도 이젠 하나 하나의 내용이 나한테 지금 맞는 내용인지 아니면 3요를 증가시키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아니면 지금 이 순간에 내게 열리게 자극하는지에 대해 어느 정도 눈이 생긴 것 같다. 어떤 말을 들어도 그것이 화두로 모아진다면 세상에 나아가 번잡한 곳에서도 생활할 수 있겠지만, 아직 그런 의정이 생기지 않은 이상은 조용한 시간을 많이 갖고 더욱 노력할 따름이다.

  술도 앞으로 자제해야겠다고 생각한다. 몸도 별로 받지 않는 술이지만 술에 취한 날이면 아무래도 잠자기 전 명상과 아침 명상에 큰 지장을 초래하고 심한 경우는 다음 날까지 비몽사몽하게 하니 그 해악이 막대함을 알고도 쉽게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있었는데...앞으로 좀 더 성실한 일과를 짜서 생활해야겠다는 생각이다. 좀 더 많이 걷고, 좀 더 차분한 시간을 많이 가지고 좀 더 집중해서 노력하여 어느 정도 힘이 붙으면 생활을 느슨하게 하면서 공부를 실험해도 늦지 않으리라...

  내 공부도 제대로 하지 못하면서 남을 돌아볼 시간도 없을 뿐더러 남에게 이러쿵 저러쿵 교훈의 말이랍시고 떠드는 내 모습이 때로는 한심하다. 동생에게도 친구에게도 때로는 학생들에게도...그저 교훈의 이야기는 책에도 널리 쌓여 있다. 문제는 내 마음이 맑아져서 그 사람에게 정말 필요한 시점에 필요한 말을 해주는 것인데...우선 내가 공부가 덜 되어 있는데 어찌 나서서 일을 그르치려 하는가?

  세상의 경계를 흐리려고 하면서 마음의 경계를 없애지 못하는 나를 제대로 보아야겠다. 마음의 경계는 없애고 세상은 있는 그대로 보는 지혜가 생길 때까지 말을 더욱 참고 마음을 더욱 살필 일이다. 세상은 참 좋아져서 선지식의 좋은 말들이 책만 펼치면 보인다. 그것을 나침반 삼아 공부하기도 좋은 환경에 또 무엇이 갖추어져야 하겠으며, 또 어떤 조건을 필요로 해야 하나?

  내 스스로 갖추어져 있는 불성, 그것이 있어 나는 찾게 된다. 내가 찾는 그것이 오늘 하루를 살아가며 내가 찾는 삶의 의미이며 나의 게으름을 질책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내가 사는 이유...그것이 오늘도 나로 하여금 앞으로 한걸음 내딛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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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야기 - 가람사이언스 16
위베르 레브 외 지음, 이충호 옮김 / 가람기획 / 200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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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시지구에 비가 내린다. 지표면 상공에서 뿌려지는 비 속엔 생명의 필수조건인 아미노산을 형성하기에 가장 적합한 탄소라는 원소가 바닷속으로 떨어져내린다. 탄소가 대기상에서 적절한 온도를 갖추지 못하고 일정한 조건을 갖추지 못하게 되면 그것은 우주공간으로 날아가버리고, 그러면 생명은 씨앗을 채 피워내지도 못한다. 오늘도 비가 내린다. 그 비는 태초에 생명을 잉태했던 바로 그 비다. 나는 그 비를 가슴으로 맞는다. 내 몸 세포 하나하나에 그 지구 생명체 생성의 비밀의 정보가 담겨있을 것이다.  

  우리들은 어디에서부터 왔는가? 우주는 언제 어떻게 왜 생겼으며, 우리는 현재 어디로 가고 있는가? 우리들은 왜 이 지구라는 별에서 태어났으며, 지금과 같은 모습을 하고서 한 생을 살다가는가? 우리 생의 의미는 무엇이고 우리 인류는 또 앞으로 어떻게 진화해갈 것이며 우리가 지구에서 생기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태양은 언제부터 생겼으며 앞으로 얼마동안 존속되어 지구생명체의 존재조건을 유지시켜줄 것인가? 인류는 계속 생존하여 진화를 계속해갈 것인가? 아니면 절멸의 위기에 봉착하여 사라지고 말 것인가?

  이제까지 이러한 삶의 근본적인 물음에 대한 답은 늘 종교적인 영역에 맡겨져 왔다. 그러나 이제 이러한 물음들에 대한 답을 완전하지는 않더라도 과학이 어느 정도 내릴 수 있게 되었다. 여기 나오는 위베르 레브와 조엘 드 로네 그리고 이브 코팡은 이런 문제들에 대해 과학이 할 수 있는 답을 일반인들도 쉽게 읽어내릴 수 있도록 간명하면서도 재미있게 풀어내고 있다. 그간의 과학적 성과들이 총망라되어 해석되는 우주의 탄생과 우리 은하의 탄생 태양의 탄생과 지구의 탄생 그리고 지구에서의 생명체의 출현과 인류 조상의 출현에서부터 현생인류의 출현과 오늘날까지의 인류사회의 발달에 이르기까지 그들이 제시하는 설명들은 아주 과학적이고 논리적인 추론을 통해서 가장 근접한 확률적인 얘기로서 우리에게 펼쳐진다.

  빅뱅을 우주의 출발점으로 볼 것인가? 그것에 대한 확실한 결론은 없지만 대체로 시간의 출발과 함께 우주의 출발로 본다. 150억년의 시간 속에 최초의 1초동안에 이루어진 우주원소의 생성과 소립자들간의 결합에서부터 존재의 신비는 드러난다. 지구의 생성, 태양과의 적절한 거리와 지구의 자동조절능력의 작동과 생명체 탄생의 비밀원소인 탄소가 비로내려 바다속으로 보존되고 그것이 화학작용에 의해 분자가 형성되는 과정은 마치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딱 들어맞는 신비의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조종되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

  또 하나의 우연한 사실, 공룡의 멸망... 왜 멸망했을까? 내부적인 소멸원인없이 혜성의 출현과 그로 인한 공룡의 멸망은 어쩌면 고등생명체의 탄생계획이 어긋나자 지구전체를 파괴하지 않고 지구상의 식민자인 공룡만을 정확하게 멸종시키고 마는 신비한 힘... 그 후 지반의 융기로 인한 산맥의 형성과 산맥 동쪽의 건조한 기후로 인한 숲의 위기가 도래한다. 이로 인해 인간은 진화과정에서 이제 나무에서 내려오고, 직립보행을 하고, 뇌의 용량이 커지고, 땀을 배출하기 위해 털이 사라지고, 후두엽부분이 내려감으로써 말을 할 수 있는 자기공명장치가 생기게 된다.

  우주 생성의 신비는 인류의 진화 과정 곳곳에서도 풀리지 않는 신비로 나타나고 다만 인류의 진화와 역사의 발전 속에서 한 가지 설명할 수 있는 사실은 더욱 지구의 환경과 조건은 복잡해지고 있고 그것은 효율성을 추구하는 쪽으로 발전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현재 그 효율성은 인류와 지구 전체의 생존을 위협하는 문제거리로 등장하게 되었다.

  생명의 탄생과 진화과정은 자연선택의 오랜 과정을 통해 보다 의식적이고 영적인 존재로서의 인류를 탄생시켰지만 이제 우리 인류는 다시 자연선택의 기점에 섰다. 우리들이 무분별하게 파괴한 지구가 이제 그 자정능력을 발휘할 능력을 넘어서서 인류와 함께 파괴되고 황폐화되어버리고 말 것인가? 아니면 인류의 발달과 지구생명체의 공존과 조화속에 인류는 보다 진화된 존재로 발전을 거듭해나갈 것인가? 그것은 이제 우리들의 선택에 의해 달려 있는 것이다.

  우주와 지구의 역사 그 어디서나 삶의 근본적인 문제들에 대한 의문은 해결되지 않고 그대로 남는다. 왜 우주는 이렇게 오랜 시간에 걸쳐 진화해온 것일까? 그 이전에 우주는 어떻게 생겼으며 우주를 탄생시킨 그 누군가의 존재와 계획이 존재하는 것일까? 이 우주에서 아주 티끌같은 지구의 존재 의미는 무엇이며 다시 그 지구위의 작은 티끌인 인류의 존재 의미는 무엇일까? 나는 왜 태어나서 이 작은 별에서 아웅다웅 살다 어디로 가는 것일까? 존재의 의미를 찾아가는 이야기는 바로 우리들의 삶의 의미를 물어가는 가장 아름다운 신비의 베일에 쌓인 이야기이다. 그 이야기가 궁금하지 아니한가? 인류의 진화과정에서 다시는 되돌이킬 수 없는 지워진 흔적을 되돌아보며 우리가 가야할 진화의 앞 길을 쳐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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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5-08-09 14: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네요. ^-^ 다음에 꼭 읽어볼께요. 그 이야기 저도 궁금합니다~

달팽이 2005-08-09 15: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가시장미님, 자연과학 서적이지만 그래도 쉽게 잘 읽혀요. 꼭 읽어보세요..
 
아름다움을 훔치다 - 김수남이 만난 한국의 예인들
김수남 지음 / 디새집(열림원) / 200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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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옥진의 표정사진과 밀양의 병신춤, 한영숙의 승무 사진이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다. 단 한 장의 사진을 보면서 예술가들의 혼이 그대로 드러난 것을 본다. 동시에 그 혼을 담을 수 있는 김수남 사진가의 영혼의 몰입도 함께 본다. 과연 사진 한 장에 어떻게 이런 장면을 담아낼 수 있는가? 그것은 사진가 김수남의 굿이나 무, 극, 소리를 감상하면서 영혼이 몰입되어야만 뽑아낼 수 있는 장면이다. 그러기 위해선 30년이라고 하는 오랜 세월동안 쌓이고 쌓인 경륜의 탓도 무시할 수 없지만 무엇보다도 예능인들의 삶과 무대에 대한 혼적인 끌림과 관심이 없이는 불가능했던 일이 아닐까 하고 생각해본다.

  조국에 밀어닥친 서양화와 근대화의 물결 속에서 한 시대의 예능을 이어왔던 이들의 마지막 세대로서 살아온 그들. 그 시대가 저물어가는 세월 속에서 사람들의 천대와 무관심속에서의 어렵고 고달픈 삶 속에서도 그것을 하지 않고서는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없었던 그들. 자신의 온 삶을 내던져서 자신의 혼을 끌어당기는 그 길을 따라 걷지 않을 수 없었던 삶 속에서 세월속에 뼈를 깎는 노력 속에 한과 슬픔을 예술로서 표출했던 그들. 자신들이 마지막 시대일지도 몰라 자신에게서 그 예술미를 정점으로 한껏 승화시키고자 했던 진정한 예술가들 그들 앞에 단순한 기능으로 지식으로 전문가입네 예술가네 하고 허세를 부리는 우리들의 모습은 얼마나 초라한가?

  부모나 집안이 예능가였던 사람이나, 집안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그 길을 걸어갔던 사람이나 무엇보다도 자신의 영혼의 이끌림에 의해 자신도 어쩔 수 없이 길을 걸었던 사람들, 따라서 기예나 기술을 넘어 자아를 버린 상태에서 무의식이나 그 너머의 힘이 드러나도록 펼쳐보인 그들의 예술은 우리 사회에 참다운 예술이 지향해야 할 바를 사라져가는 옛 것 속에서 넌지시 드러내준다. 그들의 춤사위 속에는 이미 그들의 자아는 없다. 그들이 알 수 없는 어떤 힘들이 그들을 움직이고 그것을 보는 우리도 또한 어떤 몰입의 느낌을 뒤따라가게 된다.

  그것은 김수남 사진가의 눈으로써 포착된 것이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그 기운이 온 무대를 사로잡으며 뻗쳐가는 순간을 어떤 기술과 지식으로 포착해낼 수 있을 것인가? 다만 무대에의 몰입과 무아적인 찍기가 이루어낼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참다운 예술가의 기질은 무대 위에 있는 자나 그것을 파인드에 담아내는 자 모두에게 갖추어질 때만이 이런 사진이 탄생할 수 있는 것이다. 서로를 비추는 구슬에 때가 끼지 않을 때 하늘에 떠 있는 하나의 달이 온 구슬에 비쳐져 백 개 천 개의 달이 될 수 있듯이....

  이제 우리는 어디에서 이런 사진들과 같은 문화를 향유할 수 있을 것인가? 사라져가는 것에 대한 애절함과 쓸쓸함은 늘 우리에게 인생의 참된 의미를 되묻곤 하는데, 자신의 삶과 인생을 자신의 예술 속에 쏟아부어 승화시키고자 했던, 그래서 한 시대를 풍미했던 우리들의 예술가들의 떠나감과 그 문화의 소멸이 그것을 지켜보는 우리로 하여금 깊은 아쉬움과 슬픔에 빠지게 한다. 모든 것이 피었다 지는 세상, 그래서 또 다른 예술가가  또 다른 예술로 자신의 인생과 한과 슬픔을 담아내겠지만 우주에 핀 꽃 한 송이, 다시는 똑같이 피지 않을 그 한 송이 꽃이 지는 데 어찌 슬프지 아니하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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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여우 2005-08-22 22: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이 책 읽고 (글은 순식간에 읽히지만)
사진은 오래오래 들여다 봐야 하죠..
암튼, 명치끝이 찌리릿 했어요...울컥하기도 했구요.

달팽이 2005-08-22 23: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혼이 몰입되는 것에서 이미 파인드에 담겨지지 않더라도 상황은 끝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다음 일은 파인드에 담겨지든, 글로 적혀지든 단지 그것을 표현하는 것이 될테니까요... 그런 면에서 사진을 오래 들여다보면서 그 장면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중요하겠지요...찌릿한 느낌...오직 그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