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짜경제학 - 상식과 통념을 깨는 천재 경제학자의 세상 읽기
스티븐 레빗 외 지음, 안진환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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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제학을 전공하기 위해 대학원에 진학했던 때가 생각난다. 사회과학의 기초학문으로 사회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반드시 알아야 할 통과의례로 생각했던 경제학을 좀 더 공부해보고 싶었던 욕심이 있었다. 하지만 주류경제학보다는 주로 경제사나 경제철학 학설사 부분이 보다 관심이 많았다. 경제학자들의 주요한 관심사가 시대나 경제환경의 변화에 따라 어떻게 바뀌고 이론화되는지에 대해 보다 눈길이 갔다.

  하지만 대학원에서 주류경제학인 미시, 거시, 개량경제학을 공부하면서 숫자와 수식에 빠져 정작 왜 수학을 풀고 있는지 이것이 가진 경제적 의미가 무엇인지에 대해 잊고 있을 때가 많았다. 복잡한 수학이나 선형회귀분석 등의 기법들을 사용하지 않고서 순전히 사고를 요하는 분야인 학설사부분이 더욱 마음에 들었던 기억이 난다. 그래서 이 책을 잡고 첫 페이지를 읽어나가면서부터 나는 이 책이 '괴짜'딱지가 붙은 이유를 알 수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이 책이 주류경제학의 주된 주제인 수요, 공급, 노동시장, 금융시장, 통화, 환율 등의 개념으로부터 자유로워진 미시적인 사회현상 어느 주제에나 천착할 수 있다는 사실과 그 서술 방법도 수학과 도식으로부터 해방되어 일반인들이 쉽게 볼 수 있게끔 표와 설명으로 채워졌다는 사실이다.

  그러면서도 이 책의 장점은 기존의 경제학체계내에서는 명백하게 밝힐 수 없었던 사회현상의 인과관계에 대해서 날카로운면서도 정확한 분석을 했다는 점이고 그것이 정밀한 통계자료를 자의적인 해석이나 왜곡없이 체계적이고 논리적인 조작과정을 통해 주어진 목적을 달성했다는 점이다. 외생변수가 미치는 영향력에 대해서 최대한 많은 고려를 했고 따라서 표본집단과 비교집단을 선정하는 방법과 기술이 아주 뛰어났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정보가 가지고 있는 힘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었고 그것은 교과서적인 경제학의 이론에서 모자라는 부분을 자신의 직관과 상상력으로 채워나갔다는 것을 의미했다.

  물론 그의 방법도 과학적인 방법을 따르기 때문에 눈에 보이지 않는 현상들에 대한 설명을 해내지 못하는 면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주어진 정보를 서로 다른 관점에서 얼마나 상반된 결론을 도출하는 데 이용될 수 있는가를 언론이나 정치인들을 통해 충분히 보아오지 않았는가? 따라서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자료의 왜곡과 자의적인 해석을 떠나 엄격하고 공정한 절차에 따라 도출된 정보로서 현상 뒤에 내재한 원인들을 밝혀내고 있다는 점에서 실추된 경제학의 권위를 복원하고 앞으로의 사회연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해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미국 사회에서의 범죄율의 하락은 낙태와 상관이 있고, 자녀의 학교 성적은 부모의 사회 경제적 지위와 상관관계가 있다, 특히 집에 책이 많은 학생들이 학업성적이 높은 경우가 많이 나타났다는 점과 스모선수와 교사들도 승패나 성적을 조작한다는 사실은 그에게서 검증된 새로운 사실들이다. 결국 우리는 의심해야 하고 물어야 한다. 우리가 그것이 사실이라고 고정관념을 가지는 일들에 대해....그래서 고정관념이 가진 자리를 비워둔 다음 그 자리를 상상력과 주어진 정보를 사실적으로 그리고 기술적으로 다루는 방법들로 채워야 한다. 그럴 때 우리는 사회현상을 보다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고, 잘못된 생각으로부터 우리들의 삶이 자유로워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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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moo 2010-08-04 13: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멋진 리뷰 잘봤습니다~
 
네루다의 우편배달부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04
안토니오 스카르메타 지음, 우석균 옮김 / 민음사 / 200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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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카르메타는 정말 네루다를 좋아했구나. 그만큼 네루다를 국민시인으로서 국민들의 일상생활속에 네루다의 시가 스며들었던 것을 작품을 통해 보여주려했다는 것이다. 문학에 대해서 한 번도 공부해본 적이 없는 어부의 아들인 마리오가 네루다를 만나면서부터 시에 관심을 가지게 되고 시가 자신의 가슴속에서 살아나는 경험을 하게 된다. 베아트리스를 만나고 사랑을 하게 되고 가정을 꾸리는 전 과정에서 그는 점점 더 시인과 끈끈한 인간관계를 맺게 되고 시인의 시와도 그렇게 된다.

  베아트리스가 그녀의 과부어머니와의 얘기 속에도 시는 메타포로서 살아있다. "기막혀! 남자애 하나가 내 미소가 얼굴에서 나비처럼 날갯짓한다  그랬다고 산티아고에 가야 되다니."하자 과부역시 말한다. " 닭대가리 같으니! 지금은 네 미소가 한마리 나비겠지. 하지만 내일은 네 젖통이 어루만지고 싶은 두 마리의 비둘기가 될 거고, 네 젖꼭지는 물오른 머루 두 알, 혀는 신들의 포근한 양탄자, 엉덩짝은 범선 돛, 그리고 지금 네 사타구니 사이에서 모락모락 연기를 피우는 고것은 사내들의 그 잘난 쇠몽둥이를 달구는 흑옥 화로가 될걸! 퍼질러 잠이나 자!"

  삶 모두가 온세상이 메타포가 된다는 것은 우리들에게 주어진 현실이 오감각으로부터 자유로워진 아니 오감각이 상상력을 통해 뒤엉킨 새로운 세상으로 받아들여지게 되는 것이다. 사실 칠레사회를 사회주의적인 개혁을 거쳐 민중이 살기좋은 세상을 만든다는 것도 가슴속에서 먼저 만들어진 메타포이며 우리들의 삶을 아름답게 사랑의 색깔로 채색한다는 것도 일종의 메타포다. 그래서 현실보다 더욱 현실인 메타포가 되며 메타포는 새롭게 현실을 창조해간다.

  네루다가 파리대사로 가서 병들었을 때 소니녹음테이프로 파도소리와 종소리 갈매기소리 등 자연의 소리를 담아달라고 했을 때 마리오는 그 소리들을 정성껏 채집하는 과정을 통해서 알게 되었다. 이런 자연의 소리가 어떻게 네루다의 마음을 통해서 시로 형상화되는 것인지...그것은 마리오에게 있어서 네루다의 가슴과 직접 만나게 해주는 시작의 과정이었다. 평범한 어부의 아들이 시인적 감성을 갖고 시작을 시작하는 과정. 자연의 소리를 가슴에 담아 자신에게 일어나는 느낌들을 포착하는 과정...

  왜 이 이야기의 결론은 검은 물이었을까? 칠레혁명의 실패와 좌절을 담았을까? 네루다의 죽음을 의미했을까? 그토록 경쾌하고 가벼운 필체로 써내려간 이 이야기가 마지막 부분에서 감당하기 힘든 어두움과 무게로 끝을 내려했던 스카르메타의 의도는 무엇이었을까? 자신의 삶이 대중음악과 자전거여행과 춤과 여러 가지 가볍고도 즐거운 취미들로 가득찼었고, 그것도 문학속에 반영되었지만 그 가벼움을 바탕으로 한 생활에서도 역사와 삶과 시에 대한 무거움이 마치 바람을 맞아 강표면의 물이 나부끼더라도 밑바닥의 물이 그것을 지탱해주는 것처럼 버티고 있었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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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8-28 15: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icaru 2005-08-28 16: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마지막 부분이 어둡게 끝났었지...싶어요...
근데 베아트리체의 엄니는 질펀하게 말씀도 잘 하신다니까요~

2005-08-28 16: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달팽이 2005-08-28 16: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반갑습니다. 이카루님 이렇게 또 과부아줌마의 말에 감동하는 독자를 만나게 되어서요...ㅎㅎㅎ

2005-09-02 11: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달팽이 2005-09-02 12: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속삭인 님 잘 읽어보세요...
 
9월이여, 오라 - 아룬다티 로이 정치평론
아룬다티 로이 지음, 박혜영 옮김 / 녹색평론사 / 200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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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도 사회에서의 댐 건설이 가장 밑바닥의 선량한 사람들의 삶의 터전을 빼앗는 것임을 목격한 이후에는 그녀는 자신이 본 것을 쓸 뿐이고, 자신이 할 일이란 그저 자기의 "아픈 눈을 뜨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또 그녀는 작년 미국에서 발표했던 글쓰기의 연설문에서 " 나의 경우처럼 평화롭다고 추정되는 상황 가운데에서 한 작가가 불행하게도 조용한 전쟁에 마주치게 될 수 있습니다. 문제는 일단 그것을 보고 나면, 그걸 안 볼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일단 본 다음에는 입다물고 조용히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이 발설하는 것만큼이나 정치적이 행동이 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본 그녀의 말에서 그녀는 확실히 그녀가 의도했건 안했건간에 그것이 정치적인 의미를 가지게 된다는 것을 이해한 것이다.

  그녀의 사진이 책장 앞에 실려 있다. 뭔가를 호기심과 의문을 가지고 응시하고 있는 저 눈빛 속에 인도에 대한 세상에 대한 그리고 세계화의 흐름 밑에 숨은 정치적 논리와 경제적 논리를 보고자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녀를 보면서 얼마 전에 읽은 암베드카르가 생각이 났다. 인도 불가촉천민을 위해 자신의 일생을 바쳤던 인도 민중해방의 아버지. 자신에게 주어진 작가로서의 명성과 성공의 길을 접어두고 이미 알아버린 사실에 대해 양심이 지시하는 대로의 삶을 선택한 용기는 자신의 삶이 그렇게 이끔으로써 자신이 행복해질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한 깨달음이기도 했다.

  아직도 많은 카스트제도의 구습과 불가촉천민과 여성에 대한 차별이 지워지지 않는 인도 사회에서 그녀는 홀어머니와 함께 자라오면서 당당하고 행복하게 사는 법을 스스로 터득하였는지도 모른다. 전근대와 근대 그리고 현대라고 하는 수세기가 공존하고 있는 인도사회에서 그녀는 시간의 흐름을 관통하면서 여전히 달라지지 않은 민중들의 삶과 처지에 눈을 떴고, 더 나아가 민중들의 되물림된 가난과 압제와 착취와 희생 위에서 피에 절은 고기를 뜯는 재벌과 권력자 그리고 미국 사회의 관료, 정치인, 군산복합체의 기업가들의 모습이 보였을 것이다.

  그저 평범한 눈으로 '민주주의'라고 하는 것을 가만히 들여다보다가 갑자기 거기서 욕설과 고함이 튀어나오고 잠시후엔 나의 머리를 내리치는 망치가 튀어나오고 총과 폭탄 미사일 등 수많은 사람들을 학살하기 위한 기계들이 튀어나올때 우리는 '민주주의'가 무엇인지 다시 묻지 않을 수 없다. 노암 촘스키나 하워드 진에게서 이미 보았듯이 소수의 권력자의 번영 위에 뿌려진 다수 민주의 피로 자라는 기형적인 민주주의에서 '민'자엔 '그들에게 시민은 없다'라는 말이다.

  미국은 나쁜가? 인도는 나쁜가? 아니 국민들의 의사 대변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고 소수 돼지들의 뱃속만을 생각하는 그들의 행정부와 정치인 기업인 권력자들이 문제의 핵이다. 이미 권력과 부에 맛을 들여 자신도 어쩌지 못하고 몸집만 키워가는 그들의 눈에 돈과 권력 아닌 것은 모두 없는 것이다. 팔레스타인에는 아랍인들이 없고 '이라크의 자유'에서는 이라크의 국민들이 없었다. 심지어 권력자들의 눈에는 자신들의 국민들도 안중에 없다. 그래서 유대인들을 배신한 유대인들이 권력을 잡고, 국민을 배신한 정권이 자신의 국민을 학살한다.

  세계화와 자본 논리에 대항한 그녀의 삶은 우리에게 가만히 있는 것도 하나의 정치적인 입장을 취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패스트푸드 음식에 대한 불매운동과 반전운동 군산복합체에 대한 불매운동 나아가 개개인에게 주어진 정치적 선택의 권리가 책임의식하에 이뤄지도록 하는 일, 그래서 소수의 권력자와 눈먼 미친개에게 주어진 권력을 다시 의식있는 개개인의 손으로 돌려야 한다는 점, 그러기 위해 자신의 일상생활에서도 부귀와 권력과 명성에 대한 욕망을 떨쳐버리는 삶을 살 것 등이 필요하다고 한다. 그녀는 자신의 삶으로 보여준다. '명성은 자꾸만 내 뒤에 매달려서 시끄러운 소리를 내는 깡통꾸러미와 같다."는 말처럼 언젠가 떨어져나가고 그곳에 마음이 들러붙은 정도만큼 반드시 잃게 될 때 가지는 상실감의 크기를 느끼게 된다. 그것을 겪어야만 아는 것이 아니라 먼저 자신이 그런 삶을 피해가는 것도 참다운 민주주의를 손에 쥐기 위한 방법이자 행복하게 사는 길이다.

  "마인드는 세계적으로 실천은 지역적으로"라고 했던가. 그녀가 인도의 댐건설반대운동에서 보여준 많은 노력과 용기가 인도에서 삶의 터전을 빼앗긴 자들에게는 희망이요 빛이다. 자신의 집에서 물이 가슴까지 차오르는 것을 견디며 댐건설과 함께 죽겠다는 의지와 숲을 떠나서는 삶의 아무런 보장과 희망도 없는 그들에게 인도정부와 거대한 다국적 기업 인도의 상류층과 중산층의 위협을 온전히 자신의 몸으로써 막아내며 생명을 연장해가는 그들에게 민주주의란 무엇일까? 그들에게는 없는 민주주의를 되찾기 위한 과정에 아룬다티 로이는 캄캄한 세상에 하나의 빛처럼 그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드리우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참다운 민주주의는 희망이요 꿈이요 사랑인 것이다. 남들에게 빼앗긴 내 권리를 찾는 것만이 아니라 나를 넘어서 타인에 대한 관용과 사랑과 공존을 위한 빛인 것이다. 그 '민'은 그래서 확장된 '나'가 '온인류'로 나아간 것이며 '온생명'과 '온우주'로 나아간 것이다. 다시 그녀의 사진을 본다. 그녀의 눈빛엔 호기심과 의문만 있는 것이 아니다. 가진 것이 없어 생존의 위협아래 놓인 민중에 대한 사랑과 관심이 말없이 빛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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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여우 2005-08-27 21: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으셨군요^^
아룬다티 로이의 글을 읽으면서 몰랐던 부분 많이 알게 되었지만
무엇보다 저는 민족주의가 자칫하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도 깨달았답니다.
책에 이런 말이 나오죠. 부시1세가 한 무책임한 말요,
"나는 그 어떤 것이 사실이라해도 내가 알 바 아니다"..
이게 미국의 민족주의로 대변된다니 얼마나 가슴이 뛰었는지 모릅니다.

달팽이 2005-08-27 22: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그렇죠 임지현 교수의 '오만과 편견'에 보면 심지어 일제치하에서의 우리의 민족주의도 일본이 서양에 대립하기 위한 대동아공영주의랑 크게 다르지 않을 수도 있다고 보는 견해에 어느 정도 동의하는 바입니다.
하지만 간디가 말하는 민족주의(민족애?)는 좀 다르게 받아들여지더군요.
보통의 민족주의 하면 타민족에 대한 배타적이고 폐쇄적인 측면을 가지고 있는데 간디는 그런 배타성이나 폐쇄성이 없거든요. 그런면에서 마음과 의식이 품고 있는 어떤 생각이 나에게서 수신하고 가족 사회 민족 국가 세계 온우주로 열려 나가는 곳에서 막히는 바가 없어야 하고 그런 면에서 불교나 타 종교의 본래 취지, 동양사상이 우리에게 많은 생각할 점을 준다고 생각해요.
가족이기주의 집단이기주의 계급이기주의 민족이기주의 지역이기주의 국가이기주의 기업이기주의....무엇이든 막히는 순간 그 그은 선 밖의 존재들에 대해서는 배타적이거든요...
세계화나 세계화의 경제적 정치적 본질에 대한 책은 많은데 인도사회의 구체적 사안에서 시작하여 그 유려한 문체로 세계화와 정치의식까지로 나아가 더구나 자신의 삶도 일관성있게 살아가는 당당한 인도여성을 만난 것이 님의 덕입니다.
읽으면서 문득 파란여우님의 당당함(있다면..)과도 비슷한 빛깔이 스치는군요...

파란여우 2005-08-27 23: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달팽이님!!저에게는 당돌함과 무대뽀가 있지요.^^
당당함은 제 과제입니다. 무거워지는군요^^
 
'나의 나무' 아래서
오에 겐자부로 지음, 송현아 옮김, 오에 유카리 그림 / 까치 / 200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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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4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오에 겐자부로가 청소년기와 젊은이들에게 자신의 유년기와 소년기의 경험들을 이야기한 에세이인 이 글은 아주 따뜻하고 밝은 에너지를 갖고 있다. 나이는 들어가지만 그가 가진 마음의 눈은 아직 성장하지 않은 어린 아이의 것임을 알 수 있고, 그래서 세상은 보다 자유롭고 상상력에 의해 창조된 전혀 새로운 현실로 들여다보여지게 된다. 그가 가진 가슴은 어린 아이의 동심의 세계이되 그것을 표현하는 언어의 유창함은 자신의 전 인생의 경험이 녹아들어 있으니 이 책은 마음이 맑은 구도자가 써내려간 아이들을 위한 동화책같은 느낌을 준다.

  그의 삶 전체를 관통해서 이어주는 상징적인 것이 '나의 나무'이다. 높은 숲 속에서 자라는 나무의 혼이 마을로 내려와 사람으로 태어나고 성장하면서 인간의 몸을 빌어 여러 가지 경험을 하게 되고 죽어서는 혼이 다시 빠져나와 그 나무에게로 돌아가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연히 그 나무를 찾게 되면 거기에서 자신의 먼 훗날의 모습이나 오래 전 모습을 만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작가에게는 유년시절의 꿈이 현실화되고 구체화된 모습으로 나타난 것이 지금의 모습이 될 것이다. 우리들 누구나 유년 시절과 현재의 자신의 모습을 이어주는 공통된 것을 가지고 있는데 그것은 그가 옛날에 바라던 꿈이다. 그 꿈이 현실화과정을 거치면서 누구에게는 꿈대로 누구에게는 좌절되면서 변화된 채로 나타난 것이 지금의 모습인 것이다.

  적어도 오에 겐자부로에게는 그의 나무가 어릴 때의 공통점을 그대로 가진 지금의 그를 낳게 만들었고, 또한 그 나무 아래서 자신의 유년시절의 기억들을 고스란히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삶을 살아가면서 여유를 가지게 되고 스스로의 상처를 치유하는 방법을 터득하게 되었지만 그래도 자신이 고유하게 가지고 있었던 연결고리가 있어 탄생과 성장, 죽음 그리고 그 이후까지 이어지게 된다는 것이다.

  장애인의 아들을 가지고도 그 아이가 자신에게 재능있는 일을 하면서 세상 사람들의 질시와 차별을 견뎌낼 수 있게끔 부모로서의 역할을 다하고 부모로써 가지는 깊은 불안과 걱정들을 긍정적으로 극복해낼 수 있었던 이유에는 오에가 가진 유년기의 성장과정에서의 경험과 그로 인해 형성된 자신의 긍정적이고 밝은 에너지가 있었음이 분명하다.

  이미 70대가 되어 노년기로 접어든 그가 이제 많지 않은 여생을 남겨두고도 자신의 길에 대한 성실함과 의욕을 잃지 않고 노력하는 모습이 배울만한 점이다. 자신의 삶 전체를 자신이 꿈꾸고 있는 일로써 채워갈 수 있는 그는 행복한 사람이다. 이제 나의 나무로 돌아와야겠다. 나는 나의 나무 아래서 먼 훗날 나의 어떤 모습과 맞닥뜨리게 될까? 나는 어떤 일을 하면서 삶의 행복을 찾을 것이고, 나의 꿈은 무엇인가?

  그의 책을 따라 읽다가 문득 나의 나무 아래서 유년 시절의 나와 노년 시절의 나가 지금의 나와 만나 서로에게 궁금한 것을 묻고 있다. 그러나 한 순간 그 셋은 그 자리서 지금의 나 속으로 스며들고 나는 이제 아무런 불안과 두려움도 없는 온전한 얼굴을 하고 있다. 꿈이 바로 그것을 가능하게 한다. 내가 타고난 본성대로 살고자 하는 것, 내 타고난 본성을 스스로 아는 마음의 눈을 기르는 것이 나의 나무 아래서 그 나무의 온 역사를 그냥 알게 되고 따라서 시간과 공간의 흐름 속에서도 변치 않는 나를 느끼는 순간이 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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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 책 2005-08-26 09: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정말 좋았어요..학교도서관서 빌려 봤는데, 언제 다시 사서 찬찬히 다시 읽어봐야겠어요..

달팽이 2005-08-26 10: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그렇군요. 만나서 반갑습니다.
 
유시민과 함께 읽는 일본 문화 이야기 - 안방에서 세계여행-제노포브스 가이드 유시민과 함께 읽는 문화이야기 16
유시민 편역 / 푸른나무 / 200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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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에 가기 전에 읽는다는 것이 손에 들었다가 잡다한 사정으로 보지 못하고 짧은 일본 여행을 끝내고 그 기억이 아직 가슴에서 지워지지 않았을 때 읽어야겠다는 생각으로 들었다. 사실 내키지 않는 관광상품으로 일본을 그것도 큐슈지방을 둘러보고 왔기 때문에 그다지 일본 사람과 문화에 근접하게 부딪힐 일은 없었지만 그래도 호텔에서 상점에서 휴게소에서 그리고 달리는 차안에서 내다본 일본 도시의 모습을 이해하는 데 이 책은 눈에 보이지 않는 일본인들의 문화와 의식을 간명하고 쉽게 설명해주고 있다.

  거꾸로 읽는 세계사, 부자의 경제학 빈민의 경제학, 유시민의 경제학 카페에 이어서 유시민의 또 다른 편역서를 읽게 되는 셈인데 어쨌거나 유시민 특유의 치밀하고 섬세한 그러면서도 나름대로의 패러다임을 만들어내는 사유공간을 여기서는 만날 수가 없다. 말그대로 이 책은 일본 사회에 첫 발을 내디디는 또는 몇 번의 방문을 해야 하는 사람들에게 일본인들의 사고방식과 문화를 제대로 이해함으로써 불필요하게 발생하는 오해와 실례를 줄이고 일본에서의 짧은 생활을 무난하게 하는 것을 목적으로 쓰여졌기 때문이다.

  타인을 먼저 생각하는 일본인들의 의식과 무엇이든 정돈되고 단정하고 깨끗한 것을 좋아하는 생활방식들이 잘 설명되고 있는 한편 그러한 문화 속에 신세대들의 서구적 미와 가치에 대한 무분별한 추구와 성의식의 혼란은 일본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다. 특히 타인과 공동체를 위해 개인의 전적인 희생과 겸손을 형식과 예의로서 요구하는 문화 뒤에 그들의 자기성찰적인 장점과 더불어 개인을 촘촘하게 에워싸고 구속하는 관계망의 무거운 사슬과 자신의 적성과 개성을 실현하고자 하는 욕구의 좌절, 책임감에 눌린 의무감이 삶의 무게를 더욱 무겁게 하고 있다는 점들도 무시할 수 없다.

  이제 새롭게 자위대를 재편하고 제국주의적 기질을 형성해가고 있는 일본의 국가의식이 다시 일본 국민의 의식과 문화를 어떻게 구속하고 억압시킬 것인지, 곧 도래할 노령화사회에 대한 대비와 그 부족함이 초래할 사회적 현상과 문화의 변화는 어떻게 될 것인지, 일본 사회 내에서의 비판적 목소리와 대안적 삶을 찾는 사람들의 이상과 노력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고 일본 사회의 변화 궤적을 어떻게 바꾸어갈 것인지에 대한 의문들이 남는다.

  미리 읽어 두었더라면 온천에서의 예절과 일본인과 마주쳤을 때의 간단한 예절을 펼칠 수 있었는데, 아무런 의사소통도 할 수 없이 마음만 전달하고자 했던 내 모습이 조금 아쉬웠다. 언제 또 가게 될 지 모르지만 다음 기회엔 방문지역에 대한 최소한의 이해는 하고 가야 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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