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락 한알 속의 우주
장일순 지음 / 녹색평론사 / 199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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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에 간디가 있음을 모르는 사람들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마더 데레사 수녀님의 사랑의 메세지를 모르는 사람들도 많지 않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들 속에 왔다가 그 흔적도 없이 가신 무일당 장일순 선생님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가 않다. 김지하 시인의 '말씀'이란 시의 내용대로 노자선생의 무위자연의 도를 체득하시어 하는 일 없이 안하는 일 없으시고 산 속의 청청한 난초되신 분이라고 하였다.

우리가 가진 내면 속에 우주의 모든 기운이 자리잡고 있고 작은 좁쌀 하나에도 전 우주의 관계망이 드리워져 있다. 이런 이유로 작은 풀 하나 꽃잎 하나도 함부로 대해서는 안된다는 말은 우리에게 큰 교훈이 되고 있다. 인간이 없는 지구에는 모든 짐승과 벌레들이 살 수 있지만 모든 짐승과 벌레들이 살지 못하는 이 곳에선 인간도 살 수 없다는 말은 단지 인간의 삶과 이윤논리에 의해 파헤쳐지고 파괴되는 자연은 결국 인간도 파괴시키고 말 것이라는 경고뿐만 아니라 작은 풀 하나와도 공생하는 생명존중사상으로 이 땅을 무위자연의 도가 실현되는 곳으로 만들어나가시고자 하는 그 뜻이 담겨 있다.

온갖 종교들의 형식성과 배타성이 인류의 비극을 초래하여왔고 지금도 크고 작게 이루어지는 비극들 속에 그는 모든 종교의 담을 낮추어 모든 사람들을 포용하는 열림과 사랑의 미덕을 설하고 자신 스스로 낮추어 드러내지 아니하고 자본의 세계화가 물결치고 도시화와 산업 만능주의의 파도속에서도 자신의 고향인 원주에 착실하게 기반하시고 작은 일들 속에서 그 의미를 다하시는 선생의 깊은 뜻을 비록 몸소 따르지 못해도 그 깊은 뜻을 헤아릴 줄은 알아야 한다는 책임감을 지울 수 없다.

동학농민운동에 대한 시각에 대해서도 선생님은 보다 깊은 말씀을 전하고 있다. 단지 사회운동으로서의 동학이 아닌 삶과 생명운동으로서 그리고 하늘과 자연의 도를 추구하는 사상으로서의 동학에 대해 우리는 아는게 없다. 그 동학 2대교주 해월선생의 사상이 손병희 선생으로 3.1운동으로, 중국의 5.4운동으로, 인도의 비폭력 무저항운동으로 이어진 시대의 파장을 우리는 잘 알지 못했다.

바로 우리 옛 선현들의 깊은 혜안 속에 우리가 삶에서 추구해야 할 것들에 대해 이미 설한 바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린 너무 멀리서 그것을 찾아온 것은 아닌가 반성하게 되고 현실문제의 원인을 늘 밖에서만 찾으려 했고 진정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자신의 마음 속 들여다보기는 무관심하지 않았는지 되돌아보게 한다. 80년대에 선생께서는 자신의 호를 '일속자(좁쌀하나)'라고 하였다. 그 작은 좁쌀 하나에 이미 온 우주의 생명이 깃들어있음을 아는 지혜로 선생의 마음에 가 닿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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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은 답을 알고 있다 2
에모토 마사루 지음, 양억관 옮김 / 나무심는사람(이레) / 200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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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편과 같은 내용을 파동에 대한 이론으로 좀 더 자세하게 설명해놓았다. 그리고 자신이 찍은 결정 사진 중 자신의 의지로 고른 것이라는 설명도 덧붙여 놓았다. 즉 물의 결정을 찍는 사람의 의식에도 물의 결정은 반응할 것이라는 점과 그 결정들 중 자신이 가장 잘 보여준다고 생각하는 인식의 측면이 이 책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인간의 오감각과 의식을 통한 세계에 대한 인식은 아주 제한적인 것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이 책을 통해 볼 수 있다. 하지만 인간의 발세포 하나에서 추출한 유전정보는 인간의 심장과 두뇌를 비롯한 신체 전체에 대한 정보를 간직하고 있듯이 우리 인간의 아주 제한적인 우주에 대한 정보 속에는 우주의 진실에 대한 정보 역시 모두 담겨져 있는 것이다.

이 책은 또한 의식의 힘에 대하여 우리에게 교훈을 주고 있다. 우리의 기도가 가지는 힘은 실로 현실세계를 바꾸어나가는 힘이 있다. 바로 이 책의 저자자신의 물에 대한 연구욕이 물이 가진 우주의 정보를 드러내게 만들었듯이 우리가 간절한 의식으로 기도하면 그 바라는 바는 반드시 이루어짐을 알게 한다.

마지막 부분에 제시되어 있는 대체에너지원으로서의 대마에 대한 이야기도 흥미롭다. 현 지구의 경제가 바탕하고 있는 석유에너지를 비롯한 화석에너지의 문제점은 이미 우리들에게 너무나도 잘 알려져 있다. 인류의 생존마저도 위협할지도 모르는 화석에너지원이 또한 고갈되어도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기는 매한가지이므로 이산화탄소 발생률을 줄이고 환경오염을 줄이면서도 보다 효율적이고 고생산성의 에너지원인 대마의 미래사회의 사용가능성에 대해서도 시원한 답을 제시한다.

결국 인류가 당면한 여러 가지 생존의 위협과 미래의 도전으로부터 우리들을 보호하는 것 역시 그러한 인간의 기도와 간절한 의식으로부터 비롯되는 것임을 우리는 알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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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마음을 바쳐라
김재웅 / 용화 / 199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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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우리들은 누구나 늘 끊임없이 올라오는 감정의 물결을 타고 산다. 때로는 그 감정의 물결이 크게 출렁일때면 자신은 온데간데 없고 그 감정만이 자신의 온 몸을 둘러싸고 씻어낼 수 없는 업장을 만든다. 그 만들어진 업은 오래토록 자신의 마음에 새겨져 마음을 괴롭고 고통스럽게 만든다. 사람을 미워하게 만들고 아상을 더욱 굳게 만들며 욕심을 만들어내며 잘나하는 마음 속에 갇혀 살게 한다. 이런 업장의 난동에 우리는 어떻게 대처하면 좋을 것인가? 이 책은 그 업장에 대처하기 위해 김재웅 법사님이 우리에게 베푸는 선물의 책이다.

자신에게 올라오는 업장을 닦는 이유는 이 세상을 진리의 빛으로 밝히기 위함이다. 자신의 업장이 해소되면 자신도 자유로운 몸이되지만 그 업장과 맞닥뜨린 사람의 업장도 동시에 해소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부처님 전에 늘 미륵존 여래불 하고 바치는 연습을 해야한다. 평소에 일상생활에 그 마음 바치는 연습을 하지 못한다면 업장 올라올 때는 더욱 하기 어렵고 죽음의 순간에는 더더욱 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늘 마음 속의 분별을 가지고 하루의 시작과 끝을 맞이하는 연습부터 하려한다. 다음 주에는 아침일어나서 바로와 자기 전 금강경 읽기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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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知의 도전
다치바나 다카시 지음, 태선주 옮김 / 청어람미디어 / 200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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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를 어떻게 규정할 것인가?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의 변화에 관심을 갖고 이미 펼쳐진 21세기의 앞날을 예측하고자 하는 사람들 그리고 그 속에서 뭔가 사회흐름에 도태되지 않고 그 흐름을 타고 살려는 사람들에게 있어 20세기가 가지는 의미는 지대하다. 지의 달인 다치바나 다카시는 20세기의 최첨단의 지식 속에는 과거의 인류사에 있어서의 지의 축적이 총망라되어 있으며 21세기를 예측하는 열쇠가 된다고 한다. 현재는 그런 의미에서 과거와 미래를 모두 포함하는 것이 된다.

인류역사를 하루 24시간으로 표현한다면 20세기를 하루 시간 속에 위치지운다면 23시 59분 59초 99가 된다고 한다. 정말 눈깜짝하는 것보다. 20배나 짧은 시간이 20세기의 역사이다. 하지만 그 20세기는 우리 인류의 삶의 방식과 세상을 이해하는 관점을 획기적으로 변화시켰으며 20세기적 생활방식에 의해 모든 인류의 삶이 영위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세상의 변화속도는 너무도 빨라 우리는 앞날을 예측할 수가 없다. 좀 더 먼 미래를 볼수록 우리는 우리가 예측하지 못한 불확실한 삶의 모습을 실루엣처럼 떠올릴 수 있을 뿐이다. 하지만 그런 실루엣을 그릴 수 있다는 희망은 바로 20세기에 인류의 삶의 방식을 획기적으로 변화시켰으며 현재 등장하는 최첨단의 과학연구의 성과물의 토대 위에 자리잡고 있다.

다치바나 다카시는 21세기를 이끌어갈 선도적인 부문으로 컴퓨터산업과 바이오테크놀러지 산업을 든다. 더불어 20세기가 해결하지 못한 역사의 수수께끼를 들어 아직 과학기술이 다 해명하지 못한 세상이 거대하게 우리 앞에 놓여있음을 얘기한다. 이러한 변화에 의한 인간 삶의 방식의 변화속에는 여전히 인류가 고민해야할 여러 가지 윤리적이고 철학적인 문제들이 가로놓여 있다. 하지만 이러한 판단을 내릴때 적어도 우리는 이러한 최첨단의 지식에 대한 기본적인 정보는 갖추고 있어야 올바른 판단을 내릴 수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의 지적인 성장이 필요하다고 한다. 비록 다카시는 일본의 지적 성장을 통한 21세기 일본의 희망을 꿈꾸고 있지만 그의 희망은 우리에게도 마찬가지의 희망일 것이다.

이 책은 두 가지의 교훈을 우리에게 준다. 첫째는 앞으로의 우리 사회를 이끌고 갈 최첨단 과학기술분야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을 갖추고 그 변화해가는 사회에 대한 올바른 가치관적 판단을 내릴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우선 전 국민적인 지식수준의 상승이 필요하며 이는 첨단분야에 대한 기초정보의 대중화를 바탕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이를 통해 21세기 과학기술이 안고 있는 윤리적 철학적 문제를 전국민적인 대화와 토론을 통해 사회적 합의를 도출해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는 이러한 과학기술과 해결되지 않은 수수께끼를 통해 우리는 우리의 현상적인 삶을 지탱하는 보이지 않는 세상에 대한 인식을 더욱 넓혀 나간다는 것이다. 우리가 볼 수 없는 자외선, 적외선으로 파악한 우주의 밑그림은 완전히 달라지고 DNA에 의한 인간의 유전정보는 인생의 각 시기에 어떻게 그 정보가 전사되고 해독되어 때에 맞는 세포분열을 이루어내는가를 보면 너무나도 신비로움과 경이로움을 느낀다. 그것은 우리 삶이 가진 의미에 대해 또 다른 의문을 갖게 한다는 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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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 이야기
장일순 지음 / 다산글방 / 199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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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덮고 난 뒤 내 뇌리속엔 다시 도가도 비상도(道可道 非常道)라는 문장이 떠오릅니다. 노자 할아버지의 손가락을 쫓아, 다시 그 손가락을 가리키는 장일순 선생님과 이현주 목사님의 대화 속에서 나는 보이지 않는 곳에 존재하는 이 우주를 지탱하는 그 무엇인가를 보았습니다. 비록 그 뜻을 깨치기 위해 손수 써보았던 5000여자의 한자는 가물해졌지만 예전에 없던, 아니 내가 알지 못했던 도의 향기 또한 봄의 향기처럼 내 마음을 에워싸는 것이 뿌연 안개가 드리워진 듯 합니다.

말로 표현될 수도 없고, 눈으로 보여질 수도 없고, 감각으로 느껴볼 수도 없는 그 도를 5000여자의 한자로 장황하게 설명하는 것은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일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아마도 그것은 말로, 눈으로, 코로, 입으로, 감각으로 알 수 없어도 그것을 아는 내 마음 속 무엇인가를 일깨우기 때문입니다. 도를 어떻게 아느냐고 하면 그것을 아는 내 속의 어떤 존재가 있음으로 그것을 안다고 하겠습니다. 책을 덮으며 비록 도에 관한 많은 문구들은 사라졌지만 도라 불리우는 그 무엇에 대한 믿음은 내 마음 속에 자리잡았기 때문입니다.

말에 매인다는 것은 손가락에 매이는 것입니다. 바로 그 말에서, 그 손가락에서 헤어나는 길은 몸을 가짐으로해서 생기는 그 몸의 불연속면을 벗어나는 길입니다. 그것을 벗어나게 하는 것은 말이 아닙니다. 손가락이 아닙니다. 우선은 사욕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무위함을 깨우쳐야 하는 것이죠. 그런 다음에라야 자연의 도를 깨우칠 수 있습니다. 자연의 도가 거대하고도 평온한 바다라면 그곳을 알고 흐르는 강이, 계곡물이 무위의 도입니다.

그 도를 안다면 그래서 그 도에 어긋남이 없다면 그 아는 마음은 온전한 세상과 만나는 길입니다. 비록 현실은 도가 무너져내려 인과 의와 예와 지와 신이 생겨나고 옳고 그름에 의해 알고 모름에 의해 더욱 유위(有爲)가 기승을 부리고 있습니다. 이 무너져 내린 도가 우리세상에 어떤 균형맞춤의 재앙을 가져올런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아직도 이 사회가 지탱되는 까닭은 바로 그 무위자연의 도를 아는 자들이 그 도로서 세상을 떠받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해봅니다.

노자 할아버지가 이 글을 남긴지가 2000년도 훨씬 더 지난 오늘날에도 그 말하는 바가 마치 오늘날의 모습을 그 손바닥위에 올려 놓고 보고 있는 듯합니다. 이것을 보면 도덕경의 말씀이 무수한 시간의 흐름에도 불구하고 현실을 꿰뚫는 본질을 명쾌하게 드러내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는 현상적인 삶인 상대적인 세계를 벗어난 절대적인 세계가 존재함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이 우주의 축소판인 우리에게도 상대적인 육신의 존재와 절대적인 존재가 있음을 비추어주고 있는 것입니다. 절대세계에 대한 인식의 폭이 깊을수록 상대세계에 대한 이해의 폭도 깊어집니다. 그런 이유로 우리는 도의 세계를 향한 탐험을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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