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계시록 - 신과 나눈 이야기
닐 도날드 월쉬 지음, 윤원섭 옮김 / 반디미디어 / 200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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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는 지금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 환경적인 면에서의 매우 위협적인 문제들에 직면해 있다. 그리고 아직 인류는 이러한 문제를 적절하게 다룰 해결책을 찾아내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문제들은 각각의 영역에서 구체적인 대안과 실천적 지침을 만들어내고 조직화된 힘으로 변화시키는 것도 필요하지만 역사는 항상 그런 노력들이 가진 한계점을 드러내 보여주었다.

닐 도날드 윌시는 이러한 문제들의 근본적인 해결적인 영적인 의식의 성장을 통해서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미국사회에서 본 9.11테러와 이라크 전쟁은 이런 시각의 필요성을 절실히 요구하게 되었다고 한다. 우리가 현실적으로 직면하고 있는 이러한 문제는 그 자체가 근본적으로 영적인 믿음과 세계관에 관한 것이라고 강조한다.

신은 인간에게 최고의 선물을 주었다. 그것은 '자유의지'다. 그러나 인간은 이러한 자유의지를 영적인 성장을 위한 신과의 교류에 사용하지 아니하였고, 오히려 신의 메시지라고 인간이 생각하는 바를 형식화, 교조화시켜 인간사회를 파괴하고 타락시키는 굴레로 만들어버렸다. 우리의 근본적인 오류는 신과 삶에 대한 다섯 가지 오류로부터 비롯되었다고 한다. 그가 설정한 이러한 형식은 현실세계를 설명해주는 설득력을 가지고 있다.
물질세계의 여러 가지 문제점은 본질적으로 물질세계를 창조하는 인간의 믿음과 세계관에 대한 오류에서 출발한다고 말한다. 그것은 인류가 창조해왔던 여러 가지 종교가 다양한 역사적, 사회적, 문화적 배경의 차이에서 출발한 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그 차이를 근거로 차별을 만들어내었다는 점에 있다. 이러한 현상을 낳는 기본적인 원인은 인간이 가지고 있는 두려움이라고 하는 마음의 씨앗이다.

이러한 오류를 근본적으로 넘어서는 방법은 개개인이 모든 인류의 조직화된 종교의 오류없이 직접적으로 현현하는 신의 모습을 삶 속에서 체득하고 신의 메시지를 증험해내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 영혼과 마음의 본성이 무엇인가의 차이로부터 차별짓는 마음을 가질 필요가 없게 될 것이다. 신의 메시지를 우리 개개인이 현재 직접 교류하고 있음을 이해하고 있다면 조직화된 종교가 가진 해악을 경험하지 않아도 되고 그렇게되면 우리가 가진 문제점은 눈이 녹아내리듯 스스로 해결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들은 우리 몸이 가진 업의 한계로 말미암아 자신이 본래 가지고 있는 성품을 쉽게 알지 못한다. 만일 그것이 용이하다면 인류가 가진 오류도 애초부터 없었을테니 말이다.

따라서 우회적인 방법이 필요하다. 인간세상에서 인간을 파멸로 이끌 이러한 오류들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는 선과 악을 구별하는 마음, 자신과 타인을 구별하는 마음, 이것이 정의이다라고 집착하는 마음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절대원칙으로서의 도덕성이 필요하다. 저자의 표현대로 선악의 구분짓는 마음없이 다만 작동하지 않는 것들에 대한 이해가 우선적으로 필요하다는 것이다. 늘 새로운 계시에 대해 열려 있는 마음, 그렇다고 우리가 가진 과거를 모두 버리는 것이 아니라 더욱 진보시키고 발전시키기 위해(확장하기 위해) 우리의 믿음이 완전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마음의 여백을 살려두는 것이 필요불가결한 전제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비록 우리의 입장에서 상대방이 완전히 잘못되었다 하더라도 그들을 우리로부터 완전히 분리시키지 말아야 하며 우리의 행동이 우리들의 믿음과 세계관으로부터 정당한 것이듯 그들의 행동도 그들이 가진 믿음과 세계관에서는 진실로 부적절한 것이 아니라는 인정과 그 믿음에 대한 열린 대화와 토론의 시스템과 네트워크를 형성해가는 것이 새로운 세기에 우리들의 지구공동체를 위해 절실히 요구된다. 그런 시스템 속에서는 우리 영혼과 마음의 본성이 저절로 드러날테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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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의 궁전
폴 오스터 지음, 황보석 옮김 / 열린책들 / 200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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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S 폴의 일생은 드라마틱하다. 아버지를 모르고 자란 그는 어린 나이에 어머니를 교통사고로 잃은 뒤 천애고아가 되어 외삼촌의 보살핌으로 자라지만 그 외삼촌과도 생사를 경계로 한 이별을 하게 된다. 이후에 그가 선택한 좌절된 삶의 방식은 그가 인생을 살아가기 위한 하나의 선택이었다. 극한 좌절로 자신을 내몰았던 힘이 다시 그가 살아갈 힘이 될 것임을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알고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마치 달이 가득 차오르다가 쪽달이 되고 가장 비어있는 조각 달이 어느듯 온전하게 둥근 달로 바뀌어가듯이 삶의 가장 비참한 순간에서 그는 삶을 살아가는 희망을 갖게 될 것이라 생각했다.

우연한 하지만 필연적인 만남과 사건들로 풀어져내리는 그의 출생의 비밀이야기는 한 늙은 노인의 말동무가 됨으로써 시작된다. 맹인이고 하반신이 마비된 그에게 있어 폴은 그의 눈이 되어준다.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에게 그의 말과 언어는 그의 눈이 되기위해 갈고 닦이는 과정을 거친다. 마치 우리가 우리의 감각과 인식의 영역으로 알 수 없는 삶의 교훈과 인생의 의미를 파악하기 위해 말과 언어를 이용하듯이 잘 다듬어지고 현실의 틈을 비집고 들어가 이면의 의미를 도려낼 수 있게 날카롭게 갈고 다듬어진 언어의 구사는 폴 오스터라는 작가의 무기가 된다.

이야기 속에서 모든 등장인물들은 그들 자신의 달을 가지고 있다. 달의 비워진 이미지에서 그들은 채워질 달의 이미지를 찾고 있는 것이다. 3대에 걸친 자신들의 기구한 운명과 삶의 비틀리고 밑바닥의 생활에서도 간직하고 키워가는 희망에 대한 이야기는 그들의 절망적 상황을 극복하기 위한 허구속의 달의 신화 이야기로 승화되고 3대의 부자들이 겪어야 했던 삶의 시련들은 쳇바퀴돌듯 대를 물려 자식에게 똑같은 내용의 삶으로 이어진다. 따라서 그들 3명의 이야기는 각각이 서로 다른 삶의 절망적 상황에 처해 있으면서도 그 유전적 정보속에 이미 아로새겨진 바꿀 수 없는 그들의 태생적으로 공통된 인연이었을 것이다.

작가는 현상적으로는 스쳐보이는 듯 해도 현상을 대하는 개인의 마음 속 깊은 곳에 그것에 반응하고 그 반응에 따라 변해가는 마음의 변화를 놀랍도록 정확하고도 매력적인 언어로 풀어내고 있다. 사실 우리의 인생이란 현실적 삶 그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현실적 삶에 의미부여하고 가치를 만들어내는 상징적 가치 또는 마음의 의미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한번쯤 생각해 볼 일이다. 바로 이 달의 이미지는 파헤쳐지고 파괴된 인생을 통해 각각의 주인공들이 채워가는 삶의 완성의 형태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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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의 나침반 2
숭산스님 지음, 현각 엮음, 허문명 옮김 / 열림원 / 200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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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공부에 대한 끊어짐많은 공부아닌 공부중에 이 책을 접한 것은 커다란 복이었다. 우선 불교에 대해 어떤 지식도 없었던 나에게 불교의 체계에 대한 윤곽은 그릴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선의 가르침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에 대해 느낄 수 있었다는 점일 것이다. 교리체계나 경전에 대한 이해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그것의 의미를 마음속에서 증득해내는 것인데 참선을 통하지 않고서는 진정한 그 의미를 깨우칠 방법이 없다는 사실을 깨우친 것이다.

숭산 큰스님의 가르침은 선수행을 하기 위해 출가해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이 책을 읽고나서 내가 가지게 된 생각은 바로 내 일상에서 흔들리지 않는 큰 의문을 지고 순간순간을 대할 수 있는 끈기의 필요성이다. 책을 읽으면서 가졌던 마음의 상태를 어떻게 하면 나의 일상속으로 가져갈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하지만 늘 일상속에선 그 의문들은 사라지고 만다. 그러다 다시 그 의문을 떠올리게 되고 그래서 늘 이 화두의 있고 없음 사이를 왔다갔다 하게 된다. 책을 읽을 때나 집에 가만히 앉아 있을 때는 그 마음의 상태가 그럭저럭 잘 유지되나 사람들과의 만남속에선 속절없이 그 물음들은 사라지고 만다. 깨어있는 시간조차 유지하지 못하는 마음을 어떻게 숙면으로 이끌고 갈 수 있겠는가?

그 마음의 상태란 무엇인가? 그것은 이름과 규정이 없는 상태이다. 이름과 규정없는 곳엔 집착과 생각도 끊어진다. 단지 지금 이 순간이 있을 뿐이다. 책상을 치면 소리만이 있을 뿐이고 잔을 부딪혀도 그 쨍하는 소리만 있을 따름이다. 나뭇잎이 흔들리면 다만 봄이 있을 따름이다. 누가 보고 누가 듣는가? 나란 무엇인가? 마음이란 무엇인가? 오직 모를 뿐이다....

숭산 큰스님은 선의 나침반을 통해 깨달음의 지도를 간략히 보여주고 있다. 따라서 앞을 모르는 우리들이 어떤 비일상적인 체험을 하였다 하더라도 거기에 집착하지 않고 '오직 모를 뿐'이라는 의문으로 더욱 나아가게 한다. 그 증험이 다가 아니며 오로지 공허함을 알게 한다. 선의 나침반을 한바퀴 완전히 돌리기 위해선 되돌아가려는 관성을 뛰어넘는 힘이 필요하다. 임계치의 힘을 넘어서는 또 한번의 깨달음...그것이 존재함을 알게 한다.

지금...들리는 소리는 티베트의 명상음악 중 '옴마니 밧메움'이다. 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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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행 1 - 하버드에서 화계사까지
현각 지음, 김홍희 사진 / 열림원 / 199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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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에서 가장 부유하고 강한 나라, 그곳에서도 중산층의 어느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나 지식인의 부모를 두고 천재의 형제들속에서 자라나 남들보다 유달리 영리하게 자랐던 저자는 예일대학교를 졸업하고 하버드 대학원에서 수학한 미국사회 엘리트의 전형적인 과정을 거친다. 하지만 늘 그는 삶의 풀리지 않는 의문들을 갖고 살아가며 일상에 적응하는 생활에서도 늘 허무함과 채워지지 않는 허망함을 체감하며 살아간다. 카톨릭을 믿는 가정에서 자라나 수도사가 되려고 마음먹었던 그는 대학원에서 숭산스님의 강의를 듣고 크게 마음을 세운다.

그를 출가시킨 숭산스님은 고봉스님으로부터 법계를 받아 한국선불교의 맥을 이은 유명한 승려다. 하지만 자신의 모든 지위를 버리고 미국에 홀홀단신으로 포교활동을 하기 위해 떠난다. 미국의 어떤 마을에 정착하여 세탁소에서 일을 하며 미국인들의 의식을 이해하기 위해 2년이 넘게 일을 하며 참선공부를 해나간다. 숭산스님은 이 때 물질주의와 현대과학이 가장 발전한 미국이란 나라가 정신적 황폐함으로 인해 반대급부로 갖게 되는 정신세계의 욕구에 대한 가능성을 이미 헤아리고 있었던 것이다.

아직도 온갖 폭력과 기독교 유일주의에 의한 해악이 온 세계에 그 그늘을 드리우고 있는 미국사회가 또 다른 측면에서 진리를 대함에 있어 어떤 교리나 형식에 치우치지 아니하고 열려 있으며 새로운 것을 받아들여 발전시키려 하는 모습은 미국사회에 존재하는 선과 악의 일체를 보여주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현각스님의 일생을 자서전적인 글로서 보여주고 있는 이 책을 읽고 있노라면 왠지 한국사람보다 더 한국다운 그의 정신에 부끄러움과 어떤 의욕이 꿈틀거린다. 전세계적으로 얼마남지 않은 선불교의 전통을 이제 그가 배워서 다시 우리들에게 그 전통을 전하려고 하는 그의 모습에서 한편으로는 미국보다 더 미국다워지려고 애쓰는 우리들의 모습에서 나는 왠지모를 안타까움을 느끼곤한다.

그러나 이 책을 통해 늘 미국사회에 대한 적대감을 키워왔을지도 모를 우리들에게 미국은 그런 세계의 적대감을 극복하고 서로의 마음을 열어 줄 다원주의적 종교화해를 먼저 실천해내는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것은 분명 아직 자신과 타인을 구별하여 배척과 폭력이 난무하는 야만사회의 때를 벗지 못한 이 세상에 보내는 희망의 메세지임에 틀림없다. 그 희망의 메세지는 또한 바로 우리 각자의 마음속에서 선악이라는 업의 굴레에서 벗어나 진정한 자유인이 될 때 비로소 이루어낼 수 있는 선의 열매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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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노바 바베, 간디를 만나다
비노바 바베 지음, 김문호 옮김 / 오늘의책 / 200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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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바혁명에서 카스트로와 체게바라가 만난 것이 민중혁명에 의한 사회주의국가건설에 있었다면 간디와 비노바의 만남은 사회정치적인 의미를 너머 진리를 향해 있었다는 점에서 또 다른 가치를 가진다. 진리와 삶의 의미, 영성을 추구하던 한 젊은이가 민족의 지도자를 만나 그를 섬기고 봉사하였다는 사실은 그가 섬겼던 이가 정치의 논리너머의 정신적 스승으로 존재하였다는 것을 의미한다.

객관적인 간디의 삶이라고 하는 것은 사실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간디가 우리에게 가지는 의미가 있다면 간디의 사상과 정신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태도에 있다. 그런 면에서 간디를 누구보다도 섬기며 그 뜻을 따르고자 했고 그 마음과 공명했으며 간디의 사상에 따라 자신의 삶을 바쳤던 비노바의 마음에서 우리는 어쩌면 가장 진실한 간디의 정신을 발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가 주장했고 실현하려 했던 주요사상인 '스와라지', '사티야그라하', '아쉬람','사르보다야'의 개념들은 아직까지 인류사회가 해결하지 못한 숙제로 남아있다. 오늘날 우리의 현실을 깊이 들여다보면 문제해결을 위한 선현들의 뜻깊은 말씀들이 늘 있어왔음을 알게 된다. 마하트마 간디 역시 그러한 선현들 중의 한 사람이다.

하지만 선현들의 말씀에도 불구하고 늘 세상이 여전히 쳇바퀴돌듯 미망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것에는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다. 사회정치적인 논리가 아무리 훌륭해도 그것을 성취해내는 사람들의 의식이 성장되지 못한다면 그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간디의 사상은 그것이 우리들의 가슴속에서 되살아날때에야 비로소 우리들의 삶의 변혁도구가 된다. 간디가 살았던 시대에 그의 사상을 몸소 체화시키지 못하고 단지 간디의 결정에 추종하기만 했으므로 그의 사후 세상은 변화되지 못했다. 물론 간디의 영향으로 인도사회에 내재된 많은 가능성을 부정하진 못하지만...

신이 간디를 데려간데에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모든 성현의 죽음이 그러하듯 간디의 죽음은 이제 그의 육체나 그의 존재로부터 벗어나서 사람들이 그의 사상을 마음속에 씨앗으로 간직하여서 발화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그의 위대한 정신이 우리의 마음속에서 피어날 때에라야 비로소 간디는 우리들 속에서 부활하게 될 것이다. 세상을 모두 휘젓고 돌아다녀도 우리 마음 속 세상을 찾지 못한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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