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사체험 상
다치바나 다카시 지음, 윤대석 옮김 / 청어람미디어 / 2003년 7월
평점 :
절판


사람들에겐 말하지 못한 내 삶의 경험이 하나 있다. 그것은 오래전 내가 대학다닐 때의 일이다. 나에겐 내가 너무나도 좋아했던 외할머니가 계셨다. 외할머니는 자궁암으로 부산대학교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었고, 할머니가 사경을 헤매고 있던 때에 어머님께선 머리맡에서 그 모습을 지키고 계셨다. 나는 그 때 대학교에서 친구랑 열심히 탁구를 치고 화장실에서 웃통을 벗고 머리를 감고 있었다. 몇일이 지난 후 어머니는 나를 불러놓고 할머니가 사경을 헤맨 후 정신이 들고 나서 '용욱이가 왠 노란 옷을 벗어던지고 머리를 감고 있다.'는 말씀을 하셨다고 했다. 잠시 나는 그 시간을 헤아리고 있었고 정확히 그 시간에 나는 화장실에서 머리를 감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일본이 낳은 지의 달인 다치바나 다카시는 서양에서의 임사체험과 일본에서의 임사체험에 관한 많은 사례들을 연구해서 NHK에서 방영하였고, 텔레비전 방송의 한계상 다 풀어내지 못한 여러 가지 이야기들을 이 책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임사체험이라고 하는 죽음으로 가는 관문이기도 하고 어쩌면 사후세계의 경험이기도 하다. 이 현상이 동서양을 막론하고 인종과 지위와 부, 권력, 성별 등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보편적으로 나타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임사체험이라고 하는 현상이 이젠 더 이상 터부시되지 않고 보편화된 사회의 문화현상으로 자리잡게 되었음을 보여주면서 과연 이러한 현상이 우리 삶에 대해 가지는 의미가 무엇인가에 대해 묻고 있다. 임사체험현상을 바라보는 상반된 두 가지 관점에 대해 자세하고 객관적인 입장에서 접근하여 우리 주변에서도 널리 일어나고 있는 이 현상에 대해서 새롭게 생각하게 하고 있으며 우리가 가진 삶과 죽음에 대한 인생관을 되비추어보게 한다.

임사체험에 대한 현상은 크게 '현실 체험설'과 '뇌내 현상설'의 두 가지 상반된 관점이 있다. 저자는 각각의 관점에서 주장하는 주요한 논지에 대해서 하나하나 과학적으로 아닌 것을 추려가는 형식으로 해서 범위를 점점 좁혀가면서 우리가 임사체험에 대해 가지고 있는 금기나 편향화된 시각을 교정시켜 준다. 더불어 어느 관점에서도 명쾌하게 해명되지 못하는 베일 속에 감춰져 있는 부분들에 대해서도 날카로운 언어적 칼날을 사용하여 우리들에게 이해하기 쉽게 드러내어 놓는다. 자신은 어느 입장을 조심스럽게 표명하면서도 반대의 관점에 대해 열린 입장을 가지고 나름대로 객관적으로 임사체험을 정리해내었다는 점은 정말 존경할만한 지적 정직성이라 본다.

결국 임사체험이라고 하는 특이한 경험도 우리 인생의 한 부분으로서 우리 삶과 죽음을 다시 생각하게 하고 거기에서 삶의 교훈을 배우는 계기로 삼아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이러한 죽음과 죽음의 문화를 너무 터부시하고 금기시하는 데 익숙해져 있다. 엘리자베드 퀴블로 로스의 말대로 죽음의 과정도 삶의 한 부분으로서 모든 삶의 단면들이 우리에게 삶의 교훈을 주듯 우리에게 큰 교훈을 주고 있다.

문제는 그러한 현상을 받아들이는 우리들의 마음에 있다. 임사체험을 경험한 사람들이 죽음에 대해 더 이상 두려워하거나 절망하지 않게 되고 자신의 삶을 더욱 아름답게 살려 하고 사랑하려 하고 타인에 대해 봉사하는 삶으로 바뀌는 것은 이 특별한 체험이 우리들의 삶에 주는 커다란 선물이자 우리의 과거를 되돌아보고 남은 삶을 더욱 인생을 사는 본래의 목적에 맞게 살아가게 만드는 우리 존재의 본성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남자의 탄생 - 한 아이의 유년기를 통해 보는 한국 남자의 정체성 형성 과정
전인권 지음 / 푸른숲 / 2003년 5월
평점 :
품절


저자의 탄생과 성장과정인 개인사를 통해 보여주는 한국사회의 가족에서의 가부장제의 성격과 그것이 사회구조로까지 확장되어가는 과정을 너무나도 명쾌하게 잘 보여주고 있는 책이다. 저자가 느끼고 스스로 형성된 그의 실패한 삶의 모습은 바로 그를 통해 비추어본 바로 나의 모습이기도 하고 또한 그것은 우리 사회 남성들의 보편적 모습이기도 하다.

가족내에서 아버지가 보여주는 인간관계는 수직적 관계로 표출되고 그것은 가족구성원 간의 권위주의적 지배복종관계를 낳고 결국엔 가족들간의 의사소통을 단절시킨다. 물론 어머니로 표상되는 수평적 관계라고 해서 바람직한 인간관계를 맺는 것은 아니다. 어머니의 의사소통관계는 다면적 얼굴을 가진 다중적 인간관계이고 이것 또한 진정한 의미의 의사소통이라고 볼 수는 없다.

이렇게 형성된 인간관계망 속에서 나는 점점 권위주의적 정체성을 가진 아이로 성장해가고 나 역시 그렇게 단절된 의사소통의 구조 속에서 단절된 성격의 소유자로 다면적이고 가면적 인간관계의 소유자로 자라게 된다. 이러한 가족관계는 한국사회의 권력의 정점에 위치한 개발독재의 논리를 정당화시키게 된다.

그래 좋다. 이렇게 자란 내가 실패한 남자의 전형이자 한국 사회의 가부장제 속에 자란 386세대이전의 보수세대라고 하자. 그럼 앞으로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내 속에 깊이 자리잡은 동굴 속 황제를 그대로 내버려 둘것인가? 내가 아버지의 모습을 부정하면 할수록 나는 사실 더욱 그런 아버지의 모습을 닮아왔다. 어느듯 훌쩍 자라버려 이젠 한 가정의 가장이 된 지금 나에게는 아버지에게서 보여졌던 그 모습 그대로의 모습을 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며 아연실색한다.

비록 한 가족사의 내부에 자리잡은 동굴 속 황제라는 괴물이 우리 사회의 전반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자세하게 해명하지는 않았지만 저자는 그런 결과에 대해 이미 자신의 견해를 다 보였다. 따라서 아직 우리 사회에 깨끗이 근절되지 못한 사회의 부조리 속엔 어쩌면 나의 정체성 과정 속에 만들어진 그래서 나의 모습 내부에서 발견되어지는 그 모습이 그대로 남아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우리 사회가 이러한 의사소통구조의 단절과 권위주의를 뛰어넘기 위해서 우선 우리 내부에 존재한 동굴 속 황제 죽이기가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는 여성의 몸으로 붓다가 되리라
비키 메킨지 지음, 세등(世燈) 옮김 / 김영사 / 2003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내 인생의 앞날을 결정하는 주요한 사건들을 되돌아볼 때 나의 운명을 주관하는 어떤 힘이 작용하였는지에 대해서는 아직도 잘 모른다. 하지만 순전히 나의 의지에 의해 선택한 어떤 일들이 어쩌면 이미 잘 짜여진 스토리의 일부였고 나는 애초에 내가 이런 선택을 할 수 밖에 없었으리라는 생각이 든 적이 여러번 있었다. 여자인 몸으로 12년이라는 오랜 세월의 동굴생활을 통하여 영적 깨달음을 얻고 완전한 깨달음의 길로 쉼없이 매진하는 텐진 빠모의 수행기를 읽으며 자신의 젊은 날에 마주쳤던 많았던 세상의 유혹의 순간들에도 불구하고 그녀를 끌어당기는 운명의 힘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영적인 깨달음을 추구하는 불교 내에서도 조직화된 종교가 갖는여러 가지의 차별과 억압들이 존재했으며 그 속에서 그 차별과 억압을 대표적으로 받는 여성의 몸으로 붓다가 되겠다는 서원은 나의 가슴을 울려내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그것은 깨달음에 대한 무지 속에 빠진 대중이면서 동시에 깨달음의 길에 있어 현실적으로 소외되고 버림받은 여성들의 마음의 굴레를 해방시키고 그들을 깨달음의 길로 이끌고말리라는 보살심에 다름 아니었다

그녀의 연설문 중에 나에게 커다란 깨달음을 주는 글귀가 있었다. 그것은 내가 언제나 마음이 일어나는 곳을 찾기 위해 명상수행을 하고 있어도 내 앞을 가로막는 커다란 장벽이 무엇인가를 알게 해주었다. 그것은 존재의 본질에 대해 알고자 할 때 머리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가슴으로 느껴야 한다는 점이다. 이는 인간의 여섯가지 인식 너머에 존재하는 것을 느끼기 위해 머리로 생각하는 것으로 그것을 알려고 했던 나의 잘못된 인식의 장벽을 깨뜨리는 소리였다. 내 가슴을 열어 두지 않고서는 어떤 것도 진정으로 인식되지 못한다는 진리를 내 마음 속 한 곳에 새겨 준 것이다.

그녀의 깨달음의 길을 통한 여정 속에 또 하나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영적 스승, 즉 구루의 중요성에 대한 것이다. 자신이 진정으로 헤매이고 방황할 때 의지할 수 있는 영적 안내자가 있다는 것은 진정한 축복이다. 물론 구루의 입장에서도 자신의 제자가 있다는 것은 그만큼의 축복일 것이다. 내 삶의 깨달음으로 향하는 길을 잃게 될 때, 짙은 안개 속에 파묻혀 앞으로 나아갈 길이 제대로 보이지 않을 때 우리를 안내해주는 빛의 존재가 얼마나 필요한 것인지를 알게 되었다. 그리고 결국엔 나의 마음 속에서 저절로 밝혀지는 빛의 존재를 느끼는 날 세상이 보다 성숙하고 아름답게 바뀌게 될 것이라고 믿는다.

그러기 위해선 우선 각자의 마음 속 동굴 속에서 거주하는 자가 누군지 만나보아야 하지 않을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달라이 라마와의 대화 - 잠, 꿈 그리고 죽음에 대하여
프란시스코 바렐라 엮음, 이강혁 옮김 / 예류 / 2000년 11월
평점 :
품절


우리 세계는 이미 물질적 삶의 정점에 도달하였다. 세계인구의 5% 정도만을 차지하는 미국사회가 세계 에너지 소비량의 25%를 차지하고 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러한 물질적 소비주의가 가장 팽배한 미국사회에서 사람들은 더 이상 물질적 삶이 인간 삶에 행복을 가져다 줄 수 있다는 것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기 시작했다. 자신들이 세상을 변화시켜온 도구인 과학을 그 기초로해서.....

인간 삶의 진정한 행복이 물질적 삶에 있지 않다면 그것은 아마도 가장 신비와 베일에 쌓여 그 영역이 어느 정도인지조차 밝혀지지 않은 정신적인 면에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와 더불어 과학은 아직 인류가 해명하지 못한 여러 가지 다양한 의식적이고 정신적인 체험에 대한 연구에 급속한 속도로 빠져들고 있다. 잠, 꿈, 죽음(임사체험 포함)의 영역이 그러한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은 세상에 대한 인식도구로서의 과학이 가진 불완전성과 방향성 부재에 대해 나름대로의 보완을 하고 있다. 그것은 우리 시대의 현존하는 부처로 일컬어지는 달라이라마의 불교적 세계관이 관용의 손을 뻗쳐 이미 이 별을 황폐화시켜버린 주범인 과학에 화해와 대안모색을 통한 공존의 이야기를 걸어오기 때문이다.

그는 잠, 꿈, 죽음에 대한 생의학적이고 생리학적이고 정신분석학적인 인식의 방법은 영성에 대한 인식의 깊이없이 단지 기술적이고 과학적인 인식방법만을 사용하게 됨으로써 가지는 한계점에 대해 부드럽게 경고하고 있다. 그것들이 과학에 의해 모두 해결될 수 있다고 하는 생각 속에 이미 마음의 수행에 대한 필요성은 사라져버리고 이 지구를 파괴하고 황폐화시킨 주범인 과학기술에게 결국 대사면의 판결을 내리고 있음에 다름아니게 된다. 그것은 이미 현실과 세계인식의 관점으로서 많은 문제점을 가지고 있는 과학적 인식이 가진 한계를 덮어버리는 결과를 가져오게 하며 시대가 요구하는 영성의 개발 필요성에 대해 함구하게 되는 것과 같은 것이다.

물론 그 과학과 영성이 상호보완적인 면이 있음을 달라이라마는 인정하고 있다. 하지만 그의 입장에서 보면 단지 이전부터 알고 있었던 것을 과학이라고 하는 또 다른 표현방식을 빌어서 이해하는 것에 지나지 않을 따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과학에 손을 내미는 이유는 바로 수많은 대중의 인식체계를 구성하는 과학에 대한 이해없이 그들의 영성개발이 어렵다는 보살심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겠는가?

자신의 진정한 체험없이 사물에 대한 단정적 결론을 내리는 것이나 과학에 의지해 그것을 지식으로 받아들이는 태도를 극복하는 순간이 우리가 영성적 삶을 영위해가는 출발점이 될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 산문의 향기 001
박이문 지음 / 미다스북스 / 2003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길은 우리를 늘 지금 있는 곳에서 다른 곳으로 이끈다. 이 길은 저자에게 있어 생활이요 삶이다. 인생의 깊은 통찰을 통한 삶의 가치와 이상에 대한 철학적인 글들은 우리가 흔히 접하면서 살아가는 삶의 여러가지 주제들에 대한 사색의 시간을 만들어준다. 그 시간 속에서 우리는 일상적인 삶이 주는 의미를 넘어 존재하는 깊은 형이상학적인 공간에서 또 다른 나의 내면으로 향하는 문을 발견한다.

그 문을 통해 우리는 우선 우리들의 깊은 내면으로 들어간다. 이 세상을 인식하는 나와 그 인식을 넘어 인식을 지켜보고 인식을 주관하기도 하고 또는 그 인식을 부정하기도 하는 또 다른 나 사이의 파악되지 않은 관계들에게 대해 곰곰히 생각해보게 하는 사색의 출입구이다. 또 그 문은 내가 세상으로 나아가는 문이며 세상과 만나는 경계선의 문이다. 그 문을 지나 나는 나만의 세상을 만들어내고 나만의 우주의 밑그림을 그려 나간다. 사실 문은 길과 길을 이어주는 경계선이다.

우리로부터 마음속으로 나있는 그 길을 따라 깊숙이 걸어들어가면서부터 우리는 새로운 나의 모습과 만나게 된다. 길은 그런 면에서 나에게로 떠나는 여행이다. 그 여행은 나의 마음 속 아름답게 펼쳐진 오솔길을 따라 의식의 숲과 산으로 나를 이끈다. 희망과 그리움과 지금 깨어있음의 3차원의 축들이 한 점에서 교차되고 그 한점에 우리의 마음을 집중시켜보면 다시 그 한 점에서 세상은 펼쳐진다. 그 속에서 우리는 자연과 지구와 이 우주와 연결된 하나의 존재성을 느낄 수 있다. 자, 그럼 이제 우리 눈 앞에 놓여진 오솔길 위에 우리 두 발을 올려놓아보자... 길을 떠날 준비가 되었는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