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이세욱 옮김, 뫼비우스 그림 / 열린책들 / 200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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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편의 단편들이 보여주는 세상은 비록 그것이 서로 다른 입장에서 세상을 바라보고는 있지만 결국엔 인간이 가진 내면세계를 그리고 있다는 점에서는 같다. 그의 기발한 아이디어를 통해 그려진 우리 인간 세계를 바라보는 창들은 우리들의 내면 속에 우리가 이전에 전혀 알지 못했던 것들을 발견하게 한다.

신을 통해 바라본 인간의 세상은 우리 사회와 우리 인간의 삶을 결정짓고 때로는 그 생명력의 원천을 제공하는 눈에는 보이지 않는 그 무엇인가를 추구하게끔 하고 숫자왕국에서 깨달음의 수준을 숫자에 의해 구분하는 수의 신비에서는 마치 우리 사회의 지배-피지배 관계에 대한 새로운 상을 그려내고 있다. 말없는 친구에서는 비록 나무와 식물이 우리들의 언어로서는 표현하지 못하지만 그들도 우리와 똑같은 감정과 사고체계를 가지고 있으며 그것이 수단만 빌려지면 인간과 교류할 수 있다는 메세지를 준다.

아마 영적이고 정신적인 교류방법이 흔하게 존재하였던 우리의 전통사회나 인디언 및 원시 부족 사회에서 존재했던 우주와 존재와의 교류방식이 과학에 의해서 언젠가 밝혀지게 되는 날이 온다면 지금 물질적이고 현상적인 이해에만 머물러 있는 우리의 문명이 또 다른 발전단계를 거치리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의 눈을 통해 들여본 세상에는 인간이 가진 내면 세계과 문명의 발달에 따른 인간소외와 절대 고독에 관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기계가 인간의 감정을 갖게 되는 먼 미래의 사회에 그 기계의 기계적인 인간다움에 엮겨움을 느끼는 인간 역시 기계인간일 뿐이라는 '내겐 너무 좋은 세상'은 사실 너무나도 막막하고 답답하여 숨이 막히는 세상인 것일 뿐이다.

그의 인간에 대한 상상력적 탐험을 통해 우리는 우리 내면에 갖고 있는 무한한 세상에 대한 실루엣을 그려볼 수 있다. 그리고 그 세계가 우리 삶을 더욱 삶속에 깊이 뿌리내리게 하고 우리들의 실존에 대해 더욱 깊이 몰입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그가 갖고 있는 작가적 상상력은 사람들을 빨아들이는 매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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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들의 대한민국 1
박노자 지음 / 한겨레출판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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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이면서 우리국민인 박노자의 이 글을 읽으면서 두 가지 부끄러움을 동시에 느끼는 것은 다만 나 혼자만의 생각은 아니리라. 첫째는 외국인이면서 한국인인 나보다 어쩌면 이렇게 시원하게 글을 잘 쓸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평생을 한국에서 자라면서 모국어를 배우며 자라온 내가 그의 글을 읽으며 이렇게도 절실하고 깊이 공감할 수 밖에 없음을 고백하는 마음 한 구석에 자리잡은 부끄러움이다. 두번째는 더욱 더 부끄러운 일인데 어쩌면 외국인으로서 한국 사회에 그리 오래 살지 않은 그가 한국사회에 대한 이토록 객관적이면서도 본질을 꿰뚫는 깊은 진단을 내놓을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나를 한 번 더 부끄럽게 만든 것은 단지 그의 한국사회에 대한 비판이 자신의 밥벌이나 학자적 관심으로서가 아니라 한국사회에 대한 깊은 애정에 기반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의 한국 사회에 대한 진단은 크게 두 가지로 집약된다. 하나는 우리 사회에 아직 잔존하고 있는 전근대성이다. 지배층의 우상숭배와 독재자에게 후한 한국인의 의식과 대학 사회의 노예성에 대한 고발과 가족주의와 인간성을 파괴하는 군대 등등이 아직 고질적인 문제로 남아있으며 모병제의 제시 등 나름대로의 대안도 제시하고 있는 모습은 그가 단순한 비판자만이 아님을 잘 보여준다. 또 다른 하나는 일그러진 근대성이다. 물론 이는 전근대성과 명확히 구분되는 것은 아니지만 인종주의, 사대주의, 잘못된 민족주의와 국가주의 아래 국가내에서는 하층민들을 착취하고 무시하는 것으로 외부로는 서구에 대한 무분별한 사대주의와 비서구인에 대한 억압과 착취와 비인간적 대우로 드러난다.

더구나 몽골과 필리핀 인도네시아 불법이민자들에게 가해지는 비인간적 착취에 대해서는 인간적으로 분노를 금할길이 없다. 심지어는 같은 동포라 하더라도 힘이 없고 경제력이 없는 중국 조선족 몽골족 동포에게 가해지는 착취와 차별은 정말 사대주의에 우리 정신이 타락할대로 타락해서 이제는 서구보다 더 서구적으로 변해가고 더 기회주의적인 우리 사회의 자화상에 속이 거북하기조차하다.

물론 우리 사회의 전근대와 근대화의 과정이 이렇게 정신적인 타락의 과정만은 아닐 것이다. 우리 사회가 가진 밝은 면과 그 속에서도 위대한 정신을 간직한 선현들과 그들의 사상이 있을 것이다. 그것을 살려내어 우리 사회가 가진 문제점들을 극복하는 것은 남겨진 우리들의 몫이 아닐까? 그것이 그가 우리에게 남겨준 마지막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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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년의 목소리 - "불가능한 것을 요구하라!"
로널드 프레이저 지음, 안효상 옮김 / 박종철출판사 / 200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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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 3당의 합당으로 이루어진 정국의 또 다른 변화와 민중의 참여를 경험한 것은 내가 대학 1학년때였다. 남포동에서 5만여명이 집결하여 규탄대회를 열면서 나는 도로를 점거한 사람들의 파도속에 묻혀서 내 인생 처음으로 전혀 색다른 경험을 했다. 길을 가다 요구르트와 담배와 김밥을 날라주는 시민들을 보면서 역사속에 우리는 하나다는 새로운 느낌도 가졌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중요한 사실은 내 인생에 있어서 늘 외부로부터 주어지는 상황에 대한 적응에서 벗어나 내 삶에서 그러한 것들에 대한 자기결정권이 나에게 있고 그것은 내가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1968년의 목소리는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가질까? 2차대전을 계기로 자본주의 축적체제의 모순(공황)은 탄력적으로 극복되었고 60년대에는 이른바 자본주의의 안정기에 접어드는 이 시기에 전세계적으로 터져나온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비판과 저항의 봇물은 온 세계를 뒤집었다. 그리고 이 비판과 저항은 한편에서는 정치적인 요구로 직접 모아졌는가 하면 또 한편으로는 기성의 질서에 대항하는 일상에 있어서의 문화혁명으로 표출되기도 하였다. 그들이 외쳤던 것은 크게 두 가지로 집약된다. 민권주의와 반전주의가 그것이다.

로널드 프레이저는 200여명이 넘는 사람들과의 직접 인터뷰를 통해 1968년이 가지는 의미를 다시 돌아보게 한다. 그리고 그것이 우리 사회에 남긴 성과와 교훈을 되짚어봄으로써 우리 사회가 나아갈 바를 고민해보게 한다. 이미 1968년의 세계적 함성 속에는 이후 우리 사회가 주요하게 다루게 될 사회문제들이 모두 표출되었다. 인종주의, 성차별주의, 반전운동, 학내민주화, 노동계급운동, 종교갈등, 제국주의,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갈등 등 그 시기 제기된 많은 문제들은 아직도 우리 사회가 풀어가야할 문제들로 여전히 남아 있을 것이었다.

전세계적으로 이루어진 이 운동이 가진 한계점은 바로 과도기적 위치에 있던 학생들에 의해 주도됨으로써 운동이 각계각층에서 자생적으로 제기된 대중적 요구를 집약하고 정치화시키는 데 실패했다는 것이다. 비록 1968년 이후 제기된 기본적 민권문제는 최소한의 상식을 지키는 선에서 승리하였고, 적어도 베트남전 이후로는 제국주의 국가의 제3세계에 대한 직접 개입은 없어졌다는 성과가 있지만, 그 때 전세계적으로 민중이 제기했던 자본주의 체제 자체에 대한 문제는 여전히 맑스의 문제제기와 함께 우리사회에 남아 있게 되었다.

1968년이 우리에게 주는 메세지가 있다. 운동의 최전선에 섰던 몇몇 지도자들은 사회의 기층 질서 속으로 편입되었고 때로는 반대의 편에 서서 노동 탄압과 지배 질서의 강화에 기여하고 있다. 물론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종사하고 있는 직업과 삶에서 보이지 않는 지배 질서에 대항하여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있지만 그 목소리도 사라져버렸고 메아리도 공허해져가면서 다시 기층 질서 속에 자연스레 편입되어 아무런 역사적 책임도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다. 그것은 바로 자신의 실존에 대해 깨닫게 했던 역사적 사건과 그 속에서 고양된 의식을 어떻게 내면화시키고 삶으로 체현시킬것인가 하는 고민의 부재가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1968년의 메세지는 바로 우리에게 그 때 제기했던 문제의 핵심, 바로 자기 삶의 결정권이 누구에게 있나를 우리들에게 되물어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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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 읽기의 혁명 - 개정판
손석춘 지음 / 개마고원 / 200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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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이 가진 인쇄마술의 힘을 안 것은 한겨레신문이 나오면서였다. 똑같은 사건을 두고도 180도 다른 기사가 나올 수 있다는 사실에 기쁘고 또 사회를 바꾸어내는 큰 힘을 얻은 것 같기도 하고, 그래서 세상이 달라 보였다. 물론 그 이후부터 지금까지 신문기사 이면에 자리잡은 자본논리와 권력논리에 휘둘리지 않을려고 노력해왔지만 이 책을 읽고 난 후 여전히 나는 그래도 신문권력에 휘둘리는 소외된 소비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신문이 태어나고 하루를 넘기면서 사망하는 일간지의 짧은 일생 속에 우리의 무의식도 함께 생멸하는 주기를 거친다. 자본과 권력의 피리소리에 춤추는 신문과 더불어 우리들도 함께 춤추고 있는 것이다.

신문이 현실의 객관성을 유지한다는 설에 대해 신문 탄생의 과정은 취재기자 --> 취재부장 --> 편집기자 --> 편집부장 --> 편집국장 에 이르기까지 다섯 차례나 되는 현실의 왜곡과 굴절과 편집과정을 거치는 데에서 소설보다 더 허구적으로 변하고 만다. 그리고 사주의 이해관계와 밥그릇을 놓고 벌이는 위협은 결코 신문이 객관적일 수밖에 없는 구조를 우리들에게 보여준다. 군사독재시절엔 정권에 의한 보도지침이 신문의 편파성을 주도했다면 이젠 신문기업의 자본화와 광고주의 압력에 의한 자본논리가 세상을 들여다보는 창으로서의 신문을 타락시키고 있다.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마음의 준비가 되어있지 않으면 온갖 인생의 미혹에 시달릴 수밖에 없듯이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우리들의 집단무의식의 속으로 파고드는 굵은 선의 신문표제에 우리의식은 갇혀들 수밖에 없는 것이다.

정암 조광조는 '말길의 통함과 막힘이 한 사회의 최대문제이니, 통하면 해결되어 편안하고 막히면 어지러워져서 망한다.'라고 했듯이 신문의 숨겨진 논리에 휘둘리면 망하고 그것을 알아차리고 바르게 읽기를 할 수 있는 독자들이 많아질 때는 신문뿐만 아니라 그 사회도 정화된다. 신문에 숨겨진 자본논리와 권력논리에서 나부터 자유로워질 때 우리 사회의 변화는 그 첫걸음을 내딛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신문을 수동적으로 수용하는 독자로서 읽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신문의 내용을 재구성하면서 읽는 편집자적 안목으로서 바로 읽기가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신문은 그것을 통해 우리 사회와 세상을 바라보는 창이며, 그 창을 통해 세상을 해석하고 읽어내어야 할 눈이다. 그리고 신문은 우리 사회를 보다 깨끗하고 투명하게 바꾸어내야 할 우리들의 손이며, 바꾸어진 사회에서 우리들의 인생의 가치를 참되게 찾아나갈 수 있도록 해야 하는 우리들의 희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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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닌 사람과 사는 지혜 - 루이제 린저의 38가지 이야기
루이제 린저 지음, 곽복록 옮김 / 지식공작소 / 200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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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전체주의에 의해 세계가 암흑속에 묻혀 있을 때 독일에서 나치즘에 대항하여 싸운 여류작가로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 책은 이러한 그녀의 개인사에서 잘 알려지지 않은 인생의 여러 가지 테마에 관해 여성잡지에 기고 했던 글들을 모아놓은 것이다. 하지만 이 글에서도 나는 삶에 대한 그녀의 깊은 성찰과 더불어 부조리하고 참혹했던 사회현실에 대항하려 했던 그녀의 의지를 읽을 수 있었다.

그녀에게 있어 그녀가 경험한 삶의 비극들은 근본적으로는 '내가 아닌 사람과 사는 지혜'의 부족으로 인해 생긴 것들이었다. 나 아닌 사람들을 받아들이는 방법의 오류가 결국엔 20세기 초반에 있었던 전체주의에 의해 피로 얼룩진 역사의 원인이었던 것이다. 따라서 이 글은 그녀의 인생에 대한 여러 가지 주제들에 대한 깊은 통찰을 담고 있는 개인사적 측면과 사회적이고 국가적인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폭력과 희생을 극복하고자 하는 사회사적 측면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쓰여진 것이라고 생각한다.

만약 사랑으로 함께 공존하는 지혜가 결핍될 때에는 적어도 타인과 세상에 대한 닫힌 마음과 배타적인 마음은 갖지 않는 것이 필요하며 그 보편적이고 절대적인 진리를 견지하기 위한 형식으로 인간이 최소한의 존엄을 가진 인간으로서 존중해주기 위한 '인간에 대한 예의'가 필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개인간에 또는 사회적이로 이루어지는 갈등을 해결하는 방식으로서의 민주성을 요구하기도 하고 합리성을 요구하기도 한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이런 삶을 바라보는 통찰이 없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로 구성된 사회라면 이러한 형식적인 타인의 인정조차도 모래성처럼 단 한 번의 바람에 한 번의 물결에도 쉽게 허물어지게 마련이다. 따라서 누구에게나 존재하는 자신의 마음 속 선한 본성을 일깨우는 자각없이 더불어 사는 지혜가 문득 하루아침에 생길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이 사람들에게 일상의 타성을 깨뜨리고 아직 우리 사회에 자리잡은 집단무의식과 나와 그들을 구별하는 마음의 차별을 깨뜨리기 위해 단 한 번 내리치는 죽비이기를 소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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