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고통 이후 오퍼스 10
수잔 손택 지음, 이재원 옮김 / 이후 / 200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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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과 뉴스를 비롯한 대중매체에서는 날마다 팔레스타인의 폭격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었다는 사실과 이라크의 폭탄테러에 의해 얼마만큼의 사람이 죽었다는 이야기가 끊이지를 않는다. 그리고 국내에서도 아이들과 여자들의 납치 살인 사건이 미디어를 타고 우리들에게 전해진다. 하지만 우리는 이러한 미디어를 접하며 한 손에는 커피 혹은 담배 한 가치를 집어들고 늘상 되풀이되는 일상의 한 부분으로서만 받아들이고 만다. 리모콘을 쥐고 있던 손을 놓아버리는 순간 우리는 그 참혹하고 연민어린 장면들을 잊어버리고 어느덧 무의식의 일상속으로, 메트릭스 속으로 빨려 들어가며 살고 있다.

수잔 손택은 사진을 비롯한 미디어가 가진 양면성에 대해 이야기한다. 한 면은 그것이 가진 긍정성으로 이를 통해 한정되고 왜곡된 상태에서나마 미디어 수용자들이 전쟁의 참상에 대해서 보게 되고 반전을 위해 자신이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의무감을 가지게 된다는 것이다. 다른 한 면은 미디어가 전쟁의 참혹함과 비극에 대해 미디어 수용자로 하여금 수동적이고 무능력한 적응력을 키워서 무의식에 사로잡히게 만든다는 것이다. 바로 우리들의 모습처럼....

하지만 무엇보다도 전쟁자료에 대한 미디어화는 그것이 국가에 의해 정책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으며 때로는 특정한 정치적 목적에서 제작되고 방영된다는 사실이다. 이라크전에서 보았듯이 전쟁사진을 포함한 자료들이 대부분 미국에서 제작되고 그 자체가 방송사와 군산복합체의 이익을 가지게 되지만 그것은 미국의 제도적이고 합법화된 폭력을 전세계적으로 용인하게 만드는 목적이 있다는 것이다. 더구나 차마 눈뜨고 볼 수조차 없이 비참하고 참혹한 장면들을 미디어를 통해 보면서 그것이 나와는 상관없이 먼 곳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타인의 고통'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가 간과해서는 안되는 것이 있다. 바로 그 '타인의 고통'이 우리가 누리고 있는 자유와 어떤 방식으로든 연결되고 있다는 점이다. 그것은 우리의 국가와 산업이 무기와 인력을 제공하고 있을 수도 있으며, 그 행위에 대한 암묵적 동조와 인정에 의한 내면적 굴복에 의해서도 제공될 수 있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우리가 용인했던 그 폭력과 살인이 어떤 연기의 네트워크를 통해 우리들에게 돌아올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이 책을 읽으며 나는 또 한 가지의 교훈을 배울 수 있었다. 그것은 피해자들 역시 자신들만의 경험을 극대화하며 자신과는 원인과 지역을 달리하는 피해자들에 대한 배타적인 태도를 갖게 된다는 것이다. 자신들의 희생만을 부각시키려고 하는 이기심은 우리 세계가 가진 폭력과 희생의 정도를 더욱 심화시키게 될 뿐인데도 말이다.

우리가 미디어를 통해 폭력을 대하는 것이나 직접 그 폭력이 이루어지는 현장에 있으나 우리가 내면적으로 깨어있기를 요구한다. 그것은 어떤 폭력과 탄압에서도 마음만큼은 고통을 통해 성장하려는 의지를 가져야 하며 그 마음 속에서 어떤 '타인'도 만들지 않아야 하는 이유인 것이다. 그것은 바로 '우리'의 고통인 것임을 깨달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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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포토저널리즘에 대한 날카로운 지적 시선 <타인의 고통>
    from 風林火山 : 승부사의 이야기 2007-08-07 03:58 
    타인의 고통수잔 손택 지음, 이재원 옮김/이후(시울)전반적인 리뷰2007년 8월 5일 읽은 책이다. 이 책의 리뷰를 적으면서 처음 안 사실이 지금 현재 내가 갖고 있는 책의 표지와 지금의 표지가 다르다는 것이다. 뭐 이 책의 발간일이 2004년 1월이긴 하지만 개인적인 생각에는 이 책이 다루고 있는 것을 보면 기존의 책 표지 자체도 타인의 고통을 드러내는 그림이었기에 이 책에서 얘기하고 있는 바와 약간은 상충되는 부분도 없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그..
 
 
 
명상으로 얻는 깨달음 - 달라이 라마 명상록
텐진 갸초 지음, 지창영 옮김 / 가림출판사 / 200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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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라이 라마와의 4일간의 대화로 엮어진 이 책은 우리들에게 인내와 관용을 기르는 방법에 대한 명상법을 설명해주고 있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이 나에게 해를 끼치거나 나쁜 말을 할 때 우리는 분노하기도하고 그 사람을 미워하기도 한다. 그런데 그 분노와 미움의 이유는 그 사람의 말과 행동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것은 그 사람의 말과 행동을 받아들이는 우리의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사실이다.

인내와 관용이란 무엇인가? 이미 온전한 이 우주에 내가 스스로 업을 짓지 않기 위함이다. 이러한 인내와 관용만이 이 지구에서 우리 인류에게 닥쳐온 위기를 해결하고 우리 인생이 가진 의미를 온전히 가지게 하기 때문이다. 인내와 관용의 부족이 가져온 수많은 업들, 현상적으로는 세계의 전쟁과 살륙, 마음으로는 3독의 세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중생의 마음을 돌아볼 때 우리에게 절실하다고 생각되는 것이다.

이러한 인내와 관용은 타인의 고통과 번뇌에 대한 동정과 연민의 마음 그리고 자비의 마음으로서 자신의 마음속에서 만들어가는 것일수도 있으며, 현상세계에서 일어나는 현상과 사건 사물들이 실재로 존재하는 것이 아닌 허상이라는 것을 깨닫게 됨으로써 알게 되는 것이기도 하다. 따라서 우리는 마음의 수행을 이야기할 때 이 두 가지의 방법이 모두 필요한 것임을 알아야 한다.

고통에 빠진 중생들의 삶을 연민하고 그 고통에 대한 자비심을 기르는 것은 그들이 행복해지기를 깨닫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비롯되고 보리심과 자비심을 위해 인내와 관용의 마음을 마음에서 키워내는 것은 중생의 행과 업이 사실은 그들 자체를 원인으로 해서 일어나는 것이 아님을 보는 깨달음을 아는 것과 다름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상의 실재를 이해하고 공을 깨닫게 되는 것에만 집착하여 자신의 깨달음의 이유와 의미에 대해 생각하지 못하는 삶은 달라이 라마의 가르침과는 상반되는 것이 된다.

돈오돈수와 돈오점수가 다름이 없다라는 말도 이것과 상통되는 것이 아닐까? 인내와 관용 그리고 실재에 대한 깨달음 그것은 다름이 아니다. 하지만 그것은 우리의 마음에 따라 달라지기도 한다. 이 마음이란 무엇일까? 현상에 집착하지 않고 나의 오감에 마음을 두지 않으면서도 무감각하지 않고 깨어 있으면서 그 마음을 놓치지 않는 것... 바로 명상으로 얻는 깨달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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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크 - 21세기를 지배하는 네트워크 과학
알버트 라즐로 바라바시 지음, 강병남 외 옮김 / 동아시아 / 200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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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까지의 과학은 전체는 부분들의 합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파악했으며 따라서 우주를 이루는 가장 작은 알갱이를 파악하기 위해 노력했으며, 그 끊임없는 탐구는 아직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하지만 전체는 부분들의 합보다는 훨씬 더 많은 것을 담고 있으며 그 중 대표적인 것이 바로 네트워크, 즉 부분들간의 상호작용이라는 것이다. 인간의 염색체 수는 46개에 불과하지만 그것이 네트워크를 이룬다면 인류역사와 더불어 존재한 모든 수백 수천억의 인간들이 하나 하나 고유하고 유일한 존재일 정도의 많은 경우의 수와 그 수로 다 설명하지 못하는 많은 특성들이 나타난다. 이것을 설명할 수 있는 개념이 바로 네트워크이다.

사실 네트워크하면 컴퓨터의 가상공간에서부터 시작되어 사회 조직의 운영원리와 기업조직의 원리 등 광범위하게 확산되고 있는 추세이지만 정작 네트워크란 무엇이며 그것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에 대한 해명은 되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이 책은 이러한 물음들에 대한 답을 내리기 위한 과정에서 씌여진 결과물이며 그것은 네트워크와 링크를 설명하기 위한 기본적인 토대를 마련하였다고 볼 수 있다.

네트워크의 구조적 특성으로 드러난 몇가지 사실들은 우리 사회와 사회구조 경제구조 정치구조 및 다양한 문화적 현상들을 설명해주는 또 하나의 유용한 도구가 되고 있다. 노드와 그것을 연결시키는 링크의 개념은 사회현상의 많은 것들을 설명해준다. 많은 링크를 가지는 허브의 존재는 기업이 소비자들을 구매로 이끌기 위해 치중해야 하는 방법에 대해 보여주고 있으며, 80:20 법칙을 통해 기업조직의 거대화와 빈부의 격차문제가 네트워크의 발전방향에서 자연스러운 과정을 거쳐 생기는 결과임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 허브의 존재야말로 사회적 자원과 다른 노드들로 연결되는 링크의 횟수를 최소한만 사용하고도 주어진 목적을 달성하고자 하는 경제적 효율성의 개념을 충족시켜준다. '6단계의 분리'역시 네트워크의 발전과 더불어 좁아지는 세상에 대해 우리들에게 노드라는 자아보다 링크라고 하는 상호작용에 대해 시사한다.

하지만 여기에도 네트워크가 가진 철학적인 의미와 그것이 인간의 존재와 삶에 주는 메세지가 뭔가에 대한 진지한 성찰부분은 없다. 단지 과학적 연구방법에 따라 네트워크가 드러내는 여러가지 특성들과 그것이 우리 사회와 세계를 설명하는 데 중요한 암시를 주고 있다는 점을 말한다. 만일 네트워크의 여러 가지 특성들과 지금의 세계화 경제와 기업의 거대화 빈부의 격차문제...허브와의 링크계수가 작은 사람들에게로의 권력과 부와 명예가 집중되는 현상들도 자연스레 정당화되는 것인가?

과연 이 네트워크가 주는 의미는 무엇일까?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인 네트워크도 존재하는가? 그렇다면 그 영적인 세계의 네트워크에도 이런 특성들이 적용되는가? 아직까지 많은 물음들이 베일에 가리워진채 우리들 앞에 놓여 있다. 하지만 21세기에 네트워크는 우리들의 삶의 방식과 세상을 이해하는 아주 중요한 창이 될 것임에는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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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지도리에 서서
이정우 지음 / 산해 / 200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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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나라에서도 이런 고민을 하는 사람이 있다는게 놀랍다. 그리고 대학교수직의 제의를 거절하고 제도권에서 할 수 없는 담론의 자유를 누리기 위해 철학아카데미를 개원해서 그가 펼치는 활동은 우리 사회에 참된 지식이 나아가야 할 바를 시사해준다는 생각이 든다.

사회주의권의 몰락과 더불어 이미 지구는 전 세계적 자본주의화하고 있다. 하지만 그 자본주의는 이미 초기 자본주의의 내재적 모순에 대한 비판을 탄력적으로 흡수하여 더욱 공고한 체제를 바탕으로 성장해가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외형적 물질적 성장에 대비되어 정신적이고 진정한 삶의 행복에 대한 우리들의 만족도는 형편없다. 따라서 이제 이러한 맹목적 성장에 대한 우리 스스로의 반성이 필요한 시점이다. 저자의 물음은 바로 여기에서 시작하고 있다.

과학에 기반하는 진리의 사회에서 철학과 사유에 기반하는 진실의 사회에로의 이행이 필요하다고 그는 주장한다. 사회는 말할 것도 없고 대학이라는 공간조차 자본과 기술 미디어의 3가지 세력에 의해 점령당한지 오래고 대학교수는 대학기업의 사원에 불과하다는 신랄한 비판은 단순한 독설적인 의미를 넘어 우리 사회에서 대학의 기능이 변질되고 타락되어가는 것에 대해 새롭게 그 의미를 되새겨보게 한다.

사회에서 기술과 과학이 차지하는 비중은 커지고 인문이 차지하는 영역은 점차 축소되고 있다는 그의 지적은 주지의 사실이다. 하지만 기술과 과학이 자본의 수단으로 변질되어 중요하게 그 의미를 점하는 부분은 있지만 우리 사회에서는 아직도 이공계기피현상을 포함한 현상을 볼 때 그의 평가가 균형잡힌 것이라고 보기에 힘든 점도 없지 않다. 과학과 기술도 사회에서 나름대로의 역할과 중요성이 있으니까..하지만 인간이 길러야 할 전체를 보는 안목을 무시하고 한 부분의 전문가나 기술자만 되면 된다는 식의 교육제도와 사회구조에는 명백한 문제점이 있다.

분명 전체는 단순한 부분의 합이 아니다. 부분이 모여 하나의 전체를 이루는 데에는 네트워크가 작용한다. 인간의 유전자수가 23쌍의 염색체로 되어 있다고 해서 그 23쌍의 염색체의 기능이 밝혀진다고 해서 염색체의 비밀이 풀리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것이 상호작용의 네트워크를 가진다면 문제는 더욱 복잡해진다. 현실을 푸는 문제에도 이런 사실은 적용될 것이다. 한 부분 부분의 문제점이 각각의 대안을 가진다고 해서 그 대안들을 적용하여 각 부분이 풀리면 전체가 풀리는 식의 구조가 아닐 것이다. 그것은 전체로서 작동하며 그 연관관계의 네트워크를 파악하지 않고서는 힘들 것이다.

하지만 그가 제시하는 동서양의 오랜 고전들을 망라하여 그 지혜들이 상호작용의 과정을 통하여 융합하는 가운데 새로운 현실을 담아내는 새로운 이론과 담론, 철학의 탄생을 기대해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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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명 비법대사전
정청암.이성천 지음 / 문원북 / 200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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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을 짓는 것은 운명을 만들어가는 작은 첫 출발이다. 그러므로 그 아이의 운명을 짓는 사람의 마음가짐은 중요하다. 물론 그것이 전적으로 아이의 운명을 결정한다고 보아서는 안되지만 아이의 운명에 영향을 미친다는 마음으로 짓는 것이다.

이 책은 음양오행과 주역에 대한 어려운 책들이 작명에 대한 어려움의 선입견이라는 벽을 어느 정도 허물어준다. 누구나가 쉽게 이해하고 작명할 수 있도록 우리말을 많이 사용하고 도표나 기하학도 될 수 있는대로 쉽게 만들어놓았다.

따라서 음양오행이나 주역에 대한 깊이있는 설명보다는 일반인이 쉽게 책으로 작명하는 방법에 대해 설명하고 있으며 많은 이름의 사례들을 통해서 직접 짓지 않고도 지어진 좋은 이름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해주고 있다는 점에서 좋다. 하지만 음양오행이나 주역에 대한 좀 더 매끄럽고 자세한 설명이 덧붙여졌더라면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더욱이 만세보에 대해서는 최근 몇년간의 자료를 담았더라면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니면 최소한 당해년도만이라도 말이다. 어차피 작명을 할 때는 생년월일시에 의한 사주도 풀이해보아야 하니까 말이다.

몇 가지의 아쉬운 점은 어느 책이나 남게 마련이다. 부족한 부분을 다른 책으로 메꾸어가면서 드디어 아이의 이름을 지었다. 아이의 작은 운명을 부모의 마음으로 짓는다는 것은 참 어렵다. 욕심이 안들어가게 되도록이면 너무 좋게 짓는다는 생각없이 그저 무난하게 짓는다는 생각으로 지어야지 하면서도 않좋다거나 해롭다는 말들에는 신경이 쓰이니 말이다.

아이의 이름을 지으면서 부모가 된다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해 나름대로 깊이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고 더불어 부모가 되는 자리에 한걸음 성큼 다가선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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