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오늘]

70∼80년대 대표적 인권변호사로 잘 알려진 고 조영래 변호사의 일대기를 다룬 <조영래 평전>(안경환 지음·도서출판 강 펴냄)의 기술내용이 사실과 다르다는 주장이 나와 논란이 일고 있다.

권인숙 교수(명지대 여성학)가 월간 인물과사상 4월호에서 <조영래 평전>이 사실을 왜곡했다고 비판한데 이어, 조 변호사의 동생인 조순경 교수(이화여대 여성학)도 “<조영래 평전>이라 이름 붙일 수 없을 정도로 고인의 사상이나 인물됨이 왜곡돼 있고, 그의 존엄성을 심각하게 훼손하고 있을 뿐 아니라 사실 왜곡이 수인 한도를 넘어서고 있다”고 강하게 비판했다.조 교수는 지난 27일 배포한 보도자료에서 “5년 전 ‘조영래변호사추모사업회’에서 안경환 교수에게 평전 집필을 의뢰한 바 있으나 초고를 검토한 뒤 조영래 평전으로 발간하기에 적절하지 않다고 판단해 출간하지 않기로 결정했고, 유가족 또한 평전으로 출판할 수 없는 내용이라고 판단해 이런 의사를 안 교수에게 전달한 바 있다”며 비판의 말을 꺼냈다.

조 교수는 “안 교수는 집필을 의뢰한 추모사업회에조차 어떤 자료나 인터뷰 요청을 한 바 없었으며, 고인을 잘 알고 함께 일했던 지인들 중 거의 아무도 인터뷰하지 않았고, 가족 가운데에는 큰누나와 부인을 한차례 인터뷰한 것이 전부”라며 “평전 집필에 필요한 최소한의 취재나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비판했다.조 교수는 이어 “책 내용을 보면 저자가 많은 사람을 인터뷰한 것처럼 기술되어 있으나 저자가 사용한 증언의 상당 부분은 추모사업회에서 제작한 추모 다큐의 내용이거나 고인의 유고집 등 다른 자료에 있는 내용”이라며 “저자는 추모 다큐나 기록에 없는 내용임에도 마치 해당 인물이 그런 발언을 한 것처럼 각색했으며, 책에 등장하는 몇몇 인물들의 경우 그런 사실을 발언한 적이 없음에도 마치 인터뷰의 결과물인 것처럼 없는 내용을 만들어 썼다”고 주장했다.

조 교수는 “고인 과 고인의 지인, 주변인물에 대한 명예훼손적인 내용을 담고 있거나 70∼80년대 노동운동과 민주화운동에 대해서도 근거 없는 폄하를 하고 있다”며 책의 출판 및 판매 중지를 요청했다.이에 대해 저자인 안경환 교수(서울대 법대)는 27일 미디어오늘과의 인터뷰에서 “시대사를 쓰려고 한 것이어서 출판된 자료를 먼저 담았고, 시대사에서 개인은 중요한 부분이 아니어서 가족 중 부인과 큰누나를 만났던 것”이라며 “지금 시점에서 조 변호사의 민주화운동 뿐 아니라 다른 장점을 쓰는 게 필요하다고 판단했다”고 해명했다.

“평전은 한 사람을 대변하는 것이 아니라 평가자의 몫이다. 평전이 사실과 다르다면 다른 사실을 쓰면 되지 않겠냐”고 반문한 안 교수는 “(조 변호사의)후배들은 조 변호사를 미화시켰다고 말하기도 한다. 가족으로서 마음 아픈 점은 미안하게 생각하지만 평자의 입장에서 객관적으로 썼고, 책 내용은 자신할 수 있다”며 조 교수의 주장을 일축했다.

미디어오늘 2006-04-01

이선민 기자 jasmin@media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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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2006-04-01

‘2006 젊은 소설’펴낸 신예작가들
“이념이나 애국심으로 묶이지 않고 그냥 우리 방식으로 쓰고 느낄 뿐
사회문제 전면으로 내세우지 않아”

[조선일보 박해현기자]

“선배 작가들이 어떤 공통의 목표, 질서, 관념으로 묶여졌다면, 우리 세대 작가들은 각개 전투를 하고 있습니다.”

등단 1년 경력의 소설가 김태용은 대학원에서 조교로 일하면서 소설을 쓰고 있다. 지난해 계간 ‘세계의 문학’으로 등단했지만 벌써 4편의 단편을 부지런히 발표했다. “우리 세대 작가에게 공통된 목표라는 것은 새로운 글을 자신의 방식으로 새롭게 쓰고자 하는 열망이다. 어릴 때부터 혼자 놀기에 익숙한 세대이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등단 3년을 맞은 소설가 임정연은 ‘배낭 여행 세대’를 자처한다. “이데올로기나, 애국심, 가족의 구속력이 앞세대보다 약하다. 앞세대에 비해 여행을 많이 한 것이 강점에 속한다면 속한다. 젊을 때 배낭 하나 메고 외국을 떠돌아다닌 것은 그 어떤 재산보다 값진 경험이다. 그것을 통해서 인간이 얼마나 작고, 또한 대단한 존재인지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다.”

등단 3년을 넘기지 않은 신예 소설가 10명이 공동 작품집 ‘2006 젊은 소설’(문학나무)을 펴냈다. 김민효 김애란 김유진 김주희 김태용 류은경 안보윤 임정연 정운균 조해진의 단편 소설이 실렸다. 30대 문학평론가 김종욱 최성실 이수형이 지난해 문예지들에 발표된 신인 작가들의 단편 중에서 엄선했다.

수록 작가 중 김민효의 ‘스타킹’은 스타킹으로 여성의 몸을 억압하는 현실을 그렸고, 김애란의 ‘베타별이 자오선을 지나갈 때’는 서울 노량진 학원가를 무대로 재수생의 세계를 묘사했다. 임정연의 ‘달빛’은 도시의 밑바닥 인생을 사는 청소년들의 살기어린 반항을 담았고, 류은경의 ‘배꼽’은 기형적 배꼽을 가진 한 여인을 통해 사회에 대한 병리학적 해부 의식을 보여준다.

70~80년대 문학의 사회성 중시에 대한 반동으로 90년대 작가들이 개인의 내면 탐구에 몰두했다면, 2000년대 작가들은 다시 사회적 상상력을 복원하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젊은 작가들은 과거의 리얼리즘과 다르다고 한다. “제 또래의 젊은 작가들은 사회적 문제를 다루되 그것을 전면으로 내세우지 않고 인물의 일상과 행동을 통해 보여준다”고 작가 류은경은 말했다.

이 작가들에게 당신은 왜 쓰는가라고 물었다. “모르겠습니다. 다만 내가 그것을 늘 궁금해하면 살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소설집 ‘달려라, 아비’로 올해 동인문학상 최종심 후보에 올라있는 김애란의 대답이다.

(박해현 기자 [ hhpark.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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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2006-04-01

대박 필자들 4가지 공통점
①나만의 전문영역 개척 ②틈새시장 철저히 공략
③고정독자 몰고 다닌다 ④출판사들 ‘특별 관리’

[조선일보 이선민기자]

현재 우리나라의 베스트셀러 저자들은 누구인가. 우리 출판계에도 새 저서를 출간하면 몇 만 부에서 몇 십만 부의 판매가 거의 ‘보장’되는 필자들이 있다. 대부분 열성적인 고정 독자들을 확보하고 있는 이들의 책을 내기 위해 출판사들은 애를 쓴다.

 

 

 



명상 서적을 주로 내는 시인 겸 번역가 류시화(47)씨는 출간하는 책마다 베스트셀러가 된다고 해서 ‘미다스의 손’으로 불린다. 시집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 ‘외눈박이 물고기의 사랑’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등이 밀리언셀러가 됐으며, ‘마음을 열어주는 101가지 이야기’ ‘성자가 된 청소부’ ‘영혼을 위한 닭고기 스프’ 등 번역서들도 수십만 부가 팔렸다. 또 법정 스님의 ‘산에는 꽃이 피네’ ‘살아 있는 것은 다 행복하라’ 등 류씨가 엮은 책들도 수십만 부씩 팔려 나갔다. 류시화씨는 “나는 독자들의 강한 잠재적 요구가 있는데도 출판사들이 잘 내지 않는 책들을 골라 펴낸다”고 ‘비결’을 공개했다.

 

 

 

 

경제 경영서의 베스트셀러 저자는 공병호(46)씨와 구본형(52)씨다. 공씨의 저서 중 가장 많이 팔린 것은 ‘10년 후 한국’(40만 부)이며, ‘자기경영노트’ ‘10년 후 세계’ ‘부자의 생각, 빈자의 생각’ 등도 베스트셀러다. 자신을 ‘지적 사업가(intellectual en trepreneur)’라고 규정하는 공씨는 “강연 등을 통해 사회와 부닥치면서 ‘시장’의 흐름을 놓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고 말했다.


구본형씨는 외환위기 이듬해에 펴낸 ‘익숙한 것과의 결별’이 폭발적인 반응을 일으켜 20만부 이상 팔려 나갔다. 그리고 뒤이어 펴낸 ‘낯선 곳에서의 아침’ ‘오늘, 눈부신 하루를 위하여’ 등 변화와 혁신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책들도 10만 부 이상 판매됐다.



최근 베스트셀러 저자로 떠오른 사람은 오지여행가 및 구호활동가 한비야(48)씨다. 그가 7년간의 오지여행 경험을 담아 펴낸 ‘바람의 딸, 걸어서 지구 세 바퀴 반’(전 4권)은 모두 100만 부가 팔렸으며, 뒤이어 펴낸 ‘바람의 딸, 우리 땅에 서다’(20만 부) ‘중국견문록’(50만 부)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35만 부)도 잇달아 히트를 쳤다. 한씨의 책 세 권이 좋은 반응을 얻는 것은 세계에 대한 우리 사회의 관심 증대와 책이 지닌 교육적 의미 때문으로 분석되며, 독자층이 대학생과 20대에서 청소년층으로 확대되고 있다.











분야마다 베스트셀러 저자들은 다양하다. 역사 분야에서는 ‘조선왕 독살사건’ ‘정약용과 그의 형제들’ ‘우리 역사의 수수께끼’ 등을 펴낸 이덕일(45·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장)씨와 ‘500년 내력의 명문가 이야기’ ‘방외지사’를 낸 조용헌(45·강호동양학연구소장)씨가 대표적이다.



 

 


또 한문학에서는 ‘미쳐야 미친다’ ‘죽비소리’ ‘한시미학 산책’의 저자인 정민(45) 한양대 교수, 미술 분야에서는 ‘50일간의 유럽미술관 체험’ ‘내 마음 속의 그림’을 펴낸 미술평론가 이주헌(45)씨, 신화 분야는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의 소설가 이윤기(59)씨, 과학은 ‘개미제국의 발견’ ‘생명이 있는 것은 다 아름답다’를 지은 최재천(52) 이화여대 석좌교수와 ‘과학콘서트’를 펴낸 정재승(34) 한국과학기술원 교수 등이 두드러진다.




 






베스트셀러 저자들은 출판사와의 관계에서 몇 가지 유형으로 나뉜다. 원고를 넘겨준 후 출판사에 완전히 맡기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최종 순간까지 함께 상의하며 책을 만드는 사람도 있다. 류시화씨 같은 경우는 전문 편집자 이상의 안목을 갖고 있기 때문에 혼자서 거의 전 과정을 책임지며, 공병호·정민씨 등은 출판사의 특성에 맞춰 저서들을 분산 배치하는 저자들로 꼽힌다.










베스트셀러 저자들은 90년대 초까지만 해도 거액의 계약금을 미리 받거나 인세를 많이 받는 등 금전적 이득을 중시했다. 그러나 최근에는 호흡이 맞는 출판사들과의 파트터십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이런 관행은 거의 사라졌다. 김학원 휴머니스트 대표는 “한 출판사에서 여러 권을 잇달아 출간해야 시너지효과를 거둘 수 있기 때문”이라며 “그 대신 책의 제작과 광고 등에서 다른 필자들보다 더 정성을 들여줄 것을 요구한다”고 말했다.





 



 (이선민기자 [ smlee.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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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2006-04-01

상록수→자유부인→별들의 고향→난·쏘·공→사람의 아들→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해리포터

 

 

 

 





[조선일보 김태훈기자]

베스트셀러는 유행가보다 빨리 사라진다. 지난 1년간 출간된 책 가운데 교보문고 베스트셀러 10위 목록에 들어있는 책은 ‘여자의 모든 인생은 20대에 결정된다’ 단 한 권뿐. 1년을 넘긴 책 가운데 베스트셀러 10위권에 남은 책은 한 권도 없다. ‘시대의 거울’이라는 베스트셀러가 비춘 한국은 어제의 얼굴로 남아 있기에는 너무 역동적이다.

 

 

 

 




해방이라는 거울이 비춘 한국은 빼앗겼다가 되찾은 우리 말로 된 작품에 대한 관심으로 나타났다. 일제하에 이미 출간됐던 심훈의 ‘상록수’와 이광수의 ‘무정’ 등이 재출간돼 없어서 팔지 못할 정도로 독서대중의 인기를 끌었다. 광복 직후부터 6·25 전쟁으로 이어지는 시기. 처음으로 10만부 벽을 깬 정비석의 ‘자유부인’은 선풍적인 인기로 낙양의 지가를 올렸다.

1960년대는 가난으로 남겨졌던 국민들의 고단한 삶이 이어진 시기. 영화 ‘엄마없는 하늘 아래’의 원작으로도 잘 알려진 11세 소년가장 이윤복의 수기 ‘저 하늘에도 슬픔이’는 삶에 지쳐 울고 싶었던 민초들의 정서가 투영된 작품이다. 1960년대 후반은 이어령의 ‘하나의 나뭇잎이 흔들릴 때’, 전혜린의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등의 세련된 에세이가 사회 분위기를 주도했다.

 

 

 

 

1970년대는 ‘소설의 시대’였다. 이청준의 ‘당신들의 천국’이 큰 반향을 일으켰고, 최인호의 ‘별들의 고향’은 70만부가 팔려나가며 다가올 밀리언셀러 시대를 준비했다.

 

 

 

 





1980년대 들어서며 고도성장의 그늘과 이념을 다룬 소설들이 문학의 한 축을 형성한다. 1976년 첫 선을 보인 황석영의 ‘장길산’과 1979년 발간된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은 이 변화를 예고한 신호탄이었다. 조정래가 1983년 ‘현대문학’에 장편 대하소설 ‘태백산맥’ 연재를 시작했고, 이태의 ‘남부군’, 황석영의 ‘어둠의 자식들’, 이동철의 ‘꼬방동네 사람들’은 한국 현대사와 그 위에 펼쳐진 삶의 그늘진 현장으로 치열하게 달려갔다.

‘사람의 아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영웅시대’ 등을 쏟아낸 이문열은 이념이나 소외의 문제와는 다른 방향에서 인간의 본질을 탐구한 1980년대 문학의 또 다른 한 축으로 자리잡았다. 한국 문학 최고의 금자탑이라는 평가를 받는 박경리의 ‘토지’가 1988년 출간됐다. 김홍신의 ‘인간시장’이 100만부 판매를 돌파함으로써 밀리언셀러 시대를 열었다.


 

 





1990년대는 밀리언셀러의 속출 속에 인문 교양서와 실용서들이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소설 동의보감’ ‘소설 토정비결’이 가볍게 100만부를 돌파했고, 김진명의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가 400만부를 넘겼다. 소설 강세 속에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스티븐 코비의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 잭 캔필드의 ‘마음을 열어주는 101가지 이야기’ 등의 등장은 다양해진 독자의 관심을 반영했다.

 


 

 

 

 



21세기 첫 베스트셀러라 할 수 있는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는 IMF 이후 위기감을 느끼고 있는 가장들의 심리를 반영했다. 한편 ‘해리포터’ 시리즈와 ‘다빈치코드’의 전 지구적 마케팅이 독자들의 관심에 국경을 없앤 것도 새로운 특징이다.

           (김태훈기자 [ scoop87.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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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2006-04-01

“한번 베스트셀러 ‘맛’ 보면 자본금 바닥나도 이 바닥 못떠”
블로그·V-메일 마케팅까지 사재기 유혹은 마약이자 쥐약

 

[조선일보 신용관기자]

이제 베스트셀러는 탄생하는 게 아니다. 전문가들이 ‘기획해서 만들어내는’ 시대다. ‘ 마케팅’에 이어 ‘V-mail’까지….

베스트셀러를 기대하는 출판사들의 아이디어도 현란하기 이를 데 없다. 독자 취향이나 시대 흐름을 앞서 창출하는 방식이다. 베스트셀러의 세계에 새 지평을 연 것은 무엇보다 인터넷이다. 새로운 방식의 본격 마케팅이 관건이다.

오늘 그 베스트셀러의 과거와 현재로 독자 여러분을 초대한다.

 

 





초등학생들 사이에 한자 붐을 일으킨 ‘마법 천자문’(전10권·아울북) 시리즈. 2003년 11월 첫 권을 선보인 이 순수 국내 아이디어 상품이 지난 15일 누적 500만부를 돌파했다. 매달 평균 20만권이 팔려온 추세대로라면 20권 완간이 되는 2008년에는 2000만부 판매라는 한국출판 역사상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우게 된다. 당초 달랑 두 명으로 시작한 출판사는 권당 8800원인 이 책을 팔아 100억 원대의 순익을 올렸고, 직원은 30명으로 늘었다.









또한 1980년대 말 혜성같이 모습을 드러낸 이문열의 ‘삼국지’(전10권)가 출판사에 끼친 영향은 우리 출판계의 신화다. 3월 현재 1450만부가 나간 이 ‘보물단지’ 덕분에 민음사는 비룡소(아동서적·94년), 황금가지(대중문화·96), 사이언스북스(과학서적·97) 등 자회사를 차례로 세울 수 있었다.

베스트셀러는 출판인들에겐 ‘마약’과 같다. 직원 5명을 둔 사회과학 출판사 대표 K씨는 “마약 중에서도 아주 중독성 강한 치명적인 마약이다. 특히 한번이라도 베스트셀러를 터뜨려 본 경험이 있는 출판사 사장은 자본금을 다 까먹지 않는 한 절대 이 바닥을 못 뜬다”고 말한다.

일단 베스트셀러 목록에 오르면 책은 스스로 탄력을 받는다. 상품의 성격에 상관없이 소비자는 다른 사람들이 찾는 물건에 우선 관심을 갖는다. 이른바 ‘덩달아 구매’다. 책도 상품인지라 남들 따라서 ‘지적 충동구매’를 한다. 또 대형 할인마트나 지방 소매점들은 베스트셀러 목록 위주로 주문을 낸다.

이러니 신간을 내놓는 출판사들은 어떻게 해서든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리기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한다. 90년대까지 그 주된 방법은 신문 광고와 홍보활동이었다. 도종환의 ‘접시꽃 당신’(1986), 김진명의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1994)가 이렇게 만들어진 대표적 베스트셀러다.

그러나 연 매출액 100억원이 넘는 대형출판사들이 출현하고 인터넷이 실생활을 지배하기 시작한 2000년 이후 사정은 달라졌다. 마케팅 개념이 출판계에도 등장한 것이다. 책값보다 비싼 경품을 끼워 팔고, 레스토랑 체인점 메뉴와 버스 옆면에 책 광고가 등장하고, 저자 초청 사인회나 강연회는 거의 매주 대형서점과 이벤트 홀에서 열린다.

덩달아 책의 수명도 매우 짧아졌다. 베스트셀러 대박을 터뜨렸던 한 출판사 대표는 “이전에는 책을 내고 3개월 가량 추이를 지켜봤지만 지금은 3주면 책의 운명이 결판난다. 이 기간에 베스트셀러 목록에 오르지 못하면 당장 반품이 들어온다”고 토로한다. 자연과학 서적을 주로 내는 한 출판인은 “마치 영화판처럼 마케팅의 비중이 갑자기 커져 버려서 ‘이제 돈 없으면 아예 책을 내지 말아야 한다’는 자조마저 나오고 있다”고 털어놓았다.

하지만 베스트셀러는 또한 출판인들에게 ‘쥐약’이기도 하다. 출판사들이 서점에서 자기가 펴낸 책을 사들이는 이른바 ‘사재기’의 유혹 때문이다. 우리 출판계는 1997년과 2001년에 이어 올해 초에도 사재기 파문으로 큰 홍역을 치렀다. 아르바이트생을 동원해 서점에서 자기 책을 사들이는 고전적 형태에서부터, 출판사에서 서점의 계좌에 판매대금을 입금한 후 판매분으로 처리해주는 신종 수법까지 등장했다는 게 사정을 잘 아는 관계자들의 귀띔이다.

사재기는 우리만의 현상도 아니다. 2004년 미국의 한 유명 출판대리인이,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집계 담당자에게 판매 동향을 보고하는 중소형 서점들로부터 자신의 고객이 새로 낸 책 1만8000권(7만5000달러 상당)을 사들인 사실이 발각돼 순위 조작의 의혹을 받기도 했다.

또한 베스트셀러 집계 방식에 대한 공방도 사라지지 않고 있다. 출판계와 대표적인 서점들의 베스트셀러 집계 방식이 다르기 때문이다. 이렇듯 베스트셀러 목록은 독자 성향의 변화를 드러내는 유용한 이정표이면서도 정보 왜곡 가능의 허점을 안고 있는 취약한 지표다. 마치 양날의 칼과 같아 ‘마음의 양식’이라는 고전적 목표가 방기될 때 베스트셀러 목록은 지성을 벼리는 칼 아닌, 그 책을 읽는 이의 이성과 만든 이의 양심을 한꺼번에 도려내는 비수가 된다.

 

(신용관기자 qq@chosun.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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