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일러 주의!!! 


 영화 <아바타>와 클로드 레비스트로스 ⑤

 

 5. 나는 왜 '너'일 수 없는가 (1)

   
 

에리봉 : 돈키호테주의라는 말을 어떤 의미로 사용하고 있습니까?
 레비스트로스 : 잘못된 것을 바로 잡고 박해받는 자들의 옹호자가 되고자 하는 열망이라는 사전적인 의미는 아닙니다. 나는 돈키호테주의의 본질이 현재 너머에 있는 과거를 재발견하고자 하는 끈덕진 욕구라고 생각합니다. 만일 훗날 레비스트로스가 어떤 인물인지 이해하려고 시도하는 사람이 혹 존재한다면, 난 그에게 이 열쇠를 제공하고 싶군요.
 - 디디에 에리봉 대담, <가까이 그리고 멀리서>, 강, 2003, 150~151쪽.

 
   

   문자 없는 부족들이 보기에 문명인의 가장 독특한 습관 중 하나는 ‘메모하는 습관’이라고 한다. 그들이 보기에 우리는 ‘종이 부족’이다. 혹시 기억을 잃어버리지 않을까 전전긍긍하며 닥치는 대로 무언가를 메모하여 쌓아두는 종이 부족. 문자 없는 부족을 처음 만났을 때 문명인들은 궁금했다. 그럼 당신들은 어떻게 중요한 기억을 정리하고 보관하는지 묻자 그들은 말했다. 우리는 종이가 아니라 온몸에 쓴다고.
   정형화된 문자가 아니라 체험의 느낌 자체를 온몸에 기록하니 종이도 펜도 필요 없다. 그들은 문자가 아니라 체험의 총체 자체를 온몸의 세포로 기억한다. 그들은 문자가 없어서 열등한 종족이 아니라 문자가 없기에 문자로부터 자유로운 종족이 아닐까. 

 
   기억을 축적하여 소유하려는 인간의 욕망은 ‘기억의 상실’에 대한 공포 때문에 더욱더 진화된 메모의 기술을 발명한다. 그리고 이제는 너무나 기억할 것이 많아진 문명사회에서 현대인은 휴대폰이나 컴퓨터를 통해 자신의 기억을 대체하는 ‘기억의 아바타’를 만들어 늘 턱없이 부족한 기억의 용량을 보충한다. 하지만 그만큼 우리의 신체는 기억을 활용하는 능력을 잃어버리게 된 것이 아닐까.

   휴대폰이나 컴퓨터가 없을 때 우리는 지금보다 훨씬 많은 정보를 기억하고 있었다. 꼭 연락해야 하는 곳의 전화번호 정도는 자연스럽게 외웠고, 스스로에게 중요한 대부분의 정보는 ‘몸 바깥의 기계’가 아니라 ‘마음속 메모리’에 저장되어 있었다. 명인과 명창의 기술을, 장인의 노하우를, ‘메모리칩’으로 전수받을 수는 없지 않은가. 그들의 기예는 오직 그들의 몸 안에 있고 그들로부터 배우는 길은 오직 ‘몸’과 ‘말’을 통한 직접적인 소통뿐이다. 우리는 ‘기록의 기술’을 얻는 대신 ‘구전의 지혜’를, 몸으로 기억하는 아날로그적 정보처리기술을 잃어버리게 되었다. 지금 우리는 휴대폰을 잃어버리는 순간, 컴퓨터의 하드 디스크가 날아가는 순간, 패닉 상태에 빠진다. 나보다 나를 더 잘 기억하는 영혼의 분신을 잃어버리게 되는 것이다.    


   <아바타>에 등장하는 과학자들과 엔지니어들, 군인들은 ‘문자 없는 부족’인 나비족의 정보처리능력을 불신한다. 언옵타늄이라는 위대한 광물질을 보유하고 있으면서도 절대로 지구인과 협상하지 않으려는 나비족의 ‘어리석은’ 선택에 코웃음을 친다. 문자가 없기에 열등하고, 열등하기 때문에 대등한 협상이 불가능하며, 그들에게서 자원을 약탈하기 위해서는 어떤 폭력도 정당화되며, 그런 야만인들은 얼마든지 학살해도 좋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원시문명에서 ‘그들과 우리의 차이’가 아니라 ‘그들과 우리의 같음’을 찾으려 했던 레비스트로스의 태도는 바로 진보를 자처하는 문명의 어둠, 문명의 이름으로 자행되는 야만의 잔혹성을 응시하는 것이었다. 레비스트로스가 이끌었던 구조주의 혁명은 문명의 바다 속에서 문명의 바깥 공기를 탐지하는 거대한 사유의 잠망경이었던 셈이다.


   아바타 프로그램은 원래 ‘나비족’의 신체에 인간의 의식을 주입하여 원격 조종이 가능한 새로운 생명체를 탄생시키는 것이었다. 즉 인간의 영혼으로 아바타의 육체를 원격조종하여 나비족을 교란시키는 스파이로 만드는 것이 아바타 프로그램의 본래 목적이었다. 그런데 제이크가 ‘열등하고 야만적이다’라고 생각했던 나비족은 그의 상상과 전혀 달랐다. 그는 지옥이라 믿었던 곳에서 천국을 발견했고, 자신의 적들이라 믿었던 사람들에게서 오랫동안 잊고 살았던 사랑과 우정을 배워나가고, 사육되고 조련되는 동물이 아니라 인간과 교감하는 동물-친구까지 만나게 된다. 그는 이제 인간의 영혼으로 아바타의 육체를 원격조종하는 것이 아니라 아바타의 신체가 거꾸로 인간의 영혼을 물들이는 행복한 역설에 빠져드는 것이다.


   
 

  신화의 사고에서 동물은 인간의 말을 이해할 수 있으며, 털가죽을 벗으면 인간과 똑같은 모습이 되어 처녀들을 유혹해 결혼하거나 동물과 인간 사이에 아이를 만들거나 하는 것도 가능했습니다. 인간 역시 변신하여 동물로 변할 수가 있었습니다. 늑대인간에 관한 전설은 그런 신화적 사고에서 탄생한 것이지요. (……) 늑대인간이나 흡혈귀 드라큘라가 십자가를 싫어한 것은 십자가가 변신을 금하는 구속 원리를 의미했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유럽에서는 이미 오랫동안 십자가가 상징하는 구속 원리에 의해 ‘이교’의 사고가 제압을 당해왔습니다. (……) ‘이교’의 예술이 트랜스를 지향하는 데 비해, 그리스도교의 예술은 ‘구속’에서 창조의 원리를 발견하려고 하지요. 그 사이에는 깊은 도랑이 파여 있습니다.
 - 나카자와 신이치, 김옥희 역, <예술인류학>, 동아시아, 2009, 150~15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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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go 2010-01-27 20: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정말 '종이 부족'의 슬픔이 새삼 실감나네요. 저는 열심히 메모만 해놓고는 그 다음에 그 메모를 거의 안 본답니다. 쿨럭~ ㅠㅠ

맨손체조 2010-01-28 14: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인간의 영혼을 물들이는 건 특정한 <종교>여야 한다는 인간의 지독한 욕망!

qlsend 2010-01-28 15: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맞아요. 침략자들이 토착민을 몰아내는 가장 강력한 무기는 종교이지요...
 

스포일러 주의!!! 


 영화 <아바타>와 클로드 레비스트로스 ④

 

 4. 내가 아닐 때, 가장 나답다? (2)

   
 

  신화는 스스로도 모르는 사이에 인간의 몸속으로 스며들어온 것을 말한다.
 - 레비스트로스  


 우리는 진화의 맨 꼭대기에서 살아가는 가장 우월하고 전능한 존재가 아니라 사실은 나무와 바위, 코요테, 독수리 물고기, 두꺼비들과 함께 각자의 목적을 완성하면서 삶이라는 성스런 고리를 구성하고 있는 일원일 뿐이다. 그들 모두가 그 성스런 고리 안에서 주어진 일을 해내고 있으며, 인간 역시 다르지 않다
 - 류시화, <나는 왜 너가 아니고 나인가., 김영사, 2003, 495쪽.

 
   

  

    레비스트로스가 원시문명 탐험을 떠났던 시기, ‘문자 없는 사람들’의 원시문명을 바라보는 시선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었다. 첫째, 말리노프스키로 대표되는 기능주의 혹은 실용주의적인 관점. 이 관점에서는 ‘문자 없는’ 사람들의 사유가 전적으로 생존을 위한 기본적 욕구의 충족에 따라 결정된다고 보았다. 원시문명의 의식주와 성적 충동 등 아주 기본적인 생활 패턴만 알면, 그들의 사유 시스템 전체, 즉 그들의 신념, 신화, 제도 모두를 설명할 수 있다는 관점이었다.
   둘째, 레비브륄로 대표되는 신비주의적 관점. 그것은 원시문명이 근대문명과는 근본적으로 전혀 다른 종류의 감성과 사유로 지탱된다고 본다. 원시문명은 과학적이고 실용적인 사유가 아니라 전적으로 강렬한 감정과 신비로운 상상의 힘으로 움직인다는 것이었다.  첫 번째 관점은 과학만으로는 포착할 수 없는 원시문명의 ‘감성’을 무시했고, 두 번째 관점은 서구인의 관점으로는 포착하기 어려운 원시문명만의 독자적인 ‘과학’을 배제해버렸다.

 


   레비스트로스는 원시문명을 바라보는 실용주의적 관점과 신비주의적 관점 모두가 틀렸다고 생각했다. 그가 보기에 원시 부족은 문명인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합리적이고 과학적이었으며, 동시에 문명인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예술적이고 감각적인 존재였다. 그는 ‘문자 없는’ 사람들의 사고는 주변 세계를 단지 ‘이용’하는 실용적 욕구가 아니라 세계를 이해하려는 지적인 욕망에 의해 움직인다고 보았다. 또한 그들이 단지 ‘신비주의적’ 사유가 아닌 과학적 사유를 할 수 있음을 증명하고자 했다. ‘문자’가 없다고 해서 ‘문명’이 없는 것은 아니었던 것이다. 우리는 언제부터 ‘문자 있는’ 문명이 ‘문자 없는’ 문명보다 우월하다는 편견을 가슴 속에 각인시킨 것일까. 

 


   영화 <아바타>에서 제이크 또한 나비족의 문명에 대한 엄청난 편견 속에서 나비족을 관찰하기 시작한다. 문명사회가 원시문명에 파견한 침입자 제이크는 한없이 야만적이고 불합리한 종족이라 믿었던 나비족이, 뭔가 인간의 각별한 치료와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열등한’ 종족이라 믿었던 나비족이, 그의 짐작과는 달리 훨씬 역동적이고 풍요로운 문명을 가꾸고 있음에 놀란다. 무엇보다도 제이크는 뭔가 단단히 결핍된 것이라 믿었던 나비족의 문명이 더없이 충만하고 풍요로운 삶의 열정 위에 뿌리를 박고 있음을 느끼며 점점 더 그들의 삶에 매혹을 느낀다. 


 


   나비족은 자동차가 ‘없는’ 것이 아니라 자동차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멋진 친구 ‘이크란’과 ‘다이어호스’가 있다. 평생 단 한 명만을 자신의 몸 위에 태우는 이크란은 그들에게 단지 운송수단이 아니라 평생의 지기가 된다. 나비족은 고함과 채찍으로 동물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머리카락을 동물의 감각기관과 연결하여 ‘서로’의 마음을 읽어낸다. ‘주체’의 명령을 일방적으로 대상에게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생각과 느낌을 나누고 교감하는 입체적인 커뮤니케이션을 실천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자연을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과 ‘교감’하여 자연을 친구로 만들고 자연의 친구로서의 책임을 게을리하지 않는다. 레비스트로스 또한 제이크처럼 원시문명을 충분히 가까이 바라봄으로써 비로소 ‘멀리서만’ 바라봤을 때의 근거 없는 루머와 턱없는 스캔들을 떨쳐낼 수 있었다. 레비스트로스에게 ‘신화’란 ‘과학의 부재’가 아니었다. 오히려 그는 과학의 힘을 통해 비로소 신화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고 보았다.


   
    레비스트로스 : 나는 인간 경험의 총체를 수학 모델로 환원시킬 수 있다고 주장한 적은 결코 없어요. (……) 이와는 바대로, 사회생활과 그것을 둘러싼 경험적 현실은 인간 세계에서 무작위로 펼쳐지는 영역인 것으로 내게는 생각됩니다.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나는 전적으로 우연적인 역사에 복종합니다. 나는 그저, 무질서가 지배하는 이 거대한 경험의 수프 속에는 여기저기에 구성의 섬들이 형성된다고 생각할 뿐입니다. (……) 내가 하고 있는 이런 종류의 접근으로 전체 현상을 철저히 규명할 수 없다는 것도 나는 알고 있어요. 기상 상황을 설명하기 위한 정교한 기호논리학 모델이 일몰 때 느끼는 미학적인 감정을 설명해줄 수 없듯이 말이에요.
 - 디디에 에리봉 대담, 송태현 역, <가까이 그리고 멀리서>, 강, 2003, 16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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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se 2010-01-26 16: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판도라 행성에서 가장 탐나는 것 중 하나, 이크란 타고 멀리멀리 날기~!^^

qlsend 2010-01-27 10: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아, 아바타 또 보고 싶네요. 행복한 중독...
 

스포일러 주의!!! 


 영화 <아바타>와 클로드 레비스트로스 ③

 

 3. 내가 아닐 때, 가장 나답다? (1)

   
 

 저는 한 번도 제 개인의 정체성을 깨달았던 적이 없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집니다. 제 자신이 무언가가 진행되고 있는 장소라는 느낌이 듭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라든지 ‘나를’과 같은 것은 없습니다. 우리들 각자는 사건이 일어나는 일종의 교차로입니다.
 - 레비스트로스, 임옥희 역, <신화와 의미>, 이끌리오, 2000, 16쪽.

 
   

  

   나비족의 여전사 네이티리는 평화로운 판도라를 침입한 외부자 제이크를 죽이려 하지만 불현듯 그를 죽여서는 안 된다는 계시를 느끼고 차마 제이크에게 활을 겨누지 못한다. 나비족의 여신 ‘에이와’의 계시는 그녀를 비롯한 모든 부족민들에게 절대적인 영향력을 발휘한다. 네이티리는 나비족 전체를 소집한 부족회의에서 제이크가 정말로 ‘에이와의 계시’에 적합한 인물인지 결정하기로 한다. 의심과 호기심이 반반 섞인 얼굴로 제이크를 나비족의 모임 장소로 데려가는 네이티리. 미묘한 적의와 야생적 관능이 동시에 깃든 네이티리를 묵묵히 따라가며 제이크는 가슴이 두근거린다.  




 
   나비족 전체가 모인 회의에서 제이크의 생사 여부가 판가름 나는 순간이 다가온다. 모두가 낯선 이방인의 침투를 달가워하지 않는 분위기이지만, 네이티리의 어머니이자 부족의 치유자 역할을 하는 ‘모앗’만이 제이크를 살려두고 지켜보자고 말한다. 네이티리는 제이크의 개인 교습을 맡아 나비족의 문화와 야생의 밀림에서 살아남는 법을 가르쳐준다. 단지 ‘건강한 인간의 다리’를 얻기 위해 아바타 프로젝트의 일원이 된 제이크는 난데없는 스파르타 훈련에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네이티리의 훈육은 나비족의 언어와 문화는 물론 야생의 삶에 적응하기 위한 온몸의 감각구조 자체를 바꾸는 맹훈련이었던 것이다.  




   마지못해 아바타 프로그램에 투입된 제이크의 눈에서는 어느새 싱싱한 활기가 돌기 시작한다. 점점 더 ‘아바타에 링크되는 시간’, 즉 꿈꾸는 시간이 현실의 시간보다 매혹적으로 다가오기 시작한다. 아바타의 꿈속에서 그는 불편한 다리도, 형의 갑작스런 죽음도, 복잡한 세상사도 모두 망각하고 자신도 모르게 나비족의 푸른 꿈을 이식 당한다. 인간의 입장에서는 걱정스런 ‘세뇌’이겠지만 나비족의 입장에서는 바람직한 ‘동화’다. 지옥보다 더 지옥 같다는 루머의 진원지 판도라는 알고 보니 더 없이 매혹적인 비밀로 가득한 꿈의 놀이터였다.  




   제이크가 ‘아바타의 꿈’에서 깨어나면 삭막한 현실이 기다리고 있다. 아바타 제이크처럼 마음대로 걸을 수도 없고 자신의 의지대로 미래를 계획할 수도 없는, 꼭두각시 신세. 그는 점점 네이티리와 함께 하는 아바타 체험, 아니 나비족-되기의 시간이 현실보다 더욱 현실 같은 생생함으로 자신의 세계관을 바꾸고 있음을 깨닫는다. 제이크와 함께 아바타 체험을 하고 있던 과학자 그레이스는 이런 제이크의 미묘한 감정 변화를 눈치 챈다. 그레이스는 제이크가 쿼리치 대령에게 ‘건강한 새 다리’를 구실로 매수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 모든 것을 눈감아준다. 지금까지 그녀와 함께 했던 그 어떤 과학자들보다 빠르게 아바타 훈련에 적응하는 제이크를 바라보는 그레이스의 눈길이 점점 따스해진다.  




   한없이 ‘적대적’이기만 했던 판도라의 밀림은 점점 매혹적인 신비와 풍요를 상징하는 암호로 변해간다. 제이크의 임무수행지역에 불과했던 판도라는 제이크에게 때로는 잃어버린 어린 시절의 추억처럼 따스한 노스탤지어를, 때로는 인류가 잃어버린 낙원의 기억처럼 신비로운 감성의 놀이터로 변모해간다.
   아마 레비스트로스도 당시로서는 매우 파격적이었던 원시부족의 문명탐험을 하며 이런 과정을 겪지 않았을까. ‘위험하다, 야만적이다, 무모하다, 목숨을 걸어야 한다’는 온갖 주변의 걱정들을 뒤로 하고 그는 브라질 대륙의 마투그로수를 탐사하며 카두베오족과 보로로족의 원시 문명을 체험했다. 아무도 선뜻 나서지 않는 위험한 여정 속에서 그는 자신의 ‘상상력’이 부족한 것이 원시 부족 탐험에 큰 도움이 되었다고 말한다. 위험을 상상하는 능력이 떨어졌기에 닥쳐올 위기를 모르고 지나친 것이 오히려 원시 문명 탐험에 도움이 되었다는 것이다.




   
   에리봉 : 탐사 기간을 잘 견뎌내자면 상당한 용기와 육체적인 건강이 필요했을 텐데요. 당신은 접근하기가 거의 불가능한 곳을 말을 타고 가거나, 강을 건너거나, 카누로 여행하는 등의 이야기를 <슬픈 열대>에서 하고 있더군요.
 레비스트로스 : 젊을 때는 누구나 그 정도 난관은 다 견뎌내죠.에리봉: 그렇지만 당신 책을 읽으면서 난관을 헤쳐 나가는 당신의 힘이 각별하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레비스트로스 : 그렇진 않을 거예요. 하지만 병에 걸리지 않은 것은 사실입니다. 그때 난, 내가 살아오는 동안 흔히 그랬듯이, 상상력의 결핍 덕을 톡톡히 봤죠.
 에리봉 : 위험에 대한 무감각 말인가요?
 레비스트로스 : 바로 그렇지요.
 - 디디에 에리봉 대담, 송태현 역, <가까이 그리고 멀리서>, 강, 2003, 40쪽
 
   




 

   
  레비스트로스는 신화를 구성하는 복잡한 코드의 조합을 발견해 그것들의 상호관계를 밝혀냈습니다. 신화는 다른 신화로 계속 모습을 바꾸어 변형해 가는데, 그 변형은 라벨이 작곡한 '볼레로'와 같은 걸음걸이로 진행됩니다. 레비스트로스는 스스로 이 '볼레로'의 걸음걸이를 뒤쫓으며, 몇 백 개에 달하는 신화가 하나의 거대한 우주를 이루고 있는 모습을 묘사해냈습니다.
 - 나카자와 신이치, 김옥희 역, <신화, 인류 최고의 철학>, 2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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둥이 2010-01-25 18: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랜만에 들어 왔는데^^
아바타네
처음부터 봐야지~~~
 

스포일러 주의!!! 


 영화 <아바타>와 클로드 레비스트로스 ②

 

 2. 아마존의 눈물, 아바타의 비명 (2)

   
  신화는 한 집단의 인물들이 다른 집단의 인물들에게서 달아나고 도망치려고 하는 이야기를 펼쳐보여줍니다. 따라서 우리는 한 집단이 다른 집단을 추격하는 장면을 보게 됩니다. (……) 이것은 천상의 권력과 지상의 권력, 하늘과 땅, 또는 태양과 지하의 권력 등등 사이에 초래된 갈등일 수 있습니다.
 - 레비 스트로스, 임옥희 역, <신화와 의미>, 이끌리오, 2000, 101쪽
 
   

 

 

   하반신 마비로 고통받는 전직 해병대 출신 제이크 설리는 ‘아바타 프로그램’의 일원으로 투입되어 머나먼 행성 판도라로 향한다. 에너지 고갈 문제로 신음하던 인류가 마지막 희망으로 점찍은 행성이 바로 판도라다. 판도라의 토착민 나비(Na’vi)족이 사는 영토에는 ‘언옵타늄’이라는 신비로운 물질이 있다. 언옵타늄은 1kg당 가격이 2천만 달러나 되는 엄청난 교환가치를 지닌 광물질인데, 이것을 채취하기 위해서는 나비족을 이주시켜야만 하는 것이다. 그러나 나비족에게는 아무런 뇌물도 회유도 통하지 않는다. 아바타 프로젝트팀은 ‘돈’은 물론이고 어떤 수단도 통하지 않는 나비족의 영토에 침투하기 위해 ‘아바타’, 즉 외형은 나비족이고 두뇌는 인간에게 연결된 생명체를 탄생시킨다.   
 

 

   “지옥도 이곳에 비하면 낙원일 것이다!” 아바타 프로젝트를 총괄하는 쿼리치 대령은 아바타 프로그램에 지원한 젊은이들 앞에서 기세등등하게 연설을 시작한다. 나비족을 비롯한 토착민들과 온갖 신비로운 생명체들이 활보하는 판도라 행성에서 인간은 ‘산소마스크’ 없이는 숨을 쉴 수도 없다. 판도라의 자연환경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 인간에게는 판도라가 공포와 야만의 현장일 뿐이다. 쿼리치 대령은 아바타 프로그램에 자원한 병사들뿐 아니라 아바타 프로젝트에 종사하는 모든 연구원과 스태프에게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그는 전형적인 람보형 근육질 마초 남성이며, 그는 자신의 권력을 이용하여 부하들을 복종시키는 데 탁월한 재능을 발휘한다. 
 




   아바타 프로그램에 관련된 과학자였던 쌍둥이 형이 불의의 사고로 살해당하자, 제이크는 형의 ‘대타’로 아바타 프로그램에 투입된다. 해병대 출신인 제이크는 처음에는 쿼리치 대령의 단순하고 직설적인 카리스마에 이끌린다. 판도라 행성의 생태계를 연구하는 과학자 그레이스는 자신이 필요로 하는 것은 ‘과학자’이지 ‘군인’이 아니라며 제이크를 못마땅해한다. 형의 죽음이라는 커다란 충격을 아직 극복하지 못한 제이크의 억눌린 감정은 그레이스를 향한 공격적 태도로 표현된다. 쿼리치 대령은 제이크를 자신의 충실한 하인으로 만들기 위하여 제이크가 덥석 물 수밖에 없는 탐스런 미끼를 제공한다. 나비족과 판도라에 대한 데이터를 자신에게 잘 전해주면 ‘건강한 다리’를 얻을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말이다. 

 


   언옵타늄을 ‘자원’으로만 바라보는 인간들에게 판도라는 단지 정복해야 할 대상일 뿐이다. 아직 판도라에 대한 정보를 ‘아바타 사용 매뉴얼’ 정도로만 습득한 제이크도 처음엔 그랬다. 그는 ‘건강한 다리’를 얻기 위해 자신이 선택할 수 있는 가장 효율적인 노동이 바로 아바타 프로젝트의 일원이 되는 것임을 알았다.
   그는 비참했다. 형의 비명횡사를 제대로 아파할 틈도 없이 형의 ‘대체재’로 아바타 프로그램에 투입되었다. 자신이 유일하게 잘할 수 있는 일(전투)도 이제는 할 수 없게 되었으므로 그가 형의 아바타, 아니 자신의 아바타가 될 생명체를 바라보는 눈길에는 연민과 비감이 교차한다. 너도 꼭 내 신세 같구나. 아무것도 선택할 수 없고, 그저 주어진 삶의 매뉴얼에 복종해야 하는구나. 그가 지금 원하는 것은 오로지 빨리 임무를 완수하고 ‘정상적 인간’으로 되돌아가는 것뿐이다. 

 

 


   그런데 그가 나비족을 추방하기 위한 스파이 노릇을 하기 위해 ‘아바타’의 육신과 링크되는 순간, 그리하여 3미터가 넘는 ‘나비족’의 육신으로 변모하는 순간, 그는 뜻하지 않은 엄청난 해방감을 만끽한다. 걷기는커녕 혼자서 몸을 일으키기도 힘들었던 그가 아바타의 육신을 ‘입는’ 순간, 그는 인간의 육신으로 마음껏 걷고 뛰고 구를 수 있었던 그 어느 때보다도 격정적인 희열을 맛본다.
   그는 인간이 마실 수 없는 공기를 마시고, 인간이 뛸 수 없는 높이로 뛰고, 인간이 경험할 수 없는 감각의 촉수를 내장하게 된 것이다. 야만적이고 열등한 부족이라고 믿었던 원주민의 몸속에 들어가자마자 샘은 완전히 돌변한다. 그는 두 다리로 멀쩡하게 걸어 다니던 ‘정상적 인간’일 때조차도 결코 경험할 수 없었던 새로운 감각의 차원과 조우한 것이다.   



   
 

<신화학>의 초판을 쓰고 있을 때, 저는 너무나 신비스러운 문제와 마주쳤습니다. 대낮에도 샛별을 볼 수 있는 어떤 특별한 부족이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벌건 대낮에 샛별을 본다는 것은 불가능할 뿐 아니라 믿을 수 없는 일이었지요. 그래서 천문학 전문가에게 물어보았습니다. 물론 그들은 볼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대낮에 샛별이 내뿜는 빛의 양을 알면, 일부 사람들이 샛별을 본다는 것이 상상할 수 없는 일은 아니라고 하더군요.
 나중에 항해술에 대한 오래된 논문을 조사할 기회가 있었는데, 문명사회에 속한 옛날 선원들도 환한 대낮에 유성을 완벽하게 볼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아마도 눈을 훈련시켰다면, 우리는 지금까지도 그렇게 볼 수 있었을 겁니다. (……) 문자가 없는 사람들은 주변 환경과 천연자원에 대해 엄청나게 정확한 지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모든 것들을 잃어버렸습니다.
 - 레비스트로스, 임옥희 역, ,<신화와 의미., 이끌리오, 2000, 44~4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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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lsend 2010-01-23 23: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람보의 후예, 쿼리치 대령 ㅋㅋㅋ

니모 2010-01-25 02: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지옥도 이곳에 비하면 낙원일 것이다! 그런데 알고보니 그곳이 진짜 낙원이었죠....^^

doingnow 2010-02-01 15: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ㅎㅎ나비족이 되어서 커~다란 키를 늘리며 일어나는 순간을 잊을수가 없어용+_+꺄올
 


 스포일러 주의!!


영화 <아바타>와 클로드 레비스트로스 ⓛ

 

 1. 아마존의 눈물, 아바타의 비명 (1) 

   
 

네가 원하는 것을 가진 자라면 누구든 적(敵)으로 만들어 빼앗아야만 하는가?
 - 영화 <아바타> 중에서  

 
   


   
  신화적인 이야기는 변덕스럽고, 무의미하며, 불합리합니다. 또는 그렇게 보입니다. 그럼에도 그런 이야기들이 전 세계적으로 반복해 나타나고 있는 것처럼 보이더군요.
 - 클로드 레비스트로스, 임옥희 역, <신화와 의미>, 이끌리오, 2000, 32쪽. 
 
   




   제임스 카메론의 영화 <아바타>를 본 후 우울증 증세를 보이는 관객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영화를 보고 난 후 온 세계가 무의미해졌다”, “판도라에 다시 태어날 수 있다면 무엇이든 하겠다”는 네티즌의 반응도 흥미롭다. 키는 3미터를 훌쩍 뛰어 넘고 인간보다 훨씬 뛰어난 육체적 감각과 운동신경을 타고난 나비족들이 자연과 진정으로 교감하며 살고 있는 머나먼 행성 판도라. 그곳은 엄청나게 낯설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어디선가 본 듯한 익숙한 기시감을 자아내는, 환상 속의 공간이다. 무려 162분 동안 3D 입체 영상으로 펼쳐지는 판도라 행성의 삶은 스크린과 관객 사이의 장벽을 녹여버리며 단지 ‘관람’이 아닌 영화 속 세계의 ‘시뮬레이션’ 효과를 톡톡히 맛보게 해준다. <아바타>는 영화 속 주인공의 삶을 ‘머나먼 3인칭’의 이야기가 아닌 ‘철저한 1인칭’의 직접성으로 경험하게 만드는 것이다.
   
 
  

   최첨단 SF영화가 흔히 보여주는 미래 사회의 화려한 스펙터클을 예상하고 <아바타>를 접하는 관객들은 오히려 나비족의 원시적 문명이 보여주는 ‘태고(太古)의 삶’에 매혹된다. ‘대단한 미래’를 감상하러 간 곳에서 오히려 ‘잃어버린 과거’를 만나는 셈이다. 매연으로 찌든 도로에서 자동차를 타고 있으면 나비족을 태우고 창공을 가르며 날아다니던 ‘이크란’이 부러워지고, 가로등 불빛과 네온사인 불빛으로 가득한 도시의 야경을 바라보면 식물들 고유의 알록달록한 야광이 발산되어 진풍경을 자아내는 판도라 행성의 아름다운 밤이 그리워진다.

    나비족은 분명 제임스 카메론의 상상력이 만들어낸 부족이다. 나비족의 언어도 언어학자의 도움을 받아 만들어낸 ‘인공어’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비족은 그리 낯설지가 않다. 관객들은 나비족에게서 저마다의 가슴 속에 숨 쉬고 있는 이상적인 원시문명의 공간을, 더 이상 ‘야만’이라 치부할 수 없는 태고의 삶을 향한 노스탤지어를 발견한다. 제임스 카메론이 눈부시게 창조해낸 ‘판도라’는 문명의 습격으로 눈물 흘리고 있는 ‘아마존’의 잃어버린 시간을 재현하는 듯한 슬픈 착시를 일으킨다.  
 


   <아바타>는 지금까지 만들어졌던 수많은 SF 영화들과 판타지 영화를 빈틈없이 모자이크하여 집대성한 듯한 극단적인 패러디로도 논란이 되고 있다. 놀라운 것은 ‘하늘 아래 새로울 것 없는’ 그 많은 스토리와 모티프를 과감하고도 노골적으로 패러디한 듯한 이 작품이 자아내는 아찔한 ‘새로움’이다. 말하자면 <아바타>에는 가장 오래된 것과 가장 새로운 것이 미묘하게 공존한다. <매트릭스>, <반지의 제왕>, <늑대와 춤을> 등의 영화는 물론이고 <천공의 성 라퓨타>,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등의 애니메이션까지 모두 떠올리게 만드는 낯익은 신화적 모티프들이 총출동한 <아바타>.




   동서양의 신화적 스토리들을 모두 잘게 썰어 믹싱한 듯한 <아바타>는 신기하게도 레비스트로스가 말한 신화의 구조적 동형성을 떠올리게 만든다. 레비스트로스는 이 세상의 모든 이야기들을 ‘신화’와 ‘비(非)신화’로 나눌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오히려 ‘신화 아닌 것’을 골라내기 힘들 정도로, 인류가 창조하고 향유해온 이야기들 속에는 신화적 요소들이 크고 작은 비율로 섞여 있다. 동서양 신화들이 갖추고 있는 가장 흥미로운 요소들을 오려 붙이면 신기하게도 레비스트로스를 비롯한 수많은 인류학자와 신화학자들이 도출해낸 ‘신화의 원형’에 접근하게 된다. 

   우리는 ‘판타지 영화’를 전형적인 ‘킬링 타임용’ 영화라고 생각하곤 한다. 현실과 거리가 머니까, 허황되니까, 그저 상상일 뿐이니까. 하지만 판타지 영화의 대부분이 전형적인 신화적 서사를 간직하고 있는 것은 왜일까. 신화적 스토리는 언제나 ‘비현실적’이라고 투덜거리면서도 그때마다 매혹되는 이유는, 그 신화적 공간이야말로 우리가 ‘잃어버린 시간’이 숨어 사는 공간이기 때문이 아닐까. 우리의 영혼이 시공간의 제약을 뚫고 자유롭게 비상하는 시간, 바로 신화가 시작되는 순간, 혹은 원시문명 속 야생의 사유가 꿈틀거리는 순간. 


   
    초현실주의는, 철저하게 ‘감각의 논리’에 충실하게 되면, 무의식의 영역에서 이루어지는 논리가 마치 자동기계처럼 진행된다는 점을 명백하게 한 바 있습니다. 신화에서 종종 유사한 일이 일어납니다. 뇌 속의 논리에 가해지는 시간적, 공간적 제약이 최대한 제거되면, 신화 특유의 논리가 자유롭게 작동하기 시작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신화를 이야기하거나 듣고 있으면 엄청난 자유로 가득 차 있는 시공에 체재하고 있는 듯한 느낌을 갖게 됩니다.
 - 나카자와 신이치, 김옥희 역, <신화, 인류 최고의 철학>, 동아시아, 2003, 2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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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손체조 2010-01-21 15: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앗, 이렇게 따끈따끈한 영화를....이번엔 또 어떻게 아바타를 잘게 썰어 믹싱하실지...궁금, 또 궁금....

chffkd 2010-01-21 16: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미래를 만나러 간 곳에서 오히려 과거를 만나다~! 저도 쫌 아바타 우울증 걸린 것 같아요. 꿈에서도 나비족과 판도라의 영상이 보인답니다, 쿠울럭...^^

doingnow 2010-02-01 15: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맞아요 미래를 만난곳에서 만난 과거.. 전 아마존의 눈물을 보고나서 아바타를 보러가서 그런지 그런 생각이 번뜩 들었었어요 아이러니이~한거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