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매트릭스>와 미르치아 엘리아데 ⑥

 

6. 내가 정말 ‘그’일까? (2)

   
 

 오늘날이라고 해서 신화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다만 우리들 자신이 바로 그 신화의 그늘 속에 살고 있고 우리 모두가 진리의 찬란한 빛으로부터 뒷걸음질 치는 탓에 그것을 감지하지 못할 따름이다.
  

- 막스 뮐러

 
   

    네오가 뛰어넘어야 할 과제는 매트릭스 안에서 지금까지 가져온 시공간의 감각이 ‘절대적이고 유일하다’라는 편견을 뛰어넘는 것이다. 그는 지금까지 매트릭스의 가상 속에서 그것만이 유일한 실재라고 믿고 살아왔기에 모피어스가 제공하는 훈련 공간을 ‘그저 가상일 뿐이야’라고 느낀다. 모피어스는 “때리려고만 하지 말고 진짜로 때려!”라고 말한다. 아무런 의심 없이 믿고 살았던 매트릭스가 2199년의 인류에게 유일한 현실이었듯이, 지금 네오가 훈련하고 있는 가상공간이야말로 네오가 일굴 새로운 ‘현실’로 거듭난 것이다. 그는 이렇게 평생 매트릭스로 훈육된 시공간의 법칙을 스스로 깨뜨린다. 피와 살과 뼈로 이루어진 진짜 육체로 싸움을 시작한 것이다. 이제 그는 가상의 매트릭스 안에 있을 때조차도 진정한 육체를, 진정한 영혼을 아우를 수 있게 된 것이다. 
 

   지금까지 차곡차곡 쌓아온 모든 감정의 짐짝들을 하나하나 내려놓으며 네오는 조금씩 매트릭스의 ‘중력의 법칙’으로부터 자유로워진다. 모피어스에 대한 의심도, 트리니티에 대한 궁금증도, 오라클의 예언에 대한 불안도, 그는 조금씩 내려놓는다. 내가 ‘그’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불안까지도, 다시 매트릭스로 돌아가고 싶다는 마지막 미련까지도 내려놓는 순간. 그는 드디어 철벽같은 모피어스의 방어를 뚫고 공격에 성공한다. 이 회심의 일격은 모피어스를 해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모피어스와 네오 사이에 놓인 의심과 불안의 장벽을 뛰어넘는 아름다운 ‘소통’의 첫걸음이었다. 


   
 

나와 타자 사이에 혀를 날름거리는 심연을 건너기 위해 무엇보다 먼저 우리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짐을 버려서 가벼움을 확보해야만 한다. (……) 타자와의 소통은 날개 없이 나는 방법이다. 마음을 비운다는 것, 친숙한 세계를 버린다는 것은 내가 가진 거의 모든 것을 버린다는 것을 의미한다. 기존의 선입견, 무의식적인 행동을 그 뿌리에서부터 제거해야 한다는 장자의 권고는 마치 새에게 날개를 버리라고 권고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심각한 것이다. 그러나 장자가 보았을 때 과거와의 이런 단절이 없다면 우리는 친숙한 세계에 영원히 포획되어 새로운 삶을 생성할 수 없게 될 것이다. (……) 그래서 장자는 마음을 비우려고 하였고, 공자는 사사라운 뜻, 고착됨, 사적인 자의식을 제거하려고 하였으며, 불교도 자아의 동일성을 비우려고 하였던 것이다. 
 

 - 강신주 외, <21세기의 동양철학>, 을유문화사, 2005, 366~368쪽.

 
   

 


   네오와 모피어스의 멋진 한판승부를 지켜보고 있던 사람들은 조금씩 네오에 대한 기대에 부풀어오른다. 네오를 질투하면서도 의심하는 사이퍼의 눈빛은 점점 차가워지고, 네오에 대해 누구보다도 골똘히 생각하는 듯한 트리니티의 눈빛은 점점 깊어진다. 잠든 네오에게 음식을 가져다주며 극진히 보살피는 트리니티를 바라보는 사이퍼의 눈빛에는 서슬 퍼런 살기가 감돈다. “나한테는 한 번도 안 그러더니. 그가 특별하긴 한가 보군? 정말 네오를 ‘그’라고 믿는다면 왜 오라클한테 안 데려가?” 트리니티는 동요하지 않고 대답한다. “준비가 되면 가겠지.”
   언제쯤이면 예언자 오라클에게 네오가 ‘그’임을 확인받으러 갈 수 있을까. 아직 모피어스는 침착하게 네오의 몸과 마음을 수련시키는 데만 몰두하고 있다. 그리고 모피어스는 네오에게 매트릭스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네오가 유일한 현실이라 믿고 살았던 1999년의 지구. 그들은 변함없이 ‘지금은 1999년 O월 O일’이라는 매트릭스의 달력을 믿고 있을 것이다. 네오는 마치 유체이탈을 하여 과거의 자신을 바라보듯 애잔한 눈길로, 매트릭스에 갇혀 있는 지구인들을 바라본다.

   모피어스 : 매트릭스는 시스템이야. 그 시스템이 우리의 적이다. 둘러보면 뭐가 보이나? 사업가, 교사, 변호사, 목수……. 우리가 구하려는 사람들의 마음이지. 하지만 그들도 시스템의 일부니까 우리의 적이지. 이들 대부분은 아직 떠날 준비가 안 돼 있어. 그들은 너무나도 시스템에 잘 길들여져서 시스템을 보호하려고 하지. (……) 누구나 요원일 수 있어. 우린 그들로부터 도망치면서 살아남았지. 하지만 그들은 문지기야. 그들이 열쇠를 쥐고 있다. 그러니까 누군가가 그들과 싸워야 한다는 거지.
    네오 : 누군가가?
    모피어스: 거짓말은 안 하겠다. 그들과 싸웠던 자들 중에 아직 살아남은 자가 없어. 하지만 자넨 성공할 거야.
    네오 : 왜죠?  
    모피어스 : 요원은 콘크리트 벽을 부술 수도 있고 총알을 퍼부어대도 우습게 피하지만 그들의 힘과 스피드는 매트릭스 안에서 제한되지. 그렇기 때문에 절대로 너를 능가할 순 없어.
    네오: 그럼 나도 총알을 피할 수 있나요?  
    모피어스 : 아니. 네가 준비가 돼 있다면 굳이 피할 필요도 없어.


   단지 영화 속 매트릭스 안의 인간들만이 매트릭스라는 시스템을 ‘잘 알지도 못하면서’ 지키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오직 현재의 삶만을 절대화하는 모든 힘들, 과학과 논리의 힘만을 신봉하는 지식의 흐름들, 달력으로 표시될 수 있는 역사적 시간만을 신뢰하는 이성의 근시안. 통장의 입출금내역과 스펙 쌓기에만 골몰하게 만드는 도시인의 일상적 시스템 자체가 또 하나의 거대한 매트릭스가 아닐까. 우리는 ‘지금 이 삶이 너무 싫다’고 불평하면서도 정작 ‘다른 삶의 기회’가 오면 뒤로 흠칫 물러선다. 지금까지 이 삶에 적응하기도 바빴는데 또 다른 삶의 모험에 뛰어들기가 두려운 것이다. 이미 여러 번의 기회를 놓친 적도 있을 것이다. 그것이 단지 미몽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닫지 못한다면 그 미몽 자체가 유일한 현실이 되어버린다. 그 꿈에서 깨어난다면 너무 괴로울 테니, 아예 깨어나지 않는 게 좋을 것이라고 스스로를 다독이며.
   이런 상태라면 사이퍼의 말처럼 ‘모르는 게 약’이고, 무지야말로 신의 은총이 아니겠는가. 네오에 대한 질투로 불타는 사이퍼는 ‘성(聖)’의 세계로 떠나 고통받느니 차라리 ‘속(俗)’의 세계에서 영원히 안주하고자 한다. 성공하고 싶다고, 영화배우처럼 유명해지고 싶다고, 돈을 왕창 벌고 싶다고. 그러니 매트릭스에 다시 ‘꽂아만’ 달라고, 그는 스미스 요원에게 청탁을 한다. 매트릭스라는 미몽으로 다시 돌아갈 수만 있다면 뭐든지 하겠다고.

   
 

‘비종교적’ 인간의 대다수는, 비록 그들이 그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있을 때조차도 여전히 종교적으로 행동하고 있다. (……) 자기가 비종교적이라고 느끼며, 그렇게 주장하는 근대인들도 여전히 수많은 은폐된 신화와 변질된 제의를 유지시키고 있는 것이다. (……) 새해를 맞이할 때나 새 집에 살게 될 때에 수반되는 축제는 비록 속화되기는 했을망정 여전히 갱신의 제의 구조를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결혼, 아기의 탄생, 새 지위의 획득, 사회적 진출 기타 등등에 따르는 잔치에서도 동일한 현상이 관찰된다. (……) ‘꿈의 공장’이라고 하는 영화는 무수한 신화적 모티프들을 채용해서 써먹는다. 영웅과 괴물의 싸움, 입사의 투쟁과 시련, 모범적인 인물들과 이미지들(처녀, 영웅, 낙원의 풍경, 지옥 기타 등등)이 다 그러하다. 


 - 엘리아데, 이동하 역, <성과 속>, 학민사, 1996, 18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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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손체조 2009-12-15 13: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우리가 신화의 세계로 들어가지 못하는 것 역시 일상의 '짐'이 너무 무거워서인가?

둥이 2009-12-15 14: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태어나려 하는 자는 한 세계를 파괴해야 한다"
새가 되어 나의 삶을 바라볼 수 있다면 조금 의미있는 삶이 되지 않을까?
나는 한마리 이름없는 새~~,새가 되어 살고싶어라~~~
 

 


영화 <매트릭스>와 미르치아 엘리아데 ⑤

 

5. 내가 정말 ‘그’일까? (1)

   
 

무의미는 삶의 충만함을 저해하기 때문에 질병과 같은 것이다. 의미는 우리로 하여금 대단히 많은 것들을-어쩌면 모든 것을-견디게 한다. 과학은 결코 신화를 대신하지 못하며 그 어떤 과학으로도 신화는 만들어질 수 없다.  


 - 칼 구스타프 융

 
   

   <매트릭스>의 네오처럼 드라마틱한 부활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사실 인생의 곳곳에서 자기만의 ‘사적 부활’을 꿈꾼다. 일 년의 끝과 새로운 일 년의 시작을 알리는 보신각 종소리를 그저 TV를 통해서만 들어도 왠지 마음이 한껏 정화되는 느낌. 비록 작심삼일에 그칠지라도 저마다 스스로와의 소중한 약속을 시작하는 시간. 왠지 술 담배도 끊고 아침운동도 다시 시작하고 인생의 모든 것을 총체적으로 리모델링할 수 있을 것 같은, 보통 사람들의 소중한 환희. 우리는 새해가 시작될 때마다 그렇게 짜릿한 영혼의 ‘부활’을 꿈꾼다. 아직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하고 꼬물거리는 갓난아기를 보는 순간 느끼는, 우리가 기억하지 못하는 신비로운 생의 시작처럼. 네오는 지금 마치 2199년에 재림한 사이버-예수처럼 그렇게 다시 태어나고 있다. 

    탱크 : 안녕, 잘 잤어?
   네오 : (매트릭스와 연결된 몸의 구멍이 보이지 않는 탱크의 목뒤를 보며) 넌 구멍이 없…….
    탱크 : 그래, 난 구멍이 없어. 나와 도저 형은 진짜 세상에서 100% 구식으로 자유롭게 태어난 ‘시온’의 자녀거든.
    네오 : 시온?  
    탱크 : 만약 전쟁이 끝난다면 파티가 열릴 곳이지.
    네오 : 시온은 도시야?
    탱크 : 마지막 남은 인간의 도시지.
    네오 : 어디 있는데? 
    탱크 : (꿈꾸는 듯한 표정으로) 아직도 따뜻한 지구의 중심부에 있어. 우리가 오래 살면 갈 수도 있겠지. 젠장! 모피어스가 맞다면 네 능력을 정말 보고 싶어. 이런 얘길 하면 안 되지만, 정말 네가 ‘그’라면, 정말 그렇다면……. 정말 신나는 거지!


   
 


가장 거룩한 자는 세계를 태아와 같이 창조한다. 태아가 배꼽 부위에서부터 성장해 가듯이, 신은 배꼽에서부터 세계를 창조하기 시작하며, 거기서부터 그것은 모든 방향으로 퍼져나간다. 그리고 대지의 배꼽, 즉 세계의 중심은 거룩한 나라이기 때문에, 요마(Yoma)는 “세계의 창조는 시온에서 시작되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 엘리아데, 이동하 역, <성과 속>, 학민사, 40쪽.

 
   

   탱크가 느끼는 ‘시온’을 향한 감정은 세계의 중심에 대한 노스탤지어다. 이 혹독한 전쟁이 끝나면 우리가 파티를 열 장소, 시온. 그곳은 2199년 매트릭스와 싸우는 전사들의 마음속에 살아 숨 쉬는 영혼의 베이스캠프이기도 하다. 네오에게도 이제 매트릭스라는 강요된 고향이 아니라 시온이라는 새로운 그리움의 거처가 생긴 것이다. 아직은 낯설고 아직은 이해하기 어렵지만, ‘시온’이라는 단어를 듣는 순간 네오의 표정은 호기심으로 빛난다. 마지막 남은 인간의 도시? 매트릭스의 시스템과 상관없이 ‘자연산’ 인간으로만 이루어진 도시라니! 나도 그곳에 갈 수 있을까. 내가 정말 이 사람들과 함께 그곳에 갈 수 있을까. 내가 정말 ‘그’일까.
   그러나 아직 유토피아에 대한 상상은 이르다. 모피어스는 네오가 ‘그’임을 확인하기 위한 갖가지 미션을 준비한다. 첫번째 훈련. 그것은 ‘스파링 프로그램’이다. 각종 무술과 담력을 훈련하면서 동시에 시험하는 가상 프로그램 속에서 네오는 단시간 내에 엄청난 무공을 쌓아올리게 된다. 유도, 태권도, 취권, 쿵푸 등 각종 무술을 연마하며 네오는 어느새 모피어스에게 도전하게 된다. 

 

    네오 : (스스로의 능력에 감탄한 눈빛으로) 이제 쿵푸를 할 줄 알아요!
    모피어스 :보여줘 봐. 이건 스파링 프로그램이지. 매트릭스 프로그램의 현실과 비슷해. (네오의 현란한 액션을 흐뭇하게 바라보며) 좋아! 적응력, 순발력 모두 좋아. 하지만 문제는 기술이 아냐. (정말 나비처럼 날아 벌처럼 쏘는 동작으로, 자기만족에 흠뻑 취해 있는 네오를 가볍게 제압해버리며 살짝 미소 짓는다.) 이봐, 방금 내가 어떻게 이겼지?  
    네오 : (얼떨떨한 표정으로) 당신이 너무 빨라서요.  
    모피어스 : 내가 빠르거나 힘이 센 게 내 근육 탓일까? 여기서? 네가 지금 공기를 마신다고 생각해? 다시 해봐!
    네오 : (네오는 이곳이 가상의 스파링 프로그램 안이라는 것을 새삼 깨닫고 다시 동작을 시작한다)
   모피어스 : 생각하지 말고 인식을 해! 때리려고만 하지 말고 진짜로 때려!  
    네오 : (이제야 뭔가 깨달았다는 듯) 당신이 뭘 하려는 건지 알아요.  
    모피어스 : 그래. 네 마음을 풀어주는 거야. 나는 문까지만 안내할 수 있지. 그 문을 나가는 건 네가 직접 해야 돼. 모든 걸 버려. 두려움, 의심, 불신까지. 마음을 열어. 

 ‘시온’에서 기독교 신화를 떠올렸던 관객은 ‘모든 걸 버려, 마음을 열어!’라고 외치며 동양의 무술을 가르치는 모피어스를 보며 장자를 떠올렸을 것이다. 무술을 ‘기술의 연마’로 생각했던 네오가 드디어 가상과 현실의 벽을 뚫고, 타자와 자신 사이에 놓인 소통의 장벽을 넘어, 새로운 경지에 오르는 순간. 그는 장자가 말했던 ‘허심(虛心)’의 경지를 터득한 셈이다. 장자의 말처럼 타자와의 소통은 ‘날개 없이 나는 법’을 배우는 것이며, 지금까지 신주단지처럼 모시고 살았던 친숙한 세계를 버리고 ‘트임’을 위한 소통의 공간을 창조하는 것이다. 채움을 위한 비움이 아니라, 트임을 위한 비움. 정보와 지식으로 내 영혼을 가득 채우기 위한 것이 아니라, 나를 온전히 비워 네가 자유로이 드나들 존재의 ‘틈새’를 만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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둥이 2009-12-14 13: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제 우연히 매트릭스3를 보았어여(케이블에서 해주더군여)
순간 전 여울님의 힘으로 매트릭스가 방송되는건 아닌지 혹 여울님이 '그'가 아닌지..^^
절묘한 타이밍이져? 여러번 본듯한데 또 다른 느낌이더군여 감사합니다^^

쿠쿠 2009-12-14 17: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채움, 비움, 트임, 틈새. 이런 말들이 오늘따라 한국어의 완소 아이템처럼 느껴지네요 ^^

love hurts 2009-12-15 03: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감동적인 영화에는 거의 어김없이 멋진 멘토가 등장하는 것 같아요. 여기서는 바로 모피어스가 그랬죠. 네오가 갈팡질팡할 때마다 촌철살인의 멘트를 날려주시는 모피어스^^
 

 


영화 <매트릭스>와 미르치아 엘리아데 ④

 

4. 현실은 꿈의 배설물일 뿐이야 (2)

   
 

 간단한 비유를 해보자. 사방이 막힌 방에 내가 있다. 방안에 있는 한 대의 컴퓨터가 바깥세상을 알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자 다른 사람과의 대화 수단이라고 생각해보자. 그렇다면 누군가 모뎀의 선을 자르고 조작된 신호를 보낸다면 나는 그것을 믿을 수밖에 없게 된다. 그것이 바로 매트릭스다.   

 - 노성래, <과학동아> 2002년 6월호, 52쪽.

 
   

   모피어스는 지금까지 네오가 ‘현실’이라고 믿었던 모든 세계가 ‘가상’이었다고 선언한다. 그는 인류가 AI(인공 지능 컴퓨터) 제조 기술을 갖게 된 것에 스스로 경탄하면서 AI의 탄생을 자축했던 시절이 있었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인간의 일을 ‘대신’해주는 AI에 지나치게 의존하게 되면서 AI와 인류 사이에 권력의 균형이 깨져버린다. AI와 인류 사이에 전쟁이 일어나고 승리는 AI의 몫으로 돌아간다. 그 과정에서 인간은 태양력으로 움직이는 AI들을 위협하기 위해 태양을 없애버렸다. 그리고 인간에게 승리한 AI들은 ‘인간’을 일종의 ‘건전지’로 사용하여 자신들의 생명을 유지하게 된다. 인간은 태양을 없애버리면 AI들이 멸망할 것이라 믿었지만 태양이 없어지자 AI들은 태양에너지 대체제로서 인간의 육체를 사용했다. 인간은 ‘대량 사육’되어 AI들의 건전지로 이용되고, 2199년 현재 인류가 꾸는 ‘꿈’이야말로 그들이 지금까지 현실이라 믿었던 유일한 세계(1999년)였다. 


   모피어스 : 인류는 생존을 위해 기계에 의존했어. 운명이란 모순적일 때가 많아. 인체는 120볼트 이상의 전기를 발생시키고 체열은 2만 5천 BTU가 넘어. 인간들은 끝도 없이 널려 있잖아. 인간은 태어나는 게 아니라 사육되는 거지. 나도 오랫동안 믿지 못했어. 그러다가 직접 본 거야. 죽은 자를 액화시켜 산 자에게 주입하는 걸! 끔찍하리만치 정확한 기계들을 보면서 난 명백한 진실을 깨달았지.
   네오 : (어느새 얼굴이 밀랍인형처럼 딱딱하게 굳어진다) 그럼 도대체 매트릭스가 뭐지?
   모피어스 : 통제야. 매트릭스는 컴퓨터가 만든 꿈의 나라야. 우릴 통제하려는 거지. 인간을 그들의 에너지로 이용하려고.  
   네오 : (이제는 얼굴이 새하얗게 질려) 아냐! 믿을 수 없어! 불가능해!   
   모피어스 : 믿기 쉽다고는 안 했어. 진실이라고만 했지.
   네오 : 그만해! 나가고 싶어! 나가게 해줘!

   네오는 구역질을 참지 못하며 실신해버린다. 그는 이곳(진짜 세계)에서 나가는 것이 곧 매트릭스 안에 갇히는 것이라는 참혹한 역설에 직면한다. 차라리 아무 것도 모르는 것이 낫지 않았을까, 환상 속에서 살아가는 것이 훨씬 속 편하지 않았을까. 네오는 ‘빨간 알약’을 선택한 대가를 톡톡히 치르고 있는 셈이다. 세속의 세계는 안전하지만 무의미한 반복으로 점철되어 있고 신성의 세계는 의미로 가득 차 있지만 목숨을 거는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자신이 살아온 세계가 모조리 허무한 환상일 뿐이라도 차라리 그 편안한 무지의 세계로 돌아가고 싶어져버린 네오. “다시 돌아갈 순 없죠?” 모피어스는 미소 짓는다. “그래. 돌아갈 수 있다면 가겠나? 사과를 해야겠군. 규칙이 있지 일정한 나이가 될 때까진 이 얘길 안 해. 위험하니까. 받아들이질 못하거든. 그런 경우를 봤어, 미안해. 하지만 난 할 일을 한 거야.”

   그 말 뒤에는 짜릿한 ‘시험’의 문턱이 숨어 있다. 모피어스의 속내는 네오가 정말 ‘그’임을 시험하고 싶은 것이 아니었을까. 네가 받아들이지 못해 죽을 수도 있지. 하지만 네가 정말 ‘그’라면 넌 견딜 수 있을 거야. 네가 진정 선택된 자라면, 그리고 그 선택된 운명을 네가 받아들인다면, 넌 그 정도 괴로움 따윈 거뜬히 이겨내겠지. 넌 다시 태어나야 해. 지금까지 매트릭스의 명령체계 속에서 배우고 느꼈던 모든 것을 지워야 해. 네가 실패할지도 모른다는 부담감까지, 네가 ‘그’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불안까지, 모두 지워버려야 해. 

   모피어스 : 매트릭스가 건설될 때 그 안에서 태어난 자가 있었지. 그는 원하는 대로 세상을 바꿀 수 있어. 매트릭스를 합당하게 바꾸는 거였지. 그는 맨 처음 우릴 해방시켜 주고 가르쳤지. 매트릭스가 존재하는 한 인류는 자유를 얻지 못해. 그가 죽은 후 ‘오라클’은 그의 재림을 예언했지. 그가 매트릭스를 파멸시키고 전쟁을 종식시킴으로써 인류를 구원할 거라고. 그래서 우린 평생 동안 매트릭스에서 그를 찾았지. 그를 찾았다고 믿었기에. 난 내 할 일을 한 거야. 푹 쉬어. 휴식이 필요할 거야.
    네오 : 뭘 위해서요?
    모피어스 : 훈련을 위해서!

 
   모피어스의 간절한 염원에도 불구하고 네오의 마음에는 끊임없는 의심과 불안이 꿈틀거린다. 그럴 리 없어. 모두가 거짓이야. 예언이라니, 계시라니. 그런 건 다 신화에나 나오는 이야기야. 모피어스가 전해주는 오라클의 계시를 믿지 않으려는 네오의 마음. 그것은 세속적인 삶에 대한 미련이기도 하고 신성한 세계의 일원으로서 참여해야 한다는 압박감이기도 하다. 막상 세속의 삶(파란 약)을 잊어버리려니 그 편안함과 익숙함이 발목을 잡는 것이다. 게다가 내가 ‘그’가 아니면 어쩔 것인가. 그들의 실망을, 아니 나 자신의 절망을 어떻게 이겨낼 것인가. 아, 차라리 아무것도 모르고 그냥 사는 것이 낫지 않았을까.
   모피어스 일행 중 ‘사이퍼’의 존재가 바로 이 세속을 향한 미련을 대변하는 존재다. 그는 세속의 열망에 찌들어 신성의 가치를 완전히 망각한 존재다. 그는 모두의 관심과 보살핌을 받으며 어리둥절해하고 있는 애송이 네오를 질투한다. 네오가 충격의 여파로 며칠 동안 잠에 빠져 있을 때 네오의 잠든 얼굴 위로 쏟아지는 트리니티의 따스한 눈길. 아직은 ‘그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의심이 남아 있지만 제발 네가 ‘그’이기를 바라는 트리니티의 시선이야말로 사이퍼를 더욱 자극한다. 저 아름다운 눈빛이 내 것일 수 있었는데. 사이퍼가 질투로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네오를 바라보는 동안 네오는 진정한 ‘부활’을 꿈꾸고 있다. 죽음의 고통을 통과한 새로운 삶이야말로 부활의 청신호일 것이다.

   
 

 한 해의 마지막 날에 우주는 태초의 물에로 용해된다. (……) 1년 내내 존재하였던 세계가 진정으로 사라진다. (……) 한 해의 모든 죄, 시간이 더럽히고 닳게 만든 모든 것은 무화된다. 세계의 무화와 재창조에 상징적으로 참여함으로써 인간 역시 새롭게 창조된다. (…….) 새해가 올 때마다 인간은 그의 죄와 실패의 짐으로부터 벗어남으로써 더 자유롭고 더 순수해졌다는 느낌을 가진다. 그는 천지창조의 신화적인 시간, 따라서 거룩하고 강력한 시간에 다시 돌아간다.  


 - 엘리아데, 이동하 역, <성과 속>, 학민사, 1996, 70~7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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둥이 2009-12-11 18: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가 네오라면 어떻게 했을까?
모피어스의 말을 믿었을까? 지금의 나라면 난 파란약을 선택했을듯~~~
그렇다고 너무 세속적이다 말하진 마세여~~
난 "그"가 아니잖아요 ㅋㅋ

viewfinder 2009-12-12 01: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누구나 '그'가 될 소질을 갖고있지요. 꼭 거창하게 나라를 지키거나 지구를 지키지 않아도 되잖아요. 내가 사랑하는 것을 끝내 지키는 사람은 누구나 '그'가 아닐까여^^

둥이 2009-12-12 18: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누구냐 넌?(올드보이버젼)

viewfinder 2009-12-13 13: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허걱, 깜놀 ㅠㅠ 저예요, 저. 저 모르시겠어요?^^

둥이 2009-12-14 09: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전'그'인줄 알고^^
 

 


영화 <매트릭스>와 미르치아 엘리아데 ③

 

3. 현실은 꿈의 배설물일 뿐이야 (1)

   
 

 신화란 본질적으로 무한하면서도 객관적 현상에 있어서는 유한할 수밖에 없는 어중간한 존재로서의 모순적인 인간 상태를 비애를 담아 표현한 것이다. 


 - 폴 리쾨르

 
   

   가끔 미치도록 바다가 보고 싶을 때, 지금 당장 여행을 떠나지 않으면 견딜 수 없을 것 같을 때, 평소엔 전혀 종교생활을 하지 않다가도 갑자기 아무 신의 옷자락이라도 붙들고 간절히 기도를 하고 싶을 때가 있다. 유모차를 타고 지나가며 까르륵 웃는 아이가 정말 살아 있는 천사처럼 보일 때, 엄마의 눈가에 자글자글한 주름에서 할머니와 엄마와 나의 3대를 넘어 우리가 진화해온 지긋한 세월의 무상함이 느껴질 때, 오늘 따라 매일 보는 친구나 연인의 얼굴이 불현듯 ‘여신 포스’를 풍기며 아름답게 빛나 보일 때.
   우리는 그럴 때 저마다의 무한한 시간, 저마다의 신화적 시간을 갈구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철학자 폴 리쾨르는 인간이란 유한성과 무한성의 두 기둥 사이에 가냘프게 매달려 있는 나약하기 그지없는 존재라고 생각했다. ‘성’의 세계와 ‘속’의 세계 사이에서 흔들리며 분열되는 존재, ‘성’과 ‘속’의 이상적인 통합을 추구하지만 매번 실패하는 존재. 우리는 대부분의 시간을 유한한 시간의 화살표에 쫓겨 다니며 보내지만, 문득문득 정해진 스케줄의 중력 바깥으로 뛰쳐나가는 ‘신화적 시간’의 내밀한 원심력을 느끼곤 한다. 

   <매트릭스>의 네오에게는 이제 ‘신화적 시간의 모험을 떠날 것인가, 세속의 시간에 머물 것인가’ 하는 절박한 선택의 순간이 다가왔다. 모피어스는 빨간 알약과 파란 알약을 각각 보여주면서 각각의 의미를 설명해준다. 빨간 약은 신성한 모험의 시간을, 파란 약은 세속의 시간에 머물기를 의미한다. 


   모피어스 : 네오. 네가 여기 온 이유를 말해 주지. 넌 스스로 이미 뭔가를 알기 때문에 온 거야. 그게 뭔지 설명은 못 해. 하지만 뭔가가 느껴졌을 거야. 넌 그걸 평생 동안 느껴왔어. 뭔지는 모르지만 세상이 잘못됐다는 걸 말이야. 그 생각 때문에 머리가 깨질 것처럼 아프고 자넨 미칠 지경이었겠지. 그 느낌에 이끌려 온 거야. 무슨 말인지 알겠나?
    네오 : 매트릭스를 말하는 건가요?
    모피어스 : 그게 뭔지 알고 싶나? 매트릭스는 사방에 있어. 바로 이 방 안에도 있고 창밖을 내다봐도 있고 TV 안에도 있지. 출근할 때도 느껴지고 교회에 갈 때도 세금을 낼 때도 진실을 못 보도록 눈을 가리는 세계란 말이지.
    네오 : 무슨 진실이요?
    모피어스 : 네가 노예라는 진실! 너도 다른 사람과 마찬가지로 모든 감각이 마비된 채 감옥에서 태어났지. 네 마음의 감옥. 불행히도 매트릭스가 뭔지 말할 순 없어. 직접 봐야만 해. 이게 마지막 기회다. 다시는 돌이킬 수 없어. 파란 약을 먹으면 여기서 모든 게 끝난다. 침대에서 깨어나 믿고 싶은 걸 믿게 돼. 빨간 약을 먹으면 여기 이상한 나라에 남아 끝까지 가게 된다.  

   네오는 스미스 일당에게 힘없이 잡혀갈 때보다는 훨씬 단단해진 눈빛으로, 이것은 정말 스스로의 선택이라는 굳은 표정으로 빨간 약을 삼킨다. 이제 모피어스의 알쏭달쏭한 수수께끼 같은 말의 의미가 밝혀질 차례다. 네오가 ‘1999년’으로만 알고 있었던 ‘현재’는 사실 ‘2199년’이었고, 그가 ‘자신의 몸’이라고 생각했던 육체는 사실 인공지능컴퓨터 AI(Artificial Intelligence)가 만들어낸 정교한 환상이었다. 인간들은 태어나자마자 AI들이 만들어낸 ‘인공 자궁’ 안에 갇혀 AI의 생명 연장을 위한 에너지로 사용되고, 뇌세포에 ‘매트릭스’라는 프로그램을 입력 당한다. 그 프로그램이 바로 네오가 지금까지 ‘현실’로 철석같이 믿어왔던 ‘1999년’이었던 것이다. 그가 살아온 현실은 매트릭스가 조종하는 꿈이었던 것이다.

   인간이 보고 느끼고 생각하는 모든 것들은 항상 매트릭스의 검색 엔진에 노출되고, 인간의 기억 또한 매트릭스에 의해 자유자재로 입력되고 삭제된다. 맛있는 스테이크를 먹으며 황홀해 하는 기분마저 모두 ‘스테이크맛’이라는 황홀한 환상을 섭취하는 것이었다. 모피어스 일행은 이러한 끔찍한 매트릭스의 음모에서 벗어나 자유를 찾기 위해 싸우는 전사들이었다. 스미스일당은 바로 그 매트릭스를 지키는 AI 통제 요원들이었고 모피어스 일행이 스미스일당의 삼엄한 검색망을 뚫고 매트릭스 안에 들어가 드디어 찾아낸 사람이 바로 ‘네오’였던 것이다.
   네오는 비로소 기나긴 ‘꿈’에서 깨어나 매트릭스 바깥에서 ‘사육’되고 있는 인간의 비참한 몰골을 확인하게 된다. 그는 온몸에 구멍이 뚫린 채 매트릭스의 인큐베이터 안에서 사육 당하고 있었던 자신의 ‘진짜 육체’를 발견하고 경악한다. 네오 뿐 아니라 지구인 전체가 그런 처참한 몰골을 하고서 2199년의 현실은 전혀 모른 채 1999년을 ‘꿈꾸며’ 살아왔던 것이다. 이제 그는 매트릭스 속에서 ‘가상의 죽음’을 고통스럽게 경험하고 명실상부한 ‘네오’로 다시 태어난다. 이제 네오는 아직 한 번도 써본 적이 없는 ‘진짜 육체’를 쓸 수 있게 된 것이다. 

   모피어스 : 이게 ‘컨스트럭트’다. 로딩 프로그램이지 뭐든지 로드할 수 있어 옷이든 장비든 무기든, 훈련 시뮬레이션이든 필요한 건 전부 다!
   네오 : 우리가 지금 프로그램 안에 있는 거라고요?
   모피어스 : 그렇게 믿기가 힘든가? 자네 옷도 바뀌었고 머리와 몸의 구멍도 없어졌잖아. 머리 모양도 달라지고. 지금 자네의 모습은 ‘잉여 자기 이미지’란 거야. 자신의 모습을 디지털화한 거지.
   네오 : 그럼 진짜가 아닌가요?
   모피어스 : 진짜가 뭔데? 정의를 어떻게 내려? 촉각이나 후각, 미각, 시각을 뜻하는 거라면 진짜란 두뇌가 해석하는 전자 신호에 불과해. 이게 자네가 아는 세상이야. 바로 20세기 말의 모습이지. 이젠 신경 상호작용 시뮬레이션의 일부인 매트릭스로만 존재하지. 

 

   
 

시간은 인간을, 사회를, 코스모스를 닳게 하였다. (……) 세계가 순수하고 강력하며 거룩한 시간에 멱 감았던 저 신화적 순간을 재현하기 위해서 세속적 시간은 소멸되어야만 한다. 세속적인 지나간 시간의 폐기는 일종의 ’세계의 종말’을 나타내는 제의에 의하여 수행된다. 불의 사그라짐, 죽은 자들의 영혼의 복귀, (……) 사회적 혼란, 성적 방종, 광란 등등이 코스모스로부터 카오스에로의 퇴각을 상징한다.  


 - 엘리아데, 이동하 역, <성과 속>, 학민사, 1996, 7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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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모 2009-12-09 17: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두구두구둥둥! 이제 좀 있으면 네오와 트리니티의 액션이 작렬하겠군요! ^^

불타는고구마 2009-12-10 13: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얼마전부터 들어와서 글을 읽기 시작했어요. 내공(?)이 엄청난 분이란 생각이 듭니다. 정여울님의 책도 사서 읽고 싶어졌어요. 계속 좋은 글 부탁드려요.

둥이 2009-12-10 17: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려운 영화속 어려운 철학
그러나 지금내게 컨스트럭트로 로드할수있다면
난 뭐가 가장필요할까? 아~~슬프다 난 돈잘버는 프로그램을 장착하고싶다.
그리고 난 또 떠난다~~~

트루릴리전 2009-12-11 01: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둥이님 또 떠나실 채비 하세요? ㅋㅋ 내일 또 오신다에 한표!^^

둥이 2009-12-11 13: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천리나 만리나 떠날꺼예여^^
하지만 한표는 획득(트리니티와 네오의 키스신은 보구 가야지^^)
 

 


영화 <매트릭스>와 미르치아 엘리아데 ②

 

2. ‘문턱’을 넘는 순간, 내 안의 신화는 시작된다 (2)

   
 

인간은 망가진 채로 태어나 수리를 받으며 살아간다. 그리고 신의 은총이 바로 그 접착제이다.  


 - 유진 오닐

 
   

   옛사람들은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각자 자기 문화에 어울리는 성소(聖所)를 찾아 기도를 드림으로써 하루를 시작했다. 현대인은 ‘로그인’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우리의 일상을 알기 위해서는, 우리의 대략적인 ‘뇌 구조’를 분석하기 위해서는 그 사람의 컴퓨터를 켜서 ‘즐겨찾기’ 리스트를 살펴보면 된다. 컴퓨터는 우리의 관심사와 우리의 욕망의 좌표를 알려주는, 너무도 노골적인 꿈의 ‘검색 히스토리’를 내장하고 있는 셈이다.

   그렇다고 해서 애꿎은 컴퓨터를 탓할 필요는 없다. 신화학자 나카자와 신이치의 연구에 따르면 인간의 인지구조는 신석기 시대 이후로 근본적으로 변하지 않았다. 다만 인식의 ‘미디어’가 바뀐 것이다. 옛사람들이 ‘자연’을 미디어로 하여 사유의 패턴을 만들어나갔다면, 현대인은 컴퓨터를 비롯한 각종 기계적 미디어를 통해 정보를 수합하고 사유의 그물을 짠다. 관건은 그렇게 얻은 정보를 어떻게, 어디에, 언제 활용할 것인가를 ‘선택’하는 문제다. 어쩌면 이제는 컴퓨터야말로 우리 존재의 ‘문지방’일지도 모른다. 컴퓨터는 현대인의 새로운 ‘성소(聖所)’다. 
 


   영화 <매트릭스>는 컴퓨터를 통해 사고하고 사랑하고 창조하게 된 인간이 재구성해낸 현대사회의 새로운 신화 텍스트가 아닐까. 영화 <반지의 제왕>처럼 <매트릭스>는 일종의 ‘인공 신화’의 요소들을 간직하고 있다. <매트릭스>의 스토리와 배경은 SF영화의 패턴을 따르고 있지만 등장인물의 이름(네오, 트리니티, 모피어스 등등), 영웅 신화의 전형적 스토리텔링을 간직하고 있는 시나리오는 <매트릭스>의 신화적 성격을 증언한다. 네오는 컴퓨터를 통해 자신의 신성한 임무를 최초로 깨닫게 된다. 컴퓨터가 부르는 그의 이름 ‘네오’를 통해 그는 ‘현실이라는 꿈’에서 깨어나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는 지금까지 컴퓨터를 통해 ‘이 세상이 뭔가 잘못된 것 같은 막연한 느낌, 내가 잃어버린 알 수 없는 무언가를 찾아야한다는 맹렬한 환상’을 추격해왔다. 컴퓨터는 그에게 있어 성전이자 성소이자 성경인 셈이다.

   그런데 컴퓨터를 통해 세계의 비밀과 무한 접속할 수 있는 토마스의 ‘능력’만으로는 ‘성’과 ‘속’ 사이에 놓인 문턱을 뛰어넘을 수 없다. 세속의 인간 토마스 앤더슨이 신성의 이름 ‘네오’를 향한 문턱을 넘기 위해서는 세속의 집착을, 신성에 대한 두려움을 떨쳐내야 한다. 그는 매력적인 여성의 몸에 새겨진 문신으로 형상화된 ‘하얀 토끼’의 유혹은 쉽게 따르지만 전화기 저편으로 들려오는 모피어스의 목소리를 따라 목숨을 걸고 고층건물의 옥상 문턱을 넘어서지는 못한다. 휴대폰 너머로 모피어스는 다급하게 외친다. “비계를 타고 옥상으로 가!” 아직 ‘네오’가 되지 못한 ‘토마스’는 영문을 알 수 없는 이 미궁의 추격전을 마음으로 받아들이지 못한다. “말도 안 돼! 이건 미친 짓이야!” 모피어스는 다그친다. “방법은 두 가지다! 비계를 이용해서 옥상으로 올라가든가, 아니면 놈들한테 잡히든가. 선택은 네 마음이야.”
   토마스는 까마득한 죽음의 골짜기가 펼쳐진 발아래를 내려다보며 두려움에 떤다. “미친 짓이야! 이게 다 뭐야? 내가 뭘 어쨌기에? 난 아무 짓도 안 했어. 죽겠군, 젠장! 난 못해!” 자신을 추격하는 정체 모를 선글라스 신사들(스미스 일당)의 시선을 피해 달아나고는 싶지만 떨어지면 바로 죽을 것이 확실한 고층건물의 옥상을 향해 맨몸으로 올라갈 용기를 내기는 쉽지 않다. 신성을 찾아 헤매기는 했지만 막상 신성의 미션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용기와, 그리고 ‘내가 바로 그’라는 믿음이 필요한 것이다. 토마스는 끝내 스미스 일당에게 붙잡히고 만다. 토마스는 스미스에게 붙잡혀 심문을 당하고 나서야 모피어스와 트리니티의 말을 ‘믿지 못한’ 자신의 선택을 후회한다. 스미스는 모피어스와 네오가 동시에 경계하고 있던 ‘매트릭스’의 수문장이었던 것이다.


   스미스 : 우린 한동안 자넬 지켜봐왔다. 두 개의 인생을 살고 있더군. 하나는 소프트웨어 회사의 프로그래머인 토마스 앤더슨. 떳떳한 시민으로서 세금도 내고 집주인 아줌마의 쓰레기도 버려주지. 다른 하나는 네오라는 이름의 해커로서 온갖 컴퓨터 범죄는 죄다 저질렀더군. 둘 중 하나는 앞날이 보장돼 있고 다른 하나는 미래가 없어. 아주 솔직하게 털어놓겠네. 우린 자네가 필요해. 어떤 자가 연락해왔지? 모피어스라는 자 말이야. 그에 대해 자네가 아는 건 전부 무시해. 정부에서도 그자를 가장 위험한 인물로 찍었으니까. 동료들은 내가 자네 일로 시간낭비를 한다고 봐. 하지만 난 자넬 믿네. 자네가 새 출발을 하게 도와 줄 수도 있어. 자넨 테러범 체포를 도와주기만 하면 돼.
   네오 : (시니컬하게 미소를 지으며) 귀가 솔깃하네요. 더 좋은 게 있는데 말이죠. (가운데 손가락을 당당히 펴 보이며 엿 먹으라는 제스쳐를 취하고) 당신은 이거나 먹고! 내 전화나 돌려줘!
   스미스 : 이런, 앤더슨. 날 실망시키는군.
   네오 :  그런다고 겁낼 줄 알아? 난 내 권리를 알아! 전화나 내놔!
   스미스 : 얘기도 못 할 텐데 전화가 무슨 소용이지? 좋든 싫든 간에 넌 우릴 도와야 할 걸.
 (갑자기 네오의 ‘입술’이 점점 없어지며 그 어떤 ‘언어’로도 소통할 수 없는 상황이 닥쳐온다. 그들은 우격다짐으로 가재를 닮은 이물질을 네오의 배꼽으로 집어넣어 그를 경악케 한다. 네오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기 위한 도청 기계였다. 네오는 이 모든 끔찍한 상황이 악몽이라고 믿고 싶다.) 

   모피어스는 포기하지 않고 네오를 향해 접속을 시도한다. 스미스는 계속 그를 ‘토마스’로 부르지만 모피어스는 줄기차게 그를 ‘네오’라고 부른다. 스미스 일당이 원하는 것은 고분고분한 모범 회사원이자 성공이 보장되어 있는 세속의 인간 ‘토마스’였고 모피어스가 원하는 것은 매트릭스의 음모와 싸울 운명의 전사이자 신성의 인간 ‘네오’였던 것이다. 모피어스는 트리니티를 통해 네오의 몸에 장착된 끔찍한 기계장치를 없애버리게 만들고 네오를 자신의 거처로 초대한다. 트리니티는 모피어스를 향해 네오를 안내하면서 그에게 당부를 한다. “네오, 날 믿어야 해. 그리고 정직해야 돼. 모피어스를 과소평가하지 마.” 그녀의 당부는 <매트릭스>의 중요한 테마 중 하나다. 바로 ‘믿음’이다.
   내가 신성한 세계를 향해 나아가고 있는 믿음, 내가 신성한 가치의 창조에 참여하는 존재라는 믿음, 그리고 내 곁에 일어나는 ‘이해할 수 없는 비논리적 사건들’이 바로 이 세계를 엮어내는 진실의 또 다른 모습이라는 믿음. 모피어스는 두려움에 떨고 있는 네오의 표정을 보며 여유롭게 말한다. “자넨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된 기분이겠지? 토끼 구멍으로 떨어진 것 같지?” 네오는 속내를 들킨 듯 부끄러운 표정으로 대답한다. “그런 것 같아요.” 그들은 이렇게 첫 만남을 시작한다. 

   
 

 거룩한 공간의 계시는 고정점을 획득하고, 따라서 균질성의 카오스 속에서 방향성을 확보하며, ‘세계를 창건’하고, 참다운 의미에서 그 속에 거주하는 것을 가능케 한다. 반대로 세속적인 경험은 공간의 균질성을, 따라서 그것의 상대성을 유지시킨다. 이때에는 고정점이라는 것이 더 이상 유일한 존재론적 지위를 향유하지 못하기 때문에 진정한 방향성이란 불가능해지고 만다. 그것은 나날의 필요성에 따라서 나타났다가 사라졌다가 하는 것이다. 정확히 말하면 여기에는 더 이상 어떤 세계도 존재하지 않으며, 단지 부서진 우주의 단편들, (……)무정형의 더미만이 있게 된다. 이 속에서 인간은 산업사회에 편입된 존재로서의 의무에 따라 움직이고, 그것에 지배당하여 조종받게 되는 것이다.  


 -엘리아데, 이동하 역, <성과 속>, 학민사, 1996, 2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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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손체조 2009-12-08 15: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색, 계>로부터 시작되어 <굿 윌 헌팅>의 믿음, <쇼생크 탈출>의 믿음, <원령공주>의 믿음, 그리고 <매트릭스>의 믿음. 여울님에게 그리고 나에게 믿음이란???

tnfltnfl 2009-12-08 15: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유진 오닐의 명문장. 가슴 시립니다. 오늘따라 신의 은총으롬 만든 접착제가 왜 이렇게 안붙지? 꼭 오즈의 마법사에 나오는 깡통로봇처럼 몸이 안 풀립니다. 덜그럭덜그럭 휘청휘청 ㅋㅋ

니모 2009-12-09 14: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몇 번을 봐도 그때마다 새로운 신기한 영화. 그러나 볼 때마다 늘 느끼는 거지만, 정말 환상의 캐스팅! 특히 트리니티 역의 캐리 앤 모스 짱 멋있음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