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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쓸모 - 자유롭고 떳떳한 삶을 위한 22가지 통찰
최태성 지음 / 다산초당 / 2019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을 읽고 다시 역사 공부를 하고 싶어졌다. 내가 학교 다녔을 때와 다르게 그 동안 역사 사료도 많이 연구 되었고 새로운 발견들이 쌓였다는 느낌을 받았다. 역사적 인물에서 롤모델을 찾는 것도 좋은 길잡이다.
역사 의식에 대해 잊고 살았는데, 다시 생각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후대에 어떻게 평가받을 것인가. 지금 이 순간만 산다면 안이하고 무책임한 삶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꿈과 비전을 품고 산다면 훨씬 윤택하고 의미가 있을 것이다.
지난 역사를 보면 개항기에는 신분 해방을, 일제 강점기에는 조국 해방을, 현대에는 빈곤 해방을 위해 노력했다. 지금은 평화 통일을 위해 노력해야할 때가 아닐까? 이런 비전을 제시하는 정부가 필요하다.
단순한 사실의 나열만 알았던 인물들에 대해서 평전을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피상적으로 업적만 아니까 인간적으로 다가오지 않는 것 같다. 박지원, 정약용, 정도전, 이희영, 최석, 나혜석, 박상진,
새롭게 알게 된 사실들:
1919년 9월 1일 프랑스 파리. 무르만스크라는 러시아의 항구도시에서 500여 명의 한인 노동자가 일하고 있었다. 영국군 휘하에서 철도회사에 고용되어 잡역에 동원되었다. 1차 세계대전 끝날 무렵 영국과 미국이 무르만스크를 점령.영국군은 무르만스크에서 출후. 리첸코라는 외국인에게 부탁해 파리 위원부에 전보를 쳤다. 파리 위원부는 대한민국임시정부가 프랑스 파리에 설치한 외교부서. 1919년 10월 12일 무르만스크를 떠나는 영국군들은 한인 노동자 200여 명을 산타엘레나호에 태워 영국 에든버러로 데려왔다. 임시정부 요원들은 에들버러에 도착한 200여 명의 한국인을 프랑스로 데려가기 위해 영국 외무부와 교섭했다. 일본은 본국 송환을 강력하게 주장. 임시정부도 끈질기게 항의. 30여 명을 프랑스로 데려 올 수 있었다. 파리 위원부는 30여 명에게 일자리를 마련해주기 위해 인근 마을 쉬프에 터를 잡았다. 파괴돈 마을 복구 사업에 종사했고 프랑스 정부로부터 '노동헌신상'까지 받았다. 체류증에는 코리아라고 국적이 표시되었다. 그 당시 얼마나 한국인들이 치열하게 일본과 투쟁했는지 보여주는 일화다.
쉬프의 한국인들은 유럽 최초의 한인 단체인 재법한국민회를 결성. 대한민국임시정부는 임시였지만 엄연한 정부였다. 우리 독립운동사가 굴욕의 역사, 비겁의 역사가 되지 않은 것은 이렇게 수많은 아무개들의 노력과 행동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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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익 대동법의 아버지
을사오적 - 이완용, 이지용, 이근택, 박제순, 권중현 모두 고관대작. 학부대신, 내부대신, 군부대신, 외부대시누 농상공부대신 (교육부 행정안전부 국방부 외교부 농축산부와 산업통상자원부)
조지 워싱턴의 리더십
스피노자 - 두려움은 희망 없이 있을 수 없고 희망은 두려움 없이 있을 수 없다
서른 살 청년 이회영이 물었따
한 번의 젊은 나이를 어찌할 것인가
눈을 감는 순간 예순여섯 노인 이회영이 답했따
예순여섯의 '일생'으로 답했따
미스터 선샤인 메인 포스터
저물어가는 조선에 그들이 있었따
그들은 그저 아무개다
그 아무개들 모두의 이름이
의병이다
원컨대 조선이 훗날까지 살아남아 유구히 흐른다면
역사에 그 이름 한 줄이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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