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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얼빈
김훈 지음 / 문학동네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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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훈 작가도 안중근 의사 이야기를 쓰는데 거의 50년이 걸렸다고 한다. 살아 있었던 인물을 다루는게 결코 쉽지 않다. 


하얼빈은 짧고 굵게 안중근 의사와 우덕순 그리고 빌렘 신부를 중심으로 쓴다. 

앞부분 황태자 이은에 대한 이야기도 인상적이었고, 뒤의 후기도 기억에 남는다. 

작가는 담담하게 묘사하고 있다. 

어떤 마음으로 이들이 거사를 실행했는지, 내가 한번도 생각해 보지 못했던 사람들, 사건들도 다루었다. 

안중근, 안정근, 안경근, 안명근 이야기도 궁금하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그 후세의 인생이 더 슬프고 짠하다. 얼마나 일제로부터 괴롭힘을 당했을까? 안준생, 안현생은 어떤 마음으로 이토  분키치에게 '사죄' 했을까.


앞으로 독립운동가들에 대한 소설이 더 많이 나오면 좋겠다.

 

저자의 후기에서 포수, 무직, 담배팔이. 이 세단어의 순수어이 이 소설을 쓰는 동안 등대처럼 저자를 인도했다고 한다. 이렇게 저자에게 각인되는 장면이나 단어들이 있다. 


이 같은 토털 픽처를 만드는 일은 글쓰는 자의 즐거움일 테지만,즐거움은 잠깐뿐이고 연필을 쥐고 책상에 앉으면 말을 듣지 않는 말을 부려서 목표를 향해 끌고 나가는 노동의 날들이 계속디지만, 이런 수고로움을 길게 말하는 일은 너절하다. 


안중근의 빛나는 청춘을 소설로 써보려는 것은 내 고단한 청춘의 소망이었다. 나는 밥벌이를 하는 틈틈이 자료와 기록들을 찾아보았고, 이토 히로부미의 생애의 족적을 찾아서 일본의 여러 곳을 들여다보았다. 그러다 그 원고를 시작도 하지 못한 채 늙었따. 나는 안중근의 짧은 생애가 뿜어내는 에너지를 감당하지 못했고, 그 일을 잊어버리려고 애쓰면서 세월을 보냈다. 변명하자면, 게으름을 부린 것이 아니라 엄두가 나지 않아서 뭉개고 있었다. (305쪽)


나는 안중근의 '대의'보다도, 실탄 일복 발과 여비 백 루블을 지니고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하얼빈으로 향하는 그의 가난과 청춘과 그의 살이 있는 몸에 관하여 말하려 했다. 그의 몸은 대의와 가난을 합쳐서 적의 정면으로 향했던 것인데, 그의 대의는 후세의 필생이 힘주어 말하지 않더라도 그가 몸과 총과 입으로 이미 다 말했고, 지금도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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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기와집 - 일본군 위안부가 된 한국 여성 이야기
가와다 후미코 지음, 오근영 옮김 / 평화를품은책(꿈교출판사)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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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우 100년 전 일어난 이야기인데 아직도 모르는 게 너무 많다.


'위안부'에 대한 책과 영화 등을 웬만하면 다 읽는다. 죄책감 때문이다. 해방된 지 70년이 넘었는데 여전히 '위안부'에 대한 일본의 사과는 없고 국민들도 제대로 알지 못한다. <빨간 기와집>은 오키나와 도카시키 섬의 위안소에 끌려간 배봉기 할머니 이야기다.

우선 일본에 위안소가 있었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주로 중국, 미얀마 등 해외에 있다고만 알았지 일본 본토에도 위안소를 설치한 것은 충격이다. 오키나와가 일본 본토라는 생각이 적어서였을까? 지인이 도카시키 섬에 헬프 엑스로 여행을 간다고 해서 함께 빨간 기와집을 읽었다. 


배봉기 할머니의 삶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배봉기 할머니는 1914년 일본 강점기에 태어났고 어린 봉기에게는 조국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았다. 국가라면 마땅히 국민을 보호해야하는데 그 당시 우리는 국가가 없었기 때문에 어떤 보호도 받을 수 없었다. 가난한 집에 태어나 6살 때부터 가족과 뿔뿔이 흩어져 살았던 봉기. 뿌리 없이 정처없이 떠돌던 삶이었다. 결혼을 두 번했지만 의지가 되지 않았다. 서른 살에 흥남으로 흘러간 봉기는 여자 소개꾼을 만나 지상 낙원에 가서 일할 수 있다는 말에 속아 오키나와 '위안부'로 살게 된다. 

해방이 되었지만 고향은 있지만 조국이 없던 배봉기 할머니는 계속 오키나와에 남는다. 그렇게 '재일' 한국인이 된 것이다.

1910년 배봉기 할머니는 연명했다. 

배봉기 할머니는 '위안부' 최초의 증언자다. 1972년 오키나와가 일본 땅으로 복귀되자 배봉기 할머니는 불법체류자 취급을 받아 강제 퇴거 대상이 되었다. 3년의 유예기간 안에 신청하면 특별 체류 허가를 내준다는 조치가 취해져 배봉기 할머니는 신청하게 된다. 출입국관리사무소 담당관의 취조 과정에서 배봉기 할머니가 '위안부'로 끌려왔다는 사살이 밝혀진다. 특별 체류 허가를 받는 대가로 '전 위안부'의 증언자로 전면에 나서게 되었다.

한국에서는 1991년 고 김학순 할머니가 최초 증언을 했다.


저자는 1977년 처음 봉기 씨를 만난다. 그리고 그 처절한 이야기를 듣고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오키나와에 자행되었던 만행, 위안소 이야기를 조사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10년 동안 집필을 준비했다. 이 이야기를 집필한 저자에게 감사하다. '위안부'의 문제는 국가를 초월한 인간으로서 간과해서는 안 되는 이야기라는 걸 이 책에서 담담하게 서술한다. 

위안부 할머니 한 명이라도 살아 계실 때 하루 빨리 일본의 사죄가 있기를 바란다.



봉기 씨가 본 ‘나라‘는 늘 이방의 국가였다. 봉기 씨가 태어났을 때 한국은 이미 일본의 식민지 지배를 받고 있었다. 미군 지배하의 오키나와에 살던 전후 시절에도 그랬고, 오키나와가 일본에 반환된 뒤에도 봉기 씨에게 ‘나라‘는 이방의 국가였다. 봉기 씨가 ‘나라‘라고 할 때 그것은 늘 고향을 의미했을 뿐 국가를 상기시키는 경우는 없었다. 봉기 씨는 ‘나라‘를 넘어 이 계곡에서 죽어 간 사람의 영령을 향해 합장했을지도 모른다. - P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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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쓸모 - 자유롭고 떳떳한 삶을 위한 22가지 통찰
최태성 지음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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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고 다시 역사 공부를 하고 싶어졌다. 내가 학교 다녔을 때와 다르게 그 동안 역사 사료도 많이 연구 되었고 새로운 발견들이 쌓였다는 느낌을 받았다. 역사적 인물에서 롤모델을 찾는 것도 좋은 길잡이다.

역사 의식에 대해 잊고 살았는데, 다시 생각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후대에 어떻게 평가받을 것인가. 지금 이 순간만 산다면 안이하고 무책임한 삶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꿈과 비전을 품고 산다면 훨씬 윤택하고 의미가 있을 것이다.

지난 역사를 보면 개항기에는 신분 해방을, 일제 강점기에는 조국 해방을, 현대에는 빈곤 해방을 위해 노력했다. 지금은 평화 통일을 위해 노력해야할 때가 아닐까? 이런 비전을 제시하는 정부가 필요하다.


단순한 사실의 나열만 알았던 인물들에 대해서 평전을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피상적으로 업적만 아니까 인간적으로 다가오지 않는 것 같다. 박지원, 정약용, 정도전, 이희영, 최석, 나혜석, 박상진, 


새롭게 알게 된 사실들:

1919년 9월 1일 프랑스 파리. 무르만스크라는 러시아의 항구도시에서 500여 명의 한인 노동자가 일하고 있었다. 영국군 휘하에서 철도회사에 고용되어 잡역에 동원되었다. 1차 세계대전 끝날 무렵 영국과 미국이 무르만스크를 점령.영국군은 무르만스크에서 출후. 리첸코라는 외국인에게 부탁해 파리 위원부에 전보를 쳤다. 파리 위원부는 대한민국임시정부가 프랑스 파리에 설치한 외교부서. 1919년 10월 12일 무르만스크를 떠나는 영국군들은 한인 노동자 200여 명을 산타엘레나호에 태워 영국 에든버러로 데려왔다. 임시정부 요원들은 에들버러에 도착한 200여 명의 한국인을 프랑스로 데려가기 위해 영국 외무부와 교섭했다. 일본은 본국 송환을 강력하게 주장. 임시정부도 끈질기게 항의. 30여 명을 프랑스로 데려 올 수 있었다. 파리 위원부는 30여 명에게 일자리를 마련해주기 위해 인근 마을 쉬프에 터를 잡았다. 파괴돈 마을 복구 사업에 종사했고 프랑스 정부로부터 '노동헌신상'까지 받았다. 체류증에는 코리아라고 국적이 표시되었다. 그 당시 얼마나 한국인들이 치열하게 일본과 투쟁했는지 보여주는 일화다.

쉬프의 한국인들은 유럽 최초의 한인 단체인 재법한국민회를 결성. 대한민국임시정부는 임시였지만 엄연한 정부였다. 우리 독립운동사가 굴욕의 역사, 비겁의 역사가 되지 않은 것은 이렇게 수많은 아무개들의 노력과 행동 때문이다.


예송논쟁 - 서인과 남인

어우동은 양반집 규수였다.

최석 공덕비 - 팔마비 (순천)

안성맞춤 - 안성 유기

이원익 대동법의 아버지

을사오적 - 이완용, 이지용, 이근택, 박제순, 권중현 모두 고관대작. 학부대신, 내부대신, 군부대신, 외부대시누 농상공부대신 (교육부 행정안전부 국방부 외교부 농축산부와 산업통상자원부)

조지 워싱턴의 리더십


스피노자 - 두려움은 희망 없이 있을 수 없고 희망은 두려움 없이 있을 수 없다


서른 살 청년 이회영이 물었따

한 번의 젊은 나이를 어찌할 것인가

눈을 감는 순간 예순여섯 노인 이회영이 답했따

예순여섯의 '일생'으로 답했따


미스터 선샤인 메인 포스터

저물어가는 조선에 그들이 있었따

그들은 그저 아무개다

그 아무개들 모두의 이름이

의병이다

원컨대 조선이 훗날까지 살아남아 유구히 흐른다면

역사에 그 이름 한 줄이면 된다.



소통-똣이 서로 통하여 오해가 없음

장수왕의 실용적 결단 - 풍훙 망명

고려 태자 외교 쿠빌라이 선택

최고 협상가 고려 서희 

연개소문의 거만

스페인 아타우알파 건낸 금 6087 킬로그램 은 1만 1793킬로그램

신라의 비전 - 황룡사 9층 목탑, 김춘추 김유신 아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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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피엔스 (무선본) - 유인원에서 사이보그까지, 인간 역사의 대담하고 위대한 질문 인류 3부작 시리즈
유발 하라리 지음, 조현욱 옮김, 이태수 감수 / 김영사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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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올해 가장 잘 한 독서! 가장 뿌듯하다. 

늘 마음의 짐 처럼 읽어야 할 책 목록에 늘 있었는데 올해 온라인 책 모임을 통해 유발 하라리 '인류 3부작'을 같이 읽고 있다.

첫 책으로 <사피엔스>를 5주에 걸쳐 읽었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대목을 요약해 보겠다.


1. 농업혁명은 역사상 최대의 사기

농업이 인간의 행복에 이바지 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고생길이 열런 것이다. 최대 승자는 밀, 쌀, 감자 등이다. 북미의 대 초원 지역에 1만 년 전 밀이 한 포기도 없었지만 지금은 수백 킬로미터를 차지하고 있지 않은가? 


2. 뒷담화이론

뒷담화를 정말 싫어하는데 이 뒷담화가 호모 사피엔스가 진보하는데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뒷담화는 악의적인 능력이지만, 많은 숫자가 모여 협동을 하려면 사실상 반드시 필요하다. 그래서 앞으로 뒷담화하는 사람들을 너무 미워하지 않기로 했다.


3. 역사에 정의는 없다 

차별, 혐오, 불평등을 정말 싫어하지만 불행하게도 복잡한 인간 사회에는 상상의 위계질서와 불공정한 차별이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고 저자는 말한다. (200쪽) 능력과 성격의 다양성은 보통 상상의 질서의 영향을 받기 마련이다. 역사의 선택은 인류를 위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4. 애덤 스미스는 탐욕이 선한 것이라 말했다.

<국부론>하면 보이지 않는 손만 생각났는데, 스미스는 사실상 탐욕이 선한 것이며, 내가 부자가 되면 나만이 아니라 모두에게 이득이 된다고 말한 것이다. 이기주의가 곧 이타주의라고.(441쪽) 1776년 당시에는 탐역을 경시했기 때문에 그 당시에는 혁명적인 발상이었지만 오히려 현재는 공동체, 공존이 중요한 화두다. 언제까지 우리는 <국부론>에 얽매일 것인가?


5. 상상의 공동체

시장과 국가는 '상상의 공동체'를 육성함으로써 소비지상주의와 민족주의를 설파했다. 내가 중요하게 여기는 인권이라는 개념이나, 정부책임론 등이 결국은 시장과 국가가 만든 산물이라는 사실이 놀랍다. 현대 사회에서 가족이 붕괴되고 파편화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유발 하라리가 하고 싶은 말은 후기 두 장에 다 요약되어 있는 것 같다. 지구상에서 가장 막강한 종인 호모사피엔스는 우리의 행복뿐만 아니라 다른 종의 고통의 총량을 줄여야하지 않을까? 무한한 상상력으로 생태계를 정복한 인간이 해야할 일은 새로운 상상의 공동체를 합의하는 것이다.

너무 늦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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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절한 정원 (리커버 에디션)
미셸 깽 지음, 이인숙 옮김 / 문학세계사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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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 사건과 가족사를 보여주는 소설은 많다.

이 소설의 독특한 점은 직접 당사자가 아닌 아들의 시점에서 이야기를 풀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초등교사이자 어릿광대인 아빠. 그런 아빠를 보며 수치심을 느꼈던 소년.

하지만 삼촌의 이야기를 듣고 아버지가 어릿광대를 하는 사실을 깨닫는 소년.

결국 소년도 모리스 파퐁의 재판에 아버지의 광대옷을 입고 참관한다.


제1차 세계대전 참전용사였으며 광부였던 할아버지와 레지스탕스 요원이었으며 초등학교 교사였던 아버지에게 이 책을 바친다. ...두 분은 역사의 흑백논리는 어리석은 짓이라며 나에게 독일어를 배우도록 하셨습니다. 그리고 베르나르 비키에게도 이 책을 바치고자 합니다.



1990년 10월 프랑스는 반인륜적 범죄를 저지른 모리스 파퐁의 재판으로 시끄러웠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에 파퐁은 자신이 나치에 저항한 레지스탕스였다는 경력을 내세워 코르시카와 알제리 행정장관을 역임했고, 드골 정권하에서 파리 경찰국장, 지스카르 데스땡 정권 때에는예산장관까지 역임했다. 그러나 40년간이나 지하에 묻혀 있던 그의 범죄는 마이클 슬리틴이라는 역사학자에 의해 모두 ㅍ폭로되고 만다. 모리스 파퐁은 나치의 꼭두각시 정권이었던 비시 정권하에서 보르도 지역의 치안 부책임자였다. 그는 1942년에서부터 1944년까지 1590명의 유대인을 체포하여 죽음의 아우슈비츠 수용소로 보냈다.

희생자 유족들의 고발로 모리스 파퐁은 1983년에 정식 기소되었다. 그러나 모리스 파퐁을 법정에 세우기까지는 16년의 세월이 필요했다. 왜냐하면 한동안 비시 정권하에서 일했던 관리들의 수동적 행위를 단죄할 수 있는가 하는 논란이 야기됐기 때문이다. 파퐁 자신도 "공복으로서 거영할 수 없는 명령에 따랐을 뿐"이라고 항변했다. 

1995년 시라크 대통령이 취임하여 유대인 강제수용에 대한 프랑스의 국가적 책임을 처음으로 시인한 후에야 비로소 모리스 파퐁에 대한 응징이 본격화되었다. 1997년 보르도 항소법원이 모리스 파퐁을 재판에 회부했고, 6개월 후에 그는 징역 10년형을 받았다. 그러나 그는 이에 불복해 항소했고, 그 결과가 나오기 직전 외국으로 망명을 시도했지만 결국 스위스의 휴양지 그스타트에서 체포되어 프랑스로 압송되었다. 이렇게 1999년 당시 89세인 모리스 파퐁은 감옥에서 생을 마쳐야 할지도 모르는 운명에 처하게 되었다

나치의 반인륜적 범죄 처벌에는 시효가 따로 없고, 예외가 없다는 것이 프랑스와 유럽 국가들의 변치 않는 입장이다. (105쪽)


인생은 단순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짧은 단편이다. 실제로 두에 역 변압기를 폭파시켰던 아버지와 삼촌. 하지만 이들이 진범이었지만, 프랑스 헌병들의 신고로 잡혀들어가게 되었다. 두에 역의 전기공의 부인이 남편을 테러리스트로 신고하자 아버지와 삼촌은 풀려난다. 전쟁이 끝나고 한 참 지나서 그들은 부인에게 감사의 인사를 하러 간다. (그 부인이 바로 니꼴 숙모다)


"죽고 사는 일을 타인의 손에 맡기거나, 다른 사람의 목숨을 빼앗는 대가로 자신이 살아난다면 인간으로서 존엄성을 포기하는 것이고, 악이 선을 이기는 것에 동의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네. " (8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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