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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의 존재
이석원 지음 / 달 / 2009년 11월
평점 :
내가갖고 있는 판본은 64쇄. 정말 대단하다.
작가의 첫 에세이 책 같은데 이렇게 많이 팔리다니. 정말 절박함이 만능키 같다. 솔직히 절박한 사람에게는 길이 나타난다고 생각한다.
작가도 이 책을 쓸 당시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막중한 임무를 맡았다고 한다. 건강도 최악이고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글쓰는 것 뿐이었다고.
그렇게 쓴 에세이지만 힘이 들어갔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초반에는 나와 너무나 다른 사람이라 공감이 어렵고 오히려 신기하게 읽어내려간 것 같다. 특히 독서 여행이 버켓리스트라고 했을 때.
서점을 가는 걸 좋아하지만 책 읽는게 어렵다는 저자. 그런 사람이 책을 내다니!
후반부로 갈수록 역시 보통의 인간이었구나. 나와 크게 다르지 않은 인간이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나이 들수록 인간은 어른이라면 깨닫는게 비슷한 것 같다.
특히 어머니와의 일화가 인상적이었다. 보호자가 없어 수면내시경을 할 수 없었던 사연.
어렸을 때 추억을 끄집어 어른이 되었을 때 실천하는 모습. 나이 들수록 이런 전통을 만드는게 필요한 것 같다. 나도 어렸을 때 부모님과 공원 갔던 추억이 참 좋았다. 지금은 없어진 것 같지만 ?가든, 피자헛 샐러드바를 좋아했던 엄마 등등. 이 책을 읽으며 그런 추억들이 떠올랐다.
그래서 이 책이 인기 있나 보다. 누구나, 보통의 존재들이 느끼는 감정을 잘 담아놨기 때문에.
후쿠오카 스카이코트 하카타 호텔 512호, 나는 그렇게 다시 혼자였고 마침 그때는 책도 읽지 못하던 때라 자연스레 노트를 꺼내들고 메모를 끄적이기 시작했다. "여행은 내게 여전히 힘들고 많은 생각을 안겨준다. 나는 정말 아지곧 여행을 잘 모르겠지만 알 수 없는 오기 같은 것이 생겨 다시는 가고 싶지 않다. 집에만 있을 거야, 라는 생각은 하지 않게 되었다." - P61
야채는 순둥이, 고기는 못됐다. 기름이라는 녀석들은 능글능글하고 고춧가루는 집요할 정도로 표독스럽다. 먼 나라 미국에서 방부제를 잔뜩 머금은 채 건너온 밀가루들. 그들은 빵이나 면발이 되어 전국의 제과점과 분식집을 통해 미욱스럽게도 사람의 건강을 꾸역꾸역 좀먹는다. 밀가루는 이처럼 음험하다. 오돌도돌 닭살이 그대로 드러나 있는 닭고기는 징그럽고 육덕지지만 지지자들이 광범위한 탓에 늘 인기가 식을 줄 모른다. 그들은 물과 함께 삼계탕이 되어 복날 몸보신용으로 제공되며 기름으로 튀겨지면 술안주로도 각광받는다. 방부제로 키워진 닭이 많긴 하지만 손쉽게 단백질을 섭취할 수 있다는 장점도 무시할 수는 없다. - P121
그러든 어느 날 내게 작은 변화가 생겼다. 본격적으로 책을 사기 시작한 것이다. 그동안은 서점에 들러도 이 책 저 책 들춰보기나 할뿐 그저 서점에 가는 것만으로 만족하던 내가 읽지도 못하는 책을 사게 된 건 친구의 조언 때문이었다. 2007년, 나는 한 사람 때문에 열병을 앓았고 다시는 겪고 싶지 않을 만큼 커다란 고통을 겪었다. 그것이 도저히 나의 힘으로는 스스로를 구해내지 못할 지경이 되자, 절망 속에서 친구에게 수원의 손길을 청했을 때 친구가 알려준 해결책은 다음과 같았다. "석원아, 공부해, 그리고 운동해." - P148
우리는 코코의 난폭한 성질을 누그러뜨리기 위해 중성화 수술을 시키기로 결정했지. 그런데 그때 찾아간 병원에서 누군가 그러는 거야. 고양이 발톱을 뽑아주는 수술이 있는데 마취를 하기 때문에 수술도 고통 없이 간편하고, 받고 나면 발톱이 없어 뽀송뽀송한 고양이 발을 마음껏 만질 수 있다고. 다들 그렇게 한닫는 말에 우리는, 코코에게 무슨 짓을 하는 건지 전혀 알지 못한 채 그 일에 동의를 했어. 그런데 수술 날, 우리는 수술에 들어가고 나서야 그게 얼마나 잔인한 짓인지를 알게 되었어. 후회해도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었지. - P276
실상은 이렇다. 나는 다가가기 어려운 사람이라기보다는 오히려 누군가 나에게 다가와주기를 기다리는 사람에 더 가깝다. 마음을 열고는 싶지만 방법을 알지 못해서 오히려 외로운 사람이다. 직설적인 구석도 있지만 타인에 대한 배려심이나 남을 도우려는 마음은 누구 못지않은데 그런 것은 잘 소문이 나지 않더라. - P279
수건돌리기, 둥글게 둥글게 짝짓기, 모르겠다, 이런 게임을 외국에서도 하는지 우리만 하는 건지. 하지만 분명한 건 우린 어려서부터 비정상적으로 의무적인 관계 맺기를 강요당해왔다는 것이다. 그런데 왜 우리는 늘 두 줄로 줄을 서며 짝을 짓도록 강요받았을 까. 왜 혼자 다니면 놀림의 대상이 되어야 했을까. - P2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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