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위의 남작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07
이탈로 칼비노 지음, 이현경 옮김 / 민음사 / 200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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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은 연유는 이러하다. 일단 절친한 친구의 강력추천이 있었다. (이 친구가 추천하는 책은 무조건 다 본다. ) 그리고, 우연히 네이버의 박찬욱이 추천하는 100권을 보다가 이 책이 그 안에 있길래(그런데 네이버의 지식인의 서재 100권은 .. 책이 너무 많다고 생각된다. 추천할 책이 100권이나.. ㅠㅠ) , 또 내가 좋아하는 알라딘의 어느 서재에서 본 리뷰때문에..

결론적으로 이 책을 읽기 시작한지 거의 한달이 되어서야 다 읽었다. 그것도 오늘 작정하고 눌러 앉아 백페이지를 읽은 결과이다. 재미 없거나 하지는 않았는데 이상하게 도중에 다른 책들이 끼어들어서 말이지.

나무 위로 올라간 이유는 정말 단순하다. 한마디로 사춘기의 반항. 열두살에 누나가 해주는 달팽이요리에 대한 반발때문에 나무 위로 가출을 단행한 형. 설마 며칠있다 내려오겠지 했는데 죽는 날까지 형은 나무위에서 내려오지 않았다. 예순 몇살에 죽었으니까..

한평생동안 나무 위에서 있었던 일이니 일이 오죽 많았겠는가. 나무 위에서 사랑도 하고, 이웃주민과 일도 하고, 독서도 하고 책도 낸다. 당연히 도중에 부모님도 다 돌아가신다.

세상과 등을 지고 싶어서 현실을 외면하기는 참 쉽다. 보통 보기 싫은 꼴 안보려 도피하는 일은 식은 죽 먹기니깐. TV도 안보면 그만이고, 사람들과의 접촉도 최소한으로 하고, 시사에 관심두지 않고. 돈을 벌어 먹고 사는게 큰 문제이긴 한데. 최소한의 대인관계만으로도 근근이 살아갈수는 있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나서 과연 그렇게 살아가는것이 올바른가에 대한 의문을 가지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사회의 관습, 규범을 거부하되 충분히 자신의 개성을 살려 살아가는 방법을 개척한 이 사람의 이야기가 그렇기 때문이다. 현실에 깊이 관여하고, 실천하며 살아가는 지식인으로써의 모습이랄까. 게다가 누가 규정하지도 않은 규범을 스스로 만들고 목에 칼이 들어와도 지키는 지조(?)라니!

칼비노의 다른 책들도 읽어 싶다. 그런데 <반쪼가리 자작>은 품절이네. 더 이상 나오지 않는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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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도를 기다리며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3
사무엘 베케트 지음, 오증자 옮김 / 민음사 / 200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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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솔직히 이 책의 제목을 알고 있었던 십수년간 나는 고도가 이 度를 말하는 줄 알았다. -_- 뭔가, 높고도 원대한 무언가를 기다리는 것이 아닐까 생각하면서.. 그런데 책을 읽어도 뒷부분의 해설을 읽어도 고도에 대해 딱히 설명이 없다. 지식인께 여쭤보니 원제에서 고도는 Godot였다는 것을 알았다. 단지 이름이 고도였던 것이다.  ㅠㅠ

 내용은 두 주인공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이 오지 않는 고도를 기다리며 무의미한 행동과 말을 한다는 것이다. 이상한 행동을 하다가 중간에 한번씩 확인이라도 하듯 우리는 지금 고도를 기다리고 있다며 서로에게 묻고, 확인시킨다. 허무하게도 그러나 당연하게도 기다리던 고도는 오지 않는다. 고도의 소식을 가지고 온 소년만이 두번 등장하는데 고도가 내일온다고 말하고 사라진다. 물론 고도가 온다던 그 내일에도 고도는 역시 오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살아간다는 것은 사실 무언가를 늘 기다리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그 기다리는 대상을 실제로 만날 수 있든 만날 수 있는 가능성이 희박하든 그 기다림의 순간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에 따라 우리의 삶의 행태가 결정된다. 똑같은 고통앞에서 그 고통을 어떻게 받아들이냐하는 자세를 결정하는 것, 그것이 어떤 순간을 바닥에서 최고의 순간으로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이 책은 읽는 순간에는 뭐 이런 걸 희곡으로 쓰나 하는 생각을 했는데 다 읽고 나서 오히려 그 의미에 대해 여러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었다.

(<프로방스에 간 고양이>에는 베케트의 이야기가 잠시 나온다. 보넬리의 포도주에 대한 대사를 발견하고 기뻤다!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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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의 여자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55
아베 코보 지음, 김난주 옮김 / 민음사 / 200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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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르고 별렀던 모래의 여자를 읽었다. 도입부가 쉽게 책속으로 빨려들게 한다. 곤충채집을 위해 사구로 떠나는 한 남교사의 이야기다. 모래에 대한 정의부터 묘사.. 한번도 모래라는 것에 대해 이렇게 오랜시간동안(책을 읽는 동안) 생각해 본적이 없었다. 이유없이 잡혀와 이유없는 노동을 해야만 하는 상황은... 예전에 읽었던 폴 오스터의 우연의 음악을 떠오르게 했다. 물론 거기서는 도박의 빚을 청산하기 위해 벽돌을 쌓았던 것이지만. 이 책에서는 그만큼의 이유도 없다. 그저, 그 곳에 제발로 갔다는 이유가 다이다. 모래의 마을(?)이 비현실이라면, 그가 살고 있었던 여자가 라디오를 통해 연결되고 싶어했던 우리들의 세상은 현실인가. 아니 그 반대로 생각할 수는 없는 것일까. 몇번의 탈출 시도를 하지만 남자는 결국 그 세계에 안주하게 된다. 부당하다고 생각했던 노동을 수용하면서 새로운 삶을 찾아나선다. 물론 그가 있던 세계에서 그는 실종신고 처리가 된다.

이 소설은 우리가 밥을 먹고 살기 위해 해야하는 노동이란 것에 대한 작가의 생각을 표현하고 있는 것 같다. 과연 노동에는, 목적지 없이도 여전히 도망쳐가는 시간을 견디게 하는, 인간의 기댈 언덕 같은 것이 있는 모양이다. (p.73) 김훈은 밥벌이의 지겨움이라고 말한 그 노동, 그 지루함에 늘 견딜 수 없었던 시절이 나도 있었는데 막상 그것에서 벗어나고 보니 한없이 그 노동이 그리운, 양면성을 발견하고는 스스로도 놀라곤 했다. 노동을 극복하는 길은 노동을 통해서만 찾을 수 있습니다. 노동 자체에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니라, 노동으로 노동을 극복하는... 그 자기 부정의 에너지야말로 진정한 노동의 가치입니다.(p.73) 진정한 노동의 가치라.. 참으로 어려운 주제가 아닐 수 없다. 노동이란 것이 그저 무한하게 놓여진 시간 앞에서 하루하루를 견디게 하는 것이라면, 그것이 단순한 땅파기인 것과 고고한 정신노동사이의 차이는 무엇이란 말인가.

심장이 뛰게 하는 일이 아니더라도 그럭저럭 견딜 수 있는 노동과 그로 인해 유지되는 일상이라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잘 살아간다. 내가 있는 현실과 한없이 동경하지만 다다를 수는 없는 비현실의 경계에서 현실에 만족하며 그럭저럭 살아갈 것인지, 아니면 늘 비현실의 너머를 꿈꿀 것인가는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또, 그러한 태도에 있어서 어느 것이 더 가치있다고도 함부로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중간의 적정한 지점에서 타협하고 순응하며 살아가는 것 또한 충분히 아름다울 수 있다고, 이러한 생각을 할 수 있는 지금의 나를 보니 그래도 어른이 되긴 한건가.  (책에서 얻은 것과는 별도로 주인공이 처한 상황자체가 너무 답답해서 읽는 내내 답답했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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싯다르타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58
헤르만 헤세 지음, 박병덕 옮김 / 민음사 / 200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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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시절 내가 흠모해마지 않았던 문학선생님이 가장 소중히 여긴 다고 하시던 기억때문인지 이 책을 언제고 꼭 정독해봐야지 마음 먹고 있었다. 작년에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중에서 헤르만 헤세 책들을 다 읽어야겠다고 마음먹은 것도 있고.

그런데, 나는 싯다르타가 그의 친구 고빈다에게 들려주는 깨달음이 잘 와닿지 않았다. 스승에게 깨달음을 배우려 했던 고빈다와는 달리 싯다르타는 깨달음은 배울 수 있는 것이 아니라며 스승을 모시기를 거부한다. 대신, 직접 길을 떠나는 고행속으로 들어간다. 인생의 길위에서 싯다르타는 사랑하는 여인 카밀라를 만나고, 뱃사공 바주데바를 만난다. 카밀라를 통해 사랑을 알게 되고, 바주데바를 만나면서 요즘 말로 소울메이트와 같은 정신적 교감을 나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젊었던 시절 헤어졌던 친구 고빈다를 다시 만나고 그에게 지난 인생의 깨달음을 들려주면서 소설을 끝나게 된다. 깨달음을 얻으려면 직접 부딪혀볼 것, 인생의 목표자체에 집착하지 말고 순간에 충실할 것 등이 이 소설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가 아니었을까 싶다. 불교에서 가장 중요시하고 있는 부분을 이야기 형식으로 들려준다고 생각하면 된다. 소설에는 자식에 대한 집착 때문에 힘들어하는 싯다르타의 모습이 나온다. 그러면서 자신 때문에 힘들어했을 아버지를 떠올린다. 자식때문에 힘들어봐야 부모님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다는 말은 이런데서 나오는 걸지도. 뭔가 커다란 깨달음을 기대해서 인지 기대감보다는 못미쳤다. 또, 헤세의 다른 책에서는 별로 안 거슬렸던 쉼표 쉼표로 이어지는 긴 문장이 계속 거슬려 몰입해서 읽지 못한 점도 있었던 것 같다.  증거로 한문장 옮겨보겠다.

나는 나 자신의 육신의 경험과 나 자신의 영혼의 경험을 통하여 이 세상을 혐오하는 일을 그만두는 법을 배우기 위하여, 이 세상을 사랑하는 법을 배우기 위하여, 이 세상을 이제 더 이상 내가 소망하는 그 어떤 세상, 내가 상상하고 있는 그 어떤 세상, 그 머릿속으로 세상을 있는 그대로 놔둔 채 그 세상 자체를 사랑하기 위하여 그리고 기꺼이 그 세상의 일원이 되기 위하여, 내가 죄악을 매우 필요로 하였다는 것을, 내가 관능적 쾌락, 재물에 대한 욕심, 허영심을 필요로 하였다는 것을, 그리고 가장 수치스러운 절망 상태도 필요로 하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네. (209쪽)

이게 한 문장이다. 계속되는 동어 반복 그리고 책 전체가 거의 다 이런식의 반복이다. 읽기 힘들었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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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개츠비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75
F. 스콧 피츠제럴드 지음, 김욱동 옮김 / 민음사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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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환상의 힘은 그녀를 초월하였으며 모든 것을 뛰어넘었다. 그는 창조적인 열정으로 직접 그 환상에 뛰어들어 그 환상이 끊임없이 부풀어 오르게 했으며, 자신의 길 앞에 떠도는 모든 빛나는 깃털로 그 환상을 장식했던 것이다. 어떤 정열이나 순수함도 한 인간이 유령 같은 마음속 깊숙이 품은 것은 어찌할 수 없게 마련이다.

이 책을 순전히 읽어야겠다고 마음먹은건 하루키의 친구가 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게 <상실의 시대>에서 언급된 것인지 다른데서 하루키가 말한 것을 옮긴 것인지는 정확히 모르겠는데 <위대한 개츠비>를 세번 읽은 사람과는 친구가 될 수 있다는 말에 도대체 어떤 책이길래 하는 궁금증이 늘 있어왔던 것! 몇번이나 앞부분만 읽다가 무슨 이유에서인지 읽기를 중도에 그만 두기를 몇번 끝에 어제는 하룻밤새 이 책을 뚝딱 읽어치웠다. 이렇게 재미있는 책을 왜 그렇게 질질 끌어왔는지 모르겠다. 사실, 이 책은 1920년대 미국의 역사를 고스란히 반영한 미국소설의 고전중의 고전이라고 한다. 무너져가는 아메리칸드림을 개츠비라는 인물을 통해 반영한 내막이야 내가 알리 만무하고 어쨌거나 이 개츠비라는 사람, 너무나 매력적인 인물이다. 5년이라는 세월동안 사랑해온 여자를 위해 모든 방법을 동원해 성공한 뒤 마련한 저택, 그리고 연일 계속 되는 파티, 그 여자에게 자신의 성공을 알리고자 하는 가련한 의도는 어찌보면 속물스럽게 볼 수 밖에 없는 이 인물에게 웬지모를 측은함을 자아내게 했다. 사실 누군가의 연애사 따위야 이제는 관심밖이라 쳐도, 나는 늘 어떤 한가지에 목숨을 다 바칠 정도로 온몸을 내던지는 것에 대한 강렬한 애착, 동경이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설령 환상, 망상 따위라고 해도 무엇을 간절하게 쫓는 사람만큼 인간적인 것이 또 있을까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그러나, 소설의 결말은 아쉽게도(혹은 당연하게도) 비극이다. 개츠비는 허망한 죽음으로 자신의 환상이 쌓아올린 신기루같은 성공을 뒤로하고 어이없는 죽음을 맞게 된다. 어쩐지 쓸쓸하다. 하지만 개츠비의 인생을 어느 정도는 진심으로 이해했던 닉이 존재했기에 그의 죽음이 허망하지만은 않다는 생각을 해본다. 심지어 나는 이 책을 다 읽고 보통은 잘 보지 않는 책뒤의 작품해설까지 꼼꼼히 읽었다. 읽다가 재밌는 부분이 있어 잠시 옮겨 보면 이 소설은 '개츠비적(gatsbyesque)'이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어 냈다고 한다. 뜻은 낭만적 경이감에 대한 능력이나 일상적 경험을 초월적 가능성으로 바꾸는 탁월한 재능을 가리킨다고 되어있다. 크게 달라질 것 같지 않은 내 삶에 '낭만', '경이', '초월적 가능성'같은 비현실적인 단어들을 배치해보며 잠시나마 달콤한 꿈에 젖어 본다.

개츠비의 대저택과 연일 벌어지는 화려한 파티에 대한 묘사가 인상적이었다. 마지막 부분에 개츠비가 죽은 후 달라진 사람들의 태도를 묘사하는 부분 또한 기억에 남는다. 이제 두번만 이 책을 더 읽으면 나는 하루키의 친구가 될 수 있는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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