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인생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34
오르한 파묵 지음, 이난아 옮김 / 민음사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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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일요일 서점에 갔다가 이 책을 펴들었다. 그리고 읽은 첫문장..  

"어느 날 한 권의 책을 읽었다. 그리고 나의 인생은 송두리째 바뀌었다."  

이 문장을 읽고 이 책을 안사가지고 서점을 나올 수 없었다. 그리고 읽었다. '새로운 인생'이란 이름의 카라멜을 까먹듯 나도 카라멜 하나 입에 물고 이 책을 읽으며 아니 이 책이 아닌 다른 어떤 책에서라도 새로운 인생을 찾을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랬던 때가 있었다. 어쩌면 지금도 그러할지 모르고. 이 책의 주인공 오스만이 그랬던 것처럼 근원적인 것, 절대 진리, 순수에의 갈구로 책들을 찾아 헤매이는 나날이다. 하지만 이 현실이란 세계에 그런 절대적인 세상은 없다. 절대란 것은 책 속에서만 존재하는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자난을 그리워 하며 오스만은 계속 해서 책을 읽는다. 스스로를 책벌레라 부르며 책을 읽는다. 책속에서 오스만은 어떤 절대적인 세상을 발견했을까. 오스만의 일생을 통한 책읽기를 보면 간절하게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한 대체의 대상으로서 책을 생각하게 된다. 자난과의 사랑을 이룰 수 없어 그는 계속 책을 읽는다. 어쩐지 내 모습과도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이책은 '책'이란 존재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사랑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사랑에 관한 이야기는 별로 흥미있어 하지 않지만 이 책에서 나오는 사랑은 다른 주제들과 잘 어울려 애틋함을 느끼게 했다. 오르한 파묵의 소설은 처음이다. 처음만난 책치곤 굉장히 흡족하다. 내가 만약 나중에 터키란 나라에 가게 된다면 그 이유는 파묵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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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와 런던의 밑바닥 생활
조지 오웰 지음, 신창용 옮김 / 삼우반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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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의 ‘밑바닥’이란 단어가 내 시선을 사로잡았다. 읽어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5년도 넘은 것 같다. 그 사이에 개정판이 나왔다. 파리와 런던에서 조지 오웰 스스로가 3년 정도 접시닦이, 부랑자로 생활하면서 그 경험을 바탕으로 쓴 소설이라고 한다.
 가난함이라고 했을 때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은 배고픔이다. 하루에 딱딱한 빵 두 개와 마가린, 홍차로 연명하는 삶이 어떠할지 짐작조차 되지 않는다. 요즘 우리는 살을 빼기 위해 굶으면 굶었지, 먹을 것이 없어서 굶는 경우는 드물 테니 말이다. 초반에 배고픔에 대해 묘사하는 부분에서는 극심한 고통이 느껴진다. 이런 일이 일주일만 지나도 사람은 장기 달린 배에 지나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묘사된다. 먹지 못하니 당연히 의욕이 없어지고 누워있게 된다. 무력감이 찾아오는 것이다.
 먹기 위해서는 일을 해야 한다. 일을 해야 돈을 벌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자리를 구하는 것조차 쉽지 않다. 일자리를 구하러 하루에도 몇십 킬로씩 걸어 다녀야 한다. 차비가 없기 때문이다. 겨우 구한 접시닦이로서의 생활은 하루에 17시간 노동이라는 인간이하의 삶을 보여주는데 이 부분이 꽤 자세히 묘사된다. 어느 날 밤 주인공의 방 창가에서 살인사건이 일어나지만 너무 피곤한 나머지 사람이 죽었군 하고 바로 잠들었다는 부분에서 노동의 강도가 어느 정도인지 짐작하게 해준다. 1920,30년대 당시 유럽의 호텔의 시스템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읽을 때는 상당히 재밌었다. 접시닦이 일을 끝내고 영국으로 간 주인공은 부랑자 생활을 하게 된다. 구빈원에서 겨우겨우 생명을 연장하는 수준의 생활이 시작된다. 한 구빈원에서 한 달에 한번 이상을 머물 수 없기 때문에 부랑자들은 다른 구빈원으로 유목민처럼 이동해 다닌다. 불결한 위생 상태나 그로인해 얻은 병 등은 말해 무엇하랴. 당장 서울역으로만 가도 우리는 그분들을 볼 수 있을 테니.
 거리의 걸인들을 보면 일할 의지조차 없는 한심한 사람들이라고 보통 생각한다. 하지만 일을 하고 싶어도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서, 혹은 사회구조가 그들이 자립할 수 없도록 만드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시대나 공간은 다르지만 읽는 내내 남일 같지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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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89
장 폴 사르트르 지음, 정명환 옮김 / 민음사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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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을 알게 된 건 지난 겨울에 읽은 박홍규의 책에서였다. 아버지 없이 유년을 보낸 사르트르가 자신의 유년을 철저히 부정하며 자신에 대한 쓴 이야기라는 문구에 혹했었다. 누구에게나 유년은 추억하기에 가장 아름다운 시절로 미화되기 마련이다. 무수히 스쳐간 과거라는 시간 속에서 유년이 차지하는 무게는 그 사람의 온 생애를 좌우할 정도로 큰 역할을 하게 마련인데 이 유년을 부정했다니 궁금하지 않을 수가 없다. 

 책은 크게 '읽기','쓰기'로 이루어져있다. 사르트르의 실존적 개념이 나와서 읽기가 쉽지는 않지만 수많은 일화 형식으로 씌여져서 때론 전율하며 읽기도 했다. 아버지가 없이 조부모와 어머니와 함께 지낸 사르트르는 자신의 존재를 입증하기 위해 자기기만을 했다고 말한다. 자신의 설 자리를 입증하고자 열살짜리 꼬마가 책을 읽어가며 때론 글을 써가며 자신을 규정해나간다. 그 존재를 정당화하려는 욕구때문에 사르트르는 문학을 절대적인 것으로 간주한다. 현실이 아니라 상상을, 사물이 아니라 말을, 생활이 아니라 허구를 섬긴 병을 해설에서는 '문학병'이라고 한다는 설명이 나온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책의 대부분의 내용은 사르트르의 상상, 생각들이다. 거의 내깔려쓰다시피 말들이 줄줄이 이어져나온다. 조부의 서재에서 세상의 모든 글을 삼킬 것처럼 독서에 몰입하기도 하고, 상상의 인물을 만들어 소설을 쓰며 신으로서의 자신의 위치를 확인하기도 한다.  

 사르트르는 부조리한 삶일지언정 성실해야한다고 했다. '미래의 시점에서 거꾸로 보기'라는 관점을 취했을 때 지금의 불행 역시 그 의미를 가지며 인과의 사슬로 얽혀 설명이 되고 정당화 된다. 내 인생은 해피엔딩일 것이기 때문에 현재의 불행은 두렵지 않다고 해석하는게 맞는지 모르지만 나는 그렇게 받아들였다. 내가 이 책에서 얻은 가장 큰 의미이다.  

 이 책을 읽으며 정말 이 사람 대단하구나 하는 생각뿐이다. 더 이상 말로는 표현이 안될 정도로. 그가 2013년의 독자를 상정하고 말하는 부분이 나온다. 그의 말대로 그는 60kg짜리 종이가 되었고, 사람들은 그의 책을 읽으며 그를 만나고 있다. 그의 뇌를 한바탕 들쑤시고 다녔다는 생각과 동시에 나역시 그처럼 자꾸 상상과 생각속에 살고 있는 것 같아 불안하다.  

 책의 말미에 거장은 자신은 재능이 없는 작가라며 이와 같은 말을 남긴다.  

 내 광기 중에서 마음에 드는 것은 그것이 첫날부터 나를 엘리트의 유혹에서 지켜 주었다는 점이다. 일찍이 나는 재능의 행복한 소유자라고 자처해 본 적이 없다. 나의 유일한 관심은, 적수공권 무일푼으로, 노력과 믿음만으로 나 자신을 구하려는 것뿐이었다. (생략) 나는 장비도 연장도 없이, 나 자신을 완전히 구하기 위하여 전심전력을 기울였다. (p.272)

 위대한 저작들을 남긴 최고의 지성은 그 과정들이 자신을 구원하기 위한 것이었으며 그런 자신은 진정한 인간이었다고 겸손하게 말한다. 고개가 저절로 숙여지는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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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국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61
가와바타 야스나리 지음, 유숙자 옮김 / 민음사 / 200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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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 다 가기전에 그러니까 봄을 맞이하기 전에 <설국>을 읽었다.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눈의 고장이었다. 밤의 밑바닥이 하얘졌다. 신호소에 기차가 멈춰 섰다.  

이 첫문장만으로도 얼마나 이 책을 읽고 싶게 만드는지.. 또 작가는 이 첫문장을 고르기 위해 얼마나 애를 썼을지. 눈 덮힌 마을에서 게이샤로 살아가는 고마코와 물려받은 재산으로 호위호식하며 하릴없이 살아가는 시마무라의 이야기다. 일년에 한번 고마코를 보러 찾아오는 시마무라의 심리와 그를 기다리는 고마코의 감정묘사가 뛰어나다. 그렇다고 이 소설을 사랑에 관한 소설로 보기에는 어딘가 모자란 감이 있다. 고마코가 시마무라의 무심함에 대해 떼를 쓰는 장면이 여럿 나오는데 어딘가 수백년전의 고어처럼 읽혀져 어색함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오히려 눈으로 덮힌 추운 마을의 정경, 그렇다, 추위를 계속 생각하게 되고 정말 읽고 있노라면 발이 시려운 것 같은, 말하자면 겨울의 이미지를 정말 잘 포착한 소설이라고 하는 것이 맞겠다. 마지막에 고치창고에서 불이 나 요코가 죽어가는 장면은 추운 겨울과 불의 이미지를 대조적으로 이미지화하여 강렬한 인상을 주며 소설의 끝을 냈다. 일본어로 직접 읽었다면 문체의 아름다움을 제대로 느낄 수 있을텐데 아쉽다.  

고마코가 읽은 책의 목록을 정리해두는 장면을 읽으며 풋 웃었는데 앞으로 빨래할 빨래감까지 개어두는 깔끔한 이미지 역시 눈의 이미지, 차갑고 정결한 이미지와 잘 어우러지는 것 같았다. 환경이 사람을 만드는 걸지도.  

일기 이야기보다 한결 시마무라가 뜻밖의 감동을 얻은 것은, 그녀가 열대여섯 살 무렵부터 읽은 소설을 일일이 기록해 두었고 따라서 잡기장이 벌써 열 권이나 된다는 사실이었다.  

감상을 써두는 거겠지?
감상 따윈 쓰지 않아요. 제목과 지은이, 그리고 등장인물들 이름과 그들의 관계 정도예요
그런 걸 기록해 놓은 들 무슨 소용있나?
소용없죠
헛수고요
그래요 하고 여자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밝게 대답했으나 물끄러미 시마무라를 응시했다. (p.38) 

어쩌면 소용없고 헛수고인 일에 몰두할 수 있는 순간이 사람이 가장 순수해지는 시점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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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리오 영감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8
오노레 드 발자크 지음, 박영근 옮김 / 민음사 / 199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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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자크의 이 책을 언젠간 기필코 읽으리라 결심했고, 짝짝짝 다 읽었다. 이 책을 읽어야겠다고 마음먹은 건 정혜윤의 책에서 공지영이 추천한 도서였다고 기억(아닐수도 있다..)된다. 그런데 얼마전 오래전에 쓴 페이퍼를 보다가 <발자크와 바느질하는 중국 소녀>를 읽고는 발자크에게 관심이 생겼다고 써놓은 걸 발견했다. 잊고 있었는데 그러니까.. 이 책을 읽으려는 전조증상들이 있어왔던 것! 

그런데 대략 400페이지로 두꺼운데 반정도까지는 정말로 지루했다. 보케르부인의 하숙집에 사는 등장인물들의 내력이 하나둘 나온다. 그중에서도 보트랭의 장광설은 정말 길었다. 사실 제목만 보고는 고리오영감이 작중화자일꺼라 짐작했다. 그러나 주인공은 으젠이라는 법대생이다. 그 역시 하숙생으로 파리에서 사교계에 진출해 성공해보려는 젊은 가난한 청년이다. 하숙집에서 고리오영감을 알게 되고 그의 두 딸중 델핀부인을 구실삼아 한 밑천 잡아 성공해보겠다는 뭐.. 대략 그런 내용이다. 그런데 중간쯤을 지나서 급작스럽게 소설이 재밌어졌다. 알고보니 보트랭은 탈옥수였고 그를 잡으려는 경찰들은 하숙집 노처녀인 미쇼노를 통해 그를 체포하기에 이른다. 으젠과 고리오영감의 유대, 빅토린을 으젠과 짝지어지려는 보트랭의 의도, 파리 사교계의 부패한 관행등등이 구석구석 그려진다. 안타깝게도 보트랭이 잡힌 뒤 뭔가 더 있지 않을까 했는데..그게 끝이었다. 여기서 김이 조금 샘.  

고리오영감은 딸들에게 그의 인생을 통해 헌신하지만 불우한 노년을 맞아 결국 죽게 된다. 가난한 아비를 돌보기는 커녕 돈을 빼앗으려 두 딸은 비도덕적인 행동들을 한다. 델핀부인을 사랑하려고 하지만 그녀의 이중적인 태도에 으젠은 질려버린다. 이런 모습들을 뒷부분에 처절하게 묘사하는데 그놈의 돈이 뭔지 고리오영감의 장례를 치르는 순간까지도 보케르부인은 그에게 하숙비를 받아내려 하고, 장례식 절차의 모든 순간엔 돈이 필요한데 그 고통을 으젠 혼자 감당하기에 이른다. 가난과 돈.. 이 책을 읽고나서 정말 처절한 인상이 남았다. 소설을 읽고 나서 허!정말 재밌군, 하는 경우는 빠른 스토리 전재, 그 이전엔 한번도 보지 못한 반전 등등 여러가지 경우가 있는데 이 소설은 그런류는 아니지만 강렬한 인상을 남기기에는 충분했다. 대가는 역시 다르다는 생각을 다시 한번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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