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과 6펜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8
서머셋 몸 지음, 송무 옮김 / 민음사 / 200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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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개성에는 사람을 따분하지 않게 하는 무엇인가가 있었다. 성실성 때문이었을까. 그는 파리를 처음 보면서도 별로 감격해하는 것 같지 않았다. 그에게는 낯선 풍경일 텐데도 그다지 놀라는 기색 없이 덤덤히 받아들이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파리를 수없이 많이 가보았지만 갈 때마다 늘 마음이 설렌다. 파리의 거리를 걷노라면 뭔가 모험을 해보고 싶은 마음에 몸이 근질근질해진다. 그런데 스트릭랜드는 아무런 변화 없이 평온하였다. 지금 돌아보면 그는 자신의 영혼을 어지럽히고 있던 영상 말고는 아무것도 눈앞에 보이지 않았던 것 같다. -71쪽

삶의 전환은 여러 모양을 취할 수 있고, 여러 방식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 어떤 이들에게는 그것이 성난 격류로 돌을 산산조각내는 대격변처럼 올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또 어떤 이들에게는 그것이 마치 방울방울 끊임없이 떨어지는 물방울에 돌이 닳듯이 천천히 올 수도 있다.-7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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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87
나쓰메 소세키 지음, 윤상인 옮김 / 민음사 / 200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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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쓰메 소세키의 <그 후>는 <산시로>,<그 후>,<문>으로 이어지는 3부작 중 중간에 해당한다. 나는 이 사실을 모르고 어쩌다가 중간을 가장 먼저 읽게 되었는데 이 소설 하나 만으로도 완성된 하나의 작품이므로 뭐.. 괜찮다고 생각한다. 다이스케는 서른살이 되도록 경제적으로 독립하지 않은 채 거기다가 결혼을 한 것도 직업이 있는 것도 아닌 상태이다. 집안에서는 결혼을 하라는 압박이 심하다. 아버지는 물론 형에 형수까지 가담한 상태다. 그런 그에게 대학시절부터 친구인 히라오카와 그의 아내 미치요가 찾아온다. 미치요는 그 둘의 절친의 여동생이다. 화근은 자신이 사랑하고 있던 미치요를 무슨 객기로 친구와 결혼하게 만들었다는 것. 그것으로 끝났으면 좋았으련만 이제와서 자신이 미치요를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도덕적으로 번민에 빠진 다이스케는 미치요를 책임지겠다며 히라오카에게 말하고 그와 의절을 하게 된다. 소설은 더 이상의 결론도 보여주지 않은 채 답답하게 끝나버렸다. 아마도 다음 소설을 보면 알게 될 수 있는 듯하다. 평소에 우유부단하고 돈을 벌기 위한 노동을 경멸하는 다이스케는 어떤 인간이라고 할 수 있을까. 소설의 중간에 잠깐 나오는데 다이스케가 매사에 우유부단한 것은 모든 면을 고려할 줄 아는 융통성을 지녔기 때문이라는 이유가 나온다. 어쩌면 그러한 다이스케의 성격에 비추어보았을 때 미치요를 책임지기로 한 것도 본인의 강력한 의지라기 보다는 상황(결혼을 하라는 집안의 압력 등)이 그렇게 만든 것이 아니었을까하는 추측을 해본다. 인간은 상황에 의해 규정되는 존재라는 생각에 점점 더 동조하게 된다. 그런 인간의 심리를 매우 잘 포착하고 그려낸 나쓰메 소세키의 시선에 감탄을 하게 된다. 어쩐지 현실에서는 다이스케처럼 용감한(?) 고백을 하는 자는 아마도 드물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이 보다는 다이스케의 고백을 듣는 히라오카의 절제되지만 무너지는 심정에 공감을 할 사람이 아마도 더 많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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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반 데니소비치, 수용소의 하루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3
알렉산드르 솔제니친 지음, 이영의 옮김 / 민음사 / 199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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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 당신의 현실이 고통스러운가? 그렇다면 이 책을 읽어라. 수용소라는 추위,배고픔,노동으로만 이어지는 현실 속에서도 이반 데니소비치는 자신의 규칙으로 하루하루를 만들어간다.  

 이 책을 읽으면서 생각했다. 살아가는데 어쩌면 '희망'따위는 필요치 않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하루 세끼 밥을 먹고 몸을 뉘울 지붕이 있는 집이 있고, 할 일이 있다면 그 어떤 곳에서도 인간은 살아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 단순히 목숨을 연명하는 것뿐 아니라 그것도 아주 품위있게 살아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는 오늘 어떤 작업환경에서 얼마만큼의 일을 하고, 얼마만큼의 음식을 먹을 수 있는가,를 생각하는 것 뿐이다. 또 수용소에서 말도 안되는 꼼수를 부려서 빵 한덩이를 더 얻거나 담배한가치를 얻을 수도 있다. 여분으로 생긴 빵은 침대 구석에 숨겨놓으면 된다. 자기만 아는 곳에 그만 쓸 수 있는 연장도 숨겨 놓았다. 소포가 많이 오는 사람이 부럽기도 하지만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따로 있으므로 개의치 않는다.  

 가장 눈물나는 장면은 여분으로 얻은 빵들을 언제 먹을까 고심하는 부분이었다. 빵 껍데기로 바닥에 남은 국의 찌꺼기까지 박박 핥아 먹는 장면은 어떻고. 모든 것은 그만이 세운 수용소에서의 규칙에 의해 돌아가고 있는 것이다. 이런 면에 있어서 자유를 박탈당한 수용소라는 제한된 공간은 그의 의지에 비하면 별로 큰 제약은 아닌 듯 하다.  

   
  지금 슈호프는 사백 그램의 빵과 이백 그램의 빵을 차지한 것이다. 게다가 침대 시트에 이백 그램짜리 빵이 하나 더 있다. 더 이상, 뭘 더 바랄 것인가? 이백 그램은 지금 처치하기로 하자! 그리고 내일 아침에 배급받을 식사와 이백 그램짜리 빵을 더 먹기로 하자! 그리고 내일 작업하러 나갈 때, 사백 그램을 더 가지고 가기로 하자. 그야말로 풍성하다!(p. 184)    
   

 매순간에 집중하는 이반 데니소비치는 열악한 환경에서 작업을 하면서도 '집중'이 주는 희열을 느낄 줄 안다. 이것이야 말로 몰입의 순간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이반은 벽돌을 쌓는 기술에 있어서는 다른 어떤 사람보다 노련하다. 반장도 그런 그의 실력을 인정해준다. 그렇다고 이반이 수용소에 들어오기 전에 벽돌쌓는 기술에 대해 배웠던 것도 아니다. 그냥 그런 기술이 필요했고 그런 필요에 의해서 기술을 익힌 것이다.   

   
  두 가지 일을 손으로 익힌 사람이라면 열 가지도 할 수 있는 법이다.(p.121)   
   

 일에의 몰입은 추위도 잊게 한다. 빨리 일을 하려고 서두르면 추위에도 불구하고 몸에서는 땀이 흐른다. 발가락이 시린것도 잊어버릴 정도다. 심지어 작업시간을 넘겨서 까지 하다가 된통 혼나기도 한다. 이것이 과연 수용소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란 말인가. 무엇엔가 집중하는 것만큼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 것도 없다는 것을 새삼깨닫게 한다.  

 이반 데니소비치에게는 다른 사람의 특성을 잘 알고 배려하거나 적당히 무시하는 등 처세의 능력도 볼 수 있다. 가끔은 인간적이기까지 하다. 이 소설에는 다양한 특징을 가지는 사람들이 나오는데 수용소라는 제한된 공간이 아니더라도 만날 수 있을 법한 사람들이다. 알료쉬카에게 체자리에게서 얻은 비스킷을 나눠주는 장면은 코 끝이 찡하다. 비스킷 하나도 각박한 수용소에서는 사람사이의 온기를 확인하는 매개가 된다.  

   
 

-알료쉬카! 이거 받아!  비스킷을 그에게 한 개 내민다.
알료쉬카가 빙긋 웃는다.
-고마워요, 당신이 먹을 것도 부족할 텐데.........
-어서 들어!
 나 같은 놈이야 없으면, 또 뭘 해서든 벌이를 할 수 있으니까 상관없는 일이다. 그런 다음 슈호프는 소시지를 깨문다. 지근지근 씹어 먹는다. 향긋한 고기 냄새가 난다. 고깃물! 진짜 고깃물이 입안에 녹아든다. 아, 그리고 그것이 목구멍을 지나 뱃속으로 들어간다. (p.207)

 
   

  행복은 별다른 방법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옆 사람에게 나누어줄 비스킷이 있고, 나에게는 여분으로 먹을 소시지 하나가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행복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면에 있어서 우리는 이반 데니소비치의 사는 법을 배워야 하는 것은 아닐지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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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에서 1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26
잭 케루악 지음, 이만식 옮김 / 민음사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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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즈, 술, 마약, 여자와 함께 미국을 횡단하는 이야기.라고 요약될 수 있는 이 긴 장편소설은 딘 모리아티라는 거의 미친 젊은이에 관한 이야기다. 휴, 이 책을 5월초쯤부터 읽었는데 도무지 진도가 안나가서 빨리 읽겠다는 욕심은 좀 버리고 쉬엄쉬엄 읽었다. 이상하게도 다 읽고나니 포스트잇은 많이 붙어있다. 표시해 놓은 곳을 다시 읽어보며 딘 모리아티의 광기에 다시 취해본다. 딘과 함께 미국일주에 나서는 이 소설을 서술하는 샐은 글을 쓰는 사람인데 뭐 어떻게 먹고 사는지는 구체적으로 나오지 않는다. 오로지 중요한 것은 길 위에서 만나는 사람들이다. 정말 무수히도 많이 만난다. 히치하이크해서 차 얻어타고 또 태워주기도 하면서 엄청나게 만난다. ㅠㅠ 뜬금없이 나타났다가는 또 어이없는 이유로 사라지기도 하는 딘과 샐의 관계도 묘하기만 하다.  

딘이 삶 그자체로 본능에 살아가는 반면 샐은 좀 다르게 그려진다. 딘과 어울리기도 하지만 그에게는 이성이 살아있다.  

조가 되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그저 나였다. 이 구슬픈 보랏빛 어둠, 이 견딜 수 없이 달콤한 밤에 어슬렁거리며, 행복하고 진실된 마음으로 희열에 찬 미국의 흑인들과 자신의 세상을 바꿀 수 있기를 바랐다.  

나는 한번도 밤에 불빛 아래 가족들과 여자 친구들과 동네 꼬마들 앞에서 운동선수로서 이런 식으로 능력을 발휘해본 적이 없다. 항상 대학, 일류, 냉정한 얼굴뿐이었지, 이처럼 소년답고 인간적인 기쁨은 없었다. (2권 p.13) 

대부분의 사람들은 신이 곰돌이 푸보다 멋진 어떤 것일꺼라 생각하며 산다. 엉뚱한 곳에서 자신의 허울이 만든 신을 찾다가 인생의 종착역에 다다른다. 딘과 샐이 굉장한 속도로 미국을 가로 지른 것과는 달리 나는 거북이처럼 이 책을 읽었다. 하지만 곳곳에서 샐이 말했던 인간적인 기쁨을 느꼈다. (제목은 소설의 마지막 페이지에서 인용한 문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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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째 아이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7
도리스 레싱 지음, 정덕애 옮김 / 민음사 / 199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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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행복해지기로 작정한 두 사람이 있다. 완전한 가정을 꾸며 볼이 통통하고 명랑한 아이들을 낳아 사는 것이 이들의 행복의 척도였다. 그러한 상상에 걸맞는 궁전같은 집을 샀고 그러한 그들의 결혼생활은 순조로운 듯이 보인다. 여덟 아니면 열명이라도 나을 것이라 가족계획을 세웠고 네번째 아이까지 태어나자 어딘지 해리엇은 지쳐간다. 사람들은 이들의 생활에 비난을 하기 시작한다. 매년 크리스마스마다 많은 손님들을 초대하고 이들과 어울리는 것이 해리엇과 데이비드의 소망이었것만... 다섯째 아이, 벤이 태어나자 마자 이들의 가정은 파괴되어간다. 짐승같고, 폭력적인 벤이 태어난 것은 하늘의 저주였을까. 해리엇은 자신이 그 누구도 불가능한 행복을 바랐기 때문에 벌을 받았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자식이지만 버릴 수는 없는 벤을 저주하지만 어쩔 수 없는 모성본능으로 병원에서 구출하여 돌봐준다. 소설의 마지막 부분에 벤과 함께 어울려 다니던 패거리가 그들의 궁전같은 집을 점점 잠식하고 황폐화시킨다. 결국 두 부부는 불행의 집으로 전락한 집을 팔기로 결정하면서 소설은 끝이 난다.  

 우선 이 길지도 않은 소설을 읽으면서 한없이 불편하고 짜증이 났다. 행복을 이런 식으로 바라는 해리엇과 데이비드의 모습이 낯설었고, 이들의 가정에 벤이라는 존재가 태어난 것이 말이 되지 않는 것 같았다. 하지만 벤이 이런 폭력적인 존재로 태어난 것은 해리엇이 벤을 임신했던 시기에 이미 너무 자신들의 삶에 지쳐있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이러니컬하게도 행복을 한없이 추구했지만 스스로를 불행에 만든 것 또한 그들자신이었으므로 악마같은 존재 벤이 태어난 것에 대하여 누구에게도 한탄을 할 수는 없다. 해리엇은 점점 스스로를 죄인으로 느낀다. 그저 모성애라는 불확실한 구원만이 이 둘의 관계를 겨우겨우 이어가게 할 뿐이다. 이 소설을 여러가지 각도에서 읽을 수 있겠지만 나는 인간이 진심으로 바라는 것들이 아주 약간만 비틀어져도 정반대방향의 덫이 되어 스스로를 옭아맬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며 읽었다. 그러나 마음아픈 것은 끝내 벤을 버릴 수 없었던 엄마로서의 해리엇의 입장이다. 벤의 탄생마저도 그녀가 바란 것이므로 그 원인도 결과도 자신의 몫이었기 때문이다. 우리 인간은 모든 일의 원인이기도 하고 결과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러므로 그 모든 것을 책임지라고 하기에 우리 인간은 얼마나 나약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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