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마늘빵 > 민주주의와 한국의 노동(2)(최장집)

국가-재벌관계 역전과 완강한 보수화


신자유주의의 헤게모니 하에서 국가-재벌관계는 근본적으로 변했다. 혹자는 민주화의 효과와 시장 투명성의 원리에 힘입어 국가/정치-재벌 간의 정경유착이 현저하게 약화되면서 정치부패가 감소되었다고 말할 것이다. 그것은 옳은 말이다. 그러나 그것은 양자간 힘의 관계의 구조적 변화를 설명하지 못한다.과거 권위주의시기 국가-재벌관계는 어디까지나 국가주도의 주종관계였다. 그러나 이 양자간 관계는 역전된 것으로 보인다.


노무현대통령은 5월 17일 중소기업 관련 대책회의에서 “권력은 이미 시장으로 넘어갔다”라고 말했다. 힘의 관계는 분명 역전된 것으로 보이고, 그것은 현실을 말하는 것이라고 본다.민주화이후 한국사회의 가장 특징적인 변화는, 시장지상주의, 이를 구성하는 시장자율성 또는 시장주권, 경쟁, 업적주의, 효율성의 가치가 사회 전체의 전일적 가치로 군림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시장지상주의의 가치는 이데올로기가 된다. 이러한 시장가치는 투명성, 법의 지배, 국가의 실패, 국가 및 정치의 부패 등과 같은 부수적 가치와 규범, 상징과 인식들을 수반한다.


그것이 이데올로기가 되었다는 것은, 실제로 시장이 그러한 내용적 특성들을 갖느냐 갖지 않느냐 하는 것과 무관하게 그러한 가치들이 외재적 강제의 개입 없이도 자율적으로 재생산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민주주의와 관련하여 두 가지 중요한 효과를 갖는다.


① 시장지상주의의 가치는, 가치다원주의를 허용하지 않는 단일가치이기 때문에 사회의 모든 영역에서는 이를 잘 수행하는 결과에 따라 서열화로 자리매김 되기에 이르렀다. 그에 따라, 힘의 관계는 기업이 되고, 대기업이 되고, 5대 재벌기업이 되고, 최대 재벌기업이 되며, 그들 기업의 오너 또는 CEO가 된다.


지난 날 냉전시기에서나, 권위주의적 산업화시기에서도 그러했듯이 헤게모니적인 가치가 확립된 연후에는 다른 경쟁적인 가치들은 불온시 되고 억압되기에 이르렀다. 예컨대, 반기업정서, 반시장주의 등이 그러한 담론이다.성장주의와 시장지상주의는 동전의 양면의 짝을 이루며, 그 중심에 재벌-국가의 동맹이 위치한다. 그리고 그것이 헤게모니가 되는 것만큼 재벌이 중심이 되고 하위파트너로서 국가의 정책이 그에 봉사하는 내용이 된다.


그것은 국가-재벌관계에서 뿐만 아니라, 국가의 역할과 성격 자체를 변모시킨다. 즉 모델이 되는 재벌기업이 국가의 역할과 기능, 그리고 그 행위의 범위가 무엇인가를 정의해 주고, 국가가 해야 할 정책을 제공해 주며, 관료행정의 규칙과 규범의 모델을 제공해줌으로써 국가 그 자체를 내부로부터 변모시키는 것이다.


② 시장과 시민사회를 포함하여 사회에 대한 국가의 중심적 역할이 급격하게 약화됨과 동시에, 시민사회와 시장에서의 거대기업의 역할을 확대함으로써 한국도 이제 기업사회적 면모를 갖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그와 동시에, 대학, 언론사, 교회 등과 같이 비경제 영역에서의 조직들의 자율성이 급격하게 증대되었다. 그리고 시장의 기업조직과 사적 영역에서의 이들 자율적인 거대조직들의 연계가 또한 급격하게 확대, 강화되었다. 이는 한국사회의 보수적 질서와 헤게모니의 강화를 의미한다. 그럼으로 반대편에서 그것은 민중적 힘의 약화를 수반한다.민주화이후 계속되어야 할 민주화는 위로부터 아래로 파급되는 과정을 거쳤어야 했다. 민주정부의 선출을 중심으로 국가부문의 민주화가 선행하고, 다음에는 민주정부에 의한 개혁적인 정책들을 통하여 사회를 구성하는 하위단위, 시장의 규칙을 민주적으로 개혁하는 방법으로 민주적 가치와 규범, 규칙들은 전사회적으로 확대되는 과정이 그것이다. 그러나 민주화가 최소정의적 민주주의의 의미가 말하듯, 선거를 통해 정권을 교체하는 수준에서 정지될 때, 국가의 약화에 힘입어 사회의 헤게모니 구조는 이전보다 더 완강한 보수적 질서로 재편되기에 이르렀다.


민주정부하에서 노동의 위상


민주주의하에서 노동의 위상은 “노동 때리기”라는 말로서 잘 표현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그 이전의 “정치(인) 때리기”, “386 때리기”를 대체한 느낌이다. 오늘날 노동, 특히 노동운동은 부도덕이나 또는 폭력의 상징처럼 언론을 통해 묘사되고 일반에게 인식된다. 성장정책의 걸림돌, 시장효율성의 장애요인으로 인식된다.


삼성전자나 현대자동차가 세계시장에서 경쟁력을 과시하며 세계적 브랜드로서 한국의 국력과 위상을 드러내는 자랑스런 이미지의 반대편에는 어두운 그늘에서 국가의 위상과 더불어 이들의 발목을 잡는 하찮은 무리처럼 인지되는 것이 오늘의 노동의 이미지처럼 보인다.노사관계에서 노동이 정당한 파트너로 인정되지 못하는 것은, 권위주의시절에서나 오늘의 민주정부하에서나 차이가 없다. 그러나 그것은 동일한 것 이상이다. 정치수준과 노사관계수준에서 모두 노동운동에 대한 권위주의적인 억압장치들이 제거된 민주적 환경하에서 노동에 대한 차별과 배제가 지속되기 때문이다.


즉 노동부문에서 절차적 수준에서의 민주화는 이루었으나, 노동을 포괄하는 보편적 시민권의 확대를 통하여 실질적 수준에서의 민주화를 수반하지 못한 것이다.기업이 노동에 대해 부정적, 비판적 태도를 견지하는 것은 당연하다. 문제가 되는 것은, 개혁적인 것으로 상정되었던 민주정부의 태도이며 정책인 것이다.


우리는 현재, 민주정부의 지도자들이나, 노동행정 및 정책결정자들이 기업계의 완강한 보수적 견해와 다를 바 없는 태도에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민주정부-재벌기업 동맹의 환경하에서 노동운동이 자리잡을 여지는 매우 좁다.지난 시기, 노동에 대한 보수적 견해를 표현하는 담론으로 “노-노 대결”이라는 말이 있었다. 노동자들 사이에서의 이해관계 대립으로 노동운동이 노동의 이익을 대표하고 보호하는 역할을 방기하고 자신들의 이익을 도모하면서, 그들이 특히 노조간부들일 경우 노동운동 내 헤게모니 싸움에 몰두하고 노동귀족이 되어, 도덕성을 상실했다는 것이다. 이는 그들 스스로 만든 것이지, 기업이나 정부의 책임이 아니라는 것이다. 오늘의 민주정부 집권세력 혹은 주요 정책결정자들 사이에서 노동운동에 대한 태도와 인식은, 정부 밖의 과거 노-노 대결 담론의 연장선상에 머물러 있다.


“비정규직 법안”을 둘러싼 쟁점에 관하여


신자유주의하에서 노동운동의 틀은 1998년 2월, IMF개혁패키지를 수용한 민주정부의 노동시장유연화가 그것이다. 노사정위원회에서의 “2.6협약”은 정리해고와 근로자파견제의 허용을 핵심으로 한다. 일종의 공급측면 코포라티즘의 내용을 갖는 것이다. 그동안 권위주의시기 이래 노동운동이 이루어낸 전체성과 혹은 민주주의라면 당연히 부여해야 할 노동자들의 조직권의 확대를 인정받는 것과 노동시장유연성을 교환해야하는 협약의 틀 자체가 불균등한 것이었다.


이 불균등협약은 이후 대량해고와 비정규직의 급증으로 나타났듯이 노동의 기본적인 권익의 상실을 결과함으로써 노동운동 진영에게는 일종의 트라우마로 작용하게 되어, 협상테이블의 참여하여 문제를 개선한다는 것 자체에 대해 지극히 부정적인 두려움을 갖게 만들었다.노동운동측의 입장에서 이 딜레마는 최근의 “비정규직법안”을 둘러싼 갈등을 통해 되풀이되었다. 정부는 이슈의 내용을 정의하는 것에서 협상의 범위와 의제를 협상의 대상으로 개방하기보다, 먼저 그러한 것들을 결정한 뒤 노조의 참여를 요구했다.


예컨대 비정규직의 증가추세를 제어하는 접근이라기보다 비정규직화의 경향을 수용하고 그 위에서 비정규직의 존재조건을 합리화하자는 협상의 틀을 결정하여 제시한 것이다. 그것이 비정규직의 처우를 얼마나 개선하는 것인지 하는 문제는 그리 중요해보이지 않는다. 요컨대 핵심은 정부가 신자유주의적 노동시장유연화의 방향을 완결짓고자 하는 정책목표를 갖는다는 사실이다. 정부의 정책의도가 사전에 결정되어 있는 상황에서 협상에 참여하여 노조가 얻을 것은 다만 부분적인 교환 이상일 수 없었다.


노조는, 참여하여 작은 것이라도 얻느냐 그리고 그 과정에서 폭력적, 급진적, 파괴적 집단이 아니라 민주주의 하에서 이성적 협상의 파트너가 될 수 있다는 어떤 이미지개선의 효과를 얻느냐, 아니면 협상의제 자체를 보다 중요한 것으로 변화시키기 위해 현재의 얻을 것을 포기하고 판을 깨느냐 하는 선택의 딜레마에 놓이게 된 것이다. 이 과정에서 드러난 노조의 폭력사태는 노동운동 전체의 도덕적 위기를 증폭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그것은 노조의 문제일까?


노동운동의 위기는 민주정부, 민주주의의 위기


노동운동의 위기에 앞서 민주정부의 위기, 민주주의의 위기라는 측면에 주목하지 않으면 안된다. 이 말은 노동운동이 위기를 안고 있다는 것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문제의 근원이 정부의 노동정책, 사회정책, 경제정책에 있으며, 민주정부가 민주주의를 배반한 것이 아니라면 적어도 그 무능과 잘못된 정책의 산물이라는 점을 강조하려는 것이다.민주정부의 지도자, 노동문제의 정책결정자들은 성장률을 높이기 위해서는 기업에 이윤율을 보장해줄 수 있는 노동시장유연화를 확대하고, 그것이 고용효과를 증대함으로 사회전체에 보다 큰 이익을 가져다준다고 확신하는 듯하다.


그 확신이 매우 강한 나머지, 현 정부의 노동정책은 마치 70년대 말 80년대 초 영국의 대처정부를 연상시키는 과격함을 갖는다. 그러나 영국의 노조조합원들이 한국의 노조원들과 비교할 때, 비교할 수 없이 높은 사회보장 및 복지혜택을 향유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오늘의 민주정부의 노동정책이 얼마나 반노동적인가 하는 점을 알 수 있다.노동시장유연화와 성장 및 고용효과 간의 상관관계에 관하여 나는 경제학자가 아니기 때문에 정치한 테크닉을 보여줄 능력은 없다. 그러나 가장 기본적인 경제지표를 보는 것만으로도 정부의 노동정책이 근거를 가질 수 있는 논거 또는 그 정당성을 입증할 수 없다.


경제성장지표는 금융위기이후 1999년 이후 짧은 회복세를 보인 이래 침체, 호황, 불황을 되풀이하는 가운데서 안정적인 성장세를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가장 최근에는 지난해 4.6%의 성장률을 기록했고, 2005년 초반에도 이렇다할 상승세를 나타내지 못하고 있다. 최근 발표된 통계를 보면, 금년 1/4분기의 성장의 내수기여도가 다소 상승했다 하더라도 2.7%의 성장률에 그쳤다(한겨레, 5.21).


김유선박사의 연구결과를 따르면, 한국의 노동시장유연화는 금융위기 이후 미국보다 더 높은, 세계최고를 자랑하는 수준으로 과격하게 진행되었다(김유선, 한국노동자의 임금실태와 임금정책, pp.121-127). 세계 최고 수준의 노동시장유연화에도 불구하고 청년실업, 고용불안, 불안정한 취업 및 실업은 호전되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소수 선도적 업종에서의 재벌대기업의 성장이 눈부시고, 대기업이 사상최대의 호황을 구가하며, 수출이 사상최대의 실적을 자랑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러하다.


또한 노동소득분배율과 부가가치에서 인건비가 차지하는 비중은, 금융위기 이전인 1996-97년과 2000-2003년 사이를 비교할 때 현저하게 낮다. 노동시장유연화가 급진적으로 진행된 오늘의 상황에서 그것이 고용의 증대와 더불어 우리경제를 활성화하는데 기여했다는 아무런 증거를 찾아볼 수 없다.앞 장에서도 보았지만, 한국에서 고용을 흡수하는 것은 2001년 기준으로 86%에 이를 정도로 압도적으로 중소기업과 영세자영업부문이다. 이는 왜 고용에 있어서 산업구조의 역할이 중요한가를 말해준다. 그리고 저소득층의 구매력 증대가 또한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하지만 앞서 지적했듯이 두 부문의 상황은 절대적으로 약해지고 나빠졌다.


노동시장유연화 확대 주장, 실증적으로도 설득력 없어


노동시장유연화의 확대를 주창하는 정부의 노동정책결정자들은 항변할런지 모른다. 노동시장유연화가 낮을 경우, 해외로부터의 투자유인을 감소시키고, 국내기업의 해외투자를 증대함으로써 성장 및 고용효과를 감소시킨다고 주장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여러 연구들은, 해외자본의 국내투자란 단기적인 투기자본의 성격이 지배적이고, 산업부문에의 투자규모와 효과는 실제로 미미하다는 것을 보여준다.또한 노동시장유연화가 낮을 경우, 그것은 기업의 노동비용을 증대시켜 기업이윤에 큰 압력을 가하게 됨으로 기업은 임금압박을 피해 임금이 낮은 개발도상국으로 국내기업을 진출하려 함으로써 국내의 고용효과를 감소시킨다고 말할 수 있을른지 모른다.


그러나 국내 노동시장을 더 유연화하고 임금비용을 더 낮춰야 해외로부터의 투자유인을 늘리고 한국자본의 해외투자를 줄일 수 있다고 가정하는 것은 현실을 말하는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2003년 기준으로 전체 해외직접투자의 72%를 넘는 중국에 대한 직접투자의 경우를 볼 때, 제조업분야의 중소기업이 주축임을 본다(중소기업 64%/ 대기업 29%). 중소기업의 해외투자가 급상승하기 시작한 2001년 이래의 한국의 노동시장 유연화 정도를 고려할 때, 유연화가 덜 된 것의 밀어내는 요인 때문에 중소기업의 해외투자의 급증을 만들어냈다고 할 수 있을까? 제조업부문 중소기업의 기술수준, 대기업에 의한 수직계열화가 가져오는 수익성 압박 등의 요인과 무관하게 노동시장 유연화만으로 중소기업의 국내투자 유인을 얼마나 늘릴 수 있을까? 설령 노동시장을 더 유연화시키고 임금비용 축소를 통해 중소기업의 해외직접투자를 국내로 돌린다 해도 그것이 국내의 고용증대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칠 것인가?


그러나 노동시장 유연화가 투자유인, 고용창출에 대해서 갖는 인과적 효과를 따지기 이전에, 과연 한국의 노동시장이 지금보다 얼마나 더 유연화되어야 하는가 하는 문제가 더 절박하고 더 구체적 현실에 가까운 것은 아닐까?


민주정부의 지도자와 정책 결정자들이 '노동 죽이기'에 누구보다 앞장서


한국이 IMF위기 이후 엄청난 경제적 곤란을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2004년 기준 GDP 세계 10위, 교역량 세계 12위의 OECD 가맹국가라는 사실과 대비하여, 한국의 노동자들이 민주주의하에서 경제적 시민권을 포함하여 보편적 시민권을 여전히 부여받지 못하고 있는 현실은 한국민주주의의 커다란 치부가 아닐 수 없다.


한국의 민주화는, 핵심적인 생산자 집단으로서의 조직노동자를 평등한 사회성원으로 그리고 노사관계에서 기업의 정당한 파트너로서 인정하는, 이른바 사회통합적 의식혁명을 갖지 못했다. NL적 문제의식과는 달리, PD적 문제의식은 현실 속으로 투입되지 못한 미완의 과제로 남아 있는 것이다. 그것은 냉전반공주의와 권위주의적 산업화의 성장이데올로기가 중첩되면서 완강한 이데올로기적 헤게모니를 구축한 결과물임에 분명하다.그러므로 한국사회는 노동관련 의식에 관한 한은 철저하게 계급적이다. 한국사회의 상류층과 중산층, 나아가 한국인 일반이 노동에 대해 갖는 인식은 분명 계급적으로 차별적이다. 민주정부의 지도자들과 노동정책의 결정자들이 노동과 노동문제를 바라보는 인식 역시 이러한 이데올로기적 헤게모니에 기반한 것이다.


현 정부가 비정규직 입법화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보여준 정규직노조에 대한 인식이 그러하다.


정규직은 고용보장, 높은 임금, 높은 사내복지, 노조의 보호를 받는, 일종의 노동귀족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지나친 혜택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그들은 이 혜택을 그렇지 못한 비정규직과 나누어 갖는 도덕성을 실천해야 한다. 정규직노동자들의 임금과 혜택은 비정규직과의 분배로 사실상 하향조정되는 동안, 기업의 노동비의 부담은 결과적으로 증대하는 것이 되어서는 좋지 않다. 노동자들의 운동은 모름지기 자신의 특수이익을 추구하기보다 도덕적 운동이어야 한다. 그리고 이 도덕적이라는 의미 속에는 노동자들의 임금과 혜택은 사회적 통념의 기준에서 지나치게 높아서는 안 되고, 그들보다 못한 처지의 노동자들의 차별을 생각해 서로 공유해야 한다. 노동자들은 공익, 또는 사회 전체의 이익을 추구해야 한다. 여기에서 공익이란 노동자의 역할은 묵묵히 기업의 이윤 창출에 봉사하고, 그것이 모아져 국민경제의 성장으로 이어져야 하고, 여기에 장애가 될 만큼 높은 임금이어서는 안 된다. 그들의 이익표출과 요구는 파업이나 농성과 같은 집단행동으로 나타나거나 더욱이 폭력적이어서는 안 되기 때문에 어떤 다른 집단보다도 법의 지배에 따라야한다. 대체로 노동귀족이니 노-노대결 이니 하는 담론은 대체로 이런 내용들로 구성되어 있다.


여기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한국의 오늘의 현실에서 이러한 지배적 담론과 시각으로 노동문제를 보는 것이, 꼭 보수적인 관점만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불행하게도 그것은, 과거 그들이 민중의 편에 있었고, 그리고 지금도 그렇다고 생각하는 오늘의 민주정부의 지도부와 노동정책의 결정자들이 그러한 지배적 담론을 스스로 실천하고, 정책으로 만드는데 누구보다 과격하게 열성적이라는 사실이다. 노동에 관한 이러한 이해에 대하여 우리는 많은 질문을 갖게 된다.


1970년대 필자는 미국의 시카고에서 산 경험이 있다. 시카고 남부의 인디아나 개리시(市)의 US철강회사의 철강노조원들의 월평균 임금은 시카고에 소재하는 대학들의 교수들이나, 중고등학교 교사들의 평균임금보다 높았다. 또한 그것은 미국에 국한되지 않는다. 일본 IMF-JC 소속 기타큐슈의 신일본제철 철강노조원들의 임금은 웬만한 대기업사원들 보다 낮지 않으며, 임원들 봉급에 비해서도 큰 차이가 없다. 독일 IG Metall 노조원의 경우도 일본의 경우와 크게 다르지 않다.


여기에서 우리는 물을지 모른다. 한국의 현대자동차나 기아자동차의 정규직 노조원들의 임금은 왜 높으면 안 되는가? 회사가 이들의 자녀들에 대해 대학까지 학비를 지원하고, 이들의 가족이 의료보험혜택을 받을 때, 그것을 왜 특혜라고 생각하는가? 이들의 임금수준과 회사복지가 중산층의 범주에 들어갈 대졸사원이나 임원진 또는 대학교수들의 그것과 비교되지 않고, 왜 비정규직 노동자나 중소기업의 영세사업장 노동자들의 그것에 비교돼야 하나? 정규직노동자들이 중산층으로 상승이동을 하면 잘못된 것인가? 비정규직노동자들의 열악한 처우를 왜 정규직 노동자들이 책임져야하나? 그것은 국가와 기업이 해야 할 일이 아닌가?


기업의 오너, CEO, 경영진, 정부의 공직자, 중산층, 대학교수, 교사 등, 다른 집단이나 계층에 비해 노동운동은 왜 특별히 도덕적이어야 하나? 그들이 특수이익을 추구하는 것만 왜 특별히 경제성장에 악영향을 미친다고 하나? 이렇게 말한다고 해서, 혹은 선진국의 노조원들이 향유하는 경제적 시민권을 요구한다고 해서 그것이 그리 과격한 기준일까?


나아가 민주정부의 노동정책이 시장과 사회공동체의 가치를 동시에 추구해야 한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잘못된 것인가 혹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것인가? 정부의 정책이 총량적 경제성장만을 지향하기보다 평균적 공동체성원의 경제적 조건이 개선되는 것을 동반하는 성장을 지향하는 것을 상상할 수는 없을까?


노동운동의 과제


필자는 민주주의하에서 국가-자본-노동의 관계를 정립함에 있어, 그것이 과거 권위주의 산업화 시기에서와 마찬가지로 신자유주의적 환경하에서도 노동을 배제하는 동일한 구조를 재생산하는 것의 일차적인 책임이 민주정부에 있음을 보았다.


재벌대기업 노조를 비판하기 이전에, 오늘날 노동의 위기로 나타나는 현상은 먼저 민주주의, 민주정부, 국가의 역할과 관련된 것이다. 그러나 이 말이 노조, 노동운동에 아무런 책임이 없다는 것을 뜻하지는 않는다.


여기에서 필자가 강조하는 초점은, 도덕적인 접근, 열정을 불러일으키는 방법으로서는 오늘의 노동문제를 이해하고, 풀어갈 수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노동운동이 다음과 같은 주요문제를 해결하지 않는다면, 미래는 매우 비관적이라는 것이다.


① 노조는 "집합행위의 문제" (collective action problem)를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된다.


신자유주의 독트린에 따른 노동시장유연화상황하에서 노동시장의 분화는, 이른바 정규직/비정규직 구분으로 나타나는 인사이더-아웃사이더 간의 경계를 더욱 첨예하게 만들었다. 이는 하나의 대표적인 구분에 불과하다. 또한 대기업-중소기업, 중소기업에서의 여성노동자, 외국인노동자 등은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다. 노동이익을 대변하는 하나의 조직 내에 이들의 이익이 어떻게 대표될 수 있나? 노조의 이념, 정책, 노조의 조직형태 등에서의 변화가 요구되는 상황이다.


② 조직기반과 조직형태. 노조의 중심적 조직기반은 재벌기업 대규모 사업장의 정규직이며, 따라서 한국의 노동운동은 이들을 중심으로 한다는 특성을 갖는다. 이들의 발전 궤적이 일본의 IMF-JC와 같은 회사협력적 노조의 성격으로 나아갈 가능성은 매우 크고, 그것은 자연스러운 것인지도 모른다. 이와 병행하여 비정규직노조, 중소기업사업장, 여성노동자들로 조직기반을 확대하는 것은 매우 필요하다. 현재의 기업별노조와는 별도로, 이들을 지역별, 산별형태로 묶는 것이 필요하다.


한국의 노동운동이 구조적으로 제약되는 것은, 산업구조에 있어서 영세자영업의 규모가 다른 나라에 비해 극히 크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민주정부의 산업정책에 있어 산업구조를 전환하는 것의 우선순위는 매우 중요하며, 이는 또한 노동운동의 앞날을 위해서 매우 중요하다.


③ 이러한 구조적 결함을 보완하기 위하여, 노동운동은 노사관계에 있어 법, 제도의 형태로 국가/정부의 역할을 증대시키는 방향으로 접근하는 것이 극히 중요하다.


프랑스 사례는 이에 대한 한 모델사례를 제공한다. 즉 노조조직률은 10%대로 한국보다 오히려 낮지만, 단체협약적용율은 90%에 이르러, 기업-노조간 선도적 단체교섭이 사실상 전체 미조직 사업장에도 적용되고 있다. 한국에서도 선도적 단체교섭이 다른 사업장에도 확대, 적용될 수 있도록 하는 법적, 제도적 장치나 정치적 협약이 필요하다. 이에 대한 자료는 다음 테이블에서 발견된다. 이 표가 말하는 것은 조직률은 중요하지만, 결정적으로 중요한 것은 국가/정부/정치의 역할이다.


④ 선거경쟁의 영역에서 노조의 힘이 약하기 때문에, 현재의 상황에서 이를 선출된 정부에 강제하기란 어렵다. 그러므로 조직노동운동은, 미조직사업장으로 조직을 확대하는 노력 못지않게, 아니 그보다 가장 높은 우선순위를 어떻게 표를 조직할 것인가에 두지 않으면 안된다.


노동운동의 제일의 전략/정책의 우선순위는 정치시장에서 지지기반을 확대하는 것이다. 한국의 보수양당이 팽팽한 표의 균형을 만들 것이라는 전망 때문에, 노동이익을 대변하는 0.5당의 존재는 선거결과 뿐 아니라 향후 정부정책의 향방에 중요한 방향타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⑤ 이는 두 가지 수준에서의 노동운동의 방향을 규정한다.


하나는 노동운동의 이념과 정책/전략은 최소강령적 노선이 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이다. 즉 그것은 노동자들은 물론 광범한 중산층 부문을 포괄할 수 있는 온건현실주의 노선을 갖는 것이다. 민주주의의 제도적 틀 안에서 정치의 중요한 행위자가 될 수 있어야 한다. 그 핵심내용은 노동이 조직노동운동만의, 고전적인 생산직 노동자만의 관심사가 아니라, 노동이 생계의 중심적 수단이 되는 모든 사람들의 관심사가 되도록 해야 한다. 다른 하나는, 이 라인위에서 정당-노조간의 새로운 관계정립이 요구된다. 양(兩)조직은 상대적 자율성을 가져야하겠지만, 노조가 중산층도 수용할 수 있는 정책과 이념을 통하여 정당을 지원하는 것도 필요하다.


공동체적 시장경제를 향하여


1) 한국민주주의의 최대의 과제는 선출된 민주정부가 어떻게 실질적 민주주의를 진전시킬 수 있도록 하게 하는가, 이를 위해 어떻게 사회부문과 연결될 수 있도록 만드는가 하는 문제이다.


민주정부의 경험이 실질적 민주주의발전에 기여하지 못한 것은, 두 측면에서 인데 강력한 신자유주의적 헤게모니에 대응하는 현실적인 이념과 정책대안을 갖지 못했다는 점과, 이를 정치적으로 뒷받침할 수 있는 사회적 세력화의 중심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절차적 수준에서의 민주주의가 공고화되었다 하더라도 민주주의에 대한 불만은 증폭되고, 그 사회적 기반이 오히려 약화되는 현상을 만들어낸 것이다.


민주정부의 경험은, 그들이 스스로 헤게모니에 흡수, 통합되기를 선택한 결과, 선거 시의 지지와 열망의 투입은 선거후 다수정당과 집권정부가 된 이후 기존의 현상유지가 되풀이되는 사이클을 만들어냈다.물론 민주화가 완전히 무용했던 것은 아니다. NL적 문제의식은 온건한 민족공조를 실현하면서, 탈냉전과 평화의 가치를 공고히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민주화이후 현재까지의 경험을 통하여 특정의 민주정부와 정책들이 민주주의적이고, 개혁적인 내용을 지녔을 때는 NL적 문제의식과 PD적 문제의식이 병행할 때에 한하였다.


양자(兩者)가 배척적이었을 때는 정책의 민주적 내용은 후퇴하거나, 심지어 반동적 면모를 드러냈다. 이것은 왜 필자가 실질적 민주주의의 진전을 위해서는 PD적 문제의식이 권력과 정책 속으로 투입되어 이 양자가 동시발전하는 것이 필수적인가를 말한 이유이다.


2) PD적 문제의식의 핵심은, 성장에 균형을 맞추는 노동의 가치에 대한 것이다. 앞에서 필자는 혁명적 이념으로서의 PD적 문제의식이 현실에서 整理-실현되는 것에 대해 말했다.


민주주의는 갈등하고, 경쟁하는 사회세력의 존재를 전제로 하고, 그 정당성을 인정하는 다원주의에 기초하면서, 그것은 혁명이 아니기 때문에 어느 일방의 전일적 가치와 힘이 지배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 정치체제이다.


시장-효율성-경쟁을 중심원리요 가치로 삼는, 그럼으로써 인간의 노동의 가치가 발전의 한 수단, 성장을 위한 하나의 요소이상의 의미를 지니지 않는 공리주의적 원리에 대응하여, 공동체의 가치, 인간의 근원적 가치, 그리고 노동의 보편적 가치 등, 독립적인 가치를 증진함으로써 양자가 균형을 맞추면서 공존하는 것이다.


3) 그러나 공동체적 노동의 가치가 다만 이념과 가치의 문제가 아님은 물론이다. 그것은 구체적으로 정책으로 구현되어야 하며, 이를 형성하고 실천할 수 있는 사회적, 정치적 세력의 발전을 필요로 한다.


정책의 수준에서 그것은, 노동계층을 포함하는 민중들에게 보편적인 경제적 시민권이 부여되는 것, 그리고 또한 상당한 산업구조의 변화가 아니고서는 어려운, 중소기업을 중심으로 한 생산 및 고용체계를 발전시키는 일을 포함한다. 중소기업을 중심으로 성장동력을 구축하는 것이 그 핵심이란 것이다. 그리고 사회적, 정치적 세력화의 수준에서는, 노동자와 그들의 운동이 민주주의라는 제도적 틀 안에서 사회적 힘의 균형추 내지 중심세력 중의 하나로 역할 할 수 있는 것을 말한다.


4) 절차적 민주주의로부터 또는 그것을 기초로 실질적 민주주의를 발전시키는 일이, 현재와 같은 선거경쟁과 대표의 체계를 통한 대의제 민주주의에 의해 가능할 수 있는가?


실질적 민주주의를 위해서는 참여의 범위가 보다 확대되고, 이를 통해 민중적 힘의 인풋이 정치과정 내로 크고 넓게 가능할 때 가능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참여와 시민사회에서의 운동의 중요성을 말한다.


참여는 투표를 통한 선거에의 참여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실제의 노동현장, 작업현상, 직업현장인 사회의 하위조직과 수준에서 성원들의 폭 넒은 참여를 말한다. 그리고 운동은, 제도가 갖는 본래적 보수성, 즉 경직화와 일상화, 민중적 힘을 제약하는 경향성 때문에 민중적 힘이 정치과정으로 투입되는 중요한 채널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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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마늘빵 > 민주주의와 한국의 노동(1)(최장집)

 

민주주의와 한국의 노동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창립 10주년 기념 심포지엄 기조발제문-


                                  최장집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장, 고려대 정외과 교수)


두 개의 민주주의


민주화이후 한국민주주의가 퇴보했다고 한다면, 그것은 사실과 다르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선거는 주기적으로 공정하게 시행되고 있으며, 정책결정 과정에서의 시민참여의 공간은 크게 확대되었다.여당과 야당간의 관계가 역전되는 정당간의 정권교체, 이른바 “수평적 정권교체”도 이루어졌고, 그에 따라 광범한 엘리트 교체도 가능해졌다. 또한 지방자치의 발전과 더불어 권력의 공간적 분권화와 지방수준에서의 정치참여의 폭도 크게 확대되었다. 뿐만 아니라 민주화는 그동안 정치에 있어 부패의 원천으로 작용한 정경유착을 완화함으로써 정치권에 있어 부패의 수준을 현저하게 떨어뜨렸다.아직도 문제가 크다면, 정당의 제도화 수준이 낮고 정당의 사회적 기반이 약하며, 그 결과 사회의 이익과 갈등을 잘 대표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일 것이다.


그런 점을 감안한다 하더라도 한국의 민주주의는 적어도 제도적 절차적 수준에서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빠지지 않을 만큼 크게 발전했다. 그러나 이러한 민주주의가 사회경제적 수준에서 무엇을 이루어냈느냐 하는 실질적 민주주의의 기준에서 볼 때, 한국민주주의의 발전은 매우 초라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현저하게 퇴보했고 현재 계속 퇴보하고 있다는 평가가 가능하다. 말하자면 절차적 민주주의와 실질적 민주주의가 서로 반비례하여 발전하는 경향을 드러내고 있다는 것이다.


민주화이후 한국사회는 특히 IMF 위기를 맞은 1998년을 기점으로 모든 총량지표들이 사회적 불평등화를 심화시키는 방향으로 진행되어 왔음을 보여준다. 시장자유화와 시장원리가 전사회적으로 확대되는 동안, 시장경쟁에서 승자가 독식하고 열패자들의 사회경제적 삶의 질이 악화되면서 사회해체 현상이 급속도로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상위 5,10대기업의 기업이익 집중도로 보나 매출액 집중도로 보나, 경제에서 차지하는 재벌기업의 비중은 현저하게 증대했고, 이를 반영하듯 최근 년에 이르러 이들은 사상 최대의 호황을 구가하고 있다. 이 시기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자본공급, 생산성, 이윤율, 인력수급, 재정상태의 지표에서 나타나듯 재벌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격차는 훨씬 확대되었다.


지금 한국경제는 소수의 재벌대기업이 선도하는 세계적 수준에서의 경쟁하는 고기술, 자본집약적인 산업구조로 변화해가고 있는 동안, 피용자의 80% 이상을 흡수하고 있는 중소기업의 대다수는 재벌기업과의 하도급관계를 통한 수직적 계열화로 인한 하청단가 인하압력에서부터 소득하락과 고용의 질에 이르기까지 이중삼중의 고통을 받고 있다.이처럼 열악한 노동조건과 긴 노동시간, 저임금, 불안정한 고용조건으로 집약되는 중소기업의 상황은 한국사회에서 임금노동자가 향유하는 사회적 시민권의 양적, 질적 수준이 어떠한지를 보여주는 지표가 아닐 수 없다.


IMF위기 이후 급진적으로 진행된 노동시장 유연화의 결과 노동시장 내부분화가 한국산업의 중심부문인 재벌대기업 내부에서 인사이더-아웃사이더 간 새로운 차이를 창출하고, 그것이 오늘날 커다란 사회경제적 이슈가 되고 있는 비정규직의 문제로 나타나고 있는 것도 본질적으로 같은 내용을 갖는다. 그 뿐 아니라 한국의 산업구조에 있어 커다란 취약성을 드러내는 영세 자영업의 비중이, 서구 선진국가 혹은 우리와 유사한 발전수준에 있는 나라와 비교할 때 압도적으로 크다는 사실도 중요하다. IMF위기를 기준으로, 임금노동자들의 실질소득이 다소나마 복원되어 왔던 것에 비해 자영업자들의 실질소득의 하락했다는 것은, 이 시기 한국사회에서 서민들의 생활수준이 어떠했는지를 보여주는 지표가 아닐 수 없다.경제지표들은 지난날 권위주의 산업화 시절부터 악명 높았던 장시간 노동과 저임금이 여전히 한국노동자의 현실임을 보여준다.


노동운동의 상황이 민주주의의 조건하에서 극도로 취약해졌다는 사실만큼, 역설적인 것은 없다. 1980년대 말 최고를 기록한 18.6%로부터 최근 11% 안팎에 이르기까지 지속적으로 하락해온 노조조직율은 민주주의하에서 쇠락해가는 한국노동운동의 위상을 간결하게 집약하고 있다. 더욱이 조직노동자의 구성비는 150여만 조직노동자 가운데서 300인 이상의 대기업사업장이 76%를 차지하고, 더욱이 5천인이상 재벌대기업사업장의 34개 노조가 44%를 차지한다(2003년 기준). 이 지표가 말하는 것은, 한국이 노동운동이 수출부문 재벌대기업 사업장 정규직 노동자 중심운동으로 전개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는 일본 노동운동의 궤적에서 볼 수 있듯이, 운동의 위기가 목전에 당도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중산층의 해체와 사회계층구조의 재편성, 전체 경제활동인구의 16%에 이르는 360만 신용불량자의 양산, 빈곤층의 증가, 고용불안, 빈부격차의 증가, 저성장의 지속과 높은 청년실업률 등, 이 모든 문제는 한국사회 불평등화의 심화라는 현상을 창출하고 있다.격변에 가까운 이러한 경제적, 사회적 조건들이 범죄, 살인, 가정해체, 자살률 등의 증가로 이어지는 사회해체 효과에 대해 여기서 자세히 언급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조건에서 한국의 조세부담률이 멕시코를 제외하고는 OECD 국가들 가운데서 가장 낮은 비율을 기록하고 있으며, 역시 멕시코와 더불어 가장 낮은 사회복지 지출을 기록하고 있다. 더 중요한 것은 그나마 IMF위기 이후 사회안전망의 확대로 증가했던 사회보장 및 복지예산 비율은, 복지수요가 급증해온 사회적 현실과 반대로 현정부에 들어와 하락 혹은 정체의 추세를 나타냈다는 사실이다.


한국, '신자유주의적 민주주의'의 세계적 모델


한국의 민주정부들의 경제, 사회정책은 권위주의정부보다도 더 성장중심적이고, 그럼으로 재벌중심-노동배제적이고, 세계의 그 어떤 주요 국가들보다도 더 신자유주의적 워싱턴콘센서스, 즉 시장근본주의를 따르는 경제독트린과 정책라인을 취해왔다고 할 수 있다.전체적인 정책기조가 신자유주의적 정책라인을 따르고 있다는 사실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IMF위기 이후 불과 7,8년이라는 짧은 기간동안 시장근본주의적 정책기조가 매우 급진적으로 취해졌고, 그 결과 한국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교육 등 모든 구조가 신자유주의적으로 너무나 급격하게 재편성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를 추동하는 중심적 가치는 경제성장, 이를 실현하는 도구적 가치로서의 효율성, 경쟁, 성과로 평가하는 능력과 업적(meritocracy)을 중심으로 한 경제적 가치와 규범이다. 민주주의는, 정치적 권력도 갖지 않고 시장경쟁에서 약한 자원을 갖는 보통사람들이, 수의 힘을 통하여 정치적인 방법으로 그들의 권익을 실현하는 것을 허용하는 정치체제 또는 제도이다. 이러한 민주주의의 내용은 실제 한국 정치현실로도 표출되었다고 할 수 있다. 시장경쟁에서의 열패자 또는 약자의 위치에 있는 서민층이나 소외계층들은 선출된 정부들이 개혁적이기를 기대하면서 투표했고, 그들을 정부로 선출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선출된 정부는 시장이 만들어내는 사회적 불평등을 완화하고, 이들에게 사회적 보장과 복지를 부여하는 정책을 실현할 위임(mandate)을 받았다고 할 수 있다.


로크의 개념을 따르면 그것은 정부와 피치자간의 신뢰(trust)이며 최근의 민주주의이론의 개념으로는 책임성(accountability)이라고 하겠다. 이 연결은 하나의 체제를 민주주의, 하나의 정부를 민주정부라고 부를 수 있게 하는 핵심적인 고리라 하겠다. 따라서 민주정부들이 신자유주의적 이념과 가치, 그리고 그에 따른 정책을 솔선해서 수용하고 추구했다고 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설명되지 않으면 안 되는 문제가 아닐 수 없다.


확실히 우리사회는 제도적으로는 민주주의가 되었다 하더라도 경제정책은 민주화되지 않았다. 오늘날 민주정부하에서 경제정책과 민주정부를 지지한 사회부문 간에는 연결이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지금 한국의 민주주의는 “신자유주의적 민주주의”의 한 세계적 모델사례로 발전해가고 있는 것이다.


NL-PD적 문제의식 여전히 유효


민주주의란 무엇인가? 나라마다 다른 역사적 조건과 사회적 조건에 따라 어떤 내용을 채울 것인가하는 것은 넓게 열려있다. 그러나 슘페터가 그 출발점을 만든 이른바 최소정의적 개념, 내지는 민주주의에 현실주의적 이해, 즉 민주주의를 엘리트 간 선거경쟁을 통하여 정부를 구성하는 체제라고 이해하는 방법이 정치학에서는 정통이론이다. 그러나 이것은 다만 민주주의를 이해하는 첫 출발점에 불과하다.


한국에서 민주주의를 가져오는데 참여했던 사회세력들은 민주주의를 이런 내용으로 이해하지 않는다.민주주의를 만드는 데는 두 세력이 존재했다. 하나는 제도권내의 야당이었던 정당정치인들이고, 다른 하나는 민주화투쟁을 주도했던 운동세력들이다. 前者는 슘페터적 의미의 연장선상에서 절차적 제도화로 민주주의를 이해했을 것이며, 後者는 한국사회의 실질적 변화를 가져오는 실질적 민주주의로 그것을 이해했다.


특히 후자는, 구체제 (ancien regime)가 안고 있는 두 가지 문제를 비판했다. 하나는 냉전반공이데올로기에 기초한 권위주의체제이며, 다른 하나는 권위주의산업화에 의한 노동억압과 불평등이었다. 그것은 민주화운동과정에서 혁명적 레토릭으로서, 전자는 “NL”로 후자는 “PD”로 표현되었다.


이들 이념/ 레토릭은 혁명적 구호로서 기능했고, 현실적이지 못했기 때문에 곧바로 현실의 변화를 가져올 대안이 되지 못했지만, 그 레토릭이 담고 있는 핵심 내용만큼은, 민주주의가 실제로 만들어질 때의 사회적 요구를 구성하는 요소였고, 따라서 오늘의 현실에서도 여전히 유효하다.문제는 이 레토릭을 현실로 정착시키는 것이다. 김대중-노무현정부로 이어지는 민주정부하에서 한반도탈냉전, 대북정책, 한미관계를 정립함에 있어 NL적 문제제기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 탈냉전-한반도 나아가서는 동북아시아의 평화의 가치는 이러한 문제의식의 산물이다. 이들 정부에서의 정책기조는 대체로 온건한 민족공조노선으로 특징될 수 있을 것이다.그것은 한편으로는 구질서하에서 대북증오와 적대가 절대적이었던 것만큼, 불가오류의 절대적 한미관계, 다른 한편으로는 그에 대한 안티테제로서의 민족자주-민족공조를 대립항으로 했다. 이 대립관계가 현실로 나타났을 때, 그것은 한국의 자율성이 증대된 한미관계와 보다 합리적인 민족공조로 정리, 정착되었다. 그럼으로 이 정책라인은 민주적이다. 왜냐하면 민주화를 추동했던 이념이 실질적 민주화의 내용 속으로 整理-實現되면서 그야말로 정착(settle)되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일정하게 사회적 콘센서스를 형성해 왔다.


그러나 다른 한 이슈인 PD적 문제의식은 그간 민주주의의 틀 속에서 전혀 정리-실현되지 못하고 있다. 여기에서 필자가 말하는 정리-실현이란 테제-안티테제간의 접합점을 찾아 실현하는 것을 의미한다.과거 권위주의산업화의 중심이데올로기로서의 성장지상주의와 재벌대기업중심, 노동억압 및 배제의 경제정책과, 그에 대한 안티테제로서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부정과 노동해방이라는 양자 사이의 대립이 민주화이후에 정리-실현된다는 것은, 이 양자 사이의 스펙트럼사이에서 현실적으로 실현가능한 어느 지점에 도달하는 것을 말한다.그러므로 그 내용을 구성하는 것은, ① 노동이 민주주의의 기본적이며 보편적 원리로서 일정한 경제적 시민권을 획득/부여받고 그에 따라 사회전체와 생산체제에서 주요하고도 정당한 행위자로서 인정되는 것 ② 자본주의적 시장경제의 원리는 존중되나, 제어되지 않은 시장경제는 경쟁, 효율성, 업적중심의 가치만이 아닌 그와는 다른 근원적인 인간가치, 사회윤리적, 공동체적 가치에 의해 민주적인 방법으로 일정하게 규제-제어되는 것 ③ 재벌중심의 경제/산업구조는 다양한 대기업의 존재와 중소기업의 강화에 의해 보다 다원화되고, 영세자영업은 현대화된 자영업으로 발전되는 것 등의 요소들을 포함하는 것이다.


참여민주주의 통한 시민의식 확대와 PD적 문제의식 실현


민주주의는 군주정이나 군부권위주의와 마찬가지로 통치체제의 하나이다. 때문에 다른 체제와 마찬가지로 민주주의 역시 사회적 기반 또는 체제의 유지를 위한 지지세력을 필요로 한다. 따라서 민주주의의 존립을 위해서는 이를 유지하고, 그 조건을 재생산하고 강화하는 것이 필요하다.누가 민주주의의 지지자, 누가 더 적극적인 지지자인가? 역사적 조건과 사회세력간 힘의 균형이라는 요인으로 나라와 시기에 따라 민주주의의 지지세력은 다를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시장경쟁에서의 취약계층과 실업과 고용불안정으로 위협받는 그룹/계층들, 시장경쟁이 가져오는 불평등화의 효과를 정치적 방법으로 완화해주기를 바라는 집단/계층들, 민주정치를 통하여 대표되고 보호받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더 현재적, 잠재적 지지세력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이것은 다만 논리적으로 그러할 뿐이다. 많은 경우 민주주의는 슘페터적 정의가 말하듯, 엘리트 간 선거경쟁을 의미하는 수준에서 현실적으로 실현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선거경쟁을 주도하는 정치엘리트 - 그들의 조직적 표현으로서 정당 - 경쟁의 결과 등장한 민주정부가 자신들의 사회적 기반과 단지 논리적으로만 연계되어 있을 경우, 다시 말해 책임성과 위임의 원리가 현실에서 작동하지 않을 경우, 그러한 체제는 민주주의를 형해화하거나, 냉소적으로 만들거나 또는 실제로는 민주주의라는 이름의 다른 어떤 권위주의적, 엘리트적 지배체제 이상의 것을 의미하지 않을 수도 있다. 이것은 왜 민주주의가 실질적 민주주의의 내용을 갖지 않는 한 민주주의로서의 진정한 가치를 갖지 못하는가 하는 이유이다.


투표에 의한 선거경쟁만으로는 민주주의가 실제로 사태를 변화시키기 어렵거니와 진정한 의미에서의 민주주의를 실현할 수 없다는 것을 강조하는 대표적인 이론가들이나 학자들은 두 방향에서 대안을 찾는다.한 방향은 투표와 선거경쟁 자체를 의미있게 하고 심화시키는 동시에 직접민주주의의 모델을 살려 참여민주주의의 범위를 넓히고 채널들을 발전시키는 방법이다. 결정과정의 참여범위를 넓히고, 민주적 통제의 이슈영역과 범위를 확대하고, 시민들이 대안적 정보원과 지식을 확보하여 이슈에 대한 계몽적 이해와 이성적 판단의 능력을 확대하는 것이 민주주의를 향상시키는 필수적인 조건이라는 것이다(드리젝, 구딘, 그 밖의 참여민주주의 이론가들).


다른 한 방향은, 민주주의의 자유와 권리를 행사하기 위해서는 이를 실제로 할 수 있는 능력, 즉 경제적 조건의 평등을 강조하는 것이다(달, 린드블룸, 센, 라즈 등). 이 내용들은 앞서 살펴보았듯이 이미 PD라는 형태로 한국의 민주화 운동과정에서 제시되었다. 요컨대 한국의 민주주의발전을 위해서는 PD적 문제의식이 현실적으로 정리-실현되지 것이 더 이상 늦춰져서는 안될 것이다.


국가-재벌대기업 관계의 재편성


신자유주의가 주도하는 세계화시대에 국가 또는 민주정부와 재벌대기업 간의 힘의 관계는 무엇인가? 권위주의 시기는 물론, 민주화이후 초기만 하더라도 양자간 힘의 균형은 말할 것도 없이 국가에 있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그러나 IMF이후 신자유주의적 세계화가 본격적으로 전개되는 오늘의 상황에서 힘의 중심이 더 이상 국가에 있다고 할 수는 없다.


칼 폴라니와 같은 대표적인 경제사가는, 시장의 발전은 의도적인 국가/정부 정책의 결과물이라는 사실, 국가가 시장의 틀과 규칙을 만들고, 시장을 특정 형태로 작동시키려는 의지를 갖지 않는 한 시장은 작동하기 어렵다는 사실, 그리고 시장은 기본적으로 전체 사회공동체의 한 하위영역인 경제영역을 구성하는 특정 형태의 교환의 양식이라는 사실, 그러므로 시장은 전혀 자율적이지도 않을 뿐 아니라 자유적일 수도 없다는 사실을 지적했다.이러한 시장과 사회공동체와의 관계는, 일찍이 아담 스미스가 시장의 작동과 발전이 보다 큰 사회공동체가 요구하는 사회적 윤리의 기반이 되는 도덕적 감성과 병행하지 않을 때 시장을 포함하는 사회는 타락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던 맥락이기도 하다.


한국사회에서 시장의 총아로서의 재벌기업들이 얼마나 법의 지배에 종속되고 투명하냐 하는 것은 매우 의문이다. 한국의 기업은 그만두고라도, 법의 지배와 회계투명성을 감시-감독하는 세계최고의 회계기업들조차 엔론과 월드콤의 사례에서 보여주었듯이 그 자체 부패로 얼룩져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므로 투명성 실현을 신봉하는 신자유주의적 관리체계에서조차 회계의 투명성을 어떻게 실현할 것인가는 전혀 해결되지 않은 과제가 아닐 수 없다.


잘 알고 있듯이 “국가 실패”를 말하기 전 시기는 “시장 실패”의 시기였다. 케인즈의 경제이론은 시장실패에 대응코자했던 산물이며, 일본의 국가-공동체적 혹은 비자유주의적 경제운영원리는 “재팬 넘버 원”으로 평가된 바 있었다. 요컨대 국가-정부 없는 시장사회는 존재한 적도, 존재할 수도 없는 것이다. 현실에서 국가/정부와 시장은 경제운영에 있어 두 원리가 어떻게 결합되는가 하는 결합의 상대적 정도를 의미하며, 그 결합의 정도는 사이클을 그리며 상대적 비중의 변화로 나타날 뿐이다.


신자유주의의 정체


신자유주의는 과거의 자유주의와는 종류가 다른 급진적 시장지상주의의 가치를 담지하며 이를 구현한다.과거의 자유주의는 시장지상주의(libertarianism)와 접맥했다 하더라도, 19세기로부터 20세기 전반기까지 민주주의와 비록 긴장과 갈등관계를 가졌지만, 양자는 잘 병행발전 했고, 민주주의는 자유주의의 원리들을 많이 수용하면서 발전했다.


이에 반해 오늘의 신자유주의는 민주주의와 정치 그 자체에 적대적인, 그럼으로써 일체의 경제에 대한 정부의 역할을 부정적으로 인식하는 시장지상주의의 이론인 것이다. 민주주의의 질과 내용은 공적영역과 사적영역, 국가와 시민사회, 공동체적 필요와 사적 선호, 국가에 의한 공적 강제력과 자율적 교환 등 이들 양자 간의 구분들이 실제로 어떻게 배합되느냐에 따라 차이를 드러낼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공적 필요와 공적영역을 극단적으로 확대하고자 하는, 또 그렇게 했던 사회주의 체제가 민주주의와 병립하지 못했듯이, 사적선호와 사적영역을 극대화하고자 하는 신자유주의 역시 민주주의와 병립하기 어렵다(쉬미터).오늘날 한국사회에서나 세계적 수준에서 신자유주의는 민주주의를 위협하고 있다. 한국의 한 저명한 주류경제학자는 한 세미나에서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는 본질적으로 양립할 수 없다”고 말했다(오마이뉴스, 2004.9.17). 세계적인 좌파 역사학자인 에릭 홉스봄은 “시장주권은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보완이 아니라, 그에 대한 대안이다”라고 말했다(홉스봄, 2001). 발언 내용은 동일하다. 그러나 사실상 그 의미는 정반대이다.


前者는 한국의 민주정부(노무현정부를 지칭)의 경제정책이 분배에 치중하고 반시장적이라고 전제하면서--필자는 이 평가 자체에 동의하지 않지만--신자유주의적 자유경쟁체제를 옹호하고 민주주의 자체를 부정하는, 한국사회의 강력한 보수적 견해를 대변하는 것이었다. 반면 後者는, 민주주의를 옹호하고 신자유주의적 시장지상주의를 부정하는 진보적 견해를 대변하고 있는 것이다.


현재 한국의 민주정부들은, 급진적 신자유주의의 발전으로 인하여 민주주의의 기반 자체를 스스로 허무는 위험지역으로 접근하고 있다. 오늘의 한국의 현실이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와 민주주의 그 어느 것도 송두리째 부정할 수 없는 것이라면, 그렇게 하고서는 최소한의 사회적 통합을 유지할 수 없다고 한다면, 양자는 어디에서인가 접점을 찾지 않으면 안된다. 그것은 우리가 민주주의를 폐기할 수 없는 것이라면, 그것은 민주주의를 통하여 신자유주의적 진행이 어느 지점에서 중지 혹은 완화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민주정부의 '신자유주의적 시장지상주의' 적극 수용과 탈정치화


흥미있는 사실은, IMF위기이후 민주정부들의 정책에서 신자유주의적 시장지상주의의 이념과 가치를 수용한 것은, 외부적 압력의 강제에 의해 선택이 완전히 닫혀있는 상황의 산물이었다기보다 민주정부 스스로 적극적으로 그것을 선택한 결과였다는 것이다. 다시말해 민주정부에 의한 선택이 성장주의, 시장효율성, 시장합리성, 시장주권의 이념과 가치가 완강한 헤게모니로 자리 잡도록 한 가장 큰 요인의 하나였다는 사실이다.


그 결과 오늘날 민주정부는 물론, 민주주의 전체에 대해 심각한 부정적 효과를 갖기에 이른 것이다. 그 경제적 사회적 결과는, 구래의 재벌중심적 성장지상주의와 중소기업 및 노동배제적 정책의 복원, 그로인한 노동 및 사회보장 및 복지정책의 저발전, 빈부격차의 심화와 사회해체 효과의 가속화 등의 문제에 대해선 앞서 말한 바와 같다.


민주주의와 시장원리는 근본적으로 다른 이념, 가치, 제도, 실천을 갖는 것으로, 민주주의는 사회의 이익과 갈등의 광범한 표출을 허용하고 정당이나 운동 또는 이익집단들을 매개로 하면서, 갈등해결의 제도화를 통해 사회를 통합하는 하나의 정치체제이고, 일차적으로 정치의 과정은 기본적으로 시장경쟁과 그것이 창출하는 불평등화와 소외효과를 중화하고 보완하는 민중적 성격을 띠는 정치제도이며, 체제이다. 그리고 민중들이 스스로 그들의 권익을 증진할 수 있도록 권력을 창출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이 정치과정에 의해 가능한 것이기도 하다. 그것은 한국의 기득이익들이 왜 정치를, 그리고 나아가서는 민주주의를 폄훼하고 축소시키고자 하는가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따라서 민주정부들이 스스로 시장원리를 정치의 영역으로 끌어들이고 탈정치화와 정치의 다운사이징에 앞장섬으로써 왜 스스로의 권력과 사회적 기반을 약화시키게 되었는가 하는 문제는 한국민주주의의 커다란 아이러니라 하겠다.


민주정부 변신의 3단계


민주정부의 변신 (metamorphosis)은 세 단계로 진행되었다고 할 수 있다.


① 민주화운동에 참여한 세력들의 다수가 상대적으로 개혁적인 것으로 믿는 정당의 후보를 지지, 상대적으로 개혁적인 민주정부가 성립한다. 그러나 이들 정치적 집권세력은 정부가 된 이후 어떤 경제적, 사회적 정책을 실현할 것인가에 대한 비전, 대안적 정책, 실천프로그램, 그리고 이를 추진할 인적 역량을 갖지 못한다.


② 정부가 된 이들은 시민사회와 시장에서의 막강한 헤게모니를 대면하게 되면서, 이들은 국가관리와 정부정책의 수행/업적평가라는 압력에 놓이게 된다. 그 압력은 주로 대중매체와 여론에 의해 두 방향에서 작용하게 되는데, 하나의 방향은 정부의 업적이 언론을 통하여 시시각각으로 평가된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민주정부의 핵심이라고 할 리더십과 집권세력 자체에 대한 능력이 모든 계기마다 평가되고 추궁된다는 것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정부는 두 외부세력에 대한 의존을 키워왔는데, 하나는 시민사회 및 시장으로부터의 권력집단인 재벌기업이고, 다른 하나는 국가내의 전문가집단인 행정관료, 테크노크라트이다. 이러한 헤게모니와의 타협은, 집권정당과 사회부문간의 연계가 약하기 때문에 비교적 자유롭다.


불확실한 위임(mandate)과 대표-책임간의 연계의 느슨한 구조위에서 민주정부가 아무런 경제-사회정책을 갖지 못하는 동안, 이른바 NL적 문제의식 즉 대북문제와 한미관계에 있어서는 일정한 개혁성을 유지하려는 자세를 견지한다. 일종의 정책적 플레이-오프가 발생한다. 우리는 여기에서 사회문제를 다루는 정책적 측면과 관련하여 민주정부와 권위주의정부가 만들어내는 흥미로운 역설적 교차현상을 발견한다.민주정부의 집권세력들은 그들 스스로가 절차적 정당성과 도덕성을 가졌다고 자임하기 때문에, 문제는 사회의 민중적 지지기반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들이 취약하다고 믿는 보수세력과 좋은 관계설정 또는 지지의 확대가 중요하다고 믿고 그렇게 노력한다. 결과는 경제, 사회정책 영역의 보수화이다.이는 과거 권위주의 시기에서와는 정반대의 패턴이다. 권위주의정부의 집권세력은 그들이 절차적 정당성에 있어 취약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사후적 정당성을 가져다주는 정책을 통해 대중적 지지기반을 확대하고자 한다. 이 때문에 권위주의 정부 하에서 많은 실질적 개혁들이 이루어지기도 했다.


③ 헤게모니와의 타협에 의한 문제해결방식은 문제를 해결하기보다 더 증폭시키게 된다. 민주정부는 두 요소에 의해 부정적 효과의 증폭에 직면한다. 하나는 신자유주의적 정책 자체가 결과하는 빈부격차, 고용불안정, 노동자소외, 사회해체와 같은 부정적 효과에 의한 것이다. 다른 하나는 정체성의 위기가 수반하는 리더십의 약화와 정부수행/업적의 하락이다. 이 과정에서 민주정부에 대한 잠재적, 현재적 지지세력의 이탈이 증대하고, 정부의 기반은 더욱 취약해 진다.


- 이러한 실망의 사이클이 몇 년 후 있을 대통령선거를 거치면서 되풀이 될 것인지, 다시말해 선거 때는 개혁적 대표는 민중적 힘과 접맥되고 집권 후에는 헤게모니로 돌아가는 열망-실망의 사이클 혹은 접맥-이탈의 사이클이 반복될 것인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민주정부가 강한 레토릭을 통해 아무리 개혁적인 인상을 주고, 그것을 정서적 급진주의로 특징짓든 간에, 민주정부와 재벌기업간의 동맹이 이루어지게 되고, 그럼으로써 정서적 급진주의와 실제 제도적, 정책적 실천에 있어서 극도의 보수적 내용이 기묘하게 결합하는 현상이 나타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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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마늘빵 > 리영희/박노자 대담

 

출처:http://blog.naver.com/miso5622/120011928989

 

 리영희-박노자 교수의 만남 - "미군철수 15년 계획 세우자"


미국의 대북한 침략과 세계정복 야욕을 경계한다.


'한국에서 가장 만나고 싶은 사람이 누굽니까?'



방학을 이용해 잠시 한국에 온 박노자 교수(31, 오슬로국립대 한국학)에게,

어느 날 무심코 질문을 던졌다. 주저없이, 즉각 답이 나왔다. 바로 오늘의

주인공, 리영희 교수(74, 한양대 대우교수)였다. 박 교수는 너무나 궁금한

게 많다고 했다. 한 모임에서 잠깐 인사를 드린 적은 있지만, 길게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없었다며 꼭 만나뵈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팬레터'를 보낸 뒤

답장을 받은 적도 있다고 했다. '리영희 선생이야말로 우리 시대의 마지막

민족주의자'라고 평했던 그는, 대담이 끝난 뒤엔 '구한말의 우국지사를 만난

느낌'이라고 말했다.



리영희 교수도 박노자 교수에 대해 호감을 갖고 있었다. 러시아인으로서

한국 국적을 얻고 현재는 노르웨이에서 교수생활을 하는 개인사에 호기심도

보였다. 리 교수는 대담 요청에 흔쾌히 응했다. 단, 딱딱한 '인타뷰'보다는

'인간적인 만남'이 좋겠다면서 살아가는 이야기를 편하게 나누고 싶다고

했다.



경기도 군포시 산본의 리영희 교수 자택에서 이뤄진 대담은, 그러나

한반도와 세계정세에 대한 진지한 대화로 흐르고 말았다. 노교수는

세상문제와 인연을 끊고 내면세계에 침잠하고 싶다고 했지만, 가공할 만한

전쟁의 위기가 아직은 그를 자유롭게 놔두지 않는 듯했다. 2000년 뇌출혈로

쓰러진 뒤 아직도 그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었지만, 그의 눈빛은 형형했고

목소리엔 힘이 담겨 있었다. 이야기가 느릿느릿했을망정.



장마를 피하러 인도네시아 발리로



리영희 : 거 며칠 전 텔레비전에 나왔었지?



박노자 : 맞습니다. 저희 <아웃사이더> 잡지사 사장이 '병역거부'

양심선언을 하는 자리에 참석했었습니다.



리영희 : 잠시 서울에 들어와 있는 동안 그런 모임에도 가야 하고...

바쁘구만요.



박노자 : 무슨 말씀이십니까. 아무리 바빠도 리영희 선생님을 꼭 뵙고

싶었습니다. 예전에 그게 참 감동적이었습니다. 몇달 전에 쓰신 그 한시

말입니다. '부씨광폭 부지기극'(否氏狂暴 不知其極). 부시의 광폭함을

한시로 잘 규탄하신 내용... 그런데 요즘 어떻게 소일하십니까?



리영희 : 나는 하루에 세 시간쯤 산보해요. 뒷산 숲속에 아주 예쁜 공원이

있지. 근데 요새 장마가 져서 비올 땐 못해요. 장마가 져서 비가 오면

신경환자는 아주 죽어요. 온몸이 저리고 잘 때 온몸에 땀이 주르르 흘러.



기자와 박노자 교수가 아파트의 초인종을 누르고 들어갔을 때, 리영희

선생은 와이셔츠를 입고 소매 단추를 막 잠그는 중이었다. 그러나 손이

떨려서 그런지 자꾸만 엇나갔다. 장마철엔 신경통이 더욱 도진다는 그는

겨울에는 또 만성 기관지염에 시달린다고 했다. 오랜 수감생활로 얻은

병이다. 그래서 몇년 전에는 따뜻한 타이의 한 시골에서 한겨울을 난 적이

있다. 습기가 적은 동남아 지방에서 그는 편안함을 느낀다. 올 여름에도

조만간 인도네시아 발리로 '피난'을 갈 계획이라고 들려준다. 대학 제자가

운영하는 현지의 작은 호텔에서 여름이 끝나는 8월까지 머무를 작정이다.



리영희 : 내가 중추신경이 12cc나 출혈됐었거든. 중추신경이 죽었다고.

그런 환자치고는 이만하면 아주 가벼운 겁니다. 감사하며 살아야 해요.



박노자 : 선생님이 한국에서 중국을 잘 아시는 분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그쪽에 대해서도 많이 듣고 싶었습니다. 먼저, 어떻게 해서 중국에 관심을

갖게 되셨는지 궁금합니다.



리영희 : 625전쟁 때 우리 부대가 최전방에서 중공군하고 맞닥뜨리게

됐거든요. 그때부터 관심을 가지게 됐지요. 제대해서 통신사 외신부 기자를

할 때는 중국 혁명이 한창 진행중이었구요. 난 소련의 스탈린식 전체주의와

미국식의 타락부패한 이기주의가 아닌 그 중간에 새로운 인류의 생존방식이

있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그것이 모택동(마오쩌둥)과 그 중국 공산당에

의해서 모색되는 것이 아닌가 주시했던 거지요. 남들이 '중공'이라고 하면서

겁내던 1950년대 말부터 책도 내고 글도 쓰고 했습니다. 80년대까지

그랬어요. 그것 때문에 형무소도 갔지만. 그러나 중국에 큰 체제변화가

온 뒤에는 물러났습니다. 중국이 개방되고 자본주의화되는 과정은 누구나

공부할 수 있고 전문가가 될 수 있잖아요.



박노자 : 중국의 자본화에 대해 긍정일변도로만 평가하는 분위기가 압도적인

것 같습니다. 빛이 있으면 그늘도 있지 않겠습니까?



리영희 : 지금 벌어지는 중국의 내부적 변화에 대해서는 내가 연구하고

있지 않거든요. 그 대신 국제관계 속에서의 중국의 움직임 같은 것은

면밀히 지켜보고 있지요.



대통령, 미국 통치집단을 너무 모른다



박노자 : 미국은 지금 대북한 침략계획에 부심하고 있는 듯한 모습인데,

중국이 미국과 야합할 가능성에 대해 수차례 언급하신 것을 봤습니다.



리영희 : 그럴 가능성이 일부분 있다는 거죠. 왜냐하면 대만문제가 걸려

있으니까. 홍콩 마카오 다음에 남은 게 대만 아닙니까. 중국 국토

원상복구의 대단원을 이루는 거니까. 반면 미국으로서는 대륙 중국을

견제할 수 있는 게 대만문제란 말입니다. 하나는 영토문제고, 둘째는 대만

군사화이고 셋째는 대만을 핵무장화할 수 있는 가능성이죠. 중국으로서는

그 몇 가지를 미국으로부터 양보받아야 할 텐데, 자연히 북한문제에서의

미국의 요구를 대만문제와 바꾸는 방식으로 풀 수 있다는 거지요. 그게 늘

내가 걱정하는 겁니다. 역사에서 보듯이 중국 민족이 얼마나 우회적으로

술수를 쓰는 데 능한 민족입니까. 1936년 장개석(장제스)이가 모택동

팔로군을 전멸시키기 위해 만주의 군벌 장학량(장쉐량)을 불러들였단

말이에요. 근데 거꾸로 장학량이가 장개석이를 납치해서 감금한 뒤에

국공합작 항일투쟁을 요구하지 않았습니까.



박노자 : 그게 유명한 서안사변이지요. 저도 참 걱정입니다. 부시가 혹시

대통령선거가 시작되기도 전에 득표전략의 일환으로 대북한 긴장의 수위를

높이지 않을지...



리영희 : 그렇습니다. 1994년에 클린턴이 북한에 전쟁하려고 했던 그

단계보다 훨씬 위험할 수 있지요. 부시의 수법은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침략전쟁까지의 과정에서 잘 드러났거든요. 이라크에 대해서 처음부터

전쟁하게끔 전부 계획 세워놓고, 세계원자력기구의 현지조사라든가

대량살상무기 조사를 시킨 건 시간을 벌기 위해서였어요. 말하자면 긴장의

도를 높이고, 다음에 미국 국민들의 적개심을 높이고, 군대의 준비를 착착

진행하는 데 필요한 시간을 맞추어서 그렇게 가는 것뿐이에요. 그러니까

부시는 그야말로 깡패예요. 테러리스트예요. '깡패가 누구냐' 하는 행동의

준거로 말할 때, 미국은 조건을 완전히 다 갖춘 나라지요. 그런데 한국

사람들이 미국 정권 지배자들의 생태적인 본질을 모르는 것이 문제야.

내가 두달 전에 기독교방송과 인터뷰를 하다가 오해를 받았는데...



박노자 : '대통령이 무식하다'는 이야기였던 걸로 기억합니다. (웃음)



리영희 : 그래요. 대통령의 방미외교를 어떻게 생각하냐기에 이렇게

얘기했어요. 미국을 지배하는 통치집단, 그러니까 군/정보국/군수자본/

재벌/유대인 호전세력/원리주의 기독교그룹들이 한덩어리가 돼서 전쟁을

해야 미국 경제가 돌아가고 선거에 이긴단 말이에요. 그래야 국회의원들이

자기 주에 군수공장을 설치하고 군수자본 들여와서 취업률을 높입니다.

또 그래야 표가 올라가서 다시 당선된단 말이에요. 이런 집단들의 대표가

부시인데, 그런 집단들의 생태를 전혀 모른다는 것에 대해서 참 무식하다

그런 거지. 근데 마치 노무현 대통령이 완전히 인간적으로 무식한 것처럼

얘기가 돼버렸어.



박노자 : 아마도 노무현 대통령의 대미외교를 보시면서 민족의 생존방법으로

부적합하다는 느낌을 받으신 것 같습니다.



리영희 : 그렇죠.



박노자 : 사실 미국에 굽신거리면서 살려달라는 식인데, 그 사람들이

굽신거린다고 살려주겠습니까?



리영희 : 그런 집단이 아니에요. 북한에 대해서 전쟁을 해야 할 텐데,

딴소리하면 제 아무리 굽신거려도 소용없고. 그 양반이 미국 가서 갑자기

링컨 존경하게 된다고도 했는데, 또 그게 무슨 소리야? (웃음) 인류사에

존경할 만한 인간이 얼마나 많은데. 링컨의 이미지는 미국 애들이 조작한

거라고. 그 유명한 게티스버그 스피치에서 '포 더 피플, 오브 더 피플,

바이 더 피플'이라는 말을 했는데, 그 뒤에 보면 인종차별적인 내용이

나오지 않습니까. 인종차별을 얼마나 했는데...



미군 철수 15년계획, 청와대서 외면당하다.



박노자 : 얼마 전 노르웨이의 유명한 평화학자 요한 갈퉁 선생과

전자우편으로 대담을 나눈 적이 있습니다. 그분께도 한민족의 생존전략으로

가장 적합한 게 뭐냐 여쭸더니 '거리를 두는 게' 좋다고 하셨습니다.

미국과 거리를 좀더 두고, 북한과의 민족공조를 더욱 공고화하고, 미군의

철수계획을 구체적으로 연도별로 세우고... '전쟁 일어났을 때 미국 편에

서지 않겠다는 것을 명백히 하면, 한민족이 살아남을 확률이 훨씬 높다'고

하십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리영희 : 김대중 대통령이 2000년 6월 평양 가기 전에 남북문제에 관심을

가진 20여명을 초대했었어요. 그래서 청와대에 갔는데… 그때가 미국

국방장관이 미군은 통일 뒤에도 주둔한다는 소리를 하고 그럴 때예요.

나는 그랬지. 지금 한반도 위협을 조성하는 원천과 근본원인은 북한이

아니라 미국이다. 그래서 나 같으면 김정일 지도자하고 이런 식으로 한반도

문제를 해결하도록 합의하겠다 말했어요. 그 방법은 이랬어요. 총 15년간의

계획인데...



김대중 대통령이 평소에 주장해온 햇볕정책을 경제사회 문화적인 차원에서

꾸준히 지속해 나간다. 꾸준히 5년을 계속하면 긴장이 낮아질 것이다.

그렇게 5년 착실하게 하면 미군 주둔의 허구성이 인식되기 시작한다 이

말이야. 그럼 그때쯤 가서 주한미군이 맡고 있는 휴전선에서의 방위 역할을

주한미군을 포함한 국제연합평화유지군으로 교체하는 제안을 하시라.

그럼 부분적으로 그때부터 5년간에 걸쳐 미군을 단계적으로 철수시킨다.

그 대신 미국이 북한의 공격에 대비해서 주둔한다고 주장해왔으니까,

북한이 공격할 의사가 없다는 걸 전세계적으로 선언하게 하라 이거지.

그럼 미국으로서도 더 눌러붙어 있어야 할 구실이 없어지지 않겠소.

벌써 그렇게 되면 10년 아냐 그동안 상징적으로 휴전선 방위를

국제평화유지군이 맡게 되면 미군의 실체는 없어진 거다 이 말입니다.

그럼 10년 뒤 그 단계에 오면 작전지휘권과 군사관계의 결정권을 한국에

이전시켜라 이 말이야. 그렇게 해서 또 5년을 해나가는 사이에 휴전선에

외국 군대가 있을 필요가 없는 단계까지 남북한에 평화 안정정책을

정립하면 그때는 미군을 포함한 외국 군대가 5년 동안 다 빠져나갈 수

있을 것이다 이 말이죠.



박노자 : 상당히 상세한 계획을 잡으셨네요.



리영희 : 근데 김 대통령 얼굴을 보니 안 좋아하더라고.



박노자 : 아, 그랬습니까?



리영희 : 내가 옛날부터 김대중 대통령을 잘 아는 사람 아닙니까.

그날 청와대 들어가면서는 반갑다고 악수했는데, 나올 때에는 내 앞에 두

사람 남겨놓고 악수하다 저리 가더라고. (웃음) 저~어리. 그래서

'이거 아니구나' 생각했지. 그걸 김대중 대통령이 제대로 듣고 반응하면

곧장 그 내용이 미국 정보부로 들어가거든. 미국 압력이 두려우니까,

아예 멀리하더라고. 어쨌든 난 15년을 잡는 거예요. 아마 김대중 대통령도

김일성 주석이 94년에 한 얘기를 알기 때문에 그랬을 거예요. 94년에

카터가 평양에 핵문제 해결하러 갔을 때, 미국이 전쟁을 안 한다면 미군의

남한 주둔도 이해할 수 있다고 얘길 했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김대중

대통령으로서는, 북한도 그랬는데 우리가 미군철수니 뭐니 하는 얘기할

필요가 뭐 있나 그렇게 생각했겠지. 어쨌든 우리가 미국의 굴레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15년의 기한을 두고 3단계의 그런 군사적 조치를

취함으로써 2020년 정도에 통일은 아니더라도 남북한에 전쟁 없는 토대를

구축하고 외국군 철수를 이룰 수 있다는 거지요.



내년 초 미국이 북한 침략할 수도



박노자 : 여태까지 제안된 민족생존의 방안 중에서 가장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방안으로 생각됩니다.



리영희 : 난 내년 초쯤에 미국이 북한에 대해 전쟁을 일으킬 수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지금 미국이 착착 전쟁에 필요한 준비를 하고

있거든요.



박노자 : 미군을 남쪽으로 빼돌리고...



리영희 : 나는 그걸 보면서 아 북한에 대한 전쟁을 시작하려는구나 하는

생각을 했어요. 북한이 가진 장거리포를 미국이 제일 겁내는 거거든요.

그 장거리포의 사거리 내에 있으면 그 피해를 자기들이 보니까.

사거리 밖으로 미군을 빼고 나면 미사일 요격망, 그러니까 미사일 디펜스를

만들어놓은 거나 효과가 같은 거예요. 상대방 공격이 미치지 못하는 데에다

갖다놓으면 피해를 안 볼 수 있으니까. 미국은 대신 우월한 공군력과

미사일로 북한을 맘대로 공격할 수 있단 말이에요. 거기에 대해 북한이

반격을 하면 남한 사람들만 희생된단 말입니다.



박노자 : 그건 미국이 아랑곳하지 않는 문제 아닙니까.



리영희 : 그래서 지금 빼는 거예요. 미국의 간사한 군사전략입니다.

'2사단 평택 이남 배치' 얘기가 나왔을 때 북한 외무성 대변인이

공식논평을 냈잖아요. '미국의 그런 전략으로 말미암아 남조선 인민에게

피해가 가게 될지도 모를 중대한 사태에 책임져야 한다'고. 정말 위험한

사태입니다. 그건 그렇고 난 이런 이야기가 아니라 개인적 이야기를 하고

싶은데... 오슬로대학은 어떻습니까. 대우는 괜찮습니까?



박노자 : 노르웨이는 고물가 고임금 나라입니다. 임금은 비교적 높지만

세율도 높습니다. 적게는 36%에서 많게는 70%까지 갑니다.



리영희 : 복지국가의 문제가 그건데...



박노자 : 대부분 노르웨이 사람들이 체제에 큰 불만이 없습니다. 그만큼

혜택을 많이 받습니다.



리영희 : 미국적 지배력이 커질수록 전통적인 서구라파 나라들이

사회민주주의나 복지경제 정책을 그대로 유지하기가 어려워지겠지요.



히틀러 파시스트가 미국에서 부활한다.



박노자 : 요즘 유럽연합이 동구라파를 포함시키지 않았습니까. 폴란드,

체코 등의 나라들이 유럽연합에 완전히 동화되면 그 인구는 곧 4억명이

됩니다. 지금도 유럽연합의 화폐인 유로가 달러에 비해 훨씬 강세를 보이고

신흥시장에서 우세를 보입니다. 러시아 같은 경우는 지금 달러 사용이 거의

폐지되다시피 했습니다. 대신 유로화를 사용하고… 달러로 저축하는

사람들도 줄어들고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유럽이 미국에 대한 경제적

반격을 가하는 것이 아닌가...



리영희 : 그런데 이라크 전쟁과 함께 동구라파 국가들에 대한 미국의

지배권이 더욱 확고해졌어요. 벌써 7개 나라가 미국의 군사기지화됐는데,

이거 호락호락 유럽연합에 넘기지 않을 겁니다. 갈등이 앞으로 심화될

거예요.



박노자 : 진짜 목적은 중국과 러시아 침략이죠.



리영희 : 그럼요. 특히 중국에 대해서 카스피아해에서 파키스탄까지,

흑해에서부터 남부 인도양까지 포위했다구요.



박노자 : 인도와의 관계를 더 강화해서 인도를 괴뢰화하려고 노력하고

있지 않습니까.



리영희 : 파키스탄이 미국화되니까, 인도 총리가 20년 만에 베이징을

찾아와서 우호관계를 돈독히 했다 그래요. 파키스탄과 인도는 옛날 소련과

미국 있을 때 이쪽 붙었다 저쪽 붙었다 해서 알 수 없는데, 하여간 미국은

저 발틱해에서 인도양까지 중국을 포위하는 옛 소련연방을 다 지배하게

됐으니까. 2차대전 이후 가장 큰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셈이에요.



박노자 : 대륙의 큰 국가들에 대한 침략을 통한 완전한 자원지배, 그것을

목적으로 하는 것 같습니다.



리영희 : 자원은 두말할 것도 없고, 완전히 군사전략적인 포위망을 만드는

거지요. 미국이 한번 이렇게 잡으면 뿌리치기란 보통 어려운 게 아니에요.

우리 한국의 어떤 지식인이 이런 이야기를 했어요. 미국은 거머리와 같은

나라다. 거머리 알아요?



박노자 : 사람 몸에 붙어서 피를 빨아먹는... 대단히 좋은 비유이십니다.



리영희 : 한번 붙으면 배가 터지도록 뺐어먹지 않는 한은 절대 안 떨어지는

나라라는 거죠.



박노자 : 소련과 중국 바로 중간이 키르기스스탄 아닙니까. 지금 미군이

거기에다가도 주둔기지를 만들고 있습니다. 러시아는 독일과 프랑스와의

관계를 강화시켜서 나름대로 미국의 장래침략을 예상하고 지금 나름대로

대비책을 강구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리영희 : 91년에 아버지 부시가 이라크를 처부순 다음에 이른바

'신세계질서'를 선포했어요. 그러면서 몇 가지를 선언했는데,


첫째는 앞으로는 과거 소련처럼 미국에 대등한 힘을 가진 적대국가의

탄생을 절대 허용하지 않는다.


둘째, 미국의 권위나 이해관계에 동의하지 않는 중소국가들은 가능한 한

조속한 시일 내에 처리해버린다. 그것도 싼값으로!


셋째, 그러기 위해서 미국은 세계 전체 국가의 군사력을 합친 것보다

우세한 단일국가 군사력을 보유한다.


넷째는 군사적 방법이 필요할 때, 가능하면 유엔의 협조를 요청한다.

그러나 유엔이 동의하지 않을 때는 서슴지 않고 단독군사행동으로 처리한다.

이걸 지금 아들 부시가 그대로 해나가고 있어요. 그 가운데 셋은 거의

돼가고 있고. 잘못하면 1930년대 히틀러나 무솔리니, 프랑코와 일본

군국주의자들에 의해 일어났던 파시스트의 세계지배 시대가 이제 미국에

의해서 진행되는 겁니다.



'난 민족주의자가 아니야'



박노자 : 거의 제3차 세계대전으로 미국이 몰고간다고 봐야 되지 않습니까.

그 서곡들이 아닙니까. 결국 결정판은 아마 대중국, 대러시아 침략이

아닐까...



리영희 : 한 20년, 30년 뒤가 되겠지만.



박노자 : 저는 선생님의 이야기를 들으면 '역시 이 시대의 마지막

민족주의자'라는 생각이 듭니다. 어떻습니까?



리영희 : 난 민족주의자라기보다는 오히려 보편적 가치에 더 충실한

사람이에요. 난 대한민국을 무조건 추워올리고 충성 다하는 것은 아주

싫어하는 사람이야. 쇼비니즘과 맹목적 애국주의 참 싫어해요. 난 지난해

월드컵대회도 개인적으로 안 좋았어요. 그냥 '한국 잘한다'는 거하고

'대한민국 이겨라'라고 하는 거하고는 다릅니다. 나도 이기면 기뻐하는

사람이긴 하지만, 그렇게 흥분하고 감정적인 일치단결을 하는 것은 안

좋아한다고. 히틀러가 써먹을 수 있는 거지요.



박노자 : 지금 미국이 그렇게 돼가고 있는 거 아닙니까.



리영희 : 왜 뻘건 걸 전부 같이 입고 나오고 똑같이 박수치고 그래야

하냐고. (웃음) 제각기 옷을 입고 나와 '한국 이겨라' 하면 되는 거지.

그래야 인류보편의 평화와 인간과 민족끼리의 사랑이 생기고 그러는 거지.

개개 인간이 전부 같은 행위를 하는 것, 같은 생각을 하는 것, 같은 감정을

가지는 것은 위험한 거야. 게임이라는 건 져도 좋아. 한국이 져도 좋고...

(이 대목에서 옆에 있던 부인 윤영자씨의 한마디로 큰 웃음이 터졌다.

'이기는 게 좋지, 왜 지는 게 좋아요 절대 이겨야 돼, 게임은...)



박노자 : 이 위험한 전쟁의 위기시대에 남한 민중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당부의 말씀을 듣고 싶습니다.



리영희 : 첫째는 어떻게든 대통령이 바른 인식을 가져야 하는데, 미국에

자주적인 발언을 할 수 있는 여지는 없어보여요. 이번에 베이징 가서도

북한을 다자회담 속에 나오게끔 설득해달라고 후진타오 주석에게

이야기했다는데, 그건 미국의 대사가 할 소리지, 남한 대통령이 할

소리인가? (웃음)



둘째는 한국 사람들이 세계 지배야욕에 불타고 있는 미국 통치집단의

실체를 잘 인식해야 해요. 그중에서도 냉전시대 국가안보의 기둥이라고

했던 경찰이나 군대 같은 집단들이. 특히 군은 미국의 체제와 훈련과

멘털리티와 인간적 우호관계와 개인적 친소관계로 미국에 딱 붙어 있다고.

이런 체제를 빨리 고쳐야 한다고 생각해요. 마지막으로 특히 고쳐야 할

것은 한국의 보수 기독교 수구세력들이에요. 지난날 미국 선교사들에 의해

국가적으로 양육된 사람들의 미국 찬양이 아주 위험합니다. 유일신끼리는

완전히 배타적인 거 아니에요. 탈레반이 그렇고 부시가 그렇습니다.

용납하고 타협하고 서로 껴안아줘야 하는데, 톨레랑스가 생길 수 없는

거예요. 국내에서 전쟁을 부추기는 세력들, 또는 민족간의 전쟁에 박수치는

세력들이 많다는 것, 오히려 부시보다 더 걱정스러운 점이에요.



박노자 : 요즘 특별히 관심을 가진 문제는 없으신지요.



금강경〉을 읽으며 인생을 돌아본다



리영희 : 난 좀 내면적인 인생을 살고 싶은데… 자꾸 세상에 문제가 많으면

요청이 많잖아. 빨리 끊고 싶어. 난 요즘 불교경전을 봐요. 그 철학적인

사색이 참 좋아요. 불교는 생각하는 종교란 말이야. 지식인은 불교가 참

잘 맞아.



박노자 : 특별히 애호하시는 불경이나 고전이 있으십니까.



리영희 : 그저 난 '금강경'을 보지요. 아무래도 한문으로 읽어야 좋아요.

우린 한문세대니까, 한글로만 쓴 책은 굉장히 힘들어. 한자가 들어 있으면

빨리빨리 읽고. 일본책은 하루면 보는데, 한글소설은 한 사흘나흘 걸려.



박노자 : 저는 금강경에서 아주 감동적인 문구가 많았습니다. 특히

'凡所有相 皆是虛妄 若見諸相非相 則見如來'.



리영희 : '원래 모든 모습들이 다 바로 허망한 것이다. 만약 모든 모습들을

모습이 아닌 것으로 본다면 그것이 여래를 보는 일, 즉 깨닫는 일이다'라는

말인데, 참 깊지요.



박노자 : 리영희 선생님처럼 모든 역경과 모욕을 참으면서 한반도 주민들을

폭력의 도가니로부터 건지려고 노력하시는 것도 분명히 깨달음으로 가는 길

중의 하나라는 생각이 듭니다. 자신의 몸과 마음보다 남의 몸과 마음을 먼저

생각하시는 것은, 바로 자아와 중생, 중생과 부처가 둘이 아님을 깨닫는 그

경지가 아닌가 싶어요. 오늘 말씀 감사드립니다.



리영희 : '너의 대한민국' 책 (웃음) 한 100만부 나갔나? (박 교수의 저서

<당신들의 대한민국>을 두고 하는 말이다.)



박노자 : 하하 아직 그 정도까지는 안 됩니다. 선생님, 더욱 건강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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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마늘빵 > 추방된 자를 위한 변명(송두율)

2005. 7. 6 서울신문

 

[송두율칼럼] 추방된 자를 위한 변명

필자가 꼭 아홉 달 동안 갇혀 있었던 서울 구치소를 찾은 두 아들이 면회시간에 나에게 독거감방의 구조며 하루의 생활일정에 대해서 종종 물었다. 독일에서 낳고 자랐기 때문에 한국의 생활풍습도 낯설기도 했지만 전혀 예기치 못한 상황 속에서 긴장된 시간을 특수한 공간 속에서 보내고 있는 아버지의 생활환경이 더욱 궁금했을 것이다.

▲ 송두율 교수
‘감옥의 탄생’이라는 부제가 붙은 ‘감시와 처벌’이라는 저술을 통해 근대에 있어서 앎과 힘이 어떻게 결합되었는지를 파헤친 미셸 푸코(M Foucault)조차도 프랑스의 감옥 안을 직접 들여다볼 수 없었다.1970년대 중반에 들어서서 처음으로 그는 미국 인디애나주의 아티카시에 있는 감옥의 내부를 직접 들여다볼 수 있었다.

사회학에서 이른바 ‘총체적 제도’라고 불리는 이러한 공간은 구치소나 교도소외에도 병원 특히 정신병원, 병영, 학교 등을 의미한다. 이 모든 제도들이 안고 있는 문제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심각하다는 사실은 일반적으로 잘 알려졌다. 법률위반행위나 그에 대한 혐의로 구속된 사람, 병자나 정신이상자, 군복무자, 학생들을 일반사회로부터 격리시켜 엄격한 규율을 통해서 통제하는 과정 중에는 인권유린사태도 빈번하게 발생하고 이는 내부로부터 또 다른 반항적인 폭력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이로 인해 가끔 세간을 놀라게 하는 엄청난 사건도 발생한다. 한국에서는 남미처럼 재소자의 대대적인 폭동은 없지만 군대나 학교 또는 재활원 같은 곳에서 발생하는 크고 작은 사건은 많다.

특히 규율과 통제는 기본적으로 몸을 매개로 해서 이루어지는데 고문과 체벌은 그의 대표적 예이다. 군사정권 때와 비교하면 지금은 여러 가지로 재소자를 위한 조건들이 개선되었다고 하지만 구치소에는 아직도 징벌방이 따로 있다.

구치소내의 규정을 어기거나 폭력을 행사하는 재소자를 일정기간동안 이 방 속에 가두어 놓고 면회와 운동시간도 제한한다. 인적이나 물적으로 열악한 조건에서 교도관이 너무나 많은 재소자를 상대하다 보니 재소자 매 개인이 안고 있는 사연에 관심을 갖고 대화라도 나눌 수 있는 여유는 전혀 없다. 사회로부터 일단 배제되고 또 격리된 집단을 배려하기에는 여러 가지로 상황이 어렵다고 하지만, 이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이들에 대한 사회적 통념이다.

범죄자와 정신병자는 대개 ‘비정상’이나 ‘비이성적’ 존재이기 때문에 ‘정상적’인 사람들이 사는 사회로부터 격리 수용되는 것은 정당하며, 때로는 이들을 영원히 추방시켜도 된다는 주장이 있다. 이렇게 정상과 비정상, 이성적인 것과 비이성적인 것으로 나누어보는 이분법적 시각은 동성애자, 외국노동자 등에게도 적용된다. 특히 냉전적 사고구조 속에서 이른바 ‘빨갱이’를 죽여도 죄가 될 수 없다는 논리도 이러한 시각에서만 성립 가능하다. 이렇게 조건반사처럼 작동하는 선별과 배제의 논리는 주로 집단적 기억과 관습에 의존한다. 그러나 ‘정상’과 ‘비정상’을 구별하고 이를 학문적으로 뒷받침하는 법학이나 임상심리학과 같은 지식체계 없이는 그러한 배제의 구조도 견고하게 유지될 수 없다.

그러한 지식체계를 또 대중화시키는 정보매체가 지배하는 오늘날 그러한 배제에 대한 저항은 저항가요를 반복해서 부르는 식으로는 성공될 수 없다. 때로는 싸우는 대상이 하도 한심하기 때문에 싸우는 자신마저도 초라하게 느껴졌지만 그래도 전투적 자세를 취하지 않고서는 가령 감옥과 정신병원의 비인간적이며 폭력적인 구조와 싸울 수 없었다고 푸코는 술회한 적이 있다.

그는 또 진리라는 이름 밑에서 법이나 관습이 어떤 선을 그어 그 선을 넘어서서는 안 된다고 항상 우리에게 경고를 보내고 또 우리를 처벌하지만 그의 진정한 의도는 기존의 권력체계 유지에 있다고 고발한다. 생산적인 것은 어느 한 곳에 정착한 사람들의 것이 아니라 유목민의 것이다. 흐르는 물이 썩지 않는 것처럼 이제는 우리 자신도 과거의 관습과 법이 정한 테두리 밖으로 나와 오늘의 세계가 필요로 하는 보편적인 사회적 약속이 어떤 것인지를 우리 모두 생각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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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바람구두 > 무의식의 발견 : 프로이트와 그 이후 - 정장진

무의식의 발견 : 프로이트와 그 이후 - 정장진

일상적으로 사용되는 범박한 의미로서가 아니라 하나의 개념으로서 혹은 하나의 체계로서의 무의식은 발음하는 순간부터 인식론 상의 심각한 모순을 드러내는 것으로 보일 수 있다. 무의식에 대해 말하는 의식의 무의식에 대한 인식을 상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무의식은 홀로 존재하지 못하며 의식의 모든 층위에 있어서의 활동과 표리 관계를 이루고 있는 의식의 일부이자 동시에 반대물이기도 한 것이다. 의식 없이는 무의식도 없다. 사람이 죽었는데 혹은 뇌사 상태인데 무의식이 어디에 있겠는가? 의식이 없을 때 무의식도 없다. 하지만 개체가 아니라 개체들의 관련과 그 관련의 집단적·역사적 추이, 즉 계통이 문제일 경우 무의식은 다른 형태로 존재한다. 정신분석은 이 지점에서 형이상학을 향해 겨누었던 칼날을 거두어들일 것이다. 정신분석이 의학이라는 정밀하고 임상적인 세계의 유혹을 받는 것도 바로 이 지점에서이다.

따라서 무의식의 발견자로 인정되는 프로이트의 업적은, 흔히 말해지는 것과는 달리, 위에서 거칠게 구분해 본 형이상학과 의학 혹은 개체와 계통의 갈등을 견디어 낸 방식에서 의미를 갖게 된다. 즉 굳이 말한다면 그의 업적은 무의식의 발견에 있는 것이 아니라 무의식을 의식의 단계로 혹은 의식을 무의식의 단계로 확대한 것에서 논의되어야 할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프로이트 이전에 무의식이 의식과 맺고 있던 관계와 프로이트 이후에 달라진 모습을 살펴보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프로이트 이전의 무의식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1818)에서 쇼펜하우어가 말하는 의지는 존재의 뿌리 부분에서 움직이는 비이성적인 힘이었다. 자연 만물을 지배하는 이 힘의 정점에 완결된 형태로 존재하는 것이, 지성을 압도하는 의지의 프리마를 믿었던 쇼펜하우어의 인간관이었다. 한편 칼 구스타프 카루스는 감정을 무의식이 의식에게 하는 고백이라고 정의했고, 후일 E. 폰 하르트만은 그의 저서 『무의식의 철학』에서 무의식이 보편적 영혼을 표상한다는 헤겔식의 일종의 범신론을 편다. 이러한 심리주의는 물질에까지 심리를 적용하는 우스꽝스러움을 보였지만 신경 계통과 유전적 요인들의 영향이 명백해진 오늘날, 물질의 심리론을 편 이들의 주장은 웃을 일만은 아니다. 당시의 실증주의와 자연주의의 분위기 속에서 무의식은 보편성을 획득해야만 했던 것이다.

형이상학자들의 무의식에 대한 접근은 곧 이어 의학자들의 경험을 통해 구체성을 띠고 입증된다. 특히 먼저 주목을 받았던 것이 히스테리 증상이다. 왜냐하면 외부로 가장 다양하고도 가시적인 방식으로 표현됨으로써 무의식의 불가해한 속성을 잘 드러내 주는 질병이 히스테리였기 때문이다. 동시에 유행한 것이 최면 요법이었다. 특히 이름이 거론될 만한 의사들로서는 피에르 자네, 비네, 리보와 샤르코를 꼽아야 할 것이다. 샤르코는 히스테리가 육체의 질병이 아니라 정신병이라는 것을 최초로 입증해 보인 인물이었고 후일 프로이트도 유학을 와 공부를 하게 되는 유명한 <살페트리에르 학파>의 창시자였다. 또한 낭시 학파도 함께 거론될 수 있다. 하지만 이들은 모두 무의식의 정신적 존재와 의식의 통제를 벗어난 자동성을 입증했을 뿐 이 현상의 규모와 내용을 밝혀 낼 수 없었고, 특히 그 기원에 대해서는 속수무책이었다. 비록 샤르코는 암시 및 히스테리의 정신적 기원과의 관련성 및 자동 기술을 입증했지만 언어와 언어 치료의 가능성에 대한 발견은 프로이트의 몫으로 남는다. 피에르 자네의 경우에도 디소시아시옹dissociation, 즉 의식과 무의식의 분리라든가 잠재적인 고정 관념 등 매우 중요한 개념을 발견해 내기는 했지만 샤르코와 마찬가지로 무의식의 기원과 언어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둔감할 수밖에 없었다.

프로이트의 무의식
1885년 파리의 살페트리에르로 유학을 온 프로이트는 히스테리와 최면 요법의 실체를 직접 확인한다. 특히 4년 후 프랑스를 다시 찾은 프로이트는 낭시에서 매우 소중한 발견을 하게 된다. 즉 그는 『나의 삶과 정신분석학』이란 책 속에서 스스로 회상한 바 있듯이, 최면이 풀렸을 때 환자가 최면 상태에서 자기가 행한 것에 대해 완전한 무지 상태에 있다는 사실을 통해 프로이트는 의식을 벗어나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무의식에 대해 확신을 하게 되는 것이다. 이어 결정적인 사건은 빈의 의사 브로이어와의 만남이다. 신경증 환자들의 증세들이 과거의 사건과 관련되어 있고 언어를 통한 과거 회상이 종종 치료 효과를 낸다는 것을 확인한 것이다.

이에 덧붙여 프로이트 자신의 자기 분석의 중요성을 꼽아야 할 것이다. 이 자기 분석의 경험은 프로이트로 하여금 평생 동안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고 견지할 수 있게 한 동력이었다. 이는 그 유명한 플리스와의 서신 교환에서 단초를 보이기 시작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의 발견이나 꿈의 해석, 나아가서는 문학 작품을 비롯한 예술 작품에 대한 해석으로 연결되는 일련의 문화적 정신분석학과도 관련된다. 자기 분석과 아울러 지적되어야 할 것이 오이디푸스와 햄릿 혹은 독일 낭만주의로부터 영향을 받은 프로이트의 인문적 교양이다.

이러한
분석 과정에서 핵심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것은 유아기의 성의 존재와 성의 억압이란 두 가지 개념이다. 많은 비난이 쏟아진 이 두 개념은 우리가 흔히 리비도라는 말로 지칭하는 개념으로 정리된다. 환자들의 정신 질환의 대부분이 성경험과 관련되었다는 것은 실증적으로 입증이 되었으며 나아가 이 두 개념은 프로이트의 심리학에 있어 무의식, 전의식, 의식의 표면적 구분으로 이루어진 일차 구조에서 자아, 초자아, 이드로 구성된 새로운 의식의 구조를 가정하게 함으로써 정신분석학이 문화적 현상에 대한 분석 도구로 사용되는 길을 터놓기도 한다. 이는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이나 다윈의 진화론에 비견되는 일대 혁명이었다.

프로이트 이후의 무의식
신체에 대한 열등 의식 개념을 무의식의 중심 테마로 간주한 아들러Alfred Adler는 프로이트로부터 제일 먼저 떨어져 나간 사람이다. 그러나 니체를 연상시키는 권력에의 의지와 보상 심리 등이 육체의 이미지에 대한 열등 의식과 맺고 있는 상관 관계는 무의식적인 현상으로 보기에는 지나치게 논리적이다. 또한 이는 이미 프로이트의 글에서, 특히 꿈이나 상징에 대한 해석에서 언급되었던 무의식적 표상 행위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두 번째로 프로이트로부터 멀어진 사람은 스위스 인인 융Carl Gustav Jung이었다. 종교적 상징과 영혼의 존재를 믿었던 융은 형이상학과 종교적 열정을 무의식과 연결시키면서 프로이트가 무의식의 발원지로 여겼던 성의 역할을 완화시킨다. 융은 무의식이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변화하는 것으로 보았다. 이러한 변화는 필연적으로 고정 불변하는 원형 개념을 필요로 하게 했고 그의 집단 심리학은 이러한 구도에서 발생하게 된다. 융의 무의식이 문학이나 신화 분석, 나아가서는 인류학 등에서 흔히 차용되는 이유의 일단도 여기에 있다.

위의 두 사람에 비해 오토 랑크Otto Rank는 문학 분야에서 탁월한 분석을 보여준 학자다. 그의 탄생 콤플렉스는 프로이트의 리비도를 대체하려는 것이었다.

영국으로 귀화한 멜라니 클라인Melanie Klein은 자신의 아이을 포함해 어린아이들, 특히 오이디푸스 기 이전의 시기, 즉 구강기와 항문기의 유아들을 분석의 중심 대상으로 삼는다. 클라인은 프로이트의 리비도와 파괴 충동을 결합시켜 이로부터 <좋은 엄마>와 <나쁜 엄마>의 개념을 창안해 낸다. 따라서 클라인은 무의식의 상징 체계에 대한 분석보다는 환상과 상상적인 것에 보다 많은 연구를 할애하게 된다.

마지막으로 꼽아야 할 인물이 있다면 자크 라캉Jacques Lacan일 것이다. 프랑스 인들에게도 난해하기로 소문이 난 이 철학자 겸 정신과 의사인 라캉은 이른바 구조주의로 통칭되는 50~ 60년대의 지적 풍토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라캉의 첫번째 문제 제기는 거울 단계라는 개념으로부터 시작된다. 이 개념은 거울에 비친 상과 육체의 완결된 이미지 사이에 관련된 환상을 총칭하는 시기로 대략 생후 6개월에서 18개월 사이의 기간이 이 시기이다. 나르시시즘에 대한 라캉식 해석이라고 볼 수 있다. 이 개념은 후일 상상계, 상징계, 현실계 등의 구분으로 세분화되기에 이른다. 이 작업은 이른바 프로이트로의 복귀, 혹은 프로이트 다시 읽기로 불리는 과정으로서 구조주의, 특히 언어학의 영향 아래에서 프로이트를 다시 읽는 과정이기도 하다.

시니피앙, 시니피에의 개념 차용에서 엿볼 수 있듯이 라캉의 언어학에 대한 의존은 상당한 것이었다. 라캉의 모든 개념은 시니피앙과 시니피에의 정신 분석적 응용에서 유래했다고 봐도 무리가 아닐 정도이다. <무의식은 언어처럼 구조화되어 있다>라고 말했을 때 시니피앙과 시니피에의 자의적 만남은, 다시 말해 마그리트의 그림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나 「이것은 사과가 아니다」가 일러주듯 사물 그 자체와 언어 사이에는, 하등의 필연적 관계가 없다. 한국어로는 사과이지만 프랑스 어로는 폼이고 영어로는 애플인 것이다. 최초의 결핍 상태로부터 시작되는 욕망과 대상 사이의 끝없는 불일치는 정신분석에 와서는 은유와 환유의 메커니즘으로 해석된다. 라캉의 <상징계>는 궁극적으로 한 개인의 차원을 넘어서서 집단적이고 역사적으로 형성된 확고 부동한 규범과 규약의 총체로서의 언어를 지칭하며 <무의식은 타자의 담론>이라고 했을 때에도 대문자로 표기되는 <타자>란 요컨대 욕망과 충족 사이의 운명적인 괴리를 만든 원 존재로서의 언어를 지칭한다. 이러한 언어의 초월성은 프로이트의 삼각형, 즉 아버지, 어머니, 아이의 관계 속에 각자의 위치와 기능을 부여하는 별도의 존재로 언어를 가정하게 했다. 이로 인해 어머니나 아이와 쌍을 이루는 아버지가 아니라 아버지를 아버지이게 하는 지고의 존재로서의 이마고, 즉 아버지의 이름이 존재할 수 있게 된다. 이를 라캉은 <상징적 거세>라고 불렀다. 실제로 아이의 언어 습득과 욕망의 관계에서 볼 때 이미 그 자체로 괴리인 언어는 이렇게 진정한 대상을 찾지 못하는 욕망과 대상 사이의 괴리와 동형 동질의 것이다.

맺는말
무의식은 프로이트 이전부터 존재했었다. 하지만 그것의 있음이 이름을 얻게 된 것은 최근의 일이며 진원지와 구조가 알려지게 된 것은 더 더욱 최근의 일이다. 프로이트 이전의 시대의 무의식이 관념론에 침윤된 비분석적인 개념이었다면 프로이트는 이를 정신 질환의 임상적 경험과 자신의 체험을 통해 분석하고 개념화의 초석을 놓았다. 형이상학을 거부했지만 프로이트는 두 차례에 걸쳐 메타 심리학의 정치한 구조를 가정했고 이는 후일 라캉에 와서 언어학의 도움을 받아 비종교적 신학의 모습을 띠고 나타나게 된다. 프로이트와 그 이후의 정신분석가들은 융과 같은 몇몇 예외를 제외하면 모두 기독교의 강력하고도 완벽한 체계 속에서 <신은 죽었다>가 아니라 그보다 훨씬 더 근본적인 부정인 <신은 인간이 만들었다>는 주장을 한 것이다.

글쓴이 정장진은 고려대학교 불어불문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하고, 파리 8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고려대와 덕성여대 대학원에 출강중이다. 역서로 『뉴욕 스케치』, 『붉은 수레바퀴』, 『성탄절 이야기』, 『연인』, 『창조적인 작가와 몽상』, 『예술과 정신분석』 등이 있고 저서로 비평 에세이 『두 개의 소설 혹은 두 개의 거짓말』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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