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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원 킨트
배수아 지음 / 이가서 / 2002년 10월
평점 :
품절
‘배수아의 소설을 좋아한다’라고 말하는 순간 해방감이 느껴지는 것 같은 생각이 든다. 그 해방감이란 것은 뻔하고 일상적인 것에서의 해방감이다. 배수아의 전작들을 보고 있노라면 그런 생각들이 자연스럽게 들게 마련이다. 일련의 한국 소설이 보여주는 정형성에서 벗어난 배수아의 소설은 감각적이면서 들뜨지 않고 세련된 듯 하면서도 조금은 어리숙한, 그래서 매력적인 소설이다.
아는 독자들은 다 알겠지만 배수아는 공무원으로 오랜 시간 근무해왔다. 그런 면이 부각되어 소설 쓰는 직장인 혹은 소설 쓰는 공무원이라는 꼬리표가 항상 따라다녀 작가를 부담스럽게 한 것도 어느 정도는 사실이다. 인터뷰를 할 때마다 그런 질문이 꼭 들어가 있으니 수십 번 대답하는 입장에서는 짜증이 날 만도 한 것이다. 어쨌든 이제 배수아는 더 이상 공무원 소설가가 아니다. 회사를 그만 두고 이제 쉬는 시간을 갖기로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선택한 것이 바로 여행이다. 여행의 행선지는 독일. 전작 <이바나>에 이어서 이번 소설 <동물원 킨트>도 모두 독일에서 쓴 소설이다. 독일과 배수아를 매치 시키면 잘 어울린다는 느낌이 든다. 프랑스와 배수아를 매치 시키면 잘 어울리지 않는다는 건 말랑함 보다는 딱딱함이 촉촉함 보다는 건조함이 더 배수아에게 잘 어울린다는 것을 드러내 준다.
<동물원 킨트>의 주인공은 명확한 성별의 구분도 없다. 여자 쪽에 가깝지 않는가 하는 생각이 들지만 명백하게 여자라고 말 할 어떤 근거는 없다. 소설에는 제목에 등장하는 동물원이 내내 등장한다. 동물원을 너무나 좋아한 나머지 동물원을 갖고 싶어하고, 나중에는 스스로 동물원이 되고자 하는 주인공. 점차 시력을 잃어가고 있는 중이며 언젠가는 시력을 완전히 잃게 될 거라는 의사의 진단을 받은 주인공은 동물원에서 일하기 위해 모니터링 원고를 쓰며 하루하루를 보낸다.
시력을 잃어간다는 건, 그리고 언젠가 시력을 완전히 잃게 된다는 건 어떤 의미에서는 삶과 죽음을 대변하는 것처럼 보인다. 살아가고 있지만 사실은 죽어가고 있는 것이며 언젠가는 생을 마치고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가슴 찡한 사랑 이야기가 나오는 것도 아니고 극적인 사건이 전개되는 것도 아니지만 동물원 킨트는 한 번 손에 잡으면 쭈욱 읽히는, 독자를 끌어당기는 맛이 있는 소설이다. 배수아 특유의 건조함과 고독, 절제된 슬픔과 아픔들이 어우러져 독일을 배경으로 펼쳐진다. 스스로 이야기한 바 대로 소설에는 오문과 비문이 존재한다. 어떤 것은 의도한 것이고 어떤 것은 의도한 것이 아니지만 그 조차도 이 소설 속에서는 매우 자연스럽다.
배수아 소설이 불편하다면 아마도 그건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표준’, ‘정상’, ‘주류’라는 가치관에 길들여져 있기 때문일 것이다. 배수아 소설을 읽고 고개를 끄덕이거나 만족감을 느낀다면 그건 아마도 삐딱이 기질이 농후한 사람일 것. 단, 여기서 말하는 삐딱이라는 것은 단지 왜곡된 시선으로 세상을 대하는 사람만이 아니라 좀처럼 치유될 수 없는 상처를 안고 있어서 항상 외로움에서 벗어날 수 없고 결국은 언제나 혼자라는 결론에 동의한 사람들을 칭한다.
고립이라는 것은 정말 멋진 것이며 그것은 거의 쾌락의 차원이라고 말하는 작가 배수아. 부디 그가 오래오래 소설 쓰기에 전념할 것을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