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일락 붉게 피던 집
송시우 지음 / 시공사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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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일락 붉게 피던 집》

 


 

우리가 가지고 있는 기억 이란 것은 얼마나 정확한 걸까. 우연히 다시 보게 된 영화의 결말이 내가 기억하고 있던 것과 너무 달라 새로운 영화를 보는 것 같은 착각이 들거나 오랜만에 만난 동창들이 하는 당시 이야기가 서로 다를 때 사람의 기억이란 것이 참 믿을게 못 된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아니면 내가 그저 기억하고 싶은 데로 기억하는 건 아닐까 생각하기도 한다. 받아들이기 힘든 기억들은 각색하거나 아예 지워버리기도 하니까.

 

《라일락 붉게 피던 집》은 이런 ‘기억’을 소재로 하고 있다. 대중문화평론가로 대중과 방송에 이름이 오르내리는 유명인 ‘현수빈’과 그녀의 남자친구인 ‘박우돌’은 어릴 적 한 다가구주택에 함께 살았던 소꿉친구다. 수빈이 자신의 유년기에 대한 칼럼을 연재하게 되면서 둘은 과거 그들의 집이었던 ‘라일락 하우스’에 함께 세 들어 살던 사람들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게 된다.

 

방은 5개, 그 방 하나에 하나의 식구가 세 들어 살았다. 주인공 수빈이네 식구 네 명, 건넌방에 20대 초반 언니들 세 명, 문간방에 총각 하나, 별채 두 칸의 방에는 박우돌의 식구 넷과 신혼부부 둘이 각각 살고 있었다. 1980년대 중반. 지금 같으면 그냥 한 가족이 살 법한 집에 대체 몇 명이나 살았던 걸까?

 

주인공 수빈과 나는 같은 또래다. 나 또한 그 시대에 유년기를 보냈다. 알전구, 석유풍로, 연탄아궁이, 그 많은 사람들 집에 단 하나밖에 없던 재래식 화장실과 마당 한 쪽에 있던 하나의 수돗가. 그들은 아마도 보이기 싫던 치부들도 들켜야 했을 것이고 다들 비슷비슷한 형편이었지만 조금씩 다른 삶의 모습에 질투하고, 시샘하고 때론 같은 처지를 이해하며 보듬어 가며 살기도 했을 것이다.

 

주인공은 그런 집과 사람들을 떠올리다 내친김에 그때 같이 살던 사람들을 수소문하는 글을 블로그에 올린다. 그녀는 연재 중 문간방 총각의 연탄가스 중독 사망사건을 기억하고 칼럼을 쓰게 되는데 그 칼럼을 보고 당시 사건을 조사했다는 은퇴한 경찰을 만나게 된다. 그녀는 그 사건에 뭔가 석연찮은 비밀이 있음을 직감하고 블로그와 연재를 보고 연락을 해온 과거의 사람들을 만나게 되면서 자신이 몰랐던 사실에 대해 조금씩 알아간다.

 

그녀는 그때 7살이었다. 어린 아이의 기억과 어른의 기억이 같을 리 없고, 과거의 사람들은 각자의 생각하는 기억들을 말하지만 다들 조금씩 다르다. 그러나 그 단편적인 기억들이 뭔가 조금씩 아귀를 맞춰가며 형태를 띠기 시작하자 그녀의 지지자였던 애인 우돌이 강한 거부감을 표현한다. 죽은 총각과 우돌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우돌은 무엇을 알고 있는 걸까?

 

소설은 과거 문간방 총각의 연탄가스 중독 사건의 비밀을 찾는 과정에서 당시 라일락 하우스에 함께 살던 사람들의 다른 은밀한 비밀들을 드러낸다. 그 비밀은 누구에겐 봉인된 고통의 해방구였지만 누구에겐 비극의 씨앗이 된다. 비밀은 드러났어야 했을까? 진실은 꼭 밝혀져야 하는 걸까?

 

불완전하고 불안전한 기억들이 어떤 계기로 의식의 수면위로 떠오를 때 우린 감당하긴 힘든 진실을 마주해야할 고통을 겪어야 할지 모른다. 한 없이 안전하고 따뜻하기만 했을 것 같은 나의 유년도 알고 보면 추악한 진실을 감추고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난 안전하지만 그런 무의식의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트리거’는 내 인생 언제, 어디에서 불쑥 나타날지 모른다.

 

소설은 인간의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며 씁쓸한 결말을 맺는다. 소설 초반부에 깔아놓은 복선들이 모여 결말을 향해 달려간다. 누구는 해방되고 또 누구는 절망으로. 이래서 내가 ‘미스터리’를 좋아한다. 도대체 한시도 편안하게 살게 놔두지 않는다. 적자생존, 유전무죄 무전유죄의 잔인한 법칙이 지배하는 이 거친 세상에, 어쩔 수 없이 끝이 정해져 있는 듯해 무료한 내 인생도 뭔가 비밀을 가지고 있을지 모르는 특별한 인생으로 여기게 만드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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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여우가 잠든 숲 세트 - 전2권 스토리콜렉터
넬레 노이하우스 지음, 박종대 옮김 / 북로드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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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우가 잠든 숲 1,2》

 


 

참 예쁜 표지라고 생각했다. 푸른빛이 도는 숲은 아직 해가 뜨지 않아 어슴푸레하고 안개가 끼어서 인지 다소 몽환적인 느낌이 들었다. 나는 이런 숲이 좋다. 근처에 호수가 있고 키 큰 나무들이 서 있어 어느 곳에도 신비한 비밀이 숨어있을 것 같은 그런 곳. 그러나 현실은 자연의 아름다움과 대비되며 상상치도 못할 진실로 우리를 이끌기도 한다. 아름답고 평화롭게만 보이는 그 곳이 과연 진실로 그러했던 걸까?

 

책장을 펴자 나오는 지도, 빽빽이 소개된 등장인물들의 생소한 이름. 독일 작가의 작품이라서 그런지 이름도 지명도 눈에 익지 않아 읽는데 조금 힘들겠단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이 많은 등장인물들이라니. 작가 ‘넬레 노이하우스’의 작품은 처음이라 조금은 긴장하며 책장을 넘겼다. 다행히 문장이 짧아 리듬이 경쾌했다.

 

소설은 아주 중요한 단서가 될 1972년의 8월 31일의 이야기를 1인칭 시점으로 짧게 들려주며 시작한다. 그리고 40여 년이 흐른 현재 2014년 사건이 시작된다. 소설의 배경이 된 ‘타우누스’ 지역 숲 속 캠핑장에서 캠핑카가 불타는 사건이 발생하자 주인공인 ‘올리버 보덴슈타인’ 반장과 동료 ‘피아’가 현장으로 출동한다. 소설 속에선 여러 명의 목격자와 용의자가 등장하는데 이 인물들이 소설의 후반부까지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다.

 

화재사건은 캠핑카 안에서 불에 탄 희생자가 발견됨에 따라 살인사건으로 바뀌게 되는데, 주인공 올리버의 고향인 인근 ‘루퍼츠하인’ 마을 요양원과 성당에서 연달아 살인 사건이 발생한다. 올리버는 수사를 통해 이 사건이 어릴 적 자신의 가장 친한 친구이던 ‘아르투어’ 와 자신이 길들인 여우 ‘막시’가 함께 실종된 미재사건과 관련 있음을 알게 된다.

 

소설은 현실 속 세 건의 살인사건과 과거 아르투어의 실종사건 두 가지로 나뉘게 되고 현실의 사건은 피아가 올리버 자신은 과거 친구의 실종사건을 조사하기로 한다. 한편 올리버는 이 사건을 마지막으로 1년을 쉬겠다며 휴가 계를 낸 상태인데 피아는 그가 영영 돌아오지 않을까 걱정한다. 소설은 살인사건과 올리버의 휴가 때문에 느끼는 피아의 착잡한 심정, 강력반 내부의 정치 상황 등이 비등하게 전개된다.

 

소설은 1권 4분의 3이 넘는 지점까지 새로운 인물들이 등장해 등장인물들의 과거와 현재의 관계를 이해하면서 읽어야 했기 때문에 책장이 쉽게 넘어가지 않았다. 또한 강력반 내부의 인물들의 관계도 다를 바 없었기 때문에 더욱 그러했다. 이건 아마 내가 이 작가의 ‘타우누스’시리즈를 처음 접했기 때문인 이유도 있다 싶다.

 

소설은 모든 관련 인물들이 등장하여 각각의 과거와 현재 관계들을 보여준 그 이후부터 2권 마지막까지 숨 막힐 듯이 전개된다. 봉인되고 각색된 과거의 기억이 하나둘 불려나올 때마다 주인공과 독자 모두 그 끔찍함에 놀라게 된다. 자신과 가족을 지키기 위해 자행되는 일이 누군가에겐 죽어서도 잊지 못할 아픔이 되기도 하며, 누군가는 그 비밀을 빌미로 사람들을 통제하는 권력을 갖기도 하고 심지어 또 누군가는 그런 자를 뒤에서 조종한다.

 

대체 악의 근원은 어디이고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인간의 본성은 선인가 악인가? 부모가 자녀의 인성 형성에 미치는 영향은 어디까지 인가? 한 마을 안에서 서로의 집에 숟가락이 몇 개인지 까지 아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진정으로 서로를 위하는 공동체일거라 생각한다. 그러나 그 안에 어떤 비밀을 공유하는 순간 그들은 서로를 감시하고 옥죄는 제일 끔찍한 집단이 된다.

 

올리버를 비롯한 어린 시절 아이들은 실제로 ‘마피아’의 관계와 같았으며(비밀을 공유하고 힘의 알력이 존재하며, 이방인은 악이고 배신은 곧 죽음인) 그 관계는 그 마을 어른들도 마찬가지였다. 이방인을 철저하게 무시하고 배척하며 서로의 안위를 위해 각자의 범죄와 허물은 은폐한다. 비밀의 누설은 곧 사회적인 죽음과 같았다.

 

소설을 읽는 내내 그 끔찍함과 잔인함, 어떠한 말로도 표현할 수 없는 근원적인 ‘악’을 마주보며 경악했다. 과거의 비밀이 대체 무엇이기에 범인은 그 하나를 감추기 위해 살인을 저질러야 했던 것일까. 소설은 그 마을이 가진 비밀의 무게만큼이나 비밀을 밝혀가는 올리버와 피아의 활약도 중요하게 다룬다. 사람들을 탐문하고, 심문하는 과정 하나하나가 현실적이고 흥미로웠다.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의 캐릭터는 생생히 살아있었으며 그 관계들의 치밀함도 대단했다.

 

왜 작가가 독일을 대표하는 미스터리의 여왕인지. 독일을 넘어서 전 세계인의 사랑을 받는 작가인지 충분히 납득이 될 만한 작품이다. 처음엔 자신의 작품을 직접 인쇄하여 차고에 쌓아 놓고 팔았다던 작가가 이렇게 성장할 줄 누가 알았을까. 자신이 살고 있는 도시를 배경으로 작품을 쓰는 것이 얼마나 멋진 일인지 생각한다. 우리 동네를 대표하고 우리 동네에서 벌어지는 가상의 이야기를 쓰는 작가가 우리나라를 대표하고 전 세계인에게 사랑받는 작가라면! 생각만 해도 짜릿하다. 우리 동네 ‘도원동’의 이야기를 쓰는 작가를 기다리며. 작가의 다른 작품도 꼭 읽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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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너를 본다 미드나잇 스릴러
클레어 맥킨토시 지음, 공민희 옮김 / 나무의철학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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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너를 본다》



 

생각해 보면 우리의 일상은 얼마나 판에 박힌 듯 돌아가는지. 늘 같은 시간에 집을 나서서 같은 시간에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고 특별한 일이 없다면 또 같은 시간에 회사를 나와 집에 돌아가는 똑 같은 일상. 지하철을 이용하다보면 타고 내리기 쉽거나 노선을 바꿔 타기위한 가장 최적의 위치를 이용해서 이동시간을 최소화 하는 방법을 터득하기도 한다.


그런데 만일 자신의 이런 생활패턴이 범죄의 표적이 된다면? 매일매일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 존재하는 사람, 누군가 관심 있게 지켜본다면 그 사람에 대한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과거 세상이 험악해 지지 않았을 땐 이런 패턴 속에서 사랑이 싹트기도 했지만 말이다. '늘 지켜봤어요' 이런 식상한 멘트가 어울리는.


소설은 어쩌면 특별한 추억이 될지도 모르는 이런 상황을 끔찍한 범죄의 순간으로 만들어버린다. 주인공 '조 워커'는 늘 같은 시간, 같은 지하철 같은 길만 걸어 부동산 회사로 출 퇴근 한다. 몇 년 전 이혼을 했고 이제 성인이 된 아들 딸, 애인과 함께 살고 있다. 그러다 우연히 신문 광고란에 실린 자신의 사진을 보게 된다. 아무런 정보도 없이 웹사이트 주소와 전화번호만이 적힌, 아무리 봐도 채팅모델을 광고하려는 것이 분명한.


그녀는 이런 사실을 가족들과 친구에게 말하지만 그저 그녀와 비슷해 보이는 사람일 뿐이라고 안심시키려 한다. 소설은 이 외에 특별한 사건 없이 그녀의 일상을 묘사한다. 늘 같은 삶을 살아오던 일상에 생긴 작은 파문으로 인해 그녀는 마치 과대망상이나 히스테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만큼 불안함을 느낀다.


주인공은 그 신문에 다른 여자들의 광고가 이어지고 있으며 심지어 그 여자들이 범죄 피해자가 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게 된다. 그녀는 소설 속 또 한명의 주인공인 경찰 '켈리'에게 이런 사실을 제보하게 되고 그녀의 불안은 단지 과대망상이 아님이 밝혀진다.

 

소설은 범죄의 표적이 된 여성 '조'의 일상과 대학생 때 쌍둥이 동생이 당한 성폭행 사건의 트라우마를 지닌 탓에 경찰이 된 후 다른 성 범죄의 용의자를 폭행하는 바람에 정직당한 경험이 있는 여성 경찰 '켈리'의 사건 해결을 위한 분투를 교차 시키며 이어간다.

 

하나 둘 증거가 발견되지만 조의 일상은 여전히 두려움으로 가득하다. 그러다 켈리에게 듣게 된 결정적 증거에서 조는 경악할 만한 사실을 알게 된다. 이후 충격적인 범인과 주인공들이 벌이는 한판 두뇌게임은 이 소설을 절정으로 이끈다. 지루할 만치 이어지는 초반의 심리묘사와 대비되는 후반부의 속도감, 마지막에 발견하게 되는 반전은 너무도 놀라웠다.

 

얼마 전에 마이클 코넬리 소설을 원작으로 한 드라마 ‘보슈’ 시리즈를 본 적이 있다. 보통 그 전까지는 소설 1권으로 영화 1편을 만든다고 생각했는데 이 드라마를 보고 소설 한 권이 드라마 10여 편으로 만들어 질 수도 있구나 생각했다. 그렇다면 바로 이 소설이 드라마 시리즈로 만들어지면 어떨까 생각했다. 주인공과 가족, 주변 인물들의 캐릭터가 현실감 있고 소설을 이끌어 가는 다른 축인 켈리를 중심으로 한 경찰 조직의 활약. 돌이켜보니 어쩌면 작가는 이런 걸 염두에 둔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들 정도로 소설의 묘사는 치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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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수첩 버티고 시리즈
이언 랜킨 지음, 최필원 옮김 / 오픈하우스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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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수첩》

 


 

《매듭과 십자가》《숨바꼭질》《이빨자국》《스트립 잭》에 이은 ‘이안 랜킨’의 존리버스 시리즈 《검은 수첩》. ‘스트립잭’을 제외하고 실시간으로 다 읽고 있는 유일한 시리즈다. 이번 작품의 특징이라면 ‘작가의 말’ 에서 이언 랜킨이 밝힌 경제적 글쓰기가 아닌가 한다. 이는 ‘스토리에 특정 캐릭터가 필요하고 그 캐릭터가 지난 작품에 등장한 경우 새 인물을 창조하는 것보다 그들을 다시 불러내 쓰는’ 것을 말한다.

 

시각 장애인 ‘매튜 밴더하이드’나 ‘잭 모튼’ 경위가 다시 등장하여 활약을 보여주고, 동생 마이클이 그의 인생에 다시 등장하며, ‘이빨자국’에서 등장했던 빅제르라 불리는 캐퍼티도 악역으로 등장해 존 리버스와 대립각을 세운다. 그리고 이번 작품에서 새로 등장하는 아주 중요한 인물이 바로 ‘쇼반 클락’이다. 그녀는 소설 초반 다쳐서 병원에 입원한 홈스를 대신해 존 리버스와 파트너가 되어 경쾌한 리듬을 만들어 낸다.

 

소설은 남성 두 명이 시신을 바다에 유기하는 것으로 시작하여 정육점 앞에서 누군가 칼에 찔리는 큰 비중이 없어 보이는 일상적인(?) 사건이 일어나며 전개 된다. 그러는 중 리버스의 인생에 살짝 엇박자가 나기 시작하는데 애인의 집에서도 쫓겨나고 동생 마이클이 등장해 대학생들에게 세놓았던 자신의 아파트에서 그들과 함께 살게 된다. 게다가 파트너인 홈스가 어떤 이유에선지 피격당해 혼수상태로 병원에 입원까지 하게 된다.

 

리버스는 앞서 말한 사건과 빅제르를 잡기 위한 공정거래원의 작전인 ‘Money bags' 사건을 함께 진행하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앨리스터 플라워‘와의 대립으로 경찰 내부의 정치적 상황도 중요하게 이어진다. 홈스가 없는 공간을 ’쇼반 클락‘ 경장이 메워주는데 그녀가 가진 비상한 기억력 덕분에 리버스는 많은 도움을 받는다.

 

‘검은 수첩’은 홈스가 몰래 조사하던 사건이 암호로 적혀있던 수첩이다. 피격당한 이유가 수첩에 적혀있던 내용에 관련된 것이라 직감한 리버스는 이 내용이 5년 전에 발생한 에든버러 센트럴 호텔의 화제사건과 연관됨을 알게 되고 홀로 조사를 해나가는데 거기에 빅제르 캐퍼티가 엮여 있음을 발견하고 조사의 범위를 넓혀가지만 그가 위험을 대비해 몰래 준비했던 ‘것’이 문제가 되면서 정직되고 만다.

 

전에 읽었던 다른 작품과는 다르게 여러 사건이 일어나 하나의 사건으로 귀결되는 과정이 굉장히 흥미로웠다. 잔인하고 지능적인 범죄자, 다양한 방법으로 리버스의 목숨을 위협하는 범인. 그의 인생이 다시 끼어든 과거의 사람들, 경찰 내 파워게임 등을 하나로 묶어내는 작가의 솜씨가 정말로 대단하다. 특히 이번엔 한국에선 ‘아재 게그’라 불리는 언어유희가 유난히 많이 등장하는데 이를 찾아보는 것도 소설을 읽는 재미가 될 것이다.

 

자국에선 아주 오래 된 캐릭터로 많은 사랑을 받는다고 하는데 우리나라에서 이렇게 소개 되니 무척이나 즐겁다. 마치 이 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듯이 사실감이 느껴지는 캐릭터. 독자와 함께 늙어가고 생의 모든 순간을 함께 하는 그들의 삶을 함께 느끼는 것이 아주 오래 계속되기를 바라고, 다음 나올 시리즈가 정말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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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잔 이펙트
페터 회 지음, 김진아 옮김 / 현대문학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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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잔 이펙트》




누가 나에게 어떤 소원을 들어 줄 테니 딱 3가지만 말해보라고 한다면 난 무엇을 말할지 자주 상상하곤 한다. 처음엔 돈을 달라고 해야지 했다가 그럼 너무 심심할 것 같아서 세상 사람들이 모두 좋아할 만한 명곡을 쓰게 해달라고 해서 사랑도 받고 돈도 벌어야지 했다가 죽었다 깨어나도 운전은 못하겠으니 운전을 잘 할 수 있는 능력을 달라고 해야겠다 는 등의 시시한 상상들.

 

그러나 3가지 중에 꼭 들어갔으면 하는 소원은 바로 ‘남의 마음을 읽는 능력’이다. 일하는 분야에서 성공도 하고 싶고 인정도 받고 싶지만 그걸 내 힘이 아닌 다른 개입으로 이룬다면 별로 신이날 것 같지 않고, 돈을 벌어도 내 스스로 벌고 싶다는 생각이 결국엔 드는 것이다. 그렇지만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면 이 능력은 꽤나 쓸모 있을 것 같다. 날이 갈수록 나조차도 생각이 많아지는데 앞에 있는 노회한 사람의 진심을 어찌 알 수가 있을까.

 

소설《수잔 이펙트》속의 주인공 수잔은 이런 능력을 갖고 있다. 비교하자면 수잔은 마음을 읽는 것은 아니고 사람이 자신 앞에서 솔직해지도록 만드는 능력을 갖고 있다. 거기에 자신이 원하는 대답을 얻도록 유도할 수 있으며, 심지어 자신의 남편이나 자녀들과 함께 있으면 그 능력이 증폭된다. 수잔과 남편은 이런 능력을 이용하여 원하는 것들을 쉽게 얻는 반칙을 꽤나 해왔고 소설 속 가족들은 이런 능력 때문에 생각지도 못한 일에 휘말리게 된다.

 

소설 속 가족들은 곧 해체될 위기에 처해있다. 유명한 음악가인 남편과 과학자 수잔, 쌍둥이 자녀는 덴마크 내에서 유명한 가족인데, 수잔과 남편은 이혼 수속 중인데다 수잔은 폭력 행위로, 아직 어린 10대 쌍둥이 남매들과 남편도 각자의 범죄와 일탈 행위로 가족들 전체가 위기에 봉착해 있다. 그것도 머나 먼 인도에서. 그런 그녀에게 하나의 제안이 들어온다. 수잔과 가족의 능력을 이용해 ‘미래위원회’의 마지막 보고서 두 건과 위원회 명단을 알아다 주면 가족들을 안전하게 지켜주겠다는.

 

‘미래위원회’가 대체 어떤 단체인지 그들이 무슨 보고서를 작성했다는 것인지 관련된 사람을 만나기 위해 시작된 가족의 첩보 작전은 다소 코믹스럽지만 흥미진진하게 흘러가는데, 자신들이 만났던 사람들이 하나 둘 시체로 발견되고 자신들조차 죽음의 위협을 받게 되자 일이 심상치 않음을 알게 된다. 그들은 이제 표적이 된 것이나 다름없다.

 

‘미래위원회’의 비밀, 가족의 또 다른 위기로 긴장감을 높여가던 소설은 가족이 외딴곳에 감금 아닌 감금을 당하게 되면서 또 다른 양상으로 흘러간다. 스릴러에서 갑자기 다른 장르로 옮겨간다는 느낌이랄까? 그 곳에서 머문 4개월 동안 가족은 서로의 진심과 아픔을 보게 된다. 자신들의 능력이 정작 자신들을 구하지는 못했던 걸까.

 

이제 소설은 대망의 결말을 향해 나아간다. ‘미래위원회’와 숨겨진 위원들의 가공할 만한 비밀, 마지막 반전은 소설의 백미를 장식하며 가족들의 목숨 건 프로젝트가 벌어진다. 오랜 시간동안 비밀리에 진행해온 엄청난 음모는 과연 무엇일까? 소설의 엔딩은 뭐랄까, 수잔의 결말다웠다고 해야 할까? 엄청나게 똑똑한데다 20대 남성들조차도 숭배하게 만들어버리는 여성으로써의 매력을 가진 그녀다운!

 

어려운 말이 많아서 인지 이야기 위주로 전개되는 스릴러를 주로 읽은 때문인지 다양한 스타일이 혼재된 소설의 독특한 스타일 때문인지 그렇게 책장을 술술 넘기며 읽진 못했지만 철학적인 이야기를 할 때나, 자신의 속마음을 내보일 때나, 처음 보는 남자들을 홀려버리거나 그 어느 때라도 수잔은 한 결 같이 매력적이었다. 가족들 또한 엉뚱한 매력이 넘쳤고.

 

소설은 가공할 만한 스케일의 음모론으로 가득 찬, 두렵기까지 한 이야기였지만 결국은 그 안에 사람이 있었고, 사람이 보였던 아주 흥미로운 작품이었다. 처음에 했던 내 상상에 조금 더 바라는 것이 생겼다. 그저 사람의 마음을 읽는 것보다는 내가 원하는 답을 이끌어 낼 수 있으면 아마도 더 좋을 것 같다는. 수잔처럼 매력이 넘치기는 아마 불가능 할 것 같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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