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담의 테이프 스토리콜렉터 57
미쓰다 신조 지음, 현정수 옮김 / 북로드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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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담의 테이프》

 


 

괴담하면 도시 괴담과 학교 괴담이 떠오른다. 어느 학교, 어느 마을이든 이런 괴담하나 갖고 있지 않는 곳이 있을까? 꼭 아파트나 학교는 공동묘지 위에 세워지고 마을에는 꼭 안타까운 사고를 당한 가족이 있기 마련이다. 실체가 불분명하기는 하지만.

 

내가 아는 후배는 도시에서 좀 떨어진 산 중턱에 있는 대학교 근처 도로를 지나가다가 하얀 소복을 입은 귀신을 봤다고 했다. 참 웃긴 것이 이제껏 몇 십번을 들었는데도 늘 들을 때마다 새롭다는 것이다. 물론 이런 얘기를 하게 되는 분위기가 있기 마련이다. 편한 술자리가 길어져 자정을 훨씬 넘긴 다거나 엠티나 캠핑을 가서 모닥불 앞에 앉았을 때 자신이 들었거나 겪었던 괴담이 하나씩 나오기 시작 하니까.

 

‘미쓰다 신조’ 하면 호러 미스터리의 장인이 아니겠는가. 나는 ‘사상학 탐정’ 시리즈로 작가를 알게 되었는데 호러와 유머, 추리와 미스터리가 적절하게 융합된 작품을 쓰는 작가로 기억한다. 이번 작품은 ‘괴담’을 엮은 단편집 이라 기대가 컸다. 특히 여름엔 이런 작품이 더 끌릴 수밖에 없는데다 표지에 그려진 노란 우비의 ‘그것’은 사람인지 귀신인지, 작품의 매력을 더욱 이끌어 올렸다.

 

읽다보니 그랬다. 대체 이게 실제로 일어난 일인지 그러니까 각각의 단편들 사이에 있는 막간(1),(2)는 이 작품을 내는 과정에 있었던 이야기 그대로 인지, 아니면 이 조차도 창작인지 아리송했다는 말이다. 작가는 친절히 조언하고 있다. 이 책을 읽다가 이상한 경험 -편집자 도키토 미나미가 한 비슷한 체험-을 했다면 일단 기분전환을 하라고. 역자도 비슷한 얘기를 했다. 이상한 경험을 한 이후로 작가의 작품은 밤에는 번연하지 않는다고. 그럼 나는 어땠냐고?

 

단편들 중에 생각만 해도 섬뜩한 작품들이 있었고 크게 와 닿지 않은 작품들도 있었다. 나는 그러니까 등장인물이 일단 상식적, 논리적으로 행동하지 않으면 ‘무섭다’란 생각보다는 ‘답답하다’란 생각을 먼저 하기 때문이다. 스쳐지나가는 것’에서 현관문을 미친 듯이 두드리는 ‘그것’을 피하기 위해 주인공이 했던 행동은 좀 답답했는데 대체 그것이 무엇이고, 무엇을 원하는 건지 생각하면 또 섬뜩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그리고 ‘우연히 모인 네 사람’은 그랬다. 산행을 위해 모르는 사람이 모였는데 이들을 모두 아는 주선자는 오지 않으면 기차 출발 시각까지 기다릴게 아니라 먼저 전화해보는 게 상식 적인 게 아닌지. 가만 생각하니 일본과 우리의 문화가 달라서 그런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우린 뭐든 빨리빨리 해결해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들이니까. 휴대폰은 어딜 가든 꼭 들고 다니고.

 

하여간에 그런 웃긴 생각을 하면서 내 스타일에 꼭 맞는 단편을 발견했으니 ‘시체와 잠들지 마라’ 가 그랬다.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곳쿠리님’이라는 우리나라에서 ‘분신사바’로 알려진 주술로 점을 치는 할머니가 먼 친척의 장례식에 가야하는 손자를 위해 ‘시체와 잠들지 마’란 계시를 받아 당부를 한다. 그러나 시체를 뜻하는 줄 알았던 ‘시카바네’는 다른 말 이었다는. 그래서 끔찍한 결과를 맞이했다는 이야기.

 

‘죽은 자의 테이프 녹취록’은 이미 죽은 자가 녹음 한 것이 아니라 자살할 당시 녹음한 테이프를 듣고 적은 내용인데 그 내용도 뭔가 비밀이 있지만 그 테이프를 들은 사람 주변에 일어나는 불가사의한 일들에 관한 내용이다. ‘빈집을 지키던 밤’은 일일 아르바이트로 빈 집을 지켜달라는 부탁을 받는 사람의 이야기 인데 막상 그 집에 가보니 부부 중 한 쪽은 할머니가 살고 있어 빈집이 아니라고 하고 한 쪽은 할머니가 죽었다고 한다. 그 할머니는 산걸까 죽은 걸까. 뭔가 이상한 집 주인 부부의 행동에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전체적으로 보면 아마도 이 단편들은 너무나 ‘일본 스러운’ 것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죽은 자를 대하는 태도, 문제가 닥쳤을 때 해결하는 방법, 괴담의 스타일 등 우리의 괴담은 이야기의 기승전결과 디테일이 살아있다면 일본의 괴담은 뭐랄까 분위기나 소리, 느낌과 감정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같은? 평소 일본 문화와 풍속 민담 등에 관심이 많았다면 충분히 즐길 수 있을 것 같고, 단편이 주는 즐거움도 쏠쏠하다. 나는 밤에 읽어도 별 문제 없었는데 나처럼 둔한 사람이 아니라면 역자처럼 혹시 기묘한 체험을 할지도 모르겠다. 도전해 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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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프트 - 고통을 옮기는 자
조예은 지음 / 마카롱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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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프트》

 


 

사람의 절박함을 이용해서 사리사욕을 채우는 것은 그게 무엇이든 용서해선 안 된다. 근데 사기, 공갈, 협박을 이용해서 무언가 해보려는 자들은 꼭 그 사람의 ‘절박함’을 이용한다. 당연하다. 그래야 잘 속고, 사기인지 알면서도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매달리게 되니까. 이를 가장 많이, 제대로 이용하는 게 슬프게도 사이비 종교 혹은 이단이 아니겠는가.

 

얼마 전에《휴거1992》라는 소설을 읽었던 터라 이 소설은 더 궁금했다. 차이가 있다면 휴거의 목사는 ‘선지자’라는 가짜 소년을 앞세워 기적을 ‘연출’했다면《시프트》는 ‘기적’을 일으키는 소년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것이다. 진짜든 아니든 ‘눈 먼 자가 눈을 뜨고, 앉은 자가 가 일어서는’ 기적을 연출하는 것이 신도를 모으는 가장 훌륭한 방법 아니겠는가.

 

《시프트》에선 실제로 기적을 일으키는 존재가 있다. 단지 그 존재가 교회를 일으킨 목사가 아니며 그는 이 소년을 이용해서 절박한 사람들의 전 재산을 갈취한다는 것이 문제지만. 그 소년은 신기하게도 상처나 병을 옮기는 능력을 갖고 있다. 좀 슬픈 것은 아예 없애지는 못한 다는 것. 그저 자신이 다리가 되어 고통을 다른 이에게 옮길 수만 있을 뿐.

 

자, 이런 조건을 가정하면 온갖 상상이 가능하다. 이 아이는 그런 능력을 갖고 있으면서도 왜 목사의 행동을 저지하지 못하는 가, 혹은 도망칠 수 없는가. 병을 옮길 수만 있다는데 그럼 그 병을 받는 사람도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이런 기적을 일으키는 교회가 있다면 돈 많고 권력이 있는 자들의 먹잇감이 되지 않겠는가. 등등

 

소설 속엔 이 질문에 대한 답이 모두 들어있고 그 답이 소설을 이끌어 가는 원동력이 된다. 사랑하는 사람이 아픈데 병원에선 방법이 없다고 한다. 헌데 이런 기적을 일으키는 교회가 있다면 무엇이든 하지 않을까? 사람들은 몰랐다. 진정 기적인 줄 알았지 사랑하는 사람의 병을 누군가가 대신 받는다는 것을. 자신을 대신해 누군가가 죽는다는 것을. 자신에게 그렇듯 그 사람도 누군가의 사랑하는 사람일 텐데.

 

소설 속 주인공인 형사는 유일하게 남은 혈육인 조카가 이름 모를 병으로 죽어가는 것을 볼 수 없어 절박한 심정으로 기적을 내리는 사람을 찾아다니다 묘한 살인사건을 맡게 된다. 그저 바닷가 폭력배들의 칼부림 인줄 알았던 사건이 과거 아동 실종과 연관되어 끔찍한 연쇄 살인으로 이어진 정황을 발견한 것. 소설에선 사건 수사를 중심으로 그리진 않고 사건의 용의자이자 기적을 내리는 ‘란’을 찾아 조카를 구하려는 형사와 능력 때문에 위험에 빠진 ‘란’이 복수와 기적 모두를 이루려는 과정이 숨 막히게 그려진다.

 

소설 속엔 다양한 사람이 등장한다. 누구는 속죄를 위해 복수를 계획하고 누구는 사랑하는 이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려 한다. 돈과 권력에 눈이 먼 자들은 자신의 조그만 아픔은 견디지 못하면서 다른 이의 목숨은 너무나 하찮게 여겼다.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그 모든 끔찍한 일들을 자신의 욕망을 위해 너무나도 쉽게 저질렀다. 인 두껍을 쓴 악마들이 만든 그 지하 소굴의 끔찍한 모습은 상상만 해도 숨이 막혔다. 슬프고 화가 났다. 과연 현실인들 그보다 못하랴 싶어서.

 

소설은 한번 펼치면 금방 다 읽을 만큼 가독성이 좋았고, 마치 한편의 영화를 본 듯 생생한 묘사가 압권이었다. 절박한 형사와 완벽하지 않은 기적을 가진 남자. 그들 앞에 선 거대한 악 앞에서 형사는 원하는 기적을 얻고 ‘란’은 복수를 통해 속죄에 이를 수 있을까.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전개, 미스터리와 스릴러의 절묘한 교집합이 만들어내는 집중력 있는 이야기의 세계로 독자들을 초대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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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과 공간이 정지하는 방
이외수 지음, 정태련 그림 / 해냄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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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과 공간이 정지하는 방》

 


 

이외수란 작가를 좋아한 지가 참 오래 된 것 같다. 처음《외뿔》이란 작품으로 알게 되어 그의 장편을 모조리 찾아 읽고 헌책방이나 서점에서 그의 책을 사 모았다. 그러다 SNS를 통해 독자들과 소통하고 그것 때문에 곤혹을 치르거나 이 후 암 투병을 하고 결국 이겨내는 모습들을 쭉 지켜보면서 어떤 때는 응원하다가 또 어떤 때는 걱정하면서 함께 시간을 걸어왔다.

 

훌륭한 장인과 동 시대를 산다는 것, 그리고 그의 성장과 희로애락을 함께 하는 시간은 얼마나 소중한가. 그 사람이 완벽해서가 아니라 노력하고 애쓰고, 좌절하고 쓰러졌다 다시 일어서는 일련의 과정을 통해 성장하는 모습을 공유하고 때로는 실망했다가도 다시 멋지게 재기하는 모습에 박수를 치며 응원하는 그 모든 시간들이 너무나 소중한 것이다. 그래서 이외수는 내게 아주, 아주 특별한 작가이다.

 

이번 작품은 그가 암 투병을 이겨내고 쓴 담백한 에세이다. 김장을 담그고, 암 투병 이후 전 에는 못 먹던 김치를 먹고 그 맛에 눈 뜬 이야기며 덕분에 술을 끊고 차를 즐기게 되었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늘지 않는 체중에 고민하는 모습, 문학관에 방문하는 팬들과 담소를 나누고 사진을 찍고, 노래도 하고 멀리 집 밖에 놀러나간 반려 견 매, 난, 국, 죽 이를 찾는 일상의 이야기들이 소소하게 그려진다. 전에는 늘 작가 자신이 그림을 그렸는데 이번엔 ‘정태련’ 작가가 그림을 그렸단 게 다른 점이다.

 

한 때 그의 작품에서 식상한 표현들을 발견하고 조금 실망했던 적이 있었다. 물론 이번 작품에도 비슷한 표현들이 보이긴 하지만 전과 달리 멋 부림이나 힘을 좀 뺀 것 같아서 좋았다. 아니면 이것이 혹시 내가 오래된 팬이라서 그런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기도 했다. 너무나 그이다운 표현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고. 모르겠다.

 

또 나에게 달라진 점이 있다. 짧은 글들을 읽어가면서 나도 모르게 작가와 대화를 하고 있었단 거다. 이외수가 얘기하면 나도 내 얘기를 하거나, 맞장구를 치고, 때론 푸념도 하고 웃기도 하면서 나도 모르게 책에다 그 얘기를 적고 있었던 것이다. 그냥 일방적으로 작가가 얘기하고 나는 듣는 것이 아닌, 함께 대화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이 경험은 내게 너무나 소중했다. 나 또한 분야는 다르지만 작품을 만드는 사람으로서 내 작품이 누군가에게 이런 느낌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으니까.

 

역시 책은 변화무쌍하다. 책의 넓은 빈 공간이 이렇게 채워지기도 하는 것이다. 작은 이야기, 작은 경험들이 이런 거대한 울림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 별것 아닌 것처럼 보이는 종이에 거대한 세상이 들어있다. 이런 깨달음, 이런 느낌을 알게 해준 작가에게 무한한 사랑을 전하고 싶다.

 

가짜가 인정받고 가짜들이 득세하는 세상에 진짜인 사람들은 어쩌면 외면을 받고 있는지 모른다. 모든 외로운 진짜들에게 이 책을 선물하고 싶다. 나 또한 ‘장인’이 되어 이런 경험을 선물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이외수 작가와 동시대에 살 수 있어서 참으로 다행이다. 오래오래 좋은 글 써 주시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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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거 1992
조장호 지음 / 해냄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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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거 1992》

 


 

올 여름 『해냄』에서 나온 미스터리 3종 세트 《휴거 1992》《매직 스피어》《부유하는 혼》모두 읽었다. 3편 모두 독특한 발상과 짜임새 있는 구성, 훌륭한 문장력으로 매우 만족스러운 작품이었다. 특히《휴거 1992》는 마치 영화 한편을 본 것처럼 시각적으로나 캐릭터 묘사로나 모든 것이 압도적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쇼박스’에서 영화화가 결정되었다고 하니 너무 반가웠다. 잘만 만들어 진다면 아마 ‘곡성’(2016)이나 ‘검은 사제들’(2015) 같은 영화를 잇는 대작이 나오지 않을까 기대가 된다.

 

일명 ‘사이비종교’에 빠져드는 사람의 심리가 궁금해 학부 시절에 이와 관련된 수업을 들을 적이 있다. 그 수업에서 우리나라에 얼마나 많은 종교가 있는지 알고 깜짝 놀랐다. 진정 종교의 천국이라 할 수 있을 만큼 많았다. 한참 '도를 아십니까‘가 기승일 때라 일부러 따라갈 만큼 궁금한 것이 많았는데, 요즘 생각해보면 사이비 종교가 따로 있나 싶다. 정식으로 공인된 종교조차도 사이비 종요와 크게 다를 바 없어 보여서 말이다. 요즘 작태가.

 

하여간 각 종교들이 가진 신과 교리, 선악의 판단, 내생의 형태들은 조금씩 형태는 다르지만 인간의 고통이나 두려움을 덜어주는 역할을 하는 듯하다. 그런 인간의 약점을 이용해서 어떤 인물이 악의적으로 사람들을 현혹하고 자신의 사리사욕을 채우고자 할 때 ‘사이비’ 종교가 되는 것 아닐까. 그리고 그 ‘누군가’는 인간의 심리를 꽤 뚫고 있어야 한다. 어떤 부분을 파고들면 무너지는지 잘 알고 있으며 그런 것으로 사람을 조종할 수 있는 너무나 똑똑하고 냉철한 사람.

 

소설 속 사이비 종교 <하늘의 재림 교회>의 목사 ‘임창도’ 또한 그런 인물이다. 그는 인간의 어둡고 아픈 부분, 두려움과 고통, 트라우마를 파고들어 마음을 허물어 버린 뒤 그에게 복종 하도록 만들고 그가 내세운 ‘어린 선지자’를 이용해 기적을 만들어 낸 후 눈이 먼 신도들의 재산을 갈취했다. 그리고 교회 조직은 신도 서로를 감시하도록 만든다. 일반 적인 사이비 종교의 모습이다.

 

외딴 산에 모여 생활하던 의문의 교회, 그 교회 안에서 끔찍한 모습으로 죽은 100여명의 신도들. 주인공인 ‘양형식’ 과장을 필두로 일산서 수사1팀이 이 전대미문의 사건을 맡아 조사를 시작한다. 100여구의 시신 속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15세의 소년과 금고털이로 유명한 이혁세가 발견되면서 조사에 탄력이 붙고 경찰은 이 둘을 심문하며 사건을 재구성하기 시작한다. 경찰 내부의 정치게임, 언론의 압박 속에서 과거 1992년 휴거 사태 때 어머니를 잃은 트라우마를 지닌 형식은 조금씩 허물어지려는 마음을 다잡으며 특유의 냉철함으로 수사를 지휘한다.

 

그러나 사건은 쉽지 않다. 파고들수록 그 사건 안에 내재된 절대적 어둠과 진위를 알 수 없는 이야기들이 그들의 발목을 잡는다. 어느 순간 현재의 사건은 과거 1992년과 맞닿는다. 사이비 교회를 조사하던 교회 내 비밀 조직 <이단 수사회>의 이야기는 이단인지 진정한 악마인지 모를 그들의 정체에 대해 ‘조심하라’는 당부뿐이다. 독자야 제 3자의 입장에서 냉철함을 유지 할 수 있지만 등장인물들은 자신의 눈과 귀를 믿지 못하는 극심한 혼돈에 빠지고 만다. 이성은 거짓이라 생각하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흔들리는 인간의 마음을 아주 정확히 묘사하고 있다. 작가는.

 

문장은 짧고 군더더기가 없다. 책을 펼치자마자 단숨에 읽을 만큼 집중력도 좋았고 이야기는 설득력 있다. 캐릭터는 선명하게 그려지지만 시시각각 흔들리는 심리를 너무나 간결하게 잘 표현해 매력적이다. 시각적 묘사, 사건의 조사와 이야기의 흐름은 너무나 자연스럽고 극적인 반전도 잘 표현되었다. 후반부의 대결 장면은 블록버스터의 형식을 그대로 따라가지만 긴장감이 있고 결말도 멋지다. 영화화 된다면 미스터리와 스릴러, 호러까지 적절하게 조화된 아주 무시무시한 작품이 될 것 같다.

 

올해 읽은 책 중에서 단연 돋보이는, 최고라 할만하다. 책을 읽는 내내 ‘와우 대박‘ 이 생각을 계속했던 것 같다. 얼마 전에 읽은《고고심령학자》와 함께 이 작품도 너무나 추천하고 싶다. 마니아가 아니어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조금 섬뜩한 것만 참을 수 있다면. 강력히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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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고심령학자
배명훈 지음 / 북하우스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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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고심령학자》

 


 

아니, 어떻게 이런 깜찍하고 놀라운 발상을 할 수가 있을까? 고고학 연구의 막힌 부분을 ‘심령’ 관찰을 통해 돌파한다니 참으로 대담한 발상이 아닌가. 이를 테면 몇 천 년 전의 언어를 재구성하기 위한 방법으로 그 때 죽은 혼령과 대화를 통해 답을 얻으려 한다는. 심령 현상 연구도 제대로 인정을 못 받을 판에 내처 한 걸음 더 나아가 학문적 성과를 얻으려 하는 학자들이 과연 이 관료적이고 딱딱한 학계에서 제대로 인정이나 받을 수 있을까? 아니, 일반인들 눈에도 이상하게 보이지 않을까?

 

이런 깜찍한 발상을 토대로 소설까지 한편 뚝딱 세상 밖으로 내보인 작가 ‘배명훈’이란 사람은 대체 어떤 사람일까. 나와는 동갑이라는데 어쩜 이런 자유로운 상상을 할 수가 있는지. 작가가 너무 부러웠고, 게다가 소설은 너무나 내 스타일인지라 오랜만에 뒷이야기가 너무 궁금해서 초조해지기까지 했더랬다. 작가는 이미 SF라는 틀로 자신만의 작품 세계를 만들어 오고 있었고 그저 나는 그의 세계에 이제 막 발을 디딘 것뿐이니, 앞으로의 여정을 즐길 일만 남았으리라.

 

‘의외로‘ 소설의 주인공은 여성들이다. 난 왜 주인공을 당연히 남성이라고 생각한 걸까. 상상력 빈곤에 성 역할의 편견까지 난 정말 구제불능인걸까. 하여간 여러 번의 ’의외의’ 충격으로 소설을 읽는 기쁨이 배가 되었다고 해두자. 하여간 의문의 죽음을 맞은 <고고심령학>의 대가 ‘문인지’ 박사의 제자 ‘조은수’와 그 친구 ‘김은경’은 박사의 친구 ‘한나 파키노티’ 와 서울에 나타난 의문의 '벽‘ 혹은 ’요새‘의 비밀을 밝히기 위해 ’이한철‘ 박사팀과 조사를 시작한다.

 

소설은 여러 가지 이야기를 담고 있다. <고고심령학>이라는 가상 학문의 너무나 현실적인 처지, 즉 하나의 학문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다른 연구 이를 테면 인류학, 고고학, 역사학 등과의 협업의 형태로 머무를 수밖에 없는 한계, 결국 ‘혼령’을 보고 그들과 소통을 해야 하는 일이라 하려는 사람도 제대로 하는 사람도 많지 않다는 어려움 등 이런 현실 앞에 서울에 나타난 ‘요새 빙의’ 현상은 이 학문을 독립적 학문으로 우뚝 세울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될 지도 모르니 학자들의 미묘한 대립이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

 

그리고 문인지 박사의 연구실이 있었던 ‘천문대’의 지리적 특징, 그곳에 나타나 오랜 시간 도움을 받은 어린 ‘혼령’, 연구실에 쌓여있던 문 박사의 책 들을 제 구성하고 정리하며 여기서 얻은 단서로 ‘요새 빙의’ 현상을 풀어가는 과정, 주인공 ‘조은수’의 동료이자 친구인 ‘김은경’이 연구하던 ‘몬데그린’ 현상과 ‘한나 파키노티’가 대륙을 돌아다니며 연구하던 ‘차투랑가’ 와 도시와 성벽의 연구에 담긴 ‘비밀‘ 들이 하나의 이야기로 형태를 갖추어 가는 과정은 너무나 지적이며 즐거운 여행이었다. 게다가 곳곳에 숨어 있다 튀어나오는 유머코드는 소설을 경쾌하게 만들고 있다.

 

과연 ‘심장이 두 개’라는 서울 상공에 나타난 벽, ‘혼령’이 아니라 ‘빙의’ 현상인 이 사건이 가져올 결과는 어떤 것일까? 이 벽이 나타난 후 부쩍 늘어난 자살사건은 어떤 의미를 품고 있을까? 과연 주인공들은 과연 이 비밀을 풀고 어쩌면 재앙이 될 무언가를 막을 수 있을 것인가?

 

작가는 어떻게 이런 많은 이야기들을 하나의 줄기로 엮어낼 수 있었을까? 문인지 박사의 의식의 흐름을 정리하기 위해 조은수가 했던 책 정리 작업은 어쩌면 작가가 이 소설을 집필한 그 과정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오랜만에 나의 호기심을 충족시키는 아주 재미있고 독특한 소설을 만났다. 작가의 다른 작품들도 하나씩 찾아 읽어볼 작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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