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인
차무진 지음 / 엘릭시르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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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인》

 


 

세상이 바뀌었으면 하고 절실하게 염원했던 사람들이 있었다. 어떤 사람들은 부조리하고 썩어빠진 현실에 비관하여 세상을 등졌고 어떤 사람들은 불특정 다수를 향한 살인과 파괴로 가슴에 쌓인 분노를 풀었다. 어떤 사람들은 조용히 사람들을 모으고 세를 규합하여 변혁을 꿈꿨고, 또 어떤 사람들은 더러운 세상을 일거에 구원해줄 진인이 오시기를 기도했다. 그러나 참으로 의아한 일이다. 몇 천 년 그 오랜 세월이 흐를 동안 세상은 눈부시게 발전했다지만 여전히 우리는 세상이 바뀌기를 바라고 있다. 오히려 더 비참해졌는지도 모른다. ‘헬조선’이라는 말이 공공연하게 퍼진 것을 보면.

 

독자 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하다. 미륵이나 메시아 같은 진인이 이 더러운 세상이 한 순간에 확 바꿀 수 있을 거라 생각하는지 아니면 시민 하나하나의 각성으로 변혁은 바닥에서 시작된다고 생각하는지. 슬프게도 우리는 먼 과거의 선조들이 했던 고민을 아직 끝내지 못 한 것 같다. 과거에는 다른 왕을 세우고자 반정을 꾸미거나 한발 더 나아가 왕 위의 왕을 꿈꾸고자 했던 사람들도 있었고, 반대로 힘없는 민초들의 왕을 세우고자 했던 사람들도 있었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도 신분을 없애자는 생각까지는 못한 것 같다. 세월이 흐르고 사람들의 의식도 변하면서 신분제도 없어지고 왕도 사라졌지만 우리는 다른 형태의 신분제와 왕을 여전히 버리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소설《해인》은 세상을 바꿀 진인, ‘아기장수’를 꿈꾸던 사람들의 이야기다. 어디선가 태어나 이 세상을 구원해줄 단 한명의 사람. 이 은밀한 비밀 혹은 전설은 저 멀리 가우리국(고구려) 그 위로부터 시작되어 얼마인지도 모를 시간동안 우리 민족과 함께 해 왔다. ‘해인’은 바로 진인을 품을 여인 즉 ‘성모’ 에게 새겨지던 인장을 말한다. 성모가 품을 아기장수를 모실 ‘박마’가 그녀를 찾아내 해인으로 ‘인식’을 하고 무사히 출산하여 진인으로 성장하도록 종신토록 보필할 상징적인 것.

 

이 ‘해인’은 그래서 대대로 역사의 주인이 되고자 했던 권력자, 욕망이 있는 자들의 먹잇감이 되었다. 자신이 혹은 자신의 아들이 다음 세상의 주인이 되기를 바라는 자들의 은밀하고 위협적인 공격 속에서 성모를 찾아내 지키는 ‘박마’들의 이야기가 소설 속에서 펼쳐진다. 소설 속 주인공 박마 ‘백한’은 어떤 이유로 불사의 몸이 되어 역시 계속해서 성모로 환생하는 여인을 찾아 몇 백 년을 역사의 중심에 서 있었다. 백한의 대척점에 선 불사 ‘정만인’ 그는 영혼을 바꾸는 해인의 힘을 이용해 불사를 끊으려 또 백한처럼 성모를 찾아 헤매며 백한과 대적 한다.

 

소설은 현대에서 고려 말 ‘이자춘’ 에게까지 올라간다. 바로 거기에서 백한과 성모의 인연은 시작되고 어떤 계기로 윤회를 거듭하며 다시 조선 이순신, 조선말의 흥선 대원군과 정봉준의 동학 혁명군, 일제 강점기의 윤심덕의 이야기에 이르기까지 백한과 정만인의 성모를 둘러싼 안타깝고도 끔찍한 대결을 통해 거대한 상상력을 펼친다. 그리고 서서히 밝혀지는 백한과 정만인의 비밀이 소설의 결말을 이끈다.

 

소설은 현대에선 잘 쓰지 않는 고어적인 표현들과 해인, 박마와 아기장수, 성모의 관계를 둘러싼 독특한 세계관과 도약하는 역사를 따라가야 하기 때문에 쉽게 읽히진 않았지만 이들이 겪어야 하는 처절하고도 아픈 운명과 아슬아슬한 대결장면, 앞서 언급한 철학적인 고민들이 자연스럽게 용해되어 있기 때문에 끝까지 잘 집중 할 수 있었다. 역사를 이미 알고 있기에 이어지는 이야기들의 결말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었지만 매 윤회의 생마다 결국 끔찍하고 아픈 죽음을 맞아야 하는 성모와 백한의 이야기를 챕터마다 마주쳐야 할 때 순간순간 이런 이야기를 쓴 작가가 미워지기까지 했다.

 

이는 그만큼 이야기와 캐릭터들이 살아있다는 얘기이기도 하고, 아기장수의 탄생을 목전에 두고 번번이 실패하는 장면에서 반복 되어 온 아픈 역사를 마주해야 하는 고통이 컸다는 얘기기도 하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면 소설 속 등장인물들 중 누구는 아기장수를 통해 일시에 세상을 바꾸기 위한 방도로 해인을 가지려 하고 또 누구는 그렇게 일시에 세상은 바뀌지 않는다며 백성들의 각성이 필요하다 일갈하기도 한다. 나는 이 두 세력, 혹은 이 두 사상과 생각 앞에 이리저리 마음을 옮겨 다니며 이야기에 빠져들었다. 아픈 사랑, 그 보다 더 아프고 처절한 역사, 그 안에서 소리 없이 사라졌을 백성들의 이야기, 백한과 정만인의 대결, 그리고 결말의 반전은 더운 날을 잊게 해줄 멋진 시간을 선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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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행
모리미 토미히코 지음, 김해용 옮김 / 예담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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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행》

 


 

‘내가 보는 것이 사물의 진정한 모습인가‘ 는 아주 오래된 질문이다.’언어‘ 라는 장벽을 없애야만 ’실체‘를 알 수가(볼 수가) 있다는 말일 수도 있는 이런 의문은 내가 보고, 느끼고, 진실이라고 생각하거나 믿는 모든 것들이 실은 허상일 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주기도 한다. 거울에 비친 내 모습, 사진에 찍힌 내 모습을 실제의 나라고 생각하곤 하지만 정말로 우리는 나 자신을 내 눈으로 한 번도 본 적이 없다는 걸 생각해 본 적이 있을까?

 

이런 건 어떨까? 꿈속의 내가 나인지, 내가 낮의 꿈을 꾸고 있는 건 아닌지. 다른 우주 혹은 다른 시간 속에 다른 삶을 살아가는 내가 있지 않을지, 여러 영화나 소설에서 만난 적 있을 법한 이야기인데 생각하면 너무나 무서워서 모양을 바꾸며 끊임없이 소설로 영화로 되풀이 되는 이야기들.

 

어느 날 옆에 있던 사람이 사라졌다. 그냥 연기처럼, 애초에 그런 사람이 없었던 것처럼. 그로부터 10년 후 사라진 사람을 기억하는 5명의 사람들이 모여 기묘한 이야기를 시작한다. 딱히 그 사람과 관련된 이야기는 아니었다. 그 사람을 생각하며 모이자고 한 장소 근처에서 우연히 보게 된 동판화가의 작품을 본 각각의 이야기들이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그 작가는 48편의 ‘야행’ 연작을 남기고 몇 년 전에 사망했고, 전설처럼 ‘야행’에 대칭되는 ‘서광’이라는 작품을 남겼다는 이야기가 떠돈다. 총 다섯 명의 이야기가 이어지며 동판화가의 이야기도 조금씩 드러난다. 각각의 이야기는 모두 그들이 여행을 갔던 곳과 연관이 있지만 작가는 그 어느 곳도 여행해보지 않았다고 했다. 그리고 그들의 이야기는 묘하게도 결론이 나지 않은 채로 끝이 났고 그 이야기 안에 사라진 사람과의 기억이 숨어있다.

 

묘하게 변한 아내를 찾아 과거에 왔었던 언덕위의 집을 찾아갔지만 아내와 꼭 닮은 여자가 사는 그 곳엔 사람이 살지 않다고 말하는 이상한 호텔 종업원을 만난 남자, 선배와 선배의 여자 친구와 그녀의 여동행과 함께 여행을 떠났다가 사상을 보는 할머니를 만나 이상한 체험을 한 남자, 남편과 남편의 후배와 함께 기차 여행을 떠났다가 과거의 오랜 친구와 그녀의 불탄 집을 다시 보게 된 여자, ‘기시다 살롱’ 이라 불리던 ‘야행’ ‘작가의 집에 드나들며 겪었던 밤의 이야기를 하는 남자, 그리고 주인공이 마지막으로 겪게 된 ’야행‘의 비밀까지.

 

뭔가 이상한 풍경으로 이어지는 앞뒤가 맞지 않는 이야기들이 결국 적당한 모양으로 형체를 갖추어갈 때 소설은 내가 서 있는 이곳이 과연 어디인지 의심하게 했고 내가 보는 세상이 진실로 그것인가 하는 생각을 들게 했다. 생각할수록 섬뜩한 이야기가 아닌가. 밤을 이토록 섬세하게 표현한 작가는 처음이다. 어쩌면 별것 아닌 꿈에서 본 것 같은 것들로 이처럼 멋진 이야기를 지어내다니. 여름에 딱 어울릴 만한 소설이다. 밤에는 읽지 말기를.

 

- 미시마 씨가 미래를 예언한 게 아니라 미시마 씨의 예언을 이루기 위해 남편이 죽은 게 아닐까. p 101

- “기시다. 정말 거기 있어?" “글쎄. 우리는 어디에 있을까.” 기시다의 목소리가 멀리에서 들려와 나를 감싼 어둠이 문득 광대한 것처럼 느껴졌다. “이 어둠은 어디든 연결되어 있어.” 기시다는 말했다. p 209

- “밤은 어디로도 통해요.” p 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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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스트 코요테 -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3-4 RHK 형사 해리 보슈 시리즈 4
마이클 코넬리 지음, 이창식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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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스트 코요테》

 

 

《블랙 에코》《블랙 아이스》에 이은 살인전담반 형사 ‘해리 보슈’ 시리즈 중 4번째 작품 《라스트 코요테》. 이 작품은 해리 보슈가 자신의 어머니의 살인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을 담고 있으며, 1995년에 발표되었다.

 

3번째 작품인 ‘콘크리트 블론드’를 뛰어넘어 4번째 작품으로 오니 철근 몇 개로 고정된 산 아래 멋진 그의 집은 지진으로 철거를 해야 할 상황에 놓여있고, 3편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는 형사들이 그렇게 하기 싫어하는 상담치료과정에 참가하고 있다. 2편에서 만난 ‘실비아 무어’와는 3편에서 좋은 관계로 발전한 거 같은데 지진이 일어난 시점으로 다시 파경을 맞아 실연의 아픔을 견디고 있다. 게다가 파트너인 ‘제리 에드거’는 다른 사람과 한 팀이 되어있다.

 

그는 상당전문가가 다시 경찰직을 수행할 수 있다는 보고서를 올릴 때 까지 정직 상태인데 처음엔 형식적으로 임하던 상담 과정을 후반부로 갈수록 진심으로 임하는 것으로 변화하고 있고, 1편에서 그를 못 잡아먹어 안달이던 ‘어빈 어빙’ 부국장과는 어느 정도 신뢰가 형성된 것으로 보여 조금 반가움이 들었다.

 

그는 상담도중 그가 가진 모든 정신적인 문제에 바로 그의 어머니 ‘마저리 로우’ 살인사건이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의 어머니는 일명 ‘파티 걸’로 거리의 매춘부였다. 법은 해리 보슈와 어머니를 강제로 헤어지게 만들었고 그는 시설을 전전하게 된다. 그 안에서 외롭고 고통스런 날들을 보내던 그는 어머니가 살해당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지만 불행히도 그 사건은 흐지부지 미결로 남게 되었다.

 

그는 몰래 사건을 조사하기 시작하는데 정직상태인 그는 그를 눈엣가시로 여기는 파운즈 과장의 경잘 배지를 훔치고 그의 직위를 도용하는 등 아슬아슬한 상황을 이어간다. 조사 도중 어머니의 절친 이었던 ‘메러디스 로만’을 만나 포주였던 ‘자니 폭스’ 당시 사건 담당 검사였던 ‘아노 콘클린’과 그의 선거운동 본부장이었다가 현재 거물급이 된 ‘고던 미텔’을 주요 용의자로 설정하고 뒤를 캐기 시작한다.

 

몇 십 년도 더 된 사건이라 증거는 부족하고 관련 사람들은 죽거나 늙었다. 그러나 과거에는 시도하지 못했던 지문 분석 등의 과학수사가 가능해 지면서 조금씩 희망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러다 당시 사건을 수사했던 형사의 미심쩍은 행동이 수면위로 오르고 거기에 ‘어빈 어빙’ 부국장의 연결고리도 드러난다. 그러다 생각지도 못한 살인사건이 발생하며 그는 용의자로 지목되는데!

 

아슬아슬한 줄타기 같은 조사 도중에 만난 여인과의 애정 라인(역시 빠질 수 없지) 누구도 관심을 가지지 않았던 매춘부의 죽음을 이용하려던 권력자들, 사건을 은폐시키고자 저지른 또 다른 사건들과 언론 플레이. 이번 작품에도 역시 코넬리의 이야기 솜씨는 빛을 발한다.

 

자신의 어머니의 사건을 조사하는 아들의 정신적인 고통과 그 누구도 돌아봐 주지 않았던 외로운 죽음을 대하는 그의 외로운 모습을 보며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아마 코넬리는 이러한 외로운 죽음들에 대한 애도를 하고 싶지 않았나 싶다.

 

지진으로 망가진 도시에 나타난 마지막 코요테. 이 코요테는 환상처럼 여러 번 나타나 해리 보슈의 상태와 심리를 대변한다. 그 누구도 관심을 주지 않지만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는 외로운 코요테. 그래도 누군가는 그를 알아봐 주는 사람이 있으니 외롭지 않다고 말하고 있는 걸까. 수많은 죽음들이 떠올랐고 얼마나 외로웠을지 너무나 미안했다.

 

-지켜주지 못해 미안합니다. 잊지 않고 꼭 기억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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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 아이스 RHK 형사 해리 보슈 시리즈 2
마이클 코넬리 지음, 한정아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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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 아이스》



 

 

《유골의 도시》와《파기환송》를 통해 알게 된 작가 ‘마이클 코넬리’. 그가 창조한 매력적인 캐릭터인 살인전담반 형사 ‘해리 보슈’ 에 매료되어 시리즈를 다 읽는 것을 목표로 도전 중인데 직전에 시리즈의 첫 작품인 《블랙 에코》를 읽었고, 이번에 손에 든 작품이 시리즈의 두 번째 작품으로 1993년에 발표된 《블랙 아이스》다.

 

‘블랙 아이스’ 는 과거 하와이에서 제조되어 판매되던 것이 장소를 옮겨 멕시코에서 만들어져 각국으로 퍼져 나가고 있다는 ‘21세기의 신종 마약’을 말하기도 하고, 얇은 얼음막이 도로를 덮어 자칫 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블랙 아이스’ 현상 과 함께 이중의 의미를 담고 있는 소설의 주요 소재다.

 

이번 작품의 주요 배경은 앞서 말한 것처럼 마약이 제조되는 ‘멕시코’다. 주인공인 ‘해리 보슈’는 모텔에서 총으로 머리를 쏴 자살한 경찰 ‘무어’의 사건을 조사하다 무어가 마지막으로 조사하던 마약사건과 관련성을 찾아 멕시코로 달려간다. 물론 그의 활동을 방해하거나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많은 동료들의 눈총을 받으며.

 

경찰의 모양새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어빈 어빙’ 부국장은 1편에서와 마찬가지로 해리 보슈를 그리 신뢰하지 않는다. 그의 직속상관은 해리 보슈를 극도로 싫어하는 사람인데다 무어 사건엔 얼쩡거리지 못하도록 구타당해 사망한 신원미상의 남자 ‘후안도우 67번’의 사건을 맡기는데 이 사건이 무어의 사건과도 연관이 있을 줄이야.

 

그는 신원 미상의 남자와 무어의 사건이 연관 돼 있음을 알고 국경을 넘어 멕시코로 달려가 비밀리에 수사를 시작한다. 이 작품의 백미는 바로 ‘투우 경기’다. 이 모든 사건의 배경에 멕시칼리 지역의 교황으로 불리는 ‘움베르또 소릴료’ 가 관련돼 있음을 직감하고 그가 경영하는 ‘황소목장’을 감시하기 위하여 멕시코 주립 경찰관과 마약단속국의 요원들과 함께 작전을 펼친다. 그 과정에서 자세히 묘사된 투우 경기는 실제 눈앞에서 벌어지는 듯 생동감 있는 묘사가 압권이다.

 

게다가 비밀리에 진행하는 작전에 마약 조직이나 이들과 결탁한 부패 경찰, 정치권의 끄나풀이 어디까지 침투해 있을지 모르니 누구를 믿고 누구를 조심해야 하는지 전혀 알 수 없는 상황에서의 스릴은 가히 압권이었다. 그리고 밝혀지는 무어 형사 유서의 비밀과 이와 얽힌 반전은 소설의 백미다. 또한 이 과정에서 밝혀지는 형사의 출생의 비밀까지.

 

또 하나 소설의 재미는 어김없이 등장하는 해리 보슈의 애정 라인. 이번엔 무어의 전 부인 ‘실비아’와 야릇한 감정 선이 이어지고 법의국장 서리인 코라존 박사와의 관계도 그의 심리 상태를 엿볼 수 있는 중요한 포인트로 등장하며, 경찰권력 내부의 권력투쟁도 중요한 요소로 그려진다. 그들의 싸움은 사건 수사에 직접적인 영향을 이치기도 하니까. 이번 작품은 영화로 만들어진다면 정말 블록버스터 급이 아닐까 할 정도로 스케일이 컸던 것 같다.

 

유전자를 조작한 파리로 같은 종을 박멸하는 농법과 이를 시행하는 국책 기업, 법보다 위에 있는 거대한 마약조직, 이들과 결탁하여 일신의 영달을 꽤하는 부패한 경찰과 국가 권력, 그 속에서 가족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내걸고 일하는 소시민들. 코넬리는 몇 건의 살인 사건에 이 모든 이야기들을 녹여내는 정말 대단한 이야기꾼이다. 단 하나의 단서와 대화도 그냥 허투루 쓰지 않는 그의 치밀함에 그저 놀랄 뿐이다. 캐릭터는 어떤가! 소설에 등장하는 어떤 인물도 심지어 이름 없는 희생자까지도 살아있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왜 이제야 이 작가를 알게 되었는지 아쉬울 따름이다. 다른 작품들도 너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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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 에코 -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3-1 RHK 형사 해리 보슈 시리즈 1
마이클 코넬리 지음, 김승욱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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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 에코》



 

마이클 코넬리 는《유골의 도시》와《파기환송》을 접하면서 알게 되었는데 시리즈를 다 읽어봐야 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매력적인 작품을 꾸준히 발표한 작가이다. 그가 창조한 대표적인 캐릭터가 바로 살인전담반 형사 ‘해리 보슈’ 로《블랙 에코》는 해리보슈를 세상에 내보인 첫 작품으로 1992년에 발표되었다.

 

‘해리 보슈’는 20여 년 전 베트남에 파병되었는데 베트콩의 주 이동로인 땅굴에 폭탄을 설치하여 파괴하는 역할을 한 군인인 ‘땅굴 쥐’였다. 소설 속 해리보슈는 마흔 살로 그 때의 악몽을 그대로 간직하여 불면증으로 고통 받는 외로운 남자로 그려진다. 그의 이런 면은 소설 속에서 바에 혼자 등을 보이고 앉아 그림자를 향해 얼굴을 돌리고 있는 남자를 그린 호퍼의<나이트호크>복제화로 상징된다.

 

그는 제대 후 순찰경관에서 형사로 이후 본청 강력계 엘리트 형사로 8년을 근무하며 실력으로 명성을 날리고 있었는데 ‘인형사’ 사건에서 생긴 문제로 헐리우드 경찰서로 살인전담반으로 좌천되었다. 뛰어난 실력과는 달리 그는 경찰조직에 속하지 못하는 인물로 그려진다.

 

멀홀랜드 댐 근처 굴 안에 사람이 죽어있다는 제보를 받고 출동한 해리 보슈는 희생자가 마약사고로 죽은 것으로 포장된 살인사건이란 것을 알아차리고 수사를 시작한다. 그 과정에서 희생자가 과거 자신과 함께 베트남에 있었던 땅굴쥐 ‘메도우스’ 였다는 것을 알게 되고 그가 ‘안전금고 도난사고’ 용의자임을 알게 된다. 도난사고를 담당하는 FBI를 찾아가 협조를 요구하지만 오히려 자신도 용의 선상에 올랐음을 알게 되고 이를 계기로 안 그래도 미운 털 박힌 내사과의 ‘어빈 어빙’ 차장의 지시로 루이스와 클락이 그의 뒤를 은밀하게 미행한다.

 

그는 결국 FBI의 존 루크, 위시 요원과 함께 공조수사를 하게 되고 위시 요원과는 특별한 관계가 된다. 작가는 위시요원과의 러브라인과 땅굴쥐 메도우스를 통해 해리보슈의 인간적인 면을 보여주고, 내사과의 미행으로 경찰 조직에 흡수되지 못하는 주인공의 갈등과 경찰 내부의 정치 게임을 비중 있게 표현하고 있다.

 

해리 보슈는 작은 단서 하나도 허투루 보지 않고 그동안의 활동으로 알게 된 경찰 조직 내의 컴퓨터 전문가, 이민국 직원, 신문사 기자 등의 도움을 받아 사건을 추적한다. 자신의 파트너인 ‘제리 에드거’는 사건보다는 부업인 부동산 중개업에 더욱 치중하는 인물이고, 직속 상관조차도 그에게 이렇다 할 도움을 주지 않는다. 그는 철저하게 이방인인 것이다.

 

그런 열악한 환경 속에는 그는 ‘메도우스’ 가 함께 땅굴을 파 안전금고를 털었던 공범들을 찾아내고 그들이 이 일을 벌인 진짜 이유를 밝혀낸다. 작가는 소설 곳곳에 복선과 단서를 심어 두었고 해리 보슈는 이를 하나로 모아 빠진 조각들을 하나하나 맞춰가며 사건을 해결해 나간다. 소설은 해리보슈의 행적을 하나하나 따라가며 함께 거대한 이야기에 동참하게 되고 작은 단서, 그저 일반적인 대화까지도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으며 소설의 결말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일반적으로 2권의 분량인 소설은 5월 20일에서 사건이 해결되는 28일까지 총 9일간, 총 9부의 이야기를 1권에 담고 있는데 베트남에서 촉발된 사건의 불씨는 20여년이 지나 불이 붙었고 완전범죄로 끝날 뻔 했던 금고 도난사건이 메도우스 살인 사건으로 세상에 드러나게 된다. 마지막 3일간의 이야기는 드디어 흩어져 있던 단서들이 뚜렷한 형체를 형성하여 거대한 강물처럼 거침없이 전개된다. 그리고 소설 중간 중간에 단서와 함께 풀어놓았던 모든 의문들을 말끔하게 정리된다.

 

소설이라 그럴까, 아님 해리 보슈이기 때문에 그럴까. 다 읽고 나서 보니 이런 거대한 비리와 비밀을 담은 사건이 거의 1주일 만에 해결이 되어 있었다. 내가 이 무거운 소설을 가방에 넣어 들고 다니면서 짬짬이 읽은 시간도 그 정도 될 거 같은데. 거기다 작가는 친절하게도 왜 해리 보슈는 재즈만 듣는지에 대한 내 의문에 대답까지도 준비해 놓고 있었다. 참으로 치밀한 작가가 아닐 수 없다. 베트남 땅굴 거대한 어둠 앞에서 들리던 어둠의 메아리. 그 어둠을 이렇게 여러 가지 사건으로 엮고 반전으로 독자를 들었다 놨다하는 작가는 정말 대단한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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