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먼트
S. L. 그레이 지음, 배지은 옮김 / 검은숲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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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먼트》

 

 


가족이나 부부에게 위기가 닥쳤을 때, 혹은 수많은 인간관계에 위기가 닥쳤을 때 어떤 식으로 해결 하는지를 보면 그 사람의 면면이 보인다. 솔직히 내가 이 소설을 읽으면서 마음속으로 제일 많이 외쳤던 말은 ‘제발 얘기해. 제발 대화 좀 해. 제발 솔직하게 좀 굴어.’ 였다. 인간관계를 망치는 가장 큰 실수는 상대방의 생각과 의중을 자기 멋대로 지래 짐작하고 행동하는 것이다.

 

물론 입 밖에 내서 좋은 것이 없는 것들도 분명이 있지만 사랑하는 사이에서 그 것도 가족 사이에 자신의 상처받은 마음을 숨기고 사는 건 별 도움 될 것이 없다. 이런 문제에서 당사자들은 상대방을 사랑하기 때문에, 상대방이 이 일 때문에 자신을 떠날까봐, 혹은 괜히 그런 말을 입 밖에 내서 관계를 더 망치게 되는 것을 두려워해서 이런 선택을 하게 된다. 그러나 더 무서운 것은 이 가족애 아닌 가족애가 명분이 되어 이기심으로 발화하게 될 때이다. 내 배우자, 내 자녀를 위해 다른 가족이 상처 받게 될지 모르는 일들을 하며 어쩔 수 없다고 변명하게 되는 그 순간 말이다.

 

여기 그 문제의 소설이 있다. 주인공은 둘 사이에 어린 딸을 가진 젊은 아내 스테프와 한 번의 이혼 경험과 큰 트라우마를 갖고 있는 중년의 남편 마크. 소설은 같은 일상이 둘의 시각으로 번갈아 두 번 씩 서술하며 진행된다. 소설은 첫 시작부터 너무나 불안하다. 스테프, 마크 부부와 마크의 여자 친구 칼라 커플의 식사 장면. 스테프는 남편의 여자 친구인 칼라를 지나치게 의식하고 넷의 대화는 중요한 논점을 살짝 살짝 비껴가며 긴장감이 고조되다가 칼라가 마크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고 스테프를 나무라듯이 몰아붙일 때 최고조에 달한다.

 

젊은 아내, 중년의 남편과 그 남편의 오랜 여자 친구. 뭔가 삼각관계의 냄새를 진하게 풍기지만 이 부부의 문제는 이 뿐만이 아니다. 얼마 전 주인공 부부의 집에 강도가 들었을 때 아내와 아이를 위협하는 강도 앞에서 한없이 무기력하던 남편의 모습은 자신과 아내 둘 다에게 깊은 상처를 남겼던 것. 칼라는 이 부부에게 여행을 제의하고 부부는 숙박공유 플랫폼을 이용하여 서로의 집을 교환해서 살아보는 여행을 계획하게 된다.

 

이 둘은 평소 가고 싶었던 프랑스 파리로 여행을 떠나게 되지만 그들이 묵을 아파트는 사이트의 소개와 너무나 달랐다. 아파트는 위층에 이상한 말을 지껄이는 여자 하나를 제외하고 이미 오래 사람이 살지 않았던 듯하고 창문은 모두 막혀있으며 심지어 옷장에서는 사람들의 머리카락 뭉치가 가득한 양동이가 발견된다. 게다가 1층 뒤편에는 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리는 창고까지. 그리고 위층의 여자는 부부에게 여기를 떠나라며 몇 번의 이상한 충고를 하다 부부 앞에서 창문으로 뛰어내려 자살하고 만다.

 

이상한 아파트와 이상한 여자. 여자의 이상한 경고. 부부는 자신들이 겪은 일들, 두려움과 불안, 상대방에게 섭섭한 모든 것들을 정면으로 바라보지 않는다. 이 이상한 아파트에 발을 디뎠을 때 그들은 바로 이곳을 떠나야 했다. 아니었다면 차라리 싸우기라도 했어야 했다. 그러나 그들은 서로의 껍질 속에서 웅크리고 있기를 선택한다. 그리고 남편은 서서히 이상한 행동을 하기 시작한다. 삶의 전환점이 되리라 생각했던 여행은 더 큰 불행과 공포를 몰고 왔고, 다시 집으로 돌아와서도 이 둘의 관계는 점점 악화되기만 한다. 부부는 자신의 불안과 공포에 사로잡힌 체 서로를 의심하며 불안을 고조시킨다.

 

그리고 남편에게 일어나는 일련의 일들, 환상, 강박적이고 폭력적 행동 등은 결국 이 끔찍한 이야기를 공포의 정점으로 이끈다. 그러나 진짜 공포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앞에서 얘기한 ‘이기심’이 바로 그것이다. 아내는 이 끔찍한 일들을 마주하거나 해결할 생각이 없다. 결국 이 불행과 공포를 다른 가족에게 떠넘기는 선택을 하고 만다. ‘그게 당신이어서 미안해요‘ 라면서.

 

물론 소설은 가족의 이기심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은 아니다. 내 눈에 그 흐름이 도드라져 보였을 뿐, 답답함과 서스펜스, 공포는 이 소설을 하나의 범주 안에 묶는 것을 어렵게 한다. 또한 미스터리, 심리 스릴러와 호러를 완벽한 균형으로 그려냈다. 서로에게 솔직하면 어땠을까. 단 한번 만이라도 제대로 된 대화를 하면 어땠을까. 자신이 가진 비밀과 두려움을 털어놓았다면 어땠을까. 소설은 소설일 뿐이지만 너무나 현실적이면서 또 한편으론 너무나 비현실적이어서 읽는 내내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말이 떠오른다. 현실이 너무 힘들어 여행을 떠나지만 현실에 돌아오면 아무것도 달라진 게 없다는. 결국 회피는 그 어느 문제의 답도 되지 않는 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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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의 7번째 기능
로랑 비네 지음, 이선화 옮김 / 영림카디널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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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의 7번째 기능》

 


 

『언어의 기능』 로만 야콥슨 (러시아 언어학자)

지시적 기능 감정 표현적 기능 능동적 기능 친교 적 기능 메타 언어적 기능 시적인 기능 ?

소설을 읽기 전에 ‘언어의 기능’엔 무엇이 있는지 찾아보았지만 이렇다 할 답을 찾지 못하고 책장을 펼쳤다. 아마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것이 아닌 어느 학자의 이론이겠구나 생각하면서. 작품을 읽기 전에 나의 호기심을 너무나 자극하고 또 한편으론 읽기를 망설여지게 했던 것이 바로 ‘20세기 최고의 지성들 사이에서’ 혹은 ‘지적스릴러’ 등의 수식어들이었다. 결국 이 면면들 때문에 중간에 책읽기를 포기하고 싶을 만큼 지독하게 힘들었고 또 그 이유 때문에 끝까지 다 읽을 수밖에 없었다.

 

일단 작품은 너무나 불친절하다. 설명 없는 장면전환, 일반적인 스릴러물이라면 크게 다루지 않았을 등장인물들의 대화 혹은 토론 내용, 극본도 아니면서 지문까지 동원하여 세세하게 묘사한 인물들의 대화, 생각, 표정과 제스처까지. 게다가 철학과 역사에 문외한인 나 같은 사람은 절대 이해 못할 내용. 이런 곁가지들을 따라가다가 이야기의 큰 줄기를 놓치기도 여러 번.

 

막상 결론까지 읽고 보니 이야기의 기승전결보다는 그 과정 속에서 주인공이 겪었던 일들이 소설의 중심이었다. 언어의 7번째 기능에 대한 힌트도 이미 소설 초반부에 던져 주었고 이 언어의 기능의 비밀보다는 누가 이 기능을 얻으려고 하는지, 이 기능을 얻기 위해 어느 선까지, 혹은 어느 조직이 움직이고 있는지, 그 와중에 ‘롤랑 바르트’ 는 누구에게 죽게 되었는지 등이 중심이 되어 전개되고 있다.

 

또 하나 소설을 기대하게 했던 요소인 ‘바야르 경위’와 샌님 학자 ‘시몽’콤비의 활약은 언어와 3단 논법, 각종 철학자와 예술의 담론이 넘실대는 이 소설을 현실로 끌어오게 하는 역할을 아주 훌륭하게 해내고 있다. ‘롤랑 바르트’ 죽음을 파헤치며 단서를 좇아 다양한 도시를 방문하게 되는 주인공들은 죽음의 고비를 넘기도 하고 약에 취하거나 환락(?)의 짜릿함도 경험하게 되지만 샌님 학자 ‘시몽’이 소설 후반부로 가면서 ‘로고스 클럽’ 이란 은밀한 언어집회, 혹은 토론클럽 내에서 단계를 높여가며 승승장구하는 모습은 가히 압권이라 말할 수 있다.

 

손가락을 걸고 행해지는 긴장된 대결, 이 소설은 오로지 이 장면을 위한 게 아닐까 하는 정도로 큰 비중을 차지한다. 그리고 이 점이 소설의 하이라이트이며 끔찍하지만 시원한 결말을 선사해주는 가장 중요한 요소가 된다.

 

언어의 7번째 기능 무엇일 것 같은가? 예로부터 ‘두려움’을 잘 이용하는 자들이 세상을 지배해왔다. ‘두려움은 힘의 담론에서 생기며 결국 연설을 잘 하는 자가 두려움과 사랑을 일으키는 능력으로 세계를 지배했다‘ _p286_ 그리하여 ’언어‘를 가진 자가 항상 가장 막강한 권력을 행사하지 않았던가. _p285_ 지금도.

 

이 소설은 철학과 예술 대화 혹은 담론, 토론, 언어학, 기호학, 지적유희 등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너무나 좋아할만한 작품이고 나처럼 이 분야에 문외한 이라면 좀 힘들 수는 있겠지만 미스터리와 추리 반전, 스릴러를 좋아하는 독자라면 한번 쯤 도전해도 좋을 만한 작품이다. 이야기 자체를 따라가는 스타일이 아니라 그 과정의 세세함을 즐기는 독자도 좋아할 만한 작품이다. 아! 그리고 움베르트 에코, 미테랑, 데리다 등 실존인물들의 등장과 활약도 중요한 포인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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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별이 사라지던 밤
서미애 지음 / 엘릭시르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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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별이 사라지던 밤》

 

 


어째 범죄문학, 소위 말하는 장르 문학은 아직도 문학으로써 제대로 된 대접을 받지 못하는 것 같은데 이런 스타일의 드라마는 오히려 전성시대를 구가하고 있는 듯하다. 흔히 말하는 ‘막장 드라마’ 조차도 그 형식은 웬만한 추리, 스릴러 소설 못지않은 것을 보면 말이다. 더 의아한 것은 본격스릴러, 범죄 드라마들이 제대로 만들어지고 높은 시청률을 구가하는 부분이다.

 

그리고 예전엔 이런 스타일의 소설들이 내용이 비현실적이거나 너무 과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었는데 요즘은 소설이 현실을 못 따라 가는 것 아닌가 싶게 현실은 잔혹하다. 잔인한 짓을 저지르는 나이는 점점 낮아지고 가진 자들이 벌이는 비위는 상상을 넘어선다. 이런 현실 속에서 범죄문학은 이제 어찌해야 할까.

 

‘추리소설의 여왕‘ 서미애 작가의《당신의 별이 사라지던 밤》역시 끔찍한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며 독자의 숨통을 조인다. 차라리 엉엉 울 수라도 있으면 좋은데 가슴이 답답하고 목이 막히는 고통은 내 짧은 능력으로는 표현하기 어렵다. 자식을 먼저 잃은 고통을 어디에 비할 까. 자식을 먼저 보낸 부부들은 대부분 사이가 예전 같지 않다고 한다. 둘은 각자의 방식으로 아픔을 잊으려 혹은 이겨보려 한다. 소설 속 주인공 부부도 그러했지만 결국 아내는 속으로 암을 키우고야 말았다.

 

소설 도입부의 숨 막히는 불안은 그 끝이 어디로 향할지 몰라 독자를 불안하게 만들고 중반 이후의 불안은 먼저 보낸 딸이 또 어떤 일을 당했구나, 범인은 어쩜 제대로 된 처벌을 받지 않았거나 죽음에 어떤 비밀이 있겠구나 등등의 상상을 하게 만들며 그 상상보단 마주하게 될 진실이 무엇일까에 더 두려움을 가지게 만든다.

 

이제는 홀로 남은 주인공은 이 시대의 평범한 가장이다. 가족을 위해 열심히 일하고 사랑하는 딸이 품은 꿈을 위해 주말마다 딸과 별을 보러 다니는 딸 바보였다. 아내가 죽어가며 남긴 한 마디 말로 이 남자는 자신의 인생을 포기하고 진실을 찾기 위해 위험한 행보를 이어간다. 그리고 끔찍한 진실은, 대체 누가 가해자인지 고민하게 만들고 시대가 낳은 거대한 악마를 직면하게 한다.

 

물론 그렇다. 모든 개인의 잘못을 사회의 탓으로 돌리는 건 위험한 일이긴 하지만 그럼에도 이 시대를 이렇게 만든 잘못을 비껴가긴 힘들 것 같다. 다른 시점으로 진행되는 두 사람의 이야기가 만날 때 예상했음에도 너무나 화가 나고 힘들었다. 가해자가 희생자가 되고 또 다른 가해자는 또 날 때부터 그랬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고. 그리고 소설은 결말을 향해 속력을 내기 시작한다.

 

작가는 주인공의 입을 빌어 말하고 있다. “만일 그 때로 돌아갈 수 있으면 뭔가 달라질 수 있었을까, 라고.” “우리가 사는 이곳이 지옥이 된 이유는 악마들이 나쁜 짓을 해서가 아니라 우리가 아무것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소설의 발단이 된 단원고 학생의 빈 방을 찍은 사진과 작가가 경험한 죽음으로 인한 가족의 부재. 작가는 타인의 고통까지도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뼈를 깎는 고통으로 이 소설을 마쳤으리라.

 

그러니 이런 현실 속에서도 여전히 ‘소설’ 이 가지는 힘은 약하지 않다고 말하고 싶다. 험한 세상에서도 그런 현실을 그대로 담은 끔찍한 이야기 속에서도 여전히 작가는 우리에게 질문을 하고 있으니까. 그 ‘질문’이 바로 소설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 아닐까. 펼치자마자 한 번도 쉼 없이 다 읽어버린 소설. 많은 독자들에게 읽히길 바라는 마음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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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지키려는 고양이
나쓰카와 소스케 지음, 이선희 옮김 / arte(아르테)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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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지키려는 고양이》



 


학창시절 취미를 적어야 하는 일이 있을 때 특별한 취미가 없는 사람이 별 생각 없이 적는 것이 바로 ‘독서’였다. 그러나 나이가 들어 취미로 ‘독서’를 말하는 사람은 진짜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다. 책은 끝났다는 말이 떠돌기는 하지만 그래도 한 달에 몇 권씩 책을 사고 도서관에 들러 책을 읽는 사람은 여전히 존재하고 그 사람들에게 책은 특별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나는 책 자체가 좋고 읽는 것도 좋아한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책을 수집하는 것에 애정을 두는 사람이 있고 읽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데 나는 둘 다 좋아한다. 읽은 책은 꼭 갖고 싶지만 여의치 않을 땐 도서관을 이용한다. 이사를 다닐 때만큼은 책이 참 문제지만 책장에 가지런히 꽂혀 있는 책을 보면 어찌나 뿌듯한지 모른다.

 

왜 책을 좋아하게 되었는지는 모르겠다. 학창시절에는 문학소녀를 표방했지만 그 땐 이해도 안 되는 어려운 책을 읽으며 뽐내려는 마음이 강했던 것 같다. 그리고 나이가 들어서는 내가 추리나 미스터리 소설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지금은 궁금증이 생기는 이야기는 가리는 것 없이 읽지만 주로 미스터리나 추리, 스릴러 소설을 읽는다. 내겐 가장 강력한 유흥이고 즐거움이니까.

 

《책을 지키려는 고양이》에는 여러 가지 '책의 미궁'이 등장한다. 책의 미궁은 책이 고통 받는 공간이다. 누구는 보여주기 위해 많은 책을 모으고 과시하기 위해 전시한다. 또 누구는 오로지 책을 많이 읽기 위해 책을 조각낸다. 많이 읽는 다는 것이 부와 명예를 가져다주기 때문이다. 누구는 책을 닥치는 대로 찍어낸다. 내용에는 상관없이 오로지 ‘팔리는’ 알맹이 없는 책들을 찍어내어 진짜 좋은 책들은 대중들에게서 멀어지게 만든다. 또 누구는 더 이상 사람들이 책을 사랑하지 않음에 좌절한다. 그 속에 책들을 갇히고 난도질당한다.

 

책의 미궁에서 책을 해방하는 아니, 책을 그렇게 다룬 사람들을 해방하는 주인공은 평범한 고등학생이다. 고 서점을 운영하시던 할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주인공은 자연스럽게 서점을 물려받게 되었지만 고모의 결정대로 서점을 정리하려한다. 그런 순간에 기묘하게도 등에 얼룩무늬가 있는 ‘얼룩이’라는 말하는 고양이를 만나게 되고 그 고양이는 주인공을 ‘2대’라 부르며 ‘책의 미궁’에서 책을 구해달라는 요청을 하게 된다. 그리고 그들의 모험이 시작된다.

 

이 소설은 미스터리 판타지 소설이지만 ‘책의 우화’라고 말하고 싶다. 이 소설은 나처럼 ‘책을 좋아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향한 질문일 수도 있고 이 시대에 책을 읽는 행위나 책 자체가 어떤 의미인지 고민하게 해 주는 소설이기도 하다. 실은 뭐 나 스스로 뜨끔 했는지도 모르겠다. 책을 좋아한다면서 책을 어떤 수단으로 삼지 않았는지 어떤 눈으로 바라보고 생각하고 있었는지.

 

판타지나 미스터리를 좋아하는 독자라면 좋아할 만한 소설이고 청소년이 읽으면 책을 읽는다는 것을 한번 쯤 생각할 수 있을 것 같다. 미스터리라고 생각하면 다소 부족하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우화’라고 생각하면 많은 생각을 하게 해 줄 것이고, 청소년 자녀와 함께 읽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면 더더욱 좋을 것이다. 주인공과 등장인물들은 너무나 사랑스럽고 한 문장, 한 문장 모두 저장해 놓고 싶을 정도로 책에 대한 명언들이 가득한 참 사랑스러운 소설, 책이다. 그리고 주인공이 책을 좋아하는 이유로 나 또한 책을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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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랑탐정 정약용
김재희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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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랑탐정 정약용》

 


 

정조와 정약용, 이토록 다양한 변주가 가능한 인물이 있을까. 개혁가, 학자, 거대한 꿈을 품었지만 끝내 원하는 것을 이루지 못한 비운의 인물 등, 김재희의 신작《유랑탐정 정약용》 속의 주인공 정약용은 탐정으로 분한다. 물론 그는 진짜 탐정이 되는 것은 아니고 의도하지 않게 관직을 전전하다가 머무는 고을에서 혹은 암행어사가 되어 자연스럽게 전국을 누비며 백성들의 풀리지 않는 강력 사건을 조사하게 된다.

 

역사엔 ‘만약’이 없다지만 ‘이랬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 때문에 더욱 그런 생각을 해보게 된다. 조선 역사 속 가장 안타까운 인물인 정조나 정약용이 등장하면 반사반응처럼 바로 그런 생각을 하게 되는데 소설은 역시 그 이야기를 담고 있다. 솔직히 말하면 책 제목이나 표지 아트웍을 보면서 떠올린 첫 느낌은 곧 3편을 개봉하는 ‘조선명탐정’ 시리즈처럼 조금은 가볍고, 유머러스하며 좀 더 사건에 집중하는 ‘탐정’이 등장하는 소설이 아닐까 했는데 내 예상과는 다소 다른 면이 있었다.

 

영화 속의 명탐정인(역시 정약용을 모델로 삼지 않았을까) 김민과 파트너 서필 처럼 소설에도 정약용과 김가환 이라는 나이 많은 친구가 등장하지만 영화처럼 찰떡궁합을 자랑하기 보단 정약용의 사상과 생각을 정리하게 해주는 지기로써의 역할에 준한다. 또한 영화처럼 묘한 여인이 등장하지만 소설 초반부에 이미 그 여인의 역할을 짐작하게 된다.

 

그리고 탐정 소설에서 절대 빠지지 않는 ‘악의 축’이 등장한다. 오랜 세월이 지났지만 늙지 않는 남자, 그 깊이와 한계를 상상할 수 없는 학식과 경험, 신묘한 의술로 사람들을 모으고 사상을 설파하는 의문의 남자. 소설 속 탐정 정약용은 어쩌면 일생 동안 이 남자의 영향아래서 혹은 첫 만남의 황홀하지만 끔찍한 경험의 비밀을 풀기위해 그를 동경하고 이해하면서도 결국 대립하여야 하는 운명 속에 갇힌다.

 

어사또가 된 정약용은 한 고을의 가렴주구를 일삼는 수령을 응징하려 준비하는데 그 과정 속에 배 속의 장기가 모두 사라진 사람의 살인 사건을 만난다. 다른 마을에서도 그 비슷한 일이 여러 건 일어나는데 이 일을 이상하게 여긴 정약용은 특유의 날카로운 시선으로 사건을 파헤친다. 그러다 그 일의 정점이 한 남자에게로 향하고 있음을 알게 되는데 그 남자는 정약용이 어린 시절에 겪었던 끔찍한 일의 주인공임을 알게 된다.

 

그 남자의 비밀이 바로 이 소설을 이끌어 가는 견인차다. 정약용을 조선의 CSI라고 표현하고 있지만 CSI 로써의 활약보다는 정약용이 조선에서 이루어 내려고 했던 원대한 꿈의 실현을 점진적 개혁을 통해서냐 혁명이냐를 두고 고민하는 정약용의 모습에 더욱 무게가 실린다. 다른 사건들은 모두 이를 위한 포석이었다고나 할까. 결국 악의 축으로 상정된 남자의 고민과 정약용의 고민이 다르지 않음을 우린 모두 알고 있으니까.

 

소설의 내용이나 전개, 등장인물과 그 역할들을 보자면 성인만을 위한 소설이라 하기엔 그 강도가 다소 약하다. 요즘 발표되는 미스터리 소설들과 비교해 보자면 말이다. 아마 김재희는 이 소설을 좀 더 다양한 연령층에서 읽어 주었으면 하고 바라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해 보았다.

 

가족이 함께 읽고 토론해 본다면 더욱 좋을 것 같고, 크게 무겁지 않는 미스터리, 탐정, 스릴러 소설을 원하는 독자들에게 추천을 하면 좋을 소설이다. 복잡하고 반전을 거듭하는 소설이 아니라서 즐거운 마음을 가볍게 읽기 좋을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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