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짧은 세계사
제프리 블레이니 지음, 박중서 옮김 / 휴머니스트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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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짧은 세계사  A Very short History of the World

 

 

 


이 책은 2000년에 나와 인기를 끌었던 저자의 <짧은 세계사 A short History of the World>가 내용이 너무 길어 '그렇게 긴 책은 읽은 시간이 없다' 는 독자들의 건의를 받아들여 짧게 쓴 역사 책이다.  이 책에서는 시대별, 나라별로 역사를 표현하는 일반적인 방식을 따르지 않는다. 시기를 표현하는 정확한 연도도 표시하지 않았다.


아프리카에서 출연한 최초의 인류가 지구 전역에 정착하게 되는 긴 과정을 이야기 마치 하듯이 표현한다. 하나의 대륙으로 연결되어있던 지구에서 인류가 이동하는 기나긴 과정, 빙하가 녹으면서 지구가 각 대륙으로 나눠지고, 그 곳에서 고립된체 살아가게된 사람들, 그 후 배를 만들어 대륙을 오가게 되는 일들, 큰 강들이 생기고 그 곳에서 문명과 도시가 발달되는 일들이 편안하게 펼쳐진다.


시대가 발달하고 각 대륙을 지배하던 군주가 나타나고 제국이 생기고 스러지는 과정,  교역이 일어나는 일들, 종교가 생기고 변절되고 발전해 왔던 과정, 발명을 통한 과학과 수학의 발달, 그로인해 파생된 무기의 발달과 달착륙, 문화와 예술, 건축이 발달하는 과정, 사상의 발달, 식민지와 노예, 독립전쟁, 독제자와 세계대전등 인류가 겪었던 거의 모든 일들이 다뤄진다. 읽을 때는 몰랐는데 이렇게 적어놓고 보니 어찌 생각하면 참으로 경이로운 책이 아닌가 한다.


지구가 태어나 생명이 생기고 몇번의 빙하기가 왔다가 가고 인류의 역사는 그 지구의 역사에 비하면 얼마되지 않지만, 그동안 인류가 이루어 놓은 것은 참으로 대단하다고 밖에 말 할 수 없다. 그러나 이 책을 읽으면서 그렇게 재미있지는 않았던 것 같다. 아마 그 방대한 세계사 속에 우리의 역사는 큰 비중을 차지 할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현재 중국의 자리에 생겼다 사라진 많은 나라들을 그저 '중국' 이라 표기해 놓은 때문일까,  황제나 징기스칸, 현대에 들어와서는 일본이 지배한 나라의 테두리에 우리가 속해 있었기 때문일까. 인류의 역사에 나타난 큰 문명들도, 큰 사상가도, 큰 종교도, 큰 발명도 모두 우리와는 관계가 없기 때문일까.

 


이런 책을 읽다보면 역사가 얼마나 중요한 지 새삼 깨닷게 된다. 이방인에게 비친 우리의 모습이 어떤가가 그리 중요한 것은 아닐지도 모르겠지만, 왜 그렇게 불편한 느낌이었는지 모르겠다. 남들은 역사를 왜곡해서까지 그들의 역사 연도를 높이고 있는데, 우리는 이상하게도 낮추지 못해 안달이고, 남들이 우리 역사와 영토까지도 다 가져가려고 용쓰는 동안 우리는 더 주지 못해 안달인 이상한 정부을 보고 있어야 하니 말이다.


일제가 강제로 우리나라를 범하고 역사를 왜곡하고 몇십만권이 되는 역사서를 거져가고 식민교육을 통해 문화를 송두리째 흔들어 놓은 그 후유증이 참으로 길다. 동북공정을 통해 중국 정부가 자기들의 역사에 편입하고자 하는 홍산문화 (신석기문화), 그 문화가 우리 선조들이 만든 문화인지도 모른다는 것을 사람들은 관심이나 있을까. 그렇다면 이 책이 다르게 쓰여져야 한다는 것도. 연구를 하고 싶어도 할 수없는 현실을 어찌 생각할까. 남들이 이렇듯 우리것을 가져가려고 애쓰는 동안 정부차원에서 하는 일이란 과연 무엇일까. 고구려가 우리 역사라고 외치는 것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다는 것에 과연 그 누가 관심을 가질 것인가... 아무래도 이런 생각으로 마음이 무거웠나 보다.


이 세계사는 연도 때문에 해깔리지도 않을 것이고, 너무나 자세해서 머리아픈 그런 역사도 아니다. 그냥 생각날 때마다, 혹은 관심있는 분야를 펼쳐서 읽으면 된다. 굳이 앞 챕터를 읽어야 이해되는 책이 아니다. 연결은 되어있으나 연역적은 아니기 때문이다. 재미있냐고 묻는다면 글쎄 꼭 그렇다고는 말 못하겠다. 앞서 말했던 것 처럼 이책은 자세한 역사가 적혀있지 않기 때문에 누가 읽느냐에 따라 어찌 받아들이는가가 다를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계속 서술되는 형식으로 되어있고 간단하게 나오거나 건너뛰거나 하는 일들이 많기 때문에 약간은 지루한 면이 있었던 것 같다.


처음에는 공부하는 학생이 읽으면 전체적인 그림을 그릴 수 있어서 좋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조금 걱정이 된다. 물론 그 생각은 변함이 없지만, 청소년들이 훌륭한 우리 역사를 너무나 하찮게 볼 수도 있겠다 싶어서이다. 그냥 가벼운 역사서를 가지고 왜 그러냐고 물을 수도 있겠다. 그러나 나는 역사는 정말로 바로 읽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가장 정치적일 수 있는 것이 바로 역사다. 역사는 승리자의 입장에서 씌여지기 마련이고, 이 책 또한 서양인의 시각에 의해 씌여진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역사를 바로 세우고 세계사도 다시 씌여져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나는 민족주의에 빠진 어리석은 사람이 되는 것일까. 참으로 많은 생각을 하게 한 책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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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노무현 1
강효산(서훈) 지음 / 까만양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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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노무현

 

 

 

 

 

노무현. 그 만큼 파란만장한 일생을 살다간 이가 있을까. 가난한 농부의 아들, 고졸 학력으로 사법고시 합격, 판사임용, 해임 후 변호사로 활동, 국회의원, 대통령, 탄핵, 귀향, 자결. 큰 장면들만 한 문장으로 모아 놓아도 그의 엄청난 인생의 행로가 그려진다. 거기에 작은 일들까지 끼워 넣는다면 대하드라마를 써야 할 지도 모르겠다.

 

 

나에게 대통령님은 큰 존재가 아니었다. 이라크 파병 때 난 반대를 했고, 그가 탄핵 당했을 때 탄핵에 반대했다. 그때 아마 내게 그의 존재가 각인된 것 같다. 그 전에는 그에게 관심이 없었다. 아니, 정치 자체에 관심이 없었다는 것이 맞겠다. 더러운 사람들의 권력암투가 내겐 그저 구역질 나는 일일 뿐이었으니까. 그가 퇴임 후 봉하마을로 내려가셨을 때 난 그 사실이 너무 반가웠고, 후임 대통령과 수구세력들에게 고초를 당하고 결국 자결을 택해야 했을 때, 아마 그 이후부터 내겐 그가 너무나 큰 존재가 되어 버렸다.

 

 

그가 대통령인 시절 난 그가 대통령이란 것도 모른 채 살수 있었다. 그랬기에 난 그가 대통령직을 잘 수행했다고 본다. 그 이후 후임 대통령이 처음으로 했던 일들 중, 한가지 일에 나도 큰 타격을 입었고 그러면서 난 현실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 절박할 만큼. 노무현 대통령님과 지금의 현직 대통령의 차이는 내게 현실로 다가왔다.

 

 

4대강이 파헤쳐지고, 숭례문이 불타고,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각종 파파라치 양성, 독도문제, 친미, 친일을 넘어선 비굴한 국제관계, 그를 위시한 수구세력들의 어이없는 행태, 언론 장악, 민간인 불법사찰, 시대를 거스르는 색깔 논쟁, 연평도 포격과 잠수함 사건으로 보여지는 북한과의 대립각, 국민과 민족을 거스르는 역사관, 겉으로 해결을 한 듯 보이지만 더욱더 경쟁을 부추기는 교육관, 더욱 깊어진 지역감정, 민영화, 2012 런던 올림픽이 한창인 이때까지 그들의 횡포는 끝이 없이 이어지고 있고, 전직 두 분 대통령님의 시대와는 정반대로, 그들은 시대를 되돌려 놓았다.   

 

 

그랬기에 그에 대한 그리움은 날로 커져가고 있는 것이다. 그는 가고 없고, 나는 이제야 현실에 눈을 떴는데, 이 세상은 그대로 미쳐가고 있는 듯 하다. 그가 뿌린 씨앗이 자라나고 있다는 것을 그나마 다행으로 여겨야 하는 걸까.

 

 

이 소설에는 그리운 그의 흔적이 그득하다. 그가 이병이었던 시절부터 자결을 하기까지 정중덕과 양성익의 눈으로 본 그가 적혀있다. 정중덕은 육군 중사로서 이병 노무현을 만났고, 함께 세심거사를 만나 운명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된다. 훗날 정중덕은 법무관이 된 뒤 권력을 좆아 미국 CIA 요원이 되면서 노무현과 대립을 하게 되는 인물이며, 양성익은 정중덕과 친구사이로 수사경찰이 된 뒤, 나중에 변호사로써 노무현을 돕게 되는 중요한 인물이 된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살해된 후부터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되는데 1권에서는 거의 정중덕과 양성익의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박정희 사후 전두환 전 대통령이 쿠데타로 정권을 잡고, 그 틈바구니 사이에서 어떻게 그들의 행보가 엇갈리는지를 보여주면서 우리의 현대사가 펼쳐지는 것이다. 정중덕의 역할은 미국의 대리인이다. 2권에서 드디어 그의 본격적인 행보가 시작된다. 그가 대통령이 되는 역사적인 순간, 정책을 하면서 부딪쳤던 일들, 위기들의 계속, 탄핵과 귀향, 그가 끝까지 놓지 않았던 한반도의 평화. 그 모든 것들이 펼쳐진다.

 

 

이 소설에서 노무현을 결국 자결에 이르게 한 것은 미국의 네오콘 (미국의 신보수주의자들) 이며, 그들을 추종하는 국내 수구들 요즘 유행하는 말로 종미’, 친일의 무리, 그리고 책에서 표현하는 대로 C일보, 즉 언론이었다. 그런 것들을 표현하기 위해 저자는 중덕을 CIA 요원으로 설정한 듯하다. 미국이 원하는 것은 평화가 아니다. 평화를 위해 남북이 손잡는 것을 원치 않는다. 주한미군이 계속 남아있어야 하며, 적절한 긴장관계를 통해 이익을 얻으려는 그들의 속셈에 평화를 위해 노력하는 노무현은 방해가 되는 것이다. 그들은 그리하여 결점이 많아 주무르기 쉬운 차기 대통령이 선출되도록 뒤에서 힘을 썼고 그 결과가 바로 지금의 현실이다. 그들은 노무현을 직접적으로 죽이지는 않았지만 친일과, 친미, 반공사상으로 무장한 국내 수구세력, 거기다 언론과 힘을 다해 그를 사지로 몰아 넣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는 자살이 아니라 자결을 했다. 노무현은 그들이 원하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고 이 소설은 말한다. 그가 이 세상에서 사라지지 않는 한 그들이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없기에, 그의 죽음을 원한다는 것을. 그가 있지도 않는 죄를 뒤집어 쓰고, 그의 측근들도 똑 같은 일을 당하고 그런 모습을 보며 평생을 그 속에서 살아가기에 그는 너무도 뜨거운 사람이었으니까. 이에 그는 스스로의 생을 마감함으로써 남아있는 자들에게 희망의 불씨를 남겨준 것이다.

 

 

그의 바람대로 나는 더 이상 그의 죽음을 슬퍼하지도 않을 것이며, 그가 남겨준 것들을 잘 키워가리라 다짐을 한다. 모든 것은 운명이며, 삶과 죽음은 다르지 않으므로. 그는 운명을 알았다. 운명이란 것이 그저 살아가며 만나게 되는 우연이 아니라, ‘인과라 하기에. 지금이 아니면 그 다음, 그 다음이 아니면 그 다음다음. 우리는 계속 살아가고, 그가 남긴 씨앗도 계속 살아남아 우리 곁에 성장할 것이다. 아직 사람 사는 세상은 오지 않았다. 그가 원했던 사람 사는 세상을 위해 나도 내 인생에서 지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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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편집광의 비밀서재
릭 바이어 지음, 오공훈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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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편집광의 비밀서재

 

 

 

 

나에게 과학이란 너무 어렵기만 한 분야였다. 어떤 원리, 어떤 정의, 어떤 실험 등이 호기심을 자극하긴 했지만 나의 이해력을 넘어서는 분야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과학이 지금처럼 발달 되기 전에 나처럼 이해할 수 없는 것을 알아내기 위해 수많은 고민과 어설픈 실험을 계속했던 사람들이 있었고, 그런 그들에게 영감을 주거나 공을 가로챈 사람도, 뭔가 미스테리한 의문을 남긴 발명가 들도 있단 것을 알고 보면, 또 그렇게 어렵고 딱딱한 분야만은 아닌 듯 하다.

 

 

 

이 책에는 참으로 많은 과학자와 발명가들이 등장하는데 하나도 놓치지 못할 만큼 재미있고 신기한 일들로 가득하다. 요즘은 너무나 당연하게 여기는 것들이 처음 발명 단계에서는 너무 크거나 쓸모 없다고 여겨지기도 했고, 때론 너무나 당연히 여기는 것들도 과거의 그들의 눈엔 너무나 신기하고 엉뚱하게 느껴졌다는 것들을 보면 시간이 흐른 후 우리가 신기하게 여기는 것들이 먼 미래에선 어떻게 받아들여 질까 하는 생각도 해보게 된다.

 

 

 

 

 

내가 특히 재미있게 보았던 장면은 우리가 당연히 여기는 아라비아 숫자 1,2,3… 0의 개념이 쓰이기 까지 몇 백 년이 걸렸다는 것, 내가 키우고 있는 고양이들 화장실 모래가 발명된 모습, 복화술사가 설계한 인공심장편, 2000년 전 페르시아 사람들이 썼다고 여겨지는 배터리의 미스터리함, 그리고 아인슈타인의 뇌가 아직 보관되고 있다는 다소 엽기적인 이야기, 눌러 붙지 않는 프라이펜의 등장등 이었다. 이 중에 많은 매체에서 보고 들은 우리가 알지 못했던 상식등도 있었지만 하나 같이 재미있고 흥미진진했던 것 같다. 그리고 각 에피소드마다 실려있는 많은 사진과 실제 특허를 받았던 시절에 제출한 설계도 등은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었고, 그것 자체로 많은 재미를 준 것 같다.

 

 

 

이 책은 참 가볍게 읽을 수 있으며, 참으로 재미있는 책이다. 학생들이 읽는다면 어려운 과학에 접근하는데 도움도 되고 호기심과 교양을 충족시켜줄 수 있는 좋은 학습재료가 될 수 있을 것 같고, 나 같은 일반인 들에게도 교양과, 즐거움, 호기심 충족 모두를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읽는 내내 즐거워서 금방 다 읽어 버릴 만큼 가독성도 좋다.  차례대로 읽어도, 어느 한 부분 펴서 읽기도 좋고, 특히 휴가지에서 읽어도 좋을 만큼 부담 없이 즐거움을 줄 수 있는 아주 훌륭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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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의 빛깔 - 여성동아 문우회 소설집
권혜수 외 지음 / 예담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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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의 빛깔

 

 

 


'여성동아 문우회'는 지난 40여년간 여성동아 장편소설 공모 당서잔들의 모임이며, 1975년 동아일보 광고 탄압 사태를 계기로 유신시대에 저항하기 위해 모임을 갖기 시작하여 오늘에 이르른 모임이라고 한다. 이 책은 문우회에 속한 16명의 작가가 각 1편씩 총 16편의 작품이 실려 있는 소설집이다.

 


예쁜 여자의 사진과 예쁜 하얀색의 표지가 인상적인 이 소설 집. 실은 여기에 실린 소설들 보다 '들어가는 말'의 빨간 구두 동화에 관한 이야기 3쪽이 더 강렬했다. 그 강렬함에 책장을 넘기는 손이 더 기대가 되었다.

 


길지 않은 단편 16편이라 읽기에 부담이 되지 않았고, 각 소설이 끝날 때 마다 작가의 말이 짧게 실려있어 이 소설이 어떤 느낌에서 씌여진지 힌트를 얻을 수 있었다. 나도 여자여서 그런지 좀더 공감이 되고 더 흥미롭지 않았나 한다.

 


16명의 작가가 있으니 각 소설들도 느낌이 많이 다르다. 난 개인적으로 시공간을 초월해 '허균' 과의 사랑을 보여준 유춘강 작가의 '꽃이 붉다고 한들' 과 이불하나로 영화속의 주인공들과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네 삶을 연결해 보여준 유덕희 작가의 '눈이불', 아직도 기억이 생생한 구제역과 조류독감으로 인해 살아있는 생명들을 산 채로 매장해야 했던 불행한 일을 단소와 스님의 소신공양으로 보여준 박재희 작가의 '태평가', 타락한 종교인과 신앙인 사이에서 방황하고 상처받은 신부님을 통해 진실된 믿음과 종교의 역할을 생각하게 해준 우애령 작가의 '겨울나무' 마지막으로 자신이 자신에게 보낸 편지로 폐경기를 맞이한 외로운 중년 여인의 삶을 담담히 보여주는 김설원 작가의 '딸매기야, 딸매기야' 가 참으로 좋았다.

 


시공간을 초월한 사랑이나, 종교와 믿음, 자연과 인간의 문제, 나이들어감에 따라 우리가 받아들여야 하는 삶의 변화 이런 것들을 담담히 써내려간 글들을 읽으며 나의 모습을 돌아보기도 하고, 대학교때 어설펐던 첫 연애의 기억을 떠올리며 얼굴을 붉히기도 했다.

 


이 소설집은 폐경을 겪으며 지독한 갱년기를 겪었던 엄마, 고생만 실컷 하시다가 이제 살만해 지니 치매가 오셔 결국 요양원에 들어가게 되신 우리 외할머니, 첫 애로 아들을 낳지 못하고 딸인 나를 낳아 고된 시집살이 시키셨다는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 우리 할머니 그리고 나. 나와 엄마, 엄마의 엄마, 아빠의 엄마, 그리고 그녀들의 남자들. 서로 사랑하고 미워하며 징한 세월을 살아왔던 우리들을 만날 수 있었던 아주 따뜻한 시간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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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 황소
션 케니프 지음, 최재천.이선아 옮김 / 살림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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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 황소

 

 


이 책을 읽으면서 난 끊임없이 생각 했다. 이 책에서 정말로 하고 싶은 얘기는 무엇일까. 꿈을 꾼다는 것, 그것의 의미? 비록 결과를 알 수없는 꿈이라 할지라도 그 자체가 소중하다는 것? 아니면, 생명의 고귀함? 우리에게는 '고기' 에 불과한 그들도 살아 움직이는 생명이라는 것? 혹은 마켓에서 손 쉽게 사먹는 고기에 관한 불편한 진실? 대량 사육과 도축에 관한 비 인도적인 진실 같은 것? 안타깝게도 이 책을 다 읽은 후에도 난 아직도 이 책이 의도한 진정한 의미를 모르겠다. 그래서 찬찬히 그 의미를 찾아볼까 한다.

 

 

이 책의 주인공인 '황소 에트르' 는 함께 사는 소들의 무리중에서 유일하게 사고를 하고 유일하게 '자각'을 한 존재이다. 그는 물 속에 비친 못난 자신의 모습을 볼 줄도 알고, 유일하게 그들의 '마지막' 을 아는 존재이다. 같은 무리들 속에서 그들의 미래를 안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만일 인간의 무리들 중에 누구라도 피해갈 수 없는 '죽음' 이라는 그 마지막을 안다는 것은 어떠한 의미를 가지겠는가.

 

 

황소 에트르는 본능에 따라 자신의 암소를 만나 자신의 아들인 숫 송아지를 얻는다. 그러다 우연히 컨베이어 벨트를 휩쓸려 들어 갔다가 거대한 살육을 맞닥들이게 된다. 그 자리에서 자신의 암소를 비롯한 동족이 사살되어 전기 톱으로 온 몸이 갈갈이 찢어지고, 간혹 살아있는 그들이 뒷다리가 매달린 채 발버둥 치는 모습을, 그들이 다시 잔인하게 죽임을 당하는 모습을 목격하게 된다. 그런 피비린내 나는 지옥에서 정말로 요행히 살아나온 그는 밖으로 나와 다른 소들에게 이 진실을 전하려 했으나 그의 말을 알아듣는 소는 단 하나도 없다. 그러다 그는 결국 농장 주인의 어린 아들을 죽이고 자신의 아들을 찾아 탈출을 감행한다.

 

 

그의 목적지는 단 한 곳이었다. 우연히 인간에게 들었던 소들의 천국 '인도' 그 곳은 소들이 신성시되는 곳이었다. 그는 다친 그의 아들을 데리고 인도를 향해 떠나지만 하이에나의 공격을 받는등 고생을 하다 결국 그의 아들이 죽게 된다. 그리고 마침내 그가 당도한 곳은  이상향인 인도가 아니라 그가 도망쳐 나온 바로 그 '농장' 이었다. 그는 결국 농장으로 돌아오게 된 것이다.

 

 

유일하게 각성한 존재. 과거부터 많은 선지자들이 나타나 죽음 후에 닥칠 위험을 경고했다. 지금도 많은 정신적인 지도자들은 인류에게 경고하고 있다. 자연을 파괴하고, 자원을 고갈시키고, 유전자를 조작하고, 생명을 우습게 여기는 우리를 향해 끊임없이 각성할 것을 외치고 있으나 그 말에 귀기울이는 사람이 얼마나 될 것인가. 황소 에트르의 외침을 들을 수 있는 소들은 안타깝게도 하나도 없었다. 그들은 단지 따뜻한 울타리와 배불리 먹을 풀들만 있으면 그만이었다. 컨베이어 벨트 뒤에 펼쳐질 잔혹한 현실은 꿈에도 알지 못한 채 농장 주인이 주는 사료를 먹으며 살만 찌우면 그만인 것이었다.
 


나는 처음에 황소 에트르의 모습에 내 모습을 비쳐본 것 같다. 그러나 책을 다 읽은 지금 난 그 농장의 수많은 소들 중 하나일 뿐임을 깨닷는다. 나의 삶, 나의 꿈, 나는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가. 나는 돈이나 명예, 많은 사람들의 인정등의 '우상' 들이 지배하는 곳에 그것들이 제공하는 삶의 목적, 그것들을 충실히 따라갈 때 받을 수있는 달콤한 보상만을 바라보며 의미없이 살아간다. 그 길이 바로 죽음으로 가는 '컨베이어벨트' 인지도 모른 채. 나에게 진실을 말했던 그는 어디로 갔을까. 추위와 배고픔에 떨며 어디에서 죽음을 맞았을까. 결국 변함없이 굴러가는 이 세상을 아타깝게 바라보고 있을까. 

 

 

많은 사람들의 노력 끝에 현재는 많은 사람들이 소와 돼지 닭의 공장식 사육에 관한 불편한 진실과 육식이 주는 폐해에 관해 많이 알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 또한 몇 달 전부터 완전채식을 실천하고 있다. 그러나 그런 사실을 알면서도, 더 많은 사람들은 그게 무슨 상관이냐고 하는 것이 지금 우리가 처한 현실이다.

 

 

나는 어렸을 때 농사를 위해 소를 키우는 부모님 밑에서 개와 고양이, 닭과 염소들과 어울려 살았고, 도시에 사는 지금은 길고양이 4마리와 리트리버 1마리와 살고 있다. 그들과 어울려 살아보면 멀리서 동물들을 바라보는 것과는 다른 것을 느낄 수 있다. 그들 또한 좋고, 싫고의 감정을 느끼며 우리의 말을 다 알아 듣는 것은 물론, 우리와 마찬가지로 '죽음'을 알고 두려워 한다는 것이다. 고양이들은 거울에 비친 모습이 자신의 모습이라는 것을 안다. 어린 시절 소들이 팔려갈 때 죽음이 자신을 기다리는것을 알고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보기도 했다. 어쩔 수없이 그들을 보내는 우리도 함께 눈물을 흘렸음은 물론이다.

 

 

황소 에트르와 그들 무리의 모습에서 나는 우리가 처한 다양한 모습들을 만날 수 있었다. 조금 지루하고 심심한 내용과 음메가 아닌 '엉프' 로 표현되는 다소 어색한 소 울음소리를 상상하며 책장을 넘겼다. 마지막 옮긴이의 말에서 조금 위험한 생각들이 살짝 엿보이긴 하지만 좋은 취지의 글이라 여기고 깊이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그가 다른 동물들의 말을 빗대어 소들이 인간에게 기대어 번영을 했고, 명석하지 못해 야생으로 돌아가지 못한다고 한다면, 황소 에트르가 그런 시각으로 그들 동족을 보았다면 이 책은 '사람'이 아니 '소' 들을 위한 책이 되어버릴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황소 에트르는 결국 농장으로 돌아왔다. 의도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의 큰 꿈을 이룰 수있는 방법이 그 자신에게는 없었다. 결국 우리의 몫이다. 그들이 어리석은 존재이건, 다시 야생성을 찾을 수 있건 없건, 그들이 우리의 말을 알아 듣던 말던 우리는 그들을 놓아 주어야 한다. 유전자 복제에 의해 대량 사육되고, 부산물을 처리하기 위해 그들 동족을 다시 사료로 만들어 그들에게 먹이는 일도 그만두어야 한다. 인간의 이기심과 모든 생명체 위에 군림하려는 만물의 영장이라는 의식도 바꾸어야 한다. 오직 우리만이 할 수있다.

 

 

이제 황소 에트르를 놓아주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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