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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노무현 1
강효산(서훈) 지음 / 까만양 / 2012년 7월
평점 :
절판
소설 노무현
노무현. 그 만큼 파란만장한 일생을 살다간 이가 있을까. 가난한 농부의 아들, 고졸 학력으로 사법고시 합격, 판사임용, 해임 후 변호사로 활동, 국회의원, 대통령, 탄핵, 귀향, 자결. 큰 장면들만 한 문장으로 모아 놓아도 그의 엄청난 인생의 행로가 그려진다. 거기에 작은 일들까지 끼워 넣는다면 대하드라마를 써야 할 지도 모르겠다.
나에게 대통령님은 큰 존재가 아니었다. 이라크 파병 때 난 반대를 했고, 그가 탄핵 당했을 때 탄핵에 반대했다. 그때 아마 내게 그의 존재가 각인된 것 같다. 그 전에는 그에게 관심이 없었다. 아니, 정치 자체에 관심이 없었다는 것이 맞겠다. 더러운 사람들의 권력암투가 내겐 그저 구역질 나는 일일 뿐이었으니까. 그가 퇴임 후 봉하마을로 내려가셨을 때 난 그 사실이 너무 반가웠고, 후임 대통령과 수구세력들에게 고초를 당하고 결국 자결을 택해야 했을 때, 아마 그 이후부터 내겐 그가 너무나 큰 존재가 되어 버렸다.
그가 대통령인 시절 난 그가 대통령이란 것도 모른 채 살수 있었다. 그랬기에 난 그가 대통령직을 잘 수행했다고 본다. 그 이후 후임 대통령이 처음으로 했던 일들 중, 한가지 일에 나도 큰 타격을 입었고 그러면서 난 현실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 절박할 만큼. 노무현 대통령님과 지금의 현직 대통령의 차이는 내게 현실로 다가왔다.
4대강이 파헤쳐지고, 숭례문이 불타고,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각종 파파라치 양성, 독도문제, 친미, 친일을 넘어선 비굴한 국제관계, 그를 위시한 수구세력들의 어이없는 행태, 언론 장악, 민간인 불법사찰, 시대를 거스르는 색깔 논쟁, 연평도 포격과 잠수함 사건으로 보여지는 북한과의 대립각, 국민과 민족을 거스르는 역사관, 겉으로 해결을 한 듯 보이지만 더욱더 경쟁을 부추기는 교육관, 더욱 깊어진 지역감정, 민영화, 2012 런던 올림픽이 한창인 이때까지 그들의 횡포는 끝이 없이 이어지고 있고, 전직 두 분 대통령님의 시대와는 정반대로, 그들은 시대를 되돌려 놓았다.
그랬기에 그에 대한 그리움은 날로 커져가고 있는 것이다. 그는 가고 없고, 나는 이제야 현실에 눈을 떴는데, 이 세상은 그대로 미쳐가고 있는 듯 하다. 그가 뿌린 씨앗이 자라나고 있다는 것을 그나마 다행으로 여겨야 하는 걸까.
이 소설에는 그리운 그의 흔적이 그득하다. 그가 이병이었던 시절부터 자결을 하기까지 정중덕과 양성익의 눈으로 본 그가 적혀있다. 정중덕은 육군 중사로서 이병 노무현을 만났고, 함께 ‘세심거사’를 만나 운명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된다. 훗날 정중덕은 법무관이 된 뒤 권력을 좆아 미국 CIA 요원이 되면서 노무현과 대립을 하게 되는 인물이며, 양성익은 정중덕과 친구사이로 수사경찰이 된 뒤, 나중에 변호사로써 노무현을 돕게 되는 중요한 인물이 된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살해된 후부터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되는데 1권에서는 거의 정중덕과 양성익의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박정희 사후 전두환 전 대통령이 쿠데타로 정권을 잡고, 그 틈바구니 사이에서 어떻게 그들의 행보가 엇갈리는지를 보여주면서 우리의 현대사가 펼쳐지는 것이다. 정중덕의 역할은 미국의 대리인이다. 2권에서 드디어 그의 본격적인 행보가 시작된다. 그가 대통령이 되는 역사적인 순간, 정책을 하면서 부딪쳤던 일들, 위기들의 계속, 탄핵과 귀향, 그가 끝까지 놓지 않았던 한반도의 평화. 그 모든 것들이 펼쳐진다.
이 소설에서 노무현을 결국 ‘자결’ 에 이르게 한 것은 미국의 네오콘 (미국의 신보수주의자들) 이며, 그들을 추종하는 국내 수구들 요즘 유행하는 말로 ‘종미’, 친일의 무리, 그리고 책에서 표현하는 대로 C일보, 즉 언론이었다. 그런 것들을 표현하기 위해 저자는 중덕을 CIA 요원으로 설정한 듯하다. 미국이 원하는 것은 평화가 아니다. 평화를 위해 남북이 손잡는 것을 원치 않는다. 주한미군이 계속 남아있어야 하며, 적절한 긴장관계를 통해 이익을 얻으려는 그들의 속셈에 평화를 위해 노력하는 노무현은 방해가 되는 것이다. 그들은 그리하여 결점이 많아 주무르기 쉬운 차기 대통령이 선출되도록 뒤에서 힘을 썼고 그 결과가 바로 지금의 현실이다. 그들은 노무현을 직접적으로 죽이지는 않았지만 친일과, 친미, 반공사상으로 무장한 국내 수구세력, 거기다 언론과 힘을 다해 그를 사지로 몰아 넣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는 자살이 아니라 ‘자결’을 했다. 노무현은 그들이 원하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고 이 소설은 말한다. 그가 이 세상에서 사라지지 않는 한 그들이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없기에, 그의 죽음을 원한다는 것을. 그가 있지도 않는 죄를 뒤집어 쓰고, 그의 측근들도 똑 같은 일을 당하고 그런 모습을 보며 평생을 그 속에서 살아가기에 그는 너무도 뜨거운 사람이었으니까. 이에 그는 스스로의 생을 마감함으로써 남아있는 자들에게 희망의 불씨를 남겨준 것이다.
그의 바람대로 나는 더 이상 그의 죽음을 슬퍼하지도 않을 것이며, 그가 남겨준 것들을 잘 키워가리라 다짐을 한다. 모든 것은 운명이며, 삶과 죽음은 다르지 않으므로. 그는 운명을 알았다. 운명이란 것이 그저 살아가며 만나게 되는 ‘우연’이 아니라, ‘인과’ 라 하기에. 지금이 아니면 그 다음, 그 다음이 아니면 그 다음다음. 우리는 계속 살아가고, 그가 남긴 씨앗도 계속 살아남아 우리 곁에 성장할 것이다. 아직 ‘사람 사는 세상’은 오지 않았다. 그가 원했던 ‘사람 사는 세상’ 을 위해 나도 내 인생에서 지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