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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충류가 지배하는 시장 - 경제학자들이 말하지 않는 시장의 진실
이용범 지음 / 유리창 / 2012년 7월
평점 :
파충류가 지배하는 시장
인간은 과연 합리적인 존재인가? 이 책은 그 질문의 범위를 조금 줄여 묻는다. ‘인간은 과연 합리적인 경제활동을 하는 존재인가?’
표준경제학에서는 인간을 합리적이고 이기적인 존재로 가정한다. 그래서 경제가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유지될 것이라고 예견했다. 그러나 과거의 대 공항과 미국 발 서브 프라임 쇼크 발생 등의 경험과 몇 번의 경제 위기에서 그 보이지 않는 손은 제 역할을 다하지 못했음을 확인했다. 그 후 여러 경제학자뿐만 아니라 심리학자, 인류문화 학자들의 연구들을 통해 인간이 ‘완벽히 합리적’인 존재는 아니라는 것을 밝혀냈다. 심리학의 영향을 받은 ‘행동 경제학’ 에서는 인간을 부분적으로만 합리적인 존재라고 하고, 진화심리학과 게임이론에서는 인간이 이기적인 동시에 이타적인 존재로 이해한다.
이 책은 행동 경제학과 진화심리학의 이론에서 보듯이 인간이 완벽히 합리적이지는 않음을 전제로 인간의 경제활동과 문화전반 즉 소비, 주식, 부동산, 금융시장, 마케팅, 통계 등의 허와 실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면 인간의 경제활동과 파충류는 과연 어떤 관계가 있을까? 미국의 심리학자 폴 매클린은 1950년대에 인간의 뇌가 R-복합체, 변연계, 대뇌피질 3가지로 이루어져 있다는 ‘뇌 삼위일체론’을 발표했다. 이중 R-복합체는 일명 ‘파충류의 뇌’ 라고 불리는데 인간의 뇌에서 가장 오래된 부분으로, 심장박동, 혈액순환, 호흡 등의 생존과 생식기능을 관장하며, 어류와 양서류는 바로 이 부분만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한다. 파충류의 뇌는 동물적 충동의 원천이고 변연계는 충동에 대처할 상황을 부여하며, 대뇌피질은 각 상황에 대한 대응 논리를 제공하고 선과 악의 판단, 합리성을 부여한다. 인간의 뇌는 위험에 직면했을 때 약간의 손실을 감수하더라도 최대한의 위험을 피하도록 진화되었으며 그에 가장 좋은 방법은 바로 무리 속에 숨는 것이다.
우리는 선택의 기로에 섰을 때나, 시장에서 어떠한 문제가 생겼을 때 어떻게 판단하고 행동 하는 걸까? 겉으로 보기에 인간의 고유한 뇌의 능력인 대뇌피질에 의한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사고를 할 것 같지만, 우리는 대부분 파충류의 뇌로 판단하고 행동한다. 즉 위험을 최소한으로 줄이며 집단의 분위기와 주위사람들이 할 것 같은 사고와 행동을 하게 되는 것이다. 이 책은 파충류의 뇌로 사고하고 행동하는 인간의 비 합리적인 태도와 경향을 과학적이고 광범위하게 밝혀 놓았다.
3부까지는 인간의 경제 활동에 대한 비합리적인 행동 패턴과 그런 행동을 하게 편향, 인지부조화, 합리화, 오류 등에 대한 실험들과 무수한 사례들이 등장한다. 우리가 친숙하게 느끼거나 경험했던 일상생활에서 저지르고 있는 비 합리적인 생활패턴들, 경제학, 철학, 심리학 등의 학문에서 많이 보았을 법한 합리화, 후광효과, 레밍 딜레마, 매몰비용오류, 머리 들여놓기 기법, 가용성 편향, 통계의 허구, 베버의 법칙등 많은 용어들과 그에 관한 흥미진진한 실험들이 소개된다. 또한 개미들이 주식시장이나 부동산 시장에서 손해를 볼 수밖에 없는 이유도 자세히 설명되어 있다.
4부와 5부에서는 우리의 문화생활과 소비생활이 심리학과 인류 진화학의 관점으로 펼쳐진다. 인간의 합리적인지, 시장은 완벽한지, 스포츠와 소비, 유한계급의 과시를 위한 소비, 보험과 공공재에 대한 의견, 가난한 사람들의 비합리적인 소비생활 등을 살펴볼 수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가진 오류들과 비합리적인 소비생활, 비 합리적인 사고에 대해 알아가면서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경제에 관한 책들은 너무 어려워 읽기가 망설여 졌었는데, 이 책은 경제학 서적이지만 심리학과 진화, 문화 등의 다양한 학문과 접해 있어서 읽으면서 어렵지도 않았고 무척 재미있었던 것 같다. 또한 내용 자체가 우리 생활과 밀접하게 연관이 되어있기 때문이기도 했고, 저자의 분야를 넘나드는 광범위한 지식과 탁월한 시각, 훌륭한 문장에 연신 감탄사를 연발 할 수밖에 없었다.
꼭 경제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이 책은 꼭 읽어볼 것을 권하는 바이다. 경제를 떠나서 인간이 어떠한 존재인지에 대해 깊이 이해할 수 있는 책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