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밭에서 지상의 시를 읽다
곽재구 지음 / 이가서 / 200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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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한국문학에 있어서 시집이 제법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던 시기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80년대와 90년대초 정도? 그런데 언제부턴가 시집이 손에서 밀려나기 시작했다. 왤까?

내가 시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이 아니기때문에 말하기 조심스러워지지만, 그래도 내 생각에는, 시를 읽고 생각할 수 있는 여유가 많이 사라졌다는 것, 함축적인 표현보다는 직설적인 표현에 길들여지기 시작했다는 것, 혹은, 함축적으로 숨기지 않아도 될만큼 국내정세(?)가 나름대로 풀렸다는 것, 그리고, 시적감수성보다는 영화나 텔레비전같은 영상의 힘이 커졌다는 것? 정도???

어쨌든, 나 역시 시집을 사서 읽기가 많이 두려워진 사람 중에 하나다. 그런데, 이번에 [별밭에서 지상의 시를 읽다]를 읽어보니, 그런 마음을 조금은 다독여줄 시집이란 생각이 든다. 어느 누구 한명의 시가 아니라 여러 사람의 시를 모았고-알만한 시인들이 모두 등장한다. 교과서 外적인 시인들이. 그리고 곽재구 시인의 설명은, 시 외에 또다른 한편의 에세이같은 느낌을 전해준다.

 

어느 정도 시를 알고 시를 이해하는 사람들에게는 성에 차지않는 책일 수 있겠고, 시를 읽고싶은데 두려운 사람들에게는 편안하게 다가오는 시집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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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미술기행 - 인간과 예술의 원형을 찾아서
편완식 지음 / 예담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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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붉은색을 참 좋아한다. 예전에는 밝은 느낌의 빨강을 좋아했다면, 요즘은 무게감이 느껴지는 붉은색이 좋다. 뜬금없이 붉은색 타령을 하는 것은, 이 책을 선택하게 된 동기이기도 하기때문이다. 표지에서 보이는 붉은색, 그리고 내가 아프리카를 떠올릴 때마다 함께 뒤따르는 붉은색의 기운.

아프리카의 미술이라.. 이 책을 읽기 전에 나는 아주 원시적인 그림을 상상했다. 아프리카라는 대륙이 주는 이미지, 미디어를 통해서 바라 본 아프리카의 모습, 항상 기아와 가난에 허덕이는 모습만을 보아 온 나였기에 그들의 에술작품조차도 아주 미개한 것으로 여기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을 펼치고 아름다운-이라고밖에 형언할 수 없는- 아프리카의 풍광과 그 아름다움 속에서 키워낸 에술적 감성, 미술적 표현들은 결코 미개하지 않았다.

삭막한 회색빛 도시만 보고 자란 사람들이 그려내는 음울함 미래상같은 그림들과 달리 아름다운 자연을 그대로 느끼고 가슴에 품고 사는 사람들이 그려낸 그림은 희망이 잇고 활기가 있고 역동감이 있었다. 보는 것이 다르니 그리는 것이 어찌 같을까? 비록 재료의 풍부함과 부족함에 차이는 잇을지언정 결코 그들의 감수성은 떨어지지 않았다고 해야할까? 물론, 그림을 그려 생계를 유지하는, 생계형 미술가들이 많기는 하지만 그것 역시 무시할 바는 되지 못한다. 사실, 깡통 몇개 쌓아놓고 예술이라 칭하는 이해하지 못한 작품들보다는, 상업화되고 모방된 그림이라 해도 가슴에 따뜻함이 남거나 그도 아니라면 아프리카가 느껴지는 그림이라면 더 낫지 않을까?

저자와 함께 여행을 하며 두 명의 화가가 그림 그림도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그림보다 그림설명이 더 중요해진 요즘 작품에 지친 나는, 그림만으로 아프리카가 느껴지는 아프리카 미술에 박수를 보낸다. 더불어 가보지는 못하지만 책을 통해 그림을 접할 수 있어서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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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
시게마츠 기요시 지음, 고향옥 옮김 / 양철북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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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많이 떠올리게 되는 단어는 바로 죽음이다. 졸업이라는 단어와 죽음이라는 단어가 묘하게 오버랩된다. 그러나, [죽음]이라고 해서 음울하거나 절망스러움과는 다르다. 죽음을 통해 삶을 이야기한다. 특히 나와 관계있는 타인의 죽음을 통해 나 자신의 삶의 의미를 찾는 것이다. 그래서, 이 책 속의 [죽음]은 [삶]과 맞닿아있다.




[졸업]




아야는, 자살한 친아버지의 친구를 찾아와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다. 자살을 시도한 바 있고, 여전히 자살의 유혹 속을 거닐고 있는 아야. 학교에서 어이없는(?) 괴롭힘에 시달리고 있으면서도 아야의 모습은 경쾌하다. 툭툭 내뱉는 단어나 행동에서 다른 10대들과 차별되지 않는다. 아야는 아이들로부터 협박문자를 받거나 괴롭힘을 당해도 무시할 줄 아는 아이다.




이쯤하면, 아야의 왕따가 이야기의 주요내용일 것 같지만, 엉뚱하게도 이야기는 아야의 친아버지를 추억하는 내용이다. 40대의 와타나베가 스물여덟에 죽은 친구 이토의 이야기를 한다. 이토가 자살한 이유는 모른다. 젊은 아내와 뱃속의 아이까지 두고 옥상에서 뛰어내려야했던 이토의 마음을 알고 있었던 사람은 없었다. 친한 친구였던 와타나베도 아내였던 가오리도. 이토는 그래서, 그 외로움을, 아픔을 함께 할 사람이 없어서 극단적인 선택을 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이토와의 추억을 떠올리고 이야기하는 동안, 와타나베는 물론이고, 이 책을 읽는 나도 생각을 하게 된다. 얼토당토 않은 이유로 왕따를 당할 수도 있는 아야를 보면서, 아무도 자살한 이유를 모를만큼 철저하게 혼자였던 이토를 보면서 지금 내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깨닫는다. 우리가 부딪치는 수많은 어려움과 좌절을 이겨내기 위해서는 자신의 의지가 가장 중요한 것이겠지만, 주위의 시선도 적당히 필요하다. 관심을 갖고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 문제를 해결해주지는 못하지만, 적어도 자신을 이해해주는 사람이 곁에 있다는 것은 큰 힘이 된다. 아야에게는, 어머니와, 그녀를 사랑하는 새아버지 노구치씨의 사랑이 있다.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규정된 관계가 아니라 아야 스스로 한고비를 넘길 수 있도록 도와주고 서포트해주는 사람으로서의 가족이다.




졸업은 새로운 시작이라 했다. 우리가 초등학교를, 중학교를, 고등학교를 졸업한다는 것은, 한단계 더 나아가 새로운 생활이 시작된다는 것을 의미했다. 모든 것이 다 새롭게 바뀌고, 우리는 새로운 생활에 빨리 적응하고 또다른 졸업을 맞이한다. 인생도 마찬가지이다. 지금 힘들고 아프다고 해서 영원히 그런 것은 아니다. 그래서 졸업은 새로운 희망이다.




[행진곡]




죽음을 앞둔 사람을 보고 있은 적이 있는가? 가까운 사람의 죽음을 앞두었을 때는 특히 그 사람과의 관계에 대해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된다. 나 역시 그런 일을 겪었고, 그로 인해 어린 시절을, 혹은 그 사람과의 특별했던 하루를 떠올리기도 했다. 코지는 어머니의 죽음을 앞두고 어린 시절을 떠올린다. 어린 시절을 이야기하면 절대 빠질 수 없는 동생 마유미,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리는 노래 때문에 학교에서 적응할 수 없었던 마유미의 일은 지금 코지의 아들 료스케와 겹쳐진다. 우리는 우리의 부모가 나를 이해하지 못했다고 생각하면서도 정작 자신의 아이들을 이해하려고 하지 않는다. “이해”라는 단어보다 좀더 포괄적인 의미의 단어가 없을까? 사랑인줄 알았는데 구속이었고, 사랑인 줄 알았는데 대상에 대한 몰이해였다. 그래서, 네편의 이야기 중에서 [행진곡]이 제일 오래 기억될 것 같은 느낌이다.




[아버지의 마지막수업]




한때, 나도 교사라는 직업을 가지고 있었다. 교사로서의 사명감이랄까? 학생 때 보아 온 교사들의 모습에서 진정한 스승의 모델을 찾을 수 있었던 사람은 행운아이다. 적어도 그런 교사의 모습을 통해 공교육을 불신하지 않고 믿고 따를 수 있는 이유가 되었을 테니까. 그렇지만 적어도 학생들의 눈에 비친 진정한 스승이란 어떤 것일까? 생활을 감독하고 간섭하는 교사를 아이들은 어떻게 바라볼까? 세상이 변하고 가치가 변하면서 엄한 선생님은 교사로서의 권위로 인정받기보다 아이들로부터 따돌림을 받는 존재로 전락해버렸다. 엄한 선생님과 폭력적인 선생님은 다르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엄한 교사와 폭력적인 교사가 섞여버렸다. 더군다나 명퇴다 뭐다해서 연륜 있는 선생님들이 많이 없어지신 것도 한몫하겠지. 어쨌거나, 이 이야기는 선생님 父子의 이야기이다. 아이들을 사랑하는 방법은 많이 달라졌지만, 장례식에서 울어줄 제자 하나 없는 선생님의 마지막 수업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추신]

케이치군 나도, 천국에 가서도 쭉 케이치군 어머니란다.

이 한 줄로 모든 것을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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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미오와 로미오는 영원히 마스터피스 시리즈 (사람과책) 1
온다 리쿠 지음, 박정임 옮김 / 사람과책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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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다리쿠는, 이 책을 시작하면서 [로미오와 로미오는 영원히]라는 제목을 정해놓고 자신도 그 제목의 의미를 모른다고했다. 이 책을 끝맺기 전에 그 제목의 의미를 찾겠다고 했으나, 책이 끝난 후에도 저자는 의미를 찾지 못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말하기를 제목의 의미를 묻지말라나...??

나는, 이 책을 [아키라와 시게루는 영원히]라고 읽었다. 그러니까, 로미오는 구체적으로 어떤 인물이 되어도 상관없는 것이다. 성불(책 속에서의 의미로)한 인간들이라면 누구라도 괜찮을듯싶다. 뭐, 행복하게 잘 살았습니다로 끝맺는다면 오히려 싱겁겠지. 서술어는 읽는 독자 마음대로 붙여도 상관없으리라.

온다리쿠식의 학원물이, 순정만화같던 학원물이 SF로 재탄생했다. 물론, 내가 SF에 대해 잘 모른다는 점을 감안할 때 이 정도의 저작이 어느 정도의 위치를 차지할 지는 잘 모르겠다. 그러나, 근미래의 도쿄의 고등학교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는, 어쩌면 정말 가까운 미래에 이렇게 될지도 몰라, 라는 마음을 갖게 하기에 충분하다. 한편으로는 대도쿄고등학교를 지배하고 있는, 정확하게는 학생들을 관리하고 있는 다다노라는 인물이 생각해내는 게임들은 유치하기 짝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어릴 때 놀았던 게임들을 떠올리게 하면서도 더 잔인하다는 점에서 시선을 끌기도 한다.

사실, 이 책을 읽는 동안, 저자가 정리한 20세기 서브컬쳐 용어사전이 없었더라면, 책 속에 인용되거나 패러디된 수많은 비유와 상징들을 놓쳤을 거란 생각이 든다. 20세기의 용어라면 우리에게 그리 낯설지 않은 것임에도 불구하고 일본적인-일본인만 알 수 있는 것들-것들이 많아서 조금 어렵기도 했고, 소제목으로 쓰인 영화제목들도, 관심 밖의 영역이었던 나에게는 의미가 다가오지 않는다는 점이 흠이라면 흠일까?

지구의 사람들이 신지구로 이동하고 산업페기물이며 화학물질 처리를 담당하며 살아가고 있는 일본인들에게 대도쿄고등학교의 졸업대표가 된다는 것은 유일한 희망쯤으로 보인다. 어찌하여 지구에서 그 일을 일본이 담당하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가끔씩 등장하는, 일본의 성장을 눈엣가시처럼 보았던 세계의 눈에 대한 의식이 이유라면 이율까?- 어쨌든, 20세기의 문화는 퇴폐적이고, 비생산적인 것으로 규정되어 사라진 채 막노동만이 유일한 돌파구인 양 행해진다. 사실, 문화를 바라보는 시각이 근미래에 이런 식으로 바뀔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 요즘처럼 소비지향의 문화라든가, 감각지향의 문화를 볼 때면 더욱 그러하다. 예전에는, 한 세기를 풍미한 문화라 함은 대중과 함께 변화 발전해왔는데, 요즘의 문화라는 것이 같은 시대를 살고 있는 사람들초잧 몇 부류로 나누어져 이해하지 못하는 자와 이해하는 척 하는자, 또 이해하는자로 나누어놓고 있으니 이것이 과연 인류가 즐겁게 누려야 할 문화인가 하는 점에서는 의문스럽기도 하다.

극단적인 사람들의 시각으로 그 문화를 모두 없애고자 한다면. 여기 이 책의 무대가 된 지구의 모습이겠지? 그러나, 모든 것은 극단적일수록 그 틈은 쉽게 벌어지는 법이다. 지금의 문화가 아무리 쓰레기같이 느껴진다하여도 그 속에서 또 아름다운 문화는 싹을 튀워내고 있으니까. 아키라와 시게루가 대도쿄고등학교의 강압적인 규제와 막노동 속에서 졸업대표가 되고자 하는 -체제에 순응하고 거기에 가장 열심히 따라주는 - 목표의식에서 벗어나면서부터 지금의 지구의 현실은, 뭔가 이상한 세계가 된다. 물론, 언그라의 세계 역시 자연스러운 세계는 아니다. 탈출을 위한 탈출을 감행하는 신주쿠 클래스도 마찬가지다. 이 책의 표현대로 성불을 한 시게루와 아키라가 바라본 세상, 그 세상 역시 이상적인 세계는 아니다. 그러나 적어도, 극단적으로 치달은 세계의 끝을 본 그들에게는 새로 역사를 쓸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것이다. 이런 걸 희망이라고 불러야할까?

책의 내용이 다소 만화같고 억지스러운 점도 보이지만, 20세기의 문화를 되돌아보고, 그것이 지향할 바를 되짚어볼 수 있었다는데서 재미있게 읽었다. 2-세기 일본의 문화를 간략하게 요약한 듯한 서브컬처용어대사전을 읽는 재미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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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네디와 나
장폴 뒤부아 지음, 함유선 옮김 / 밝은세상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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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내 나이도 마흔을 향해 열심히 달리고 있다. 인간의 수명이 길어졌다하니 지금까지 살아온 날보다 더 많이 살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지만, 그래도, 지금부터 한 이십년 정도 살면 만족스럽지 않을까? 음, 그러면 내 아이 스무살에 떠나야한단 말인가....그건 좀 난처하기도 하고..

그런데, 나는 지금까지 어떤 삶을 살아왔을까? 지금 나의 최대고민은 무엇이지? 이 책을 읽다보니 이런 생각들이 줄줄이 꿰어나온다. 그래도 지금까지는 정신없이 달려왔고, 또 앞으로도 한가하지는 않을 전망(?)이니 내 삶에 무기력이라는 단어가 끼어들거라곤 생각하기 어렵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그러하듯 무기력은 순식간에 사람을 잡아먹는 존재이다.

이 책의 주인공인 사무엘 폴라리스 역시 왕성하게 활동을 하다 어느날 갑자기 절필을 하고 삶의 무기력에 빠져든 사람이다. 그의 무기력함은 그의 가족들로부터도 소외된 존재로 만들어버린다. 아내의 외도도 그에게는 자극이 되질 못한다. 딸의 연애도 그에게는 시비꺼리가 하나 늘었을 뿐 그의 삶에 자극이 되어주질 못했다. 그렇게 한도 없이 무기력해진 그가, 권총 하나를 사서 보관하면서부터 일종의 비밀이 묘한 자극이 되어준것같다. 생활과 삶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일들이 아무 의미없이 느껴지던 그에게 권총은, 하나의 돌파구처럼 여겨진다. 물론 그 권총으로 뭔가를 해야한다는 생각은 없다. 단지 남모르게 그걸 가지고 있다는 쾌감이랄까? 결국, 그 권총을 발견한 아내와, 그가 권총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안 아내의 애인, 또 사무엘이 정신과치료를 받고 있는 의사에게 알려지면서 이야기는 다시 활기차게 움직인다.

아무것도 의미없이 느껴지던 사람이 어떤 물건에 집착하게 되는 과정을 보면 무섭기까지하다. 도대체가 그 속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사무엘은 권총으로 뭔가 일을 저지를 생각은 없다. 그러나 그의 속을 알지 못하는, 알더라도 믿지 못하는 이들이 보기에 권총은 상당한 위협으로 다가온다. 때로는 그 위협이 의도하지 않았지만 힘을 발휘하기도 하고.

나는, 아직까지는 그런 단계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사무엘의 마음이 이해가 되었다. 그렇게 정신없이 바쁘게 살아오던 그가 뭔가를 탁 놓쳐버린 느낌, 그때문에 그가 권총이든, 케네디의 시계든 집착하게 만든 것이다. 그러나 사무엘의 삶이 우울하게는 느껴지지 않는다. 장 폴 뒤부아식의 이야기 흐름은 오히려 사무엘을 밝은 모습으로 그려놓고 있다. 그래서, 그의 강박은 책을 읽는 우리마저 강박에 시달리게 하지는 않는다. 우리에게도 인생의 전환기가 몇번 찾아올것이다. 그때마다 다시 뭔가를 잡기위해 발버둥치기보다는 삶을 조금 관조할 수 있는 여유가 필요한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케네디의 시계는, 우리 마음 속에도 존재한다.

 

(별점 세개에 대한 변을 하자면, 이 책 읽느라 근 한달이 걸렸기때문이다. 아주 개인적인 별점이므로 신경쓰지 말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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